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6화: 침묵의 끝에서 시작되는 것
세아는 의자에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방문 시간이 아니었다. 하늘이는 화장실에 가 있었고, 세아는 병원 복도의 벤치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 6시 47분. 정확한 시간이 중요했다. 시간이 명확할수록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더 확실했으니까.
병원의 아침은 낯설었다. 세아는 밤의 도시에만 익숙했다. 편의점의 불빛, 클럽의 무대, 경찰서의 형광등. 모두 밤이었다. 하지만 병원의 아침은 다른 종류의 밤이었다. 창밖이 밝아지고 있었지만, 이 복도는 여전히 어두웠다. 아니, 정확하게는 밝지만 색깔이 없었다. 회색.
간호사가 지나갔다. 이번엔 약 카트를 밀고 있었다. 딸칵 딸칵. 그 소리가 반복되었다. 생명을 관리하는 기계음. 세아는 그 소리를 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일곱 번째에 간호사가 코너를 돌아갔다.
409호실. 하늘이가 말해준 번호. 세아는 그 번호를 반복했다. 입 안에서만. 마치 주문처럼. 409, 409, 409. 그것이 강리우를 현실로 만드는 마법 같았다. 번호가 없으면 그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저 어딘가에 있는 무언가일 수 있었다. 하지만 409호실은 그를 정확하게 위치시켰다. 4층. 정신과 병동. 침대 번호 409.
하늘이가 돌아왔다. 손에 물을 들고. 병원 자판기에서 산 물. 투명한 플라스틱병. 그것을 세아 앞에 놓았다.
“마셔.”
하늘이가 말했다.
“안 돼요.”
세아가 말했다.
“왜?”
“마시면 더 깨어날 것 같아서요.”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그 말을 들으면서 웃었다. 실제로 웃음이 나온 게 아니라, 입 모양만 웃음이었다. 그 표정이 더 슬펐다.
“넌 지금 이미 깨어 있어.”
하늘이가 말했다.
“몰라요.”
세아가 대답했다.
“몰라도 괜찮아. 근데 강리우를 만날 땐 깨어 있어야 해. 그게 공정한 거야. 그놈은 깨어 있으니까.”
그 말이 맞았다. 강리우는 깨어 있을 것이다. 정신 건강 평가를 받으면서. 약물을 맞으면서.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세아는 물을 마셨다. 차갑고 맛이 없었다. 하지만 마셨다.
7시 5분. 방문 시간이 아직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이가 일어났다.
“가자.”
하늘이가 말했다.
“방문 시간이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그래도 가자. 너를 받아줄 거야.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문제 일으킬 거고.”
하늘이가 말했다.
하늘이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라는 확신. 세아는 일어났다. 천천히. 마치 물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췄다. 문이 열렸을 때, 냄새가 나왔다. 소독약. 그리고 무언가 더. 절망? 아니다. 절망은 냄새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공기를 압축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숨을 쉬는 것처럼.
정신과 병동의 복도는 다른 곳과 달랐다. 창문에 격자가 있었다. 아주 미세한 격자. 멀리서 보면 창문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감옥처럼 보이는 그런 격자.
“409호실 어디예요?”
세아가 물었다.
“저쪽.”
하늘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409. 세아는 멈춰 섰다. 하늘이가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을 살짝 밀었다.
“강리우. 방문객이 있어.”
하늘이가 말했다.
방 안에는 침대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창문. 그리고 강리우.
강리우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옷은 병원 복이었다. 회색. 몸도 회색으로 보였다. 얼굴도. 눈도. 마치 자신이 회색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처럼.
그리고 손.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세아.”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이 세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숨을 몰아쉬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갔다.
하늘이가 세아의 등을 밀었다. 아주 약하게. 충분하게는 아니지만, 세아를 움직이게 하는 정도로.
세아는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멈췄다. 다시 한 발.
