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7화: 검은 세단의 침묵
전화기 너머로 강리우의 호흡만 들렸다. 세아는 창문에 얼굴을 더 가까이 댔다. 4층에서 내려다본 호텔 앞 도로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지만,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것이 보였다. 검은색 세단. 헤드라이트는 꺼져 있지만 시가잭에서 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차의 윤곽을 그려내고 있었다.
“내가 아래 있어.”
강리우의 목소리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마치 그가 이 호텔 방에 함께 있는 것처럼.
세아는 대답을 못 했다. 대신 그저 보고 있었다. 검은 세단. 새벽 4시의 제주 시내 도로에 멈춰 있는 차. 그리고 그 안에 있을 강리우. 그는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을까. 자신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을 때? 아니면 그 전부터?
“내려와. 옷을 입고.”
명령이었다. 요청이 아니라.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강리우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그런 것이 있었다. 부드러운 외투 아래 숨겨진 절대성. 마치 자신의 모든 결정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확신.
“이런 시간에…?”
“응. 지금.”
통화는 끝났다. 강리우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세아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옷을 입는 데는 3분이 걸렸다. 어제 입었던 검은색 티셔츠와 청바지. 신발은 슬리퍼로 대충 신었다. 거울을 보지 않기로 했다. 새벽 4시에 자신의 얼굴을 볼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불필요한 고통이었다.
호텔 복도는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 양쪽 문들은 모두 닫혀 있었다. 누군가는 깊은 잠에 빠져 있고, 누군가는 깨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아는 유령처럼 복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했다.
1층 로비는 밤 근무자 한 명뿐이었다. 30대 남자였다. 그는 책을 읽고 있었고, 세아가 나갈 때 눈을 들어올리지 않았다. 마치 자신도 그 책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처럼. 또는 자신의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처럼.
밤의 공기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은 서울의 겨울 공기가 아니었다. 제주도의 밤 공기는 소금기를 담고 있었다. 바다가 가까웠다. 세아는 호흡을 깊게 했다. 그 소금기 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6년이라는 시간이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검은 세단은 호텔 정문에서 약 2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세아는 천천히 걸었다.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이 거리를 늘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차에 도달하지 않으면 무언가가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수도 있다. 새벽 4시, 제주 시내 도로, 호텔과 검은 세단 사이의 거리. 이것이 현실과 무언가 다른 것 사이의 경계인 것처럼 느껴졌다.
차에 다가갔을 때, 운전석 창이 내려갔다. 강리우의 얼굴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은 선명했다. 마치 자신의 빛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탈래.”
세아는 차의 뒷문을 열고 앉았다. 강리우는 차를 시동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움직였다.
차는 호텔을 떠났다. 제주 시내의 밤거리를 헤쳐나갔다. 신호등은 모두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벽에는 차가 거의 없어서 신호가 의미를 잃었다. 강리우는 신호를 지키며 운전했다. 규칙을 따르는 것.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바다.”
한 단어. 강리우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필요한 것만. 과하지 않게.
차창을 통해 제주 시내가 흘러갔다. 편의점, 닫혀 있는 가게들, 가로등. 모든 것이 낮 동안과는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밤은 세상을 다르게 본다. 더 정직하게. 장식을 벗겨낸다.
“왜 이런 시간에…?”
“조용하니까.”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조용하니까. 세아는 그 말을 곱씹었다. 강리우는 소음을 피했다. 서울의 음악가들처럼. 베를린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 그는 침묵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여전히 침묵을 찾고 있었다.
차가 해변으로 향했다. 도로의 풍경이 바뀌었다. 더 이상 건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검은 하늘과 검은 땅이 만나는 지평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바다. 파도의 소리가 들렸다. 새벽 4시 30분의 제주 해변. 조용하고 어둡고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곳.
강리우가 차를 세웠다. 엔진을 껐다. 침묵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다른 종류였다. 호텔 방의 침묵이 아니라, 공유하는 침묵.
“나와.”
세아는 차에서 내렸다. 강리우는 이미 나가 있었다. 그는 모래밭에 서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세아도 그렇게 했다. 나란히 섰다. 말 없이.
