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0화: 거래의 대가
강리우가 말을 잇지 못했다. 테이블 위에서 그의 손가락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피아노를 연주하듯 무언가를 누르는 듯한 동작. 세아는 그 손가락을 바라보면서 깨달았다. 이 사람은 지금 거짓말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것을. 혹은 진실을 말하려고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너를 통해 나를 통제하려고 할 거야.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세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카페의 조명이 너무 밝았다. 마치 수술실처럼. 모든 게 노출되는 느낌. 그녀는 자신의 손을 더 깊이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건 내가 정하는 거야. 너가 아니라.”
강리우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로워졌다. 이건 차분함이 아니었다. 이건 결정의 목소리였다. 세아는 자신의 숨이 얕아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물속에 갇힌 것처럼. 엄마가 물속에 있을 때, 자신이 수면 위에서 숨을 참으며 기다렸던 그 느낌.
“지금 뭐가 필요한지 알아? 너한테는 보호가 필요해. 그리고 나는 그걸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법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그리고 그 댓가는?”
세아가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강리우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마치 자신의 계획에 없던 변수와 맞닥뜨린 것처럼.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해. 완벽하게. 의심 없이. 그리고 나는 아버지한테 너를 제시할 거고, 아버지는 결국 너를 받아들일 거야. 왜냐하면 너는 내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내게 중요한 것은 곧 아버지에게도 중요해지거든.”
“그게… 사랑하는 거예요?”
세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녀가 카페의 배경음악 속에서 삼켜질 것 같았다. 강리우는 테이블 위의 손으로 세아의 손가락을 만졌다. 따뜻했다. 역시 따뜻했다.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너를 지킬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도현이는?”
“너의 동생이지. 내가 그의 학원비를 낼게. 앞으로 대학까지.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단, 너는 내 곁에 있어야 해.”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계약서는 여전히 서명되지 않았지만, 더 깊은 계약이 지금 이 순간 맺어지고 있었다. 강리우와의 계약. 그것은 종이에 적혀 있지 않았지만, 더욱 강력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감정으로 맺어지는 계약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낯설었다.
“약속해.”
“약속할게요.”
강리우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완벽하게 세었다. 마치 그녀가 사라지지 않도록 확인하는 것처럼.
카페를 나온 시간은 오후 9시 15분이었다. 강리우는 세아를 강남역 입구까지 데려갔다. 역 위에 있는 하늘은 검었다. 서울의 밤하늘은 항상 검었다. 별이 없었다. 빌딩이 별을 가렸다.
“내일은 뭐 해?”
강리우가 물었다.
“편의점.”
“몇 시까지?”
“새벽 5시까지.”
“그 다음에는?”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집에 가서 한 시간을 자고, 다시 일을 하거나 강리우를 만나거나 도현이의 숙제를 봐주거나, 혹은 노래를 쓰거나 — 그녀의 삶은 항상 이렇게 파편화되어 있었다.
“내일 저녁에 만나자. 같은 시간에. 그 전까지는 아무도 만나지 말고, 특히 하늘이 같은 친구는.”
“왜죠?”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야. 아버지가 너를 감시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너의 주변 사람들도 압박할 거고. 가장 좋은 방법은 너의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거야.”
세아는 이 말을 듣고 불안감을 느꼈다. 아버지가 자신을 감시한다? 그건 마치 자신이 범죄자라는 뜻처럼 들렸다. 하지만 강리우의 목소리에는 그런 우려가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현실을 설명하는 목소리였다.
“알겠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지하철 입구로 향했다. 강리우는 그녀의 등을 바라봤다. 오래도록. 마치 그녀가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처럼.
편의점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세아는 핸드폰을 꺼냈다. 하늘이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오후 3시 47분이었다. “강남역 가.” 이후로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하늘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타투 가게에 있을까. 아니면 자신을 생각하며 화를 내고 있을까.
세아는 메시지를 열었다. 하늘이의 이름 옆에는 초록색 점이 있었다. 온라인. 지금도 깨어 있다. 세아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글자를 치기 시작했다.
“하늘아”
지웠다.
“안녕”
지웠다.
