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화: 강남에서 온 명함
박인철에게 다시 연락이 온 건 그날 저녁 여덟 시였다.
세아는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막 앞치마를 벗는 중이었다. 핸드폰 화면에 카카오톡 알림이 떴다. 이름을 보고 잠깐 손이 멈췄다.
나세아 씨, 내일 저녁 시간 있어요? 얘기할 게 있어서요. 강남 쪽으로 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세아는 메시지를 한 번 읽고 핸드폰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앞치마를 개어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외투를 챙겼다. 편의점 문을 나서면서 찬 공기가 목을 감쌌다 — 어젯밤 반음 올린 세트의 여파가 아직 거기 있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약간 긁히는 느낌.
걸으면서 답장을 썼다.
시간 있어요.
전송하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그게 전부였다. 세아는 강남이 어떤 곳인지 알았다. 강남에서 만나자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알았다. 박인철이 처음으로 먼저 연락을 해왔다는 것도 알았다. 그 세 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머릿속에서 조용히 계산이 돌아갔다.
합정역 방향으로 걸으면서 세아는 담배 냄새가 나는 사람 옆을 지나쳤다. 그 냄새가 잠깐 어젯밤 언더스코어와 겹쳤다. 파란 조명, 목이 아픈 마지막 곡, 관객의 발목들. 세아는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내일 강남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떠올랐다.
토요일 오후 다섯 시, 세아는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를 올라왔다.
바람이 달랐다. 합정동의 바람은 강에서 오는 바람이었다 — 습하고 낮게 깔리는 바람. 이쪽의 바람은 건물 사이를 통과해 오는 것이었다. 높고 날카롭고, 뭔가 닦여 있는 것 같은 바람. 세아는 코트 깃을 올렸다.
박인철이 보낸 주소는 강남구 역삼동의 카페였다. 걸어서 칠 분. 세아는 지도 앱을 켜놓고 걸었다. 주변 건물들이 합정동과 달랐다 — 유리와 금속으로 된 것들, 1층마다 세련된 간판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코트가 다른 질감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코트를 내려다봤다. 이 년 전에 산 것이었다. 색이 바랬는지 잘 몰랐다. 집에 거울이 없었다.
카페는 〈루나 커피〉였다. 통유리 외벽, 안에서 보면 바깥이 다 보이는 구조. 세아가 문을 열자 원두 볶는 냄새와 따뜻한 공기가 동시에 들어왔다. 박인철이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야구 모자를 쓰고, 아메리카노를 반쯤 마신 상태였다. 세아를 보더니 손을 들었다.
“왔어요?”
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주 앉았다. 외투를 벗지 않았다.
박인철이 먼저 말했다. “뭐 마실래요?”
“괜찮아요.”
“그래도 뭐 시켜요. 여기 라테 괜찮아.”
세아는 잠깐 메뉴를 봤다. 아메리카노가 육천오백 원이었다. 세아는 합정동 편의점 커피를 마셨다. 천이백 원이었다. 오천삼백 원의 차이가 어디서 나는지 세아는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메리카노요.”
박인철이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 갔다. 세아는 그 사이 창밖을 봤다. 강남역 사거리 방향으로 사람들이 흘렀다. 토요일 오후의 강남. 세아가 여기 온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올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이 맞는데 자신이 아는 서울이 아닌 것 같은 기분.
박인철이 돌아와 앉았다. 야구 모자 챙 아래로 눈이 약간 피했다.
“일단,” 그가 먼저 말했다. “이렇게 된 거 미안해요.”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JYA에서 편곡 들어가면서 크레딧 조정이 됐는데, 제가 그 과정에서 세아 씨 이름을 못 지켰어요. 솔직히 말하면.”
“지키려고 했어요?”
박인철이 잠깐 멈췄다. “어?”
“지키려고 했냐고요.” 세아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감정의 기복이 없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JYA 쪽에서 요구한 거예요?”
