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3화: 박인철의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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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화: 불꽃 없는 날들

홍대 클럽 ‘언더스코어’의 무대 조명은 항상 파란색이었다.

파란색이라고 해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곳의 파란색은 수면 직전의 그것 — 완전히 어둡지는 않고,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깊은 물속 같은 색. 세아는 그 빛 아래 서면 자신이 조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 더 오래된 자신이 되는 것 같다고. 제주 바다에서 물질하는 어머니의 딸이었던 시절의 나세아. 아직 계산을 몰랐던 시절.

오늘은 목요일 밤이었다. 세아는 무대 왼쪽 끝에 서서 스탠드 마이크의 높이를 손바닥으로 가늠했다. 매주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서지만, 마이크 스탠드의 높이가 조금씩 다르다. 전에 쓴 사람이 키가 크면 올라가 있고, 작으면 내려가 있다. 세아는 항상 자기 높이로 다시 맞춘다. 이것이 유일하게 자신이 이 무대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다.

“야, 나세아.”

드럼 세트 뒤에서 오하늘이 스틱을 한 손에 들고 불렀다. 오늘은 드러머가 갑자기 아파서 빠졌고, 하늘이 긴급 대타로 들어왔다. 하늘은 드럼을 치지 않는다고 항상 말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급할 때마다 드럼 뒤에 앉아 있었다.

“어.”

“오늘 세트 리스트 확인했어? 마지막에 〈밤의 끝에서〉 추가됐다.”

“알아.”

“키 올렸대. 원래보다 반음.”

“…알겠어.”

세아는 감정 없이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잠깐 계산했다. 반음이 올라가면 마지막 고음 부분에서 목에 무리가 간다. 이미 이번 주에 두 번 공연을 했고, 어제 편의점 알바를 서다가 에어컨 바람을 정면으로 맞았다. 목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트 리스트를 바꾸자는 말을 꺼내려면 밴드 리더인 정호에게 말해야 하고, 정호는 지금 저쪽에서 기타 줄을 조율 중이고, 정호는 세아가 컨디션 얘기를 꺼내면 늘 “뭐, 아프면 빠지든가”라고 한다. 빠지면 오늘 공연료 오만 원이 없어진다. 오만 원이 없어지면 이번 달 어머니 약값 계산이 다시 틀려진다.

반음 올라가도 된다.

“됐어.”

하늘이 세아를 잠깐 봤다. 그 눈빛이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 세아는 마이크 스탠드를 마저 조정했다. 하늘은 스틱으로 스네어를 한 번 두드리고 말았다.


언더스코어는 홍대 정문에서 걸어서 팔 분, 골목 두 개를 꺾어 들어가면 나오는 지하 클럽이었다. 정확히는 지하 일 층 반 — 입구 계단을 열네 개 내려가면 나오는 구조. 천장이 낮아서 키 큰 사람은 환풍기에 머리가 닿을 뻔했다. 수용 인원은 팔십 명이지만 실제로 팔십 명이 들어오면 숨이 막혔다. 담배 연기, 생맥주, 오래된 나무 바닥에 밴 무언가의 냄새 — 이것이 언더스코어의 냄새였다. 세아는 이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사람들이 진짜로 음악을 들으러 오는 곳에서 나는 냄새였다. 인테리어를 위해 오는 게 아니라.

세아가 이곳에서 세션 보컬 일을 시작한 건 일 년 반 전이었다. 처음엔 주 이 회, 지금은 주 삼 회. 고정 공연료가 오만 원이고 팁이 가끔 추가됐다. 팁은 보통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가끔 술에 취한 손님이 오만 원을 주고 갔는데 그런 날은 세아가 편의점 야간 알바를 안 나가도 됐다. 그런 날이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다.

하우스 밴드는 세 명이었다. 정호 — 리더 겸 기타, 삼십 이 세, 마르고 안경을 쓰고 말이 없다. 지수 — 베이스, 이십 칠 세, 항상 이어폰 한쪽을 끼고 다닌다. 그리고 오늘은 하늘이 임시로 드럼을 맡았다.

