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97화: 손이 닿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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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7화: 손이 닿는 거리

강리우의 손이 떨렸다. 그것이 가장 먼저 보인 것이었다. 침대 시트 위에서. 하얀 시트 위의 떨리는 손가락들. 세아는 그 떨림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도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공감이 물리적인 것처럼. 마치 다른 사람의 떨림이 자신의 신경계를 타고 전해지는 것처럼.

하늘이는 여전히 문 옆에 서 있었다. 떠나지도, 더 들어오지도 않으면서. 중간의 중간에서. 증인이자 보호자인 채로.

“안녕하세요.”

세아가 다시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낯선지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강리우와 자신 사이의 거리가 2미터쯤 되었다. 그것은 대화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손이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그것이 중요했다. 손이 닿을 수 없다는 것.

강리우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마치 물 위의 물고기처럼. 공기 속에서 호흡하려는 물고기처럼.

“왜 왔어.”

그것이 질문이었나, 아니면 확인이었나. 성조가 명확하지 않았다. 강리우의 목소리가 회색이었다. 마치 병원 벽처럼.

“하늘이가 말했어요. 여기 와야 한다고.”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하늘이가 말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세아도 어딘가 오고 싶었다. 이 방으로. 이 침대 옆으로. 떨리는 손이 있는 이 곳으로. 왜인지는 몰랐지만.

강리우가 웃음을 흘렸다. 목소리가 아니라 숨을 흘린 것. 웃음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소리.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을 살짝 누르는 것처럼.

“난 죽을 뻔했어.”

강리우가 말했다.

“알아요.”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넌 날 구했어.”

강리우가 계속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가 내부에서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작은 소리. 하지만 명확한 소리. 마치 얼음이 물로 변하면서 나는 그런 소리. 그것이 자신이었나, 아니면 강리우였나. 아니면 그들 사이의 공기였나.

“제가 구한 게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뭐?”

강리우가 물었다.

“제가 구한 게 아니라, 그냥… 멈춘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제가 움직이지 않아서 당신이 멈췄어요. 제가 손을 사용해서 구한 게 아니라, 제 몸이 앞에 있어서. 그래서 당신이 멈춘 거예요.”

그 구분이 중요했다. 세아는 자신이 왜 이렇게 명확하게 말해야 하는지 알았다. 만약에 자신이 강리우를 “구했다”면, 그것은 강리우가 자신에게 빚을 진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강리우가 빚을 지면, 그것은 강리우가 다시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사용될 것이었다. 또 다른 거래로. 또 다른 계산으로.

“그건 이미 구한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어떤 방식이든.”

세아는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손이 닿을 수 없는 거리를. 하지만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는 거리를.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뭐, 묻고 싶었어요.”

세아가 말했다.

“뭘 물어보고 싶어?”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을 들으면서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은 이미 자신 안에 있었다. 단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왜 그랬어요?”

세아가 물었다.

“왜 뭘?”

강리우가 물었다.

“왜 절 죽이려고 했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가장 단순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가장 복잡한 질문이었다.

강리우는 그 질문을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 아주 천천히. 마치 그것이 물리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난…”

강리우가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멈췄다.

“난 너 없이 못 살 것 같았어. 그래서.”

그것이 끝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거짓이 아니라 진짜 사실. 강리우는 자신이 세아 없이 못 살 것 같았고, 그래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그리고 세아도 함께 죽이려고 했다. 그것이 논리였다. 왜곡된, 부서진 논리였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그건 그냥 … 소유라고 해야 하나. 통제.”

세아가 말했다.

“알아.”

강리우가 다시 말했다.

세아는 그 “알아”를 반복하는 것을 들으면서 무언가가 조금 더 풀리는 것을 느꼈다. 강리우가 자신의 행동이 뭐였는지를 안다는 것. 그것이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시작이었다.

“제가 고소할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의 손이 더 떨렸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세아에게 가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손이 떨렸다.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제가 변호사를 고용할 거고, 당신이 저를 어떻게 조종했는지, 어떻게 협박했는지, 모든 걸 제출할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알아.”

강리우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 시선이 아프다고 생각했다. 아주 오랫동안 본 것 같은 그런 시선. 마치 자신이 이미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시선.

“난 여기서 살 거야. 평가를 받고, 약물을 받고, 천천히 사라질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그건…”

세아가 말을 시작했다.

“그게 너한테 미안하다는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서. 하지만 눈물이 흘렀다. 차갑고, 소금기 있고, 누군가의 것이 아닌 자신의 눈물로.

하늘이가 손을 뻗어서 세아의 어깨를 만졌다. 아주 가볍게. 거의 닿지 않을 정도로.

“가자.”

