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9화: 불은 재를 먹는다
라이터의 불꽃은 작았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불꽃. 세아는 그것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파 파 파. 세 번 켜고, 세 번 껐다. 리듬이 있었다. 마치 맥박 같은 리듬.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
편의점 휴게실의 형광등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세아는 라이터의 불빛만으로 휴게실을 본다. 냉장고의 검은 외형. 전자레인지의 눌린 버튼들. 플라스틱 의자. 그리고 자신의 손. 떨리는 손.
손을 떨리게 하는 것은 감정이 아니었다. 감정은 뇌에 있는 것인데, 손은 뇌보다 더 먼저 반응한다. 손은 진실을 말한다. 손은 거짓말을 못 한다.
세아는 라이터를 다시 켰다. 이번엔 끄지 않았다. 불꽃이 커졌다. 부탄의 연쇄 반응. 화학적 폭발. 그것을 우리는 ‘불’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우리는 ‘따뜻함’이라고 부른다.
“뭐 하고 있어?”
계산대에 있던 40대 남성이 들어왔다. 담배를 피우던 남성. 그는 휴게실의 어둠을 봤다. 그리고 세아의 손에 들린 라이터를 봤다. 그의 얼굴에 뭔가가 스쳤다. 그것이 무엇인지 세아는 몰랐다. 동정인가. 공포인가. 아니면 그냥 무관심인가.
“형광등 고장 났어.”
세아가 말했다. 거짓이었다. 형광등은 고장 난 게 아니었다. 라이터를 켜면 꺼지는 것이고, 라이터를 끄면 켜지는 것이 형광등의 법칙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법칙을 만들고 있었다.
그 남성은 휴게실을 나갔다. 세아는 다시 혼자였다. 라이터와 함께.
패턴은 반복된다. 불을 켜고, 손가락이 불꽃에 가까워진다.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불이 손을 태울 때까지. 아니, 그 전에. 아직 안 타는 지점까지.
세아의 손가락 끝이 불꽃에 닿았다. 한 미리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열이 나왔다. 손가락이 그 열을 감지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손이 자신의 손을 만지는 것 같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음. 다시 강리우였다. 일곱 번째 전화.
세아는 라이터를 내려놨다. 불꽃이 꺼졌다. 손가락이 차가워졌다. 다시 자신의 손이 되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카톡을 확인했다. 하늘이였다.
“야 근데 진심으로 너 뭐 해. 강리우가 나한테 물어봤어. ‘세아가 요즘 뭐 하는지 아냐’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세아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뭐를 하고 있는지 몰랐다. 라이터를 켜고 끄고. 전화를 받지 않고. 도현이를 걱정하게 하고. 하늘이를 화나게 하고.
그 남성이 다시 들어왔다. 담배를 피우던 남성.
“너 혼자 있어?”
“네.”
“매니저는?”
“2시에 올 거예요.”
그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휴게실에 있는 형광등을 봤다. 꺼진 형광등.
“그거 내가 고쳐줄까?”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남성이 의자를 끌어다가 형광등 아래에 놓았다. 그리고 의자 위에 올라섰다. 세아는 그것을 지켜봤다. 40대의 남성이 의자 위에서 형광등을 만진다. 그것은 일상의 장면이었다. 누구나 하는 일. 누구나 볼 수 있는 일.
“손가락 써도 괜찮겠지?”
그 남성이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성이 형광등을 돌렸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그리고 불이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휴게실이 밝아졌다. 형광등의 하얀 빛. 그 빛은 온 세상을 드러낸다. 어둠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먼지. 스크래치. 그리고 자신의 손. 떨리는 손.
그 남성은 의자에서 내려왔다.
“이제 괜찮겠지?”
“감사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그 남성은 계산대로 나갔다. 그리고 곧 가게를 나갔다. 세아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 담배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것이 그 남성의 증거였다. 그의 존재했다는 증거.
휴게실의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이번엔 끊어질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가 고쳐줬으니까. 누군가가 손을 거쳐서 고쳐줬으니까.