파도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바람. 제주 밤바람은 차가웠다. 세아는 팔을 어깨에 감쌌다.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와 섞여 들렸다.
“여기가 어때?”
“어디예요?”
“제주. 너의 고향.”
세아는 답을 하려다가 멈췄다. 고향. 그 단어는 그녀에게 무엇이었나. 어머니의 손. 어린 도현이. 햇빛 아래의 해변. 그리고 밤에 돌아오지 않을 어머니를 기다리는 자신. 모두가 맞다. 모두가 틀렸다.
“모르겠어요.”
그것이 진실이었다.
강리우가 한 발 물 속으로 나갔다. 슬리퍼가 물에 젖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이 이미 젖어 있는 것 같은 태도로.
“내가 베를린에서 피아노를 쳤을 때, 나는 항상 혼자였어. 무대 위에 서 있는데도 혼자였어. 청중이 있는데도. 심판들이 있는데도.”
그가 말했다.
“그런데 지금 너를 봐. 넌 정말로 혼자야. 아무도 너를 모르고. 아무도 너를 찾지 않고. 하지만 넌 계속 존재하고 있어. 계속 호흡하고 있어. 그게… 대단해 보여.”
세아는 그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칭찬인지 동정인지 알 수 없었다.
“저는 대단하지 않아요.”
“넌 그게 뭔지 모르면서 그래. 어떻게 자신 있게…?”
강리우가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더 예리해 보였다.
“넌 왜 날 따라왔어. 서울을 떠나면서까지.”
세아가 반문했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왜라고 생각해?”
“모르겠어요.”
“맞아. 난 한국 음악 산업의 아들이야. 내 아버지는 JYA의 대표다. 그리고 나는… 나는 그 세계에서 도망치려고 했어. 그런데 넌 나를 잡아두고 있어. 넌 내게 그 세계가 뭔지를 계속 보여주고 있어. 착취와 거짓이 가득한 세계. 그리고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그곳에서 만들어진다는 것도.”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세아는 강리우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들었다. 통제되지 않은 감정.
“너는 뭐야. 내게 뭐야.”
그것은 자신에게 묻는 말인 것 같았다. 세아가 아니라.
세아는 한 걸음 더 물 속으로 들어갔다. 신발이 젖었다. 양말도 젖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젖어 있는 것들은 더 이상 젖을 수 없다.
“내일 아침에 뭘 하려고 했어요?”
“뭐든지. 넌 뭘 하고 싶어?”
세아는 생각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침이 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요.”
그렇게 말했을 때, 무언가가 세아의 가슴에서 터졌다. 6년 동안 누르고 있던 것이. 6년 동안 피하려던 것이. 어머니. 제주도. 자신이 정말로 돌아오고 싶었던 곳.
강리우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베를린에서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는 손.
“그럼 내일 아침에 어머니를 만나자. 난 너를 데려갈게.”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다를 봤다.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하늘에 검은색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새벽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때 깨달았다. 자신이 6년 동안 피해온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제주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 자신이었다.
차로 돌아가는 길, 강리우는 세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세아도 손을 빼지 않았다. 그것은 신뢰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함께라는 확인이었다. 새벽의 제주 해변에서, 둘은 함께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차는 호텔로 향했다. 창밖으로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별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옷자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강리우의 손. 그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디에 있어?”
강리우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휴대폰도…”
세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호텔에서 휴대폰을 가져오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이 시간은 자신의 시간이기를 원했다. 누군가의 부름이 없는 시간.
“우리가 찾아. 새벽이 끝나기 전에.”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차는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벽을 향해. 아침을 향해. 그리고 세아가 6년 동안 외면해온 어머니를 향해.
창밖의 제주도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산의 윤곽이 검은색에서 검은 초록색으로 변했다. 도로의 표지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로등들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의 끝자락에, 가장자리에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세아는 손가락을 펼쳤다. 강리우의 손과 자신의 손. 다섯 개의 손가락과 또 다른 다섯 개의 손가락. 열 개의 손가락이 함께했다.
“강리우.”
세아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뭐?”
“고마워요.”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강리우는 그 말 속의 모든 것을 들었을 것이다. 감사뿐 아니라 두려움도. 희망도. 그리고 아직 말하지 못한 무언가도.