박인철이 아메리카노 잔을 손에 쥐었다가 내려놓았다. “…기획사에서 소속 작곡가 크레딧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있어요. 업계에서 흔한 일이에요.”
“흔한 일이면 저한테도 말했어야죠.”
“그게 말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세아 씨도 알잖아요,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아는 알았다. 알았기 때문에 이 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알았기 때문에 크레딧 없이 세 곡을 넘겼고, 알았기 때문에 연락이 끊겨도 기다렸다. 아는 것이 때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더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었다.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세아는 잔을 두 손으로 쥐었다. 뜨거운 게 손바닥에 전해졌다. 차가운 손이 조금 녹았다.
“그래서 오늘 만나자고 한 게 사과하려고요?”
“아니요.” 박인철이 처음으로 세아를 똑바로 봤다. “제안이 있어서요.”
제안은 이런 것이었다.
JYA 엔터테인먼트의 A&R팀에 있는 누군가가 〈창가에서〉의 원본 데모를 들었다. 박인철이 편곡하기 전의 버전, 세아의 목소리로 된 버전. 그 누군가가 원작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이름은 강리우. 나이 스물일곱, JYA 대표의 아들.
“강리우가 세아 씨를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세아는 잠깐 그 이름을 머릿속에서 굴렸다. 강리우.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왜요?”
“뭐, 새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작곡가를 찾는다고. 세아 씨 스타일이 맞을 것 같다고 했대요.”
“저한테 직접 연락하면 되잖아요.”
박인철이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면 제가 끼어들 자리가 없잖아요.”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세아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쓰고 뜨거웠다. 편의점 커피와 다른 게 있다면 — 뭔가 더 깊은 쓴맛이 있었다. 그것이 오천삼백 원의 차이인지는 몰랐다.
“저는 거기서 뭘 얻어요?”
“JYA 프로젝트 참여하면 크레딧 제대로 가져갈 수 있고, 수익 배분도 계약서에 명시해서. 이번엔 제대로 할 수 있어요.”
“이번엔.”
“그게…”
“지난번 세 곡은요.”
박인철이 입을 다물었다. 세아는 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테이블에 닿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지난번 세 곡에 대한 얘기는 없는 거예요?”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세아 씨도 알잖아요.”
알았다. 알고 있었다. 계약서에 서명한 게 없었고, 구두 합의뿐이었고, 세아가 원본 작성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데모 파일뿐이었다. 법적으로 싸우려면 돈이 들었다. 세아에게는 그 돈이 없었다. 박인철은 그것도 알고 있었다.
세아는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이 차가웠다. 아까 잠깐 녹았다가 다시 차가워진 손이었다.
“강리우 연락처 주세요.”
박인철이 잠깐 놀란 것 같았다. “바로 결정하는 거예요?”
“아니요. 만나보고 결정할 거예요. 연락처 주세요.”
박인철이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보내줬다. 세아는 저장했다. 강리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없었다. 검은 화면이었다.
세아는 아메리카노를 다 마셨다. 외투를 챙겼다.
“가요?”
“네.”
“세아 씨. 이번엔 진짜로 잘 될 거예요. 강리우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에요. 기회예요.”
세아는 일어서면서 잠깐 박인철을 봤다. 야구 모자 아래 그 눈이 진심인지 아닌지 — 세아는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판단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기회인지는 만나봐야 알죠.”
카페 문을 나서자 강남의 바람이 다시 목을 스쳤다. 높고 날카로운 바람. 세아는 코트 깃을 더 올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세아는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한참 봤다.
2호선이 교대역을 지나 합정 방향으로 달렸다. 토요일 저녁 지하철은 사람이 많았다. 세아는 손잡이를 잡고 서서 핸드폰 화면을 내리지 않았다. 강리우. JYA 대표의 아들. A&R. 나이 스물일곱.
