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03화: 소금기 어린 목소리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103 / 250Next

# 제103화: 소금기 어린 목소리

제주 공항에 내렸을 때 공기가 달랐다. 서울의 공기는 납작했다. 마치 누군가 누르고 있는 것 같은 공기. 하지만 제주의 공기는 열려 있었다. 바다가 섞여 있었다. 소금. 해초. 그리고 뭔가 낡은 것의 냄새. 옛날 것의 냄새.

세아는 짐을 들고 공항 로비로 나왔다. 짐이 별로 없었다. 작은 여행용 가방 하나. 마치 영구적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처럼. 아니면 오래 머물 생각도 없는 것처럼. 세아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제주에서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지. 언제까지 머물러야 하는지. 아니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지.

엄마는 공항 입구에 서 있었다.

세아가 엄마의 모습을 본 것은 비행기 창밖에서 서울이 점점 작아질 때 이후였다. 사진으로만 본 엄마. 지난 몇 개월 동안 도현이가 보낸 사진들. 검은 터를 입은 엄마. 손을 모으고 있는 엄마. 조용해 보이는 엄마.

하지만 실제 엄마는 사진과 달랐다. 더 작아 보였다. 더 연약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더 단단해 보였다. 마치 물에 계속 잠겨 있어서 다듬어진 돌처럼. 매끈하고. 안정적이고. 절대 부러질 것 같지 않은.

엄마가 세아를 봤을 때 엄마의 얼굴이 변했다. 아주 약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세아는 그 변화를 봤다. 그것은 놀람이었다. 아니면 슬픔이었다. 또는 그 둘 다였다. 자신의 딸이 이렇게 변해 있다는 것에 대한 반응.

세아도 엄마를 봤다. 엄마의 손. 엄마의 얼굴. 엄마의 눈. 그 눈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눈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읽고 있는지. 아마 모든 것일 것이었다. 지난 몇 개월. 강리우. 경찰서.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얼굴에 적혀 있을 것이었다.

“왔네.”

엄마가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마치 세아가 며칠 다른 곳에 다녀온 것처럼.

“네, 엄마.”

세아가 말했다.

엄마는 세아의 가방을 들려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세아가 재빨리 가방을 들어올렸다. 엄마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엄마는 그 손을 다시 내려놨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그들은 함께 공항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나란히. 하지만 거리를 유지하며. 손을 잡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단지 나란히 걸었다. 마치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처럼. 마치 그들이 오래 그렇게 걸어온 것처럼.

차는 낡은 경차였다. 노란색. 도장이 벗겨진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엄마의 일용차. 물질을 갈 때 타고 다니는 차. 세아는 그 차를 보면서 자신이 제주를 떠난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느껴야 했다. 차가 더 낡아져 있었다. 엄마도 더 늙어져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여전히 제주를 떠난 그때의 자신이었다. 시간이 자신을 더 늙게 만들지 못했다. 단지 더 추하게 만들었을 뿐.

차 안은 해초 냄새가 났다. 자연스러운 냄새. 마치 차 자체가 물질을 해온 것처럼. 마치 차가 바다와 한 몸인 것처럼.

“도현이는?”

세아가 물었다.

“학교.”

엄마가 말했다.

“이 시간에?”

세아가 물었다.

“입시 준비. 학원 다니고 있어.”

엄마가 말했다. 시선은 도로에 고정되어 있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도현이가 입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자신이 서울에 있는 동안 도현이가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 엄마와 함께. 자신 없이.

“엄마, 저한테 화나세요?”

세아가 물었다.

엄마는 잠깐 침묵했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차가 멈췄을 때. 그 침묵 속에서 많은 것들이 있었다. 화. 슬픔. 그리고 뭔가 더. 뭔가 더 깊은 것. 세아는 그것을 정의할 수 없었다.

“화나면 뭐 해?”

엄마가 말했다. 돌아보지 않고.

“죄송해요.”

세아가 말했다.

“죄송하다고 하면 뭐 해? 내가 더 혼자가 되나?”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은 단순했지만 무거웠다. 마치 돌을 던지는 것처럼 무거웠다.

세아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말한 게 맞았다. 자신의 죄송함이 뭔가를 바꾸지는 않았다. 자신이 없던 시간들을 돌려주지 않았다. 자신이 진 빚을 갚지 못했다.

차는 제주 시내를 지나갔다. 세아가 기억하던 풍경들. 하지만 낯설었다. 가게들이 바뀌어 있었다. 건물들이 새로워져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알던 제주가 다른 제주로 변한 것처럼. 마치 세아가 떠난 동안 시간이 자신의 기억까지 바꿔버린 것처럼.

