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3화: 불이 꺼지기 전에
아침 7시 14분. 세아는 강리우를 자신의 고시원 앞에 내려주고 있었다. 그곳은 합정동의 가장 낡은 건물 중 하나였고, 새벽빛 속에서는 마치 침몰하는 배처럼 보였다. 강리우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공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은 비어 있었지만, 그곳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몇 시간의 무게. 죽음의 무게. 그리고 그것을 막아낸 한 사람의 손의 무게.
“내일 출근하지 말아요.”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쉬었다. 목에 난 상처 때문에. 강리우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던 자리. 자신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을 때.
“왜?”
강리우가 물었다.
“당신의 아버지가 알 거예요. 뭐가 있었는지. 그리고 당신이 회사에 안 나타나면, 그는 당신을 찾으러 나올 거예요. 그전에 당신은 어디론가 가 있어야 해요.”
강리우는 그 말을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 그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세아의 옆에 있고 싶었다. 그녀가 계속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을, 영원히.
“강리우.”
세아가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너는 나한테서 떨어져야 해. 우리가 했던 말 기억해? 내가 말했잖아. 너는 누구를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으면서, 자꾸 누군가를 위해 죽으려고 한다고. 그게 뭔지 알아?”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사랑이 아니야. 그건 도망이야. 너는 나를 통해서 너의 죽은 친구한테 계속 죽으려고 하고 있어. 그리고 나는… 나는 그걸 받아줄 수 없어.”
세아의 말이 정확했다. 언제나처럼. 그녀의 말은 칼처럼 명확하고, 상처처럼 정확했다. 강리우는 자신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얼마나 깊은 거짓 속에 있었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 죽음의 물에 빠지는 것만큼 고통스러웠다.
“가.”
세아가 말했다.
“어디로?”
“아무데나. 강남이 아닌 곳. 당신의 아버지가 찾을 수 없는 곳. 당신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곳.”
강리우는 차 문을 열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제3자의 관점에서. 그 남자가 차에서 내리고, 그 여자가 운전석으로 넘어가고, 차의 문이 닫히는 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지막 장면처럼.
“세아.”
강리우가 말했다.
“제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이었다. 아무 감정도 없는 얼음. 그것이 가장 큰 상처였다. 그녀가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처럼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을 잡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강리우는 한 발짝 물러섰다. 고시원 건물의 벽이 그의 등을 받쳐주었다. 낡은 회색 타일. 몇십 년을 그대로 있었을 그 벽. 그 벽만큼 낡은 강리우는 그 벽에 기댔다.
차가 움직였다. 천천히. 합정동의 좁은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사라졌다. 강리우는 그 차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아침 햇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새벽이 완전히 끝났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였다.
세아는 운전했다. 목표 없이. 강변도로를 떠나 강남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대신 강북의 골목들로 들어갔다. 그곳은 강리우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합정동, 망원동, 연남동. 세아가 살고 있는 그 세계. 그리고 그녀는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후 2시 47분. 세아는 하늘의 타투숍 앞에 차를 세웠다. 강리우의 차. 비싼 차. 이 골목에는 어울리지 않는 차. 마치 외계인처럼 이 거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깨우는 것 같았다. 자신이 지금 누구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었는지.
하늘이 나왔다. 타투숍의 셔터를 열면서.
“와, 세아야. 너 오빠 차타고 다니냐? 아니 잠깐, 뭐 하는 거야?”
하늘의 목소리가 멈췄다. 그녀가 세아를 제대로 본 것이었다. 목의 상처. 찢어진 옷. 눈 밑의 멍.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으려고 하는 세아의 표정.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표정.
“뭐가 일어났어?”
하늘이 물었다.
“들어가자.”
세아가 말했다.
타투숍의 작은 방. 계단 아래로. 반지하. 그곳에는 냉장고와 간단한 침대와 하늘의 모든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세아도 그곳에 있었다. 하늘의 팔에 안겨서.
“미친 년, 뭐 한 거야? 누가 너한테 이렇게…”
하늘이 세아의 목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말하지 마.”
