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화: 목소리의 주인
편의점의 형광등이 그대로였다. 윙윙거리는 소리도 그대로였다. 세아는 계산대에 기대어 서 있었고, 강리우는 여전히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에는 파크 소진이 있었다. 노래하는 파크 소진. 세아의 곡을 부르는 파크 소진.
세아는 그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유튜브에서. 조회수는 340만 건. 좋아요는 18만 개. 댓글은 수천 개. 모두가 파크 소진을 칭찬하고 있었다. “이 곡 진짜 중독성 있다.” “소진이 목소리 미쳤다.” “JYA 이번엔 성공했다.” 아무도 작곡가를 묻지 않았다. 아무도 이 곡이 누구에 의해 태어났는지 관심 갖지 않았다. 곡은 가수의 것이 되고, 가수는 회사의 것이 되고, 회사는 자본의 것이 된다. 세아는 맨 아래 있었다. 아래도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내가 강민준이한테 물어봤어.”
강리우가 말했다. 강민준. JYA의 대표. 강리우의 아버지.
“뭘?”
세아가 물었다.
“파크 소진이 부르는 곡들이 누가 썼는지. 그러니까 강민준이가 뭐라고 했게? ‘사내 작곡팀’이라고. 사내 작곡팀. 즉, 정체불명의 누군가. 너한테는 크레딧이 없어. 이름이 없어. 존재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 너는 계약서에 사인했지. 모든 저작권을 JYA에 넘기는 계약서에.”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 흐르는 것은 분명히 분노였다. 세아에게 분노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게 분노하는 것 같았다. 또는 자신에게.
세아는 계산대 위에 놓인 상품들을 봤다. 담배. 라이터. 껌. 에너지 드링크. 모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와서 집어 가기를.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들. 그것들은 소비되기 위해 존재했다. 세아도 그렇게 되려고 하고 있었나.
“너 왜 나한테 이 영상을 보여줘?”
세아가 물었다.
“왜냐하면…”
강리우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내렸다. 파크 소진의 얼굴이 사라졌다. 대신 강리우의 눈이 드러났다. 그 눈은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세아를 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또는 자신을 구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둘은 구분이 안 될 수도 있었다.
“너한테 깨닫게 하려고.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너는 지금 게임을 하고 있어. 자신을 망가뜨리는 게임. 라이터를 켜고, 손가락을 불꽃에 가까이하고, 나한테 문자를 보내고, 다시 나한테서 눈을 돌리려고 하고. 그 사이에 너의 것이 모두 빠져나가고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게 왜 너한테는 상관없는데?”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진짜 질문이었다. 왜 강리우는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는 걸까. 그것은 사랑인가, 아니면 소유욕인가. 아니면 그냥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인가.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명함이었다. 흰색 카드. 정교한 글씨. 강리우. 뮤직 프로듀서. 아래에는 전화번호와 이메일이 있었다.
“이거 봐.”
강리우가 말했다.
“명함?”
“내 직함을 봐. 뮤직 프로듀서. 근데 너는 뭘 알아? 내가 뮤직 프로듀서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강리우가 물었다.
“모르겠는데.”
세아가 대답했다.
“내가 원래 피아니스트였어. 베를린에서. 국제 콩쿠르 3위까지 갔었어. 그리고…”
강리우가 말을 멈췄다. 그 멈춤은 길었다. 세아는 강리우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 어떤 것이 지나가고 있었다. 기억인가. 고통인가. 강리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난 포기했어. 왜냐하면 내 손이 떨렸으니까. 너처럼. 너의 손이 떨리는 것처럼 내 손도 떨렸어. 그리고 피아노 앞에 앉으면 손가락이 굳었어. 소리가 안 났어. 노래가 안 났어. 그래서 난 포기했어. 그리고 내 아버지가 날 데려갔어. JYA로. 그리고 내게 이 명함을 만들어줬어. 뮤직 프로듀서. 즉, 음악을 하지 않으면서 음악 산업에 있는 사람. 좀비 같은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세아는 강리우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미세하게. 세아가 계산대에서 떨었던 것처럼. 그 손이 계산대를 잡았다. 손가락이 흰색으로 변했다.