“엄마, 강리우…”

세아가 말을 꺼냈다. 하지만 끝내지 못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강리우에 대해 엄마에게 무엇을 설명해야 할지.

“내가 알아.”

엄마가 말했다.

“뭘…”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가 다 말했어. 경찰서도 갔다고. 고소도 했다고. 그 사람이 뭐 했는지.”

엄마가 말했다.

“네.”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엄마가 물었다.

“죄송해요.”

세아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더 조용하게.

엄마는 차를 세웠다. 도로 한복판이 아니라 옆길에. 작은 골목. 검은 타르 길. 양쪽으로 낡은 집들이 있었다. 해녀들의 집들.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는 집들. 물질을 하고 돌아온 해녀들.

엄마는 핸들을 놓고 세아를 봤다. 처음으로 직접.

“넌 뭐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엄마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뭐가 잘못됐는가. 자신이 강리우를 믿은 것? 자신이 서울로 간 것? 자신이 경찰서에 가지 않은 것? 자신이 엄마를 버린 것?

“모르겠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계속 같은 실수를 할 거야. 왜냐하면 넌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니까.”

엄마가 말했다.

“뭐가 잘못됐나요?”

세아가 물었다.

“너는 남의 말을 들었어. 그 사람의 말을. 그리고 너의 말을 안 들었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너는 그 사람이 너를 구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무도 너를 구해줄 수 없어. 자기 자신 말고는.”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가슴이 죄어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지 않았다.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듣지 않았다. 단지 강리우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따뜻한 목소리를. 그 달콤한 말들을.

“물질할 때는 어떻게 생각해?”

엄마가 다시 물었다.

“뭘요?”

세아가 물었다.

“숨을 참을 때. 물 아래로 내려갈 때. 그때 무슨 생각 해?”

엄마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엄마가 물질를 가는 것을 본 기억. 엄마가 바다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사라졌을 때. 그리고 다시 올라올 때까지의 그 기다림. 그 불안한 기다림.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던 것. 그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았던 것.

“엄마가 올라올 때까지…”

세아가 말했다.

“정신을 집중해.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숨에. 자신의 몸에. 다른 누구한테도 신경 쓰지 않아. 왜냐하면 거기 아래에서는 아무도 널 도와줄 수 없거든. 너는 혼자니까. 그래서 넌 너 자신을 믿어야 해. 너의 몸. 너의 직감. 너의 생존 본능을. 그게 해녀야. 그게 우리 엄마들이 하는 거야.”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뭔가를 깨달았다. 자신은 해녀의 딸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해녀처럼 살지 않았다. 자신은 물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자신은 누군가를 기다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누군가가 자신을 올라오게 해주기를.

“이제 알겠어?”

엄마가 물었다.

“네, 엄마.”

세아가 말했다.

차는 다시 움직였다. 해변 쪽으로. 세아가 자랐던 마을 쪽으로. 포구 쪽으로. 그곳에는 아직도 해녀들이 있을 것이었다. 엄마처럼. 자신을 믿고. 자신의 몸을 믿고. 물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하늘이 노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황금색 빛이 포구를 비추고 있었다. 해녀들이 자신들의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검은색 수복. 산소 통. 그리고 그들의 손. 검고 주름진 손. 물과 시간으로 만들어진 손.

엄마는 차를 세우고 내렸다. 세아도 따라 내렸다. 그들은 포구 끝에 서 있었다. 바다 앞에. 저녁 바다.

“숨을 참아봐.”

엄마가 말했다.

“뭘요?”

세아가 물었다.

“숨을 크게 쉬었다가 참아. 그리고 나한테 몇 초나 참을 수 있는지 말해봐.”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그렇게 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바다 냄새를 들이마셨다. 소금. 해초. 그리고 뭔가 더. 생명. 원초적인 것.

그리고 참았다.

5초. 10초. 15초. 20초.

세아의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뭔가 자신을 누르는 것 같은 감각.

“그만.”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숨을 내쉬었다. 크게. 마치 울음처럼. 마치 비명처럼.

“20초. 넌 20초를 참았어. 좋아. 이제 넌 물 아래로 내려갈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야.”

엄마가 말했다.

“엄마, 저는 해녀가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해녀가 아니어? 그럼 뭐야?”

엄마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뭔가. 음악을 하는 사람? 편의점 직원? 강리우의 피해자? 경찰서의 증인?

“모르겠어요.”

세아가 말했다.