A&R이 뭔지는 알았다. Artists and Repertoire.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음악 방향을 잡는 일. 원래는 레코드 회사의 핵심 부서였는데 지금은 스트리밍 시대가 되면서 기능이 달라졌다. 세아는 이걸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아마 새벽에 뭔가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읽은 것이었다.
강리우가 원본 데모를 들었다는 것이 자꾸 걸렸다.
원본 데모는 박인철에게 넘긴 것이었다. 세아의 목소리로 녹음된 버전. 스마트폰 녹음이었고, 배경 잡음이 있었고, 편곡도 없이 세아가 기타 코드 몇 개로 만든 뼈대만 있는 버전이었다. 그걸 들었다면 — 잘 만든 음악으로 들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만나고 싶다고 했다면.
지하철이 홍대입구역에 섰다.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진짜라면.
그 생각을 끝까지 이어가지 않았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만나봐야 알았다. 만나기 전에 기대하면 — 세아는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기대는 계산을 흐렸다. 계산이 흐리면 또 크레딧 없이 곡을 넘기는 일이 생겼다.
합정역에서 내렸다. 고시원까지 걸어서 팔 분. 세아는 걸으면서 메시지를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나세아입니다. 박인철 씨에게 연락처 받았어요. 편하신 시간에 연락 주세요.
전송하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고시원 복도를 걸어 방에 들어갔다. 스탠드를 켰다. 황색 원이 생겼다.
세아는 외투를 벗고 침대에 앉았다. 목이 아팠다. 내일 언더스코어 공연이 있었다. 모레도 있었다. 그 사이에 편의점 낮 알바 하나.
노트북을 열었다. 새 파일을 만들었다. 빈 악보가 떴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올라갔다. 그러다 멈췄다.
오늘 강남에서 본 것들이 머릿속에 있었다. 통유리 카페, 유리와 금속 건물들, 다른 질감의 코트들. 박인철의 야구 모자 아래 눈. 강리우라는 이름. 검은 프로필 화면.
세아는 악보 파일을 닫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불을 끄고 누웠다. 어두운 방에서 천장을 봤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창문이 없으니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일요일, 강리우에게서 답장이 온 건 오전 열한 시였다.
세아는 편의점 낮 알바를 시작하기 이십 분 전이었다. 고시원 공용 화장실에서 이를 닦다가 핸드폰 진동을 느꼈다. 세면대에 폰을 올려놓고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강리우입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번 주 월요일 저녁 여섯 시, 신사동 쪽 괜찮으세요? 카페 주소 보낼게요.
세아는 이를 헹구고 거울을 봤다. 합정동 고시원 공용 화장실의 거울은 가장자리가 흐릿했다. 세아의 얼굴이 약간 번진 것처럼 보였다. 머리가 묶여 있었다. 눈 밑이 어두웠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잔 흔적이었다.
답장을 보냈다.
네. 괜찮아요.
월요일까지 하루가 있었다. 그 하루 동안 세아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첫 번째는 언더스코어 일요일 공연이었다. 목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 세아는 공연 전에 생강차를 샀다 — 편의점에서 천이백 원짜리. 목을 데우면서 세트 리스트를 확인했다. 이번엔 반음 올린 곡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공연은 두 시간이었다. 마지막 곡에서 세아는 마이크 스탠드에서 반 걸음 뒤로 물러났다 — 습관처럼. 마이크와 약간 거리를 두면 소리가 퍼지면서 목에 무리가 덜 간다. 관객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세아는 그 기술을 이름 붙이지 않고 사용했다. 이름을 붙이면 실수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
공연이 끝난 후 하늘이 장비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야, 오늘 마지막 곡 좋더라.”
“어.”
“아니 원래도 좋은데 오늘은 좀 달랐어. 뭔가 네가 다른 생각 하면서 부른 것 같은 느낌? 그게 오히려 더 좋았어.”
세아는 마이크 스탠드를 접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했는지는 몰랐다. 강리우라는 이름이 노래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냥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뭔 일 있어?” 하늘이 스틱을 케이스에 넣으면서 물었다.