차는 제주 시내의 새벽 거리를 달렸다. 그리고 조금씩, 천천히, 아침이 그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세아는 창밖의 변화하는 하늘을 봤다. 검은색에서 남색으로. 남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주황색으로.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새벽도. 하늘도. 그리고 자신도.
6년이라는 긴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밤이 끝나는 곳에, 어머니가 있을 것이다.
세아는 강리우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END OF CHAPTER 57]
다음 화: 세아와 강리우는 제주 해안마을에서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는 여전히 해녀로 일하고 있었고, 세아가 돌아온 이유를 묻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6년 동안 쌓인 모든 것이 있었다.
# 제57장 확장판: 새벽의 깨달음
## 1부: 깨어남
차의 엔진음이 제주의 고요한 새벽을 가르며 나아갔다. 강리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의 힘을 풀지 않았다. 시속 80킬로미터. 새벽 도로에서는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중요했다. 새벽이 끝나기 전에. 그 문장이 자꾸만 그의 머리를 맴돌았다.
옆자리의 세아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인가?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여인. 그것이 자기 자신이었다.
‘6년 동안 뭘 피해왔어?’
세아의 내면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 크고, 더 거친, 더 오래된 목소리였다. 어머니의 목소리일까? 아니면 자신 속에 박혀 있던, 그 오랫동안 외면해온 자신의 목소리일까?
‘제주도를 피해왔다고 생각했어. 그 푸른 산과 짠 바람과 검은 돌들을.’
세아의 손가락이 옷자락을 쥐고 있었다. 무의식적인 행동. 그녀는 자신이 손을 쥐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를 피해왔다고 생각했어. 그 깊은 눈과 말 없는 침묵과 언제나 젖어 있는 손가락들을.’
도로 위의 표지판이 희미하게 보였다. “시간 도로 좌회전 2km”. 강리우는 신호를 켜고 차선을 바꿨다. 그의 동작은 매끄러웠다. 마치 이 길을 몇 번이고 다녀본 사람처럼.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세아의 깨달음이 어둠 속에서 피어올랐다. 마치 새벽빛이 하늘의 가장자리에서 밀려들어오는 것처럼.
‘내가 피해온 건 제주도가 아니었어. 제주도는… 제주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저 배경일 뿐이었어.’
그녀의 숨이 깊어졌다. 차의 에어컨이 부드럽게 작동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창을 조금 내렸다. 새벽 공기가 들어왔다. 차갑고, 짠내가 나는, 생생한 공기.
‘어머니도 아니었어.’
세아의 눈이 감겼다. 그리고 그 순간, 강리우의 손이 그녀의 손을 찾아왔다. 의도적이지 않은 동작. 마치 자석이 자철광을 찾아내듯.
강리우는 왼손을 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시선은 도로에 고정된 채. 그의 얼굴은 창밖의 어둠 속에서 반쯤 보였다. 턱선이 팽팽했다. 집중의 표현.
“어머니가 어디에 있어?”
강리우가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새벽의 조용함을 깨지 않으려는 배려였을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감정 상태의 반영일까.
세아가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더 작았다.
“휴대폰도… 호텔에서 가져오지 않았어요.”
“왜?”
“의도적으로요.”
세아가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그녀의 손가락들이 강리우의 손가락들 사이사이에 끼워졌다. 불완전한 맞춤. 하지만 확실한 접촉.
“이 시간은… 이 시간은 제 시간이고 싶었어요. 누군가의 전화나 메시지나 요구 없이. 그냥… 혼자만의 시간이고 싶었어요.”
강리우가 잠시 침묵했다. 차는 계속 나아갔다. 속도계의 바늘이 75킬로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전보다 조금 빨라졌다.
“혼자가 아니야.”
강리우가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넌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우리가 찾아. 새벽이 끝나기 전에.”
세아가 그의 얼굴을 봤다. 그의 프로필. 강한 코. 집중한 눈빛. 그리고 그 눈빛 속에 있는, 자신을 향한 무언가.
‘그거다.’
세아의 깨달음이 더 깊어졌다.
