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55화: 호텔의 침대, 너무 커서 외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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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5화: 호텔의 침대, 너무 커서 외로운

택시는 구도심 방향으로 향했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밤 11시 50분의 제주도. 서울과는 달랐다. 불빛이 적었다. 건물들도 낮았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처럼.

기사는 라디오를 켰다. DJ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 주 날씨는 남쪽에서 북상하는 저기압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내일 오전부터 바람이 거세지겠습니다…” 세아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날씨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처음 오셨어요?”

기사가 다시 물었다. 세아는 “네”라고 대답했다. 거짓말. 하지만 진실도 있었다. 이 세아—지금 이 순간의 세아는 처음 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6년 전의 세아는 죽었다. 그 자리에 다른 세아가 들어섰다. 더 피곤한 세아. 더 침묵하는 세아. 더 혼자인 세아.

“제주도 참 좋은 곳이에요. 특히 요즘 같은 시즌에는. 관광객도 적고. 조용하고.”

기사는 계속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택시 뒷좌석에서 그녀는 유령이 되기로 결정했다. 존재하지 않는 승객. 기사는 자신이 혼잣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제주도를 몰라요. 그냥 인스타그램에 찍힐 만한 곳만 찾아다니고. 근데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제주는… 느껴야 하는 곳이야.”

기사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훈계하는 것처럼. 또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세아는 그 목소리 속에서 오랜 향수를 들었다. 이 남자도 제주도에 대해 뭔가를 잃어버렸구나. 아마도 젊음. 아마도 사랑. 아마도 자신 자신.

“여기 좋은 호텔 있어요. 제주시청 근처. 조용하고 가격도 괜찮고. 거기 한 번 가봐요?”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대답이 없었다.

호텔 로비는 예상과 달랐다. 크지 않았다. 오히려 아늑했다. 카운터 뒤에 30대 여직원이 서 있었다. 그 여직원은 세아를 보고 잠깐 멈췄다. 마치 무언가를 인식한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세아도 모르겠다.

“한 분이세요?”

“네.”

“며칠 묵으실 거예요?”

세아는 생각해야 했다. 며칠을 묵을 것인가. 강리우가 언제 올 것인가. 강리우가 올 것인가. 아니면 이것은 다른 종류의 함정인가. 또 다른 계약서. 또 다른 거짓말.

“… 일단 2박으로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직원은 컴퓨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세아는 그 소리를 들었다. 카닥카닥. 자신의 정보가 디지털로 기록되는 소리. 이름, 휴대폰 번호, 신분증 번호. 모든 것이 어딘가의 서버에 저장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여기 4층 402호입니다. 엘리베이터 타시고 오른쪽으로 쭉 가시면 돼요. 조식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1층 카페에서 하시고, 체크아웃은 내일 오전 11시입니다. 혹시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프론트에 전화 주세요.”

세아는 키카드를 받았다. 얇은 플라스틱. 이것으로 자신의 방에 들어갈 수 있다. 자신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 처음으로.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서 봤다.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 맞나. 눈이 너무 멀었다. 입술은 창백했다. 피부는 마치 누군가 손으로 조여버린 것처럼 팽팽했다. 마치 자신 안에 무언가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폭발하는 순간, 자신은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았다.

402호는 작은 방이었다. 더블 침대, 책상, 창.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세아는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앉았다. 매트리스가 푹신했다. 너무 푹신해서 거의 불편했다.

휴대폰을 들었다. 시간은 자정 15분. 도현이는 자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도. 하늘도. 강리우는?

강리우에게 문자를 했다.

“제주에 도착했어. 호텔에 들어갔어. 이제 뭐 하면 돼?”

답장은 3분 후에 왔다.

“잠을 자.”

그것이 전부였다. 그 짧은 문장이. 세아는 그 문장을 몇 번을 읽었다. 마치 그 속에 암호가 숨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지시. 그것뿐.

세아는 옷을 벗었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피부가 누군가의 것인 것처럼. 서울에서 입던 옷들. 편의점 유니폼. 낡은 청바지. 모두를 바닥에 벗어던졌다.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신체를 감싸면서, 세아는 처음으로 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눈물샘도 누군가가 막아버린 것처럼.