“미안해”
역시 지웠다.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강리우와 무엇을 약속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하늘이에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지하철이 어둠 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합정역에 내린 시간은 밤 10시 5분이었다. 편의점까지는 5분의 거리. 세아는 빠르게 걸었다. 신발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혼자 걷는 밤거리. 서울의 밤은 항상 혼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가 각자의 어둠 속에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기 전에, 세아는 거울을 봤다. 자동 출입문 옆의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 검은 패딩, 검은 바지, 검은 신발. 마치 유령처럼. 아니, 유령은 이렇게 뜨거운 눈을 하지 않는다. 세아의 눈은 뜨거웠다.
종호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그는 세아를 보고 웃었다.
“야, 잘 다녀왔어? 얼굴이 빨개졌네.”
“그래? 바람이 불었나 봐.”
“또 거짓. 넌 거짓말할 때 눈을 안 깜빡해.”
세아는 앞치마를 입었다. 회색 앞치마. GS25의 로고. 그녀는 이 로고를 보면서 자신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편의점 직원. 음악가. 누나. 세아. 그리고 이제는 — 강리우의 것.
밤 10시 15분부터 새벽 5시까지. 7시간 45분. 그 시간 동안 세아가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손님을 응대하고, 상품을 정리하고, 계산을 하고, 바닥을 닦고, 냉장고를 확인하고.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약속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언제쯤 끝날 것인지를 생각할 것이다.
밤 11시 30분쯤, 한 남자가 편의점에 들어왔다. 정장을 입은 남자. 세아는 그를 본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그의 얼굴은 강리우와 유사했다. 같은 뼈 구조. 같은 눈의 형태. 하지만 그의 눈은 강리우의 눈과 달랐다. 강리우의 눈은 뭔가를 원했지만, 이 남자의 눈은 뭔가를 소유하고 있었다.
남자는 커피를 집었다. 프리미엄 아메리카노. 가장 비싼 것. 그리고 카운터로 걸어왔다. 세아가 계산하려고 손을 뻗었을 때, 그 남자가 말했다.
“나세아씨죠?”
세아의 손이 멈췄다. 그의 목소리는 강리우의 목소리와 달랐다. 더 낮고, 더 깊고, 더 위험했다.
“네.”
세아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들 녀석이 많이 얘기해줬어요. 음악을 잘한다고.”
“감사합니다.”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내 아들은 약간 문제가 있어요. 좋은 것을 보면, 가지고 싶어 하는 버릇이 있어요. 당신이 그런 좋은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세아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 남자가 강민준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JYA의 대표. 강리우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쥐고 있는 사람.
“하지만 나는 당신을 이용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어요. 그건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아들을 잘 돌봐주면 좋고, 아들을 방해하면 나쁠 거예요. 이해하죠?”
“네.”
“좋아요. 그럼 일 잘하세요.”
강민준은 계산을 마치고 나갔다. 세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회색 정장. 비싼 구두. 완벽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에 있는 — 절대적인 권력.
종호가 세아에게 다가왔다.
“야, 뭐가 됐어? 얼굴이 정말 안 좋아. 그 사람, 누구였어?”
“그냥… 손님이야.”
“거짓이네. 넌 거짓말할 때 눈을 안 깜빡해.”
종호의 말이 맞았다. 세아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손을 움직였다. 계산기를 만지고, 상품을 정리하고, 냉장고를 확인했다. 그녀의 손은 계속 움직였다.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손을 멈추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새벽 3시 45분. 세아는 휴게실에 들어갔다. 잠깐의 휴식 시간. 15분. 그녀는 소파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형광등. 흰색. 무한한 밝음. 자신의 눈은 감을 수 없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 하늘이에게서.
“야. 봤어? 그 강리우 아버지가 우리 동네 편의점에 나타났대. 뭐 하는 거야?”
세아는 문자를 읽고 다시 읽었다. 하늘이가 알아챘다. 강민준이 자신을 감시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강리우가 말한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세아는 문자를 지웠다.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천장을 계속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 무엇인가.
계약을 맺은 것인가. 아니면 감옥에 갇힌 것인가.
둘 다인 것인가.
