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83화: 밥상에 담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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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3화: 밥상에 담긴 것들

세아가 집에 돌아왔을 때, 부엌에서는 이미 냄비가 끓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가락들이 칼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고등어를 배로 칠 때의 그런 리듬감. 미역을 다질 때의 그런 속도감. 해녀의 손은 물속에서만 민첩한 게 아니었다. 육지의 부엌에서도 똑같이 빠르고, 정확했다. 마치 그 손들이 수십 년을 한 가지 일에만 바친 손들인 것처럼.

세아는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몸이 무거웠다. 해변에서의 2시간이 2주일처럼 느껴졌다. 근육이 모두 소진되었다는 느낌. 아니, 정확히는 정신이 모두 소진되었다. 강리우의 손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됐을까.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 게 언제였을까. 시간의 흐름이 뒤틀려 있었다. 며칠인지 몇 주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태.

부엌에서 국 끓는 소리가 들렸다. 팔팔 끓는 물의 소리. 어머니가 다시 무언가를 손질하는 소리. 칼이 도마 위에서 톡톡 내려치는 소리. 이 소리들은 세아에게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소리 위에 겹쳐 있었다. 어머니가 매일 아침 이런 소리를 내며 밥을 준비했다. 세아가 학교에 가기 전에, 어머니가 해에 나가기 전에. 그 일상의 리듬감이 세아의 신체에 배어 있었다.

“이제 밥 먹을 수 있겠지?”

어머니가 물었다. 거실 입구에 서서, 손에는 여전히 물이 묻어 있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부엌으로 들어갔다. 식탁은 이미 차려져 있었다. 밥, 국, 반찬 몇 가지. 고등어 구이, 미역국, 그리고 어머니가 직접 담은 김치. 제주식 깍두기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몇 시간 안에 어떻게 준비된 건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아플 텐데. 어머니는 체력이 없을 텐데. 그런데도 이렇게.

“먹어.”

어머니가 밥을 담아 세아 앞에 놓았다. 밥 위에는 고등어 한 점이 올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밥을 담을 때, 항상 그 위에 뭔가를 올렸다. 가장 좋은 반찬을 고르거나, 가장 귀한 것을 골라서. 세아가 어릴 때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해주는 것이니까. 지금 와서야, 세아는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깨달았다.

세아가 수저를 들었다. 손이 떨렸다. 강리우의 손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됐는데도,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신체 기억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신체는 마음보다 오래 기억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첫 숟가락. 국물을 마셨다. 미역국의 담백한 맛이 혀에 닿았다. 짭짤했다. 적당한 정도의 짭짤함. 어머니는 항상 소금을 정확하게 쓰는 사람이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마치 계산된 움직임처럼. 아, 그건 계산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수십 년의 경험이 어머니의 손가락 끝에 배어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목이 아파?”

어머니가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할 수 없었다. 목이 아팠기 때문이 아니라, 말을 하려고 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두 주면 나아. 그런 건 시간이 약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객관적인 톤으로. 마치 의료 정보를 전하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알았다. 어머니의 말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것은, 즉 시간이 흐르면 낫는다는 것은, 즉 세아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머니가 그것을 보장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경험으로, 어머니의 믿음으로.

밥을 계속 먹었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신체는 천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음식이 위장으로 내려가는 느낌. 오랜만의 따뜻한 음식. 서울에서 세아는 대부분 편의점 음식을 먹었다. 삼각김밥, 라면, 주먹밥. 그런 것들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연료 같았다. 신체를 움직이기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 공급. 하지만 어머니의 밥은 달랐다. 음식 자체가 말을 하고 있었다. “살아. 계속 살아.”

“도현이한테는 뭐라고 할 거야?”

어머니가 갑자기 물었다.

세아의 손이 멈췄다. 도현이. 자신이 서울에서 외면했던 그 이름. 자신이 도망치면서 버려둔 그 아이.

“모르겠어요.”

세아가 겨우 말했다.