세아가 말했다.
“뭐?”
“질문하지 말아. 그냥… 있어줘.”
하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는 세아를 침대에 누이고, 물을 가져왔고, 밴드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냥 옆에 앉아 있었다. 친구라는 것이 뭔지 아는 방식으로.
시간이 흘렀다. 몇 시간인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의미를 잃었다. 세상은 계속 돌지만, 그녀는 멈춰 있었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그랬던 것처럼. 따뜻한 곳에서, 하지만 죽어가고 있는 느낌으로.
오후 5시 32분.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도현이였다.
“누나, 뭐 해?”
“집에 있어. 밥을 먹어.”
“누나는?”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나, 너 어디야? 목소리가 이상한데?”
“조금 있으면 들어갈게.”
“정말?”
“응.”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하늘이 그녀를 봤다. 말하지 않고. 묻지 않고. 그냥 봤다. 그리고 그 시선이 가장 큰 질문이었다.
“강리우라고 했던 사람.”
세아가 말했다.
“그 재벌 아들?”
하늘이 물었다.
“응.”
“뭐 했어?”
“나를 죽이려고 했어. 자신과 함께.”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이 더 큰 말이었다. 마치 세상이 다시 한 번 깨진 것처럼.
“그런데 제가 멈췄어요.”
세아가 말했다. 어색하게. 마치 자신이 이미 제3자가 된 것처럼.
“너 미친 거 아니야?”
하늘이 말했다.
“응. 아마도.”
저녁 7시 11분. 강리우는 호텔에 들어가고 있었다. 명동의 어떤 호텔. 자신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가명으로. 그는 방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세아의 손 자국을 씻으려고. 목에 남아 있는 그녀의 흔적을 씻으려고. 하지만 물은 그것을 씻어내지 못했다. 그것들은 이미 피부 안쪽에 있었다.
그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누군가의 얼굴. 하지만 자신의 얼굴이 아닌. 이 얼굴은 누구의 얼굴일까. 죽고 싶었던 남자의 얼굴? 아니면 다시 살고 싶어 하는 남자의 얼굴? 둘 다? 아무것도?
그의 손이 떨렸다. 항상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였다. 세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아노를 찾았다. 호텔 로비에. 아이보리 건반. 그는 그것 앞에 앉았다. 오래간만에. 베를린 이후로.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렸다. 떨리는 손가락들을.
첫 번째 음. 도.
그의 손이 울었다. 정말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베를린에서 봉인했던 음악이. 세아의 목소리처럼 깨끗한, 하지만 절망적인 음악이.
그는 연주했다. 한 시간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호텔 로비에.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영상을 올렸을 수도 있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지, 누가 봤는지, 무엇이 결과인지. 그는 단지 연주했다. 세아가 자신을 떠난 후에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 음이 울렸을 때, 그는 눈물을 흘렸다. 베를린 이후로 처음으로. 준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저녁 9시 48분. 세아는 합정동 고시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강리우의 차를 그대로 두고. 택시를 타고. 자신의 세계로. 도현이가 기다리고 있는 그 좁은 방으로.
도현이는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하게. 누나의 모습을 본 순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냥 안았다. 자신의 누나를. 흙처럼 낡은 것. 불처럼 뜨거운 것. 아무것도 아닌 것.
“누나.”
도현이가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넌 정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강리우가 같은 질문을 했었다. 하지만 도현이의 목소리는 달랐다. 그것은 비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걱정이었다. 형제의 걱정.
“원하는 게 있어.”
세아가 말했다.
“뭐?”
“내 노래를 부르는 거. 내 이름으로. 아무도 나한테 빼앗지 못하는 그런 노래를.”
도현이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해했다. 그것이 자신의 누나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말한 욕망이라는 것을.
