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86화: 돌아가는 길의 무게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86 / 250Next

# 제86화: 돌아가는 길의 무게

서울 가는 버스의 창문에 제주 바다가 점점 작아진다. 세아는 창가에 이마를 기댔다. 유리는 차갑고, 바다는 점점 더 멀어진다. 어머니는 터미널에서 세아를 놓아줬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한 번, 그것도 아주 짧게 누르고 떠났다. 그 손의 무게가 지금도 남아 있었다.

버스는 산을 넘고 있었다. 제주의 낮은 산들은 마치 누군가의 등 같았다. 구부러진 어깨. 수십 년을 그 자리에서 견뎌낸 등. 세아는 그 산들을 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도 그런 산 같은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옮길 수 없고, 하지만 언제나 거기에 있는.

핸드폰이 울렸다. 하늘이었다. 전화를 받기 전에 세아는 숨을 깊게 마셨다. 하늘이는 세아가 제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전했을 것이다. 하늘이는 세아의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타투를 새기던 지하 작은 방에서 만나던 그 친구. 세아가 자신의 모든 거짓을 벗을 수 있던 유일한 곳이 하늘이의 옆이었다.

“야, 너 진짜 제주 갔어? 뭐 하는 거야?”

하늘이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다. 직설적이고, 차갑고, 하지만 그 안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네. 이제 올라가요.”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여전히.

“올라가? 서울로? 그 강리우 새끼 한테 가는 거야? 아니지? 뭔가 다른 거겠지?”

하늘이가 물었다. 전화기 너머의 하늘이는 아마 타투 의자에 앉아 있을 것이다. 발로는 어딘가를 계속 튕길 테고, 손에는 담배가 있을 것이다. 세아가 서울에 없는 동안에도 하늘이는 거기서 같은 자리에 앉아서 다른 누군가의 피부에 영원한 무언가를 새기고 있었을 것이다.

“강리우한테는 안 가요. 다른 데를 찾아야 해요.”

세아가 말했다.

“어디?”

“음악 스튜디오. 제 음악을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이 말을 꺼내는 데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세아는 지금까지 자신이 음악을 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너무 큰 것이었다. 너무 무거운 것이었다. 그것을 말하면 현실이 될 것 같았고, 현실이 되면 실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 야, 너 진짜. 미쳤어, 진짜.”

하늘이가 웃었다. 그것은 놀림이 아니었다. 세아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았다. 그것은 “드디어”라는 웃음이었다.

“근데 어떻게 할 거야? 돈은? 일은?”

하늘이가 현실적인 것들을 물었다. 하늘이는 항상 그랬다. 꿈을 듣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꿈 뒤에 있는 현실까지도 함께 보는 사람이었다.

“일단 편의점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GS25에서 일했던 데.”

“아, 그 합정동 점?”

“네.”

“근데 그 강리우 새끼 때문에 문제될 거 같은데? 그 놈 JYA 재벌이잖아.”

하늘이가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음. 일단은… 모르겠어요. 근데 엄마가 가라고 했어요.”

세아가 말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하늘이가 침묵했다. 긴 침묵이었다. 하늘이는 항상 많은 말을 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를 깊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너 엄마 뭔가 특별한 거 아니야?”

하늘이가 결국 물었다.

“뭐가요?”

“아니, 그냥. 니 엄마 말을 들으면 뭔가… 진짜 알아서 하는 거 같아. 니가 뭐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마치 미리 다 본 거처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행동으로만 존재했다. 어머니의 손으로, 어머니의 침묵으로, 어머니의 눈으로.

“야, 내일쯤 서울 올 거지?”

“네. 저녁 정도면 올 것 같아요.”

“그럼 내가 픽업해줄게. 공항?”

“강남역.”

“알겠어. 그리고 너…”

하늘이가 말을 멈췄다.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말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예요?”

“아니, 그냥. 강리우 그 새끼. 너 떠난 후에 여기 와서 헤맸대. 너 있던 골목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리고 너한테 전화 개겨. 수십 번. 수백 번. 그거 알고 있어?”

세아의 몸이 경직됐다.

“근데 다행인 게, 너 전화 안 받으니까 걔 포기하고 가더라. 마지막엔 도현이 학교 앞까지 갔어. 도현이 엄마한테 물어봤대. 너 어디 있냐고. 도현이 엄마가 얘기 안 했겠지만.”