“모른다고? 그 아이가 엄마한테 전화했어. 너 괜찮냐고. 누나 어디 갔냐고.”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밑에는 분노가 흐르고 있었다. 부드러운 분노. 어머니 특유의, 말로는 표현하지 않는 그런 분노.

“제주에 내려오기 전에 전화를 했어. 학교 다녀오라고 했어. 밥은 먹고 있는지 물어봤어. 근데 너는 연락도 없고, 그 강리우라는 남자는 도현이 손목을 잡고 ‘누나 어딜 갔냐’고 물어봤어.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 것 같아. 낯선 남자가 자기 누나를 찾으면서.”

어머니가 계속했다.

세아의 눈물이 다시 흘렀다. 밥 위로 떨어졌다. 밥이 눈물을 흡수했다. 따뜻한 밥이 차가운 눈물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미안합니다.”

세아가 겨우 말했다.

“미안하다고? 미안한 건 네가 아니라 그 강리우라는 남자야. 미안해야 할 사람은. 근데 그 남자는 미안하지도 않겠지. 미안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항상 그렇더라.”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마지막 문장에서는 약간의 냉기가 들어갔다. 마치 칼이 도마를 스치는 그런 음성.

세아는 밥을 다시 집어먹으려고 했지만, 손이 떨렸다. 너무 심하게. 밥알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물티슈를 가져와서, 바닥을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밥을 담아 세아 앞에 놓았다.

“천천히 먹어. 시간은 많아.”

어머니가 말했다.

시간. 세아는 시간이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수록 자신은 더 깊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흘수록 강리우의 손가락 자국은 더 진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시간이 친구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약이라면, 시간이 치유한다면. 세아는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

밥을 먹으면서, 세아는 생각했다. 강리우의 손. 그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그 따뜻함이 얼마나 거짓이었는지를. 그 거짓된 따뜻함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깊이 물속으로 들어갔는지를.

강리우는 처음엔 구원자처럼 보였다. 자신의 노래를 알아봐주는 사람.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사람. 하지만 그것은 미끼였다. 어머니의 말처럼, 그것은 도망이었다. 자신으로부터의 도망.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가 자신을 구원해주길 바라는 그런 도망.

“엄마.”

세아가 갑자기 말했다.

“응?”

어머니가 물었다.

“강리우. 그 사람을 고소하면 안 돼요?”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지만, 처음으로 방향성이 있는 질문이었다.

어머니는 세아를 바라봤다. 오래. 마치 누군가 물속에 들어간 시간을 재는 것처럼. 그리고 나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야. 넌 아직 강하지 않아. 싸울 준비가 안 돼 있어. 싸우려면, 먼저 살아야 해. 완전히 살아야 해.”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언제요?”

세아가 물었다.

“넌 알 거야. 시간이 흐르면. 언제가 되면 알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싸우면 안 될 이유가 뭘까. 강리우가 자신의 목을 졸랐는데. 강리우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데. 왜 지금 싸울 수 없을까.

하지만 세아는 그 질문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밥을 계속 먹었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신체는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다. 음식이 에너지가 되고 있었다. 그 에너지가 신체의 각 세포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밥을 먹고 있었다. 천천히, 정확하게. 마치 의식을 치르듯이. 밥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는 사람의 먹는 방식. 해녀가 물속에서 공기를 아껴 쓰듯이, 어머니는 밥을 아껴 먹고 있었다.

“너 음악을 하고 싶어?”

어머니가 갑자기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들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응?”

“음악. 너 그걸 다시 하고 싶어? 아니면 이제 포기할 거야?”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음악. 그 단어가 얼마나 멀게 들렸는지. 마치 다른 나라의 언어처럼. 자신이 한 적도 없는 것처럼.

“제주에 있으면서 생각해 봐. 시간은 많으니까. 그리고 답이 나오면, 그때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도와줄게.”

어머니가 말했다.

도와줄게. 그 말이 세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강리우는 도움을 준다고 했지만, 그것은 사실 통제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도움은 달랐다. 어머니의 도움은 진짜였다.

