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8화: 편의점의 문턱
하늘이의 포르쉐가 합정역 앞 도로에 멈춰 섰을 때, 세아의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세 번. 딸깍, 딸깍, 딸깍. 어두운 창문에 비친 자신의 손을 보면서. 그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제주 바다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강남역의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멈추지 않던 진동. 신경이 아직도 어딘가에 박혀 있다는 신호. 끊어지지 않은 줄 같은 것.
“뭐 해? 내려.”
하늘이가 운전석에서 웃으며 말했다. 담배를 피우려고 창문을 내리고 있었다. 밤 공기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강남의 밤공기. 아스팔트와 배기가스와 비싼 향수가 섞인 냄새. 제주의 바다 소금 냄새와는 완전히 달랐다.
세아가 차에서 내렸다. 발이 아스팔트에 닿는 순간, 도시가 울렸다. 오토바이 음성, 신호등의 소리, 멀리서 들리는 지하철의 굉음. 제주에서는 이런 소리가 없었다. 제주에는 파도음과 바람음만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숨소리. 밤에 옆에 누워 있던 어머니의 숨. 고르고, 깊고, 안정적인.
“가자. 그 GS25 있는 데 말이야.”
하늘이가 담배를 물고 말했다. 입 모서리에 담배가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세아가 떠나 있던 동안, 하늘이는 이렇게 살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차를 몰고, 다른 누군가의 피부에 영원한 무언가를 새기며.
“가는 길에 밥을 먹자고 했잖아.”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여전히.
“밥은 나중이야. 일단 너 직장부터 다시 잡자. 시간이 생각보다 빠를 수 있어. 토요일이잖아. 점장이 번디아 할 시간에 너 찾아가는 게 낫다. 사람이 많을 때. 바쁠 때가 도움이 돼.”
하늘이가 포르쉐에 다시 탔다. 세아도 탔다. 문이 닫혔을 때, 다시 세상이 차단되었다.
합정역 방향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들로 가득했다. 토요일 밤의 서울. 홍대로 향하는 사람들, 강남에서 강북으로 가는 사람들, 어디론가 급히 가야 하는 사람들. 모두가 목적지를 가지고 있었다. 세아만 제외하고.
“너 강리우 그 새끼 연락은 또 안 했어?”
하늘이가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물었다. 빨간 신호. 길게 기다려야 하는 신호.
“안 했어요.”
“전화기 끄지는 않았지? 혹시 연락 오면…”
“안 봐요.”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반은 거짓이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켜지 않았다. 제주에서 비행기를 탔을 때부터. 공항에서 핸드폰 배터리를 뺐다. 배터리를 빼는 것이 핸드폰을 끄는 것보다 더 안전한 것 같았다. 화면이 켜질 가능성 자체를 없애는 것. 목소리가 울릴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
“잘했어. 그놈 지금 뭐 하는지 알아? 너 떠난 후에.”
하늘이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 연기가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밤의 서울로.
“뭐 하는데요?”
“회사에 안 나타났대. 이틀. JYA에 일이 많다고 했는데, 인상 쓰고 있다더라. 누군가 본 사람이 말하길, 강남역 근처를 헤매고 다닌다고. 그리고…”
하늘이가 말을 멈췄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악셀을 밟으면서.
“그리고?”
“그리고 누가 너 찾고 있는 것 같아. 진짜 미친 듯이. 경찰한테 실종신고를 했대더라. 친구가 경찰청에서 일하는데, 그게 나왔대. 나이 24세 여성, 해석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타인에 의한 정신적 학대 의심. 그런 식으로.”
세아의 몸이 경직됐다.
“누가? 강리우가?”
“그건 공식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누구 빼고 누가 하겠어? 어쨌든 그건 너한테 도움이 돼. 왜냐하면 경찰이 움직이면, 그 새끼는 더 못 할 수 있거든. 법적으로 너한테 접근하려고 하면 더 복잡해져. 그래서 지금 그 새끼가 가만히 있는 거야.”
하늘이의 설명이 정확했다. 하늘이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법과 인정과 현실이. 그것은 타투를 새기는 것과 비슷했다. 어디에 바늘을 꽂아야 하고, 어디를 피해야 하고,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모든 것이 정확한 계산이었다.
합정역에 다다랐을 때는 밤 9시 30분이었다. 한 시간. 강남역에서 합정역까지 정확하게 한 시간. 그 시간 동안 세아는 창밖만 봤다. 도시의 불빛들이 흘러가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계속 떨리는 그 손을.
