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1화: 추가로 드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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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화: 추가로 드릴 말씀

GS25 자동문이 열릴 때 나오는 냄새가 있다.

커피와 전자레인지와 비닐 포장재가 섞인 냄새. 세아는 그것을 직업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 그냥 아는 냄새라고 불렀다. 오전 여섯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그 냄새 안에 있었던 사람이 퇴근하면서 맡는 냄새. 낯설지 않아서 오히려 잠깐 멈추게 되는 냄새.

세아는 자동문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나쳤다.

합정역 방향이 아니라 홍대 입구역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거리가 더 멀었다. 지하철 환승도 한 번 더 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쪽으로 발이 움직였다 — 큰 길이 있었고, 큰 길에는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있으면 귀를 기울일 것이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아무것도 틀지 않아도 소리가 들어왔다. 발걸음 박자, 지나치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 누군가의 전화 통화에서 튀어나오는 단어 하나.

세아는 걸으면서 그것들을 들었다.

박인철의 카카오톡이 읽힌 상태로 주머니 속에 있었다. 추가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 문장이 아까부터 머릿속 어딘가에 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문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 그 문장이 무엇을 감추고 있을지가 문제였다. 업계에서 추가로 드릴 말씀은 두 가지 종류였다. 조건을 더 얹는 것이거나, 조건을 빼는 것이거나. 어느 쪽이든 세아가 원하는 방향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을 알면서도 연락을 해야 했다.

그것이 세아가 처한 현실의 구조였다.


편의점 알바는 열 시 시작이었다.

세아는 홍대 입구역에서 2호선을 탔다. 합정역까지 한 정거장. 플랫폼에 사람이 많았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강의 가방을 맨 대학생들과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이 섞여 있었다. 세아는 문 쪽에 기댔다. 창문으로 터널이 스쳐 지나갔다.

합정역에서 내려 편의점까지 걸어가는 길에 핸드폰이 울렸다.

박인철이 아니었다. 도현이었다.

세아는 잠깐 멈췄다가 받았다.

“응.”

“누나 어디야.”

“합정. 왜.”

“ㅋㅋ아 그냥. 어젯밤에 카톡 안 읽혀서.” 도현의 목소리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 그것이 뭔가가 담겨 있다는 뜻이었다. 세아는 동생과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알았다. “하늘 누나 집에 있었어?”

“응.”

“ㅋㅋ장판이 봤어?”

“봤어.”

“그 고양이 되게 뚱뚱해졌더라 사진에서.”

세아는 걷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도현아. 카톡에 뭐 썼어.”

전화 너머로 잠깐 침묵이 왔다.

“아 뭐. 별거 아님.” 도현이 말했다. “학원 있잖아. 겨울방학 특강.”

“응.”

“그거 안 다녀도 될 것 같아서. 그냥 학교 자습실에서 하면 되고.”

세아는 발걸음을 멈췄다. 편의점 입구가 보이는 거리였다.

“학원 왜.”

“아 그냥. 자습실이 더 집중 잘 돼. 선생님이 설명 너무 길어.”

“나세아씨 안녕하세요!”

편의점 유리문 너머로 낮 알바생이 손을 흔들었다. 세아는 턱으로 인사를 받으며 핸드폰을 귀에서 조금 떼었다.

“도현아.”

“응.”

“학원비 때문에?”

또 침묵이 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었다.

“아니거든.” 도현이 말했다. 발음이 살짝 뭉개졌다. “진짜로. 자습이 더 잘 돼서.”

“알겠어.”

“누나 믿어?”

“응.”

“거짓말.” 도현이 말했다. 비난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오래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확인이었다. “끊어. 학교 가야 해.”

전화가 끊겼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도현의 이름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세아는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편의점 입구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머릿속에서 숫자들이 움직였다. 학원비. 월 고정. 전속 계약. 저작권 귀속.

도현은 자습실이 더 집중 잘 된다고 했다.