“도현이는…?”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괜찮아. 너한테 화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놈은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계속. 날마다. 넌 몰랐겠지만.”

하늘이가 말했다.

버스가 터널을 지나갔다. 어둠. 그리고 다시 빛. 그 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강리우는 지금 어디 있어요?”

세아가 물었다.

“알아? 그 새끼도 얼굴이 망가졌대. 너 때문에. 진짜로. 피아노 손 떨린다면서 술을 마시고, 길에서 헤맸대. 그리고…”

“그리고?”

“아, 그리고 JYA에서 나왔대. 자기 자리를 내놨대. 그 아버지가 기가 찼다고. 재벌 아들이 음악 회사 일을 그만두고 뭔가를 한다고.”

세아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랐다. 죄책감인가. 안도감인가. 두 가지 다인가.

“그리고 하나 더.”

하늘이가 말했다.

“뭐예요?”

“박소진. 그 아이돌. 너 곡 부르던 그 아이. 그 아이가 인터뷰를 했대. 그 곡이 자기 곡이 아니라고. 그 곡을 쓴 사람이 있다고.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너를 말하는 거야. 너 몰랐어?”

세아는 몰랐다. 제주에서 어머니와 밥을 먹으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랐다.

“기사가 좀 떠돌아다녀. 음악 산업의 저작권 문제 같은 거.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JYA가 박소진이랑의 계약을 해지했대. 혼자 너무 많은 것을 주장했다고. 회사는 그런 아티스트는 필요 없다고.”

세아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박소진이 자신의 음악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잃고 있었다.

“박소진이는 지금 어디 있어요?”

“알아? 그 아이도 혼자가 된 거야. 너처럼. 그런데 그 아이는 너와 달라. 그 아이는 싸워. 자기 권리를 위해. 자기 목소리를 위해.”

하늘이가 말했다.

“제가 그 아이를 만나야 해요.”

세아가 말했다.

“당연하지. 너 둘이 같은 곡을 공유했잖아. 너 둘이 같은 강리우라는 새끼한테 당했잖아. 너 둘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버스가 다시 산을 넘고 있었다. 이제는 제주의 산이 아니라 육지의 산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서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늘이, 고마워요.”

세아가 말했다.

“뭐 하는 소리야. 우리 친구잖아. 근데 진짜 하나 약속해. 이번엔 도망 치지 말고.”

하늘이가 말했다.

“네. 이번엔 도망 치지 않을게요.”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약속인지. 도망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리고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버스는 계속 달렸다. 제주의 하늘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세아는 창문에 손을 댔다. 유리는 차갑고, 손은 따뜻했다. 그 차이가 응축되어 작은 방울들이 생겼다. 그 방울들 속에 제주가 비쳤다.

강남역 지하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하늘이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차. 하늘이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세아를 보자 하늘이는 담배를 창밖으로 내팠다.

“야, 너 진짜. 살이 빠졌어. 뭐 했어?”

하늘이가 말했다.

“가만히 있었어요.”

“가만히 있으면서 이렇게 빠져? 아, 니 어머니 때문이지. 니 어머니가 너한테 뭔가를 했어.”

하늘이가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어머니는 세아에게서 뭔가를 빼앗았다. 아니, 정확히는 세아가 껴안고 있던 모든 것을 걷어냈다. 거짓들. 도망침. 자기기만. 모든 것.

차는 홍대로 향했다. 세아가 일하던 편의점을 지나갔다. GS25.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었다. 그곳은 24시간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세아가 없어도, 세아가 돌아와도, 계속 같은 속도로.

“너 그 편의점 다시 일할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네. 매니저분한테 전화할 거예요. 내일.”

“아, 그리고 이거.”

하늘이가 지하 작은 방으로 차를 돌렸다. 타투 가게. 세아가 손가락에 바늘이 들어올 때의 그 아픔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 아픔은 나쁜 아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명이었다.

“뭐예요?”

세아가 물었다.

“들어와 봐.”

하늘이가 말했다.

지하 방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청바지를 입은 여자. 검은 머리. 그리고 익숙한 얼굴. 박소진이었다.

“안녕하세요.”

박소진이 일어나서 인사했다. 목소리는 작고 정중했다. 하지만 그 눈은 확실했다. 뭔가를 원하는 눈. 뭔가를 바꾸려는 눈.

“어떻게…?”

세아가 물었다.