“너를 봤을 때, 난 내 자신을 봤어. 너의 떨리는 손을 봤을 때, 난 내 손을 봤어. 그리고 난 너를 구하고 싶었어. 내가 구하지 못한 나 자신을 너를 통해서 구하고 싶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건 날 구하는 게 아니야. 그건 날 가두는 거야.”
세아가 말했다.
“알아.”
강리우가 대답했다.
“알아?”
세아가 물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 내가 얼마나 망가진 사람인지도 알아. 내 아버지의 연장이 되려고 하는 것도 알아. 너를 조종하려고 하는 것도 알아. 그런데도 멈추지 못해. 왜냐하면 너를 놓으면 난 다시 혼자가 되니까. 너의 떨리는 손을 놓으면 난 다시 내 손을 봐야 하니까.”
강리우가 말했다.
계산대 위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형광등의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둘의 호흡.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처음으로 그를 봤다. 강리우라는 남자를 .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음악을 못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단지, 강리우라는 한 명의 인간을.
“넌 내 약점을 알고 있어.”
세아가 말했다.
“알아.”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럼 나가.”
세아가 말했다.
“뭐?”
“나가. 여기서. 내 앞에서. 나를 놔.”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간청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왜?”
강리우가 물었다.
“왜냐하면 넌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구원하고 싶어 하거든. 그리고 그 구원이 내게는 감옥이야. 그리고 넌 알고 있어. 그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도 계속하는 거야. 왜냐하면 내가 너한테 필요하니까. 내가 너의 구원이니까. 그런데 난 너의 구원이 될 수 없어. 난 내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너를 구원해.”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의 손이 계산대에서 떨어졌다. 그의 손이 주머니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켰다. 세아는 그가 뭘 하는지 봤다.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파크 소진을 찾아.”
강리우가 말했다. 전화 너머의 누군가에게. 아마도 자신의 비서거나 도우미일 것이다.
“뭐 해?”
세아가 물었다.
“너한테 진실을 보여주려고.”
강리우가 대답했다.
강리우는 끝을 냈다. 그리고 계산대를 떠났다. 하지만 편의점을 나가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 옆에 있는 편의점 의자에 앉았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그리고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항복도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과의 대면이었다.
20분이 지났다. 그 사이에 고객이 몇 명 들어왔다가 나갔다. 세아는 그들을 응대했다. 기계처럼. 마치 자신의 몸만 거기 있고, 영혼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강리우는 계속 기다렸다.
그리고 편의점 자동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여자였다. 20대 초반. 갈색 머리. 아이돌 같은 얼굴. 파크 소진이었다. 그녀는 강리우를 봤을 때 놀랐다.
“강리우? 이게 뭐예요? 밤중에 편의점에?”
파크 소진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목소리.
강리우는 일어섰다.
“소진아. 이 사람한테 감사를 해야 돼.”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계산대에 있는 세아를 가리켰다.
“이 사람이 누구예요?”
파크 소진이 물었다.
“너 부르는 곡들. 너가 쓴 거 아니잖아?”
강리우가 말했다.
“뭐… 뭘 말씀하는 거예요?”
파크 소진이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혼란이 떠올랐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지 않고 있었다. 처음으로 떨리지 않고 있었다. 강리우가 떠난 것도 아니고, 파크 소진이 들어온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이 강해졌던 것뿐이었다. 또는 이미 약할 대로 약했던 것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리고 명확했다.
“저 파크 소진이 부르는 ‘Burning Down’ 작곡했어요. 그리고 ‘Velvet Night’. 그리고 ‘Last Dance’. 세 곡 다.”
세아가 말했다.
파크 소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건… 강리우, 이건 뭐예요? 회사에서는…”
파크 소진이 말했다.
“회사에서는 너한테 사내 작곡팀이 썼다고 했지. 그런데 사내 작곡팀은 이 사람이야.”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 눈에는 뭔가가 떠올랐다. 회개인가. 아니면 절망인가. 세아는 구분할 수 없었다.
“너 왜 이 사람을 불러왔어?”
세아가 강리우에게 물었다.
“경고를 주려고. 너한테. JYA가 뭐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건 경고가 아니라 협박이야.”
세아가 말했다.
“알아.”
강리우가 대답했다.
파크 소진은 세아를 봤다. 그리고 강리우를 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으로 부르는 곡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또 다른 희생자가 깨어났다.
“저 뭐 해야 돼요?”