하늘이가 말했다. 아주 조용히.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 발을 내디디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강리우를 보면서. 그리고 강리우도 세아를 봤다.

“넌 … 뭐 할 거야?”

강리우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이 정직한 답이었다.

“음악은?”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을 들으면서 자신이 음악을 얼마나 오래 하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음악을 하고 있었지만 노래를 하지 않았다. 작곡을 했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것들을 썼지만 자신의 것을 만들지 않았다.

“몰라요.”

세아가 말했다.

“너는… 음악 없이 살 수 있어?”

강리우가 물었다.

“아니요.”

세아가 말했다.

“그럼 해야 해.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강리우가 말했다.

그 말이 어디서 나온 건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강리우가 어떻게 자신이 음악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세아는 음악 없이 살 수 없었다. 편의점 형광등 아래서도, 경찰서의 의자에 앉아서도, 병원 복도의 벤치에서도, 자신의 내부에서는 음악이 울렸다.

“당신은?”

세아가 물었다.

“난?”

강리우가 물었다.

“음악은?”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그 질문을 들으면서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는 손.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손.

“난 음악을 할 수 없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럼 배우면 돼요.”

세아가 말했다.

“뭘?”

강리우가 물었다.

“음악을. 다시.”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용서는 아니었다. 세아는 자신이 강리우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의였다. 강리우가 살아야 한다는 동의. 강리우가 다시 시도해야 한다는 동의. 비록 그것이 고통스럽더라도.

강리우의 손이 조금 덜 떨렸다. 아주 조금.

“넌 정말…”

강리우가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멈췄다.

“뭐요?”

세아가 물었다.

“특이한 사람이야.”

강리우가 말했다.

“그게 좋은 뜻인가요?”

세아가 물었다.

“모르겠어.”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자신이 이 사람을 어떤 의미에서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신비였고, 신비는 때때로 필요했다. 적어도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데는.

“저는… 계속 고소할 거예요.”

세아가 다시 말했다.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근데 당신은 살아야 해요. 그 과정에서도.”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무언가가 그의 얼굴에 변화를 일으켰다. 울음이 아니라, 동의의 신호. 아주 미세한 고개 끄덕임.

하늘이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이번엔 약하게. 마치 손가락만 건드리는 정도로.

“가자.”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움직였다. 이번엔 움직였다. 한 발, 두 발. 문 쪽으로.

“세아.”

강리우가 불렀다.

세아는 멈춰 섰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제발… 살아줘.”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가 무언가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그 말을 들었다는 방식으로.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아니, 떨렸지만 강리우의 손처럼 무너지는 떨림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이었다. 자신의 신체였다. 자신의 것.

병원 밖으로 나갔을 때 하늘이가 담배를 물었다.

“잘했어.”

하늘이가 말했다.

“뭘?”

세아가 물었다.

“그 사람을 봤어. 그리고 돌아섰어. 그게 용감한 거야.”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하늘이의 담배 연기를 봤다. 그것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마치 누군가의 숨처럼. 마치 무언가가 해방되는 것처럼.

“저는 뭘 해야 하는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음악해.”

하늘이가 말했다.

“그게 다예요?”

세아가 물었다.

“그게 다야. 그게 전부야.”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복잡하게 생각했는지를 깨달았다. 강리우를 고소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변호사를 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도현과 어머니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늘이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중요했고, 모든 것이 해결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늘이의 말이 맞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음악. 그것만이 자신을 자신으로 만드는 유일한 것이었다.

“음악할 준비 됐어?”

하늘이가 물었다.

“아니요.”

세아가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해야 해. 준비는 나중에 생기는 거니까.”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약속이었다. 자신과의 약속. 음악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약속.

병원을 떠나면서 세아는 뒤를 돌아봤다. 4층의 창문들이 보였다. 그 중에서 409호실의 창문도 보였다. 그리고 그 창문 안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강리우. 그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ND OF CHAPTER 97

# 확장된 이야기: 병원을 떠나며

## 1부: 결정의 순간

“가자.”

하늘이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마치 아무것도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마치 이미 정해진 일을 확인하는 것처럼 들렸다. 세아는 그 한 마디에 몸이 반응했다. 수십 번 시도했던 그 움직임이 이번에는 실제로 일어났다.

한 발.

두 발.

다리가 움직였다. 자신의 다리가 자신의 명령을 따랐다. 그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세아는 깨닫지 못했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병실의 하얀 타일 바닥을 밟으면서 세아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마치 자신이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 같은, 마치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그런 감각.

문 쪽으로 향했다.

“세아.”

강리우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것은 외침이 아니었다. 절망도 아니었다. 그저 이름을 부르는 것.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름을 불러보는 것. 혹시 모르니까.

