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8화: 목소리의 반란
세아는 강리우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첫 통화는 오후 5시 23분에 들어왔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손님이 없는 시간대였고, 세아는 상품 정렬을 하고 있었다. 휴대폰의 진동음이 울렸다. 화면에는 ‘강리우’라고 떴다. 세아는 손가락을 멈췄다. 라면 박스를 들었던 손가락. 그 손가락이 떨렸다. 하늘이가 말한 것처럼, 마치 다시 무언가를 실패할 것 같은 떨림. 세아는 전화를 무시했다.
두 번째 전화는 오후 6시 47분.
세 번째는 오후 8시 15분.
네 번째는 오후 9시 33분.
다섯 번째는 밤 10시 52분. 이 통화는 달랐다. 전화 대신 문자가 들어왔다.
“세아. 뭐 하고 있어? 답장해.”
세아는 문자를 읽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화면을 어두워지게 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편의점의 야식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사원들. 대학생들. 그들은 세아를 보지 않았다. 그들은 냉장고를 열고, 음식을 집어 들고, 계산대에 놓고, 돈을 냈다. 세아는 기계 같았다. 기계는 감정이 없다. 기계는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
밤 11시 27분. 여섯 번째 전화.
이번엔 세아가 받았다.
“응.”
한 단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전화 너머에서 강리우의 숨소리가 들렸다. 빠른 숨소리. 마치 어딘가를 뛰어온 사람의 숨소리 같았다.
“너 뭐 하고 있어?”
“일.”
“언제까지?”
“새벽 6시까지.”
세아는 계산대에 기댔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감추려고 주머니에 넣었다. 휴대폰을 든 손만 빼고.
“그 다음은?”
“모르겠어.”
“나 봐. 내가 너한테 갈게.”
“아니야.”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자신에게 하는 명령. 자신의 입에서 나온 명령.
“세아.”
강리우의 목소리가 변했다. 명령조에서 간청조로. 세아는 그 변화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 감지가 자신을 더 무너뜨렸다. 누군가를 통제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통제당하는 것이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지금 너무 피곤해. 내일 봐.”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손이 떨렸다. 이번엔 더 심했다. 마치 고열이 있는 사람처럼. 또는 무언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처럼. 그런데 누가 준비가 되어 있을까. 누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에 준비가 되어 있을까.
편의점의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새벽 1시가 가까워졌다. 손님들이 하나둘 나갔다.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편의점 알바생 세아와,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40대 남성 한 명뿐이었다. 그 남성은 계산대 근처에서 담배를 피웠다. 매니저 김영희가 보면 혼낼 일이지만, 세아는 말하지 않았다. 그 남성의 담배 연기가 세아를 감싸고 있었다. 담배 연기는 따뜻했다. 또는 그렇게 느껴졌다.
오후 11시 45분.
도현이로부터 카톡이 들어왔다.
“누나 괜찮아? 강리우가 자꾸 물어봐. 뭔가 있는 거 아닌가?”
세아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도현이의 카톡을 다시 읽었다. 도현이. 세아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사람. 그 가장 소중한 사람이 세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세아를 더 무너뜨렸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희생하는 것. 그리고 그 타인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악순환이 있을까.
세아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매니저 김영희는 아직 집에 있지 않았다. 매니저는 밤 2시에 올 예정이었다. 그 사이의 시간 동안 세아는 혼자였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펼쳤다. 떨리는 손가락들.
그때 휴게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나서 꺼졌다.
완전한 어둠. 세아는 어둠 속에서 손을 봤다. 자신의 손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이 울고 있었다. 또는 그렇게 느껴졌다.
세아는 휴게실을 나왔다. 계산대에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 남성이 있었다. 그 남성은 세아를 보지 않았다. 세아도 그 남성을 보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무시하는 관계에 있었다. 그것이 편의점의 관계였다. 무시. 침묵. 그리고 거래.
세아는 계산대 뒤의 선반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라이터. 편의점에서 파는 라이터. 누군가 남기고 간 라이터일 수도 있었다. 또는 누군가 훔쳐간 라이터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것은 세아의 손에 들어왔다.
세아는 라이터를 켰다.
작은 불꽃이 나타났다. 노란 불꽃. 그것이 세아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또는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불꽃은 아름답고 동시에 무섭다. 그것은 따뜻함이면서 동시에 죽음이다.
세아는 그 불꽃을 자신의 손가락에 가까이 가져갔다. 떨리는 손가락에. 손가락의 끝이 불꽃에 닿을 그 순간. 누군가가 세아의 손목을 잡았다.