파크 소진이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답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세아는 계산대에 기대어 서 있었다. 형광등은 여전히 윙윙거렸다. 편의점의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담배. 라이터. 껌. 에너지 드링크. 소비되기를 기다리는 것들. 그리고 세아도. 세아도 이제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불꽃이 아니라. 재가 되어가는 것을. 천천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강리우는 편의점을 나갔다. 파크 소진도 따라나갔다. 세아는 그들의 뒷모습을 봤다. 강리우의 검은 BMW. 파크 소진을 태운 그 자동차가 야밤의 거리로 사라졌다.
세아는 혼자 남았다. 계산대 뒤에서. 형광등 아래에서. 편의점의 소비되지 않은 상품들 사이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음. 하늘이였다. 카톡이 왔다.
“야 근데 너 진짜 뭐 해? 도현이가 울었어. 엄마가 너한테 밥 사달라고 했대. 그 돈이 없어서. 그리고 너는 편의점에서 뭐 하고 있냐고.”
세아는 화면을 봤다. 하지만 답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떨리고 있었다. 다시 떨리고 있었다. 이번엔 분노로.
강리우가 맞았다. 세아의 곡이 파크 소진의 이름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의 어머니는 돈이 없었다. 그리고 세아의 동생은 울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세아는 편의점 계산대에 서 있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라이터를 켜고 손가락을 불꽃에 가까이했던 곳에서.
무언가가 깨졌다. 아니, 무언가가 깨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지만 멈출 수 없게.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하늘이에게 답을 했다.
“내일 만나. 있을 게 있어.”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강리우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아주 짧은 메시지.
“우리 계약해야 할 게 있어.”
강리우의 답장은 즉시 왔다.
“좋아. 내일 오전 10시. 강남 사무실에서.”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형광등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더 커진 것 같았다. 또는 세아의 귀가 더 민감해진 것일 수도 있었다.
새벽 2시 47분. 편의점의 형광등 아래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는 손. 하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그리고 분노는 불을 일으킨다. 작은 불꽃이 아니라. 큰 불. 아무도 끌 수 없는 불.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그것은 끝나지 않았다. 세아가 강리우의 손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새로운 싸움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세아가 주인공이었다.
# 불꽃의 재생
## 제1부: 깨어남
새벽 2시 23분.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얇고 창백한 손가락들. 그 손가락들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강리우의 검은 BMW가 편의점 앞에서 멈추고 그가 내려와 자신의 팔을 잡았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다.
“너 이거 봤냐?”
강리우의 음성은 차갑고 뾰족했다. 마치 얼음 조각처럼. 그가 휴대폰 화면을 세아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파크 소진. 유명한 영화배우도 아니고, 유명한 가수도 아닌, 그저 중견 배우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손가락들은 세아의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내 곡이야.”
세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작아서, 자신의 귀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마치 먼 곳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강리우는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조롱과 우월감, 그리고 어떤 잔인함이 담겨 있었다. 세아는 지난 1년 동안 그 웃음을 몇 번이나 들었는가. 백 번? 천 번?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웃음은 그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세아의 가슴 속 어딘가가 작게 무너지고 있었다.
“너 계약서 다시 읽어봤냐? 넌 이 곡의 저작권을 내게 넘겼어. 기억 안 나?”
기억이 난다. 물론 난다. 세아는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정확히는 1년 전의 그 밤이었다. 세아가 열여덟 살이던 그 밤. 강리우를 처음 만났던 그 밤. 그는 “천재 작곡가”라고 불리고 싶어 하던 어린 세아를 찾아와 달콤한 말들을 속삭였었다.
“너의 음악은 정말 특별해. 난 너를 스타로 만들 수 있어.”
그 말들이 얼마나 달콤했는가. 그 말들이 얼마나 거짓이었는가. 세아는 지금 알고 있었다. 그때 자신은 어떤 존재였는가. 그저 이용당할 도구였다. 연료였다. 불꽃이 아니라, 재가 되어가는 것. 천천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편의점의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기계의 심장 박동 같았다. 규칙적이고, 끝나지 않고, 영원할 것 같은. 세아는 지난 1년 동안 이 편의점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동시에 강리우의 스튜디오에서 곡을 만들면서. 하루에 18시간을 일했다. 엄마를 위해. 동생 도현이를 위해.