“내가 찾았어. 인터넷으로. 강리우가 박소진이한테 준 연락처가 있었어. 그리고 박소진이가 나한테 연락했어. 너한테 꼭 만나야 한다고. 그 곡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박소진을 바라봤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본 그 얼굴이 여기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박소진과 여기의 박소진은 달랐다. 여기의 박소진은 외로워 보였다. 마치 세아처럼.

“저는… 죄송합니다.”

박소진이 말했다.

“뭐가요?”

세아가 물었다.

“제가 당신의 곡을 부르면서, 당신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어요. 계약서에는 ‘사내 작곡팀’이라고 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뭔가 이상했어요. 그 곡이 너무 깊었거든요. 너무 개인적이었거든요. 그런 곡이 회사의 작곡팀에서 나올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박소진이 계속 말했다.

“그래서 조사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알았어요. 당신이 강리우라는 사람을 통해 그 곡을 팔았다는 걸. 당신이 이름 없이 그 곡을 내줬다는 걸.”

세아는 박소진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는 미움이 없었다. 대신 공감이 있었다.

“같이 싸워요.”

박소진이 말했다.

“뭘 해야 한다는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저작권을 돌려받으세요.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되찾으세요. 제 이름도 지키면서.”

박소진이 말했다.

세아는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것을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자신도 같은 상처를 입었던 사람이었다.

“같이 싸워요.”

세아가 말했다.

“그래.”

하늘이가 말했다. 그리고 웃었다. 그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웃음이었다.


버스가 서울 강남역에 도착했을 때, 세아는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지금 그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제주에서 어머니에게 받은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너는 여기서 계속 살면 안 돼. 너는 불꽃이야. 불꽃은 어둠에서만 빛난다. 그리고 그 빛은 혼자만을 위한 게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거야.”

세아는 지금 그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불꽃이 되는 것. 혼자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타오르는 것. 그것이 바로 불꽃의 진정한 의미였다.

강남역 지하철 역사 안에서, 세아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도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미안해. 빨리 올게. 그때까지 밥 잘 챙겨 먹고. 누나가 돌아오면 같이 뭔가 할 거야.”

도현이의 답장은 즉시 왔다:

“누나ㅠ 드디어 정상인 것 같네. 기다릴게. 근데 강리우 그 새끼는 진짜 죽이는 거 아닌가? 나도 도와.”

세아는 웃었다. 16살 남자아이의 무모한 용기.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 [다음 화 예고]

강리우가 제주에서 돌아온 세아를 찾아온다. 하지만 이번엔 세아는 혼자가 아니다. 하늘이, 박소진, 그리고 도현이. 세아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 강리우는 자신이 만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반박한다.

# 확장된 화: 불꽃의 재탄생

## 제1장: 진실의 무게

박소진의 사무실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세아가 기대했던 화려한 엔터테인먼트 회사 임원의 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창가 쪽에 놓인 책장에는 음악 이론서와 악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벽에는 유명 뮤지션들의 서명된 포스터 대신 손때 묻은 레코드판들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세아는 소파에 앉으면서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인가, 아니면 두려워했던 것인가? 그 둘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상한 감각이 가슴을 조여왔다.

박소진은 세아의 대면 정반대편에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판단도, 어떤 정죄도 없었다. 단지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진지함만 있었다.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를 기억해요?”

박소진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 깊은 울림이 있었다. 마치 깊은 호수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물결 같은 감정이 그 음성에 담겨 있었다.

“네, 기억해요.”

세아가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보다 더 컸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동안 누군가의 이름으로 숨겨진 목소리.

“그 곡이 발매되고 나서 얼마나 오래됐어요?”

“3개월… 아니, 4개월 정도?”

세아가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4개월이라는 시간은 짧은 것일까, 길었던 것일까? 세아에게는 4년처럼 느껴졌다. 매일 밤 그 곡을 인터넷에서 몰래 검색하고, 그 곡에 붙은 댓글들을 읽으면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가져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거렸던 시간들.

박소진이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세아가 작곡한 곡—아니, 강리우의 이름으로 올라온 곡이 떠 있었다.

“<달빛 속의 약속>이라는 제목의 이 곡이에요. 조회 수 230만. 댓글 5천 개 이상.”

박소진이 천천히 읽어내렸다. 마치 누군가의 죄목을 선언하는 것처럼.