‘내가 피해온 건 자기 자신이었어. 내 자신. 강해 보이려는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나. 상처받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나. 그 모든 것. 그것이 바로 내가 6년 동안 피해온 것이었어.’
차는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벽을 향해. 아침을 향해. 그리고 6년 동안 외면해온 어머니를 향해.
## 2부: 변화하는 풍경
제주의 새벽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로 양쪽은 검은색의 덩어리였다. 산의 윤곽, 들의 형태, 건물의 실루엣. 모든 것이 검은색이었다.
그 다음, 검은색이 변했다.
검은색에서 짙은 남색으로. 마치 누군가 천천히 청색 물감을 물에 풀어내는 것처럼. 산의 윤곽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나뭇잎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 양쪽의 담장이 그려졌다.
강리우는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았다. 이미 충분했다. 하늘의 변화만으로도.
“하늘 봐.”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가 창밖을 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도 그것을 느꼈다. 변화. 아주 미묘하지만 확실한 변화.
남색이 회색으로 변했다. 회색이 라벤더색으로 변했다. 라벤더색이 옅은 분홍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분홍색의 가장자리에서, 금색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여명이야.”
강리우가 말했다.
“새벽과 아침의 경계. 어둠과 빛이 만나는 곳.”
세아의 호흡이 깊어졌다. 그녀의 가슴이 들었다 내려갔다. 강리우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손 속에 있었다.
창밖의 도로 위의 가로등들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자동센서. 새벽이 밝아지면 자동으로 꺼진다. 하지만 이것은 자동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천천히, 의도적으로, 하나하나를 끄고 있는 것처럼.
도로 표지판들이 이제 선명하게 보였다.
“서귀포 방향 직진 5km”
“해안마을 우회전 2km”
강리우가 깊게 숨을 쉬었다. 그의 손가락이 약간 움직였다.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쥐는 제스처.
“거의 다 왔어.”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주 미묘하게.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강리우.”
세아가 처음으로 이름을 부르며 그를 봤다.
“뭐?”
그가 눈을 도로에서 떼지 않았다.
“당신은… 언제부터 이렇게… 신경을 써주셨어요?”
강리우가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움직이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그래. 공항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넌… 웃지 않는 눈을 하고 있었어. 아주 깊은 슬픔 속에 있는 눈이었어.”
세아가 창밖을 봤다. 하늘이 계속 변하고 있었다. 분홍색에서 주황색으로. 주황색의 강도가 점점 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았어. 나는 그 슬픔을 빼내야 한다는 걸. 아니면, 최소한 함께 있어줘야 한다는 걸.”
강리우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말을 준비해온 것처럼.
“왜요?”
세아가 물었다.
“왜냐하면…”
강리우가 차를 우회전했다. 새 도로로 들어섰다. 이 길은 더 좁았다. 양쪽으로 밭이 펼쳐져 있었다. 제주의 검은 화산암 돌들이 밭을 두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한 번은… 그런 혼자임을 알았거든.”
그의 얼굴이 창밖의 변화하는 빛 속에서 보였다. 이제 충분히 밝았다. 그의 눈은 더 이상 검지 않았다. 짙은 갈색.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오래된 슬픔.
“그리고 그걸 빠져나가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어. 누군가의 손이 필요했어. 누군가의 함께가 필요했어.”
세아의 눈이 젖어왔다. 그녀는 눈물이 나는 것을 느꼈지만, 닦지 않았다.
“그래서…”
강리우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걸 하기로 했어. 누군가에게. 그리고 그 누군가가… 너였어.”
## 3부: 깨달음의 순간
차는 해안마을로 향하는 좁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더 이상 가로등이 없었다. 대신 산의 능선이 보였다. 검은 능선에서 금색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펼쳤다. 강리우의 손과 자신의 손. 다섯 개의 손가락과 또 다른 다섯 개의 손가락. 열 개의 손가락이 함께했다.
그녀는 각각의 손가락의 감각을 느껴보기로 했다.
강리우의 엄지손가락. 따뜻하고, 약간 거친 표면. 그의 손가락. 길고, 세밀한 감각을 가진. 그의 손가락. 또 다른 손가락. 그리고 또 다른 손가락.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들. 예민하고, 떨리고 있는.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내가 피해온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안다.’
