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3화: 계약서 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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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화: 서류 냄새

박인철은 세아보다 먼저 와 있었다.

세아가 카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코트를 벗지 않은 채였다. 테이블 위에 아메리카노 두 잔이 있었다 — 하나는 절반쯤 비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새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자신이 올 것을 알고 미리 시켜뒀다는 것을. 그 행위가 배려인지 압박인지 세아는 판단하지 않았다.

박인철이 세아를 보고 노트북을 닫았다.

“왔어요? 앉아요.”

세아는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를 당겼다. 카페 안이 따뜻했다. 창문 너머로 홍대 골목이 보였다. 오후 네 시의 홍대는 애매한 시간대였다 — 점심도 저녁도 아니고, 낮이 다 가고 밤이 오기 전의 시간.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골목을 떠다녔다.

“커피 맞죠? 따뜻한 걸로 시켰어요.”

“감사해요.”

세아는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이 차가웠다 — 한강에서 난간을 잡고 있었던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 커피 온기가 손바닥에서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번졌다.

박인철은 세아를 잠깐 봤다. 세아가 커피를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제 수고 많았어요. 갑작스럽게 불러서 미안했어요.”

“괜찮아요.”

“JYA 제안은 어떻게 생각했어요? 어젯밤에.”

세아는 잠깐 멈췄다. 박인철이 묻는 방식이 이상했다. 어떻게 생각했어요, 가 아니라 어젯밤에. 시간을 특정했다. 그것은 세아가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전제 뒤에는 — 그러니까 이미 결론이 났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많이 생각했어요.”

“그래요. 많이 생각할 만한 제안이죠.” 박인철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전속 계약은 일단 내려놓고, 오늘은 다른 이야기 하려고 불렀어요.”

세아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듣고 있다는 몸짓이었다.

“어제 회의실에서 나갈 때 강리우 씨 봤죠?”

“봤어요.”

“그 사람이 나세아 씨 곡에 관심을 가졌어요.” 박인철이 천천히 말했다. “어떤 곡이냐고 물었고, 제가 설명했어요. 대표님 제안을 받은 무명 작곡가가 있다고.”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무명 작곡가.

자신을 부르는 말이 그것이었다. 세아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실제로 무명이었다. 이름이 없었다. 크레딧에 없는 이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그 말을 박인철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잠깐 숨이 걸렸다.

“그래서요.”

“강리우 씨가 곡을 직접 듣고 싶다고 했어요.”

세아는 박인철을 봤다.

“어떤 곡을요.”

“나세아 씨가 쓴 곡들이요. 발매된 것들.” 박인철이 잠깐 멈췄다. “근데 문제가 있어요.”

세아는 기다렸다.

“발매된 곡들의 크레딧에 나세아 씨 이름이 없잖아요.”

카페 안에 음악이 흘렀다. 누군가의 재즈 커버였다 — 세아는 원곡이 뭔지 알았지만 지금 그것을 파악할 여유가 없었다. 박인철의 말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치우지 않고 봤다.

“알고 있어요.”

“알죠.” 박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곡들이 나세아 씨 것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요?”

세아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무슨 의미예요.”

“서류상으로요.” 박인철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 작아진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해진 것처럼. “현재 발매된 그 곡들의 저작권은 누구 이름으로 등록돼 있어요?”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인철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나세아 씨가 그 곡들을 쓴 건 맞아요. 저도 알고, 오 대표님도 알아요. 근데 공식적으로는, 지금 이 순간, 그 곡들은 나세아 씨 것이 아니에요.”


세아가 처음 곡을 판 것은 스물두 살이었다.

정확히는 팔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넘겼다. 지인의 지인을 통해 연결된 소규모 기획사에서 곡이 필요하다고 했고, 세아는 세 곡을 보냈다. 기획사 담당자가 그 중 한 곡을 쓰겠다고 했다. 금액을 말했다 — 이십오만 원이었다. 세아는 그것이 적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수락했다.

이십오만 원은 그 달 도현의 교복 구입비였다.

계약서가 있었다. A4 두 장짜리였다. 세아는 그것을 다 읽었다. 이해하지 못한 조항이 있었지만 — 저작권 귀속에 관한 조항이었다 —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면 계약이 깨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물어봤을 때 상대방이 설명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면 약해 보인다는 것을 세아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사인했다.

