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9화: 어머니의 손
새벽 4시 47분. 세아는 어머니의 옆에 누워 있었지만 자지 못했다. 천장의 곰팡이 자국들을 세고 있었다. 열 개. 스물 개. 서른 개. 곰팡이는 생명이었다. 이곳의 습기 속에서 조용히 번식하는 생명. 세아처럼, 아무도 모르게 자라나는 것들.
어머니의 숨소리는 깊고 규칙적이었다. 해녀의 호흡. 물속에서 배운 호흡법. 깊게 들이마시고, 오래 참고, 천천히 내보낸다. 생존의 리듬. 그 리듬 속에서 어머니는 자고 있었고, 세아는 깨어 있었다.
세아의 목은 여전히 뜨거웠다. 강리우의 손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자국들은 더 진해졌다. 보라색에서 검은색으로. 신체는 상처를 색으로 기억한다. 신체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증거다.
세아는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어머니를 깨우지 않으려고. 방은 어둠으로 가득했고, 창밖의 제주는 새벽의 파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직 별들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 대기 오염이 없는 곳에서만 보이는 별들.
세아는 거실로 나갔다. 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은 실제로는 부엌과 한 공간이었다. 작은 냉장고, 낡은 가스레인지, 그리고 작은 밥상. 어머니의 인생이 모두 이 공간에 들어가 있었다. 60대 중반의 해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냉장고를 열었다. 김, 멸치, 계란, 그리고 어제 사온 것으로 보이는 미역국의 냄비. 냄새는 짙었다. 바다의 냄새. 소금의 냄새. 어머니의 냄새.
세아는 냉장고를 다시 닫았다. 먹을 마음이 없었다. 아니, 먹을 수 없었다. 목이 아팠다. 강리우의 손가락들이 남긴 상처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서 오는 아픔이었다.
거실의 벽에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낡은 접착테이프로 붙은 사진들. 어머니가 해녀였을 때의 사진,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의 사진, 그리고 어린 세아와 도현의 사진들. 시간이 축적된 벽. 기억의 벽.
세아는 어머니의 사진들을 봤다. 30대였을 때의 어머니. 40대였을 때의 어머니. 50대였을 때의 어머니. 매 십 년마다 어머니는 더 작아졌다. 더 구부러졌다. 더 투명해졌다. 마치 물속에서 천천히 침식되는 바위처럼.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새벽 4시 52분. 누군가가 전화를 걸었다. 화면에는 “도현”이라고 떠 있었다.
세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꺼버렸다. 도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미안해, 누나가 도망쳤어”? “미안해, 누나가 너를 버렸어”? “미안해, 누나는 지금 제주에 있어”?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같은 번호. 도현. 도현. 도현.
세아는 휴대폰을 침대 아래에 밀어넣었다. 마치 문제 자체가 사라지면 문제도 사라질 거라고 믿는 것처럼.
“뭐 하고 있어?”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거실 입구에 서 있었다. 옷을 다시 입었다. 해녀 작업복 같은 옷. 검은색 긴팔 셔츠. 어머니는 벌써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 가?”
세아가 물었다.
“해에 나가야지. 뭐.”
어머니가 대답했다. 자연스럽게, 마치 매일 아침이 이런 것처럼.
“어머니… 지금 새벽 5시예요.”
세아가 말했다.
“해가 뜰 때까지 준비하는 거야. 도구도 챙기고, 물도 데우고.”
어머니가 냉장고를 열었다. 미역국을 꺼냈다. 냄비째로. 밥솥의 밥을 푼다. 밥을 담는다. 국을 붓는다. 모든 동작이 빨랐다. 수십 년을 반복한 동작의 속도.
“어머니, 제 때문에…”
세아가 말했다.
“뭐가 제 때문이야. 엄마는 원래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거야.”
어머니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국을 마신다. 밥을 삼킨다. 이것도 빨랐다. 효율적이었다. 낭비가 없었다.
세아는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는 밥을 먹으면서도 세아를 보지 않았다. 대신 벽의 사진들을 봤다. 자신의 젊은 시절의 사진을. 세아의 아버지의 사진을.
“세아야.”
어머니가 밥을 먹다가 갑자기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엄마 질문하나 하고 싶어. 정직하게 답해줄래?”
“네.”
세아가 말했다. 정직하게 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밥은 아직 반쯤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먹기를 멈췄다.