“안녕하세요.”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가장 낯선 인사였다. 정중했고, 멀었고, 어떤 감정도 없었다.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정확하게는, 세아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을 훑어봤다. 혐오? 분노? 두려움? 하지만 세아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회색이었다. 병원의 벽처럼.
“미안해.”
강리우가 말했다.
“뭐가요?”
세아가 물었다.
“모든 게.”
강리우가 말했다.
하늘이가 의자를 가져왔다. 세아가 앉으라고 하는 제스처를 했다. 세아는 앉았다. 강리우의 침대에서 1미터 떨어진 곳에.
“왜 여기에 있어요?”
세아가 물었다.
“넌 알아야지. 경찰에 신고했잖아.”
강리우가 말했다.
“제가 신고하지 않았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래도 넌 알고 있었어. 내가 뭘 했는지.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이 맞았다.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제주도에서. 한강 다리에서. 모든 순간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여기로 이끌었다.
“당신이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세아가 말했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거의 중얼거리는 것처럼.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살렸어요.”
세아가 말했다.
“알아.”
강리우가 다시 말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병실에. 그 침묵은 무거웠다. 공기처럼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가 그들의 목을 조이는 것처럼.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
강리우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세아가 말했다.
“너 때문이 아니야.”
강리우가 말했다.
“그럼 누구 때문이에요?”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는 손. 그것을 주머니에 넣으려고 했지만, 약이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더 떨렸다.
“베를린에서 친구가 있었어. 피아니스트. 나보다 잘했어. 훨씬.”
강리우가 말했다.
“네.”
세아가 말했다.
“그가 자살했어. 내가 그를 못 구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게 당신 잘못은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그를 구하지 않아서 그가 죽었는데?”
강리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노가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했던 이유가 그거야. 너를 구함으로써 그를 구하려고 했어. 너를 살림으로써 내 죄를 씻으려고 했어.”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하늘이가 말했던 것이 맞다는 것을. 강리우는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이용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죄책감을 씻기 위해. 자신의 실패를 보상받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더 슬펐다. 왜냐하면 강리우가 악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냥 상처 입은 사람이었다. 상처를 남에게 전가하는 상처 입은 사람이었다.
“저도 누군가를 못 구했어요.”
세아가 말했다.
“뭐?”
강리우가 물었다.
“저는 제 엄마를 못 구했어요. 제주도에서. 그래서 저는 제 남동생을 꼭 붙잡고 있었어요. 놓지 않으려고. 그리고 그 바람에 제 자신을 잃었어요.”
세아가 말했다. 이것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진정으로 봤다. 자신의 죄책감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강리우가 물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을 구하지 않을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뭐?”
강리우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제가 구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제가 구할 필요도 없어요. 당신은 스스로 살아야 해요. 저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당신이 아직 살아 있고, 숨을 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가 세아를 봤다. 그리고 눈물이 나왔다. 세아의 눈물이 아니라 하늘이의 눈물이었다.
강리우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또 봤다. 떨리고 있는 손. 하지만 이번엔 그것을 보는 방식이 달랐다. 마치 그것이 죽은 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손이라는 걸 깨닫는 것처럼.
“고소하실 거예요?”
강리우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뭐든.”
강리우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아가 물었다.
“내가 받아들일 거야. 뭐든. 고소든, 용서든, 무시든. 모든 걸 받아들일 거야.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될 거야. 너를 구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가 풀리는 것을 느껴졌다. 자신 안에 있던 매듭이. 아주 작은 매듭이.
“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세아가 말했다.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결정했을 때,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게 공정한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겠어.”
강리우가 말했다.
병실 밖에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을 가져오는 것 같았다. 강리우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
“가.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강리우가 말했다.
“네.”
세아가 말했다.
세아는 일어났다. 천천히. 그리고 강리우를 봤다.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가 풀려 있었다. 죄책감이 아니라 수용. 그것이 더 무거웠다. 하지만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하늘이가 문을 열었다. 세아는 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병실 복도에서 멈춰 섰을 때, 하늘이가 옆에 섰다.
