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34화: 고백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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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4화: 고백의 순간들

강리우의 차는 강남역 근처 주차장에 멈춰 있었다. 세아는 핸들을 쥔 손가락들을 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들은 피아노 건반 위에 있어야 할 손가락들이었다. 길고, 마디가 굵고, 어떤 악보도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정확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들은 단지 운전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제 도현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리우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것이 반증이었다. 강리우가 도현이의 전화를 알고 있다는 것. 아니면 최소한 세아가 그 전화를 받았다는 것을. 세아의 폰을 감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넌 그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어.”

강리우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따뜻함 속의 명령은 폭력과 같았다.

“그건 내 동생이야.”

“알아. 나세아, 17살. 고등학교 2학년.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 있고, 엄마한테 버스비 달라고 자주 카톡 한다.”

세아의 몸이 경직되었다. 강리우가 도현이의 생활까지 알고 있다는 것. 이것은 더 이상 보호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것은 감시였다. 이것은 협박이었다.

“그만해.”

“뭐를?”

“도현이를 보는 거.”

강리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는 실망이 있었다. 마치 자신이 너무 당연한 것을 세아가 깨닫지 못해서 실망하는 것처럼.

“너를 지키기 위해서야.”

“난 보호받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하지 마.”

강리우의 목소리에 예리함이 들어왔다. 차의 실내 온도가 내려갔다.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창밖은 낮 1시의 강남 거리였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저 중 누가 자신의 생활을 감시당하고 있을까.

“어제 저녁, 넌 편의점에서 일했어. 새벽 2시부터 10시까지. 그 다음 GS25에서 삼각김밥 두 개를 샀어. 가격 5,200원. 그리고 합정동으로 돌아갔어. 고시원에 들어가기 전에 편의점 옆 편의점에 또 들어갔어. 뭐를 샀는지 알아?”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제 무엇을 샀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기억이 흐릿했다. 최근의 모든 것이 흐릿했다.

“감기약. 기침 감기약. 너 또 아팠어. 감기를 또 옮겠지. 계속 이렇게 살면.”

강리우의 목소리에는 진짜 걱정이 있었다. 그것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었다. 그의 감시가 순수한 악의라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고 불리는 감정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난 너를 지키려고 이러는 거야, 세아. 너를 지키기 위해서.”

“지키는 게 아니라 가두는 거잖아.”

“같은 말이야. 이 산업에서는.”

강리우는 핸들에서 손을 뗐다.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놨다. 항복의 제스처. 하지만 항복 역시 전술이었다.

“내가 너한테 솔직해졌으면 좋겠어.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

“JYA 대표.”

“그래. 그리고 아버지는 너를 매우 관심 있게 보고 있어. 너의 음악을. 너의 잠재력을.”

세아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강민준의 눈빛. 계약서. 저작권 이전. 모든 것이 그녀를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리우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 것은 다른 차원의 공포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절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놓지 않아. 절대로. 내가 지금까지 회피해온 이유가 그거야.”

“회피?”

강리우가 창밖을 바라봤다. 강남역 일대의 빌딩들. 모두 자본으로 지어진 건물들. 자본으로 지어지고, 자본으로 유지되고, 자본으로 파괴될 건물들.

“베를린에서.”

강리우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더 낮아졌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피아노를 그만두게 된 이유. 너한테 말했어?”

“아니.”

“아버지가 원했어. 내가 세계 무대로 나가는 것을. 유명해지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JYA의 이미지에 도움이 될 거라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잖아. 돈이 되는 사람들.”

강리우는 손을 다시 핸들에 올렸다. 하지만 시동을 걸지는 않았다.

“베를린 콩쿠르에 나갔어. 아버지가 주선한 거야. 국제 대회. 상금도 크고, 상 받으면 유럽 투어 제안이 들어온다. 완벽했어. 완벽한 계획이었어.”

“그럼 넌 상을 받았어?”

“3위.”

강리우의 목소리가 끊겼다. 3위. 그것은 성공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꿈과 같은 성공이었다. 하지만 강민준에게는 실패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1위만을 원했어. 투자했으니까. 내 교육에 얼마를 썼는지 알지? 어릴 때부터 최고의 선생님들. 최고의 악기. 최고의 모든 것. 그리고 3위.”

세아는 말하지 않았다. 강리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다시 생각했다. 자신도 비슷했다. 강민준이 원하는 것. 강리우가 보호하려는 것. 모두 누군가의 계획 속에 있었다.