두 번째 곡은 다른 기획사였다. 세 번째도. 매번 비슷한 계약서였다. 금액이 조금씩 올랐다 — 세 번째는 오십만 원이었다. 세아는 그것이 자신의 가치가 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곡의 가격이 협상 가능하다는 것을 배운 것이었다. 하지만 협상한 적은 없었다. 제시된 금액을 받았다.

세 곡 다 같은 조항이 있었다.

저작권은 계약 시점부터 발주사에 귀속된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사인했다.

그러니까 박인철의 말은 맞았다. 공식적으로, 서류상으로, 그 곡들은 세아의 것이 아니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계약서에 권리를 넘긴 것은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었어요.” 세아가 말했다.

박인철이 잠깐 세아를 봤다.

“알고 사인했어요?”

“읽었어요. 그 조항.”

박인철은 잠시 말이 없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을 봤다가 세아를 봤다.

“나세아 씨.”

“네.”

“왜요.”

질문이 짧았다. 왜요. 세아는 그 질문이 뭘 묻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왜 알면서 사인했냐. 왜 권리를 지키지 않았냐. 왜 그 금액에 넘겼냐. 그 질문들이 왜요 한 글자에 다 들어 있었다.

세아는 커피 잔을 봤다. 잔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 따뜻한 잔 바깥으로 공기 중 수분이 붙은 것. 세아는 그것을 잠깐 봤다.

“필요해서요.”

“돈이요?”

“네.”

박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 끄덕임이 이해라기보다는 확인처럼 보였다. 세아는 그 차이를 느꼈지만 정정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뭐가 문제냐면.” 박인철이 손가락을 테이블 위에 가볍게 올려놓으며 말했다. “강리우 씨가 나세아 씨 곡을 원해요. 근데 그 곡이 공식적으로 나세아 씨 것이 아니에요. 강리우 씨는 작곡가와 직접 계약하는 방식을 원하는데 — 작곡가가 없어요. 서류상으로.”

“…앞으로 쓸 곡들은요.”

“앞으로 쓸 곡들은 나세아 씨 것이 될 수 있죠. 제대로 된 계약을 하면.” 박인철이 말했다. “그게 오늘 제가 하려는 말이에요.”

세아는 박인철을 봤다.

“전속 계약 말고요?”

“전속 계약은 JYA 제안이에요. 저는 다른 걸 제안하려고요.”

박인철이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흰 봉투였다. 두껍지 않았다 — 종이 두세 장 정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세아 쪽으로 밀지는 않았다.

“제가 소속사 대표가 아니에요. 알죠?”

“네. 프리랜서 매니지먼트라고.”

“맞아요. 저는 소속시키는 게 아니라 연결해요. 아티스트와 회사 사이에서.” 박인철이 봉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나세아 씨가 앞으로 쓰는 곡들의 저작권을 나세아 씨 이름으로 등록하고, 제가 그걸 원하는 회사나 아티스트한테 연결하는 방식이요. 전속이 아니에요. 나세아 씨는 자유롭게 곡을 쓰고, 저는 그것을 팔아요. 수익의 삼십 퍼센트가 제 수수료예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계산했다.

삼십 퍼센트.

그것이 많은지 적은지 세아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업계 표준이 얼마인지 몰랐다. 알아야 했는데 알지 못했다. 그 무지함이 지금까지 세아를 이십오만 원짜리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세아는 알고 있었다.

“강리우 씨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요?” 세아가 물었다.

박인철이 잠깐 멈췄다.

“곡이요.”

“구체적으로요.”

박인철이 세아를 봤다. 처음으로 조금 다른 표정이었다 —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는 표정.

“JYA에 신인 아티스트가 있어요. 내년 초에 미니앨범 발매 예정인데, 타이틀곡을 아직 못 찾은 거예요. 강리우 씨가 A&R이니까 그게 강리우 씨 일이고.”

“제 곡을 원한다는 거예요? 아니면 저한테 써달라는 거예요?”

“후자요.” 박인철이 말했다. “근데 공식 의뢰가 아니에요. 아직은. 강리우 씨가 나세아 씨 곡을 먼저 들어보고 싶다는 거예요. 직접.”

세아는 서류 봉투를 내려다봤다.

“그 서류는요.”