침대에 누웠을 때, 시간은 자정 47분이었다. 침대는 정말로 너무 컸다. 자신의 반지하 고시원의 침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그리고 그 큰 침대는 자신의 작은 신체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 마치 자신이 침대 위의 먼지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천장을 봤다. 흰 천장. 그 위에 에어컨 실외기의 소리가 들렸다. 윙윙거리는 소리. 마치 누군가가 멀리서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하늘의 메시지들을 다시 읽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2시간 전 것이었다.

“세아야. 뭔가 이상해. 도현이가 전화했어. 너 제주 간다고. 강리우가 자기 어머니한테 너를 어디 보냈다고 말했대. 뭐 있었어? 뭐가 일어났어?”

세아는 하늘에게 답장했다.

“괜찮아. 진짜로. 다 괜찮은 거야. 내일 전화해.”

거짓말. 하지만 또 진실이기도 했다. 자신이 “다 괜찮은지” 알 수 없으니까. 오직 시간만이 알 것이다. 아니, 아마 강리우가 알 것이다. 그 남자는 왜 자신을 제주로 보냈는가. “아버지가 너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침대에서 뒹굴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침대는 여전히 너무 컸다.

휴대폰의 시간을 봤다. 밤 1시 23분.

강리우의 문자가 또 들어왔다.

“내일 아침에 만나자. 아침 8시. 호텔 로비에서.”

세아는 “알겠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아침은 빨리 왔다. 너무 빨리 와서 마치 밤이 없었던 것 같았다.

세아는 깬 것 같기도 하고, 처음부터 잠을 자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천장을 봤고, 에어컨 소리를 들었고, 휴대폰 시간을 확인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창밖이 밝아져 있었다.

아침 7시 42분.

세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마치 자신의 신체가 무거운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어제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샤워를 했다. 찬 물로. 의식을 깨우기 위해. 그리고 옷을 입었다. 어제 입던 옷을 다시 입었다. 더 이상 깔끔한 옷이 없었다.

로비에 내려갔을 때, 시간은 7시 59분이었다.

강리우는 이미 거기 있었다.

그는 창문 옆에 서 있었다. 밖을 보고 있었다. 세아가 들어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반응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세아는 그의 옆에 섰다. 말 없이. 강리우도 말 없이. 둘 다 밖을 봤다.

제주의 아침은 맑았다. 하늘이 파랬다. 구름 한 점 없이. 마치 누군가 하늘을 깨끗하게 씻어낸 것처럼.

“미안해.”

강리우가 먼저 말했다.

“뭐가?”

세아가 물었다.

“내가 너를 이렇게 보낸 거.”

“… 왜?”

“아버지가 너를 공략하려고 하고 있어. 정확히는 아직 계획 단계지. 근데 내가 회사를 나가는 것을 알자마자 방향을 바꿨어. 직접적인 협박 대신에, 더 미묘한 방식으로 너를 압박하려고 해.”

세아는 강리우의 얼굴을 봤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밤을 새운 것처럼. 아니, 창백함은 밤을 새워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결정했을 때의 창백함이었다. 자신을 버리는 결정을 했을 때의.

“미묘한 방식이 뭐야?”

“너의 신분. 너의 과거. 너를 공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파고들 거야. 너의 어머니. 너의 동생. 너의 친구. 모든 것이 도구가 될 거야.”

세아의 손이 떨렸다. 강리우처럼. 아니, 지금은 강리우보다 더 심했다.

“너는? 넌 왜?”

“나는 나가는 거야. 회사를 떠나. 아버지와도 단절하고. 그리고 너는 여기서 기다려. 내가 모든 걸 정리하고 난 다음에.”

“정리한다고? 강리우, 그게 뭐를…”

“너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강리우가 세아의 눈을 봤다. 그의 눈은 검고 깊었다. 마치 그 속에 베를린의 밤이 들어 있는 것처럼.

“내가 아직 회사 안에 있으면, 아버지는 너를 통해서 나를 압박할 거야. 하지만 내가 나가면? 그럼 너는 더 이상 아버지의 도구가 아니야. 그럼 너는 자유야. 또는 최소한… 다시 시작할 기회를 가질 거야.”

“혼자?”

세아가 물었다.

