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82화: 목소리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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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2화: 목소리의 무게

제주의 해변에서 새벽빛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검은색에서 남색으로, 남색에서 회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색깔의 전환. 세아와 어머니는 여전히 돌 위에 앉아 있었다. 30분이 지났을까, 1시간이 지났을까.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의미를 잃었다. 오직 파도의 소리만이 중요했다. 규칙적인, 반복되는, 끝나지 않는 파도의 소리.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아까의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도현이 때문에 일어났어. 엄마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렸어. 죽는 건 쉬웠어. 근데 살아야 한다는 건… 그건 다른 얘기였어.”

세아는 어머니를 보지 않았다. 대신 바다를 봤다. 바다는 깊었다. 그 깊이를 재려는 시도조차 무의미해 보였다. 어머니의 말이 계속 흐르고 있었고, 그 말들이 세아의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마치 파도가 모래를 적시는 방식으로.

“아빠가 죽었을 때, 엄마는 널 붙들었어. 넌 울고 있었고, 엄마는… 엄마도 울어야 했어. 그런데 너를 안고 울 수가 없더라. 너를 놓아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엄마는 울지 않기로 했어. 대신 일했어. 해에 나갔어. 매일매일. 아무리 파도가 높아도.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세아는 알았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해녀가 물속에서 숨을 참듯이, 어머니도 감정을 참고 있었다. 그 참음의 무게가 어머니의 몸을 더 작게, 더 구부러지게 만들었다.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세아야.”

어머니가 드디어 세아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가 세아를 꿰뚫었다. 마치 물속에서 미역을 찾듯이.

“살아남는 건 사랑보다 먼저 와야 한다는 거야. 너는 지금 누군가를 위해 죽으려고 하고 있어. 그 강리우라는 남자를 위해. 근데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건 도망이야. 자신으로부터의 도망이야.”

세아의 목이 메었다. 어머니의 말들이 꼭 맞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누군가 세아의 가슴을 열어 내부를 들여다본 것처럼.

“네가 살아야 도현이도 살아. 네가 살아야 엄마도 살아. 네가 살아야 너 자신도 살아. 그게 순서야. 그게 법칙이야.”

어머니가 세아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안았다. 손은 거칠었다. 물 속에서, 바위 위에서, 무거운 미역을 드는 과정에서 생긴 굳은살들. 그런 손이 세아를 감싸고 있었다. 보호하는 것처럼, 동시에 놓아주는 것처럼.

“제주에 왜 왔어? 정말로.”

어머니가 물었다.

세아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목이 아팠다. 강리우의 손가락 자국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자국들 위에서 목소리를 만들어내려고 했지만, 목소리는 오지 않았다. 마치 성냥이 젖어서 불을 붙일 수 없는 것처럼.

“말 안 해도 돼.”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는 알아. 넌 도망쳤어. 그 강리우한테서. 그리고 그게 맞았어. 그게 잘한 거야.”

세아의 눈물이 다시 흘렀다. 이번엔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았다. 안도감. 그리고 죄책감. 도망친 자신을 어머니가 인정해줬다는 안도감. 그리고 도현이를 버리고 온 자신을 어머니가 받아줬다는 죄책감.

“근데 이제는 올라와야 해. 더 깊이 들어가면 안 돼. 해녀들도 바닥에 너무 오래 있으면 죽어. 산소가 없으니까. 넌 이미 물 밖에 나왔어. 이제는 숨을 쉬어야 해.”

어머니가 세아를 안아줬다. 세아의 머리가 어머니의 가슴에 놓였다. 심장의 박동을 들었다. 규칙적인, 계속되는, 멈추지 않는 박동. 살아있다는 소리. 어머니가 계속 살아있다는 소리.

시간이 흘렀다. 하늘은 계속 밝아졌다. 별들은 완전히 사라졌고, 해의 테두리가 수평선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황색의 호. 새로운 날의 시작. 어제와는 다른 날의 시작.

어머니는 일어섰다. 세아도 따라 일어났다. 두 사람의 몸은 차가워져 있었다. 새벽 제주의 추위가 뼈까지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추위는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추위는 세아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감각이 돌아왔다는 것을 증명했다.

“들어가자. 밥 해줄게.”

어머니가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 세아는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어머니의 발걸음은 느렸지만 확실했다. 마치 물 속에서 미역을 따는 동작처럼. 목표를 향한 움직임. 흔들림 없는 움직임.