세아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믿으면서도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오전 알바는 조용했다.

열 시에서 두 시까지, 합정동 편의점은 동네 주민들이 드문드문 오가는 시간이었다. 커피 한 잔을 사는 중년 남자, 우유를 사는 할머니, 택배를 찾으러 온 청년. 세아는 계산대 뒤에 서서 바코드를 찍고 영수증을 건넸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머릿속에서는 다른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젯밤 하늘의 작업실 바닥에서 뒤척이다가 새벽 두 시에 일어난 것. 접이식 침대에서 자는 하늘을 깨우지 않으려고 핸드폰 화면 밝기를 최저로 낮추고 메모장을 열었던 것. 거기에 네 마디를 썼던 것. 멜로디는 머릿속에만 있었다 — 받아 적을 수 없었다. 그냥 허밍만 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입 안에서만.

그 네 마디가 아직 거기 있었다. 지워지지 않았다.

세아는 계산대 앞에 서서 그것을 반복했다.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목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냥 머릿속에서만. 가슴 어딘가에서만.

이게 무슨 멜로디인지 모르겠다. 슬픈 건지 화난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도현이 학원을 그만 다니겠다는 말을 들은 다음에 나온 멜로디니까 — 아마도 그 둘 사이 어딘가일 것이다. 슬픔과 분노의 사이. 이름이 없는 감정의 구역.

두 시에 교대가 왔다. 세아는 앞치마를 벗으면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박인철에게서 메시지가 한 개 더 와 있었다.

오늘 오후 가능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강남 쪽으로 나오시기 어려우면 합정 쪽으로 제가 갈 수도 있어요.

세아는 그것을 읽었다. 두 번 읽었다.

합정 쪽으로 제가 갈 수도 있어요. 그 문장이 이상했다. 어제까지 세아를 강남 회의실로 불렀던 사람이. 추가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자기가 온다고 했다.

세아는 메시지를 닫고 편의점을 나왔다. 찬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하늘이 흐렸다 — 아침보다 더 흐려져 있었다. 눈이 올 것 같은 하늘이었다. 서울의 겨울 하늘은 눈이 오기 직전에 낮아진다. 구름이 내려앉아서 건물 꼭대기가 흐릿해지는 것을 세아는 알았다.

세아는 답장을 보냈다.

합정 괜찮아요. 세 시 이후로 말씀해주세요.


박인철이 지정한 곳은 합정역 근처 카페였다.

홍대 상권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에 있는 곳이었다. 세아는 근처를 지나쳐 본 적이 있었지만 들어간 적은 없었다. 통유리 창이 있고, 안에 원목 테이블이 있고, 커피가 비쌀 것 같은 종류의 카페. 세아가 알바비로 가는 카페가 아니었다.

박인철은 먼저 와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고 있었다. 세아가 들어가자 손을 들었다.

세아는 카운터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제일 작은 사이즈로. 박인철이 일어나서 “제가 살게요”라고 했다. 세아는 “괜찮아요”라고 했다. 박인철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이 테이블 한쪽에 있었다. 박인철은 그것을 닫았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닫는다는 것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는 신호일 수도 있었고, 노트북에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신호일 수도 있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했다.

“어제 수고하셨어요.”

박인철이 먼저 말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가로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네.” 박인철이 커피잔을 한 번 잡았다가 놓았다. “사실 어제 유재원 팀장님이 세아 씨한테 보여드린 건 초안이에요.”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속 계약 구조 자체는 그대로지만, 크레딧 표기 조항이 다르게 올 수 있어요. 협의 가능이 아니라.” 박인철이 잠깐 멈췄다. “명시 가능으로.”

세아는 커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명시 가능이요.”

“네. 작곡 크레딧에 나세아 씨 이름이 들어가는 거요. 공동 작곡이 아니라 단독으로.”