GS25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합정역 3번 출구를 나가서 좌측으로 200미터. 세아가 3년을 일했던 그 편의점. 창문은 밝았다.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토요일 밤이라 손님도 많았다. 대학생들, 회사원들, 뭔가를 잃어버린 얼굴의 사람들.
세아는 문 앞에서 멈춰 섰다. 하늘이가 뒤에서 밀었다.
“뭐 해? 안 들어가?”
“점장이 받아줄까요?”
“받아줄 거야. 왜냐하면 너는 좋은 직원이었으니까. 늦지도 않고, 실수도 적고, 조용해서 일하기도 편했고.”
하늘이가 말했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세아도 알았다. 세아는 좋은 직원이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좋은 직원이 갑자기 사라지면, 점장은 그것을 개인적 배신으로 느끼기도 했다.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냄새가 먼저 왔다. 편의점 냄새. 라면 냄새, 김밥의 식초 냄새, 그리고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음식물 냄새. 세아가 밤새도록 맡아오던 냄새. 이 냄새는 세아의 몸에 밸 수밖에 없었다. 밤마다,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옷에도, 머리에도, 피부에도.
카운터 뒤에 점장이 있었다. 40대 중반의 남자. 이름은 박인호. 세아가 3년을 일하면서 그의 이름을 자주 들었지만, 직접 말한 것은 거의 없었다. 점장은 세아의 이름을 부를 때도 “여기”라고 했다. 또는 “야”. 그게 그들의 관계였다.
“어? 너?”
점장이 고개를 들었다. 놀랐다. 그 표정은 분명했다.
“네. 돌아왔어요.”
세아가 말했다. 목이 또 아팠다. 말을 할 때마다 목이 아팠다. 목과 머리 사이 어딘가에 뭔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강리우의 손가락이 아니라 다른 것. 죄책감 같은 것. 떠나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
“한 석 달이나 앞에 가. 연락도 없이. 다른 일 찾은 거지?”
점장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그것이 더 힘들었다. 분노하는 것이 낫다. 분노하면 변명할 수 있고, 싸울 수 있고, 거리를 둘 수 있다. 하지만 담담함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받아들임이 더 큰 무게가 된다.
“아뇨. 그건 아니고…”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멈췄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왜 떠났는지, 왜 이제 돌아오는 건지.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열어야 했다.
“다시 일하고 싶어? 여기서?”
점장이 물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는 질문. 그냥 이 자리에서 다시 일할 건가, 안 할 건가. 그것뿐.
“네. 다시 일하고 싶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뭔가가 풀리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것. 실이 한 올 풀리는 정도.
“그럼 내일부터 출근해. 야간 셔프.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시급은 올려 줄게. 한 천 원. 그리고…”
점장이 잠깐 멈췄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리고 누가 와서 너를 찾아가면, 아무도 없었다고 해. 알았어? 그리고 만약에 뭔가가 일어나면, 바로 경찰한테 신고해. 이건 내가 너한테 하는 충고야. 일이 아니라 충고.”
점장의 말에서, 세아는 어떤 통감을 느꼈다. 이 남자도 세상을 알고 있었다. 이 남자도 젊은 여자들이 어떤 일에 휘말리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침묵과 관계없음. 말하지 않기와 모르는 척하기.
“감사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처음이었다. 세아가 이 점장에게 진심으로 말한 첫 마디.
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일을 했다. 셀카봉으로 뭔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점장은 항상 바빴다. 편의점은 항상 뭔가를 요구했다. 사람들은 밤새도록 들어왔고, 뭔가를 원했고, 점장은 그것을 공급해야 했다.
세아가 하늘이와 함께 편의점을 나갔을 때, 밤 10시 10분이었다. 정확히 이 시각부터, 세아의 새로운 밤이 시작될 것이었다. 이전의 밤과는 다른 밤. 강리우가 없는 밤.
“잘됐네. 다시 일하게 됐어.”
하늘이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포르쉐 안에서. 운전을 하면서.
“이제 돈을 모아야 해요.”
세아가 말했다. 창밖을 보면서.
“뭐? 음악 스튜디오?”
“네.”
“얼마나 모아야 하는데?”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계산할 수 없는 숫자였다. 시급 12,000원으로. 밤 8시간. 한 달에 288,000원. 1년에 3,456,000원. 음악 스튜디오는 시간당 30,000원에서 50,000원. 따라서 한 곡을 완성하려면 최소 20시간. 최소 600,000원. 즉, 2개월. 1년에 6곡을 할 수 있다. 3년이면 18곡.
