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80화: 사랑이라는 이름의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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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0화: 사랑이라는 이름의 빚

어머니의 손이 멈췄다. 숟가락은 반쯤 들린 채로, 밥알 몇 개가 떨어져 내려 밥그릇 위에 흩어졌다. 세아는 어머니의 질문이 계속될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결국 물어볼 것이고, 세아는 대답해야 했다. 거짓말로도, 침묵으로도 도망칠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었다.

“그 강리우라는 남자. 너가 사랑해?”

어머니가 물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밑에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해녀가 물속에서 숨을 참을 때의 그런 긴장감. 곧 터져 나올 것 같은 것들을 누르고 있는 그런 힘.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60대 중반의 얼굴. 20대에는 예뻤을 얼굴. 30대에는 강했을 얼굴. 40대에는 슬픔이 스며들기 시작했을 얼굴. 지금은 모든 감정이 침전물처럼 가라앉은 얼굴. 물의 바닥처럼.

“세아야. 너 나한테 거짓말하면 안 돼. 엄마한테는 특히.”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모르겠어요.”

세아가 겨우 말했다. 목이 아팠다. 강리우의 손가락 자국들이 아직도 생생했다. 매 시간마다 더 진해졌다. 신체는 상처를 색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신체는 정직하다고 했다. 하지만 신체가 정직하다면, 세아의 몸은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어머니는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완전히 내려놓았다. 아직 밥이 반쯤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대신 세아를 바라봤다. 그 시선은 물리적인 거리를 무시하고 세아의 내부로 침투했다. 마치 해녀가 물속에서 미역을 찾아내듯이, 어머니는 세아의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려고 했다.

“사랑이라는 건 말이야, 세아야.”

어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누군가를 목졸라 미친다는 건 아니야. 누군가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걸 봐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니야.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지옥이야.”

세아는 창밖을 봤다. 제주의 새벽이 천천히 밝아지고 있었다. 별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 불을 끄듯이. 마치 세아의 희망들이 사라지듯이.

“근데 엄마한테 미안한 거야. 그 사람이 날 해쳤다는 게 아니라, 날 해친 사람을 내가 죽일 수 없다는 게. 그게 미안해. 엄마한테.”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새벽의 조용함 속에서도 거의 사라질 것 같은 목소리.

어머니는 세아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마치 놀란 물고기를 진정시키듯이. 그리고 세아를 안아줬다. 세아의 목은 어머니의 가슴에 닿았고, 목의 자국들이 어머니의 팔에 닿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그것을 느꼈을 것이었다.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멍들. 신체가 말하는 진실들.

“엄마가 말해줄게. 뭐가 사랑이고 뭐가 아닌지.”

어머니가 세아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세아의 머리는 제주 바람으로 인해 칙칙했고, 소금기가 남아 있었다. 몇 달을 서울에서 보낸 머리. 한강 다리에서 죽기 위해 준비했던 머리.

“해녀 엄마가 물속에 들어갈 때, 숨을 참아. 깊게 들이마시고, 오래 참고, 올라올 때까지 참아. 그런데 올라올 때가 제일 중요해. 왜냐하면 그때가 살아난다는 뜻이거든. 그때 공기를 마신다는 뜻이고, 그때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야.”

어머니가 계속했다. “그게 사랑이야, 세아야. 누군가와 함께 숨을 참을 수도 있고, 혼자 숨을 참을 수도 있지. 근데 중요한 건, 올라와야 한다는 거야. 반드시 올라와야 해. 그래야 살아난다는 거야.”

세아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결연했다. 마치 어머니가 물속에서 미역을 따고 있을 때처럼.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목소리.

“그 강리우라는 남자는 뭐야? 너랑 함께 숨을 참았나? 아니면 너를 물속에 더 깊이 밀어넣으려고 했나?”

어머니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자체가 대답이었다. 어머니는 알아차렸다. 세아의 침묵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올라와야 해, 세아야.”

어머니가 세아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으로 세아의 뺨을 쓸어내렸다. 눈물이 있었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세아는 모르지 못했다.