“제가 나세아 씨 매니지먼트를 맡는 계약서예요. 사인하기 전에 천천히 읽어요. 변호사한테 보내도 되고.”

세아는 봉투에 손을 얹었다.

변호사. 세아는 변호사를 알지 못했다. 하늘의 손님 중에 법조계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 팔뚝에 타투를 새기는 변호사를 상상하는 것이 잠깐 어려웠다. 아니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세아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강리우 씨를 직접 만나는 건 제 동의가 필요한 일이에요?”

박인철이 잠깐 세아를 봤다.

“아니요. 나세아 씨가 원하면 직접 만날 수 있어요.”

“근데 매니지먼트 계약을 먼저 하기를 원하는 거죠.”

박인철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나세아 씨, 똑똑하네요.”

세아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맞아요.” 박인철이 말했다. “강리우 씨가 직접 접근하기 전에 제가 먼저 연결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제 일이니까. 하지만 나세아 씨가 그걸 원하지 않으면 저를 거치지 않아도 돼요. 강리우 씨가 어제 회의실에 있었고 나세아 씨 이름을 알아요.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올 수도 있어요.”

세아는 봉투를 집었다. 무게가 별로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 이 안에 든 것이 가벼울 리가 없었다.

“읽어볼게요.”

“시간 충분히 가져요.” 박인철이 커피를 다 마셨다. “그리고 나세아 씨.”

세아가 봉투를 가방에 넣다가 멈췄다.

“JYA 전속 계약 — 그것도 아직 열려 있어요. 제가 중간에서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크레딧 보장, 저작권 지분. 대표님이 원하는 건 나세아 씨 이름이 아니라 나세아 씨 곡이에요. 근데 그 둘을 분리하는 게 가능하냐는 건 나세아 씨가 결정해야 해요.”

세아는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알겠어요.”

“생각해봐요.”

세아는 일어섰다.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박인철 씨.”

“네.”

“발매된 곡들 — 그 저작권, 돌려받을 방법이 있어요?”

박인철이 세아를 봤다.

“있어요.” 그가 말했다. “쉽지는 않아요. 비용이 들 수도 있어요. 근데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세아는 그것을 머릿속 어딘가에 놓아뒀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것이 아니라 — 이번에는 서랍에 넣는 것처럼. 나중에 반드시 다시 열 서랍.

“감사해요.”

세아가 카페를 나왔다.


홍대 골목은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오후 다섯 시가 되지 않았는데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겨울의 해는 빠르게 진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매년 겨울마다 조금 놀랐다 — 아직 저녁도 아닌데 밤이 오는 것이. 준비가 안 됐는데 어두워지는 것이.

가방 안에 서류 봉투가 있었다.

세아는 걸으면서 그것의 무게를 느꼈다. 종이 두세 장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서류가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 서류 안에 담긴 것이 무거운 것이었다. 결정. 그것이 무거웠다. 세아는 결정을 잘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 자신을 위한 결정을 잘 하지 않았다. 도현의 학원비, 어머니의 약값, 편의점 알바 시간표. 그런 것들은 결정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선택지가 없는 것들.

박인철의 서류는 선택지가 있었다.

세아는 그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걸으면서 생각했다.

홍대 입구역 방향으로 걷다가 발길이 멈췄다. 골목 한쪽에 포장마차가 열려 있었다. 오후 다섯 시도 안 됐는데 이미 자리가 두 개 찼다 — 회사원처럼 보이는 남자 둘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 냄새가 났다. 뜨거운 국물과 간장과 어묵의 냄새. 세아는 그 냄새를 맡고 잠깐 멈췄다.

배가 고팠다.

아침에 하늘의 집에서 나올 때 뭔가를 먹었어야 했는데 — 먹지 않았다. 편의점 알바 중에 뭔가를 먹을 수 있었는데 — 먹지 않았다. 한강에 있는 동안 뭔가를 사 먹을 수 있었는데 — 그냥 있었다.

세아는 포장마차 앞에 섰다.

“어묵 주세요.”

“천 원이요.”

