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66화: 손가락이 부르는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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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6화: 손가락이 부르는 거짓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차가 움직였다. 강리우의 어깨가 진동했다. 그것은 분노의 진동이었다. 아니, 분노라기보다는 절망이었다. 절망이 몸을 떨게 한다는 것을 세아는 처음 깨달았다.

“내가 너한테 뭘 했는지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더 위험했다. 분노는 높아지지만 절망은 가라앉는다.

“내가 너를 위해 뭘 버렸는지 알아?”

세아는 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강리우가 회사를 그만두려고 한다는 것. 그의 아버지와 결렬했다는 것. 모든 것이 그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도 거짓이었다. 세아는 거짓 위에 앉아 있었다.

“회사. 직책. 아버지와의 관계. 내 미래. 다 버렸어. 왜? 너 때문에. 너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넌?”

강리우의 손이 핸들에서 떨어져 나갔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다시 바뀌었다. 차가 멈췄다. 이번에는 강리우가 멈춘 것이었다.

“넌 어제 밤에 내 팔을 밀어냈어. 내가 너한테 손을 내밀었을 때 넌 그걸 밀어냈어.”

세아는 그 밤을 기억했다. 강리우의 별장. 침실. 그의 팔. 그리고 자신의 손. 그것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자신의 거절이 얼마나 명확했는지. 하지만 그것도 거짓이었다. 자신은 그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밀어냈던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왜?”

강리우가 물었다. 이제 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새벽의 서울은 차 밖에서 계속 흐르고 있었지만, 차 안은 정지해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내가 뭐가 부족해? 돈? 지위? 외모?”

“그게 아니에요.”

세아가 처음으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마치 실처럼.

“그럼 뭐야?”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3년을 함께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강리우의 눈물은 항상 양의성을 띤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슬픔일 수도 있고, 분노일 수도 있고, 조종일 수도 있었다.

“너는 준호한테 미안해하고 싶어. 그게 너의 감정이잖아.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이용했어. 내가 준호를 구하지 못했으니까, 대신 너를 구하겠다고 말했어. 그런데 내가 뭘 한 거야? 너를 구한 게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감옥에 가둔 거야.”

세아의 말이 나왔다. 자신도 놀랐다. 그런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올 줄은.

“뭐?”

“당신이 나를 구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자신을 구하려고 했어요. 내 몸을 빌려서.”

차 안의 침묵이 깨졌다. 강리우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핸들을 쥐는 것이 아니라 내려치는 것처럼. 그것은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맞아. 그래. 내가 너를 이용했어. 네 말이 맞아.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나빠?”

“네.”

“정말?”

“네.”

“그럼 넌 뭐 원하는 거야? 난 나가? 넌 혼자? 넌 그렇게 강하니까?”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리우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화되지는 않았다. 사람을 이용하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내 손 봐.”

강리우가 왼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들이 떨렸다. 세아는 그 손을 알았다. 몇 개월 동안 봐온 손. 떨리는 손. 음악을 할 수 없는 손.

“이 손이 너한테 닿을 때 떨려. 왜냐하면 난 너한테 닿으면서 동시에 너를 잃을까봐 두려워해. 그래서 손가락이 떨려. 아직도 너를 잡고 있다는 걸 확인하려고. 그런데 넌 자꾸 밀어내. 그럼 나는 뭐야? 뭐 하는 사람이야?”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상관없이, 그 눈물은 존재했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힘이 있다.

“당신은… 혼자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세아가 말했다. 이 말들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자신의 목에서? 아니면 다른 곳에서?

“혼자가 싶어?”

“제 음악을 들어보세요. 제가 쓴 곡들을 들어보세요. 당신은 제 음악을 듣고 제가 혼자라는 걸 알 거예요. 제가 누구와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당신은 그 혼로움을 당신의 혼로움으로 채우려고 했어요. 당신 친구를 잃은 죄책감을 제 음악으로 씻어내려고 했어요.”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그의 눈에 더 이상 눈물이 없었다. 대신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인식. 깨달음.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싫어하는 것.

“그게 아니야.”

“그래요.”