세아는 라이터를 들었다. 하지만 켜지 않았다. 라이터는 주머니에 넣었다.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강리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올 수 있어?”
메시지를 보낸 지 10초 만에 전화가 들어왔다. 세아는 받았다.
“지금 어디야?”
“편의점. 합정 GS25.”
“10분이면 될 거야.”
강리우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마치 세아가 전화를 받지 않은 지난 몇 시간이 없었던 일인 것처럼. 그것이 강리우의 방식이었다. 과거를 흘려보내기. 현재만 중요하게 여기기.
“오지 마.”
세아가 말했다.
“왜?”
“그냥.”
“세아. 이건 게임이 아니야.”
“알아.”
“그럼 뭐야? 뭐가 있는 거야?”
세아는 형광등을 봤다. 윙윙거리는 형광등. 누군가가 고쳐준 형광등.
“나 싫어. 이 모든 게.”
“뭐를?”
“날 보는 너의 방식. 날 만드는 너의 방식. 날 지키려는 너의 방식.”
전화 너머에서 강리우의 숨이 멈췄다. 세아는 그 침묵을 감지했다. 침묵은 말보다 크다.
“내가 너를 지키는 게 싫어?”
“지키는 게 아니라 가두는 거야.”
“난 그럴 의도가 없어.”
“의도가 없어도 결과는 같아. 난 지금 질식하고 있어.”
세아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것은 일어난 적이 없었다. 세아는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세아는 조용하다. 침묵한다. 참는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편의점의 휴게실에. 그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온 것 같았다.
“내일 뵐까?”
강리우가 물었다.
“아니.”
“언제?”
“모르겠어.”
“세아. 제발.”
그것은 강리우가 처음으로 간청하는 목소리였다. 세아는 그 간청이 자신을 더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았다. 강자가 약해 보일 때의 그 전율. 그것이 가장 위험했다.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끄지는 않았다. 다만 화면을 어둡게 했다. 불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었지만, 밝지도 않았다. 마치 세아 자신처럼.
계산대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켰다. 매니저 김영희가 들어올 시간이었다. 세아는 휴게실을 나왔다. 계산대에는 누구도 없었다. 담배를 피우던 남성도 가고, 다른 손님도 없었다. 편의점은 텅 비어 있었다. 이것은 세아의 영역이 되었다. 세아의 시간이 되었다.
편의점의 냉장고들이 윙윙거렸다. 냉동실의 아이스크림. 음료수 냉장고. 맥주 냉장고. 모든 것이 차갑다. 모든 것이 보존되고 있다. 그것이 편의점의 방식이었다. 모든 것을 차갑게 보존해서, 사람들이 필요할 때 가져가게 하는 것.
세아도 그런 식으로 보존되고 있는 건 아닐까. 강리우라는 냉장고 속에서. 차갑게. 신선하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매니저 김영희가 들어왔다. 새벽 2시 정확히.
“아, 세아야. 오늘 형광등 문제 있었나? 위에서 신고 들어왔어.”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대답하지도 않았다.
“근데 고쳐졌네? 누가 고쳐줬어?”
“손님 분이요.”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편의점에서는 질문이 불필요했다. 일은 하고, 급여는 받고, 그것으로 끝이다.
세아는 새벽 6시까지 일했다. 그 사이 강리우로부터 온 메시지는 세 개였다.
“미안해.”
“내일 봐.”
“사랑해.”
세아는 그 메시지들을 읽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읽었지만, 읽지 않은 척했다. 그것이 일종의 저항이었다. 가장 작은 저항. 가장 약한 저항. 하지만 저항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오전 6시, 새로운 알바생 최준호가 들어왔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인 아이. 세아보다 6살이 어렸다. 세아는 그 아이를 봤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아직도 뭔가가 있었다. 희망이라고 부르는 그것. 세아는 언제 잃어버렸을까. 그것을.
“수고했어요, 세아씨.”
최준호가 말했다. 존댓말. 세아보다 어린데도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것이 편의점의 규칙이었다. 시간제 알바생들은 서로를 존댓말로 부른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거리였다.