세아는 그 숫자들을 들으면서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자부심? 분노? 슬픔? 모두가 섞여 있었다. 230만 명의 누군가가 자신의 곡을 들었다. 그들의 눈물을 흘리게 했을지도 모르는 곡. 그들의 밤을 따뜻하게 해줬을지도 모르는 곡. 그런데 그 곡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뭔가 이상했어요.”

박소진이 계속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추적자의 집요함이 있었다.

“뭔가요?”

세아가 물었다.

“그 곡이 너무 깊었거든요. 너무 개인적이었거든요.”

박소진이 노트북 화면을 세아에게 향하게 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피아노 소리가 사무실을 채웠다.

*”달빛이 내 창문을 비추는 밤,*

*나는 너와 한 약속을 기억해….”*

그 순간, 세아의 눈물이 나왔다.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작곡한 곡을 다시 들으면서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을.

그 곡은 제주에서 도현이를 데리고 나올 때의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벽 3시에 도현이를 깨워서 짐을 싸라고 했을 때의 죄책감. 엄마가 울고 있는 것을 뒤로하고 버스를 탔을 때의 그 무거운 마음. 모든 것이 그 곡 안에 있었다.

“이런 곡이 회사의 작곡팀에서 나올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박소진이 음악을 멈추고 말했다.

“왜… 왜 저한테 이런 걸 물어보세요?”

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박소진은 일어나서 창문으로 갔다. 강남의 야경이 그의 뒤에 펼쳐져 있었다.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박소진의 어깨가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것이 한숨인지, 아니면 참고 있는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저도 이 일을 겪었거든요.”

박소진이 돌아서며 말했다.

“제가?”

세아가 놀라며 물었다.

박소진은 세아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이번에는 그의 눈빛이 달라 보였다. 그것은 누군가와 고통을 나누는 자의 눈빛이었다.

“저도 처음엔 이름 없이 곡을 썼어요. 신인이었을 때. 돈이 필요했을 때. 제 이름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렇게 5곡을 내줬어요. 그 중 3곡이 히트했어요.”

“그럼… 그럼 저작권료는?”

세아가 물었다.

“거의 받지 못했어요. 계약이 애매했거든요. 그리고 당시엔 저작권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몰랐어요.”

박소진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슬픔이 더 컸다. 그것은 더 무서운 감정이었다. 분노는 언젠가 타오르지만, 슬픔은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저는 다른 뮤지션들을 도와주려고 해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박소진이 말했다.

“그래서 저한테?”

세아가 천천히 물었다.

“그래서 조사를 시작했어요. 왜 갑자기 강리우라는 무명의 뮤지션이 좋은 곡을 내놓기 시작했는지. 그의 배경이 뭔지. 그리고…”

박소진이 세아의 눈을 정직하게 마주쳤다.

“알았어요. 당신이 강리우라는 사람을 통해 그 곡을 팔았다는 걸. 당신이 이름 없이 그 곡을 내줬다는 걸.”

세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것이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그것을 말할 때의 충격은 달랐다. 마치 물속에서 익사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물 위로 올려내주기 전에 한 번 더 물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은 느낌.

세아는 입을 떼려고 했다. 변명을 하려고 했다. 아니면 울려고 했다. 하지만 박소진이 먼저 말했다.

“저는 당신을 처벌하러 온 게 아니에요.”

세아가 박소진의 눈을 다시 마주쳤다. 그 눈에는 정말로 미움이 없었다. 그 대신 있는 것은—공감이었다. 누군가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공감.

“뭘… 뭘 원하시는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박소진이 일어섰다. 그리고 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상처투성이었다. 손가락에는 기타를 오래 잡아서 생긴 굳은살이 있었고, 손목에는 반복되는 움직임으로 인한 힘줄의 흔적이 있었다. 그것은 음악을 위해 살아온 손이었다.

“같이 싸워요.”

박소진이 말했다.

“뭘 해야 한다는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저작권을 돌려받으세요.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되찾으세요. 제 이름도 지키면서.”

박소진이 말했다.

세아는 박소진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그녀 안에서 깨어났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존재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불꽃이 다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같이 싸워요.”

세아가 말했다.

박소진이 웃었다. 그것은 누군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 한계를 뛰어넘기로 결심했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전쟁을 선포하는 웃음이었다.

## 제2장: 제주의 마지막 대화

버스가 제주도를 빠져나가면서, 세아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제주의 검은 모래 해변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 해변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밤을 보냈는가. 도현이를 안고 앉아서 별을 세던 밤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대답할 수 없었던 밤들.