“올라와야 한다고. 그 사람한테서. 그 빚에서. 그 죄책감에서. 모든 것에서 올라와야 해. 그게 살아나는 거야.”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명령이 아닌 간청이 담겨 있었다. 마치 자신의 딸이 물속에 빠져 있고, 자신은 물 위에서 그녀를 부르고 있는 그런 간청.

세아는 어머니의 눈을 봤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다. 해녀는 물속에서 우는 법이 없다고 했다. 눈물이 나오면 물과 섞여서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모든 것을 말로 전달했다. 눈물 대신에.

“제주에 있는 동안, 생각해봐. 뭐가 너한테 진짜 필요한 거고, 뭐가 너를 죽이는 거고. 그리고 언제 올라올 거고.”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는 지금 해에 나가야 해. 하지만 저녁에는 돌아올게. 그때까지 집에서 쉬어.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자도 자고. 몸을 돌봐. 너 아무도 안 봐줄 거니까.”

어머니는 세아를 안아줬다. 한 번 더. 마지막으로. 그 안음 속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사랑, 분노, 슬픔, 절망, 그리고 희망. 모든 것이 섞인 그런 안음.

“올라와. 제발.”

어머니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물속에서의 숨비소리 같았다. 살아있다는 것을 외치는 목소리.


어머니가 떠난 후, 세아는 거실에 혼자 남겨졌다. 아침은 천천히 밝아졌고, 태양은 창밖의 제주 바다에 빛을 흘렸다. 세아의 목의 자국들은 햇빛 아래에서 더 검게 보였다. 신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신체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세아는 휴대폰을 다시 찾아냈다. 침대 아래에서. 화면을 켰다. 도현의 전화 기록들이 떠 있었다. 새벽 4시 52분. 새벽 5시 3분. 새벽 5시 18분. 계속 전화를 했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카톡 메시지들도 있었다.

“누나 뭐 해? 연락 없길래 걱정된다”

“응답해. 제발”

“엄마 어디 갔어? 엄마도 안 보여”

“누나 응답해 진짜”

“엄마 말로는 제주 간다고 했는데 누나도? 둘 다? 왜 나만 안 말해?”

도현이는 16살이 아니라 17살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나이. 그런데 누나는 도망쳤고, 어머니는 해에 나갔고, 도현이는 혼자 남겨졌다.

세아는 핸드폰으로 도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은 벨을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도현이가 받았다.

“누나?”

도현이의 목소리는 낮았다. 화난 목소리도 아니고, 슬픈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피곤한 목소리. 밤을 샜던 목소리.

“응.”

세아가 말했다.

“넌 지금 어디야?”

“제주.”

“제주? 왜 제주에 가?”

“어머니를 만나려고.”

세아가 말했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거짓이 아니었다.

도현이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은 길었다. 세아는 도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누나가 도망쳤다는 것. 어머니도 도망쳤다는 것. 자신만 남겨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누나, 나 다음 주에 수학 모의고사 있어.”

도현이가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국어도 있고, 영어도 있고. 근데 누나가 없으니까 좀 이상한데. 아무도 물어본 거 없어. 어떻게 되가 하는지.”

도현이가 계속했다. “누나 목 괜찮아? 전에 핸드폰으로 본 자국들 봤거든. 뭐 그런 상처들.”

세아의 목이 아팠다. 도현이가 자신의 SNS 스토리를 본 것이었나. 아니면 누군가가 말한 것이었나. 어쨌든, 도현이는 알고 있었다. 누나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응. 괜찮아.”

세아가 거짓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넌 거짓말할 때 목소리가 높아져.”

도현이가 말했다. 17살의 고등학생이, 자신의 누나보다 더 정확하게 누나를 읽고 있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놓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올라와야 한다고. 그 사람한테서. 그 빚에서. 그 죄책감에서. 모든 것에서 올라와야 해.”

도현이가 물었다.

“누나, 그게 누구 말이야?”

“어머니 말이야.”

세아가 대답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했어?”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말을 반복했다. 해녀의 은유를 반복했다. 올라오는 것, 숨을 참는 것, 살아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도현이는 들었다. 밤새 깨어 있던 17살의 고등학생이, 누나의 목소리를 통해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

“누나, 나 입시 붙을 거야.”