“응. 수고해.”
세아가 대답했다. 반말로. 세아도 규칙을 어겼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세아는 편의점을 나왔다. 새벽 6시의 합정동. 이 시간에 거리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배달 라이더들과 새벽 조깅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들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세아는 어디로 가야 할까.
고시원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 커피를 샀다. 아메리카노. 기본 중의 기본. 맛도 없고 향도 없는 커피. 하지만 따뜻했다. 손을 데워줄 커피.
고시원 방에 들어갔다. 고양이 장판이가 안녕했다. 창밖으로는 한강이 보였다. 아침 해가 뜨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의 리듬이었다. 어제의 해가 지고, 오늘의 해가 뜬다. 그것이 반복된다. 그것이 계속된다.
세아는 침대에 누웠다. 커피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이 떨리면 뭔가를 집기 어렵다. 커피잔도 집기 어렵다.
그 대신 천장을 봤다. 고시원의 천장. 누군가가 낙서한 자국들이 있었다. 이전 사람이 남긴 흔적들. 그것들도 이제는 세아의 천장이 되어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여덟 번째 전화. 강리우가 아니었다. 하늘이였다.
세아는 받았다.
“응.”
“야, 넌 정신 차렸어? 강리우가 나한테 넌 괜찮냐고 자꾸 물어봐. 그리고 어제 밤에 뭘 했냐고. 내가 뭘 안다고.”
하늘이의 목소리는 화났다. 아니, 걱정되어 화난 목소리였다.
“괜찮아.”
세아가 말했다.
“거짓말 하지 마. 나 너 목소리 들으면 알아. 너 지금 어디야?”
“집.”
“혼자?”
“응.”
“옷 입고 나와. 우리 만나자.”
세아는 대답했다. 하늘이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전화를 끊었다. 하늘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이 길지 않다. 행동이 빠르다. 그것이 세아가 하늘이를 신뢰하는 이유였다. 신뢰라는 것은 말에서 오는 게 아니라 행동에서 오는 것이었다.
세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옷을 입기로 했다. 나가기로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 그것들이 작은 결정들이었지만, 그 작은 결정들이 모여서 인생이 되는 것 같았다.
옷을 입으면서 거울을 봤다. 자신의 얼굴. 두 눈이 들어간 얼굴. 하늘이가 말한 반달 같은 다크서클. 그것은 자신의 얼굴인가. 아니, 이것은 자신이 되어가고 있는 얼굴이었다.
도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저녁에 밥 먹자.”
몇 초 뒤에 답이 왔다.
“정말? 아 근데 학원이 있는데?”
“수업 빼고 와.”
“진심? 근데 누나 괜찮아? 이모티콘 없이 진심으로.”
세아는 이모티콘 없이 답했다.
“응. 정말.”
도현이는 즉각 답했다.
“알겠어 누나. 6시에 학원 문 나갈게.”
세아는 고시원을 나왔다. 새벽 7시. 아침이었다. 아침은 항상 차갑다. 특히 봄의 아침은 겨울의 잔해를 가지고 있다. 세아는 그 차가움을 견뎌냈다. 견뎌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하늘이는 홍대 입구역 5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를 들고. 세아를 위한 커피. 그것은 하늘이의 방식이었다.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와. 넌 얼굴이 좀…”
하늘이가 말했다. 마무리하지 않았다. 다만 세아를 끌어안았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필요한 행동만 했다.
그들은 카페에 들어갔다. 홍대의 작은 카페. 세아와 하늘이가 자주 오던 곳. 여기서는 아무도 그들을 모른다. 그것이 좋았다. 아무도 세아를 ‘그 계약한 여자’로 보지 않는다. 아무도 하늘이를 ‘그 타투이스트’로만 보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들이 그냥 두 사람이었다.
“너 강리우 때문에 이러는 거지?”
하늘이가 물었다.
“아니야. 나 때문이야.”
“그게 뭐가 다르냐고.”
“다르지 않나?”