세아는 멈춰 섰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강리우의 눈을 마주치면, 그 눈 속의 무언가가 자신을 다시 묶어놓을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면, 그 음성이 다시 자신의 영혼을 옭아맬 것 같았다. 그래서 세아는 정면만 바라봤다. 문만 바라봤다.

“제발… 살아줘.”

강리우가 말했다.

그 말은 절박했다. 그 말은 간청이었다. 그 말은 자신을 놓지 못하겠다는 절규였다. 하지만 세아의 귀는 그것을 다르게 들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탁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권리—상대방에게 빌어보는 그것.

세아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가 움직였다. 무언가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바람을 느끼는 나뭇잎처럼, 음파를 감지하는 박쥐처럼, 그렇게 그 말을 들었다는 방식으로 어깨가 움직였다. 그것이 유일한 작별 인사였다.

## 2부: 엘리베이터 안에서

**ding.**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세아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하늘이는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 창문 없는 철재 박스.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보였다.

피아노를 치던 손가락들. 악보를 넘기던 손가락들. 그 손가락들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느껴지는 그런 떨림이 아니었다. 신경계의 떨림이었다. 공포의 떨림이었다.

아니, 잠깐. 다시 봤다.

떨렸지만, 강리우의 손처럼 무너지는 떨림은 아니었다. 강리우의 손은 절망으로 떨렸다. 강리우의 손은 자신이 한 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떨렸다. 하지만 세아의 손은 달랐다.

이것은 자신의 손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신체였다.

이것은 자신의 것이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손가락들이 다시 자신의 것이라고. 그 신체가 다시 자신의 것이라고. 엘리베이터가 2층을 지나갈 때, 세아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울지 않았다. 눈물을 흘릴 여유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ding.**

1층이다.

문이 열렸다.

## 3부: 병원 밖, 차가운 공기 속에서

병원 밖으로 나갔을 때 공기가 달랐다.

세아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공기가 정말 달랐다. 병원 내부의 그 스테릴하고 차갑고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공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야외의 공기는 뭔가 더 있었다. 흙냄새가 있었고, 자동차 배기가스가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이 있었다. 살아있는 것들의 냄새였다.

세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폐가 팽창하면서 가슴 전체가 움직였다. 너무 오랜만에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세아가 한 호흡들은 모두 얕았다. 불안감에 짓눌려 있는 호흡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늘이가 담배를 물었다.

**sss.**

라이터의 소리. 불이 붙었다. 담배의 끝이 빨갛게 타올랐다.

“잘했어.”

하늘이가 말했다.

담배 연기가 하늘이의 입에서 나왔다. 그 연기는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회색빛의 연기. 모락모락 올라가는 그것.

“뭘?”

세아가 물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잘한 게 뭐지?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걷기만 했다. 그냥 돌아서기만 했다. 그게 잘한 일이라고?

“그 사람을 봤어. 그리고 돌아섰어. 그게 용감한 거야.”

하늘이가 다시 말했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면서 세아를 바라봤다. 하늘이의 눈에는 뭔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동정이 아니었다. 존경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정. 한 명의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정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세아는 하늘이의 담배 연기를 봤다.

그것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봤다. 연기는 위로 위로만 올라갔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물리 법칙이었지만, 마치 누군가의 숨이 마지막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마치 무언가가 육체를 떠나 해방되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뭘 해야 하는 거예요?”

세아가 갑자기 물었다.

그 질문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질문이었다. 아마도 강리우가 자신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있었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세아는 항상 누군가가 자신에게 해야 할 일을 지정해주기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그랬고, 음악 선생님이 그랬고, 강리우가 그랬다. 세아는 지시를 받는 것에만 익숙했다.

그래서 이제 물었다. 하늘이에게.

“음악해.”

하늘이가 말했다.

담배를 한 모금 더 피웠다. 연기가 다시 올라갔다.

“그게 다예요?”

세아가 물었다.

그 질문에는 의심이 있었다. 그것은 너무 단순했다. 너무 직설적이었다. 너무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게 다야. 그게 전부야.”

하늘이가 말했다.

그 순간, 세아의 머리 안에서 뭔가 폭발했다.

## 4부: 깨달음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복잡하게 생각했는지를 깨달았다. 마치 탑처럼 쌓여 있던 생각들이 한 줄로 정렬되는 것을 느꼈다.

강리우를 고소해야 한다.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변호사를 고용해야 한다. 경찰 진술을 해야 한다. 증거를 모아야 한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야 한다.

그 다음에는 도현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자신이 정말 그를 사랑했는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아니면 그를 상처 주었다는 죄책감을 견뎌야 한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에게 사과해야 한다. 자신의 선택이 모두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인정해야 한다. 어머니의 눈물을 직시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하늘이에게 감사해야 한다. 하늘이가 자신의 삶에 개입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아니면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모든 것이 중요했다.