“넌 내 딸이야. 그리고 내 딸이면 넌 해녀야. 피가 그렇거든. 엄마의 피가 너한테 흐르고 있어. 넌 아무리 멀리 가도 돌아와. 왜냐하면 이게 너의 집이거든. 이 바다가 너의 집이야.”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바다를 봤다. 저녁 빛에 반짝이는 바다. 그 바다가 자신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처럼.

“엄마.”

세아가 말했다.

“응.”

엄마가 대답했다.

“내가… 노래하고 싶어요.”

세아가 말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엄마에게.

엄마는 그 말을 들으면서 세아의 손을 잡았다. 검고 주름진 손. 물과 시간으로 만들어진 손. 그 손이 세아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살아있는 손.

“그럼 노래해.”

엄마가 말했다.

“지금요?”

세아가 물었다.

“지금.”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엄마를 봤다. 그리고 자신의 입을 열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처음 이 입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목이 녹슬어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오랫동안 노래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기간들이 자신의 목을 닫아버린 것처럼.

하지만 엄마의 손이 자신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 따뜻함이 자신을 통해 흐르고 있었다. 그 확신이. 그 믿음이.

그리고 세아는 노래했다.

말은 없었다. 가사도 없었다. 단지 소리였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자신의 가슴에서 올라오는 소리. 그 소리가 바다 위로 퍼져 나갔다. 저녁 해를 타고. 포구의 공기를 흔들며.

다른 해녀들이 돌아봤다. 자신들의 일을 멈추고 그 소리를 들었다. 그 낯선 소리. 그리고 동시에 익숙한 소리. 마치 그들이 오래전에 들었던 소리. 마치 제주의 모든 해녀들이 오래전에 들었던 소리. 숨비소리. 물 아래에서 올라오는 그 소리.

세아는 노래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진짜로.


END OF CHAPTER 103

# 제103장 확장판

## 해녀의 피

저녁 햇살이 포구를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세아는 엄마 옆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그 잔잔함 속에서 뭔가 깊고 고요한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넌 해녀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의견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세아는 엄마를 흘깃 봤다. 엄마의 얼굴은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검게 보였다. 수십 년을 바다에서 보낸 피부. 그 피부에는 물과 시간과 고통의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넌 해녀야. 이미 그렇게 돼 있다는 뜻이야.”

엄마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좀 더 천천히. 마치 자신의 딸이 이해하기를 기다리듯이.

세아는 엄마의 말을 곱씹었다. *해녀*. 그 단어가 자신에게 어떤 무게감을 가지고 내려앉았다. 그것은 직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체성이었다. 유산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거나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 저는 해녀가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그것은 저항이었다. 거부였다. 하지만 그 말을 한 후에도 세아의 가슴은 불안으로 철렁거렸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 신성한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세아를 똑바로 봤다. 그 눈빛은 부드러웠지만, 동시에 흔들릴 수 없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바다처럼.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있는 바다처럼.

“해녀가 아니어? 그럼 뭐야?”

엄마가 물었다. 그것은 도전이 아니었다. 진짜 궁금함이었다. 자신의 딸이 정말로 자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궁금함.

세아는 그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로 생각했다. 자신이 뭔가. 그것은 간단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훑어내야 하는 질문이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 그렇게 했던 적도 있었다. 길을 헤매던 시절, 음악이 자신을 구할 거라고 생각했을 때. 그때는 자신이 뮤지션이 될 거라고 믿었다. 서울에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편의점 직원? 현실은 그랬다. 야간 근무를 하며 사람들을 대했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의 친구들이 와서 물건을 사갔다. 그들의 삶의 조각들이 편의점을 지나갔다. 그리고 세아는 그곳에 있었다. 항상.

강리우의 피해자? 그것도 자신이었다. 그 경험은 자신 안에 남아있었다. 몸과 마음 깊은 곳에. 씻을 수 없는 오염처럼.

경찰서의 증인? 그것도. 법정에 서서 자신의 증언을 할 때, 자신이 무엇인가를 느꼈다. 단지 증인이 아니라, 어떤 투쟁의 한 부분이었던 것처럼.

그런 것들이 모두 자신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전부가 아니었다.

“모르겠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무기력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솔직함이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지 않았다. 한숨을 쉴 이유가 없다는 듯이. 대신 엄마는 바다를 바라봤다. 저녁 햇살에 반사된 바다. 그 바다는 끝없이 출렁이고 있었다.

“넌 내 딸이야.”

엄마가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내 딸이면 넌 해녀야. 피가 그렇거든.”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자신의 손은 아직 매끄러웠다. 엄마의 손처럼 검게 그을려 있지도 않았다. 주름이 깊게 패여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는 그 안에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세아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엄마의 피가 너한테 흐르고 있어.”