그것은 너무 길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강리우의 돈이 아니라면,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의 몸이 번 돈으로.
차가 한강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하늘이의 선택. 새로운 길. 강남에서 홍대로 가는 가장 긴 길. 한강을 건너가는 길.
“야, 근데 정말로 너 괜찮아? 몸도 마음도?”
하늘이가 물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네.”
세아가 거짓으로 말했다.
“거짓이잖아. 너 손 봤어? 계속 떨리고 있어.”
하늘이가 지적했다. 그것은 친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때때로 친절보다 더 크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딸깍, 딸깍, 딸깍. 멈출 수 없는 진동. 신경이 어딘가에 박혀 있다는 신호. 끊어지지 않은 줄이 여전히 팽팽하다는 신호.
“시간이 걸릴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그래. 시간이 걸려. 근데 넌 가야 해. 너 자신한테로. 강리우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너 자신한테로.”
하늘이의 말이 맞았다.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을.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알고 있어도 할 수 없는 게 많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다. 알면 알수록, 더 무거워진다. 더 깊어진다.
한강 위의 차. 밤 10시 45분. 강물이 아래를 흐르고 있었다. 검은 물. 도시의 불빛을 반사하는 검은 물. 제주 바다와는 다른 색깔의 물. 더 깊고, 더 어둡고, 더 차가운.
“강리우가 왜 경찰에 신고했을까?”
세아가 갑자기 물었다.
“그래야 너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법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하늘이가 말했다.
“근데 난 없는데요. 찾을 수 없는데.”
“그래. 그래서 그놈이 더 미칠 거야. 너를 찾을 수 없으니까. 자신의 능력으로도, 법으로도. 그게 그 새끼가 처음 겪는 거야.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는 상황.”
하늘이의 분석이 정확했다. 강리우는 항상 원하는 걸 얻었을 것이다. 재벌의 아들이었으니까. 원하면 얻는 게 그의 인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얻을 수 없었다. 아무리 가져도. 아무리 주어도. 세아는 거기에 없었다.
“그럼 강리우가 뭘 할까요?”
세아가 물었다. 불안감 때문에.
“모르지. 근데 아마 시간이 지나면 포기할 거야. 사람은 원하는 걸 못 얻으면 결국 포기해. 다른 걸 찾든지, 아니면 죽어버리든지. 그게 인생이야.”
하늘이의 말이 너무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사람은 원하는 걸 못 얻으면 포기한다. 그리고 그 포기는 때때로 극단적이다. 세아가 강리우를 멈춰야 했던 그 밤처럼.
차가 한강을 건넜다. 더 이상 강남이 아니었다. 홍대 쪽. 강북. 세아의 편의점 쪽. 점점 더 익숙한 거리들.
“근데 넌 음악을 할 거잖아. 혼자 하는 음악?”
하늘이가 물었다.
“네. 제 음악으로.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니라.”
세아가 말했다. 그것도 약속 같은 것이었다. 자신에게 하는 약속.
“좋아. 그럼 내가 스튜디오 찾아줄게. 좋은 곳. 비싸지 않은.”
하늘이가 말했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었다. 이미 정해진 것 같았다. 하늘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세아가 뭘 할 건지, 어디로 가야 할 건지.
“감사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다시 그 말. 그것이 유일한 말인 것 같았다.
포르쉐가 합정역 근처에 다시 멈춰 섰을 때는 밤 11시 30분이었다. 세아의 첫 야간 셔프가 시작되기 30분 전.
세아는 차에서 내렸다. 문을 닫을 때, 하늘이가 창문을 내렸다.
“야, 나 내일도 올게. 스튜디오 정보 가지고. 그리고 밥도 사 올게. 너 진짜 뭐 먹는 거야?”
하늘이가 말했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세아가 말했다.
“그건 넌 항상 그래. 아무거나 괜찮아. 너도 선택해야 해. 네가 뭘 먹고 싶은지. 누구를 위한 게 아니라 너를 위해서.”
하늘이의 말이 끝나고, 포르쉐는 밤의 거리로 사라졌다. 테일라이트만 남아서, 한참을 빛나다가 사라졌다.
세아는 편의점 앞에 섰다.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점장이 세아를 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없었다. 그냥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아는 에이프런을 입었다. 파란색 GS25 에이프런. 그것은 수백 번 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새로운 옷처럼. 새로운 삶처럼.