세아는 지갑을 꺼냈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냈다. 어묵 꼬치를 받았다. 국물을 종이컵에 따라줬다. 세아는 어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배 안에서 퍼졌다. 세아는 잠깐 눈을 감았다. 어묵 특유의 탱탱한 식감과 간장 국물의 짠맛이 혀에 남았다. 이것이 따뜻하다는 것을 세아는 알았다 — 온도로서의 따뜻함이 아니라, 무언가가 채워지는 것으로서의 따뜻함.

국물을 마셨다. 종이컵이 뜨거워서 두 손으로 감쌌다.

핸드폰이 울렸다.

세아는 국물을 다 마시고 핸드폰을 봤다. 모르는 번호였다. 서울 지역번호. 세아는 어묵 꼬치를 손에 든 채로 전화를 받았다.

“네.”

잠깐 침묵이 왔다.

그다음 목소리가 들렸다.

“나세아 씨?”

낮고 천천히 말하는 목소리였다. 세아는 그 목소리를 한 번 들었을 뿐이었다 — 어젯밤 회의실 복도에서. 두 마디를 들었다. 저, 잠깐요. 그 두 마디가 귀에 남아 있었다.

세아는 어묵 꼬치를 내려다봤다.

“맞아요.”

“강리우예요. JYA. 어제 회의실에서 잠깐 봤는데.”

“알아요.”

“아, 알았군요.” 목소리에 잠깐 무언가가 스쳤다 — 당황한 것이 아니라, 예상과 달랐을 때 나오는 아주 작은 조정 같은 것. “박인철 씨한테 연락했어요?”

“만났어요. 방금.”

“방금이요.” 강리우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럼 제가 타이밍을 잘 맞췄네요.”

세아는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생각했다. 타이밍을 잘 맞췄다는 것은 — 박인철이 먼저 세아를 만난 다음 강리우가 연락하기로 어느 정도 조율이 돼 있었다는 것이었다. 둘이 이미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세아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말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곡 이야기 하고 싶어서요.” 강리우가 말했다. “직접.”

“박인철 씨 통하면 되잖아요.”

잠깐 침묵이 왔다.

“그렇죠.” 강리우가 말했다. “근데 박인철 씨 통하면 제가 듣고 싶은 게 못 들릴 것 같아서요.”

“뭘 듣고 싶은데요.”

“나세아 씨가 왜 그 곡들을 썼는지요.”

세아는 어묵 꼬치를 든 손이 잠깐 굳는 것을 느꼈다. 바람이 불었다. 포장마차 비닐이 펄럭였다. 어묵 국물 냄새가 바람에 섞여 날아갔다.

“그걸 알아야 해요?”

“저는 그래요.” 강리우가 말했다. 천천히, 설명하는 것처럼이 아니라 확인하는 것처럼. “좋은 곡은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를 알면 다음 곡도 예상이 돼요. 예상이 되는 곡은 팔기가 쉬워요.”

세아는 잠깐 그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팔기 쉬운지 알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들렸나요.”

“그렇게 말했잖아요.”

이번에는 더 긴 침묵이 왔다. 세아는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강리우가 무언가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맞아요.” 강리우가 말했다. “그렇게 말했어요.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나머지는요.”

“나머지는 직접 만나서 하고 싶어요.”

세아는 어묵 꼬치의 끝을 봤다. 다 먹었다. 빈 꼬치가 손에 남아 있었다. 포장마차 사장 아주머니가 쓰레기통을 가리켰다. 세아는 꼬치를 버렸다.

“언제요.”

“지금도 괜찮아요.”

세아는 걷기 시작했다. 홍대 입구역 방향으로.

“지금은 안 돼요.”

“내일은요.”

“편의점 알바가 열 시부터 두 시예요.”

잠깐 침묵이 왔다.

“두 시 이후에 시간 돼요?”

세아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생각했다. 두 시 이후. 내일 오후. 박인철의 서류를 읽어야 했다. 하늘한테 보여줘야 했다. 도현한테 전화를 해야 했다 — 학원 이야기를 제대로 해야 했다.

“돼요.” 세아가 말했다.

“어디가 괜찮아요? 나세아 씨가 편한 곳으로.”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편한 곳. 자신에게 편한 곳이 어딘지 세아는 즉각적으로 알 수 없었다. 고시원은 편한 곳이었지만 누군가를 부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편의점 근처 카페는 알바 동선과 겹쳤다. 하늘의 작업실은 하늘한테 허락을 받아야 했다.