“내가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고요? 그럼 왜 제 곡을 들어보지 않았어요? 제가 뭐를 노래하는지 듣지 않으셨어요? 박소진이가 부른 제 곡을 들었을 때 뭘 느꼈어요?”

세아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자신도 놀랐다. 이 모든 말이 자신의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자신은 침묵 속에 있었는데, 그 침묵이 깨지면서 나오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 곡을 들었을 때 제가 뭘 노래했는지 들었어요? 제가 누구를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누구를 잃었는지? 제가 혼자라는 게 왜 그렇게 아팠는지?”

강리우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것은 거짓말을 하려다가 멈춘 것처럼 보였다.

“들었어.”

그가 말했다.

“뭐를 들었어요?”

“너를.”

“그리고?”

“그리고… 너는 나한테 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어. 어떻게 해도. 아무리 가까워도.”

강리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에는 절망의 떨림이었다. 분노나 연기가 아니라, 진짜 절망.

“그렇죠.”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도 떨렸다.

“그래서 나는 너를 만들려고 했어. 내가 닿을 수 있는 너를. 내가 구할 수 있는 너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너를.”

“그게 거짓이었어요.”

“내가 알아. 지금 알았어.”

차 안의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새벽의 서울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택시들이 지나가고, 청소차가 거리를 쓸고 있었다. 하지만 차 안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었다.

“그럼 이제 뭐 해?”

강리우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나도.”

그들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그것은 처음의 침묵과는 다른 것이었다. 처음의 침묵은 비밀로 가득 찼지만, 지금의 침묵은 비워져 있었다. 모든 것이 드러났으니까.

강리우가 차를 다시 움직였다. 목적지 없이. 강남을 향해 움직였다. 그의 회사로. 아니면 그의 집으로. 세아는 창밖을 봤다. 새벽의 서울이 흐르고 있었다. 불빛들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곧 아침이 올 것이었다.

“너 어디 가?”

강리우가 갑자기 물었다.

“편의점. 문을 열어야 해요.”

“아직 시간 많아.”

“그래도.”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다시 작아져 있었다. 절망은 침묵을 만들고, 침묵은 작은 목소리를 만든다.

“그 곡. 박소진이가 부른 그 곡. 너한테 돌려줄 수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어떻게요?”

“내 아버지한테 말할 수 있어. 크레딧을 정정하도록. 너한테 작곡가로서의 크레딧을 줄 수 있어.”

세아는 그것을 생각했다. 자신의 이름이 그 곡에 올라가는 것. 나세아. 작곡. 그것이 어떤 기분일까.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그것. 하지만 지금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안 돼요.”

“왜?”

“그럼 또 다른 거짓이 되는 것 같아요. 당신이 저를 구하는 척하는 또 다른 거짓.”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봤다. 새벽의 길. 불빛들. 점점 밝아지는 하늘.

“그럼 뭐를 해야 해? 넌 뭘 원해?”

“모르겠어요. 정말로.”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음악도 아니었고, 자신의 이름도 아니었고, 강리우의 사랑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들이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뭔가.

차는 계속 움직였다. 강남으로. 그의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강민준. JYA 엔터테인먼트 대표. 그 사람이 세아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세아는 그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응접실에서. 그의 눈은 차가웠다. 사냥꾼의 눈. 사냥감을 보는 눈.

“아버지가 너를 보면 뭐라고 할까?”

강리우가 물었다. 마치 세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모르겠어요.”

“내 생각에는… 아버지는 너를 보고 ‘이제 끝났다’고 생각할 거야. 너도 박소진이 같은 거고, 그냥 소모품이라고 생각할 거야.”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항상 소모품이었다. 편의점 알바생. 세션 보컬. 작곡가. 그 모든 것들은 임시적인 것들이었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것들.

“그럼 우리가 뭘 해야 해?”

세아가 물었다.

“모르겠어.”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침착했다. 모든 감정이 빠져나간 목소리.

“근데 한 가지는 알아.”

“뭐요?”

“우린 이대로는 안 돼. 이 상태로는. 너도 알지?”

세아는 알았다. 그들의 관계는 깨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고칠 방법은 없었다. 깨진 것은 다시 붙여도 금이 남는다.

“네.”

세아가 말했다.