세아는 이들과 일 년 반을 함께 일했지만 서로 집이 어딘지, 가족이 어떤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 모른다. 정호는 세아에게 밥을 먹었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세아도 정호에게 묻지 않는다. 이것이 이 공간의 규칙이었다. 음악 앞에서 잠깐 같이 있다가 끝나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은 음악에 대한 것뿐이었다.

세아는 그게 편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공연은 아홉 시에 시작했다. 평일 목요일이라 관객은 오십 명쯤 됐다. 앞줄에 커플이 몇 쌍, 중간에 혼자 온 사람들, 뒷줄에 맥주를 들고 이야기하는 무리들. 세아는 무대에 서면서 한 번 훑어봤다. 무대 조명이 눈을 찌르기 전에 하는 습관.

정호가 첫 코드를 짚었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도, 노래를 시작하려는 순간마다 세아의 몸에서는 뭔가가 바뀐다. 호흡이 달라지는 게 아니다 — 그것보다 더 아래에서. 마치 어딘가에 꽉 쥐고 있던 것을 손을 펴고 내려놓는 것처럼. 제주에서 어머니가 물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크게 숨을 들이마시던 것처럼. 그리고 나서 — 뛰어들었다.

창가에 서면 / 네가 생각나는 게 / 계절 탓이라고 / 했는데

노래는 자신의 곡이 아니었다. 커버였다. 인디 씬에서 유명한 밴드의 발라드 — 세아는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사가 너무 직접적이었다. 음악은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세아는 생각했다. 말하지 않고도 느끼게 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 곡은 전부 설명했다.

그래도 노래했다. 설명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이 곡이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이 직접적인 가사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세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노래했다.

두 번째 곡, 세 번째 곡. 세아의 목이 서서히 풀렸다. 아프던 게 아프지 않아지는 게 아니라 — 아픈 것을 잊어버리는 거였다. 노래하는 동안은 목이 얼마나 상했는지 계산하는 부분이 잠깐 꺼지는 것 같았다. 그게 좋았다. 계산이 꺼지는 것이.


공연 중간 쉬는 시간이었다. 세아는 무대 뒤 좁은 대기 공간에서 물을 마셨다. 플라스틱 생수병, 500ml. 이것도 사비였다. 언더스코어에서 공연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없었다. 정호는 항상 자기 텀블러를 가져왔다. 지수는 편의점 아메리카노를 샀다. 세아는 생수를 샀다. 가장 싸니까.

“야.”

하늘이 드럼 스틱을 허벅지에 두드리며 세아 옆에 앉았다.

“오늘 목 괜찮아?”

“응.”

“그 ‘응’ 이 안 괜찮다는 거 알거든.”

“…괜찮아.”

“나세아.” 하늘이 드럼 스틱을 멈췄다. “어제 박인철한테 연락했어?”

세아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아니.”

“왜?”

“뭐라고 해.”

그건 질문이었다. 하늘에게 물어보는 것 — 세아가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답이 안 나오는 것. 뭐라고 하냐고. 내 곡이 내 이름 없이 나왔어요, 라고? 크레딧을 돌려달라고? 그렇게 말했을 때 박인철이 뭐라고 할지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할 것이다. 계약서 같은 건 없었다. 구두로 했다. 믿었으니까.

하늘이 한숨을 쉬었다. 짧고 날카로운 것 — 화가 난 것인데 세아에게 내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종류.

“야. 나 그 인간 진짜 킹받거든.”

“…”

“어떻게 사람 이름을 그냥 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함의 체급이 다르다 진짜.”

세아는 생수병 뚜껑을 돌렸다. 열었다가 닫았다가. “박소진은 몰랐을 거야. 회사에서 한 거지.”

“그래서 더 열받지 않아? 회사가 했으면 더 나쁜 거 아니야? 조직적으로 한 거잖아.”

“…”

“나세아. 너 지금 이게 화 안 나?”