“그리고 이제 너 때문에 파크 소진이 뮤직페스티벌 대상을 탔어.”
강리우의 목소리는 더 이상 달콤하지 않았다. 이제 그것은 순수한 위협이었다. 마치 채찍 같은 것.
“축하해야 하나?”
세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조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항복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뭔가 다른 것의 시작이었다.
강리우의 얼굴이 변했다. 그의 눈이 좁혀졌다. 마치 뱀의 눈처럼.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세아가 한 발 물러섰다. 그 순간, 파크 소진이 BMW 뒤에서 내렸다. 그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강리우 옆에 섰다. 그의 손가락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연주하는 듯한 모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그 손가락들이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것처럼.
“아, 세아씨. 좋은 곡 고마워. 정말 좋아. 너 정말 재능 있어.”
파크 소진의 말은 어색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지시받은 대로 읽고 있는 것 같은 어색함.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어떤 것을 깨달았다.
파크 소진도 희생자였다. 다만 다른 방식의 희생자였을 뿐이다.
강리우는 파크 소진을 자신의 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처럼. 자신의 목소리처럼. 강리우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고, 그 결과만 거두어갔다.
“괜찮아. 그냥 일이니까.”
세아가 대답했다. 그 말은 거짓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이 모든 대화가 거짓이고, 이 모든 상황이 거짓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아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짓을 말하는 것이 진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강리우가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했다. 몇 초 후,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송금 알림이었다. 500만 원. 세아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그의 월급의 두 배 이상이었다.
“이건 뭐예요?”
“너의 곡 판권료야. 파크 소진이 뮤직페스티벌 상금 일부를 나누기로 했어. 고마워하지 말고, 더 좋은 곡을 만들어.”
강리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마치 사냥꾼이 먹이를 주었을 때의 미소 같았다. 동물이 더 이상 저항하지 않도록. 더 이상 도망치려고 하지 않도록.
“그런데 말이야. 너 이 곡은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거야. 우리 계약 기억하지?”
“네. 기억합니다.”
세아의 대답은 자동적이었다. 마치 로봇이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강리우와 파크 소진이 BMW에 탔다. 엔진음이 울렸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편의점 앞의 야밤의 거리로 사라졌다. 빨간 테일라이트만 남겨두고.
세아는 혼자 남았다.
## 제2부: 계산대의 재
편의점의 계산대 뒤. 세아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한 손님이 들어왔다. 30대 남자. 담배를 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40대 여자. 에너지 드링크를 샀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아니, 세아의 귀가 점점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내부 볼륨을 조정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형광등의 윙윙거림, 냉장고의 윙윙거림, 밖의 자동차 소리, 먼 곳의 개 짖는 소리.
세아의 손이 떨렸다. 그것을 보고, 세아는 자신의 손을 더 자세히 바라봤다.
얇은 손가락들. 손톱 끝이 약간 노래 있는. 건반을 너무 많이 쳐서 생긴 굳은살들. 이 손가락들이 지난 1년 동안 만든 곡들이 몇 개인가? 100개? 200개? 그 모든 곡들이 강리우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갔다. 강리우의 입으로 설명되었다. 강리우의 손으로 연주되었다.
아니다. 정확히는 강리우의 도구들로 연주되었다. 파크 소진 같은.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음. 하늘이였다. 세아의 언니. 아니, 세아의 누나. 정확히는 세아의 엄마의 새로운 남편의 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가 세아의 진정한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하늘이는 세아의 가족이었다. 유일한 이해자였다.
카톡이 왔다.
“야 근데 너 진짜 뭐 해? 도현이가 울었어. 엄마가 너한테 밥 사달라고 했대. 그 돈이 없어서. 그리고 너는 편의점에서 뭐 하고 있냐고.”
세아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도현이. 세아의 동생. 열두 살의 도현이. 그 아이는 세아가 이 모든 고통을 견디는 이유였다. 그 아이가 울고 있다고? 밥을 먹지 못해서?
세아는 지난 달에 엄마에게 50만 원을 드렸다. 그 달의 알바비 전부였다. 지난지난 달에도 50만 원을 드렸다. 그런데 엄마가 돈이 없다고?
세아는 휴대폰 화면을 봤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다시 떨리고 있었다.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었다. 이번엔 분노였다.