엄마가 계속했다.

“넌 아무리 멀리 가도 돌아와. 왜냐하면 이게 너의 집이거든. 이 바다가 너의 집이야.”

세아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가슴이 뭔가로 꽉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항과 그리움이 섞여 있는 감정. 거부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받아들이고 싶은 감정.

세아는 바다를 봤다. 저녁 빛에 반짝이는 바다. 태양은 이미 수평선 가까이에 있었다. 몇 시간 후면 바다는 검어질 것이다. 해녀들은 밤 바다에서 물질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 바다는 생명력 있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흔들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처럼.

세아는 그 손짓을 느꼈다. 그것은 강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웠다. 물의 손짓처럼. 파도의 손짓처럼.

“엄마.”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응.”

엄마가 대답했다. 짧게. 하지만 그 짧은 대답 속에는 무한한 인정과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세아는 한참을 말하지 못했다. 그녀의 입은 열려 있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목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잊어버린 것처럼.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엄마에게 무언가를 고백하려고 하는 순간. 자신 안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어떤 것을 밖으로 꺼내려고 하는 순간.

“내가… 노래하고 싶어요.”

세아가 말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엄마에게.

그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말을 하고 싶었는지를 깨달았다. 서울에서. 편의점에서. 경찰서에서. 그 모든 시간 동안.

엄마는 그 말을 들으면서 세아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마치 세아가 어디론가 떠나갈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처럼.

검고 주름진 손. 물과 시간으로 만들어진 손. 그 손이 세아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살아있는 손.

세아는 그 손의 온기를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온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대를 거쳐 전해진 온기였다. 할머니의 손. 그 할머니의 어머니의 손. 그리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해녀들의 손.

그 손들이 모두 지금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노래해.”

엄마가 말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초대였다. 허락이었다. 축복이었다.

“지금요?”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는 작은 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지금.”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엄마를 봤다. 엄마의 눈은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손은 세아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것은 고향을 잃지 말라는 신호였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말라는 신호였다.

세아는 자신의 입을 열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처음 이 입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입을 여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근육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목이 열리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목이 녹슬어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오랫동안 노래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기간들이 자신의 목을 닫아버린 것처럼.

세아는 패닉을 느꼈다. 자신이 노래할 수 없을 거라는 공포. 자신이 이미 그 능력을 잃어버렸을 거라는 공포.

하지만 엄마의 손이 자신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 따뜻함이 자신을 통해 흐르고 있었다. 그 확신이. 그 믿음이.

그것이 충분했다.

세아는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더 깊이. 자신의 가슴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그리고 세아는 노래했다.

말은 없었다. 가사도 없었다. 단지 소리였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자신의 가슴에서 올라오는 소리. 자신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그 소리는 처음에는 작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하지만 점점 커졌다. 마치 깊은 우물에서 물이 올라오듯이.

그 소리가 바다 위로 퍼져 나갔다. 저녁 해를 타고. 포구의 공기를 흔들며.

세아의 눈은 감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를 보고 있는지도.

그녀는 단지 노래했다.

그것은 슬픈 노래였다.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웠다. 마치 슬픔과 아름다움이 같은 것인 것처럼.

다른 해녀들이 돌아봤다.

자신들의 일을 멈추고 그 소리를 들었다.

그 낯선 소리. 그리고 동시에 익숙한 소리.

마치 그들이 오래전에 들었던 소리.

마치 제주의 모든 해녀들이 오래전에 들었던 소리.

숨비소리.

물 아래에서 올라오는 그 소리.

제주 해녀들이 물 속에서 나올 때 내는 그 특별한 숨소리. 그것은 단순한 호흡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신호였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명이었다.

그리고 세아가 지금 내고 있는 소리가 정확히 그것이었다.

포구의 모든 사람들이 멈췄다. 손을 놨다. 말을 멈췄다. 그리고 들었다.

어떤 관광객이 자신의 카메라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이 순간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처럼.

세아는 노래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진짜로.

자신의 가슴 안에서 뭔가가 깨어났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어떤 것이. 수십 년 동안 누군가가 누르고 있던 어떤 것이.

그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방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엄마의 손을 느꼈다. 그 손은 여전히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날도록 하는 것이었다.

노래는 계속됐다.

말이 없어도.

가사가 없어도.

그것은 여전히 노래였다.

그것이 가장 순수한 형태의 노래였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에서 직접 올라오는 소리였다.

제주의 해가 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의 목소리는 더욱 밝아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빛이 되는 것처럼.

**제103장 끝**

103 / 250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