“뭐 하는 거야!”
담배를 피우던 남성이었다. 40대 남성. 낯선 얼굴.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또는 누군가의 형의 얼굴이었다. 어쨌든, 그것은 세아를 구하려는 얼굴이었다.
“놔.”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절대 안 돼. 이 정도면 미쳤지. 넌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라이터를 떨어뜨렸다. 라이터는 바닥에 떨어졌다. 불꽃도 꺼졌다. 다시 어둠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 어둠은 달랐다. 이것은 안전의 어둠이었다. 또는 그렇게 느껴졌다.
“넌 어디 사람이야? 누군가 있어?”
남성이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세아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따뜻한 손가락. 강리우의 손가락처럼 따뜻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따뜻함이었다. 이것은 지배의 따뜻함이 아니었다. 이것은 보호의 따뜻함이었다. 또는 그렇게 느껴졌다.
“있어.”
세아가 대답했다.
“누가?”
“형. 그리고 엄마. 그리고 친구.”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세아의 손목을 천천히 놨다.
“그럼 그 사람들한테 전화해. 지금 당장. 오케이? 난 너한테 커피를 사줄 거고, 넌 그 사람 중에 한 명한테라도 전화를 할 거야. 약속해?”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고개는 끄덕였다.
남성은 세아를 이끌었다. 계산대로. 그리고 나서 편의점 냉장고에서 커피를 집어 들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아는 그 커피를 들었다. 차가웠다. 또는 이제 따뜻해지고 있었다.
“내 번호 알려줄게.”
남성이 말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번호를 구술했다. 세아는 그것을 휴대폰에 적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지만, 적을 수는 있었다.
“언제든 괜찮으면 전화해. 오케이? 넌 혼자가 아니야.”
그 말을 들었을 때, 세아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은 커피 값을 내고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세아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누구일까. 왜 나를 도와줬을까. 아무도 세아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아니,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도움은 항상 대가가 있었다. 강리우의 도움. 하늘이의 도움. 그들의 도움은 항상 세아를 더 깊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 남성의 도움은 달랐다. 그것은 대가 없는 도움이었다. 또는 그렇게 느껴졌다.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도현이에게 전화했다.
“누나?”
도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고 있던 목소리. 세아는 자신이 도현이의 수면을 빼앗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도현아. 미안해.”
“뭐가?”
“내가 널 걱정 안 하게 해서. 내가 널 힘들게 해서. 내가 너한테 자살까지 생각하게 해서.”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도현이가 세아에게 자살을 생각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아의 선택이 도현이를 힘들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누나, 지금 어디야? 지금 뭐 하고 있어?”
“편의점에서 일 중.”
“너 지금 어떤 상태야? 정상이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상이 뭐지. 정상은 누구의 기준이지. 세아는 편의점의 형광등을 봤다. 이제 다시 켜져 있었다. 누군가가 수리한 것일까. 아니면 자동으로 다시 켜진 것일까.
“도현아. 난 더 이상 강리우를 만나지 않을 거야.”
“정말?”
“응. 그리고 난 JYA 계약을 취소할 거야.”
“누나, 그럼 돈이…”
“알아. 그래도 괜찮아.”
세아가 말했다. 그것도 거짓이었다.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이어야 했다. 거짓이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누나. 넌 정말 이상해. 며칠 전에는 그 사람 좋아한다고 그랬고, 이제는 헤어진다고 그래. 이게 뭐야?”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도현이의 목소리에서 분노를 감지했다. 또는 절망을 감지했다. 어쨌든, 그것은 세아를 더 무너뜨렸다.
“도현아. 나 좀 놔줄 수 있어? 나 지금 생각을 정리해야 돼.”
세아가 말했다.
“알겠어. 그런데 누나, 하나만 말해 줄래?”
“뭐?”
“넌 정말로 뭘 원해? 누나가 원하는 게 뭐야? 강리우? 돈? 음악? 뭐가 가장 중요해?”
세아는 그 질문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게 뭐지. 처음으로, 그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봤다. 그동안 세아는 항상 타인을 위해 움직였다. 어머니를 위해. 도현이를 위해. 강리우를 위해. 하늘이를 위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움직인 적이 없었다.
“난 노래하고 싶어.”
세아가 말했다.
“누나의 이름으로?”
“응. 누나의 이름으로.”
그 순간, 세아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작은 깨달음이었지만, 세아의 전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깨달음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불타는 것과 자신을 위해 불타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불타면서 자신도 함께 불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럼 해. 누나 이름으로 노래해.”