세아는 잠깐 있었다. 창문 없는 방에서 멜론 차트를 보던 새벽이 다시 왔다. 박소진, 〈창가에서〉. 작곡/편곡: Park In-chul. 그 글자들을 보며 세아가 느꼈던 것. 그것이 화인지 아닌지 세아는 아직도 몰랐다. 화라는 건 뭔가 불 같은 게 올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 세아에게는 그 대신 무언가가 아래로 가라앉았다. 돌멩이처럼. 제주를 떠나던 뱃전에서도 이런 것이었다.

“나중에 생각해.”

“나중에.” 하늘이 그 말을 그대로 뱉었다. 마치 그 말의 무게를 재는 것처럼. “야, 너 나중에 나중에 미루다가 〈창가에서〉 멜론 백만 스트리밍 찍으면 어떡할 거야.”

“…”

“야!”

“그냥 하던 거 마저 하자.”

세아는 일어섰다. 하늘이 뒤에서 작게 욕을 했다 — 세아를 향한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한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등으로 들었다.


공연이 끝난 건 열한 시 반이었다.

마지막 곡 〈밤의 끝에서〉에서 세아의 목이 마지막 고음 구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조금 더 밀었다면 갈라졌을 것이다. 세아는 한 박 일찍 내려오는 것으로 처리했다 — 관객 중에 알아챈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없었을 수도 있다. 정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정호가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잘 됐다는 뜻이었다.

공연료를 받았다. 오만 원, 현금. 정호가 봉투에 담아 건넸다. 세아는 가방 안쪽 지퍼 포켓에 넣었다. 이 돈은 카드 결제가 안 됐다. 현금이어야 했다 — 현금은 통장 기록에 안 남으니까. 기초생활수급자 어머니의 수급비가 줄어들지 않도록.

이것도 계산이었다.

하늘이 드럼 가방을 어깨에 메면서 따라왔다. 둘은 언더스코어 계단을 함께 올랐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열 네 계단. 올라올 때마다 세아는 숨을 한 번 더 들이마셨다 — 냄새가 바뀌는 것을 느끼려고. 담배 연기에서 서울 밤의 공기로. 이것이 이 클럽에서 좋아하는 몇 가지 중 하나였다.

지상은 차가웠다. 십일월 중순이었다. 세아는 코트 깃을 세우지 않았다. 차가운 것이 목에 좋을 것 같았다.

“밥 먹었어?”

“응.”

“언제.”

“…어제.”

“야!!!”

하늘이 목소리를 높였다. 골목에 울렸다. 지나가던 커플이 흘낏 봤다.

“편의점 거 아무거나 먹어. 지금 당장.”

“돈 있어.”

“내가 사줄게. 돈 얘기 한 게 아니야.”

하늘이 앞에 있는 GS25로 걸어가면서 팔을 잡아당겼다. 세아는 끌려갔다. 저항하지 않은 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 하늘이 이 얼굴을 할 때 버티는 게 오히려 에너지가 더 들었기 때문이다.

편의점 안은 밝았다. 형광등 — 세아가 매일 밤 여섯 시간씩 그 아래 서는 것과 같은 종류. 하늘은 삼각김밥 두 개와 따뜻한 캔 옥수수수프를 골랐다. 세아는 가만히 서 있었다.

“참치마요 아직도 좋아해?”

“응.”

“그럼 이거.” 하늘이 삼각김밥을 건넸다. “앉아서 먹어. 서서 먹으면 소화 안 돼.”

둘은 편의점 안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하늘은 자기 것도 하나 샀다. 쌈장 버섯 비빔밥 삼각김밥 — 취향이 항상 특이했다.

세아는 참치마요 삼각김밥 포장을 뜯었다. 셋, 둘, 하나 순서대로 당겼다. 세아가 어릴 때 삼각김밥을 처음 먹었을 때 이 포장법이 신기해서 세 번을 반복했었다. 도현이도 그랬었다. 삼각김밥 포장은 마법이라고. 그 생각을 하다가 한 입 먹었다.

따뜻했다. 밥이 따뜻했다.