“그 강리우라는 남자. 너가 사랑해?”
제주의 새벽은 매우 조용했다. 냉장고의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벽에 붙은 시계의 초침 소리. 그리고 세아의 숨소리.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둘 다 거짓이고 둘 다 참인 그런 상태였다.
“모르겠어요.”
세아가 마침내 말했다.
어머니는 다시 밥을 집어 들었다. 남은 밥을 다 먹었다. 남은 국도 다 마셨다. 밥그릇을 식탁에 놓았다. 손으로 입을 닦았다.
“엄마가 너한테 얘기해줄 게 있어.”
어머니가 말했다.
“뭐요?”
“엄마가 아빠를 만났을 때 얘기.”
어머니가 일어섰다. 밥그릇을 싱크대에 놓았다. 물로 헹굼다. 모든 동작이 여전히 빨랐다.
“엄마는 아빠하고 같은 포구에서 만났어. 엄마가 해에 나가고 있을 때, 아빠가 그물을 던지고 있었어. 아빠는 어부였어. 그리고 아빠는 진짜 멍청한 남자였어.”
어머니가 웃었다. 그것은 슬픈 웃음이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첫눈에 반했대. 엄마가 물에서 올라올 때, 물에 젖은 얼굴, 물을 빨아내는 그 표정. 아빠는 그걸 보고 이 여자가 내 인생이라고 생각했데.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말했어. ‘나랑 결혼해.’ 막 만났는데.”
세아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전에 들은 적 없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뭐라고 했냐고? 엄마는 웃었어. 미쳤다고. 그리고 물에 다시 들어갔어. 그런데 아빠는 매일 포구에 나왔어. 매일. 엄마가 물에서 올라올 때까지. 그리고 또 말했어. ‘나랑 결혼해.’ 이 말을 매일.”
어머니는 싱크대에서 돌아섰다. 세아를 봤다.
“그럼 엄마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이 남자 진짜 미쳤다. 근데 엄마는 3개월 뒤에 그 남자랑 결혼했어. 왜 그랬을까?”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랑해서가 아니었어. 엄마는 처음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어. 근데 그 남자가 매일 포구에 나오고, 매일 같은 말을 하고, 매일 엄마를 보려고 했을 때… 엄마는 엄마 자신이 누군지 깨달았어.”
어머니가 세아에게 더 가까워졌다.
“아빠가 엄마를 보는 방식으로만, 엄마는 엄마를 볼 수 있었어. 누군가 나를 이렇게까지 원한다는 그 사실로만. 그게 엄마가 사랑이라고 착각한 거야. 그게 엄마의 전부였어.”
어머니의 손이 올라왔다. 세아의 얼굴을 감싸 들었다. 이전 밤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세아야. 누군가가 너를 원한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누군가가 너를 죽이려고 할 정도로 원한다는 것은… 그건 사랑이 아니라 중독이야. 그건 너를 위한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을 위한 거야.”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느꼈다. 해녀의 손. 물속에서 미역을 따던 손. 아버지를 간호하던 손. 세아를 안아주던 손. 그 손들이 이제 세아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 남자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어머니가 물었다.
“뭐요?”
세아가 물었다.
“살려줘서 고맙다고? 날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뭔가 그런 거?”
어머니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세아의 침묵이 대답이었다.
“그건 감사가 아니라 빚이야. 그리고 빚은 갚을 수 없어. 계속 갚아야 하는 거야. 평생. 그래서 그 남자는 너를 놓을 수 없는 거야. 너도 그 남자를 놓을 수 없는 거고.”
어머니의 손이 내려왔다. 세아의 목에 닿았다. 자국들 위에. 강리우의 손가락이 남긴 상처 위에.
“이걸 봐. 이게 사랑일 리 없어. 이건 전쟁이야. 너와 그 남자 사이의 전쟁.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하나야.”
“뭐요?”
세아가 물었다.
“도망치는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완전히. 되돌아오지 않을 정도로. 그 남자가 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럼… 도현이는?”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는 세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 그리고 엄마도. 엄마는 이제 너를 위해 산 시간이 충분해. 아빠가 죽고 나서 엄마는 너 때문에만 살았어. 그런데 너는 그 남자 때문에 살고 있어. 누군가는 누군가 때문에 살 수는 없는 거야, 세아. 그건 불가능해.”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잡았다. 세아의 손은 작았다. 어머니의 손은 더 작았다. 하지만 그 작은 손에는 힘이 있었다. 물속에서 미역을 따는 힘. 생존의 힘.
