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21화: 침묵이 대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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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1화: 침묵이 대답하는 방식

세아는 강리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병실을 떠났다. 천천히. 마치 자신이 이미 그곳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강리우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세아. 세아!”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것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가 자신의 귀를 점점 닫고 있기 때문이었다.

복도는 병원의 모든 복도와 같았다. 형광등. 하얀 벽. 소독 냄새. 세아는 그 냄새를 마시며 걸었다. 그 냄새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냄새였다. 강리우도 그 경계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경계는 다른 종류였다. 신체적 상처가 아니라 영혼의 상처. 그리고 그 상처는 병원이 치료할 수 없는 종류였다.

해늘은 복도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자신의 손목을 보고 있었다. 타투가 있는 손목. 작은 불꽃 모양의 타투. 세아가 해늘의 팔을 스쳐 지나갈 때, 해늘은 고개를 들었다.

“다 했어?”

해늘이 물었다. 그 질문은 중립적이었다. 판단 없이. 단순히 사실만을 묻고 있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해늘은 일어났다. 그리고 세아를 흘깃 봤다. 세아의 얼굴을 읽으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의 얼굴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세아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연습해왔다. 감정을 숨기는 것. 자신의 내부를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

지하철 안에서 세아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은 누구인가? 얼굴은 자신의 것이지만, 눈빛은 낯선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빛을 자신의 눈에 심어놓은 것처럼.

“넌 이제 뭘 할 거야?”

해늘이 물었다. 지하철이 강남역을 떠날 때.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법정?”

“3주 후.”

“그 사이에는?”

“살아야지.”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한 진술이었다. 마치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처럼 당연한 진술.

해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해늘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아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말이 아니라 함께함. 질문이 아니라 존재. 그리고 해늘은 그것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하철이 합정역에 도착했을 때, 세아는 해늘에게 말했다.

“넌 돌아가.”

“뭐?”

“너는 타투샵이 있잖아. 약속이 있을 거야.”

“오늘 쉬는 날이야.”

해늘이 대답했다.

“그래도.”

세아가 말했다.

“그래도 뭐?”

“그래도 가.”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해늘은 세아를 봤다. 오랜 시간 동안. 마치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리고 마침내 해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해늘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거짓이 아니기도 했다. 세아는 지금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이제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일상이었다. 괜찮지 않은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고, 괜찮지 않은 상태로 밤을 마무리하는 것.

해늘이 떠난 후, 세아는 고시원으로 갔다. 합정동의 반지하. 그곳에는 창이 하나 있었다. 그 창을 통해 사람들의 발이 보였다.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 그들은 세아가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그저 위를 걸어간다. 자신의 삶으로 바쁜 사람들처럼.

고시원의 문을 열었을 때, 세아는 검은 고양이를 봤다. 장판이라고 불렀던 그 고양이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세아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왔어?”

세아가 고양이에게 말했다.

고양이는 울음을 냈다. 깊고 낮은 울음. 그것은 세아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다. 나 여기 있었어. 너는 어디 있었어? 왜 이렇게 오래 갔어?

세아는 고양이를 들었다. 고양이는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무게였다. 심장이 뛰는 무게. 호흡하는 무게. 세아는 그 무게를 느끼면서 처음으로 이 하루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서, 고양이를 가슴 위에 올려놓고, 세아는 천장을 봤다. 천장에는 곰팡이가 있었다. 초록색 곰팡이. 그것은 세아가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있다. 곰팡이는 자라고 있었다. 천천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세아의 손이 고양이의 머리를 쓸었다. 고양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강리우의 질문. “왜 신고했어?”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 자신을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세아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왜 너는 신고했어? 왜 너는 그런 선택을 했어? 그것이 맞는 선택이었나?

하지만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질문의 답은 병원의 복도에 있지 않다. 법정에 있지 않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이 반지하 고시원의 침대 위에 있다. 고양이의 따뜻한 몸과 함께. 호흡하는 생명과 함께.