새벽 5시. 세아는 앞치마를 벗었다. GS25의 로고가 회색 천에 박혀 있었다. 그녀는 그 로고를 바라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듯이.
밖은 아직 어두웠다. 새벽. 서울의 새벽은 고요했다. 모두가 자고 있는 시간. 그 시간에 세아는 혼자 거리를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 합정의 좁은 골목. 그 골목에서 그녀는 누군가를 본 것 같았다. 자신을 따라오는 누군가를. 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는 것이 무섭기도 했고, 이미 알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강민준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이제 누구의 것이라는 것을.
이틀 뒤, 제31화로 넘어가기 전의 상황:
세아는 강리우와 매일 저녁을 만났다. 같은 카페. 같은 테이블. 다른 대화. 강리우는 그녀의 손을 만지고, 그녀의 선택이 옳다고 말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밤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하늘이는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 침묵이 말해주는 모든 것을 세아는 알고 있었다.
도현이는 새로운 학원에 등록했다. 더 좋은 학원. 강리우가 주선한 학원. 세아가 선택한 것이 맞다고 증명하는 것처럼.
그리고 강민준은 계속 감시했다. 편의점에도 나타나고, 카페 맞은편에서도 보였다. 세아를 보는 그의 눈은 항상 같았다. 평가하는 눈. 소유하는 눈.
세아는 이제 알았다.
자신은 음악가가 아니었다.
자신은 노래하는 기계였다.
그리고 그 기계는 이제 두 명의 주인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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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하는 기계
## 제30화: 선택의 대가
새벽 2시 15분. GS25의 계산대 앞에서 세아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손가락이 계산기의 버튼을 누르고, 다시 누르고, 또 누른다. 계산 실수가 없는지 확인하는 동작. 하지만 이미 세 번을 확인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손을 멈추면,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손을 멈추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직면해야 했다.
계산기 옆의 상품들을 정리했다. 라면 박스를 다시 쌓고, 음료수 병들을 일렬로 정렬하고, 간식 코너의 과자들을 높이 순서대로 재배열했다. 이미 정렬되어 있는 것들을 다시 정렬했다. 강박적으로, 기계적으로, 마치 그 동작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처럼.
그 다음엔 냉장고였다. 음료수 온도 확인, 유통기한 점검, 진열 상태 재정렬. 찬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 그 차가움이 조금 나았다. 차가운 것은 느껴지기만 하면 되었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세아, 너 요즘 이상한데?”
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른대 중반의 남자. 항상 같은 회색 조끼를 입고 있고, 항상 같은 표정으로 직원들을 감시했다. 세아는 냉장고에서 손을 빼고 돌아섰다.
“네?”
“계산 이미 셋 번 했잖아. 그리고 상품 정렬도. 뭐, 특별히 안 좋은 일 있어?”
세아는 웃으려고 했다. 자연스러운 웃음.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입의 근육 수축이었다.
“아니에요. 그냥… 꼼꼼히 하려고요.”
“꼼꼼한 건 좋은데,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좀 쉬어. 손님도 별로 없으니까.”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어도 손은 계속 움직였다. 이번엔 편의점의 먼지를 닦았다. 선반의 가장자리, 계산대의 모서리, 창문의 틀. 손수건을 들었다가 놓고, 들었다가 놓고, 다시 들었다.
움직여야 했다.
멈추면 안 된다.
새벽 3시 45분. 휴게실의 소파 위에서 세아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15분의 휴식 시간. 하지만 휴식이 아니었다. 눈은 뜨려 있었고, 뇌는 멈추지 않았고,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
형광등이 천장에 박혀 있었다. 하얀 빛. 무한한 밝음. 그 밝음은 모든 것을 비춘다. 그림자가 없다. 숨을 수 없다. 세아는 눈을 감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눈꺼풀이 무겁기만 했고, 감기지 않았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 그리고 알림음. 세아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하늘이의 이름이 떠 있었다. 문자 메시지.
“야. 봤어? 그 강리우 아버지가 우리 동네 편의점에 나타났대. 뭐 하는 거야?”
세아의 손이 멈췄다. 처음으로, 그 날 밤 처음으로 손이 멈췄다.