밥을 다 먹었을 때, 태양이 뜨고 있었다. 제주의 아침 햇빛이 부엌의 창으로 들어왔다. 그 빛 속에서, 세아는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큰 희망이 아니었다. 단지 작은 감각. 살아있다는 감각. 내일도 올 것 같다는 감각.

“그런데 엄마.”

세아가 말했다.

“응?”

“도현이한테 뭐라고 할 거요?”

세아가 물었다.

“엄마가 말해줄게. 그 아이는 똑똑하니까. 넌 여기서 쉬어. 그리고 생각해. 넌 뭘 원하는지. 그게 가장 중요해.”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옆에 있으니까. 어머니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으니까.

밥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텅 빈 그릇들. 남은 것은 없었다.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아니, 모두 신체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에너지가 되어, 세아를 다시 살아나게 할 것이었다.

어머니는 밥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가락들이 다시 춤을 추듯 움직였다. 미역을 다질 때의 그런 리듬감. 고등어를 칠 때의 그런 속도감. 그리고 세아는 깨달았다. 어머니의 손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의 손이 시간과 경험을 저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손이 지금 세아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제주의 햇빛이 더 밝아졌다. 어제와는 다른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세아가 살아난 날. 올라온 날. 숨을 쉬는 날.

# 제주의 아침, 다시 살아나다

## 1부: 음식이 되는 시간

세아는 수저를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언제부터 이렇게 떨렸는지 모르겠다. 아마 강리우와 헤어지기 전부터였을 것이다. 아니, 더 전부터. 음악을 포기했을 때부터. 아니면 더더 전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렸을 때부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이 밥이 눈 앞에 있다.

흰 쌀밥이 밥공기에 소복이 담겨 있었다. 김이 아직도 피어올랐다. 어머니가 밥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세아는 코를 통해 그 향기를 들이마셨다. 밥 냄새.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향기. 마치 따뜻한 포옹 같은 냄새였다.

“천천히 먹어. 서두를 필요 없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엌의 한쪽 모서리에서. 어머니는 밥상을 차리고 난 뒤 한발 물러서서 세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따뜻했다. 판단적이지 않았다. 단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세아는 수저로 밥을 떠 입에 넣었다.

아, 이 맛.

밥알 하나하나가 혀 위에서 부서졌다. 단단했다. 하지만 동시에 부드러웠다. 입안에서 따뜻함이 퍼져 나갔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가슴 속에 손을 넣고 천천히 데우고 있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 나 살아있구나.’

그 생각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떠올랐다. 지난 몇 년간은 뭐였을까. 수백 번의 피아노 레슨. 수천 번의 손가락 연습. 그리고 강리우와의 그 모든 시간들. 그것들이 정말 그녀를 살아있게 만들었을까.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거울 속의 움직임 같았다. 누군가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움직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르다. 이것은 단순하다. 밥을 먹는다. 입에 넣는다. 씹는다. 삼킨다.

세아는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밥을 떠 먹기 시작했다.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배고픔이 이렇게 컸던 적이 있었나. 육체적 배고픔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욕망. 무언가로 꽉 채워지고 싶은 욕망이었다.

옆 접시에는 미역국이 있었다. 검은색의 미역이 하얀 국물 속에서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세아는 숟가락으로 미역국을 떠 마셨다. 소금기. 미역의 향. 그리고 어머니의 손길이 담긴 온기.

‘어머니의 손.’

세아는 갑자기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자신의 밥을 먹고 있었다. 검고 작은 손. 미역을 다질 때의 칼질 자국이 아직도 손가락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뭔가를 하고 있었다. 쉬지 않는 손. 그 손으로 인해 세아가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천천히, 정확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마치 의식을 치르듯이. 밥 한 끼를 하나의 예식처럼 대하고 있었다. 입에 넣기 전에 잠시 멈추고, 밥알을 관찰하듯 보고, 그 다음에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건… 뭐지?’