어머니는 세아가 떠나가기 전날 밤, 세아의 방에 들어왔다. 엄마의 눈은 부어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세아가 어릴 때 그렸던 그림 몇 장이 들려 있었다.

“너는 여기서 계속 살면 안 돼.”

엄마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결정의 목소리였다.

“엄마…”

세아가 말을 시작했지만, 엄마가 손을 들어 말했다.

“들어봐. 너는 불꽃이야. 불꽃은 어둠에서만 빛난다. 여기는… 여기는 너에게 너무 어둡다. 너는 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타버리고 있어. 그걸 엄마가 볼 수 없었다면, 엄마는 엄마가 아니야.”

“그럼 도현이는? 엄마는?”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는 너와 함께 가야 해. 그 아이도 이 어둠에서 나가야 해. 그리고 나는… 나는 여기서 나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너는 다른 곳에서 빛나야 한다.”

엄마가 세아를 안았다. 그 품은 따뜻했다. 그리고 슬펐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 불꽃이 되는 것. 혼자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타오르는 것이 진정한 불꽃이야. 너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불꽃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너의 불꽃이 의미 있는 이유야.”

엄마의 목소리는 이제 기억 속에만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강남역에 도착했을 때, 세아는 드디어 엄마의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 제3장: 강남역에서의 깨달음

버스가 강남역에 도착했을 때, 세아는 창밖을 통해 서울의 밤 하늘을 봤다. 제주의 밤 하늘과는 달랐다. 더 밝았고, 더 부산스러웠다. 하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 다른 종류의 빛이 있었다.

세아는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지금 그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제주에 있을 때, 그녀는 세아였다. 남의 이름으로 곡을 내놓는 작곡가. 엄마의 눈물을 뒤로하고 가는 딸. 도현이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누나. 하지만 그녀는 누구였는가?

지금, 강남역의 지하철 역사 안에서,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불꽃이었다. 그것도 혼자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타오를 수 있는 불꽃.

박소진과의 만남이 그것을 증명했다. 박소진도 같은 상처를 입은 불꽃이었다. 그리고 지금 둘은 함께 타오르기로 했다.

세아는 핸드폰을 들었다. 화면에는 도현이의 메시지들이 가득 차 있었다.

*“누나, 언제 와?”*

*“학교 끝났어. 밥 먹어?”*

*“누나… 빨리 와. 혼자 있기 싫어.”*

마지막 메시지는 1시간 전에 온 것이었다. 세아는 천천히 메시지를 작성했다.

“오빠, 미안해. 빨리 올게. 그때까지 밥 잘 챙겨 먹고. 누나가 돌아오면 같이 뭔가 할 거야. 진짜로.”

메시지를 보낸 후, 세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피곤한 숨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단의 숨이었다.

## 제4장: 도현이의 반응

도현이의 답장은 즉시 왔다. 전형적인 16살 남자아이의 스타일이었다.

*“누나ㅠㅠㅠ 드디어 정상인 것 같네. 기다릴게. 근데 강리우 그 새끼는 진짜 죽이는 거 아닌가? 나도 도와.”*

세아는 웃음이 나왔다. 16살 남자아이의 무모한 용기.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것도 어떤 종류의 불꽃이었다.

세아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워. 근데 우리는 합법적으로 싸울 거야. 그게 더 강할 거야.”*

도현이의 답장:

*“알겠어, 누나. 근데 정말 뭔가 할 수 있을까?”*

그 메시지에서 세아는 도현이의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 16살의 남자아이가 누나를 따라 제주를 떠났고, 이제 강한 척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불안한가. 그 감정을 세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할 수 있어. 난 지금 누나가 아니라 세아 자신으로 싸우려고 해. 그리고 너도 그럴 거야.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세아가 메시지를 보냈다.

도현이의 답장은 한참 뒤에 왔다. 그리고 그것은 이모티콘 하나였다. 웃는 얼굴.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강남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세아는 일어섰다. 그리고 지하철 역사의 계단을 내려갔다. 플랫폼의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그 바람 속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의 냄새가 있었다.

## 제5장: 새로운 시작

서울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에는 피아노 건반의 자국이 있었다. 오랫동안 음악을 만들어온 손. 그리고 지금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대의 떨림이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도시 풍경이 흘러지나갔다. 빌딩, 사람들, 자동차.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 싸우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86 / 250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