“홍대 쪽이면 어디든요.”

“알겠어요. 제가 장소 보내드릴게요.”

“네.”

전화가 끊겼다.

세아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걸음을 계속했다. 발밑에서 보도블록이 규칙적으로 지나갔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 어스름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강리우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좋은 곡은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를 알면 다음 곡도 예상이 돼요.

세아는 그 말을 뒤집어서 들었다 — 이유를 알면 예상이 된다. 예상이 되면 팔기 쉽다. 그러니까 그는 세아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었다. 예측 가능한 작곡가는 관리가 쉬웠다. 원하는 것을 원할 때 뽑아낼 수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내일 만나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 강리우가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왜 그 곡들을 썼냐고. 그 질문을 아무도 한 적이 없었다. 박인철도, 그 곡들을 발매한 기획사 담당자들도. 계약서를 건넸고, 금액을 말했고, 곡을 가져갔다. 그것이 전부였다. 아무도 왜 이 멜로디인지, 왜 이 가사인지, 이것을 쓸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강리우는 팔기 위해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래도 물어보는 것은 물어보는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 팔기 위한 질문에 기대를 거는 것이. 그러나 부끄럽다는 것과 사실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고시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아는 편의점에 들렀다.

알바하는 편의점이 아니었다 — 고시원 골목 입구에 있는 CU였다. 세아는 삼각김밥 하나를 집었다. 참치마요. 그리고 컵라면. 고시원 방에 전기포트가 있었다. 뚜껑을 열어 물을 붓고 삼 분을 기다리는 것이 저녁이었다.

계산대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냈다.

고시원 방 문을 열었다. 냄새가 났다 — 환기가 안 되는 공간의 냄새. 세아는 그 냄새에 익숙했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찬 공기가 들어왔다.

책상에 앉아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봉투를 열었다.

종이 세 장이 나왔다. 박인철이 말한 대로 — 매니지먼트 계약서. 세아는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했다. 천천히.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멈추고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저작인접권. 독점적 이용권. 양도 가능성 조항.

전기포트 물이 끓었다.

세아는 계약서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뚜껑을 닫았다. 삼 분.

계약서를 다시 읽었다.

두 번째 페이지에 강리우가 말한 것과 다른 내용이 있었다.

세아는 그 조항에서 멈췄다.

4조 (저작물 이용 우선권): 본 계약 기간 동안 갑(박인철)은 을(나세아)의 저작물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보유하며, 을은 갑의 사전 동의 없이 제3자와 저작물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세아는 그 조항을 두 번 읽었다. 세 번 읽었다.

사전 동의 없이 제3자와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그것은 자유로운 계약이 아니었다. 박인철은 전속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세아 씨는 자유롭게 곡을 쓰고, 저는 그것을 팔아요. 그러나 이 조항에 따르면 — 세아가 직접 강리우와 만나서 계약을 하려면 박인철의 동의가 필요했다. 박인철이 동의하지 않으면 세아는 그 계약을 할 수 없었다.

세아는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김이 올라왔다. 면을 젓가락으로 풀었다.

박인철은 오늘 말했다. 강리우가 직접 접근하기 전에 제가 먼저 연결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제 일이니까.

그 말과 이 조항이 연결됐다. 세아는 연결되는 순간을 느꼈다 — 퍼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뭔가가 드러나는 것. 박인철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박인철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전속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포장한 것은 — 달랐다.

세아는 라면을 먹었다.

짰다. 항상 짰다. 세아는 물을 조금 더 붓는 방식으로 먹었다 — 컵 안에 물을 더 넣으면 국물이 옅어졌다. 맛은 없어졌지만 짠 것보다는 나았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옆방 알람이 울렸다가 멈췄다. 세아는 시계를 봤다. 오후 여섯 시. 옆방은 야간 알바를 가는 사람이었다. 세아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 고시원에서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서로 보지 않았다. 그것이 예의였다.

라면을 다 먹고 컵을 버렸다.

삼각김밥을 뜯었다. 참치마요가 차가웠다. 세아는 그것도 먹었다.

계약서를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3조를 봤다.

3조 (계약 기간): 본 계약의 기간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2년으로 한다.

2년.

세아는 2년이라는 숫자를 봤다. 2년 후에 세아는 스물여섯이었다. 도현은 열아홉이었다. 대학에 갈 수도 있었다. 어머니 상태가 어떨지는 몰랐다.