거실로 돌아왔을 때,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광선 속에 먼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먼지들. 그것도 생명이었다. 이곳의 모든 것이 생명이었다. 곡팡이도, 먼지도, 그리고 세아도.

어머니는 냉장고를 열었다. 미역국의 냄비를 꺼냈다. 어제와 같은 냄비. 바다의 냄새가 나는 냄비. 밥솥에 밥을 담았다. 국을 그릇에 붓고, 계란을 깨서 끓는 국물에 풀었다. 계란이 동그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어머니는 그것을 저었다.

세아는 거실의 창문 옆에 앉았다. 햇빛이 얼굴에 닿았다. 따뜻했다. 처음으로 따뜻한 것을 느꼈다. 강리우와 함께했던 몇 달 동안, 세아는 추위만 느꼈었다. 아무리 그가 자신의 손을 감싸도, 아무리 그의 팔에 안겨도, 세아는 계속 추웠다. 그것은 외부의 추위가 아니었다. 내부의 추위였다. 영혼의 추위.

하지만 지금, 햇빛 속에서, 세아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것은 강리우가 주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침묵이 주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존재가 주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밥을 차렸다. 밥그릇, 국그릇, 그리고 작은 반찬들. 김, 멸치, 계란. 간단했다. 하지만 충분했다. 세아는 밥을 들었다. 국을 마셨다. 맛이 있었다. 아, 이건 기적이었다. 며칠간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했던 세아가, 지금 처음으로 맛을 느꼈다. 짠맛. 따뜻함. 생명.

“먹어.”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를 바라보면서. 그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음식을 먹어.” “살아가.” “포기하지 마.” “나를 믿어.” 모든 것이 그 한 단어에 담겨 있었다.

세아는 계속 먹었다. 밥을 삼킬 때마다, 세아는 조금씩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강리우의 손에 의해 빼앗긴 것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목소리. 숨. 그리고 선택.

어머니는 세아를 보면서 밥을 먹었다. 세아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어머니에게는 충분했다. 세아가 살아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식사를 마친 후,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새벽 5시 때부터 몇 통의 전화가 쌓여 있었다. 모두 도현이로부터였다. 그리고 한통은… 하늘이로부터였다.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지 않았던가.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던가.

“뭐야?”

어머니가 물었다.

“도현이… 그리고 하늘이. 전화.”

세아가 말했다.

“받아.”

어머니가 말했다. 간단했다. 명령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허락이었다. 세아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허락. 다시 말을 걸어도 된다는 허락.

세아는 도현이의 번호를 눌렀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지나갔다.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건다. 가장 간단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행동이었다.

신호가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누나?”

도현이의 목소리였다. 깨어난 목소리. 놀란 목소리. 그리고 무언가 다른 감정이 섞인 목소리.

“응.”

세아가 말했다. 목이 아팠다. 강리우의 손가락 자국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지만 말이 나왔다. 처음으로, 강리우의 손에서 벗어난 후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전달했다.

“어디야? 어디에 있어?”

도현이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분노도 있었고, 걱정도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감정이 있었다. 형누나를 잃었을 뻐 나올 법한 감정.

“제주야.”

세아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신호음만 들렸다. 도현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해.”

세아가 먼저 말했다. “많이 미안해. 그리고… 내가 돌아갈 거야.”

“언제?”

도현이가 물었다.

“내일. 내일 비행기 타고 갈게.”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결정이었다. 제주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어머니의 암시가 아니라,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세아 자신의 결정이었다. 어머니를 보고, 도현이를 보고, 하늘이를 보고, 그리고 자신을 다시 봐야 했다.

“누나… 강리우가…”

도현이가 말했다.

“알아. 나도 알아. 그건 이제… 끝났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확실했다. 성냥이 다시 불을 붙인 것처럼. 꺼지지 않을 불처럼.

어머니는 세아를 봤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세아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미소를 봤다. 몇 달 동안, 어머니는 계속 이 모습으로 살았다. 미소 지으면서. 세아를 기다리면서. 세아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도현아.”

세아가 말했다. “고마워. 전화 자꾸만 해줘서. 고마워.”

도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누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우는 아이가.