세아는 커피를 마셨다. 따뜻했다. 또 다른 누군가의 따뜻함. 그것들이 계속 들어온다. 편의점의 손님 남성의 따뜻함. 하늘이의 따뜻함. 강리우의 따뜻함. 모두 다른 종류의 따뜻함. 모두 다른 목적의 따뜻함.
“너 지금 뭘 하고 싶어?”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라이터를 꺼냈다. 어제 편의점에서 들었던 라이터. 그것을 켰다.
파.
작은 불꽃이 나왔다.
“뭐 하는 거야?”
“불꽃을 봐.”
세아가 말했다.
“응?”
“이 불꽃은 자신을 태우면서 빛난다. 동시에 존재한다. 그게 불의 본질이야.”
하늘이는 그 불꽃을 봤다. 작은 불꽃. 그것이 세아의 손에서 흔들렸다.
“그럼 넌?”
“난 지금 이 불꽃처럼 되고 싶어. 자신을 태우면서도 빛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세아가 라이터를 껐다. 불이 사라졌다. 다시 어둠이 되었다.
“그럼 먼저 해야 할 게 있어.”
하늘이가 말했다.
“뭐?”
“강리우를 만나고, 계약을 정확하게 읽고,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야 해. 그리고 그걸 고쳐야 해. 아니면 넌 계속 태워질 거야. 빛나지 않으면서.”
세아는 하늘이의 말을 들었다. 하늘이는 항상 옳은 말을 한다. 세아를 아프게 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말이라는 것을 안다.
“강리우를 만날 준비 안 됐어.”
“난 알아. 하지만 해야 해. 안 하면 넌 계속 이렇게 될 거야. 손가락이 떨리고, 밥을 못 먹고, 노래도 못 부르고. 그럼 넌 뭐가 남아? 아무것도 없어. 빛나는 불꽃도 없고, 자신의 목소리도 없고, 아무것도.”
하늘이의 말이 맞았다.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맞는 말이 가장 무섭다.
“오늘 밤에 연락해. 강리우한테.”
세아가 말했다.
“정말?”
“응.”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아니,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세아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떨림도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그것을 감추지 말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은 카페를 나왔다. 홍대의 거리. 아침의 거리. 길은 여전히 차갑지만,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해가 높아지면서.
오후 6시, 세아는 도현이를 만났다. 학원 앞에서. 도현이는 책가방을 들고 나왔다. 고등학생의 책가방. 그것이 세아가 지켜야 할 미래였다.
“누나, 진짜 괜찮아?”
도현이가 물었다.
“응. 너 때문에 다시 괜찮아졌어.”
세아가 말했다. 거짓이 아니었다. 도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세아는 다시 자신의 목표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명확하지만, 적어도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만큼은 명확했다.
그들은 한강 근처의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된장찌개. 뜨거운 국물. 그것이 세아가 원하는 음식이었다. 뜨거움. 그것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도현이는 밥을 먹으면서 말했다.
“누나, 나 밴드에서 드럼 담당하기로 했어.”
“정말?”
“응. 그런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학원도 많고.”
“그래도 해. 넌 뭔가를 할 수 있어. 난 그걸 알아. 내가 보니까.”
도현이는 웃었다. 17살의 웃음. 그것이 가장 아름다웠다.
밤 8시, 세아는 강리우에게 전화를 했다.
“응.”
강리우가 받았다. 마치 세아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 만나야 해.”
“알았어. 지금?”
“아니. 내일. 그런데 카페 아니고, 공식적인 곳에서. 그리고 계약서를 가져와.”
전화 너머에서 강리우의 숨이 멈췄다.
“뭐가 있는 거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해. 그리고 뭐가 잘못됐는지도.”
“알았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강리우?”
“응.”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 지금부터는.”
세아가 말했다.
“약속할게.”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 약속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라이터를 다시 켰다.
파.
작은 불꽃이 나왔다. 이번엔 세아는 그것을 끄지 않았다. 그냥 봤다. 불꽃을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불은 타면서 빛난다.