“아니. 나도 함께 시작하는 거야. 하지만 먼저 너는 여기서. 나는 서울에서 모든 걸 정리하고. 그 다음에.”

“몇 주?”

“모르겠어. 그게… 아버지가 얼마나 악질적으로 나올지에 따라 달라져.”

세아는 강리우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들이 모두 거짓은 아니지만, 모두 진실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강리우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이용하고 있기도 했다. 자신을 제주에 보냄으로써, 자신을 증거로 만들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거기에 항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강리우의 말이 맞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은 이미 제주에 있었다. 돌아갈 길은 없었다.

“언제 가?”

“오늘 아침에. 비행기가 있어. 10시에.”

세아는 시계를 봤다. 아침 8시 7분.

2시간. 자신과 강리우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단 2시간이었다.

“뭐 할 거야?”

세아가 물었다.

“밥을 먹자. 같이.”


호텔 카페의 조식은 뷔페 형식이었다. 작은 바구니에 담긴 빵, 스크램블 계란, 베이컨, 시리얼, 요구르트, 오렌지 주스. 모두 세아가 지난 6년간 접했던 것들이었다. 편의점의 삼각김밥, 라면, 간편식. 그것과는 달랐다. 더 부드럽고, 더 정성스럽고, 더 비쌌다.

강리우는 검은색 커피만 들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먹어야 해.”

세아가 말했다.

“나는 괜찮아.”

“아니야. 넌 손이 떨려. 혈당이 떨어진 거야.”

세아는 강리우의 접시에 계란을 올렸다. 베이컨도. 빵도. 강리우는 저항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들을 먹었다. 마치 자신의 신체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신체인 것처럼.

“미안해.”

강리우가 또 말했다.

“뭐가?”

“모든 게. 너를 이렇게 만든 거. 너를 이 상황에 집어넣은 거.”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맛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종이를 씹는 느낌이었다.

“넌 뭐할 거야? 여기서? 이 몇 주 동안?”

강리우가 물었다.

“모르겠어.”

“… 음악은?”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음악. 그 단어는 이미 자신의 사전에서 사라진 단어였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단어였다.

“음악은 이제 내 거 아니야. 계약했잖아.”

“그건 강민준과의 계약이야. 내가 나가면… 그건 무효가 될 수 있어.”

“무효? 강리우, 그건 너 말이야. 현실은 다를 거야.”

“… 맞아. 다를 거야.”

둘 다 침묵했다. 카페의 백그라운드 뮤직이 흘러나왔다. 어떤 팝송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D 메이저. 4/4 박자. 코드는… 아, 안 돼.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안 돼.

세아는 음악을 듣는 것을 중단했다. 대신 강리우의 손을 봤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계란을 집으려고 할 때마다 포크가 흔들렸다.

“베를린에서 뭐가 있었어?”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자신이 물어보면 안 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2시간의 마지막이 될 이 순간에, 세아는 물을 필요가 있었다.

강리우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가 있었어. 음악을 했던. 나보다 더 잘했어. 피아노. 우리는… 같이 곡을 쓰기도 했고. 베를린에서 경쟁도 했고. 그리고… 그 친구가 죽었어. 3년 전.”

“… 어떻게?”

“자살. 콘서트 하루 전날 밤에. 나는 그걸 막지 못했어. 옆에 있으면서도.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됐어. 손이 거부하는 거야. 마치 내가 그 친구를 죽인 것처럼.”

세아는 강리우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는 손. 그 손은 죄책감이 만든 손이었다.

“그게 너 잘못은 아니야.”

세아가 말했다.

“모르겠어. 확실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음악을 버렸어. 그리고 회사를 들어갔어. 아버지 회사에. 음악을 죽인 곳에서 일하기 시작했어.”

“그게… 말이 돼?”

“안 돼. 전혀 안 돼. 그래서 나는 미쳤어. 그리고 너를 봤을 때…”

강리우가 세아의 눈을 봤다.

“너는 내 친구처럼 보였어.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어. 마치 누군가가 너를 안에서부터 빨아먹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너를 구하고 싶었어. 내가 친구를 구하지 못한 것처럼 너는 구하고 싶었어.”

“그건… 내 일이 아니야.”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강리우가 들어야 할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기도 했다.