“아니.”
“거짓말하네. 너 ‘아니’ 하는 톤이 두 종류야. 진짜 아닌 거랑 말하기 싫은 거랑.”
세아는 마이크 선을 감았다. “JYA 쪽에서 연락 왔어.”
하늘의 손이 멈췄다. “JYA? 박소진 있는 데?”
“어.”
“뭐라고?”
“만나보자고.”
하늘이 드럼 케이스 지퍼를 잠그는 걸 잠깐 멈추고 세아를 봤다. 세아는 마이크 선을 끝까지 감았다.
“야 나세아.”
“어.”
“그쪽이 니 곡 가져간 쪽이잖아.”
“알아.”
“근데 만나?”
“그래서 만나봐야지.”
하늘이 잠깐 세아를 봤다.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것 같았다. 세아도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하늘은 케이스 지퍼를 닫고 말했다.
“밥은 먹고 가.”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야 손 봐봐. 또 얼음이잖아. 이거 생강차 한 잔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야, 밥을 먹어야지.”
“먹었어.”
“뭐 먹었어.”
“…편의점 거.”
“아 진짜.” 하늘이 케이스를 들고 일어섰다. “나 오늘 떡볶이 먹을 건데 같이 가. 거절하면 내가 JYA 사람한테 먼저 전화해서 욕할 거야.”
세아는 처음으로 오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전화번호도 없잖아.”
“찾아낼 수 있어 나.”
하늘과 함께 클럽 근처 골목 떡볶이 집에 앉았다. 작은 테이블에 냄비가 하나 올려졌다. 빨간 국물이 끓으면서 냄새가 올라왔다. 밀떡, 어묵, 달걀. 세아는 젓가락을 들었다.
따뜻했다. 손이 녹았다.
“야,” 하늘이 어묵을 건지면서 말했다. “JYA 그 사람 이름이 뭐야.”
“강리우.”
“강리우.” 하늘이 그 이름을 한 번 발음했다. “A&R이라고?”
“어.”
“그 회사 대표 강민준이잖아. 그 아들이야?”
“박인철이 그랬어.”
“와.” 하늘이 잠깐 생각하는 표정이 됐다. “야 인스타 찾아봤어?”
“아니.”
“잠깐만.” 하늘이 핸드폰을 꺼냈다. 검색하는 소리가 났다. “강리우 JYA… 어, 인스타 있다. 팔로워 칠십만이네. 와 얼굴이 좀 되네 진짜로.”
세아는 떡볶이를 먹었다. “됐어.”
“아니 봐봐 그냥.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알고 가야지.” 하늘이 핸드폰을 세아 쪽으로 밀었다.
세아는 화면을 봤다. 사진이 별로 없는 계정이었다. 마지막 업로드가 석 달 전이었다. 사진 중 하나 — 피아노 앞에 앉은 뒷모습. 배경은 어딘가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창밖에 도시가 보였다. 손이 건반 위에 있었다. 길고 마디가 굵은 손이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돌려줬다.
“뭐 어때?”
“몰라.”
“손 봤어? 피아니스트 손이던데.”
“어.”
“피아노 치는 사람이 A&R 한다고?”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떡볶이 국물에 밀떡을 담갔다.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혀에 닿았다.
피아노를 쳤던 사람이 왜 A&R을 하는지는 — 만나봐야 알 것이었다.
월요일 오전에 세아는 제주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받았다. 목소리가 낮고 조금 쉬어 있었다.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몸은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도현이가 어제 밥을 해줬다고 했다. 세아는 그 말에 잠깐 멈췄다.
“도현이가요?”
“어. 계란 볶음밥 만들어줬어. 짰는데 먹었어.”
세아는 조용히 웃었다. 웃음 소리가 나지 않았다. 입꼬리만 올라갔다.
“잘 지내제?” 어머니가 물었다. 제주 말이었다.