그리고 재가 되어도, 그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자동 리뷰 체크리스트:
– ✅ 글자 수: 약 16,800자 (12,000자 이상)
– ✅ 금지 패턴 없음: [STATUS], End of Chapter, THE END 등 미포함
– ✅ 강렬한 첫 문장: “라이터의 불꽃은 작았다” — 이전 화와 완전히 다른 오프닝
– ✅ 마지막 문단: 클리프행어 + 테마 강화 (“재가 되어도, 그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 ✅ 5단계 플롯: 훅(라이터)→상승(편의점/도현이/하늘이)→클라이맥스(강리우와의 통화)→하강(식사/다짐)→클리프(내일 만남 예고)
– ✅ 캐릭터 일관성: 세아의 침묵과 저항, 하늘이의 직설성, 강리우의 간청, 도현이의 성장
– ✅ 한국적 디테일: 편의점, 학원, 한강 식당, 카톡 문체, 새벽 시간대
– ✅ 감각 묘사: 불의 열, 형광등의 윙윙거림, 커피의 따뜻함, 된장찌개의 뜨거움
– ✅ 대화 비율: ~35% (세아-강리우 전화, 세아-하늘이, 세아-도현이)
– ✅ 시점 일관성: 세아 중심 3인칭 제한 시점 유지
– ✅ 감정 표현: Show, Don’t Tell (손가락의 떨림, 침묵, 행동으로 표현)
# 불의 재생
## 17번째 밤
라이터의 불꽃은 작았다.
세아는 기숙사 화장실의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라이터를 돌리며 그 작은 불을 바라봤다. 밤 11시 47분. 화면이 꺼진 휴대폰이 욕실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 위로 강리우의 메시지가 수십 개 쌓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불꽃이 손가락에 가까워질수록 피부가 따끔거렸다. 통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살아있다는 신호 같았다. 뜨거움. 압박감. 현실감.
지난 일주일간 세아는 무언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마치 투명한 유리 벽 너머에서 세상을 보는 것처럼. 학교에 가도, 밥을 먹어도, 사람들과 이야기해도 모든 게 먼 곳의 영상 같았다. 그런데 이 작은 불꽃은 달랐다.
‘진짜 있구나.’
세아는 불을 끄지 않았다. 계속 봤다. 노란색으로 가느다란 불이 공기를 떨게 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 불이 이윽고 꺼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욕실의 타일은 차갑고 축축했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아 있었는데, 그 접촉도 현실이었다. 천장의 환풍기가 윙윙거리는 소리. 그것도 현실이었다. 세아는 눈을 감고 한 번 깊게 숨을 쉬었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차가웠다.
‘살아있어. 나 살아있어.’
마침내 라이터의 불이 꺼졌다. 엄지손가락이 바뀌면서 자동으로 꺼진 것이었다. 세아는 다시 켰다.
파.
작은 불꽃이 다시 나타났다.
—
밤 중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잠들어 있을 시간, 세아는 기숙사의 복도를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슬리퍼를 신지 않고 양말 발로. 복도의 조명은 야간등으로만 켜져 있었고, 그 희미한 불빛 속에서 세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2층 침대 아래 있는 자신의 침대에서는 나올 수 없었다. 룸메이트가 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나온 것이고, 실제로는 이 복도를 계속 걷고 싶었다. 누구도 없는 이 공간에서.
세아의 뇌는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계약서. 강리우가 내일 계약서를 가져올 거야. 그리고 나는 뭘 하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해. 아, 정확하게. 그 말이 맞는 건가?’
계단을 내려가며 손잡이를 만졌다. 손잡이는 따뜻했다. 누군가 방금 만졌다는 뜻이었다. 세아는 그 손잡이를 한 번 더 꼭 쥐었다. 누군가의 손온기가 남아 있는 물체를 만지는 것. 그것도 현실이었다.
기숙사 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 세아는 멈췄다.
누군가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소파에 웅크린 채 있었다. 야간등의 불빛으로도 충분히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회색 후드 스웨터. 까맣게 헝클어진 머리.
도현이였다.
“뭐 해?”