밤 11시 22분. 강리우의 아버지, 강민준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강남의 고층 빌딩. 그곳에서 그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유명 피아니스트의 아들로 알려진 인물이 명동 호텔 로비에서 예고 없이 공개 연주를 했습니다. 영상이 현재 SNS에서 바이럴 중입니다. 연주곡은 쇼팽의 야상곡 2번. 전문가들은…”
강민준은 영상을 클릭했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의 아들이. 피아노 앞에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울면서.
그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아들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을 때의 주먹.
밤 11시 47분. 세아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도현이가 옆에서 자고 있었지만, 그녀는 깨어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었다. 낡은 천장. 곰팡이 자국. 그 위로는 이웃의 발소리. 누군가의 삶. 무수한 누군가의 삶이 이 건물 안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하늘이었다.
“세아야. 뉴스 봤어? 그 강리우 년. 호텔에서 피아노를 쳤대. 영상 봤어? 이 년이 너를 위해 울고 있어. 보면 알아.”
세아는 영상을 찾았다. 그리고 보았다. 강리우가. 피아노 앞에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것은 자신이 본 강리우가 아니었다. 죽음을 향해 가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였다.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사는 누군가.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 자신이 누구를 떠나보낸 것인지. 아니, 그것보다도 — 자신이 누구를 구원했는지. 그리고 그 구원이 또 다른 무언가를 불태우고 있다는 것을.
밤 11시 59분. 강리우는 호텔 방에서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자신이 방금 연주했던 음악의 반향이. 그것은 마치 세아의 목소리 같았다. 세아가 자신을 위해 노래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노래로. 단 자신만 들을 수 있는 그런 노래로.
그리고 자정이 되었다. 하루가 끝났다. 그리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3권의 피날레. 무언가가 끝났고,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세아는 강리우를 떠나보냈고, 강리우는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서로를 위해 죽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것은 더 강해졌다. 더 위험해졌다. 4권에서 그 불은 더 많은 것들을 태울 것이다.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오직 시작일 뿐이었다.
# 확장된 시나리오: “그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 제1부: 욕망의 이름
밤 10시 34분, 세아의 작은 방.
벽은 회색이었다. 정확히는 회색이었던 적이 없다. 처음엔 흰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수백 번의 밤이 지나면서, 그것은 회색으로 변했다. 담배 연기의 색. 좌절의 색. 포기의 색.
세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옆에서는 도현이가 자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고르고 편안했다. 어린아이 같은 숨소리. 이 아이는 아직도 자신을 누나로 본다. 자신이 강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거짓이었다.
세아의 손가락들은 떨리고 있었다. 얇은 담요 아래서 몸이 떨리고 있었다. 춥지 않았다. 밤의 온도는 적당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공포가 신체화되는 방식이었다. 두려움이 근육에 스며드는 방식.
도현이가 잠꼬대를 했다.
“누나… 돼지국밥…”
세아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항상 그렇게 해왔다. 이 아이가 웃으면 자신도 웃어야 한다. 이 아이가 밤을 두려워하면 자신은 밤이 무섭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누나의 역할이었다.
“그래, 내일 돼지국밥 사줄게.”
음성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내면은 텅 비어 있었다. 내일 돈이 있을까? 내일이 올까?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떠돌았다. 세아는 그 생각들을 밀어냈다. 지금은 필요 없는 생각들이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꿈을 생각했다. 몇 달 전까지는 꿈도 없었다. 살아가기 위해 존재했을 뿐이었다. 도현이를 먹이기 위해. 이 작은 방의 월세를 내기 위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뀌었다.
강리우 때문에.
그 남자는 자신의 삶에 들어와서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처음에는 미워했다. 자신을 이용하려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찾아다니는 남자. 절망의 화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남자를 통해 무언가를 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 자신이 아직도 원할 수 있다는 것.
세아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도현이를 방해하지 않게,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낡은 노트북. 그 안에는 그녀가 지난 몇 주간 몰래 써내려간 악보들이 있었다. 강리우의 도움으로.
그 남자는 음악 이론을 가르쳐주었다. 어떻게 음을 조합하는지. 어떻게 감정을 음으로 변환하는지. 그것은 마치 마법 같았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들을 언어 대신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노트북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그 위에는 “세아”라고 제목이 붙어 있었다. 자신의 이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이름으로 된 노래.