“어때?”
하늘이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래도 봐서 잘했어. 피하지 않았어.”
하늘이가 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지 않았다. 강리우처럼. 하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마치 자신의 손이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 되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결정으로.
“뭐 할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병원 밖에 나갔을 때.
“모르겠어요. 일단 집에 가고 싶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그리고?”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그리고… 누나에게 전화해야 할 것 같아요.”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가 웃었다. 이번엔 진정한 웃음이었다.
“그래. 그게 맞아. 넌 혼자가 아니야.”
하늘이가 말했다.
아침 햇빛이 병원 앞 광장을 비추고 있었다. 새로운 날.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걸 세아는 알았다. 그저 이전 날의 연속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자신이 그것을 선택하고 있었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버스 정류장 앞에서 세아는 멈춰 섰다.
“어디 가?”
하늘이가 물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그리고…”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하늘이가 재촉했다.
“그리고 제 목소리를 다시 찾고 싶어요.”
세아가 말했다.
처음으로, 하늘이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진정한 희미한 미소.
버스가 왔다. 세아는 탔다. 하늘이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침묵이 이제 부드러워졌으니까. 압박감이 없는 침묵이었다.
창밖으로 서울이 지나갔다. 건설 중인 건물들, 사람들, 자동차들. 모두 살아 있었다.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도. 처음으로 진정하게.
12,847자
# 병원의 끝과 시작
음악이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었다. 세아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둠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편한 어둠이 아니었다. 마치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오직 자신의 심장 소리만 가까워졌다.
“가.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강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음성은 이전과 달랐다. 더 이상 단호하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버티던 댐이 마침내 무너지는 순간 같았다. 세아는 눈을 떴다. 병실의 형광등이 자신의 망막을 자극했다. 하얀 불빛이 모든 것을 드러냈다. 숨길 수 없는 현실을.
강리우의 얼굴을 봤다. 깊게 패인 눈가, 입가의 주름,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눈빛이. 그 눈빛에는 더 이상의 언어가 필요 없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들,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세아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몇 번을 반복했다. 마치 물 위의 물고기처럼.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아주 작은 음성이었다.
“네.”
그 한 글자가 모든 것을 담았다. 동의, 이해, 그리고 해방. 세아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몸이 무거웠다. 마치 자신의 몸이 이 방에 남겨지기를 거부하는 듯했다. 하지만 정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서서히 일어나는 과정에서 세아는 강리우를 마지막으로 봤다.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가 풀려 있었다. 죄책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더 쉬웠을 것이다. 죄책감은 적어도 구조가 명확하니까.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수용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무거운 수용. 그것이 죄책감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그래.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야.”
강리우가 말한 적이 없던 말을 세아는 그의 표정에서 읽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용서보다 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문이 열렸다. 하늘이가 그것을 열었다. 그의 움직임도 조용했다. 마치 성스러운 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세아는 밖으로 나갔다. 발걸음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뇌가 명령하지 않아도 몸이 알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만약 돌아본다면 다시 들어갈 것 같았다. 다시 묻고 싶을 것 같았다. 왜? 언제부터? 어떻게 이렇게 되었어? 하지만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병실 복도는 길었다. 형광등의 불빛 아래에서 모든 것이 무균 상태처럼 보였다. 세아의 발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딱딱딱. 규칙적인 리듬. 마치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 같았다.
멈춰 섰을 때, 하늘이가 옆에 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때?”
하늘이가 물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마치 깨어난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 하는 부모의 목소리처럼.
세아가 대답하려 했으나,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감정을. 이 무게를. 마치 자신의 가슴 속에 거대한 바위가 내려앉은 느낌을.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가 떠오르는 느낌도 있었다.
“모르겠어요.”
그것이 가장 솔직한 답이었다.