“그 다음은 뭐였냐면… 손이 굳었어. 콩쿠르 다음날부터. 손을 악기 위에 올릴 수가 없었어. 의학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신경과 의사들이 다 봤거든. 근데 손이 안 움직였어. 피아노 앞에만 가면.”

강리우는 양손을 들어 올렸다. 세아에게 보여줬다. 손가락들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도 그래. 네 앞에서는 괜찮은데, 피아노 앞에서는.”

세아는 그 손가락들을 봤다. 길고 우아한 손가락들. 음악을 위해 태어난 손가락들. 그리고 지금 그 손가락들은 자동차를 운전하고, 자신을 감시하고, 누군가를 제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돌아왔어. 서울로. 아버지한테 피아노를 그만둘 거라고 했어. 물론 아버지는 반대했어. 엄청 반대했어. 근데 내가 결정했어. 내 손이 내 것이 되는 대신에, 내가 아버지의 손이 되기로.”

“그건 거래가 아니라 항복이야.”

“알아.”

강리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후회가 없었다. 단지 현실만 있었다.

“근데 넌 다를 수 있어. 넌 아직 24살이야. 내가 23살일 때 내 선택을 했어. 넌 지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어. 만약에 내가 너를 도와주면.”

“대신에 뭘 원하는데?”

세아의 질문이 직설적이었다. 강리우는 웃음이 나왔다. 진심의 웃음. 처음 들었다. 그의 웃음 소리는 피아노 소리처럼 맑았다.

“넌 똑똑하네. 정말로.”

“대신에?”

“대신에 넌 내 것이 돼야 해. 완전히.”

세아는 창밖을 봤다. 강남역 주변의 사람들. 모두 누군가의 계획 속에 살고 있었다. 부모의, 회사의, 사회의, 돈의. 자유라고 불리는 것도 결국 선택의 환상일 뿐이었다.

“넌 지금 뭐라고 생각하고 있어?”

“배신할 생각을 하고 있어.”

세아가 대답했다.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리우를 배신하고 싶었다. 지금 이 차에서 내려서, 다시는 만나지 않고, 모든 것을 리셋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도 괜찮아. 넌 배신해도 돼. 그래도 내가 너를 지킬 거니까.”

“그건 보호가 아니라 강박이야.”

“이 세상에서는 같은 말이야, 세아. 이 음악 산업에서는 더더욱. 넌 이제 깨달아야 해. 누군가는 항상 너를 원할 거야. 그리고 그 누군가가 너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라면, 그건 운이 좋은 거야. 아주 운이 좋은 거야.”

강리우는 다시 핸들을 움직였다. 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강남의 거리를 헤쳐 나갔다. 세아는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화면에는 “하늘”이 떴다. 다섯 번째 전화였다. 세아는 받지 않았다.

“하늘이가 자꾸 전화해.”

“응.”

“만나고 싶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만나고 싶었다. 진짜로. 하지만 만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하늘이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 자신의 선택이 하늘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모든 관계가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

“만나는 게 낫겠다. 그 친구가 자꾸 찾으면 의심만 받을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도 일종의 전략이었다. 만나되, 강리우의 시야 안에서 만나라는 뜻이었다.

“언제?”

“내일. 저녁 7시. 홍대 카페.”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자신이 이미 강리우의 손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도현이를 감시한다는 것도, 하늘이를 보지 말라는 것도, 모두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했다.

왜냐하면 감시와 사랑은 구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는 계속 나아갔다. 강남의 빌딩들이 옆을 스쳐갔다. 각각의 빌딩 안에는 누군가의 야망이 있었다. 누군가의 계획이 있었다. 누군가의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

세아는 창밖의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봤다. 얼굴이 없었다. 단지 배경이 반사된 검은 윤곽만 있었다. 마치 자신이 없는 것처럼.

“너는 지금 뭘 생각해?”

강리우가 다시 물었다.

“내가 누군지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모르겠어. 이제 난 누구일까.”

강리우는 웃지 않았다. 그냥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사랑과 절망의 중간 어디쯤에 있었다.

편의점에서의 세 시간. 그것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세아는 오후 4시에 편의점에 들어갔고, 오후 7시에 나왔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 손님 열 명. 계산 거래 스물 번. 한 명의 손님이 담배를 못 찾아 물어본 일. 한 명의 손님이 환불을 요청한 일. 매니저 김영희가 새 종이 봉투를 가져온 일. 이 모든 것들이 세아의 기억 속에는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오후 7시. 홍대 카페. 강리우가 지정한 장소.