밤 자정. 편의점은 조용했다. 손님도 거의 없었다. 세아는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이 무서움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의 떨림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이 시작될 때의 떨림.
세아는 깊게 숨을 마셨다. 편의점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라면 냄새, 김밥의 식초 냄새, 그리고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음식물 냄새. 이 냄새는 세아의 것이었다. 세아의 밤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닌, 자신을 위한 밤.
핸드폰의 배터리가 여전히 빼져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꺼낼 생각이 없었다. 최소한 이 밤은 아무것도 울리지 않기를 원했다.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기를. 자신의 선택만이 흔들리는 밤이기를.
시간이 흘렀다. 밤 1시. 밤 2시. 밤 3시. 손님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학생들, 회사원들, 뭔가를 잃어버린 얼굴의 사람들. 모두가 뭔가를 원했다. 라면, 삼각김밥, 커피, 담배, 복권. 세아는 그것들을 건넸다. 말 없이. 목이 아팠지만 말 없이.
밤 4시. 편의점이 가장 조용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밤도 낮도 아니었다. 어떤 시간도 아닌, 어딘가의 틈. 세아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노래를 쓰곤 했었다. 밤이 죽어가고 낮이 오기 전의 그 틈에서. 자신의 음악을 썼었다.
세아는 핸드폰의 배터리를 다시 끼웠다. 4시 30분. 그리고 기다렸다. 무언가가 울리기를. 무언가가 흔들리기를. 하지만 아무것도 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진동하지 않았다. 강리우의 목소리도, 강리우의 손도, 강리우의 존재도.
그리고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 아무도 세아를 찾지 않았다. 세아는 혼자였다. 진정으로.
세아는 그 혼자함 속에서, 처음으로 자유로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숨 속에서, 멜로디가 살아났다. 아직 부르지는 않았지만. 아직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몸 속에서, 무언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성냥불이 아니라, 통째로 화염이 되어가는 것처럼. 자신을 소모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비추는 불처럼.
밤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세아는 거기 있었다.
# 선택
편의점 앞 골목. 늦은 밤 11시 50분.
포르쉐의 헤드라이트가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빨간 신호등 아래서 차는 천천히 멈췄다. 하늘이의 손가락이 핸들을 두드렸다. 톡톡톡. 리듬감 있는 움직임이었지만, 그 아래에는 초조함이 깔려 있었다.
“진짜 뭐 먹는 거야?”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세 번째다. 아니, 네 번째일 수도 있다. 이미 하늘이의 질문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세아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드라이브를 시작할 때부터였나? 아니면 영화 끝나고 나올 때부터였나?
세아는 차창 밖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의 밤은 언제나 똑같았다. 네온사인들이 깜빡거리고, 사람들이 목표 없이 거리를 헤맸다. 모두가 뭔가를 원하는데, 정확히 뭘 원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거의 중얼거리는 수준이었다. 하늘이는 이미 몇 번이나 이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항상 같은 대답. 항상 같은 목소리.
포르쉐가 다시 움직였다. 하늘이의 발이 액셀을 밟았다. 엔진음이 우렁찼다. 비싼 차는 비싼 소리를 낸다. 세아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건 넌 항상 그래.”
하늘이가 말했다. 어조가 바뀌었다. 이제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뭔가 지적하는 투였다.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듯이.
“아무거나 괜찮아. 너도 선택해야 해. 네가 뭘 먹고 싶은지. 누구를 위한 게 아니라 너를 위해서.”
하늘이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차 안의 좁은 공간에서 그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세아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창백하고, 표정 없는 얼굴.
“선택이라는 게…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세아가 조용히 말했다.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핸들을 돌렸다. 차가 회전했다. 강한 가속감. 세아는 차에 밀려났다. 하늘이의 프로필만 보였다. 자신감 있는 얼굴. 항상 확신에 찬 얼굴.
“너는 뭘 원해?”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나?”
세아가 되물었다.
“누구 말이겠어. 너. 세아. 넌 뭘 원해?”
세아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뭘 원하는가. 그 질문은 마치 외국어처럼 들렸다. 이해가 되지만, 대답할 수 없는 말처럼.
포르쉐는 거리를 달렸다. 신호등이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파란색이 되었다. 차는 멈추지 않았다. 하늘이는 신호를 무시했다. 아니, 무시한다기보다는 신호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늘이는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난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진짜로. 근데 넌… 넌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아니야. 계속 누군가를 따라만 다녀.”
하늘이가 말했다. 이번엔 더 부드러운 톤이었다. 화낸 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하는 소리였다. 그런 목소리가 오히려 더 상처를 주었다.