“엄마는 오늘 해에 나갈 거야. 그리고 세아는 여기 있을 거야. 일주일. 아니, 한 달. 충분히 쉬어. 전화는 받지 마. 아무도. 그 남자도, 도현이도. 그냥… 여기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
세아가 말했다.
“세아. 엄마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해줄게. 엄마는 너를 좋아해. 정말로. 근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너는 너 자신을 좋아해야 해. 누군가가 아니라, 너 자신을.”
어머니는 시계를 봤다. 새벽 5시 18분. 해가 뜨기까지 한 시간 조금 더 남았다.
“엄마 가야겠다. 도구 챙겨야 해.”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검은 가방. 해녀의 가방. 세아는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는 세아를 한 번 더 보고, 문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세아는 혼자 남겨졌다. 거실에서. 어머니의 집에서. 제주의 새벽에서.
세아는 거울로 갔다. 욕실의 거울. 자신의 목을 봤다. 자국들은 여전히 검었다. 신체는 상처를 기억한다. 신체는 정직하다.
세아는 거울에서 자신을 처음으로 직접 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을 처음으로 직시했다. 강리우의 눈으로 보인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의 눈으로 보인 자신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눈으로.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알았다. 어머니가 말한 것의 의미를.
누군가 때문에 산다는 것은, 누군가 때문에 죽는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새벽 6시 42분. 세아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의 침대에서. 어머니의 냄새가 배어 있는 침대에서. 천장의 곰팡이 자국들을 다시 세기 시작했다. 열 개. 스물 개. 서른 개.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세고 있었다. 곰팡이를 셀 때마다, 세아는 한 번씩 숨을 내쉬고 있었다. 깊게. 마치 물속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휴대폰은 여전히 침대 아래에 있었다. 울릴 것이다. 계속 울릴 것이다. 도현이의 전화는. 강리우의 전화는. 하늘의 전화는.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호흡을 따라 숨을 쉬었다. 깊게. 길게. 규칙적으로.
신체는 정직하다. 신체는 상처를 기억한다. 그리고 신체는 치유할 수 있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 누군가 때문에
## 1부: 새벽의 대화
새벽 4시 47분. 세아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집 거실. 제주의 어느 작은 아파트의 거실. 창밖으로는 아직도 어둠이 물씬했다. 그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만 들렸다. 반복적으로, 끝없이.
세아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는 것은 자신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불안할 때, 두려울 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지금 손톱 주변은 붉게 부어 있었다. 피가 날 지경이었다.
“세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세아는 손가락을 입에서 빼고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미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검은색의, 낡은 잠수복. 그 위에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는 따뜻한 보리차 두 잔이 들려 있었다.
“마셔. 따뜻한 게 좋아.”
어머니가 세아 앞에 한 잔을 내려놨다. 세아는 받아들었다. 손이 떨렸다. 그래서 잔이 딸깍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세아의 대면에 앉았다. 거실의 낡은 소파. 이 소파는 아마도 십 년 이상 되었을 것 같았다. 소파의 팔걸이에는 바래진 해녀 신문들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그곳을 치우고 앉았다.
“도현이는 세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그 말의 무게는 무거웠다. 세아는 보리차를 마실 수 없었다. 손이 너무 떨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마도. 엄마는 이제 너를 위해 산 시간이 충분해.”
어머니는 자신의 보리차를 천천히 마셨다. 입술이 찬 잔에 닿았을 때, 세아는 어머니의 입술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깨달았다. 물속에서 버티는 시간들이 만든 거칠기. 생존의 흔적.
“아빠가 죽고 나서 엄마는 너 때문에만 살았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아버지. 세아는 아버지의 얼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8살 때 아버지는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뇌졸중이었다. 바다 위에서.
“엄마는 너를 잃을 수 없었어. 그래서 엄마는 너를 위해서만 살았어. 일했어. 일만 했어.”
어머니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들은 굽어져 있었다. 관절염이 있었다. 세아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밤마다 그 손을 데우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그런데 너는 그 남자 때문에 살고 있어. 강리우 때문에. 누군가는 누군가 때문에 살 수는 없는 거야, 세아.”