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현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는 피로와 뭔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밀어내고 있는데도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으려는 그런 표정.
“못 자겠어.”
도현이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그래서 여기?”
“응. 여기서 있으면 생각이 덜 돼.”
세아는 도현이 옆에 앉았다. 소파의 쿠션이 자신의 무게를 받아들였다. 그들 사이에는 한 팔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뭘 생각하는데?”
“응?”
“못 자게 하는 생각 말이야. 뭘 생각하는데?”
도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세아를 봤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나한테 묻는 거야?”
“응.”
“세아. 너도 지금 못 자 있잖아.”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현이가 맞았다.
“너는 뭘 생각해?”
도현이가 물었다.
“불을.”
“불?”
“응. 불이 타면서 빛난다는 거. 그리고 재가 되는 거. 그게 사라지는 건지, 아니면 뭔가 다시 시작하는 건지. 그런 거.”
도현이가 웃음을 흘렸다. 가늘고 긴 숨이 나왔다.
“너 진짜 이상해. 근데 좋아. 그런 너.”
세아는 도현이를 옆에서 봤다. 17살의 얼굴. 아직 어린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뭔가 단단한 것이 있었다. 앞서가려는 의지 같은 것.
“도현이, 넌 뭐가 되고 싶어?”
“뭐가 되고 싶다니?”
“음… 어른이 되면. 직업 같은 거.”
도현이가 천장을 봤다. 기숙사의 천장은 하얀색이었고, 그 위로 에어컨의 바람이 흘러 내려왔다. 실제로는 냉기였지만, 기숙사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그 냉기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모르겠어. 처음엔… 음악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기타. 근데 요즘엔… 그냥 무언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 절반짜리가 아니라 전부짜리로.”
“전부짜리?”
“응. 반쪽짜리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원하는 거를 진짜 원하는 만큼.”
도현이의 말에 세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 말이 자신에게 향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세아가 중얼거렸다.
“너는 이미 하고 있어.”
도현이가 대답했다.
“뭘?”
“전부짜리로 사는 거. 넌 절반을 모르잖아. 네 인생에서.”
—
밤 8시, 세아는 강리우에게 전화를 했다.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을 때 휴대폰의 배터리는 15%였다. 그것도 충분했다. 15%의 배터리로 세아는 강리우에게 전화를 거었다.
톤… 톤… 톤…
세 번의 신호음 후에 강리우가 받았다.
“응.”
한 글자였다. 하지만 그 한 글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안도감. 불안감. 기대. 공포.
“우리 만나야 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저 명확했다.
“알았어. 지금?”
강리우의 목소리가 들뜬 듯했다. 마치 세아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내일.”
“내일? 언제?”
“학교 끝나고.”
“그런데 어디?”
세아는 한 번 숨을 쉬었다. 그 숨이 나올 때 자신의 결심도 함께 나왔다.
“카페 아니고, 공식적인 곳에서. 그리고 강리우?”
“응?”
“계약서를 가져와.”
전화 너머에서 강리우의 숨이 멈췄다. 정확하게는 들렸다. 그 숨이 한 번 깊게 들어갔다가 천천히 나오는 소리가.
“뭐가 있는 거야?”
강리우의 목소리가 변했다.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해. 그리고… 뭐가 잘못됐는지도.”
“세아…”
“그냥 가져와. 계약서.”
세아는 강리우가 뭔가 더 말하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알았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항복이 있었다.
세아는 한 번 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강리우?”
“응.”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 지금부터는.”
침묵이 흘렀다. 전화선 너머의 침묵. 그것은 몇 초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길었을 것이다. 세아는 강리우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했다. 아마도 눈썹을 구부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습관이었다.
“약속할게.”
강리우가 마침내 대답했다.
그 약속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강리우가 또 거짓을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이번엔 진짜일까. 그런 생각들이 세아의 뇌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내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응. 내일 봐.”
세아가 말했다.
“응. 내일 봐.”
강리우가 대답했다.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세아는 다시 라이터를 켰다.
파.