도현이가 갑자기 말했다.

“응?”

세아가 물었다.

“나 입시 붙을 거고, 누나는 자기 음악을 해. 그게 우리가 해야 할 거야. 엄마 걱정하지 말고. 엄마는 엄마고, 우리는 우리야.”

도현이가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도현이의 말 속에는 너무 많은 것이 있었다. 성숙함, 슬픔, 그리고 희망. 모두가 섞여 있었다. 17살의 남자아이가 25살의 누나에게 주는 조언. 그것은 어떤 책에도 없는 조언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언어였다.

“도현아.”

세아가 말했다.

“응?”

“미안해.”

“뭐가?”

“모든 거.”

세아가 대답했다.

도현이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괜찮아. 다음에 돌아와. 그때는 내가 밥 사줄게.”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눈물이 흘렀다. 이번엔 강리우 때문도 아니고, 어머니 때문도 아니었다. 도현이 때문이었다. 17살의 남자아이가 자신의 누나를 위해 말한 그 단순한 말 때문이었다. “다음에 돌아와.”

그것은 약속이었다. 올라오라는 약속. 올라올 수 있다는 약속. 살아날 수 있다는 약속.

세아는 거울을 봤다. 목의 자국들은 여전히 검었다. 하지만 햇빛 아래에서 보니, 자국들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검은색 안쪽에 보라색이 다시 보이고 있었다. 신체는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치유하고 있었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제주의 바다는 여전히 파란색이었다. 깊고 끝없는 파란색. 그 속에서 어머니는 지금 미역을 따고 있을 것이었다. 숨을 참고, 올라오고, 또 참고, 또 올라오고. 그렇게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었다.

“올라와야 한다고.”

세아가 거울 앞에서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말하듯이. 자신을 위한 약속처럼.

그리고 그 순간, 제주의 햇빛이 창밖에서 더 밝아졌다. 새벽은 완전히 지나갔고, 아침이 왔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 올라와야 한다고

## 제1부: 밤의 끝자락

밤은 여전히 깊었다.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 세상이 완전히 멈춘 듯한 시각이었다. 세아는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자고 있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의 작은 금이 보였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는 그 금이, 지금은 세상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서지기 쉬운 것들. 깨져버린 것들.

세아의 목은 아팠다. 자국이 선명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러보면 통증이 흐르고, 거울에 비추어보면 회상이 밀려온다. 그래서 요즘 세아는 거울을 피한다. 또는 거울 앞에 서 있어도 자신의 목을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눈을 위로 들어올린다. 눈만 본다. 자신의 눈에서 누군가를 찾으려고 한다.

휴대폰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 유일한 빛이었다. 카톡 목록을 다시 본다. 강리우의 메시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일주일 전의 그 마지막 메시지 이후로. “나는 안 돼. 너는 이미 끝났어. 네가 좋아하던 음악도, 그 꿈도 모두 끝났어.”

25살이라는 나이가 이렇게 무거울 리가 없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대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고, 작곡도 할 수 있었고, 음악을 향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꿈은 비싸다. 학비도, 악기 값도, 무대 경험도 모두 비싸다. 그래서 서빙을 했고, 음악 학원에서 일했고, 밤 늦게까지 작곡을 했다. 그렇게 번 돈은 어머니의 의료비로 흘러갔다. 서울에서의 꿈은 점점 흐릿해졌다.

그러다가 강리우를 만났다. 음악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프로듀서라고 했다. 그가 세아의 데모 곡을 들었을 때의 그 희망감. “넌 정말 특별해. 난 너를 밀어줄 수 있어.” 그 말이 세아를 얼마나 들떴게 만들었는지. 어머니의 병도, 형편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음악을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강리우는 없었다. 아니, 강리우는 있었지만, 세아가 생각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거짓말을 했고, 약속을 깼고, 결국 세아를 버렸다. 가장 처참한 순간에.

그래서 어제 밤이 있었다. 그래서 목의 자국이 있다.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밤이 이렇게까지 깊으면, 생각들이 치명적이 된다. 생각들이 자신을 삼킨다. 숨을 막힌다. 세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물을 마실 필요가 있었다. 무언가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자신을 삼킬 것 같았다.