세아는 카페 문을 열었다. 알람음. 사람들의 시선. 그 중에서 가장 선명한 것은 하늘이의 얼굴이었다.

하늘이는 이미 앉아 있었다. 테이블 한 개 안쪽에. 그리고 그 옆에는… 세아가 예상했던 대로 강리우가 앉아 있었다.

세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긴 너를 위해 준비된 자리야.”

강리우가 손으로 가리켰다. 하늘이와 강리우 사이의 의자. 정확히 중간에.

세아는 그 자리로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마치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것처럼. 그리고 앉았다.

“야, 넌 뭐야? 진짜.”

하늘이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에는 분노가 있었다. 정말로 화난 목소리.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와. 말을 해. 나한테는 왜 연락 없고 그 사람한테만 전전긍긍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말할 수 있었을까.

“소개하자. 이분이 나의 친구 하늘이. 타투이스트. 좋은 친구야. 세아를 많이 걱정하는.”

강리우가 개입했다. 그의 말투는 마치 두 사람을 처음 만나게 해주는 주인인 것처럼 친절했다.

“그리고 너는?”

하늘이가 강리우를 노려봤다.

“나는 세아를 지키려는 사람이야.”

“지킨다고? 이 아이 봐. 손가락. 얼굴. 눈. 다 망가졌어. 어떻게 지키는 거야?”

하늘이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진짜 따뜻했다. 강리우의 손처럼 목적이 있는 따뜻함이 아니라, 단순히 누군가를 걱정하는 따뜻함.

“이건 과정이야.”

강리우가 대답했다.

“과정? 너 뭐 하는 사람인데?”

“그냥 누군가를 지키는 사람.”

강리우는 커피를 마셨다. 아메리카노. 설탕 없이.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시간에 전화를 거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몰랐다.

“세아, 넌 왜 아무 말도 안 해?”

하늘이가 세아를 흔들었다.

“뭐라고?”

세아의 목소리는 작았다. 새처럼 작았다.

“왜 이 따위로 살고 있어? 편의점에서 밤샜어? 손가락은 왜 이래? 그리고 이 사람은 누구야?”

하늘이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세아는 그 질문들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답변 자체가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신 말해주자.”

강리우가 개입했다.

“세아는 지금 어떤 선택의 기로에 있어. 두 개의 길. 하나는 당신 같은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길. 또 하나는 자신의 음악을 진짜로 펼쳐보는 길. 내가 도와주는 길.”

“음악이라고? 이 아이가 이 정도로 망가져서?”

“그래서 내가 지키는 거야. 망가지기 전에. 아니, 망가지는 동안.”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 눈빛은 따뜻했다. 정말로 따뜻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했다.

세아는 하늘이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해. 진짜로.”

“뭐가 미안한데?”

“모든 거.”

카페의 음악이 바뀌었다. 누군가의 음악. 세아는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서, 자신의 음악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음악은 누구를 위해 울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음악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미 강민준의 것이었다. 계약서에 서명한 순간부터.

하늘이는 여전히 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측은함으로. 친구를 잃어가는 두려움으로. 그리고 세아는 그 시선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강리우는 커피를 다시 마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있었다. 마치 문지방처럼. 세아와 하늘이 사이에. 그리고 세아와 자신의 과거 사이에.

“계약서를 다시 읽어봤어?”

강리우가 갑자기 물었다. 질문이 아니라 선언에 가까웠다.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계약서를 다시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었다.

“3페이지, 7항. 다시 읽어봐.”

강리우는 세아의 손에 접힌 종이를 밀었다. 언제 꺼냈는지 모를 종이. 그것은 계약서였다.

세아는 그 종이를 펼쳤다.

“저작권은 JYA Entertainment에 귀속되며, 아티스트는 회사의 승인 없이 음악을 창작, 배포, 판매할 수 없다. 위반 시 계약금의 500배를 배상해야 한다.”

강리우가 읽었다. 세아 대신에.

“500배. 250만 원의 500배. 1억 2천 5백만 원. 너는 지금 1억 2천 5백만 원의 빚을 지고 있어. 만약에 넌 자신의 곡을 쓴다면.”

“뭐…”

“그래서 넌 이제 자신의 음악을 쓸 수 없어. 절대로. 내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강리우의 목소리는 정적했다. 감정이 없었다. 단지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었다.

하늘이가 벌떡 일어섰다.