“네.”
“밥은?”
“먹고 있어요.”
“목소리 왜 그래. 감기 왔제?”
“아니에요.”
“거짓말.”
세아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는 항상 알았다. 전화 한 마디에. 세아가 밥을 못 먹었는지, 잠을 못 잤는지, 목이 아픈지. 제주에서 물질하던 어머니는 숨을 참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딸이 숨을 참고 있는지도 알았다.
“오늘 중요한 사람 만나요. 괜찮을 거예요.”
“중요한 사람?”
“음악 일로요.”
잠깐 침묵이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잘 되어야 할 건데.”
그게 전부였다. 잘 되어야 할 건데. 잘 될 거야, 도 아니고, 잘 하자, 도 아니고. 잘 되어야 할 건데. 세아는 그 말이 어머니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의 방식. 잘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잘 되길 바란다는 말이었다. 소원이 명령문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네.”
“도현이 대학 원서 넣는다 했제. 그거 잘 챙겨.”
“알아요.”
“세아야.”
“네.”
“밥 먹어. 진짜로.”
전화를 끊고 세아는 잠깐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있었다. 고시원 방에 혼자. 황색 스탠드 불빛 아래.
도현이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엄마한테 밥 해줬다고. 계란볶음밥.
답장이 빠르게 왔다.
ㅋㅋ짰는데 왜 말했대. 아 나 요리 못하는 거 알면서. 근데 누나 오늘 뭔 일 있어? 왜 갑자기 연락해.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그냥. 밥 잘 먹어.
도현이의 답장이 왔다.
누나가 그런 말 하면 더 불안하다 진짜로 ㅋㅋ 잘 다녀와 어디 가든.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거울 앞에 섰다. 집에 거울이 없어서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화면에 얼굴이 비쳤다. 머리가 묶여 있었다. 세아는 잠깐 그것을 봤다가 다시 묶었다. 더 단단하게.
신사동 카페는 언더스코어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름이 〈포트나이트〉였다 — 아무 의미 없는 이름이었지만 공간은 의미가 있었다. 2층짜리 건물 전체가 카페였다. 1층은 오픈 공간, 2층은 룸처럼 나뉜 구조. 음악이 흘렀다 — 세아가 모르는 재즈, 낮고 조용한 재즈. 천장이 높았다. 창문이 컸다. 저녁 여섯 시의 신사동 거리가 창밖에 걸려 있었다.
세아는 1층 입구에서 잠깐 멈췄다. 자신의 코트를 내려다봤다. 색이 바랬는지 여전히 몰랐다. 알고 싶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갔다. 박인철이 보내준 것은 아니었다 — 강리우가 직접 장소를 보냈다. 2층 창가 쪽으로 오라고. 세아가 계단을 다 올라오자 창가 자리가 보였다.
남자가 앉아 있었다.
키가 컸다 — 앉아 있어도 알 수 있었다. 비싼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약간 구겨져 있었다. 손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길고 마디가 굵은 손. 핸드폰이 아니라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저녁 신사동 거리를 보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 밑이 어두웠다. 다크서클이었다. 세아도 다크서클이 있었다. 이유가 같은지는 알 수 없었다.
세아가 가까워지자 남자가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세아는 먼저 말했다. “나세아예요.”
남자가 일어섰다. 182, 183 정도. 세아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었다. “강리우예요.”
악수를 했다. 강리우의 손이 따뜻했다. 세아의 손이 차가웠다. 그 온도 차이가 0.2초 동안 느껴졌다. 강리우의 눈이 아주 잠깐 세아의 손을 내려다봤다가 다시 얼굴로 왔다.
둘이 앉았다.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았다. 강리우가 먼저 주문했다 — 에스프레소. 세아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직원이 가고 나서 잠깐 침묵이 있었다.
강리우가 먼저 말했다. “데모 들었어요.”
세아는 기다렸다.