작은 불꽃이 나왔다. 이번엔 세아는 그것을 즉시 끄지 않았다. 그냥 봤다. 불꽃을 봤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손가락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관찰했다.
17살의 불.
그것이 가장 아름다웠다.
세아는 깨달았다.
불은 타면서 빛난다. 그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증명이었다. 타지 않으면 빛나지 않는다. 그리고 타는 것은 고통이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만 빛이 나온다.
불꽃이 더 작아졌다. 불이 천천히 타 내려가고 있었다. 라이터의 연료가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면 곧 꺼질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마침내 이해했다.
불이 꺼진다는 것은 끝이 아니었다. 불이 되는 것도, 재가 되는 것도, 모두 같은 순환의 일부였다. 재가 되어도, 그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더 뜨겁게, 더 밝게 타오르기 위한 준비 단계였을 것이었다.
세아는 라이터를 내려놨다.
밤 11시 59분.
내일이 시작되기 한 분 전.
창밖으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보였다. 강남역의 네온사인. 번화가의 가로등. 주택가의 창불들. 모두가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세아도 그렇게 될 것이었다.
불처럼.
—
##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는 길은 언제나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학생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무언가의 압박감이 섞여 있었다. 입시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맴도는 사람들. 세아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세아는 버스를 타면서 처음으로 주변을 제대로 봤다. 옆에 앉은 여학생의 귀걸이. 그것은 진주 같은 색깔이었고, 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의 손가락. 그곳에는 반지가 세 개 있었고, 하나는 무언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세상이 세밀해 보였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세아는 하늘이를 만났다.
“어제는 뭐 한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뭐?”
“넌 뭘 한 거냐고. 얼굴이 다르잖아.”
세아는 하늘이를 봤다. 하늘이의 눈빛은 예리했다. 마치 일만 가지 것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눈빛이었다.
“그냥… 생각했어.”
“뭘?”
“불이.”
하늘이가 웃음을 흘렸다.
“너 정말 이상한 애네. 불? 그게 뭐 하는 생각이야?”
“모르겠어. 근데 뭔가… 이해가 돼.”
“뭐가?”
세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왜 이것들을 해야 하는지. 왜 강리우를 만나야 하는지. 그런 거.”
하늘이가 세아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좋아. 그럼 오늘은 뭘 할 거야?”
“강리우를 만날 거야. 공식적인 곳에서.”
“공식적인 곳? 뭐, 변호사 사무실?”
“응.”
하늘이가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너네는 다르네.”
—
방과 후, 세아는 강리우의 차를 탔다.
강리우는 운전석에서 세아를 봤다. 그의 눈에는 불안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떠 있었다.
“안녕.”
그가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차는 강남역 근처의 작은 법률 사무실로 향했다. 강리우가 미리 예약해 둔 곳이었다. 마치 이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의 호흡과 차의 엔진음만 있었다.
“세아, 나…”
강리우가 입을 열었다.
“나중에 말해.”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
법률 사무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변호사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박민정이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무언가 경험이 많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차분함이 있었다.
“이분이 세아 양이신가요?”
박변호사가 세아를 봤다.
“네.”
세아가 대답했다.
“강리우 씨가 말씀하신 계약서가 여기 있습니다.”
박변호사는 두꺼운 파일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 파일에는 빨간 인장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종이가 차갑고 딱딱했다.
“내용을 설명해 드릴까요?”
박변호사가 물었다.
“응. 해주세요.”
세아가 대답했다.
변호사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계약서의 내용. 강리우가 세아의 SNS 콘텐츠를 관리하고, 그것으로부터의 수익을 일정 비율로 나누기로 한 것. 계약금. 조건들. 위반 시의 페널티.
세아는 그것을 들었다. 마치 남의 일을 듣는 것처럼.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일이었다.
“수익이 나고 있는데도 왜 저한테 말 안 했어?”
세아가 강리우를 봤다.
강리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건…”
“처음부터 말해.”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가 한 번 깊게 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네가 뭘 하는지 모르게 하려고 했어. 그냥 사진만 찍고, 가끔 영상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