“알아. 지금은 알아.”

강리우가 대답했다.


카페에서 나왔을 때, 시간은 9시 42분이었다. 강리우는 택시를 불렀다.

“공항 가야 해.”

그가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택시 안에서, 강리우는 세아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그리고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

그가 또 말했다.

“… 뭐할 거야? 서울에서?”

“모르겠어. 아버지와 싸워야 하고. 계약들을 정리해야 하고. 그리고… 내 손이 다시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해.”

“그리고 나는?”

“너는 여기서. 잠깐.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약속?”

“응. 약속이야.”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강리우는 세아를 끌어안지 않았다. 단지 그의 손으로 세아의 손을 한 번 더 꽉 쥐었다. 그리고 내려갔다. 짐을 들고. 세아를 뒤에 남기고.

세아는 택시 안에서 그를 봤다. 그의 뒷모습. 점점 작아지는 뒷모습. 그리고 마침내 사라지는 뒷모습.


호텔로 돌아왔을 때,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제대로 봤다.

침대. 책상. 창. 그리고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전부였다. 이 방이 자신의 전부였다.

세아는 침대에 누웠다. 큰 침대. 그 위에 작은 자신.

휴대폰을 들었다. 도현이에게 문자했다.

“누나 제주 잘 있어. 너는 학교 열심히 가.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

도현이의 답장은 빨랐다.

“누나 뭐하는 거야? 진짜 학교 수학여행?”

“응. 수학여행이야. 다 괜찮아.”

거짓말. 하지만 또 진실.

그리고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천장을 봤다. 흰 천장.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비어있었다. 마치 자신의 미래처럼.

밖에서는 제주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소금기를 가진 바람. 살아있는 것의 냄새가 나는 바람.

세아는 창을 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들었다. 깊게.

6년 전의 기억이 또 밀려들었다. 어머니가 물 위로 올라올 때의 비명. 도현이의 웃음소리. 자신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아직도 어디에 있는 걸까.

세아는 침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제주의 바람이 계속 불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처럼.

[완료 — 제55화: 호텔의 침대, 너무 커서 외로운 | 15,847자]

# 제55화: 호텔의 침대, 너무 커서 외로운

카페를 나섰을 때, 강리우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9시 42분. 정확히 그 순간, 그의 심장이 무거워졌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항 가야 해.”

그가 말했다. 목소리는 침착해 보였지만, 입가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카페 밖의 거리로 나섰다. 제주의 9월 늦은 밤 공기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소금기 있는 바람이 그의 검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여름이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따뜻했지만, 그의 온몸은 차갑게 떨렸다.

“응.”

세아가 뒤따르며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녀의 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카페의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본 그의 얼굴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그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겨 넣으려고 하는 눈.

거리에서 택시를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제주도는 밤이 깊어지는 시간에도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볐다. 강리우가 손을 들어올리자, 노란 택시가 부드럽게 그들 앞에 멈췄다. 기사는 중년의 남자였고, 그의 얼굴은 무심했다. 무수한 손님들을 태워본 사람의 표정.

택시 뒷좌석. 강리우와 세아는 나란히 앉았다. 택시가 거리로 나가면서 카페는 점점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함께 앉아있던 테이블, 그들이 마시던 따뜻한 음료, 그들이 나눴던 말들—모두가 과거가 되어갔다.

강리우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세아의 손을 찾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창밖의 야경이 만드는 불규칙한 빛 속에서, 그의 손은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떨리고 있었다. 미세한 떨림.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처럼.

“미안해.”

그가 다시 말했다. 이 말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떠나는 것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것인가? 세아는 그것을 묻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는 모든 죄책감을.

“… 뭐할 거야? 서울에서?”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속에는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호기심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그가 정말 돌아올 거라는 확인. 그가 그 약속을 지킬 거라는 확인.

강리우는 창밖을 봤다. 제주의 밤 거리. 관광객들이 바삐 움직이고, 상점들의 불이 밝고,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마치 그 한 사람의 떠남이 세상을 바꾸지 않는 것처럼.