어머니가 일어서 걸어왔다. 세아 옆으로. 세아는 어머니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비에 젖은 신발의 소리. 어머니는 아직도 밖에서 나왔거나, 혹은 예전의 산책에서 돌아온 것 같았다.
“그건 불가능해.”
어머니의 말이 끝났을 때,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잡았다. 세아의 손을 자신의 손 안에 넣었다.
세아의 손은 작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은 더 작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어머니의 손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세아가 자라면서, 세아의 손이 어머니의 손보다 커지면서부터일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손에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약한 힘이 아니었다. 물속에서 미역을 따는 힘.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을 참으며, 손가락으로 바위를 더듬으며 미역을 찾아내는 힘.
생존의 힘.
“엄마는 오늘 해에 나갈 거야.”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어머니의 얼굴은 결정적이었다. 이미 마음을 먹은 사람의 얼굴. 세아는 어머니의 결정을 바꿀 수 없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세아는 여기 있을 거야. 일주일. 아니, 한 달. 충분히 쉬어.”
“어머니…”
세아가 말을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이 더욱 강하게 세아의 손을 눌렀다.
“전화는 받지 마. 아무도. 그 남자도, 도현이도. 도현이는 착해. 그런데 착한 게 문제야. 너는 착한 사람 때문에 자살하지 마.”
“엄마…”
“그냥… 여기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아무도 없이. 아무도의 시선 없이. 오직 자신을 위해 사는 법을 배워.”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놓았다. 하지만 세아의 손은 아직도 어머니의 손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따뜻했다. 위로하는 종류의 따뜻함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확실한 따뜻함이었다.
## 2부: 마지막 말씀
“세아. 엄마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해줄게.”
어머니는 세아의 얼굴을 들었다. 세아의 눈을 직접 봤다. 세아는 어머니의 눈 속에서 자신을 본다. 자신의 목에 있는 상처들을 본다. 자신의 울음을 본다. 자신의 절망을 본다.
“엄마는 너를 좋아해. 정말로.”
어머니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세아는 어머니가 울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은 건조했다. 어머니는 이미 모든 눈물을 다 흘린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죽던 날 밤에.
“근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너는 너 자신을 좋아해야 해. 누군가가 아니라, 너 자신을. 그래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거야. 그래야 누군가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있는 거야.”
어머니는 일어섰다. 천천히. 관절염이 있는 다리로 일어섰다. 세아는 어머니가 일어설 때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봤다. 고통의 표정. 하지만 어머니는 그 표정을 빠르게 지워 버렸다.
“엄마 가야겠다. 도구 챙겨야 해. 해는 금방 뜰 거야.”
어머니가 부엌으로 향했다. 세아는 어머니를 따라 봤다. 어머니는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검은 가방을 들었다. 해녀의 가방. 그 안에는 잠수복을 입을 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었다. 산소통, 나이프, 망사주머니, 추.
어머니는 가방의 지퍼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어머니는 이 가방을 매일 확인했다. 마치 자신의 생명과도 같이.
“엄마.”
세아가 일어서서 따라갔다. 현관에 도달했을 때, 어머니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낡은 검은 신발. 발가락 부분이 닳아 있었다.
“응?”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 돌아와?”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는 작았다. 마치 어린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모르겠네. 미역이 잘 나올 것 같으니까 늦을 수도 있어. 그냥 여기서 쉬고 있어. 냉장고에 밑반찬 있고, 쌀도 있으니까 밥도 해 먹고.”
어머니는 현관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다. 그 거울에는 오십 대 중반의 여자가 보였다. 얼굴은 검게 탔고, 주름은 깊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밝았다. 뭔가를 놓지 않은 사람의 눈.
“도현이가 전화할 거야. 받지 마.”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강리우도 전화할 거야. 더더욱 받지 마.”
“엄마… 강리우가 다친 거 아니야?”
세아가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말했다. 강리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어머니는 세아를 봤다. 그 표정은 미안해 보였다. 또한 안타까워 보였다.
“그 남자가 다쳤으면 그 남자 엄마가 챙길 거야. 너는 왜 자꾸 그 남자 때문에 너 자신을 잃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더 이상 부드럽지 않았다. 그것은 단호한 목소리였다. 결정적인 목소리였다.
“엄마가 간다.”