도현이가 말했다.
세아는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서 휴대폰을 들었다. 강리우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우리 헤어져. 그리고 JYA 계약은 취소할 거야. 미안해.”
문자를 보낸 후, 세아는 스스로를 바라봤다. 편의점의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 마른 얼굴. 없는 표정. 떨리는 손가락. 그것이 지금 세아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 전부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마치 불꽃처럼. 마치 성냥팔이 소녀의 마지막 성냥처럼.
세아는 계산대 뒤의 선반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라이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펜이었다. 검은 펜. 세아는 그 펜으로 자신의 손등에 무언가를 썼다.
“나 세아”
손가락이 떨렸지만, 글자는 명확했다. 그것이 세아의 시작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반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시작. 하지만 그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세아를 살려낼 유일한 방법이었다.
편의점의 형광등이 다시 윙윙거렸다. 새벽 3시 47분. 매니저 김영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세아는 혼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가 뒤에서 세아를 밀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세아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벽의 바람이 편의점 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 바람에 세아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세아는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음악으로. 하지만 자신을 위한 노래로.
그것이 시작이었다.
# 새벽 3시 47분의 반란
도현이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전해졌을 때, 세아는 편의점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형광등의 차가운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손에는 라면 박스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밤샘 알바의 연속으로 인해 피로가 얼굴에 깊게 패여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어딘가를 향해 열려 있었다.
“알겠어. 그런데 누나, 하나만 말해 줄래?”
세아는 라면 박스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귀에 더 가깝게 들었다. 도현이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형으로서의 책임감이 묻어났다.
“뭐?”
세아의 대답은 짧았다. 피로 속에서도 그는 도현이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넌 정말로 뭘 원해? 누나가 원하는 게 뭐야? 강리우? 돈? 음악? 뭐가 가장 중요해?”
그 질문은 마치 벼락같이 세아의 마음에 내려앉았다. 강리우.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JYA 레이블의 대표, 자신을 무대에 올려주겠다던 그 사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둬두던 그 사람. 도현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세아는 계산대에 기대어 앉았다. 편의점의 형광등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 근무하는 이 24시간 편의점에서, 이제 새벽 3시 47분이었다. 매니저 김영희가 들어오기까지는 아직 4시간 13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혼자 이 공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세아는 지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도현이의 질문이 자신의 뇌를 깨우고 있었다.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게 뭐지.
처음으로, 그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았다.
세아는 지난 몇 년을 되짚어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신은 무엇을 했는가. 어머니를 위해 돈을 벌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빚을 갚고, 동생들을 먹이고, 집을 지켰다.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는 어머니를 위해 노래했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곡들을 불렀고, 어머니의 얼굴에 띄는 미소를 위해 음악했다.
그 다음은 도현이였다. 도현이가 대학에 가기 위해 자신은 더 많은 시간을 일했다. 도현이의 학비를 벌기 위해, 도현이의 미래를 위해. 도현이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불렀고, 도현이를 자랑스러워할 어떤 형이 되려고 했다.
그 다음은 강리우였다. 강리우가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세아는 의심하지 않았다. 강리우를 위해, 강리우의 꿈을 위해, 강리우의 레이블을 위해 자신은 몸을 던졌다. 자신의 목소리를 강리우에게 맡겼고, 자신의 음악을 강리우의 입으로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하늘이. 거리의 고아였던 하늘이를 위해서도 자신은 움직였다. 하늘이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늘이가 따뜻한 곳에서 자를 수 있도록.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움직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세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계산대를 잡고 있던 손가락들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던 것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의 떨림이었다.
“난 노래하고 싶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지만 명확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입에서 나온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문장.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처음 켜지는 촛불 같았다.
“누나의 이름으로?”
도현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마치 자신의 형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그 깨어남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한 조심스러움.
“응. 누나의 이름으로.”
세아의 대답은 자신도 놀랐을 정도로 확실했다. 강리우의 JYA 레이블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어떤 유명한 작곡가와의 협력도 아니고, 그냥 자신의 이름으로. 세아라는 이름으로 노래하고 싶다는 욕망.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너무나 복잡한 것이었다.
그 순간, 세아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작은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세아의 전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깨달음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불타는 것과 자신을 위해 불타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를 위해 불타면서 자신도 함께 불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마치 연소 반응 같은 것이었다. 산소가 제한되어 있다면, 불이 클수록 산소가 빨리 소진된다. 자신을 위해 불타려면, 다른 모든 것을 위한 불을 꺼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럼 해. 누나 이름으로 노래해.”