차는 계속 움직였다. 아침으로 향하면서. 세아는 창밖을 봤다.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검은색에서 파란색으로. 파란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분홍색으로. 새벽의 색깔들이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깨달았다. 강리우와 함께 있으면서도 자신은 혼자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는 것을. 단지 두 개의 혼로움이 만났을 때, 그것이 두 배의 따뜻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그냥 두 배의 혼로움이 된다.

“하늘이한테 연락했어?”

강리우가 물었다.

“아뇨.”

“지금 연락해.”

“뭐라고요?”

“너 오늘 편의점 안 간다고. 그리고… 아니다. 그냥 오늘은 혼자 있어.”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그의 얼굴은 창밖의 아침빛에 비추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잘생겼다. 하지만 이제 세아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잘생김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당신은 뭐 하실 거예요?”

“내 아버지를 만날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뭐라고요?”

“네가 뭘 원하는지 알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해.”

“당신이?”

“그래. 내가. 처음으로.”

차는 강남의 고층빌딩들 앞에서 멈췄다. JYA 엔터테인먼트. 그 회사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직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 회의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강리우가 세아를 내려주었다. 합정역 근처. 편의점과는 반대 방향. 그것은 의도적인 것 같았다.

“정말로 뭐도 하지 말고 그냥 있어. 너 자신만 생각하고.”

강리우가 말했다.

“네.”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다. 새벽의 공기가 차갑게 들어왔다. 그것은 좋은 추위였다. 깨어나게 하는 추위.

세아는 강리우의 차를 봤다. 그것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강남으로. 그의 아버지로. 그리고 세아는 한강 위에 서 있었다. 합정역과 강남 사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장소.

그녀는 하늘이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강리우의 말대로 그냥 있었다. 한강을 봤다. 아침 빛에 반사되는 물. 그 물은 마치 불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세아는 처음으로, 그 불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강리우의 불도 아니었고, 하늘이의 불도 아니었고, 박소진이의 불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아침 햇빛이 물 위에 반사된 것일 뿐이었다. 단지 그것뿐.

하지만 그것도 아름다웠다.

새벽의 한강 위에서,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은 떨리지 않았다. 강리우의 손처럼. 그것은 그냥 작은 손이었다. 편의점에서 상품을 정리하는 손. 편의점 계산대를 두드리는 손. 가끔 곡을 쓸 때 건반을 누르는 손.

그 손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12,847자

# 두 개의 혼로움

## 1부: 아침의 무게

두 개의 혼로움이 만났을 때, 그것이 두 배의 따뜻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그냥 두 배의 혼로움이 된다.

세아는 이 깨달음에 도달하는 데 꼭 3년이 걸렸다. 강리우를 만난 지 정확히 3년 1개월 15일. 하지만 누가 세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아침, 이 침대에서 그녀가 느끼는 것들이다.

침대는 강리우의 침대였다. 아니, 정확히는 강리우와 세아의 침대가 되어버린 그 공간이었다. 침대의 왼쪽은 세아 것이고, 오른쪽은 강리우 것이다. 아니다, 그것도 틀렸다. 이제는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침대에서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을 때, 침대는 더 이상 둘이 공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각각의 섬이 되어버린다.

세아는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은 흰색이었다. 정확하게는 오프화이트. 강리우가 직접 선택한 색깔이었다. “너무 흰 건 차갑다”고 그가 말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방의 온도는 몇 도일까. 세아는 온도계를 찾아보려 했지만,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너무 무거웠다. 몸이 무거운 게 아니라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마음도 무거웠지만, 그 모든 것의 무게가 몸에 누적되어 있었다.

옆에서 강리우가 자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규칙적이었다. 깊고 안정적인 숨. 마치 평온함 자체를 숨 쉬는 것 같은 그런 숨. 세아는 그를 바라봤다. 새벽 5시 30분의 창밖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서울의 야간 조명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특성이다. 혹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성이다. 어쨌든, 완전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빛이 아니었다. 아직 새벽이었다. 하지만 강리우의 얼굴은 여전히 잘생겨 보였다. 높은 광대뼈, 깔끔한 턱선, 검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었다. 세아는 그의 얼굴을 몇 년을 봤는가. 처음엔 그 얼굴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그 얼굴이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얼굴이 무의미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무의미해진 게 아니라 거짓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잘생김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세아가 이 아침, 새벽 5시 30분에 배운 진실이었다.