세아는 잠깐 눈을 내려뜨렸다가 다시 올렸다.

“하늘아.”

“응.”

“박인철한테 연락하면 뭐라고 해야 해.”

하늘이 씹던 걸 멈췄다. 그리고 삼각김밥을 내려놨다. 이게 진짜 질문이라는 걸 알아챈 것이었다. 아까는 혼잣말처럼 했는데 지금은 묻고 있다는 것을.

“일단,” 하늘이 천천히 말했다. “그게 네 곡이라는 증거 있어?”

“메모장에 있어. 작성 날짜 찍혀 있고.”

“핸드폰 메모장?”

“응.”

“그거 법적으로 얼마나 효력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늘이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박인철한테 연락해서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봐. 직접적으로. ‘그 곡 어떻게 된 거냐’가 아니라 ‘내 곡이 네 이름으로 나왔는데 어떻게 된 거냐’라고.”

“…”

“말 못 하겠어?”

“무슨 말이 돌아올지 알아서.”

“어떤 말?”

세아는 삼각김밥을 한 번 더 먹었다. 씹으면서 생각했다. 박인철의 목소리 — 항상 약간 귀찮은 듯한, 그러나 무시하지는 않는 그 온도. 어차피 네가 들고 나온 데모잖아. 내가 편곡 다 바꿨고. 원곡이랑 많이 달라. 그런 말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편곡이 달라지면 얼마나 같은 곡인가. 세아는 그것을 잘 몰랐다. 법적으로. 음악적으로는 같은 곡이라는 걸 알지만.

“모르겠어. 그래서 못 하겠어.”

솔직한 말이었다. 하늘이 잠깐 세아를 봤다.

“야. 나세아.”

“응.”

“너 진짜 이상해.”

“알아.”

“아니 이상하다고. 노래할 때 얼마나 다른데. 무대에 서면 완전 달라지잖아. 근데 무대 내려오면 또 이렇게 되고.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달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늘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까. 무대 위에서는 —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계산이 꺼지고, 계획이 꺼지고, 두려운 것이 꺼지고. 그냥 소리만 있었다. 그 소리가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그 소리가 공기를 타고 저쪽 관객에게 가닿는 것이고, 그 사람들의 얼굴이 아주 잠깐 무언가를 느끼는 것. 그것이 세아가 아는 가장 직접적인 연결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그러나 무대 아래에서는 — 다시 계산이 시작됐다.

“무대 위에서만 사람인 것 같아.”

세아가 말했다. 혼잣말처럼. 하늘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말 하지 마.” 하늘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야. 그런 말 하지 마. 진짜로.”

“나쁜 뜻이 아니야. 그냥 그때가 제일 나다운 것 같다고.”

“…”

“다 먹었어. 고마워.”

세아는 포장지를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확하게, 한 번에. 하늘은 아직 삼각김밥을 들고 세아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뭔가를 담고 있었는데 — 세아는 그것을 끝까지 받지 않았다.


합정동 고시원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이었다. 하늘과 헤어지고 혼자 걷는 길. 한강변 쪽으로 돌아가면 이십 분이 됐지만 세아는 가끔 그쪽으로 걸었다. 오늘도 그쪽으로 걸었다.

한강이 보이는 곳까지 나오면 바람이 달랐다. 서울의 바람은 건물 사이를 타고 오는데 한강 쪽 바람은 막을 것이 없어서 그냥 넓게 왔다. 세아는 난간에 기대지 않고 바람을 마주 봤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쳤다. 묶고 왔는데 잔머리가 빠져나온 것이었다.

공연료 오만 원. 이번 달 남은 공연이 두 번 더 있으면 십오만 원. 편의점 알바가 월 구십이만 원. 합이면 백칠만 원. 고시원 월세 삼십오만 원. 어머니 약값 사십만 원. 도현이 학원비 십오만 원. 공과금이랑 핸드폰 요금 합쳐서 대략 십만 원. 남는 게 칠만 원이었다. 이 칠만 원이 세아의 한 달치 식비였다.