세아는 창에 손을 기대었다. 유리는 차갑고 매끄러웠다. 마치 손이 스스로를 찾아가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의 반영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창에 비친 자신의 손과 차 안의 자신의 손이 만나지 못했다. 항상 그랬다. 반영된 세아와 실제 세아는 절대 만날 수 없었다.
“누구를 위한 게 아니라 너를 위해서… 그런 말을 누가…”
세아가 중얼거렸다.
“뭐?”
“아니에요. 그냥…”
세아는 입을 다물었다. 이 대화를 계속할 수 없었다. 하늘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맞는 것도 아니었다. 세아는 자신을 위해 선택한 적이 있는가? 기억을 더듬어 봤다. 어렸을 때? 아니다. 엄마가 모든 걸 정했었다. 청소년 시절? 그땐 또 다른 누군가가 정했었다. 그리고 지금? 지금은 또 다른 누군가가.
강리우.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세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사람. 아니, 차지하고 있는 사람.
차가 계속 달렸다. 도시의 불빛들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차도, 건물도, 신호등도. 마치 영화의 프레임처럼. 정지된 그림들이 빠르게 넘어가는 것처럼.
“여기 내려줄 수 있어요?”
세아가 갑자기 말했다.
“뭐? 여기?”
하늘이가 놀라서 말했다. 차는 이미 횡단보도 위에 있었다. 신호는 빨강이었다.
“여기요.”
세아가 다시 말했다. 문을 열었다.
“세아! 뭐하는 거야!”
하늘이가 외쳤지만, 세아는 이미 나가고 있었다. 차의 바퀴가 멈추었다. 바퀴 옆에는 횡단보도의 하얀 줄이 있었다. 세아는 그 줄 위에 서 있었다.
“뭐 하는 거? 다시 타.”
하늘이가 창을 내렸다. 바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서울의 밤바람. 차갑고 스산한.
“그냥… 여기서 내릴 거예요.”
“미쳤나? 밤 열두 시가 넘었는데.”
“알아요.”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포르쉐를 봤다. 빨간 차체. 비싼 가죽. 그 안에 앉아 있는 하늘이의 얼굴.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세아가 말했다.
“뭐가 미안한데. 뭐가.”
하늘이가 말했다. 하지만 이미 세아는 돌아섰다.
포르쉐의 헤드라이트가 세아의 등을 비췄다. 긴 그림자가 도로에 나타났다. 그 그림자가 움직였다.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포르쉐는 다시 움직였다. 빨간 테일라이트만 남겨두고. 그 빨간 불빛이 한참을 밤의 거리에서 빛나다가, 마침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세아는 거리에 혼자 섰다. 횡단보도 위에. 신호는 아직도 빨강이었다. 차는 흘러갔다. 수십 대가. 모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세아는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거리를 건넜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었다. 이제는 아무도 세아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무도 세아의 선택을 판단하지 않았다.
편의점이 보였다. GS25. 파란색 간판. 밤샘 편의점. 24시간. 언제나 열려 있는 곳. 세아가 많이 와본 곳이지만, 오늘은 다른 이유로 오고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점장이 세아를 봤다. 키 작은 중년 남자.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그는 세아를 알아봤다. 여러 번 봤으니까.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하러 왔나?”
점장이 물었다.
“네.”
세아가 대답했다.
“에이프런은 저기 있어.”
점장이 가리켰다. 점장 뒤의 선반. 거기에 접혀 있는 에이프런들이 있었다. 파란색 GS25 에이프런.
세아는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에이프런을 입었다. 목 부분의 끈을 조였다. 허리 부분의 끈도. 마치 자신을 감싸는 것처럼. 마치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처럼.
파란색 에이프런. 그것은 수백 번 입은 것이었다. 이 편의점에서 일할 때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오늘 입은 에이프런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처음 입는 옷처럼. 마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세아는 카운터 뒤로 들어갔다. 포스기 옆에 섰다. 정해진 자리. 항상 같은 자리. 하지만 이 자리도 오늘은 달랐다.
“밤샘 수고해.”
점장이 말했다.
“네.”
세아가 대답했다.
밤 자정이 지났다. 편의점은 조용했다. 이 시간의 편의점은 거의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손님도 거의 없었다. 가끔씩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 혼자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또는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는 사람들처럼.
세아는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손끝이 하얀색으로 변할 정도로 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떨림이 무서움만은 아니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엔 구분이 안 갔지만, 이제는 알았다. 그 떨림 속에는 다른 감정도 섞여 있었다. 기대? 아니다. 그것도 아니었다.