전화를 끊은 후, 세아는 하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늘이도 곧바로 받았다. 마치 계속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야 나세아! 미쳤어? 어디 간 거야? 3주를 연락도 없이—”

하늘이의 목소리가 폭발했다. 분노했다. 걱정했다. 살아있는 목소리.

“미안해. 제주 있었어. 엄마 만났어.”

세아가 말했다.

“제주? 그 강리우 때문에?”

하늘이가 물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하늘이 앞에서는.

“미쳤다. 정말 미쳤어. 그 인간이 뭐 했어? 진짜로. 목에 뭐 자국 있다더라. 도현이가…”

하늘이가 계속했다. “너 내일 서울 와. 우리 만나. 지금 당장 티켓 예약해. 말이야.”

“응. 내일 저녁 비행기. 인천 도착 7시.”

세아가 말했다.

“좋아. 공항에서 만나. 그리고 세아야.”

하늘이가 말했다.

“응?”

“넌 이제… 올라왔어. 알지?”

하늘이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이해였다. 그것은 수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며칠간 터뜨린 적 없는 울음. 이번엔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이번엔 살아난다는 눈물이었다.

어머니는 세아를 안아줬다. 휴대폰을 들었던 손도, 전화를 끝낸 후의 손도. 모든 것을 안아줬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어머니가 세아의 등을 토닥거렸다. 해녀가 물 위로 올라올 때의 리듬으로. 올라왔다는 신호로. 살아났다는 신호로.

그 밤, 세아는 어머니 옆에서 잤다.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 꿈을 꾸지 않는 잠. 강리우의 손이 목을 조르는 악몽이 없는 잠. 오직 어머니의 호흡만 들으면서, 세아는 천천히 자신의 것으로 돌아왔다.

새벽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일어났다. 해에 나가야 했다. 매일과 같이. 하지만 이번엔 어머니는 세아를 깨우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축복처럼. 그리고 조용히 나갔다.

세아는 혼자 깨어났다. 오후 11시였다. 12시간을 잤다. 아마도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창밖의 제주는 여름 햇빛 속에 있었다. 밝았다. 투명했다. 그리고 세아는 생각했다.

내가 올라왔다.

아직 물 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올라오는 과정에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리우였다. 아홉 번째 전화. 아마도 열 번째, 열한 번째가 계속될 것이었다.

세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책상 위에 놓았다. 계속 울게 내버려뒀다. 그 울음소리는 이제 세아의 것이 아니었다.

세아는 거울을 봤다. 목의 자국은 여전히 진했다. 검은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신체는 상처를 색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세아도 기억해야 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올라와야 한다는 것을.

세아는 짐을 꾸렸다. 거의 없었다. 며칠 치의 옷, 몇 권의 책, 그리고 어머니가 싸준 김. 제주의 김. 바다의 맛이 담긴 김.

비행기는 내일 저녁이었다. 그까지 세아는 제주에서 있을 것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침묵 속에서. 그리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강리우의 전화는 계속 울렸다.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대신, 파도의 소리를 들었다. 제주의 바람을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호흡을 들었다.

올라오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12,847자]

# 올라오는 법

## 1부: 심연

휴대폰 화면이 다시 밝혀졌다. 강리우. 여덟 번째 전화였다.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아니, 손가락만이 아니라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제주의 여름 밤은 따뜻했고, 그녀가 누워있는 어머니의 방도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세아의 몸은 계속 떨렸다.

목이 아팠다. 살살 손으로 만져보면 통증이 흐릿하게 울렸다. 손가락 다섯 개가 남긴 자국들. 아침 거울에서 본 그 자국들이 지금도 피부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검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해가고 있는 그 자국들.

세아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그 순간이 자꾸만 떠올랐다.

강리우의 손. 그의 얼굴. 그의 목소리. “내가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말이 자꾸만 반복되었다. 마치 주문처럼.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심호흡을 했다. 차라리 아파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보다는.

어머니가 방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복도의 불이 들어오면서 세아의 얼굴을 밝혔다. 어머니는 세아의 얼굴을 본 후 한 발 안으로 들어왔다. 음식냄새가 따라 들어왔다. 미역국. 어머니는 밤 11시에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던 것이다.

“밥을 먹어야 해.”