하루에 이천삼백삼십삼 원.

세아는 그 숫자를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편의점 도시락이 사천오백 원이니까 하루에 하나도 안 됐다. 그래서 이틀에 하나 먹거나, 아니면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 할인될 때 사거나. 편의점 알바를 하면 가끔 처리 못 한 삼각김밥을 버리는 시간에 맞춰 있으면 됐다. 점장은 모른 척 했다 — 아마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것이었다. 세아는 그 모른 척에 감사하는 동시에 그 감사함이 불편했다.

한강이 검었다. 가로등이 물 위에서 흔들렸다. 세아는 그것을 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했다 — 물속에서 올라올 때 어머니의 얼굴. 숨을 참고 참다가 수면 위로 터져 나올 때 내는 소리. 숨비소리. 세아는 그 소리를 기억했다. 어머니 목소리의 가장 날 것 — 아름답다기보다 살아있다는 증거에 가까운.

어머니 목소리를 닮은 곡을 쓰고 싶다.

생각이 왔다가 갔다. 세아는 핸드폰을 꺼내서 메모장을 열었다. 거기에 뭔가를 적었다. 코드가 아니라 단어였다.

넓다, 차갑다, 그래도 간다.

그게 전부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중에 새벽에 이게 멜로디가 될 것이었다. 아니면 안 될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적어놔야 했다.

핸드폰을 다시 넣으려는데 카카오톡 알림이 떴다.

발신인: 나도현 🐹

누나 자?

세아는 손가락으로 열었다.

안 자.

ㅋㅋ 역시. 지금 어딘데.

밖.

밖이 어딘데 밖이야. 범위가 너무 넓음.

한강.

…왜????

그냥.

아 진짜 누나는 ㅋㅋ 거기 있음 춥잖아. 들어가.

괜찮아.

잠깐 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카카오톡 입력 중 표시가 떴다 — 도현이가 뭔가를 쓰다가 지우는 것이었다. 두 번, 세 번. 세아는 그것을 보면서 기다렸다.

누나. 오늘 공연 어땠어?

잘 됐어.

목은? 아까 통화할 때 좀 쉰 것 같던데.

괜찮아.

ㄹㅇ? 거짓말 아니지?

ㄹㅇ.

ㅋㅋㅋ 누나 ㄹㅇ 쓰는 거 항상 웃김. 아무튼 따뜻하게 들어가. 감기 걸리면 노래 못 한다고.

알아. 자라.

응. 잘 자 누나.

세아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도현이가 말하지 않은 것을 세아는 알고 있었다. 학원비 고맙다는 말. 엄마 약값 고맙다는 말. 그 말들을 도현이는 항상 삼킨다. 세아도 삼킨다. 그것이 남매 사이의 규칙이었다.

바람이 한 번 더 왔다.

세아는 돌아섰다.


고시원에 들어온 것은 자정이 막 넘은 시간이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세아는 발소리를 죽이며 2호실 앞에 섰다. 열쇠를 꺼냈다. 문을 열었다.

창문 없는 방. 스탠드를 켰다. 황색 원.

가방을 내려놓고 코트를 걸었다. 노트북을 켰다. 항상 켜는 순서가 있었다 — 스탠드, 노트북, 플러그 확인. 플러그가 제대로 꽂혀 있는지 두 번 확인했다. 그다음 노트북이 부팅되는 동안 세아는 벽의 포스트잇들을 봤다.

노란색: 완성된 것. 세 장. 그 중 두 장은 이미 박인철에게 넘긴 것들이었다. 하나가 〈창가에서〉. 하나가 〈같은 하늘 아래〉 — 이것은 아직 차트에 나오지 않았다.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른다. 아니면 이미 어딘가에서 다른 이름으로 나오고 있을 수도 있다.

세아는 그 노란 포스트잇을 떼었다. 두 장. 손에 들고 봤다. 거기에는 코드 진행과 가사 초안이 적혀 있었다. 세아의 필체 — 좁고 붙어 있는 글자들. 이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증거였다. 그러나 이 종이는 아무 효력이 없었다. 포스트잇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

노트북이 켜졌다.