새로움. 그것이었다.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려고 할 때의 떨림. 마치 새해 첫날 아침처럼. 또는 첫 공연 전날밤처럼.
세아는 깊게 숨을 마셨다. 편의점의 냄새가 들어왔다. 라면 냄새. 그것이 가장 먼저 느껴졌다. 뜨거운 라면을 끓일 때의 그 향. 계란, 파, 스프의 냄새들이 섞여 있었다.
그 다음은 김밥의 냄새였다. 식초의 신맛. 밥의 담백함.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달걀, 시금치, 게맛살의 냄새들.
그 아래층에서는 음식물 쓰레기의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썩어가는 냄새. 이미 사용된 것들의 냄새.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모든 것은 순환했다. 음식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다시 음식이 되고.
이 냄새들. 이것이 세아의 것이었다. 이 편의점. 이 밤.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닌, 자신을 위한 밤.
핸드폰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배터리가 빠져 있었다. 세아가 뽑아 놓은 것이었다. 강리우에게서 올지 모를 연락을 피하기 위해. 또는 자신이 그에게 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밤은 온전히 세아의 것이어야 했다. 누군가의 기대도, 누군가의 요구도 없이. 순수하게 세아 자신만을 위한 밤이어야 했다.
시간이 흘렀다.
밤 1시. 학생이 들어왔다. 대학생처럼 보였다. 쌀쌀한 옷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책 두 권을 들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었을 것이다.
“라면 하나요.”
학생이 말했다.
“어떤 라면이요?”
세아가 물었다.
“아무거나… 아니, 신라면으로.”
학생이 말했다.
세아는 신라면을 꺼냈다. 끓는 물을 부었다. 계란도 넣어 줬다. 그건 서비스였다. 학생은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라면을 들고 가서 테이블에 앉았다.
밤 2시. 회사원이 들어왔다. 넥타이를 풀고 있었다. 칼같이 구분되는 얼굴. 피로 속에 숨겨진 무언가. 분노? 절망? 또는 그 둘 다?
“맥주 있어?”
회사원이 물었다.
“네, 뭘 드릴까요?”
“상관없어. 아무거나.”
회사원이 대답했다.
세아는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맥주 한 캔을 옆에 놨다. 회사원은 그것을 들고 한 쪽 구석으로 갔다. 혼자만의 공간으로.
밤 2시 30분. 나이 많은 여성이 들어왔다. 손가락에 반지가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그 반지들이 자신감 있게 빛나지는 않았다. 마치 벗고 싶지만 벗지 못하는 것처럼.
“커피 따뜻한 거 주세요.”
여성이 말했다.
“아메리카노요?”
“네.”
세아가 커피를 뽑았다. 종이컵에 담았다. 손잡이가 있는 따뜻한 잔. 여성은 그것을 들고 나갔다. 말도 없이. 인사도 없이.
손님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모두가 뭔가를 원했다. 그들의 욕망이나 필요한 것들. 라면, 삼각김밥, 커피, 담배, 복권, 에너지 음료, 약.
세아는 그것들을 건넸다. 차분하게. 말 없이. 목이 아팠지만 말 없이. 아무도 세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세아도 누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냥 필요한 것들을 건네고, 계산하고, 거스름돈을 주고.
그 과정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반복은 안정이었다. 반복은 예측 가능함이었다. 그리고 예측 가능함은 때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밤 3시. 편의점이 조금 더 분주해졌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 밤샘 작업을 시작하는 사람들. 잠을 못 이루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
그들 중 한 명이 세아를 유심히 봤다. 나이 많은 남자였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혹시… 노래하니?”
남자가 물었다.
세아는 놀랐다. 낯선 사람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뭐요?”
세아가 물었다.
“노래. 넌 노래하지 않나? 본 것 같은데.”
남자가 말했다.
“아니에요.”
세아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말이야. 넌 뭔가… 그런 표정을 하고 있어. 마치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표정 말이야.”
남자가 웃었다. 그리고 가서 앉았다.
세아는 그 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노래. 그런 표정. 자신이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나?
거울을 봤다. 점장이 카운터 뒤에 놔둔 작은 거울이 있었다.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어떻게 보였는가.
단단했다. 하지만 차갑지는 않았다. 마치 담담함과 기대가 섞여 있는 것처럼.
밤 4시. 편의점이 가장 조용해지는 시간이 왔다.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 이 시간은 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