세아는 그것을 들었다. 들으면서 무언가가 가슴 어딘가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기쁨인지 의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 너무 빨리 왔기 때문에. 좋은 소식은 항상 천천히 와야 한다고 세아는 생각했다. 너무 빠르게 오는 것들은 뭔가를 감추고 있다.

“왜요.”

박인철이 잠깐 눈을 가늘게 했다.

“왜 달라졌어요. 어제 초안이랑.”

“아.” 박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윗선에서 의견이 있었어요.”

“윗선이요.”

“JYA 쪽에서.”

세아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했다. JYA 쪽. 유재원은 JYA 팀장이었다. 유재원보다 윗선이라면 — 세아는 생각의 방향을 멈췄다. 거기까지 가는 것은 아직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는 건지 서면으로 받을 수 있어요?”

“당연하죠.” 박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 계약서 다음 주 중으로 드릴게요.”

“감사해요.”

세아는 커피를 마셨다. 뜨거웠다. 혀가 살짝 데었다. 세아는 그것을 느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 초안이 있고, 수정안이 있다. 그 사이에 누군가의 의견이 끼어들었다. 그 누군가가 세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입했다. 그것이 왜인지를 모른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두는 것이 지금 세아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이었다.

“하나 더 여쭤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창가에서〉 소급 처리. 그게 전속 계약이랑 연결되어 있는 건 변하지 않는 거죠?”

박인철이 잠깐 멈췄다.

“그건 그대로예요.”

“알겠어요.”

두 사람 사이에 잠깐 침묵이 왔다. 카페 스피커에서 재즈가 흘렀다. 트럼펫이 낮게 깔리고 피아노가 그 위에서 움직이는 종류의 재즈. 오후 세 시의 카페에 어울리는 소리였다.

“나세아 씨.” 박인철이 말했다. “한 가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하세요.”

“저 처음에 세아 씨한테 연락한 거.” 박인철이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창가에서〉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세아는 그를 봤다.

“세아 씨 다른 곡들도 들었어요. 언더스코어에서 세션 보컬 할 때 목소리도요. 근데 그것보다 — 언더스코어 하우스 밴드 팀장한테 물어봤거든요. 나세아 씨 어떤 사람이냐고.”

“뭐라고 하던가요.”

“자기가 아는 보컬 중에 가장 음악을 정직하게 듣는 사람이라고.” 박인철이 말했다. “칭찬인지 비판인지 모르겠다고도 했어요. 정직하게 듣는 사람이 항상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근데 나세아 씨는 둘 다 하는 것 같다고.”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가 가슴 안쪽에서 조용히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칭찬이었다. 세아는 칭찬을 잘 받지 못했다 — 받는 방법을 몰랐다. 칭찬이 오면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서 그냥 서 있게 됐다.

“감사해요.”

그것이 세아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카페를 나온 것은 네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박인철은 먼저 갔다. 다음 주 중에 수정 계약서를 보내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세아는 카페 앞에서 잠깐 섰다. 하늘이 오후 들어 더 낮아져 있었다. 공기에 수분이 많았다. 눈이 아직 오지 않았다.

세아는 한강 방향으로 걸었다.

합정동에서 한강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이었다. 세아가 자주 걷는 길이었다. 생각이 많을 때 걷는 길. 새벽에 멜로디가 나오지 않을 때 걷는 길. 오늘은 두 가지 다였다.

강변에 나왔을 때 바람이 왔다. 한강 위에서 오는 바람은 온도가 달랐다 — 도시에서 오는 바람보다 차고, 냄새가 없었다. 세아는 그 바람 속에서 멈췄다. 외투 단추가 다 잠겨 있었지만 그래도 추웠다. 목이 아직 약간 긁혔다.

명시 가능.

그 두 글자가 아직 머릿속에 있었다. 협의 가능과 명시 가능의 차이. 협의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고, 명시는 계약서에 쓰인다는 뜻이었다. 그 차이가 세아에게는 크고 작은 것이 아니었다 —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협의는 공기였고, 명시는 땅이었다.