세아는 의자에 앉아서 멜론 페이지를 열었다. 박소진, 〈창가에서〉. 스트리밍 수가 어제보다 늘었다. 댓글이 오백 개가 넘었다.

이 노래 진짜 좋다. 오늘 내내 들었어.

처음 들었는데 왜 이렇게 울컥해. 소진이 감성 미쳤다.

작곡가가 누군지 몰라도 진짜 천재인 듯.

세아는 그 댓글에서 시선을 멈췄다.

작곡가가 누군지 몰라도.

Park In-chul. 박인철. 그 이름이 거기 적혀 있었다.

세아는 댓글창을 닫았다. 노트북 화면에 새 문서를 열었다. 오늘 한강에서 메모한 것 — 넓다, 차갑다, 그래도 간다. 이것을 바탕으로 뭔가를 시작했다. 코드를 하나 적었다. Am. 그다음 F. 그다음 — 손이 멈췄다.

귓속에 〈창가에서〉의 후렴이 돌아왔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 멜로디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온몸으로, 손끝으로, 그날 새벽 아랫집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 —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 하는데, 뭔가를 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지금 세아에게 남은 에너지는 내일 편의점 알바를 나가는 것과 다음 주 공연에서 목이 안 나가도록 쉬는 것으로 이미 배분되어 있었다.

Am, F.

세아는 다시 코드를 적기 시작했다.

새벽에는 노래가 써진다. 이건 그냥 사실이었다. 낮에는 쓸 수 없다. 낮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이 간다. 새벽에만 — 자정이 지나고 세상이 조금 얇아지는 시간에 — 세아의 것이 나왔다.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 고시원 복도에서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무시했다. 복도에서 소리가 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누군가 늦게 들어오는 것, 화장실 가는 것, 가끔 전화 통화 소리. 그런데 오늘은 소리가 특이했다.

음악이었다.

정확히는 누군가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복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세아의 방 바로 앞 — 2호실과 3호실 사이 공간. 볼륨이 크지 않아서 곡이 뭔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음악이 가끔 멈추고 다시 시작됐다. 같은 부분을 반복하는 것처럼.

세아는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귀를 기울였다.

피아노였다. 그것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부분이 — 전조 직전인 것 같았다. 코드가 바뀌기 직전의 긴장 구간. 거기서 계속 멈추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세아는 문 쪽을 봤다. 열두 시가 넘었고 고시원 규칙상 복도에서 소리를 내면 안 됐다. 그러나 이웃이 뭘 하든 간섭하지 않는 것이 또한 고시원의 불문율이었다.

세아는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피아노 소리가 — 귀에 걸렸다.

전조 직전의 그 구간. 세아는 그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음도 아니고 온음도 아니고, 그 사이 어딘가. 세아의 손이 공중에서 움직였다 — 피아노가 없어서 소리는 안 났지만 손가락이 코드를 짚는 모양을 했다.

E7. 거기서 E7로 가야 했다. 그러면 Am이 해결됐다.

복도의 음악이 또 멈췄다.

세아는 자기도 모르게 일어섰다. 그리고 문 앞에 섰다. 열까 말까 — 잠깐 있었다. 열두 시가 넘었다. 이상한 짓이었다. 문을 열어서 뭐라고 할 것인가. 거기서 E7 쓰면 되는데요?

세아는 문을 열었다.

복도는 좁고 형광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 그 형광등 아래, 2호실과 3호실 사이 공간에 —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컸다. 비싼 코트를 입었는데 구겨져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이어폰 한쪽을 끼고 있었다 —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데 소리가 새나온 것이었다. 눈 아래 다크서클. 머리가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세아를 봤다.

세아는 그를 몰랐다. 이 고시원에서 본 적이 없었다.

남자가 먼저 말했다.

“…죄송합니다. 소리가 새나왔나요?”

목소리가 낮았다. 당황한 것 같은데 표정이 거의 없었다. 핸드폰을 즉시 주머니에 넣었다.