세아의 내면의 목소리가 명확해졌다.
‘그것은 제주도가 아니었다. 제주도는 그저 배경일 뿐이었다. 푸른 산도, 짠 바람도, 검은 돌들도, 파란 바다도. 모두가 그저 배경이었다.’
차가 해안마을의 입구에 도달했다.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해안마을 협동조합”. 그 옆으로 낡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해녀 관련 숙박시설들. 식당들. 그리고 더 앞쪽으로, 어두운 바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저… 그저 어머니일 뿐이었다. 내가 외면하고 싶은 어머니가 아니라, 내가 외면해온 내 자신을 상징하는 어머니였다.’
강리우가 차를 천천히 내렸다. 속도계가 40킬로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피해온 것. 그것은 내 자신이었다.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 혼자여야 한다고 믿는 내 자신. 상처받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내 자신. 어머니도 만나지 않고, 제주도도 떠나고, 누구와도 깊게 연결되지 않으려고 했던 내 자신. 그 모든 것. 그것이 바로 내가 6년 동안 피해온 것이었다.’
“강리우.”
세아가 처음으로 이름을 부르며 그를 봤다. 그의 얼굴이 이제 분명히 보였다. 새벽의 금색 빛 속에서.
“뭐?”
그가 묻었다. 눈은 도로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마워요.”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강리우는 그 말 속의 모든 것을 들었을 것이다.
감사뿐 아니라, 두려움도. 내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도. 그리고 아직 말하지 못한, 어머니를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강리우가 차를 멈췄다. 엔진음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자신의 심장의 고동을 들었다. 점점 빨라지는 박동.
“우리가 찾아.”
강리우가 말했다. 손을 놓으며.
“어머니를…”
## 4부: 새벽의 끝
차를 나갔다. 새벽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짠내. 냉기. 그리고 어딘가 모를 그리움의 냄새.
제주 해안마을의 새벽은 특별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서, 밤과 낮의 경계에서, 두 세계가 만나는 그곳에서.
하늘은 이제 거의 밝았다. 주황색의 강도가 매우 세었다. 그리고 그 주황색의 가장자리에서, 노란색의 빛이 시작되고 있었다. 해가 뜨려고 했다.
강리우와 세아가 손을 맞잡고 걸었다. 좁은 골목을 지나 해변으로 향했다. 낡은 건물들. 닫혀 있는 식당들. 그리고 가끔 보이는, 아직 불이 켜져 있는 창들.
누군가 이미 일어나 있었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사람들. 해녀들. 어부들. 그리고 그들을 부양하는 사람들.
“여기.”
강리우가 멈추며 말했다.
작은 집 앞이었다. 푸른색으로 칠해진 목재 문. 창문에는 흰색의 레이스 커튼. 그리고 문 옆에는 낡은 표지판이 있었다. “해녀 김명숙”.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김명숙.’
그녀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른 것이 언제였을까? 6년 전? 아니면 그 이전?
강리우가 그녀의 손을 세게 쥐었다.
“함께야.”
그가 말했다.
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가 떨렸다. 마치 그 다리들이 내 다리가 아닌 것처럼.
그 순간, 문이 열렸다.
한 여인이 나왔다. 60대의 여인. 검은색 방수복을 입고 있었다. 손가락들이 구부러져 있었다. 수십 년을 바다에 잠겨 있은 손가락들.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리고 눈. 그 깊은 눈.
세아가 알아봤다. 그것은 어머니의 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자신의 눈이었다.
어머니의 눈이 세아를 봤다. 그리고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 변화가 일어났다.
놀라움. 기쁨. 슬픔. 그리고 긴 침묵.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딸을 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 6년 동안 쌓인 모든 것이 있었다.
미안함. 그리움. 질책. 그리고 무한한 사랑.
강리우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것은 그의 순간이 아니었다. 이것은 어머니와 딸의 순간이었다.
세아의 눈이 젖어왔다. 눈물이 흘렀다. 처음으로. 진정으로. 자신을 감춘 눈물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눈물.
“어머니…”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가 한 발 내딛었다. 천천히. 마치 세아가 도망칠까봐 두려운 것처럼.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