도현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질문이 없었다. 오직 격려만이 있었다. 형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격려. 자신의 누나가 자신을 위해 살아가도록 허락하는 것.
세아는 통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내려놓는 순간, 그의 손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리우와의 관계, JYA 계약, 그동안 세아가 만들어온 모든 것들.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그는 강리우의 번호를 찾았다. 그 번호는 자신의 휴대폰에 별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자신이 가장 자주 부르는 번호.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번호.
아니, 그랬던 사람의 번호.
세아는 문자를 썼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글자는 명확했다.
“우리 헤어져. 그리고 JYA 계약은 취소할 거야. 미안해.”
문자를 쓰면서, 세아의 눈물이 떨어졌다. 강리우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다. 자신의 나약함을 위해, 자신의 두려움을 위해, 그동안 자신이 외면해온 모든 감정들을 위해.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세아는 스스로를 바라봤다.
편의점의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
마른 얼굴. 너무나 많은 밤을 새운 결과로 광대뼈가 두드러져 있었다. 눈 아래는 검푸른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입술은 창백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이렇게 지쳐 보였던가. 어머니도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갔던가.
없는 표정. 세아의 얼굴에는 감정이 없었다. 마치 마스크를 쓰고 있는 듯한, 혹은 마스크가 얼굴이 된 듯한 무표정. 그것은 오랫동안 남의 감정을 먼저 생각해온 결과였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권리를 잃어버린 결과였다.
떨리는 손가락. 휴대폰을 내려놓았지만, 손가락들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편의점의 에어컨이 빨갛게 불타는 듯한 공포 때문이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강리우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자신의 음악 경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편의점 알바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이 지금 세아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 전부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불꽃처럼. 마치 성냥팔이 소녀의 마지막 성냥처럼. 차가운 밤거리를 비추는 마지막 불빛처럼. 그것은 약한 불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뜨거운 불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을 위한 불이었기 때문이다.
세아는 계산대 뒤의 선반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라이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펜이었다. 검은 펜. 계산서에 사인을 할 때 사용하는, 흔하디흔한 그 펜.
세아는 그 펜으로 자신의 손등에 무언가를 썼다.
글자를 쓰면서 손이 떨렸다. 하지만 글자는 명확했다.
“나 세아”
단 두 글자. 세아라는 이름. 자신의 이름. 그 이름을 자신의 손에 써내는 것.
그것이 세아의 시작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반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시작. 강리우도 알지 못하고, 매니저 김영희도 모르고, 도현이도 보지 못하는 이 작은 글자.
하지만 그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세아를 살려낼 유일한 방법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등을 들어 올렸다. “나 세아”라는 글자가 형광등 아래에서 반짝였다. 그것은 마치 신분증 같았다. 마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신분증.
편의점의 형광등이 다시 윙윙거렸다. 새벽 3시 47분. 매니저 김영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세아는 혼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가 뒤에서 세아를 밀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어머니의 손일까. 아니면 도현이의 격려일까. 아니면 자신 속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자신일까.
그것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세아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벽의 바람이 편의점 문을 통해 들어왔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밤의 공기가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 바람에 세아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세아는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음악으로.
하지만 자신을 위한 노래로.
세아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자신에게만 들리도록 만든 음악처럼. 노래의 가사는 없었다. 단지 음악만 있었다. 자신이 늘 만들어오던 멜로디들, 그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이었던 것들. 강리우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순수하게 음악 자체만을 위해 만들었던 것들.
그 음악이 새벽 3시 47분의 편의점을 채웠다.
형광등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섞여서, 냉장고의 묵직한 진동음과 어우러져서, 세아의 음악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어떤 청취자도 이 음악을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프로듀서도 이 음악을 상품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라디오 방송국도 이 음악을 방송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노래했다.
자신을 위해. 오직 자신을 위해.
그것이 시작이었다.
새벽의 저 어딘가에서, 아마도 하늘이는 자신의 임시 보금자리에서 자고 있을 것이다. 도현이는 자신의 기숙사 침대에서 자고 있을 것이다. 강리우는 자신의 고급 아파트에서 내일 아침에 받을 메시지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깨어 있었다.
그리고 노래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음악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편의점의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밤은 아직 길었다. 새벽 4시까지 아직 13분이 남아 있었다. 그 13분 동안, 세아는 계속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그 13분이 끝나고, 새로운 13분이 시작될 것이다.
세아의 새로운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작은 목소리로. 작은 글자로. 작은 손가락으로.
하지만 가장 큰 변화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