“네.”

“다시 이어폰 확인하고 들었는데, 설마 새나올 줄은 몰랐어요.”

“…”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면서 세아를 봤다.

세아는 그를 한 번 더 봤다. 이 고시원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비싼 코트 — 이 고시원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그런데 코트가 구겨진 것이 며칠째 그냥 입고 다닌 것처럼 보였다.

“그 곡.”

세아가 말했다. 남자가 멈췄다.

“마지막에 반복하던 부분이요.”

“…” 남자가 세아를 봤다. “들렸어요?”

“네. 전조 직전 구간이요.”

남자의 표정이 아주 조금 바뀌었다. 놀란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미세한 변화.

“E7으로 가면 돼요.”

세아는 그 말만 하고 방문을 닫으려 했다.

“잠깐요.”

남자가 말했다. 세아는 문을 반쯤 닫다가 멈췄다. 복도 형광등이 깜빡였다. 이 고시원의 형광등도 편의점 것처럼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E7인지.”

“…그 코드 진행이요. Am에서 F 갔다가 C 거쳤으면 E7이 자연스러워요.” 세아는 잠깐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근데 자연스러운 게 맞는 건 아니에요. 그 곡에서 뭘 원하는지에 따라 달라요.”

남자가 말이 없었다.

“됐어요?”

“그 곡에서 뭘 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아는 문 손잡이를 쥔 채로 남자를 봤다. 이상한 질문이었다. 새벽 한 시에 고시원 복도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할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질문이 — 진심이었다.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로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이었다.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 곡 누가 쓴 거예요?”

남자가 잠깐 있었다.

“제가요.”

“그럼 본인이 알아야죠.”

세아는 문을 닫았다.


방으로 들어와서 세아는 의자에 앉았다. 노트북 화면에 Am, F가 그대로 있었다. 세아는 거기에 손을 얹었다.

E7.

그 남자의 곡에서 자신이 E7이라고 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봤다. Am에서 F, C를 거치는 진행 — 그게 그리움의 코드였다. 돌아오고 싶은데 돌아갈 수 없는 것. E7은 거기서 가장 긴장을 쌓는 선택이었다. 해결되기 직전의 불안정. 그것이 맞다고 느꼈다.

근데 그 남자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었다.

세아는 그 말을 되짚었다. 그 곡에서 뭘 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곡을 쓰는 사람이 자기 곡에서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세아도 가끔 — 자신이 이 곡을 왜 쓰는지 모를 때가 있었다. 쓰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작곡이었다.

노트북에 F 다음에 C를 적었다. 그 다음에 E7. 그 다음에 Am.

원이 됐다. 돌아오는 것.

세아는 그 코드 진행을 바탕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소리가 거의 나지 않게, 숨처럼. 창문이 없는 방이어서 밖에 들릴 일은 없었다. 그 멜로디가 한강에서 메모한 단어들과 맞닿는 것을 느꼈다. 넓다, 차갑다, 그래도 간다.

새벽 두 시가 됐다.

세아는 노트북에 코드를 계속 적었다. 가사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어들이 따로따로였다가, 그 다음에 연결됐다가, 그 다음에 한 줄이 됐다.

넓은 것들은 대부분 차갑다 / 그래도 우리는 건넌다

세아는 그 줄을 보고 잠깐 있었다. 이것이 누구에 대한 것인지 몰랐다. 어머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한강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 아니면 오늘 밤 일 년 반 만에 처음으로 라디오에서 자신의 멜로디를 들었을 때 느낀 것에 대한 것일 수도 있었다. 뭔가 가라앉으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것.

포스트잇을 뜯었다. 초록색 — 진행 중인 것.

거기에 코드와 가사 첫 줄을 옮겨 적었다. 벽에 붙였다.

복도가 조용했다. 그 남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세아는 노트북 화면을 봤다. Am, F, C, E7, Am. 그리고 가사 첫 줄. 이것이 오늘 밤의 것이었다. 내일이 되면 이게 좋은지 나쁜지 다시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지금은 그냥 있는 것이었다.