누군가 그것을 바꿨다.

세아는 한강을 봤다. 물이 회색이었다. 겨울 한강은 항상 이 색이었다 — 하늘색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같은 색이 되는 것. 구분이 없어지는 것. 세아는 그것이 어머니의 바다와 다른 점이라고 생각했다. 제주 바다는 하늘과 싸웠다. 색이 달랐다. 경계가 명확했다. 한강은 그냥 하늘의 일부가 됐다.

해녀들이 물 위로 올라올 때 소리를 질렀다.

숨비소리.

세아는 그것을 생각했다. 어머니가 물속에서 올라오는 순간 — 숨을 참고 참다가 터뜨리는 소리. 그게 노래라고 했다. 살아있다는 노래. 세아는 어릴 때 그 소리를 들으면서 해변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물속에 있는 동안 세아도 숨을 참았다. 어머니가 올라와서 소리를 지를 때 세아도 같이 숨을 뱉었다.

지금 세아는 언제부터 숨을 참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이 왔다. 조용하고 명확하게.

세아는 한강을 봤다. 바람이 또 왔다. 머리카락이 풀릴 것 같았다 — 묶은 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세아는 손을 올려서 머리핀을 눌렀다. 풀리지 않게.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세아는 받을까 말까를 잠깐 생각했다. 모르는 번호는 두 종류였다 — 스팸이거나, 모르는 사람이거나. 스팸은 첫 마디에 알 수 있었다.

받았다.

“나세아 씨?”

남자 목소리였다. 낮고 천천히 말하는 목소리. 세아는 그것을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언더스코어 복도에서.

“…누구세요.”

“강리우예요.” 목소리가 말했다. “JYA 쪽 강리우.”

세아는 한강을 보면서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번호를 어떻게.”

“박인철 팀장한테 받았어요.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짧은 침묵. “전화하기 좋은 시간이에요?”

세아는 한강을 봤다. 회색 물이 바람에 표면을 일렁였다.

“괜찮아요.”

“박인철 팀장 오늘 만났죠?”

“네.”

“크레딧 이야기 들었을 거예요.”

세아는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이 차가웠다. 장갑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게 강리우 씨가 한 거예요?”

전화 너머로 잠깐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했고, 창문이 닫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제가 의견을 냈어요.” 강리우가 말했다. “결정은 위에서 했고.”

“왜요.”

“〈창가에서〉 들어봤어요. 나세아 씨 목소리 버전으로.”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목소리 버전. 세아가 직접 부른 버전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외부에 나간 적이 없었다. 박소진 버전만 나갔다. 세아가 부른 것은 데모였고, 데모는 — 데모는 회사 파일에 있었다. 세아가 박인철에게 처음 보낸 파일에.

“어떻게.”

“박인철 팀장이 내부 검토용으로 공유했어요.” 강리우의 목소리는 빠르지 않았다. 설명을 하는 사람의 속도였다. 서두르지 않는 것이 익숙한 사람의 속도. “A&R 팀에 있으니까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크레딧 이야기를 했어요.” 강리우가 말했다. “나세아 씨 이름이 계약서에 들어가야 한다고.”

세아는 한강을 봤다. 바람이 멈췄다. 잠깐 세상이 고요해진 것 같았다.

“왜요.” 세아가 다시 말했다. 같은 질문이었다.

“당연한 거니까요.”

“당연한 게 항상 이루어지지는 않아요. 특히 업계에서.”

전화 너머로 잠깐 웃음 같은 소리가 났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짧았다 — 그냥 숨이 한 번 나온 것처럼.

“그건 맞아요.” 강리우가 말했다. “근데 당연한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말해야죠.”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말인지 분류하려고 했다 — 원칙을 말하는 것인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지, 아니면 세아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분류가 되지 않았다.

“강리우 씨.”

“네.”

“저 이름 어떻게 알아요.”