“이게 뭐야? 이게… 이게 계약서야? 이건 범죄 아니야?”

“합법이야. 한국 법에서는.”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이야. 아버지는 너한테 곡을 쓰라고 할 거야. 내 곡들. 내 이름으로. 너는 그것을 할 거고, 아무도 알지 못할 거야. 넌 그림자야. 좋은 그림자. 하지만 그림자야.”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이것이 안데르센의 동화가 아니라는 것. 이것은 더 현실적인 지옥이었다. 인어공주는 최소한 자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세아는 거짓 약속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팔았다.

“넌 왜 이럴 수 있어?”

세아가 강리우에게 물었다.

“왜냐면 내가 이미 그것을 했기 때문이야. 내 손. 내 음악. 내 삶. 모두 아버지한테 팔았어. 그리고 너를 같은 길로 이끌려고 했어. 왜냐면…”

강리우의 목소리가 끊겼다.

“왜냐면?”

“왜냐면 혼자가 아닐 때 견디기가 더 쉬우니까.”

강리우는 다시 커피를 마셨다. 이번에는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그 떨리는 손을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강리우도 희생자라는 것. 그리고 지금 그는 세아를 자신과 같은 희생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

하늘이는 세아의 손을 다시 잡았다.

“우리 여기서 나가자. 지금.”

“가도 돼.”

강리우가 말했다.

“근데 그럼 도현이가 어떻게 될지 모를 거야. 우리가 뭘 하는지 모를 거고. 그럼 너희가 뭐 할지 알고 있을 거고…”

강리우의 말은 끝나지 않았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세아는 하늘이의 손을 놓았다.

“미안해. 진짜로.”

“야…”

하늘이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세아는 강리우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카페의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음악. 세아의 음악이 아닌, 누군가의 음악. 그리고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세아는 지금 깨닫고 있었다.

강리우는 일어섰다. 세아도 따라 일어섰다. 마치 조종된 인형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을 나가면서 세아는 뒤를 돌아봤다. 하늘이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에게? 경찰? 그 경찰이 강민준의 돈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세아는 다시 앞을 봤다. 강리우의 뒷모습. 길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이미 불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불꽃이 누군가를 위해 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을 위해 타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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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의 음악

카페의 천장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이 세아의 귀를 자극했다. 쇼팽의 녹턴이었다. 누군가의 해석으로 다시 태어난 그 곡은 이제 세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자신이 만들었던 편곡, 자신이 수없이 밤새워 완성했던 그 음악이, 지금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이름 아래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세아는 마주 앉은 강리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눈빛 속에는 검은 그림자가 담겨 있었다. 마치 깊은 우물처럼 바닥을 알 수 없는 그 검은 빛 속에는 수년간의 절망과 타협이 층을 이루고 있었다.

“국제 음악법상 저작권 침해는 민사 사건이 돼. 형사 처벌은 어려워.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왜냐하면 아버지의 변호사들은 이미 모든 계약서에 우리의 서명을 받았거든. 법적으로는 완벽하게 깨끗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강리우가 차갑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법정에서 판결을 선고하는 판사처럼 들렸다. 그 말 하나하나는 세아의 가슴에 작은 못처럼 박혔다.

세아는 손가락으로 찬 커피잔의 테두리를 따라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피부에 전해졌다. 그것이 현재의 유일한 현실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흐릿한 이 상황에서, 오직 이 찬 온도만이 세아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이야.”

강리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더욱 낮고, 더욱 깊은 톤으로.

“아버지는 너한테 곡을 쓰라고 할 거야. 내 곡들. 내 이름으로. 너는 그것을 할 거고, 아무도 알지 못할 거야. 넌 그림자야. 좋은 그림자. 하지만 그림자야.”

세아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마치 얼음 조각처럼 단단해져버린 것 같은 그 감각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상황을 명확히 이해했다. 이것은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이것은 확정된 미래였다. 거짓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말로 포장된,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감옥과 다름없는 그런 미래.

인어공주를 떠올렸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 그 여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팔았지만, 최소한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자신의 꿈을 위한, 자신의 사랑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세아는 거짓 약속 속에서, 협박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팔고 있었다.

“넌 왜 이럴 수 있어?”

세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속삭임이었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비명만큼이나 큰 절망을 담고 있었다.

“왜냐면 내가 이미 그것을 했기 때문이야.”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놀랍도록 담담함이 있었다. 마치 자신이 숨겨온 비밀을 누군가에게 겨우 털어놓는 것처럼.