플러그를 다시 확인했다. 꽂혀 있었다.

세아는 노트북을 닫지 않고 이불을 당겼다. 옷을 입은 채로. 스탠드는 켜둔 채로. 이것이 세아의 잠드는 방식이었다 — 완전히 끄지 않은 채로. 언제든 일어나서 계속할 수 있도록.

눈을 감으면서 오늘을 정리했다. 편의점 알바 없는 날. 공연, 오만 원. 하늘이 사준 삼각김밥. 한강 바람. 도현이 카카오톡. 그리고 — 고시원 복도에서 만난 남자. E7. 그 남자의 질문.

그 곡에서 뭘 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아는 그 질문을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의 곡들은 — 무엇을 원했던 걸까. 〈창가에서〉. 지금 쓰는 이것. 앞으로 쓸 것들. 세아는 그것들이 타인에게 닿기를 원했다. 누군가가 이 멜로디를 듣고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게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 그 타인이 세아 자신이어도 됐을까.

그 생각이 왔다가 갔다. 세아는 잠들었다.


다음 날 오후였다.

세아는 편의점 알바 전에 고시원 공용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공용 주방은 작았다 — 2구짜리 가스레인지 하나, 냉장고 하나, 싱크대. 냉장고에는 각 방 번호를 쓴 칸막이가 있었다. 세아의 칸에는 두부 반 모와 계란 두 개가 있었다. 오늘은 라면에 계란을 넣기로 했다.

라면이 끓어오르는 동안 세아는 핸드폰을 봤다. 박인철에게 문자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제부터 생각했다. 하늘이 말한 것처럼 — 직접적으로 물어봐야 했다. 그러나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이 가스레인지 써도 되나요.”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세아는 돌아봤다.

어젯밤 복도의 남자였다.

낮에 보니까 더 선명했다. 키가 크고 피아니스트의 손 — 그렇다고 세아가 생각했다. 마디가 굵고 길었다. 그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어젯밤과 같은 코트였다. 구겨진 그대로.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 이 고시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었다. 남자는 손에 편의점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GS25 — 세아가 일하는 곳과 같은 체인. 봉지에서 컵라면을 꺼냈다.

“뜨거운 물은 저기 정수기요.”

세아가 말했다. 남자가 정수기 쪽을 봤다.

“감사합니다.”

“…”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세아는 라면을 젓고, 남자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었다. 공용 주방의 특성상 동선이 겹쳤다. 어색한 것이 아니라 — 그냥 좁은 것이었다.

“어젯밤 말이에요.”

남자가 컵라면 뚜껑을 닫으면서 말했다.

“응.” 세아는 반말이 나온 것을 인식하고 다시 고쳤다. “네.”

“E7. 써봤어요.”

“…”

“맞더라고요.”

세아는 라면 냄비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물었다. “어떻게요.”

“제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됐어요. E7으로 가니까.”

세아는 잠깐 있었다. 그 말이 이상했다. 이상한데 이해가 됐다. 코드가 자신에게 답을 줬다는 것. 음악이 그런 것이었다 — 쓰기 전에는 몰랐던 것을 쓰고 나면 알게 되는.

“좋네요.”

“감사해요.” 남자가 잠깐 세아를 봤다. “근데.”

“네.”

“마지막 코러스에서 전조 안 했잖아요. 일부러요?”

세아의 손이 멈췄다. 라면 젓던 젓가락이.

“…무슨 곡이요.”

“어젯밤에요. 공연 끝나고 들어오신 것 같던데 — 방문이 얇아서요. 흥얼거리시는 게 들렸어요. 새벽에.”

세아는 그를 봤다. 남자의 표정이 사과하는 것 같기도 했고 진지하게 묻는 것 같기도 했다.

“…들렸어요?”

“네. 조용해서요.”

세아는 잠깐 있었다. 소리가 새나갔다는 것을 몰랐다. 창문이 없는 방이라 완전히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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