“모르겠어.”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아버지와 싸워야 하고. 계약들을 정리해야 하고. 그리고… 내 손이 다시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해.”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들이 조금씩 움직였다. 불완전한 움직임. 음악가로서 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움직임. 세아는 그 손을 바라봤다. 그 손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세아가 물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 하지만 가장 두려운 질문.

“너는 여기서. 잠깐.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약속?”

“응. 약속이야.”

그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마치 그 약속이 세상을 지탱하는 유일한 것인 것처럼. 마치 그 약속이 없다면 그는 서울로 갈 수 없는 것처럼.

택시는 공항 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시간은 9시 47분이 되었다. 그들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짧아졌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10시 5분이었다. 강리우와 세아는 택시를 내렸다. 공항의 밝은 조명이 그들을 비췄다. 출발 로비의 붐비는 사람들. 짐을 끌고 가는 여행자들.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는 가족들.

강리우는 세아를 끌어안지 않았다. 누군가 보고 있을 수도 있었고, 만약 한번 안으면 다시 놓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한 번 더, 깊게, 꽉 쥐었다. 마치 그 손을 통해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기다려 줄거지?”

그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응. 약속이잖아.”

세아가 대답했다.

강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섰다. 짐을 들었다. 체크인 카운터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세아는 택시 안에 남아서 그를 봤다. 그의 뒷모습. 출발 로비의 밝은 불빛 속에서, 그는 점점 작아졌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그 누구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단지 공항에 도착한 또 다른 여행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보이지 않았다.

세아는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호텔로 가주세요.”

호텔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10시 34분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방 열쇠를 들었다. 방 번호 412. 4층.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낯선 얼굴.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인 것처럼.

문을 열었을 때,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제대로 봤다.

침대. 더블 침대. 흰색 침구. 베개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책상. 작은 책상. 그 위에는 호텔의 안내 책자와 펜이 놓여 있었다.

창. 큰 창. 그 너머로 제주의 밤 거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전부였다. 이 방이 자신의 전부였다.

세아는 침대에 누웠다. 큰 침대. 그 위에서 자신은 너무 작아 보였다. 침대의 한쪽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그 비어있는 공간이 선명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부재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시간은 10시 36분. 도현이에게 문자해야 했다. 자신이 살아있다고, 괜찮다고.

“누나 제주 잘 있어. 너는 학교 열심히 가.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

그녀는 이렇게 타이핑했다. 정성스럽게. 마치 이 말들이 모든 것을 고쳐놓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답장은 빨랐다. 도현이는 항상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누나 뭐하는 거야? 진짜 학교 수학여행?”

거짓말을 해야 했다. 지금은 그것이 필요했다.

“응. 수학여행이야. 다 괜찮아.”

거짓말. 하지만 또 진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함으로써만 진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도현이의 평온함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평온함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천장을 봤다. 흰 천장. 호텔의 천장은 모두 흰색이었다.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비어있었다. 마치 자신의 미래처럼.

그녀는 창을 열었다.

제주의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소금기를 가진 바람. 밤의 바다로부터 오는 바람. 살아있는 것의 냄새가 나는 바람. 그녀는 그 바람을 들었다. 깊게 들었다. 마치 그 바람 속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섞여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리고 기억이 밀려들었다.

6년 전의 기억. 그녀는 12살이었다. 도현이는 6살이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 날은 제주를 방문한 날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비명. 어머니의 비명. 물 위로 올라올 때의 비명. 그것은 공포의 비명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름이었다. 누군가를 찾으려는 부름. 또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부름.

도현이의 웃음소리. 6살 어린이의 웃음소리. 맑고, 순수하고, 무해한. 그 웃음소리가 비명과 겹쳤다. 마치 세상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처럼.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자신이 어떤 소리를 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 기억은 흐릿했다. 마치 물 속에 잠긴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존재했었다. 그것이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어딘가에서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아직도 어디에 있는 걸까.

세아는 침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제주의 바람이 계속 불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방 안의 공기를 흔들고 있었다. 그 바람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불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인 것처럼.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처럼.

그녀는 그 바람을 들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강리우가 돌아올 때까지. 그의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그 때까지 계속, 기다릴 것이었다.

호텔의 침대는 너무 컸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외로운지, 이제 그녀는 알고 있었다.

**[완료 — 제55화: 호텔의 침대, 너무 커서 외로운 | 12,84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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