짧은 침묵.

“언더스코어에서 봤어요. 두 달 전에.”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두 달 전. 언더스코어. 세아는 거기서 매주 화요일에 세션을 했다. 두 달 전이면 — 여러 번이 겹쳤다. 세아가 기억하는 날이 하나 있었다. 마지막 세트에서 반음 올렸던 날이 아니라 — 그 전에. 비가 왔던 날. 클럽 안이 평소보다 조용했던 날. 세아가 마지막 곡에서 즉흥으로 브릿지를 바꿨던 날.

“어떤 날이요.”

“비 왔던 날.” 강리우가 말했다. “마지막 곡에서 브릿지 바꿨잖아요.”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코러스 직전에 반 박자 쉬는 거.” 강리우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설명이 아니라 — 기억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그게 곡에 없는 건데. 즉흥이었죠?”

“…네.”

“그 반 박자가 곡 전체를 바꿨어요.” 강리우가 말했다. 빠르지 않게. “그 전까지는 좋은 커버였는데, 그 순간부터 나세아 씨 노래가 됐어요.”

세아는 한강을 봤다.

물이 여전히 회색이었다.

가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움직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세아는 알지 못했다 — 아니, 알았지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다루어야 했다. 지금은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할 말이 있어서 전화하신 거죠.” 세아가 말했다. “그게 뭔가요.”

강리우가 잠깐 멈췄다.

“직접 만날 수 있을까요.”

“왜요.”

“전화로 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어서요.”

“어떤 이야기요.”

“계약이랑은 별개예요.” 강리우가 말했다. “JYA 이야기도 아니고. 나세아 씨 음악에 대한 이야기예요.”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나세아 씨 음악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무엇인지 세아는 몰랐다. 몰랐고, 그래서 궁금했다. 궁금한 것이 세아에게는 위험한 감정이었다 — 궁금하면 움직이게 됐다. 움직이면 뭔가가 달라졌다. 달라지는 것들이 항상 세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요.”

강리우가 대답하기 전에 잠깐 멈췄다. 그 멈춤이 세아에게는 읽혔다 — 예상보다 빠른 대답에 잠깐 조정하는 멈춤이었다.

“이번 주 괜찮으세요?”

“목요일 저녁이요.”

“목요일 좋아요.” 강리우가 말했다. “장소는 제가 보낼게요.”

“합정 쪽으로 해요.”

또 잠깐 멈춤이 있었다.

“알겠어요.”

전화가 끊겼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모르는 번호가 다시 화면에 떴다가 사라졌다. 세아는 그 번호를 저장했다. 이름 칸에 ‘강리우’라고 썼다가 지웠다. 그냥 번호만 저장했다.

한강 위로 바람이 다시 왔다.


그날 저녁 고시원으로 돌아왔을 때 세아는 문을 잠그고 외투를 벗지 않은 채로 침대에 앉았다.

방이 좁았다. 침대와 책상과 옷걸이가 전부였다. 책상 위에 노트가 있었다. 세아가 멜로디를 적는 노트였다 — 악보가 아니었다. 세아는 악보를 쓰지 않았다. 그냥 선과 숫자와 기호로 된 자기만의 방식으로 멜로디를 기록했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방식으로.

세아는 노트를 열었다.

새벽 두 시에 하늘의 작업실 바닥에서 썼던 네 마디. 선과 숫자로 거기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읽었다. 머릿속에서 소리로 변환했다.

그 멜로디가 강리우의 말과 겹쳤다.

그 반 박자가 곡 전체를 바꿨어요.

세아는 노트를 닫았다.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멜로디가 계속 돌아갔다. 네 마디가 여덟 마디가 되었다. 여덟 마디가 열여섯 마디로 뻗어갔다. 세아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로 멜로디를 들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냥 머릿속에서만. 그러나 그것이 세아에게는 충분히 크게 들렸다 — 방의 벽을 넘어서, 고시원 건물을 넘어서, 합정동 골목을 넘어서 들리는 것처럼.