어머니는 문을 열었다. 밖으로는 아직도 어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둠의 끝에는 새벽빛이 시작되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자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잠깐, 엄마.”
세아가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뭐야?”
“사랑해.”
세아가 말했다. 말은 작았지만, 진심은 컸다.
어머니는 멈췄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는 아버지가 죽던 날의 침묵이 섞여 있었다. 또한 아버지가 죽은 후의 긴 세월의 침묵이 섞여 있었다.
“엄마도 너를 사랑해. 항상.”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세아의 팔에서 자신의 팔을 빼냈다. 부드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하지만 이제 엄마는 너를 위해 살지 않을 거야.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 거야. 그러니까 너도 너의 인생을 살아.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
어머니는 문을 닫았다. 세아는 거실에 남겨졌다. 어머니의 집의 거실에서. 제주의 새벽에서. 혼자.
## 3부: 거울 앞에서
세아는 거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발걸음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아는 욕실로 걸어갔다. 욕실의 거울로.
거울 앞에 선 세아는 자신의 목을 봤다. 목에 있는 자국들. 검은색의, 자주색의, 푸른색의 자국들. 그것들은 여전히 분명했다. 신체는 상처를 기억한다. 신체는 정직하다.
세아는 거울에 더 가까워졌다. 자신의 눈을 봤다. 그 눈 속에는 누가 보이는가? 강리우가 보이는가? 도현이가 보이는가? 어머니가 보이는가?
아니었다. 그 눈 속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공허함만 보였다. 누군가가 아니라, 아무도 아닌 것. 그것이 세아였다.
세아는 거울에서 눈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직시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을 처음으로 직시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어머니가 말한 것의 의미를.
누군가 때문에 산다는 것은 누군가 때문에 죽는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세아는 강리우를 사랑했다. 또는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존이었다. 그것은 자기 부정이었다. 강리우를 위해 자신을 잃은 것. 강리우의 눈으로만 자신을 본 것. 강리우가 좋아하는 세아가 되려고 노력한 것.
그리고 도현이는 어떻게 되는가? 도현이는 착한 아이였다. 세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세아는 도현이를 위해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 세아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
세아는 거울에서 자신을 본다. 그 얼굴은 누구의 얼굴인가? 그것은 세아의 얼굴이다. 오직 세아의 얼굴.
세아는 거울을 떠나 침대로 걸어갔다. 어머니의 침대.
## 4부: 새로운 아침
새벽 6시 42분. 세아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의 침대에서. 천장을 봤다.
천장에는 곰팡이 자국들이 있었다. 세아는 그것들을 세기 시작했다. 열 개. 스물 개. 서른 개.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세고 있었다. 곰팡이를 셀 때마다, 세아는 한 번씩 숨을 내쉬고 있었다. 깊게. 마치 물속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휴대폰은 여전히 침대 아래에 있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전화는 받지 않겠다. 누구의 전화도.
하지만 울릴 것이다. 계속 울릴 것이다. 도현이의 전화는. 강리우의 전화는. 하늘의 전화는.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호흡을 따라 숨을 쉬었다. 깊게. 길게. 규칙적으로.
침대에는 어머니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짠 냄새. 바다 냄새. 생존의 냄새.
세아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바다에 있을 것이다. 깊은 바다 속에. 산소통을 들고. 나이프를 들고. 미역을 찾으며.
어머니는 혼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혼자가 아니다.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몸이 있다. 자신의 의지가 있다. 자신의 인생이 있다.
세아도 혼자이다. 하지만 세아도 혼자가 아니다. 세아에게는 자신의 몸이 있다. 자신의 숨이 있다. 자신의 심장이 있다.
신체는 정직하다. 신체는 상처를 기억한다.
그리고 신체는 치유할 수 있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세아는 눈을 계속 감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숨을 쉬고 있었다. 깊게. 어머니처럼.
휴대폰은 울렸다. 첫 번째 울음.
세아는 눈을 뜨지 않았다.
휴대폰은 계속 울렸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울음.
세아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결국 휴대폰은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침묵이 다시 돌아왔다.
세아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을 들었다. 자신의 숨을 들었다. 자신의 심장 박동을 들었다. 자신의 존재를 들었다.
처음으로.
오직 자신을 위해.
새벽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동쪽 하늘의 자주색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핑크색이, 주황색이, 노란색이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