“내 손. 내 음악. 내 삶. 모두 아버지한테 팔았어. 십 년 전부터. 그리고…”

그는 멈췄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카페의 배경음악이 더욱 크게 들렸다.

“…그리고 너를 같은 길로 이끌려고 했어. 처음부터.”

“왜? 왜 그런 짓을 했어?”

세아의 질문에 강리우는 커피잔을 들었다. 그의 손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주 작은 떨림이었지만, 세아의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떨림 속에는 수년간 억눌러온 감정들이 들어있었다.

“왜냐면 혼자가 아닐 때 견디기가 더 쉬우니까.”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강리우는 눈을 감았다. 아주 짧게,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속에는 깊은 상처와 죄책감이 녹아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혼자 남겨지는 것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세아는 강리우의 손을 바라봤다. 그 길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들. 음악가의 손이었다.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태어난 그런 손. 하지만 그 손은 이제 누군가를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것은, 강리우 자신도 그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아는 깨달았다. 강리우도 희생자라는 것을. 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때, 그것은 더욱 복잡한 비극이 된다는 것도.

그 순간, 하늘이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약간 축축했다. 두려움으로 인한 냉땀이었다. 세아는 그 따뜻함을 놓지 않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향한 진정한 감정이 담긴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여기서 나가자. 지금. 당장.”

하늘이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거의 울음에 가까운 그 목소리 속에는 세아에 대한 사랑과 두려움이 함께 섞여있었다.

“가도 돼.”

강리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다음 문장이 나오면서 상황은 일변했다.

“근데 그럼 도현이가 어떻게 될지 모를 거야. 우리가 뭘 하는지 모를 거고. 그럼 너희가 뭐 할지 알고 있을 거고…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

강리우의 말은 끝나지 않았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그것은 위협이었다. 아름답게 포장된 위협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칼처럼 날카로운 위협이었다. 도현이, 세아의 아버지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암시. 하늘이가 반항하면 어떤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암시.

세아의 손이 하늘이의 손에서 떠났다. 그것은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선택이었다. 아버지를 지키기 위한, 최악의 선택.

“미안해. 진짜로.”

세아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강리우가 원하는 것이었다. 세아의 개성 있는 목소리가 서서히 사라지고,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는 도구로 변해가는 것.

“야… 세아!”

하늘이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 비명은 고통이었고, 분노였고, 절망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카페의 배경음악을 뚫고 들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세아는 강리우 옆에 앉아 있었다. 마치 인형처럼, 거의 자동으로. 그리고 그 순간부터, 세아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무엇이 될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카페의 음악은 계속 흘러나왔다. 그것은 누군가의 음악이었다.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누군가의 영혼이었다. 하지만 세아의 음악은 아니었다. 세아의 손으로 만들어진 곡이지만, 세아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그런 음악. 그리고 이제부터 세아는 평생 그런 음악만 만들게 될 것이다.

강리우는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부드러웠지만 강압적이었다. 마치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는 것처럼. 그리고 세아도 따라 일어섰다. 마치 같은 현에 묶여있는 또 다른 악기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이 카페를 나가면서 세아는 뒤를 돌아봤다. 하늘이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는 것 같았다. 아마 경찰일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강민준의 손길이 얼마나 길고 깊은지를. 그 돈이 얼마나 많은 것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세아는 다시 앞을 봤다. 강리우의 뒷모습. 그의 어깨는 약간 굽어있었고, 그의 걸음걸이는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가 그 위에 올려놓은 짐을 짊어진 사람처럼. 하지만 그는 계속 걸어갔다. 왜냐하면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멈추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아는 길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들을 바라봤다. 그 손가락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피아노 건반 위에서 누군가의 곡을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곡을 만들기 위해 악보에 음표를 그려놓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음표들은 그의 이름 아래에 놓일 것이다. 그리고 세아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비로소.

자신이 불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불꽃은 자신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불꽃은 다른 누군가를 밝히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오를 것이라는 것을.

인어공주는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포기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세아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그림자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카페를 나간 순간부터 느껴진 그 차가움은 세아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이 서서히 녹아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리우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세아는 그를 따라갔다. 어떤 의문도 없이, 어떤 저항도 없이.

그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밤거리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먼 곳에서는 누군가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세아의 음악일까? 아니면 강리우의 음악일까? 아니면 강민준의 음악일까?

더 이상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그 모든 음악이 같은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음악이 되어버린, 이름 없는 음악이 되어버린 그런 음악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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