거실로 나가는 길에, 세아는 도현이의 방 문을 봤다. 약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도현이는 아직도 깨어 있는 것 같았다. 17살의 고등학생.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아이. 그 아이가 밤새 깨어 있다는 것은, 아마도 자신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공포스러워서, 또는 자신을 걱정해서일 것이다.

세아는 문을 두드렸다.

“도현아. 자고 있어?”

문이 열렸다. 도현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피곤했다.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세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나. 넌 왜 깨어 있어?”

도현이가 물었다.

“나도 물을 마시려고 나왔어. 넌?”

“숙제.”

도현이가 대답했다. 거짓말이었다. 세아는 알 수 있었다. 형제자매는 그렇게 서로를 안다. 목소리의 떨림에서, 눈을 맞추지 않는 방식에서. 도현이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밤새 깨어 있으면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면서 말이다.

세아는 도현이의 팔을 잡고, 거실로 이끌었다. 둘은 소파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제주의 밤이 보였다. 깊은 검은색. 저 아래 있을 바다도 검을 것이다. 어머니는 낮에만 해녀로 일한다. 밤에는 쉰다. 낮게 휘파람을 부르면서 말이다.

“도현아.”

세아가 말했다.

“응?”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니는 요즘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병이 심해지면서, 말보다는 침묵을 선택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모든 것을 말한다. 침묵 속에서, 손짓 속에서, 제주 바다에 들어갈 때의 그 단호한 표정 속에서.

“엄마가 어제, 나한테 말했어. 해녀 얘기를 하면서.”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가 집중했다. 17살 남자아이의 눈이 자신의 누나를 향했다.

“해녀가 뭐를 하는지 알지? 물속으로 들어가서, 미역을 따고, 소라를 따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올라오는 거야. 숨을 참으면서 계속 내려가면 죽어. 그래서 올라와야 해. 올라와야만 해.”

세아가 반복했다. 자신도 처음 듣는 어머니의 말이었다. 아니, 어머니에게서 직접 들은 말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입을 열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을 잡았을 때, 어머니의 눈을 봤을 때, 세아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그 말로 뭘 하려던 거야?”

도현이가 물었다.

“응?”

“누나, 그게 누구 말이야?”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어머니 말이야.”

세아가 대답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했어?”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말을 다시 반복했다. 해녀의 은유를 다시 말했다. 올라오는 것, 숨을 참는 것, 살아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도현이는 들었다. 밤새 깨어 있던 17살의 고등학생이, 누나의 목소리를 통해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기 위한 지혜였다. 제주 바다에서 얻은 지혜였다.

## 제2부: 약속

도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세아는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도현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17살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세아는 그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눈의 초점이 바뀌는 것에서. 입술이 움직이는 것에서.

“누나.”

도현이가 말했다.

“응?”

“나 입시 붙을 거야.”

도현이가 갑자기 말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약속이 아니라, 다짐이었다. 세아는 깜짝 놀랐다.

“응?”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피곤함이 사라졌다. 대신 뭔가 단단한 것이 그 자리에 들어찼다.

“나 입시 붙을 거고, 누나는 자기 음악을 해. 그게 우리가 해야 할 거야. 엄마 걱정하지 말고. 엄마는 엄마고, 우리는 우리야.”

도현이가 말했다. 그 말을 할 때, 도현이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세아는 이 17살의 남자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단호한 도현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도현이의 말 속에는 너무 많은 것이 있었다. 성숙함이 있었다.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희망이 있었다. 모두가 섞여 있었다. 가족의 책임감. 형제의 사랑. 그리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도현아.”

세아가 말했다.

“응?”

“미안해.”

“뭐가?”

“모든 거.”

세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아직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현이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괜찮아. 다음에 돌아와. 그때는 내가 밥 사줄게.”

이 말이 모든 것을 바꿨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 이미 내려놓았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거실의 불빛 아래서. 도현이의 옆에서.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이번엔 강리우 때문도 아니고, 어머니 때문도 아니었다. 도현이 때문이었다. 17살의 남자아이가 자신의 누나를 위해 말한 그 단순한 말 때문이었다.