“그래도 봐서 잘했어. 피하지 않았어.”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피하지 않았다. 맞다. 자신은 피하지 않았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분명 도망쳤을 것이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톱을 깨물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했을 것이고, 자신을 부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번엔 자신이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떨리지 않았다. 강리우처럼. 그의 손처럼.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것은 무감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안정이었다. 마치 자신의 손이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결정으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세아는 느꼈다. 무중력 상태에 빠진 것 같은 느낌. 마치 자신이 떠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로? 무엇을 향해? 그것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아래로 가라앉지는 않고 있었다.
병원 로비를 통과했다. 사람들이 있었다. 환자들, 보호자들, 의료진. 모두 각자의 이유로 여기에 있었다. 세아는 그들을 바라봤다.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마치 유리 벽 사이를 보는 것처럼.
“뭐 할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병원 밖에 나갔을 때. 서울의 공기가 세아의 얼굴을 때렸다. 따뜻했다. 아니, 뜨거웠다. 햇빛이 강했다. 마치 세상이 자신을 태우려 하는 것 같았다.
세아는 한 발 물러섰다. 그러다가 다시 서 있었다. 달아나지 않기로 했으니까.
“모르겠어요. 일단 집에 가고 싶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 자체가 기적 같았다.
“그래. 그래야지. 그리고?”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그의 질문에는 기대감이 있었다. 마치 다음 장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의 목소리처럼.
세아가 생각했다. 집에 가서 뭘 할 것인가? 누워있을 것인가? 아니다. 자신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누나에게 전화해야 할 것 같아요.”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마치 무언가가 풀려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오랫동안 잠긴 상자가 열리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하늘이가 웃었다. 이번엔 진정한 웃음이었다. 그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마치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처럼.
“그래. 그게 맞아. 넌 혼자가 아니야.”
하늘이가 말했다. 그 말이 세아의 가슴에 박혔다. 혼자가 아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은 혼자라고 생각했는가? 혼자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는가? 하지만 그게 거짓이었다. 거짓이었어.
아침 햇빛이 병원 앞 광장을 비추고 있었다. 새로운 날. 그렇게 보였다. 사실 새로운 날일 수도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날.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지 이전 날의 연속일 뿐이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하루는 다음 하루가 되고, 그렇게 세상은 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번엔 자신이 그것을 선택하고 있었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회피하는 게 아니라.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버스 정류장 앞에서 세아는 멈춰 섰다. 버스들이 지나갔다. 자신들의 정해진 노선을 따라. 마치 인생처럼.
“어디 가?”
하늘이가 물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계속했다.
“그리고…”
침묵이 찾아왔다. 세아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서움? 그렇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희망도 있었다. 작고, 약한,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희망이.
“그리고 제 목소리를 다시 찾고 싶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 순간, 그녀는 스스로를 놀랐다. 그런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에.
하늘이의 얼굴이 변했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진정한 희미한 미소. 마치 오래도록 기다려온 것을 드디어 본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래. 그게 맞아. 넌 할 수 있어.”
버스가 왔다. 문이 열렸다. 그 안은 어둡지 않았다. 오후의 햇빛이 들어가 있었다.
세아는 탔다. 하늘이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침묵이 이제 부드러워졌으니까. 압박감이 없는 침묵이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들이 함께 있을 때의 그런 침묵처럼.
창밖으로 서울이 지나갔다. 건설 중인 건물들, 사람들, 자동차들, 광고판들, 카페, 편의점, 학교. 모두 살아 있었다.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고 세아도. 처음으로 진정하게.
버스는 계속 나아갔다. 세아는 창에 기대어 밖을 바라봤다. 자신의 반영이 유리에 보였다.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낯익었다.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을 다시 찾은 것처럼.
그렇게 버스는 도시를 가로질렀다. 세아는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누나에게 전화했을 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하지만 그 모든 질문에 대해 지금은 답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움직이고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버스는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세아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