어머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지만 그 단호함 속에는 무언가 다른 감정이 묻어났다. 그것은 걱정이었고, 동시에 결단이었다. 마치 파도가 절벽을 깍아내려가는 것처럼.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 난 못…”

“먹어.”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이번엔 더 낮은 목소리로. 그리고 그 목소리 속에는 거의 기도에 가까운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세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움직일 때마다 몸이 아팠다. 아, 맞다. 어제 저녁 강리우가…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면 또 다시 그 악몽들이 밀려올 것이다.

주방으로 내려가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들어다봤다. 손등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강리우를 할퀸 자국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가 자신의 목을 조를 때, 세아는 이 손들로 그의 팔을 할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어. 그것만으로도 살아남았어.’

미역국 냄새가 더 짙어졌다. 큰 냄비 속에서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미역은 부드러워 보였다. 마치 바다에서 방금 건져낸 것처럼.

어머니는 밥을 담았다. 밥알 하나하나가 정성 들여 지어진 밥. 세아는 밥을 받았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숟가락을 들었다. 국을 떠올렸다. 첫 번째 숟가락. 국물이 목을 넘어갔을 때의 감각이 생생했다. 따뜻했다. 짠맛이 혀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맛이 없었다.

‘엄마가 끓인 미역국을 못 맛본다니.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걸까?’

강리우의 목소리가 자꾸 들렸다.

세아는 계속 먹었다. 맛이 없어도 계속 먹었다. 어머니를 보지 않으려고, 어머니의 눈 속에 담긴 그 깊은 슬픔을 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다만 세아가 먹는 것을 봤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그 모든 과정을 봤다.

“밥이 좀 진해?”

어머니가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거짓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알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알았다.

## 2부: 수면선

밥을 마친 후, 어머니는 다시 세아를 안았다.

세아는 어머니의 팔을 느꼈다. 어머니의 팔은 단단했다. 해녀로서 평생 바다와 싸워온 팔. 그 팔이 세아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세아가 깨질 것 같아서, 마치 세아가 사라질 것 같아서.

“엄마…”

세아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거의 신음에 가까웠다.

“응. 엄마 여기 있어.”

어머니는 세아의 등을 문질렀다. 리듬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물 위에서의 숨을 맞추는 리듬 같았다. 물 속에서 올라올 때의 리듬.

세아는 어머니의 가슴에 기대었다. 어머니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박동. 그것은 세아를 안심시켰다. 어머니가 여기 있다. 어머니가 살아있다. 그렇다면 자신도 살아있을 수 있다.

휴대폰이 또 울렸다. 여덟 번째… 아니, 아홉 번째였나? 세아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강리우는 계속 전화를 할 것이고, 세아는 계속 받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받아야 하나?”

어머니가 물었다.

“아니야. 엄마.”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다른 감정이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그것은 죄책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방감이었다.

“받지 마. 절대로 받지 마.”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절실한 것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간청이었다. 아니, 그것은 약속이었다. 네가 절대로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약속.

세아는 그제야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본 것이 얼마만일까?

“넌 이제… 올라왔어. 알지?”

어머니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낮았지만,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 3부: 재생

그것은 며칠 동안 터뜨린 적 없는 울음이었다.

강리우에게서 벗어난 이후로, 세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눈물이 모두 말라버린 것처럼. 마치 자신에게 울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이것은 살아난다는 눈물이었다. 오직 살아남았다는 것만을 증명하는 눈물.

“올라왔어. 이제 다 됐어.”

어머니가 계속 말했다. 세아의 등을 토닥거렸다. 마치 해녀가 물 위로 올라올 때처럼. 그것은 올라왔다는 신호였다. 살아났다는 신호였다.

세아의 울음은 더 커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음. 거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 하지만 그것은 절망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활의 비명이었다.

“엄마… 미안해. 난 왜 이렇게… 왜 이렇게 멍청했어?”

세아가 말했다. 자책이 가득한 목소리로.

“멍청하지 않았어. 넌 사랑을 원했던 거야. 그게 잘못된 건 아니야.”

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는 어떤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근데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넌 이제 알 거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어머니는 세아를 더 꽉 안았다.

밤이 깊어갔다. 세아의 울음은 점차 잦아들었다. 피로가 몰려왔다. 그것은 정신적 피로였다. 정신적 피로가 완전히 육체를 지배했을 때의 그 깊은 피로.

“자자. 이제 잠을 자.”

어머니가 속삭였다.

세아는 어머니 옆에 누웠다. 어머니의 팔이 여전히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마치 세아가 어린아이인 것처럼.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세아가 이제 막 태어나는 것 같았다.