그 순간, 자신의 입에서 음이 나왔다. 아주 작은 음. 속삭임 같은 음.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었다.
문이 열렸다.
세아는 깜짝 놀랐다. 도현이가 일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은 도현이가 아니었다.
강리우였다.
그는 현관에 서 있었고, 그의 옷에서는 비 냄새가 났다. 외출했다 온 모양이었다. 그의 머리는 젖어 있었고,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아니, 단순한 창백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진(消盡)의 표정이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낸 후의 표정.
“뭐하고 있어?”
강리우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강렬한 것이 있었다. 마치 어떤 큰 결정을 한 사람의 목소리 같은.
“그냥…”
세아는 노트북을 감췄다. 부끄러움 때문에. 자신이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 들통날 것 같아서.
강리우는 한 발 더 들어왔다. 신발을 벗지 않은 채로. 그것은 이상했다. 강리우는 항상 예의 있는 사람이었다. 이 작은 방에 들어올 때도 항상 신발을 먼저 벗곤 했다.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아까 들렸어. 너의 목소리.”
“아니야.”
거짓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강리우는 가까워졌다. 그리고 세아의 손에서 노트북을 가져갔다. 부드럽게. 하지만 거절의 여지 없이.
그는 악보를 보았다. 그의 눈이 천천히 페이지를 따라갔다. 음표들, 기호들, 그리고 여기저기에 붙은 작은 메모들. “여기서 음을 올린다,” “이 부분은 고통이다,” “마지막은 희망이어야 한다.”
강리우의 얼굴에 무언가가 일어났다. 그것은 변화였다. 마치 누군가 그의 내부에 불을 켜기라도 한 것처럼.
“이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한 거야. 당신이 가르쳐줘서.”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은 작은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을 입 밖으로 내는 것.
“뭐? 뭘 하려고 이걸 한 거야?”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이었다. 강리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것.
세아는 깊게 숨을 쉬었다. 그 숨은 그녀의 폐를 가득 채웠고, 그리고 천천히 나왔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모든 두려움을 함께 내보내는 것 같았다.
“내 노래를 부르는 거. 내 이름으로. 아무도 나한테 빼앗지 못하는 그런 노래를.”
그 말이 공기 중에 떠있었다. 방 안의 모든 것이 그 말을 들었다. 곰팡이 핀 벽도, 낡은 천장도, 옆방의 시끄러운 텔레비전 소리도. 모두가 이 순간을 목격했다.
강리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이 변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오래된 거울을 닦아낸 것 같았다. 그 안에는 슬픔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경외감도 있었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 거대한 것을 마주한 것 같은.
“알았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럼 우리는 그걸 만들어야 한다. 너의 노래. 완벽하게.”
## 제2부: 아버지의 손
밤 11시 22분, 강남 고층 빌딩의 최상층.
사무실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용함이 아닌 침묵. 그 둘은 다르다. 조용함은 평온함이지만, 침묵은 무언가가 부재함을 의미한다. 이 사무실의 침묵은 음악의 부재였다. 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부재였다. 인간의 소음, 인간의 호흡, 인간의 온기의 부재.
강민준은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매우 비싼 의자였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가죽. 등받이는 그의 척추에 완벽하게 맞았다. 하지만 편하지 않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편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진짜 편함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강민준의 손은 마우스 위에 있었다. 그의 모니터는 밝게 켜져 있었고, 그 위에는 뉴스가 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뉴스를 읽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것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유명 피아니스트의 아들로 알려진 인물이 명동 호텔 로비에서 예고 없이 공개 연주를 했습니다. 영상이 현재 SNS에서 바이럴 중입니다. 연주곡은 쇼팽의 야상곡 2번. 전문가들은 이 연주를 ‘감정의 극치’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강민준의 눈이 움직였다. 그의 손가락도.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강리우였다. 그의 아들. 자신의 유전자와 자신의 교육과 자신의 뜻으로 만들어진 도구였던 아들.