모든 것이 해결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세아의 어깨 위에 무거운 돌덩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의 말이 맞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음악.

그것만이 자신을 자신으로 만드는 유일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세아가 처음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렸을 때, 그 순간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준 순간이었다. 음악은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언어였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음악으로는 할 수 있었다.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절망도, 희망도.

“음악할 준비 됐어?”

하늘이가 물었다.

그 질문은 따뜻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강력한 기대감이 있었다. 이제 정말로 음악을 해야 한다는 기대감.

세아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녀는 준비되지 않았다. 손가락은 여전히 약했다. 마음은 여전히 상했다. 정신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피아노 앞에 앉아야 할지도 몰랐다.

하늘이가 웃었다.

“그래도 해야 해. 준비는 나중에 생기는 거니까.”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약속이었다. 자신과의 약속. 음악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약속. 준비 없이 시작하겠다는 약속. 두렵지만 시작하겠다는 약속.

병원을 떠나면서 세아는 뒤를 돌아봤다.

## 5부: 마지막 시선

4층의 창문들이 보였다.

하얀 벽으로 만들어진 병원 외벽에 규칙적으로 배치된 창문들. 각각의 창문 뒤에는 누군가의 삶이 있었다. 누군가의 고통이 있었다. 누군가의 회복이 있었다.

그 중에서 409호실의 창문도 보였다.

세아는 정확히 어느 것인지 알았다. 자신이 방금 떠나온 그 방. 강리우가 있는 그 방.

그리고 그 창문 안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강리우.

그는 여전히 거기 있었을 것이다. 침대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세아가 어디로 가는지를 보려고.

하지만 거리는 너무 멀었다. 창문은 너무 작았다. 세아는 강리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저 그곳에 인간의 형태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살아 있었다.

그는 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는 존재했다.

세아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걸어갔다. 하늘이 옆에서 함께 걸으면서 담배를 피웠다. 회색의 연기가 둘 사이를 떠다녔다.

“이제 어디 가요?”

세아가 물었다.

“음악 학원.”

하늘이가 말했다.

“지금요?”

“지금이지.”

그들은 병원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각각의 자동차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회복을 기다리거나,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거나, 누군가의 탄생을 기다리거나.

세아도 이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음악을.

자신의 삶을.

태양이 이미 중천을 지나고 있었다. 오후 햇살이 강했다. 세아는 눈을 깜빡했다. 병원의 형광등에만 노출되어 있던 눈이 자연광에 적응하려고 했다.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빛이 너무 강해서였다.

## 6부: 음악 학원으로

음악 학원은 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다. 빌딩의 5층.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도로와 사람들과 자동차들이었다. 소음이 들렸다. 도시의 소음. 그 소음 속에서도 피아노 소리가 새어나왔다.

여러 개의 연습실이 있었다. 각각의 실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다른 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바흐를 치고 있었고, 누군가는 초급 연습곡을 치고 있었고, 누군가는 현대 음악을 치고 있었다.

하늘이는 세아를 가장 안쪽의 연습실로 데려갔다.

검은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피아노. 뚜껑이 닫혀 있었다.

“해봐.”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천천히 피아노에 다가갔다. 손이 떨렸다. 아까와는 다른 떨림이었다. 이것은 두려움의 떨림이었다. 혹시 자신이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혹시 손가락이 기억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뚜껑을 열었다.

**creak.**

뚜껑이 열리면서 나오는 목재의 소리. 그리고 피아노 내부의 신비로운 냄새. 금속과 목재와 먼지와 시간의 냄새.

세아는 벤치에 앉았다.

음, 라, 도.

손가락이 움직였다. 세 개의 음이 울렸다. 맑은 음. 순수한 음. 그것이 공기를 통해 전달되었다.

“좋아.”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다시 시작했다.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었다. 근육의 기억. 신체의 기억. 음악은 신체 깊숙한 곳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어떤 폐해도 제거할 수 없는 그런 기억이었다.

## 에필로그: 병원의 409호실

강리우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있었다.

간호사가 떠난 지 몇 분이 지나 있었다. 그녀가 약을 주러 와서 약을 먹이고 다시 가버렸다. 간호사의 손은 차갑고 기계적이었다. 하지만 강리우는 그것을 고마워했다. 인간의 손이 자신을 만져주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창밖을 봤다.

병원 밖의 세상이 보였다. 자동차들이 지나갔다. 사람들이 걸어갔다. 모두 자신의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강리우는 자신을 봤다.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더 이상 호전될 것 같지 않은 그런 떨림이었다. 마치 영구적인 문장인 것처럼.

하지만 강리우는 그 손을 움직여 보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손가락들이 구부러졌다.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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