분노는 무엇인가? 분노는 불이다. 작은 불꽃이 아니라, 큰 불. 통제할 수 없는 불.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
세아는 계산대의 라이터를 봤다. 손님들을 위한 라이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위한. 세아는 그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라이터의 불꽃에 가까이 했다. 얼마나 가까이? 1센티미터? 2센티미터?
불꽃의 열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피부에 작은 도장을 찍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은 아팠지만, 동시에 정확했다. 실제로 느껴지는 무언가. 이 모든 거짓, 이 모든 배신, 이 모든 통제 속에서, 유일하게 진실인 무언가.
세아가 손가락을 치웠다. 아직 화상을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아의 피부는 약간 빨개져 있었다.
그 순간, 어떤 깨달음이 세아의 머릿속을 관통했다. 마치 번개처럼.
강리우가 맞았다. 세아의 곡이 파크 소진의 이름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거짓이었다. 부정의였다. 그러나 그것이 세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세아는 지금 깨달았다.
진정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세아의 엄마가 돈이 없었다. 세아의 동생이 울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세아는 이 편의점 계산대에 서 있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500만 원을 받았지만,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면서.
그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다시 봤다. 하늘이의 메시지.
세아는 천천히 입력했다.
“내일 만나. 있을 게 있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몇 초 후, 강리우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아주 짧은 메시지.
“우리 계약해야 할 게 있어.”
## 제3부: 결정의 밤
강리우의 답장은 즉시 왔다. 정확히 32초 후였다. 세아는 그 32초가 매우 길게 느껴졌다. 마치 32분 같이.
“좋아. 내일 오전 10시. 강남 사무실에서.”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화면이 검어졌다. 검은 화면에 비친 것은 세아의 얼굴이었다. 창백하고, 피곤하고, 그리고 어떤 결연함이 묻어나는 얼굴.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그 소리는 이제 세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아의 머릿속에는 다른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곡일까? 세아는 생각했다. 어떤 곡이 이 순간을 대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영웅적인 곡이 아니었다. 트럼펫과 드럼이 울려 퍼지는 그런 곡이 아니었다. 대신, 그것은 조용한 곡이었다. 마치 밤의 거리를 걷는 사람의 발걸음 같은 곡. 마치 심장이 천천히 뛰는 소리 같은 곡. 마치 누군가가 결정을 내리고 있는 그 순간의 침묵 같은 곡.
세아는 편의점을 바라봤다. 담배. 라이터. 껌. 에너지 드링크. 소비되기를 기다리는 것들. 그리고 계산대 뒤의 자신. 역시 소비되기를 기다리는 것들 중 하나.
하지만 이제 달랐다.
이제 세아는 소비당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제 세아는 자신의 것을 되찾기로 결정했다.
새벽 2시 47분.
편의점의 형광등 아래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떨리는 손. 하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분노였다. 그리고 분노는 불을 일으킨다. 작은 불꽃이 아니라. 큰 불. 아무도 끌 수 없는 불.
세아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하늘이의 답장이었다.
“알았어. 내일 아침 10시 전에 너한테 연락할게. 그리고 도현이는 내가 밥 사줄게. 너는 신경 쓰지 마.”
세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결연함의 눈물이었다.
세아는 휴대폰에 다시 입력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리고… 내가 뭔가 크게 할 거야. 너한테 나중에 말해줄게.”
하늘이의 답장은 즉시 왔다.
“뭐 하려고? 혹시… 위험한 거 아니지?”
세아는 한 동안 생각했다. 위험한가? 그렇다. 매우 위험했다. 강리우는 매우 위험한 사람이었다. 그의 법무팀은 매우 강했다. 세아가 계약을 위반하면, 그는 엄청난 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그것을 계산했다. 그리고 세아는 이미 결정했다.
“괜찮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메시지를 보냈다.
## 제4부: 밤의 길
새벽 3시 2분.
세아의 알바 시간이 끝났다. 세아는 계산대를 정리했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렬되었다. 담배는 담배 상자에. 라이터는 라이터 상자에. 껌은 껌 상자에.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이 질서 정연해 보이는 것처럼. 마치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세아는 편의점을 나갔다. 밤의 거리는 조용했다. 차들이 드물게 지나갔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에는 오직 밤의 세계만이 살아 있었다.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