강리우의 눈이 떠졌다. 갑자기, 아무런 예고 없이.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켠 것처럼. 그의 검은 눈동자가 천장을 바라봤고, 천천히 세아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눈이 만났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었다. 두 개의 시선이 교차했을 뿐이다.

“아침이야?”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의 목소리였다. 쉰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톤. 세아는 그 톤을 좋아했었다. 지금도 좋아하는가. 세아는 자신에게 물었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아직 새벽이야,” 세아가 대답했다.

강리우는 시계를 확인했다. 그의 손은 세아의 가슴 위를 지나갔다. 그것은 의도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단지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움직임일 뿐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그 손이 자신의 피부에 닿는 것을 느꼈다. 얇은 잠옷 사이로 전해지는 그의 손의 온기.

그것이 따뜻한가, 차가운가.

세아는 판단할 수 없었다.

“5시 31분,” 강리우가 중얼거렸다. “일찍 일어났네.”

그는 다시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세아와 나란히. 하지만 그들은 같은 천장을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아니, 그것도 틀렸다.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단지 눈만 열려 있을 뿐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침실의 침묵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침묵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택된 침묵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아서가 아니라, 둘 다 말을 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이가 있다. 큰 차이가.

강리우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은 천천웠다. 마치 그 자신도 자신의 몸이 무거운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색 면 잠옷. 세아가 작년 크리스마스에 선물한 것이었다. 그때 그는 세아를 안으며 “고마워”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 말을 믿었었다.

지금도 그 말을 믿는가.

강리우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이 문을 통해 사라졌다. 몇 초 후 물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의 수도를 여는 소리. 그것은 매일 반복되는 소리였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방식으로. 삶이 루틴이 될 때, 그 루틴이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세아는 이제 알았다.

세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강리우보다 몇 분 늦게. 그녀도 같은 일상의 궤도를 따라갔다. 침대를 일어난다. 화장실을 기다린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그 대기 시간이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그 시간 동안 그녀는 아무도 아니기 때문이다. 강리우의 연인도 아니고, 누군가의 딸도 아니고, 편의점 직원도 아니고. 그냥 혼로운 사람일 뿐이다.

그 혼로움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마치 어둠이 빛을 먹어삼키듯이, 그 혼로움이 그녀의 가슴을 점점 더 깊게 파고들었다.

## 2부: 아침의 대화

강리우가 침실로 돌아왔다. 그는 이미 옷을 입고 있었다. 어두운 회색의 셔츠. 그의 회사의 드레스코드에 맞춘 옷. 그는 유명한 연예기획사의 이사였다. JYA 엔터테인먼트. 세아도 알고 있는 회사였다. 아니,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회사였다.

“하늘이한테 연락했어?”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톤은 심문조였다. 아니, 관심을 나타내는 톤이었다. 아니다, 둘 다였다. 그것은 관심과 심문이 뒤섞인 톤이었다.

세아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침대의 가장자리에. 마치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자세로. 그녀는 강리우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아침 태양이 아직 비치지 않는 방 안에서 약간 어둡게 보였다. 그는 여전히 잘생겼다. 하지만 지금 그 잘생김은 세아에게 무의미했다.

“아뇨,” 세아가 대답했다.

“지금 연락해.”

“왜요?”

강리우가 침대 옆에 앉았다. 세아 옆이 아니라, 침대의 가장자리에. 그들 사이에는 약 50센티미터의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손을 뻗지 않았다.

“너 오늘 편의점 안 간다고. 그리고…” 강리우가 말을 멈췄다. 그의 얼굴이 창밖의 새벽빛에 조금 더 노출되었다. 그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는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강리우의 마음 속은 이제 미지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니다. 그냥 오늘은 혼자 있어,”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세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혼자 있어.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아파트에 혼자 있으라는 뜻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큰 의미인가. 혼자 있으라는 것. 그것은 “나한테서 떨어져 있어”라는 뜻이 아닌가.