“다음에 돌아와.”

그 말은 무엇인가? 세아는 생각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올라오라는 약속. 올라올 수 있다는 약속. 살아날 수 있다는 약속. 해녀처럼, 숨을 참고 올라오듯이, 살아날 수 있다는 약속.

도현이는 세아를 안았다. 17살의 남자아이가, 25살의 누나를 안았다. 세아는 도현이의 팔 안에서 울었다. 밤새 억눌렀던 모든 눈물이, 모든 슬픔이, 모든 절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의 눈물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날 수 있다는 눈물이었다. 올라올 수 있다는 눈물이었다. 약속의 눈물이었다.

“도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세아가 반복했다.

“괜찮아, 누나. 괜찮아.”

도현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이제 누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역할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형제자매는 그렇게 성장한다. 때로는 형이 동생이 되고, 동생이 형이 된다. 사랑 앞에서는 나이가 의미가 없다.

## 제3부: 아침

시간이 지났다.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밤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검은색이 자주색으로 변하고, 자주색이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새벽의 색이었다.

세아는 도현이의 손을 놓았다. 도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소파에서, 세아의 어깨에 기대어. 그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서,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도현이의 머리를 베개에 옮겼다. 담요를 덮어줬다.

그리고 세아는 거울로 가는 길을 택했다.

침실의 거울은 커다랬다.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눈이 부었다. 얼굴이 부었다. 밤새 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세아는 자신의 목을 봤다.

목의 자국들은 여전히 검었다. 보라색이 섞여 있는 검은색.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분명했다. 아직도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햇빛 아래에서 보니, 자국들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검은색 안쪽에 보라색이 다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아주 옅은 노란색이 나타나고 있었다. 치유의 색이었다.

신체는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치유하고 있었다. 세아는 이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몸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몸은 살고 싶어 했다. 올라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치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세아는 창밖을 봤다. 제주의 바다는 여전히 파란색이었다. 깊고 끝없는 파란색. 그 속에서 어머니는 몇 시간 후에 미역을 따러 들어갈 것이었다. 해가 떠오르면, 어머니는 일어날 것이고, 반주머니와 함께 바다로 나갈 것이었다. 숨을 참고, 올라오고, 또 참고, 또 올라오고. 그렇게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올라와야 한다는 것을.

세아는 거울 앞에서 중얼거렸다.

“올라와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하듯이. 자신을 위한 약속처럼. 해녀처럼. 어머니처럼.

“올라와야 한다고.”

## 제4부: 새로운 아침

그리고 그 순간, 제주의 햇빛이 창밖에서 더 밝아졌다. 새벽은 완전히 지나갔고, 아침이 왔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세아는 침실을 나와 부엌으로 갔다. 아침 식사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도현이가 일어나면, 밥이 필요할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밤을 새우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침 밥이 중요하다. 그것은 낮을 살기 위한 에너지이다.

냉장고를 열었다. 계란이 있었다. 밥이 남아 있었다. 야채도 있었다. 세아는 계란을 깼다.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밥을 볶기 시작했다. 밥이 끓는 소리. 계란이 터지는 소리. 야채가 익는 소리. 이것들이 모두 모여서, 새로운 소리를 만들었다. 살아가는 소리였다.

도현이가 나타났다. 여전히 눈이 부었지만, 표정이 다르다.

“누나. 뭐해?”

“밥. 아침밥 해줄게.”

“좋아.”

도현이가 앉았다. 부엌의 식탁에. 그리고 세아는 밥을 담았다. 계란 계란볶음밥. 단순했다. 하지만 따뜻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언제나 새벽에 일어난다. 해녀의 시간 때문이다. 해는 떠오르고, 해녀는 일어난다. 그것이 자연의 리듬이다.

어머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의 목을 봤다. 자국들을 봤다. 그리고 세아는 어머니의 눈에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봤다. 눈물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딸이 살아 있다는 것의 확인이었다.

“밥 먹어, 엄마.”

세아가 말했다.

어머니가 앉았다.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깊이 있게. 세아는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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