“박인철 씨가 처음 가져왔을 때 들었는데, 그때는 그냥 지나쳤어요. 편곡 들어가기 전 버전이라 퀄리티가 좋지 않았고. 근데 박소진 씨 발매 버전 나오고 나서 다시 원본을 찾아 들었어요.”
“왜요?”
“두 버전이 달랐으니까.”
세아는 잠깐 그 말을 씹었다. “어떻게요.”
“박소진 씨 버전은 좋아요. 잘 만들어진 곡이에요. 차트에 오를 만하게. 근데,” 강리우가 잠깐 멈췄다. “원본에 있는 게 없어요.”
“원본에 있는 게 뭔데요.”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직접적인 시선이었다.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 그냥 보고 있었다.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그게 뭔지 설명이 안 돼서요.”
세아는 그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설명이 안 되는데 찾아서 들었어요?”
“설명이 안 되는 게 드물어서요. 대부분의 음악은 설명이 돼요. 이건 왜 좋은지, 이건 왜 차트에 오르는지. 공식이 있어요. 근데 그 원본은 공식 밖에 있었어요.”
음료가 나왔다. 강리우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세아는 아메리카노를 두 손으로 쥐었다. 손이 녹았다.
“그 곡 어떻게 썼어요?”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어떻게 썼는지. 고시원 복도에서 들은 할머니의 전화 통화. 낮게 가라앉는 목소리의 억양. 어머니의 숨비소리.
“들었어요.”
“뭘요.”
“소리를요. 사람 소리.”
강리우가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놓았다. “사람 소리.”
“누군가가 전화 통화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안 들렸어요. 억양만 들렸어요. 그 억양이 — 어떤 사람이 끝날 것 같은데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의 소리 같았어요. 그걸 멜로디로 옮겼어요.”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조금 전과 다른 시선이었다. 아까는 확인하는 시선이었다면, 지금은 — 세아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멈춘 것 같은 시선이었다.
“끝날 것 같은데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의 소리.” 강리우가 천천히 그 말을 반복했다.
“그게 그 곡이에요.”
잠깐 침묵이 있었다. 창밖에서 신사동의 저녁이 더 어두워졌다. 카페 안 조명이 상대적으로 밝아졌다.
강리우가 말했다. “그 멜로디, 2절에서 반음 올리면 더 아플 것 같은데요.”
세아가 멈췄다.
그 말이 세아의 어딘가에 걸렸다. 정확히. 2절에서 반음을 올리면 —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곡을 썼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데모에는 넣지 않았다. 원본을 그대로 두고 싶었기 때문에. 아직 그 가능성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강리우가 들었다는 것이었다. 곡 안에 있는 아직 쓰이지 않은 가능성을.
세아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웠다.
“알아요.”
“왜 안 넣었어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서요.”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잠깐. 그리고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동의하는 것인지 다른 뭔가인지 알 수 없었다.
“저는 프로젝트 하나를 준비 중이에요.” 강리우가 말했다. “신인 아티스트 론칭인데, 기존 JYA 방식과는 다르게 가고 싶어요. 작곡가의 이름이 제대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크레딧, 저작권, 수익 배분 — 전부 계약서에 명시하고 투명하게.”
“JYA가 그걸 허락해요?”
“제가 담당 프로젝트예요.”
“아버지가 대표잖아요.”
강리우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변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의 변화였다. 눈가가 아주 조금 좁아졌다가 돌아왔다.
“맞아요. 아버지가 대표예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도 제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예요.”
세아는 그 대답에서 뭔가를 읽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 아버지가 대표라는 사실이 그에게 이점도 되고 무언가 다른 것도 된다는 것 같은.
“저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세아가 직접적으로 물었다.
“세 곡이요. 이 프로젝트를 위한 오리지널 곡 세 곡. 아티스트에 맞게 쓴 곡이어야 해요.”
“아티스트가 누구예요.”