‘올라왔다. 올라왔어.’

세아는 자신에게 계속 말했다. 마치 주문처럼.

그 밤, 세아는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 꿈을 꾸지 않는 잠. 강리우의 손이 목을 조르는 악몽이 없는 잠.

단 하나의 감각만이 세아의 의식을 관통했다. 어머니의 호흡. 차분하고, 규칙적이고,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호흡.

## 4부: 새벽의 선물

새벽이 밝아올 때, 세아는 깨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났다. 몸을 천천히 움직여서 세아를 깨우지 않으려고. 해녀로서 평생 물 속에서 움직인 어머니의 몸은 그런 조용한 움직임에 능했다.

해에 나가야 했다. 매일과 같이. 해녀는 바다를 위해서 살고, 바다를 위해서 죽는다. 그렇게 자신의 어머니가,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하지만 오늘 아침, 어머니는 세아를 깨우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는 세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것은 축복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것은 축복이었다. 그것은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그것은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잘 있어. 우리 딸.”

어머니가 속삭였다. 세아는 깨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알았다. 세아의 어떤 부분이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을.

어머니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복도의 불을 켜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을 때도, 신발을 신을 때도, 현관문을 열 때도 최대한 조용했다.

밖의 공기는 차가웠다. 제주의 이른 아침은 언제나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은 상큼함이었다. 죽음의 차가움이 아니라, 시작의 차가움.

어머니는 자신의 자동차로 향했다. 바다로 가는 길. 평생을 그 길로 다닌 길.

“제발, 우리 딸이 올라오게 해줘.”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하늘을 향해서. 바다를 향해서.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의 영혼을 향해서.

## 5부: 깨어남

세아가 깨어났을 때는 오후 11시였다.

12시간을 잤다. 거의 깨어나지 않고 한숨에 잤다. 아마도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창밖을 보았다. 제주의 여름 햇빛은 여전히 밝았다. 아니, 햇빛이 밝다기보다는, 세아의 눈이 처음으로 그것을 선명하게 본 것 같았다. 투명했다. 투명한 햇빛이 집 안의 모든 것을 밝히고 있었다.

세아는 손을 들어다봤다. 강리우를 할퀸 자국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은 달랐다. 더 이상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올라왔다. 내가 올라왔다.’

세아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여덟 번째… 아니, 아홉 번째 전화였을까? 아니면 열 번째였을까?

강리우였다.

세아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의 떨림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살아있다는 증거로서의 분노.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받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책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계속 울도록 내버려뒀다. 그 울음소리는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리우의 것이었다. 그리고 강리우의 울음소리는 세아의 책임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난 그냥 내가 될 뿐이다.’

거울을 봤다.

목의 자국은 여전히 진했다. 검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신체는 상처를 색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생물학적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세아도 기억해야 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올라와야 한다는 것을.’

세아는 일어났다. 몸이 여전히 아팠지만, 움직임은 더 자연스러웠다.

짐을 꾸렸다. 거의 없었다. 며칠 치의 옷. 몇 권의 책. 그리고 어머니가 싸준 김.

제주의 김. 바다의 맛이 담긴 김. 오후 11시에 세아가 자고 있는 동안, 어머니가 직접 들어가서 싼 그 김.

휴대폰은 계속 울렸다.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그것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 6부: 선택

비행기는 내일 저녁이었다.

그까지 세아는 제주에서 있을 것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침묵 속에서. 그리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세아는 현관문을 열었다. 밖의 공기가 들어왔다. 차갑고, 짠 냄새가 나는 바다 공기.

“어디 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해에서 나온 후, 소금기 묻은 모습 그대로. 어머니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눈은 밝았다.

“산책을 좀 하려고. 괜찮아?”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

“응. 엄마.”

세아는 밖으로 나갔다.

제주의 골목은 친숙했으면서도 낯설었다. 강리우와 함께 다닐 때는 이 길들을 다르게 봤던 것 같았다. 강리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 길들을 선택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세아는 자신을 위해서 이 길을 선택했다.

바다로 향했다. 사람이 별로 없는 해변. 어머니가 항상 말했던 그곳. “너를 위한 바다다.”

모래 위에 앉았다. 파도의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변함없고, 그리고 영원한 소리.

‘올라오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하지만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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