세아가 강리우를 신고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이 살아있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침묵하는 것은 죽는 것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자신의 고통을 어둠 속에 묻는 것은 자신도 함께 어둠 속에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하는 것, 증언하는 것, 신고하는 것 — 그것은 다르다. 그것은 아프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세아는 고양이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침대 옆 책상에는 공책이 있었다. 새로운 곡을 쓰기 시작한 공책. 최근 몇 주 동안 세아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세아는 펜을 집었다.

첫 번째 음표. 두 번째 음표. 세 번째 음표.

그것들이 모여서 선율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선율은 법정의 선율과 달랐다. 그것은 더 낮고, 더 깊고, 더 진실에 가깝다.

밤이 깊어질수록, 세아는 계속 썼다. 손이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강리우의 손이 떨리는 것처럼, 세아의 손도 떨렸다.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떨리는 손으로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

해늘의 말이 떠올랐다. 카페에서 해늘이 말했던 것. “왜 계속 피고인처럼 다루냐고.”

세아는 이제 이해했다. 그 이유를.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고통을 정당화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세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했다는 것. 그것이 좋은 선택이었는지 나쁜 선택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당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행동했다는 것.

새벽 3시. 세아는 여전히 쓰고 있었다.

그 곡의 제목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율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슬픈 곡이었다. 하지만 슬픈 곡이면서도 동시에 강한 곡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는 것처럼. 그 불이 완전히 밝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으로 충분해서 앞을 볼 수 있었다.

세아는 펜을 내려놓고 자신이 쓴 악보를 봤다. 그 악보는 완벽하지 않았다. 음표 몇 개는 틀렸을 수도 있고, 박자가 어긋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강리우가 만든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대에 맞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떨리는 손으로.

세아는 고양이를 다시 들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따뜻했다. 그 따뜻함은 계속될 것이다. 아침이 와도. 법정이 다시 열려도. 그 따뜻함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3주 후의 법정을 생각하면서,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말할지를 알고 있었다. 변호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무엇인지를.

“왜 신고했나요?”

변호사가 물을 것이다.

그리고 세아는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살아있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고 명확한 대답. 그것이 전부였다.


병원의 강리우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깁스 위로 손가락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의사는 그것을 신체적 피로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강리우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항복이었다.

자신의 손가락들이 더 이상 무언가를 움켜잡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항복. 자신의 손이 더 이상 누군가를 만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항복. 자신의 손이 영원히 떨릴 것이라는 깨달음에 대한 항복.

강리우는 천장을 봤다. 병실의 천장. 그것은 완벽하게 하얀 천장이었다. 곰팡이도 없고, 먼지도 없다. 그것은 돈으로 구매한 완벽함이었다. 하지만 그 완벽함 속에서 강리우는 자신이 완전히 망가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세아가 떠난 후, 강리우는 처음으로 울었다.

하지만 그 울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눈물만 흘렀다. 침대 옆의 간호사 콜 버튼에 닿지 않고. 아버지에게 전화하지 않고. 그저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은 채, 울었다.

그 울음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를 위한 것이었다. 자신이 빼앗은 것들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이 부수어버린 것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영원히 돌려줄 수 없는 것들을 위한 것이었다.

강리우의 손가락들은 계속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은 이제 그의 형벌이 될 것이었다.

# 새벽의 악보

## 1부: 세아의 밤

새벽 3시 47분.

세아는 여전히 악보를 그리고 있었다. 펜촉이 오선지에 닿을 때마다 나는 섬세한 스크래칭 음이 유일한 소리였다. 다른 세상은 모두 잠들어 있는 이 시간, 이 침묵 속에서만 그녀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책상 위의 스탠드는 노란 불빛을 뿌렸다. 그 불빛 아래로 펼쳐진 오선지는 마치 밭고랑처럼 보였다. 그리고 세아는 그 고랑 위에 음표라는 씨앗을 하나하나 심고 있었다. 어떤 씨앗은 크고, 어떤 씨앗은 작았다. 어떤 것들은 위로 줄기를 뻗어 올렸고, 어떤 것들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곡의 제목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제목이라는 것은 결국 남의 눈을 위한 것이었다. 음악을 설명하기 위한 것, 분류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아에게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표현이었다.

선율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 곡은 슬픈 곡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눈물은 자신의 상처를 만져서 흐르는 눈물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그 곡을 들으면서 자신의 어둠을 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강한 곡이었다.