2년 동안 박인철의 사전 동의 없이 제3자와 계약할 수 없다.

세아는 계약서를 덮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하늘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야, 내일 시간 있어?

답장이 빠르게 왔다.

오전엔 손님 있고 오후 세시 이후로는 됨. 왜.

계약서 읽어줄 수 있어?

무슨 계약서. 나 법 몰라.

알아도 되는 거 아닌 거 구분해주면 돼. 내가 설명할게.

잠깐 침묵이 왔다. 하늘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답장이 왔다.

ㅋㅋ 알겠어. 와라. 장판이 보고 싶다고 할 것 같음.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책상 위에 계약서가 덮여 있었다. 그 옆에 빈 컵라면 컵이 있었다. 창문으로 겨울 바람이 들어왔다. 방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세아는 창문을 닫으려다가 멈췄다.

머릿속에서 아까 한강에서 시작됐던 멜로디가 다시 움직였다. 미, 파, 파플랫. 세 음. 강가에서 시작됐던 그 음들이 고시원 방에서 다시 돌아왔다 — 다른 온도로. 한강 위에서는 차가웠고, 지금은 달랐다. 뭔가가 더해진 것 같았다. 서류 냄새가 났다. 어묵 국물 냄새가 남아 있었다. 라면 냄새.

세아는 핸드폰 음성메모 앱을 열었다.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낮게, 작게. 옆방에 들릴까봐. 미, 파, 파플랫. 그다음 음이 저절로 왔다 — 레. 레가 오니까 전체가 하나의 구절이 됐다. 미, 파, 파플랫, 레. 네 음이 하나의 문장이 됐다.

기다리는 속도.

세아는 그것을 기록했다.

녹음을 저장하고 앱을 닫았다.

강리우가 말했다. 왜 그 곡들을 썼냐고.

세아는 대답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써졌다. 써져야 했다. 도현의 학원비 때문에, 어머니 약값 때문에, 고시원 월세 때문에. 그런 것들이 이유라고 하면 이유였다. 하지만 강리우가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닐 것이었다.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그 곡들을 쓸 때 무슨 생각이었냐고.

제주 바다. 어머니가 물속에서 올라올 때 내는 소리. 숨비소리. 살아있다는 노래. 세아는 그 소리를 기억하면서 곡을 썼다. 의식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 어떤 멜로디를 쓰면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그 멜로디가 옳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쪽으로 갔다. 그게 전부였다.

그것을 강리우에게 말할 수 있을지 세아는 몰랐다.

그것을 말하면 — 그것이 팔기 쉬운지 어려운지 강리우가 판단할 것이었다. 어머니의 숨비소리가 상품성이 있는지 없는지.

세아는 그 생각이 불쾌한지 확인했다.

불쾌했다.

그렇다면 내일 만나면 안 됐다.

하지만 세아는 내일 만나겠다고 했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방이 차가웠다. 창문을 아직 닫지 않았다. 바람이 들어왔다.

아까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먹을 때 잠깐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은 다시 차가웠다. 세아는 그 차가움이 싫지 않았다 — 차가울 때 더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해녀였을 때, 물속에서 올라오면 항상 소리를 질렀다. 숨비소리. 그것이 노래처럼 들렸다. 차가운 물 속에 오래 있다가 나와서 내는 소리가 노래가 됐다.

세아는 창문을 닫았다.

이불을 당겼다.

내일 강리우를 만날 것이었다. 박인철의 서류에 사인할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계약서에 뭐가 있는지 하늘한테 설명하기 전에. 도현한테 전화하기 전에.

내일 강리우가 물어볼 것이었다. 왜 그 곡들을 썼냐고.

세아는 아직 대답을 몰랐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알았다 — 대답을 모른다는 것을 강리우에게 들키지 않을 것이었다. 업계에서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면 약해 보인다는 것을. 세아는 그것을 이십오만 원짜리 계약서에서 배웠다.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핸드폰 화면이 꺼졌다.

방이 어두워졌다. 옆방에서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야간 알바를 나가는 소리. 수도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가 멈췄다.

세아는 눈을 감은 채로 미, 파, 파플랫, 레를 머릿속에서 반복했다.