그 멜로디에 가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세아는 알았다.

자기 자신을 위한 가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타인을 위한 곡을 쓰는 것과 자신을 위한 곡을 쓰는 것은 같은 행위가 아니었다. 타인을 위한 곡은 — 그들의 감정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잘 했다. 공감 능력이 높다는 것은 타인의 감정을 먼저 느낀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번역하는 일은 달랐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느껴야 했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이 서툴렀다.

노트를 다시 열었다. 빈 페이지에 펜을 댔다.

아무것도 써지지 않았다.

세아는 펜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었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이 낮았다. 고시원의 천장은 항상 낮다. 세아는 그것을 볼 때마다 반지하를 생각했다. 하늘의 작업실. 장판. 신라면 냄새.

목요일이었다.

목요일에 뭘 듣게 될까.

그 생각이 왔다. 기대인지 경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세아는 그 두 감정을 오래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 기대하면 상처받을 수 있었고, 경계하면 지나치게 됐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야 했는데, 그 사이가 너무 좁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하늘이었다.

카카오톡이었다.

야 강리우 전화했다며. 박인철한테 들었음.

세아는 그것을 읽고 잠깐 생각했다. 박인철이 하늘한테 연락한다는 것은 — 박인철이 하늘을 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상했다.

어떻게 알아.

답장이 빠르게 왔다.

ㅋㅋㅋ 박인철이 우리 타투 손님임. 오른쪽 어깨에 나침반 있거든. 내가 새긴 거야. 오늘 연락했더라. 나세아 씨 친구냐고. 어이없음.

세아는 그것을 읽고 잠깐 웃었다. 소리 없이.

그래서 뭐라고 했어.

친구 맞다고 했지. 근데 야, 강리우가 직접 전화했어? 진짜로?

응.

목요일에 만난다고?

응.

잠깐 답장이 없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들고 기다렸다. 하늘이 뭔가를 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 하늘은 생각할 때 카톡을 빠르게 쳤다 지웠다 하는 습관이 있었다.

답장이 왔다.

야 나세아. 나 한 가지만 물어볼게.

응.

그 사람이 전화해서 목요일에 만나자고 했을 때. 처음 든 감정이 뭐야.

세아는 그 질문을 읽었다. 두 번 읽었다.

처음 든 감정.

세아는 한강 앞에 서 있던 것을 떠올렸다. 모르는 번호가 울렸을 때. 강리우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 반 박자가 곡 전체를 바꿨어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만날 수 있냐고 했을 때.

처음 든 감정이 무엇이었을까.

경계? 경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세아는 핸드폰 화면을 봤다. 하늘의 카톡창이 열려 있었다.

천천히 답장을 쳤다.

궁금했어.

답장이 바로 왔다.

ㅋㅋㅋㅋ 알았어. 조심해라. 그리고 뭐 먹었어 오늘. 밥은?

먹었어.

뭐.

편의점.

나세아야. 그건 밥이 아님. 진지하게.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천장을 봤다. 낮은 천장.

궁금했다.

그것이 세아가 오늘 하루 가장 정직하게 말한 것이었다. 처음 든 감정이 궁금증이었다는 것. 경계보다 먼저 온 것이 궁금증이었다는 것. 세아는 그것을 인정했다. 인정하는 것이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목요일이 사흘 남았다.


다음 날 오전,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기 직전에 도현에게서 카톡이 왔다.

누나 나 할 말 있어.

세아는 앞치마를 매면서 카톡을 읽었다.

뭔데.

학원 얘기 아니고.

알아. 뭔데.

답장이 조금 늦게 왔다.

ㅋㅋ아 근데 전화로 하기 좀 그런데. 주말에 볼 수 있어?