“뭐라고요?”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아침의 침묵을 깨뜨리기가 두려워서였다.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의 눈이 그녀의 눈과 만났다. 이번엔 정말로 만났다. 그리고 세아는 그 눈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결단. 강리우는 무언가를 결단했다.

“난 내 아버지를 만나러 갈 거야.”

“뭐라고요?”

“네가 뭘 원하는지 알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해.”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속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를 이제 말하는 것처럼.

“당신이?”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반발이었다.

“그래. 내가. 처음으로.”

강리우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은 빨랐다. 마치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는 옷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재킷을 꺼냈다. 검은색 캐시미어 재킷. 그의 회사의 회의에 입는 옷이었다.

세아는 침대에 남겨졌다. 홀로. 아침 5시 40분의 침실에서.

## 3부: 움직임

차는 새벽의 서울을 가르며 나아갔다. 강리우가 운전했다. 세아는 조수석에 앉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 단지 바퀴가 아스팔트를 구르는 소리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계속되었다.

강남 방향이었다. 고층빌딩들이 점점 많아졌다. 강리우의 회사가 있는 강남. JYA 엔터테인먼트. 회색의 거대한 건물. 그 건물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 건물에서 나오는 상품들을 소비했다.

강리우의 아버지는 그 건물의 회장이었다. 강준호. 한국 연예기획사의 거장. 세아는 그를 한 번 본 적 있었다. 강리우와의 생일파티에서. 그는 강리우와는 다르게 생겼다. 더 각지고, 더 차갑고, 더 강해 보였다. 마치 강리우가 그의 아버지의 부드러운 버전인 것처럼.

차는 강남의 고층빌딩들 앞에서 멈췄다. JYA 엔터테인먼트. 그 건물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새벽 6시가 지나 직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회사원들의 흐름은 마치 개미의 흐름과 같았다. 조직적이고, 무의식적이고, 끝이 없는.

“잠깐,” 강리우가 말했다. “합정역으로 가자.”

세아는 강리우를 바라봤다. 합정역은 강남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편의점으로 가는 길이었다.

차는 다시 움직였다.

## 4부: 분리

합정역 근처. 새벽 6시 15분.

강리우가 차를 세웠다. 그것은 편의점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의도적으로 떨어진 거리였다.

“정말로 뭐도 하지 말고 그냥 있어. 너 자신만 생각하고,”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는 단호함이 있었다.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네”라고만 대답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렸다.

새벽의 공기가 차갑게 들어왔다. 그것은 겨울의 추위가 아니었다. 봄의 추위였다. 아침의 추위. 하루를 시작하라는 추위. 그것은 좋은 추위였다. 깨어나게 하는 추위.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등을 밀며 “일어나. 진짜 깨어나”라고 말하는 것 같은 추위.

세아는 강리우의 차를 봤다. 검은색 벤츠. 그것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강남으로. 그의 아버지로. 그리고 그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결단. 혹은 또 다른 혼로움.

세아는 한강 쪽으로 걸어갔다. 합정역과 강남 사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장소. 강변공원의 벤치 근처. 아직 아무도 없는 시간이었다.

## 5부: 혼자

세아는 하늘이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강리우의 말대로 그냥 있었다. 한강을 봤다. 아침 빛에 반사되는 물. 그 물은 마치 불타는 것처럼 보였다. 주황색과 빨강색의 빛이 물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감정이 물 위에 투영된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처음으로, 그 불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강리우의 불도 아니었다. 그의 결단과 갈등과 책임감의 불.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이의 불도 아니었다. 하늘이는 여전히 세아의 친구였고, 그녀의 혼로움을 함께 나누려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고, 세아는 그것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박소진이의 불도 아니었다. 박소진이는 세아의 옛날 친구였고, 그녀의 첫사랑이었고,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모두의 불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아침 햇빛이 물 위에 반사된 것일 뿐이었다. 자연의 현상일 뿐이었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름다웠다.

세아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새벽 6시 30분. 한강 위에서. 강리우의 차가 사라진 지 15분이 지났다.

혼자라는 것.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혼자라는 것.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가.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은 떨리지 않았다. 강리우의 손처럼 항상 움직이는 손이 아니라, 그냥 작은 손이었다.

편의점에서 상품을 정리하는 손.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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