세아는 어머니의 먹는 방식을 관찰했다. 마치 영화를 보듯이. 또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듯이. 어머니는 밥을 아껴 먹고 있었다. 해녀가 물속에서 공기를 아껴 쓰듯이, 어머니는 밥을 아껴 먹고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부터 이렇게 살아오셨을까?’

세아는 갑자기 어머니의 나이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몇 살이었을까. 얼굴의 주름을 보면 5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은 훨씬 더 오래된 것 같았다. 수십 년의 물질고와 육체적 고통이 박혀 있는 눈이었다.

“너 음악을 하고 싶어?”

어머니가 갑자기 물었다.

세아는 수저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갑자기 손전등을 켜진 것처럼 놀라고 당황했다.

“응?”

“음악. 너 그걸 다시 하고 싶어? 아니면 이제 포기할 거야?”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목소리에 책망이 없었다. 호기심도 없었다. 단지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마치 날씨가 어떤지 묻듯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가 또 닫았다.

‘음악.’

그 단어가 얼마나 멀게 들렸는지. 마치 다른 나라의 언어처럼. 자신이 한 적도 없는 것처럼. 음악이란 뭐었을까. 피아노를 치는 일?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 강리우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

세아의 머릿속에는 피아노 건반이 떠올랐다. 검은색과 하얀색의 건반들.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매일 두 시간씩 쳐야 했던 그 건반들. 손가락이 움직이면 소리가 났다. 그것을 음악이라고 불렀을까. 강리우는 그것을 음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리우의 욕망을 키보드 위에서 구현하는 것일 뿐이었다.

“제주에 있으면서 생각해 봐.”

어머니가 계속 말했다.

“시간은 많으니까. 그리고 답이 나오면, 그때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도와줄게.”

어머니가 말했다.

‘도와줄게.’

그 말이 세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치 손이 물에 담가졌을 때처럼 따뜻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강리우는 도움을 준다고 했었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있어. 너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만들어주고 있어. 이것이 사랑이야. 이것이 진정한 도움이야.” 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통제였다. 감옥이었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도움은 달랐다. 어머니의 도움은 진짜였다.

세아는 다시 밥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이번에는 더 천천히. 어머니처럼. 밥알을 혀 위에서 부수며 맛을 내게 했다.

## 2부: 햇빛과 희망

밥을 다 먹었을 때, 태양이 뜨고 있었다.

제주의 아침 햇빛이 부엌의 창으로 들어왔다. 그 빛은 마치 누군가가 천천히 문을 열어주는 것처럼 들어왔다. 처음에는 희미했다. 그 다음에는 점점 밝아졌다. 마지막에는 방 전체를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세아는 그 빛 속에 앉아 있었다. 얼굴에 햇빛이 닿았다. 따뜻했다. 마치 누군가가 손으로 세아의 뺨을 쓸어주는 것 같았다.

‘이게 뭐지? 이 감각은?’

세아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햇빛이 보였다. 빨간색으로. 마치 혈관을 통해 피가 흐르는 것처럼.

‘희망?’

그것이 희망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가슴 속에 움트고 있었다. 작은 싹. 마치 겨울을 견딘 나무가 봄이 되자 첫 잎을 피우는 것처럼.

“그런데 엄마.”

세아가 말했다.

“응?”

“도현이한테 뭐라고 할 거요?”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 강리우의 아들. 세아의 피아노 학생. 아니, 피아노 학생이었던.

세아는 갑자기 도현이를 생각했다. 똑똑한 아이였다. 피아노를 잘 쳤다. 음감도 좋았다. 하지만 항상 슬픈 표정으로 피아노를 쳤다. 마치 벌칙을 받는 것처럼.

‘내가 도현이를 그렇게 만들었나?’

세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강리우에게 억압을 받은 것처럼, 세아도 도현이를 억압했을지도 모른다. 음악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엄마가 말해줄게. 그 아이는 똑똑하니까. 넌 여기서 쉬어. 그리고 생각해. 넌 뭘 원하는지. 그게 가장 중요해.”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주름진 얼굴. 검게 타버린 피부. 하지만 눈은 맑았다. 마치 깊은 우물처럼 맑았다.