네 음이 굴렀다.

기다리는 속도로.


다음 날, 강리우가 보낸 장소는 홍대 입구역 근처가 아니었다.

세아는 카카오톡을 열어서 지도 링크를 확인했다. 합정동. 편의점에서 도보로 십 분 거리. 카페가 아니었다 — 작은 스튜디오였다. 개인 연습실을 빌려주는 곳. 세아는 그 건물 앞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간판이 작아서 몰랐는데 — 지도에서 확인하니 건물 2층이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스튜디오.

카페가 아니라 스튜디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곡 이야기를 하려면 카페도 됐다. 스튜디오를 잡은 것은 — 곡을 들으려는 것이었다. 설명이 아니라.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세아는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앞치마를 벗었다.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봤다. 편의점 창고의 거울은 작고 흐릿했다. 세아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 머리를 묶은 채로. 눈 밑이 어두웠다. 어젯밤 잠을 일찍 잤는데도 — 새벽 두 시에 깨서 멜로디를 더 썼다. 음성메모가 세 개 더 늘었다. 아침에 듣는 것을 잊었다.

가방을 들었다.

편의점 문을 나왔다.

오후 두 시 오 분.

강리우가 말한 시간까지 오십오 분이 있었다.

세아는 합정역 방향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어젯밤의 계약서를 생각했다. 4조. 사전 동의. 박인철에게 질문을 해야 했다. 오늘 오후에 하늘과 만나기로 했는데 — 그 전에 강리우를 만나야 했다. 순서가 이상했다.

그러나 세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스튜디오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강리우가 이미 입구에 서 있었다.

세아보다 머리 하나가 더 높은 키였다. 어제 회의실 복도에서 봤을 때보다 — 오늘은 코트가 없었다. 검은 맨투맨에 청바지였다. 손이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세아는 그 손을 봤다 — 길고 마디가 굵은 손. 피아니스트 손이라는 것을 하늘이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왔어요.”

“네.”

“올라가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이 좁았다. 세아가 뒤에서 올라갔다. 2층 문에 작은 번호패드가 있었다. 강리우가 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렸다.

스튜디오 안은 작았다.

피아노 한 대, 스피커 두 개, 보면대 하나. 그것이 전부였다. 창문이 없었다. 방음이 돼 있어서 외부 소리가 완전히 차단됐다. 세아는 그 침묵을 느꼈다 — 고시원의 침묵과 달랐다. 고시원은 얇은 벽 너머로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여기는 진짜로 아무것도 없는 침묵이었다.

“앉아요.”

의자가 두 개 있었다. 세아는 피아노 앞 의자가 아닌 쪽에 앉았다. 강리우는 서 있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았다.

“들고 온 거 있어요?”

세아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음성메모 앱을 열었다.

“녹음 파일이요. 피아노도 없고 MR도 없이 그냥 흥얼거린 거예요.”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그게 더 좋아요.”

세아는 첫 번째 파일을 재생했다.

방 안에 세아의 목소리가 흘렀다 — 어젯밤 고시원에서 낮게, 작게 흥얼거렸던 것. 미, 파, 파플랫, 레. 그것이 하나의 구절이 되고, 구절이 반복되고, 변형되고, 다시 돌아오는 것.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것이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확인했다. 고시원에서는 벽이 얇아서 소리가 퍼지지 않았다. 여기서는 방음이 된 공간이라 소리가 공중에 떠 있었다.

강리우가 움직이지 않았다.

파일이 끝났다. 일 분 이십 초짜리였다.

강리우가 말하지 않았다. 세아도 말하지 않았다.

침묵이 왔다. 그러나 이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 무언가가 들린 후의 침묵이었다. 소리가 공중에 남아서 서서히 가라앉는 시간.

“제목이 뭐예요.” 강리우가 말했다.

“없어요. 어젯밤에 썼어요.”

“어젯밤에.”

“네.”

강리우가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피아노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 그러나 앉지 않았다.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지도 않았다. 그냥 피아노 옆에 섰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왜요.”

“이 멜로디가 기다리고 있어요.” 강리우가 말했다.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썼어요. 그 사람이 어젯밤에 기다리고 있었던 게 뭔지 궁금해서요.”

세아의 손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그 말이 정확했다.

기다리는 속도라고 세아는 어젯밤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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