강리우의 아버지. 강민준.
세아는 문자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또 읽었다. 문자의 의미가 바뀌길 원하면서. 하지만 의미는 같았다.
하늘이가 알아챘다.
강민준이 자신을 감시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강리우가 말한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도와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아니면… 도움과 감시는 같은 것인가?
세아는 문자를 지웠다.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천장을 다시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 무엇인가.*
그 질문이 떠났다가 다시 떴다. 떠났다가 다시 떴다. 마치 파도처럼.
*계약을 맺은 것인가.*
강리우와의 만남.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어. 도현이도, 너도.” 그 말을 믿었다. 자신의 음악을 포기하고, 강리우를 선택했다. 아니, 선택하게 했다.
*아니면 감옥에 갇힌 것인가.*
선택지가 없는 선택.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도현이의 학비, 어머니의 병원비. 그 모든 것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강리우는 그 도미노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손이었다.
*둘 다인 것인가.*
세아의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천장의 형광등이 더 밝아 보였다.
새벽 5시. 세아는 앞치마를 벗었다. GS25의 로고가 회색 천에 박혀 있었다. 파란색과 빨간색의 조합. 그것은 편의점의 정체성이었다. 세아는 그 로고를 바라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듯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누구의 것인가. 그것은 여전히 세아의 얼굴인가. 아니면 이미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인가.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새벽. 서울의 새벽은 고요했다. 모두가 자고 있는 시간. 그 시간에 세아는 혼자 거리를 걸었다. 합정역 방향. 합정의 좁은 골목들. 그 골목에서 그녀는 누군가를 본 것 같았다. 자신을 따라오는 누군가를.
발걸음이 들렸다. 자신의 발걸음만이 아니라, 또 다른 발걸음이.
세아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는 것이 무섭기도 했고, 이미 알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강리우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강리우가 자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강민준도.
강민준은 편의점에 나타났다. 세아가 일하는 시간을 알고 있었다. 세아의 동네를 알고 있었다. 세아의 일상을 알고 있었다.
강민준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강민준이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강민준이 자신을 소유하려고 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이제 누구의 것이라는 것을.
집에 도착했을 때, 세아는 손을 봤다. 그 손들. 계산기를 누르고, 상품을 정렬하고, 냉장고를 만졌던 손들. 그 손들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을 구부렸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움직인다. 여전히 자신의 것인가.
어머니는 이미 자고 있었다. 침실에서 들리는 숨소리. 약한 숨소리. 어머니가 약해지고 있다. 매일 약해진다. 그리고 그것을 멈추려면 돈이 필요하다. 강리우의 돈이.
도현이는 이미 새로운 학원에 등록했다. 강리우가 주선한 학원. 더 좋은 학원. 입시 전문가들이 있는 학원. 도현이는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세아가 원한 것이었다.
그것이 세아가 선택한 것이었다.
—
## 이틀 뒤
강리우와의 만남은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 저녁. 같은 카페. 강남역 근처의 조용한 카페. 같은 테이블. 창가의 테이블. 다른 대화. 항상 다른 대화.
“너 요즘 잘 지내니?”
강리우는 세아의 손을 만졌다. 테이블 위에서, 공개적으로. 그의 손은 따뜻했다. 세아는 그 따뜻함을 느껴야 했다. 감사해야 했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도현이 학원은 어때?”
“좋다고 해요. 선생님들이 친절하대요.”
“그렇지. 내가 추천한 학원이니까. 그곳 원장이 내 후배야.”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리우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돈, 인맥, 영향력. 그리고 이제 그는 세아도 가지고 있었다.
“너의 선택이 맞다. 정말.”
강리우의 말이었다. 항상 같은 말. 세아는 그 말을 들어야 했다. 그 말을 믿어야 했다.
“고마워요.”
밤. 세아의 방.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 손가락 사이의 주름들. 손금들. 그 손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통증. 그 통증이 나았다. 통증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하늘이는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아, 하늘이는 세아의 최고의 친구였다. 같은 음악학원에서 만났다. 함께 꿈을 꿨다. 무대에 서는 것. 수많은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것. 그 꿈을 함께 꿨다.