그 강함은 거짓된 것이 아니었다. 절망 속에서 강하게 울어대는 그런 종류의 강함이 아니었다. 아니면 자신을 과장해서 보여주려는 허세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성냥을 켜는 것처럼 보였다. 그 성냥불은 완벽하게 밝지 않았다. 손가락이 타기 전에 꺼질 수도 있는 그런 약한 불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불빛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으로 충분해서 발 앞의 한 발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다음 한 발을 내딛기 위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세아는 펜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저렸다. 3시간을 계속 펜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지 손가락이 빨갛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 아픔은 이미 기숙사에 내려와서 신발을 벗던 순간부터 느껴지는 것들에 비하면 무의미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린 악보를 바라봤다.

완벽하지 않았다. 몇 개의 음표는 틀렸을 수도 있었다. 기울기가 이상한 음표들이 있었다. 두 번 그려진 음표도 있었다. 박자를 나타내는 선들이 약간 어긋나 있었다. 어떤 음표는 오선을 벗어나 있기도 했다. 전문가가 보면 한숨을 쉴 만한 수준의 악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세아는 그 악보에 손을 얹었다. 종이의 느낌이 손가락 끝에 전해졌다. 평범한 오선지였다. 학용품점에서 천 원도 안 하는 그런 종이였다. 하지만 그 위에 새겨진 음표들은 어떤 고급 악지 위의 완벽한 음표들보다 귀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강리우가 만든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증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떨리는 손으로.

그 생각이 들자 세아의 눈이 따뜻해졌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또한 분노의 눈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도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종류의 눈물이었다. 누군가가 사막에서 처음으로 물을 마셨을 때의 감정이 있다면, 그런 종류의 눈물이었다.

책상 옆의 침대 위에는 고양이가 누워 있었다.

흰색과 주황색이 섞인 고양이였다. 세아의 룸메이트가 기숙사를 나가기 전에 남겨두고 간 고양이였다. 지금 그 고양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웅크린 자세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그 고양이의 몸에서 나오는 따뜻함이 이 차가운 새벽을 유일하게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아는 고양이를 안았다.

고양이는 잠에서 깬 듯 눈을 떴다. 하지만 곧 다시 눈을 감았다. 세아를 신뢰하는 것처럼. 그 신뢰의 무게가 세아의 가슴을 누눌 때, 그녀는 비로소 진정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것 같았다.

고양이의 털이 뺨에 닿았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따뜻함은 계속될 것이다. 아침이 와도. 햇빛이 들어와도. 법정이 다시 열려도. 그 따뜻함은 남아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의 체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아는 고양이를 안은 채로 눈을 감았다. 새벽의 침묵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는 고양이의 숨소리가 있었다. 자신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악보 위에 새겨진 음표들이 고요하게 울리고 있었다.

사흘 뒤, 세아는 변호사와 함께 앉아 있을 것이었다. 변호사는 경험 많은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의 눈빛은 남의 일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직업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변호사가 물을 질문들을.

“왜 신고했나요?” 그가 물을 것이었다.

법정 안의 모든 눈이 자신을 향할 것이었다. 판사의 눈, 배심원들의 눈, 기자들의 눈, 그리고 강리우의 눈도. 그 모든 눈이 자신의 입을 기다릴 것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할 것인지.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을 전할 것인지.

“왜냐하면 나는 살아있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고 명확한 대답. 그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것은 사실이었고, 그 사실로 충분했다.

세아는 고양이를 더 안았다. 새벽은 점점 밝아가고 있었다. 창문의 검은색이 짙은 파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 순간의 침묵과 따뜻함을 조금 더 가지고 싶었다.

그것은 자신의 권리였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들을 지킬 권리, 자신의 시간을 소유할 권리,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그저 살아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2부: 강리우의 병실

같은 새벽 3시 47분.