세아는 잠깐 멈췄다. 도현이 직접 보자고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 보통은 카톡으로 끝냈다. 중요한 것일 때만 전화했고, 가장 중요한 것일 때만 만나자고 했다.

토요일 오후.

ㅇㅋ. 엄마한테도 연락했어? 요즘 통화 잘 돼?

응. 어제 했어.

뭐래.

밥 먹었냐고.

ㅋㅋㅋㅋㅋ 역시. 토요일에 봐.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야간 알바생이 교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아는 앞치마를 다 매고 계산대 뒤로 들어갔다.

오전이 시작됐다.

택배를 정리하고,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냉장고 진열을 다시 하고, 커피 머신을 닦았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머릿속에서는 어제 써진 멜로디가 계속 돌아갔다 — 네 마디가 열여섯 마디가 되었다가 다시 네 마디로 줄어들었다가.

가사가 필요했다.

세아는 그것을 알면서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타인을 위한 곡을 쓸 때 세아는 먼저 그 사람의 감정을 들었다 — 그들이 말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것을. 그것을 멜로디로 번역하고, 멜로디에 가사를 붙였다. 그 과정이 세아에게는 자연스러웠다.

자신의 곡을 쓸 때는 — 먼저 들어야 할 사람이 자신이었다. 세아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것을.

그것을 세아는 오래 연습하지 않았다.

오후 두 시에 교대가 왔다. 세아는 앞치마를 벗으면서 핸드폰을 봤다. 강리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번호 저장은 하지 않았지만 번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목요일 저녁 여섯 시 어때요. 합정역 2번 출구 쪽에 있는 카페 알아요? 음악 많이 트는 곳.

세아는 그것을 읽었다. 합정역 2번 출구 쪽 카페. 음악 많이 트는 곳. 세아가 아는 카페가 거기 있었다. 빈티지 레코드가 벽에 걸려 있고, 턴테이블로 LP를 트는 곳. 아메리카노가 비싸지 않고, 조용한 오후에 혼자 가도 어색하지 않은 곳. 세아가 가끔 갔던 곳이었다 — 노트를 들고 창가에 앉아서 멜로디를 적을 때.

강리우가 그 카페를 안다는 것이 이상했다. 강남 사람이 합정의 LP 카페를 아는 것이 이상했다. 이상한 것들이 오늘 두 번째였다.

세아는 답장을 보냈다.

알아요. 거기로 해요.

편의점을 나와서 걸으면서 세아는 생각했다. 목요일에 무슨 이야기를 들을까. 나세아 씨 음악에 대한 이야기. 계약이랑 별개이고 JYA 이야기도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강리우는 피아노를 쳤다. 일 년 넘게 영상을 올리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유학을 했다가 갑자기 돌아왔다. 그것들이 세아의 머릿속 테이블 한쪽에 올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세아의 음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세아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이 세아에게는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목요일까지 사흘이 남아 있었고, 세아는 걸어가면서 머릿속에서 멜로디를 돌렸다. 열여섯 마디. 가사가 없는 열여섯 마디. 아직 이름이 없는 노래.

합정동 골목이 좁아지는 곳에서 바람이 왔다. 차가운 바람이었다. 세아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묶은 머리가 바람에 당겨졌다.

세아는 손을 올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냥 흔들리게 뒀다.


목요일 오전, 도현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누나 토요일에 할 말. 미리 말하면 안 되나.

세아는 편의점 카운터 뒤에서 카톡을 읽었다. 손님이 없는 오전 열한 시였다.

뭔데. 말해.

ㅋㅋ 아 근데 전화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잠깐 돼?

5분 후에 전화해.

세아는 동료 알바생에게 잠깐 자리를 봐달라고 했다. 편의점 뒷문을 열고 나갔다. 골목 쪽으로 나가는 문이었다. 찬 공기가 들어왔다.

도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누나.” 도현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뭉개져 있지 않았다. 정확했다. “나 밴드 하거든.”

세아는 뒷문 옆 벽에 기댔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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