‘어머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세아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옆에 있으니까. 어머니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으니까.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처럼.

세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언제 이렇게 울게 되었을까. 강리우와 함께 있을 때는 울 수 없었다. 울면 약해 보인다고 했으니까. 울면 예술가의 품격이 떨어진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는 울 수 있다.

“괜찮아.”

어머니가 말했다.

“울어. 충분히 울어야 해. 그래야 비워지고, 그래야 채워져. 그게 사람 사는 거야.”

어머니는 밥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가락들이 다시 춤을 추듯 움직였다. 빈 그릇을 들었다가 싱크대로 가져가고, 밥상 위의 부스러기를 닦아내고, 수저를 정렬했다.

‘어머니의 손.’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바라봤다. 미역을 다질 때의 그런 리듬감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칼이 도마 위에서 ‘칙칙칙’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음악이었다. 고등어를 칠 때의 그런 속도감으로 물을 닦았다.

‘어머니의 손이 생각하고 있다?’

세아는 깨달았다. 어머니의 손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의 손이 시간과 경험을 저장하고 있다는 것을. 수십 년의 삶이 손가락의 움직임에 담겨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그 손이 세아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부엌의 창을 통해 제주의 햇빛이 더욱 밝아졌다. 아침이 깊어지고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 3부: 올라온 날

세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제주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돌담. 귤나무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바다.

‘난 여기 왔구나.’

세아는 지난 며칠간의 일들을 생각해 봤다. 강리우에게 도망치듯이 나간 것.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비행기에 탔던 것. 그리고 어머니의 품에 안겼던 것.

그것이 현실인가? 아니면 꿈인가?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창밖의 햇빛 아래에서.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지 않았다. 처음으로. 얼마나 오래전부터 떨리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떨리지 않았다.

‘나 살아있다.’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들렸다. 마치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선언하는 것처럼. 내가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고 있다.

세아는 일어서서 부엌의 싱크대로 갔다. 어머니가 마지막 그릇을 닦고 있었다.

“엄마, 내가 할게요.”

세아가 말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돌아봤다.

“괜찮아. 넌 쉬어.”

“아니에요. 나 할 수 있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세아 자신도 놀랐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세아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움직이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강리우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어머니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한발 물러섰다. 싱크대는 세아의 것이 되었다.

따뜻한 물이 흘러나왔다. 세아의 손이 물에 담겨졌다. 온기. 그릇이 세아의 손 위에 놓여졌다. 스폰지가 그릇을 감쌌다. 원을 그리듯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게 무슨 춤 같지?’

세아는 생각했다. 그릇을 씻는 것이 춤처럼 느껴졌다. 피아노를 칠 때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각 동작이 의미가 있었다. 각 동작이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다.

“세아.”

어머니가 말했다.

“응?”

“좋아. 그 표정이 좋아. 그런 표정을 더 자주 했으면 좋겠어.”

세아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억지 미소가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시간이 지났다. 그릇들이 하나씩 씻어졌다. 스푼들, 포크들, 숟가락들. 모든 것이 깨끗해졌다.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 끝났어?”

어머니가 물었다.

“응. 다 끝났어요.”

세아가 대답했다.

“고마워. 도와줘서.”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의 일을 고맙다고 해주는 사람. 그것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없었는지 모르겠다.

부엌의 창을 통해 제주의 햇빛이 여전히 밝게 들어오고 있었다. 밥상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텅 빈 그릇들이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아니, 모두 신체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음식이 에너지가 되고 있었다. 그 에너지가 신체의 각 세포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손가락 끝까지. 발가락 끝까지. 그리고 가슴의 중심까지.

세아는 창밖을 다시 바라봤다. 제주의 햇빛이 더 밝아졌다.

‘어제와는 다른 날이 시작되고 있다.’

세아는 생각했다.

‘나 올라왔다. 물 위로.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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