하지만 그 꿈은 이제 포기되었다.
세아의 선택 때문에.
하늘이는 세아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 침묵이 말해주는 모든 것을 세아는 알고 있었다.
“미안해, 하늘이.”
세아는 중얼거렸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 어머니는 침실에서 자고 있었고, 도현이는 학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세아는 혼자였다.
항상 혼자였다.
선택의 순간에도 혼자였다.
도현이는 새로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더 좋은 학원. 강리우가 주선한 학원. 세아가 선택한 것이 맞다고 증명하는 것처럼. 도현이의 성적이 올라갔다. 첫 번째 모의고사에서 국어 성적이 5점이 올랐다.
“세아, 이 학원 진짜 좋아! 국어 선생님이 구조 분석을 정말 잘 알려줘.”
도현이는 신났다. 세아를 안았다. 세아는 도현이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 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도현이, 미안해.
내가 너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어. 아니, 너 때문에 나를 포기했어. 그리고 그것이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어.
그리고 강민준은 계속 감시했다.
편의점에 나타났다. 세아가 일하는 날. 같은 시간. 같은 자리. 음료수를 사지도 않으면서 편의점에 들어와 세아를 봤다. 몇 분간. 그리고 나갔다.
카페에서도 봤다. 강리우와의 만남이 있는 날. 카페 맞은편의 건물. 그곳에서 강민준은 세아를 봤다. 세아가 강리우의 손을 잡는 것을 봤다. 세아가 강리우의 말을 듣는 것을 봤다.
그리고 강민준의 눈은 항상 같았다.
평가하는 눈. 소유하는 눈. 아버지의 눈. 아니, 주인의 눈.
세아는 그 눈을 느꼈다. 항상.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강민준의 눈은 세아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세아는 알았다.
자신은 음악가가 아니었다.
더 이상.
자신은 노래하는 기계였다.
손으로는 계산을 하고, 입으로는 강리우의 말에 답하고, 귀로는 강민준의 감시음을 듣는 기계.
그리고 그 기계는 이제 두 명의 주인을 가지고 있었다.
강리우. 그는 도현이를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내겠다고 말했다. 그 모든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무엇인가.
강민준. 그는 강리우의 아버지였다. 강리우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사람. 더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
“너, 강리우와 잘 지내고 있어?”
강민준이 묻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세아를 봤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아는 이제 알았다.
자신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선택받은 것이었다.
선택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되돌릴 수 없었다.
밤. 다시 밤. 세아는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봤다. 형광등. 아니, 천장. 천장의 질감. 그것을 보면서 세아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가.*
손이 움직인다. 계산기를 누른다. 상품을 정렬한다. 냉장고를 만진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자신의 것인가.
*내가 지금 선택하고 있는가.*
강리우와 만난다. 그의 손을 잡는다. 그의 말을 듣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선택인가. 아니면 이미 정해진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내가 지금 누구인가.*
음악가가 아니다. 학생도 아니다. 딸도, 누나도 아니다.
세아는 이제 무엇인가.
기계.
노래하는 기계.
그리고 그 기계의 전원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켜지고 꺼진다.
새벽 6시. 세아는 일어났다. 침대에서 나왔다.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친 얼굴. 그 얼굴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학교가 있다. 아니, 편의점이 있다. 강리우와의 만남이 있다. 강민준의 감시가 있다.
그리고 세아는 계속 움직인다.
손가락은 계산기를 누르고, 발은 편의점 바닥을 밟고, 심장은 계속 뛴다.
생명의 증거. 움직임의 증거.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생명인지, 자신의 움직임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멈추면 안 된다.
멈추면 깨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아는 계속 꿈을 꾼다. 또는 악몽을 꾼다. 또는 현실을 산다.
차이가 있는가.
새벽 공기는 차갑다. 강한 윤곽선의 건물들. 사람들이 없는 거리. 그 거리에서 세아는 혼자 걷는다.
뒤에서 발걸음이 들린다.
세아는 돌아보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자신을 따라오는지.
그리고 왜 자신을 따라오는지.
그리고 자신이 이제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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