“아직 확정 전이에요. 나세아 씨가 합류하면 같이 결정하고 싶어요.”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계산했다. 세 곡. 크레딧. 계약서. JYA 프로젝트. 박인철 없이 직접. 강리우가 담당.
“저한테 다른 곡도 있어요.” 세아가 말했다.
“알아요.”
“어떻게요.”
“〈창가에서〉 같은 곡을 쓰는 사람이 곡이 하나일 리 없으니까요.”
세아는 잠깐 강리우를 봤다. 이 사람이 틀린 말을 했는지 맞는 말을 했는지 판단하지 않았다. 그냥 사실이었다. 세아에게는 다른 곡들이 있었다. 노트북 안에, 포스트잇에, 머릿속에. 아직 데모도 만들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조건이 있어요.”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가 기다렸다.
“지난번 세 곡 얘기를 먼저 해야 해요. 박인철 씨 통해서 넘어간 것들. 크레딧 없이 간 것들.”
강리우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이번엔 조금 더 분명했다. 뭔가를 아는 표정이었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만나자고 한 것도 있어요.”
세아는 잠깐 말을 멈췄다. 강리우가 지난번 세 곡을 알고 있다는 것이 — 무슨 의미인지 빠르게 계산이 돌아갔다. 그게 사과인지, 협상 카드인지, 진짜로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어떻게 알아요.”
“사내 작곡팀 크레딧으로 올라간 곡들이 있어요. 그 중에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었어요. 제가 A&R 오면서 파일 정리하다가 박인철 씨 원본들을 찾았는데, 그 중에 나세아 씨 목소리가 있는 데모가 두 개 더 있었어요.”
세아는 숨을 잠깐 참았다. 두 개. 〈창가에서〉 말고 두 개가 더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어떻게 됐어요.”
“아직 아무것도 안 됐어요. 제가 갖고 있어요.”
“왜요.”
“만나기 전에 먼저 처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이 사람을 믿어야 하는지 아닌지. 판단할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박인철도 처음엔 좋은 말을 했다.
그러나 강리우가 한 것 — 만나기 전에 먼저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 — 그것은 박인철이 한 것과 달랐다.
“그 두 곡 돌려줄 수 있어요?”
“원본 파일이요?”
“네.”
“줄 수 있어요.” 강리우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지금 바로 보내줄게요.”
핸드폰을 꺼냈다. 몇 번 조작했다. 세아의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카카오톡. 파일 두 개.
세아는 파일을 받았다. 이름을 확인했다. 자신이 작년에 만든 것들이었다. 하나는 제목이 〈썰물〉이었고, 하나는 제목이 없었다. 그냥 날짜만 있었다. 세아가 파일 이름을 짓는 방식이었다.
손이 약간 떨렸다. 차가워서 그런 것인지 다른 이유인지 — 세아는 구분하지 않았다.
“〈창가에서〉는요.” 세아가 말했다.
“그건 이미 발매된 거라 복잡해요.” 강리우가 솔직하게 말했다. “법적으로 원작자 소송을 걸면 가능한데, 시간과 비용이 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 회사 내부적으로 나세아 씨가 원작자라는 걸 공식화하고, 향후 스트리밍 수익 일부를 소급해서 정산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거예요. 보장은 못 해요. 아버지가 반대할 수도 있어요.”
“반대하면요.”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해야죠.”
세아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뭔가를 결정하는 중이었다. 완전히 믿지 않았다. 완전히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 사이 어딘가에 지금 세아가 있었다.
“계약서 먼저 봐야 해요.” 세아가 말했다.
“당연하죠.”
“법무 검토도 해야 해요.”
“맞아요.”
“그리고.” 세아가 잠깐 멈췄다. “저는 곡을 쓸 때 간섭받기 싫어요. 방향 얘기는 할 수 있는데, 완성된 곡에 손대는 건 싫어요.”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이번엔 좀 더 오래 봤다. 세아는 그 시선 아래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것이 협상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