하지만 그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었다.
강민준은 영상을 보았다. 아들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떨리는지. 어떻게 흐르는지를 보았다. 그것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니, 춤보다 더 무언가였다. 그것은 기도였다. 누군가에게 하는 기도.
그리고 아들의 얼굴을.
그것은 강민준이 본 자신의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은 항상 무표정했다. 연주할 때도. 식사할 때도. 수면제를 먹을 때도. 항상 같은 표정. 로봇의 표정.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기계의 표정.
하지만 지금 강민준이 보는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강리우가 울고 있었다.
강민준은 영상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 보았다. 아들이 어떻게 울고 있는지를. 누구를 위해 울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그 눈물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기 위해.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대신 느껴졌다. 자신이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이. 어쩌면 처음부터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강민준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그것은 아주 천천히 일어났다. 손가락이 하나씩 굽혀지면서. 손바닥이 팽팽해지면서. 손목이 경직되면서. 그것은 마치 자신의 몸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것이 통제를 잃는 것의 느낌이었다.
강민준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제 속에서 살았다. 자신의 아버지의 통제에서. 그리고 자신의 아들의 통제 속에서. 모든 변수를 계산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손 안에 두려고 했다.
그런데 이 남자, 이 강리우라는 아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안 돼.”
강민준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입술이 그 말을 만들었다.
“절대 안 돼.”
그의 손가락이 자판을 두드렸다. 빠르게. 마치 분노의 리듬으로. 그는 자신의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변호사에게도. 그리고 경찰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강민준이 모니터를 향해 말했다. 영상 속의 강리우에게. 자신의 말이 화면을 관통하기를 바라면서.
“넌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었다.
강리우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알았다. 아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눈 안에 있는 누군가. 그것은 강민준이 아니었다. 강민준의 아내도 아니었다. 강민준의 무엇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였다.
그리고 강민준이 그 누군가를 찾아낼 때, 그 누군가는 끝날 것이었다. 완전히. 영원하게.
## 제3부: 밤의 증거
밤 11시 47분, 낡은 건물의 작은 방.
세아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강리우가 나간 후로 몇 시간가 흘렀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뭘 하러 간 것일까? 그런 질문들은 세아의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그녀는 그것에 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 강리우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자신이 강리우를 통제할 수 없었던 것처럼, 강리우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야 했다.
도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고르고 깊었다.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믿고 자는 그런 숨소리. 세아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뭔가를 올바르게 하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이 아이가 안전하게 자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천장을 보았다. 곰팡이 자국들이 마치 지도처럼 펼쳐져 있었다. 누군가의 지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그런 지도.
그 위로 발소리가 났다. 윗층의 누군가가 뭔가를 하고 있었다. 밤 11시 47분인데도. 사람들은 언제 자는가? 이 건물에서는 항상 누군가가 깨어 있었다. 항상 누군가의 발소리가, 누군가의 울음이, 누군가의 싸움이 들렸다.
그것은 삶이었다. 가난한 자들의 삶. 그것은 깨끗하지도, 조용하지도, 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실재했다.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하늘이었다. 그녀는 이 건물 몇 층 아래에 살고 있었다. 같은 가난을 나누는 친구. 같은 밤을 나누는 친구.
“뭐야?”
세아가 조용히 받았다. 도현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세아야. 뉴스 봤어? 그 강리우 년. 호텔에서 피아노를 쳤대. 명동 호텔 로비에서! 영상 봤어? 이 년이 너를 위해 울고 있어. 보면 알아. 그 눈물들이 전부 너 때문이야.”
하늘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다른 것도 있었다. 질투? 호기심? 아니면 단순한 확인?
“뭔 소리야.”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강리우가 뭔가를 했다는 것을. 뭔가 큰 것을.
“링크 보낼게. 봐. 진짜 봐.”
휴대폰이 울렸다. 새로운 메시지. 그 안에는 영상 링크가 있었다.
세아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도현이를 방해하지 않게.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영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