강리우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실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하얀 천장이었다. 곰팡이도 없고, 먼지도 없고, 그 어떤 결함도 없는 천장이었다. 그것은 돈으로 구매한 완벽함이었다. VIP 병실의 천장. 일반 병동의 누런 천장과는 완전히 다른, 그것은 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 완벽한 천장을 바라보면서, 강리우는 자신이 완전히 망가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양손은 깁스로 감싸여 있었다. 의사는 “상완골과 요골, 척골의 복합 골절”이라고 했다. 그리고 “신경 손상”이라고도 했다. 그 의료 용어들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자신의 손은 더 이상 그전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

깁스 위로 손가락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것은 아무런 의지도 보이지 않는 손가락들이었다.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또는 이미 죽어있는 것처럼. 의사는 그것을 “신체적 피로”라고 부를 것이었다. 의료 차트에는 그렇게 기록될 것이었다. 하지만 강리우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항복이었다.

자신의 손가락들이 더 이상 무언가를 움켜잡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항복. 자신의 손이 더 이상 누군가를 마음대로 만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항복.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손이 영원히 떨릴 것이라는 그 끔찍한 깨달음에 대한 항복이었다.

의사는 그것이 신경 손상 때문이라고 했다. 회복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재활 치료, 물리 치료, 신경 재생을 위한 약물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희망처럼 들렸다. 아버지는 그것을 희망으로 들었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모든 것이 돈과 의지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강리우는 알고 있었다.

어떤 치료도 그 손가락의 떨림을 멈출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그 떨림은 신경 손상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아가 떠난 후, 강리우는 처음으로 울었다.

그것은 조용한 울음이었다. 울음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조용한 것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단지 눈물만 흘렸다. 침대 옆의 간호사 콜 버튼에 손을 뻗지도 않았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은 채, 울었다.

그 울음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강리우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세아를 위한 것이었다. 자신이 빼앗은 것들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이 부수어버린 것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영원히 돌려줄 수 없는 것들을 위한 것이었다.

시간.

안전감.

신뢰.

자신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강리우는 그것을 붙잡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하지만 손가락은 떨렸다. 더 떨렸다. 그 떨림은 자신이 붙잡은 것을 더 깊게 상하게 했다.

의료 차트에는 “환자가 자신의 손의 움직임을 통제하지 못함”이라고 적혀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강리우는 정확히 자신의 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손은 물어뜯고 있었다. 쥐어짜고 있었다. 상처를 내고 있었다.

그것은 통제 불가능한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자신의 손을 통해 표현하는, 절망적인 고백이었다.

병실의 조용함이 강리우를 짓누를 때, 그는 천장을 더 깊게 바라봤다. 그 완벽한 하얀색이 점점 더 희어 보였다. 마치 자신의 시야가 희미해지는 것처럼. 또는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처럼.

창문 밖으로 새벽이 오고 있었다.

어둠이 물러가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밤의 보호가 끝나가고 있었다. 곧 해가 떠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해빛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었다. 부수어진 손가락들, 떨리는 손, 돈으로도 고칠 수 없는 그 손들이.

강리우의 손가락들은 계속 떨렸다.

그것은 치료되지 않을 떨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병이 아니라, 자신의 형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리우는 비로소 이해했다. 세아가 자신을 신고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손에 형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리우는 그 형벌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병실의 모니터가 그의 심박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일정한 리듬으로. 마치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하지만 강리우는 알고 있었다. 이 심박수는 단지 신체의 반사 작용일 뿐이라는 것을.

자신의 영혼은 이미 그 천장 위로 떠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바랄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거짓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자신의 손을 통제할 필요도 없었다.

손가락들은 계속 떨렸다.

그것이 강리우의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회개의 언어. 고통의 언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진실의 언어였다.

## 3부: 아침의 경계

새벽 5시.

도시는 깨어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버스가 도로를 달렸다. 첫 번째 배달원이 자전거를 탔다. 첫 번째 직장인이 집을 나섰다. 밤은 완전히 끝나갔다. 어둠의 보호는 더 이상 없었다.

세아는 여전히 악보를 안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마음은 깨어 있었다. 고양이의 체온은 여전했다. 그것은 어떤 약물도, 어떤 의료 기술도 대신할 수 없는 따뜻함이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만이 줄 수 있는 온기였다.

곧 아침이 올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 이후에는 또 다른 날들이 올 것이었다. 법정이 있을 것이었다. 증언이 있을 것이었다. 판사의 판결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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