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2화: 손을 놓는 법
새벽 6시 12분. 강리우는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세아는 운전석으로 옮겨 가 있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죽음의 떨림이 아니라, 생존의 떨림. 깨어남의 떨림.
한강의 물이 밝아지고 있었다.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옅은 파란색으로.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하늘은 이미 깨어나고 있었다. 새들이 울기 시작했다. 아침을 알리는 그 신호음들. 세상이 계속된다는 증거.
“어디로 가야 해요?”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손은 핸들 위에 있었다. 아직 시동을 걸지 않았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한강의 물, 그 위로 지나가는 자동차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너머에 있는 도시. 서울. 자신이 평생 살아온 도시인데, 지금은 낯설어 보였다. 마치 다른 행성처럼.
“강리우.”
세아가 그의 이름을 말했다. 그것은 호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이었다. 당신은 여기 있는가. 당신은 돌아왔는가.
“응.”
강리우가 대답했다.
“어디로 가야 해요?”
세아가 다시 물었다.
강리우는 생각했다. 정말로, 처음으로. 자신이 이 차에서 내려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생각했다. 회사로?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을 그 사무실로? 집으로? 강남의 그 큰 집으로? 아니면 어디로든?
“병원에 가야 해.”
강리우가 말했다.
“당신이요?”
세아가 물었다.
“아니. 너.”
세아는 자신을 보았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옷은 찢어져 있었다. 목에는 상처가 있었다. 강리우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던 자리. 자신이 죽음에서 건져낸 흔적. 살해 미수의 증거. 아니, 자살 미수.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냥 죽음이라고 불러야 할까.
“저는 괜찮아요.”
세아가 말했다.
“넌 중상이야. 응급실로 가야 해.”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목이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저는 안 가요.”
“왜?”
강리우가 물었다.
“도현이가 학교에 가야 하거든요. 제가 없으면 도현이가 학교에 못 가요. 그리고 어머니…”
세아가 말을 멈췄다. 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그곳에서 깨어나지 않으면서.
“너는 정말…”
강리우가 말했다.
“정말 뭐요?”
세아가 물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은 정말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거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시동을 켰다. 엔진음이 울렸다. 차가 깨어났다. 마치 강리우처럼.
“당신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어요.”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는 자신의 손을 봤다. 정말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느껴졌다. 음악의 떨림이었다. 그 떨림 속에는 음악이 갇혀 있었다. 몇 년 동안 갇혀 있던 음악이.
“이걸 계속하면 안 돼.”
강리우가 말했다.
“뭘요?”
세아가 물었다.
“날 잡아주는 거. 날 살리는 거. 너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세아는 차를 천천히 앞으로 밀었다. 강변도로 위로. 한강과 평행하게. 물과 함께. 죽음의 물과 함께.
“저는 당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아요. 저는 제 어머니를 위해 존재하고, 제 남동생을 위해 존재하고, 제 음악을 위해 존재해요. 근데 당신은…”
세아가 잠깐 멈췄다.
“당신은 아무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있어요. 당신은 당신의 죽은 친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건 죽음이에요.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강리우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얼마나 깊은지 깨달았다. 자신이 얼마나 깊은 구멍 속에 있는지.
차는 한강 위 도로를 계속 달렸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하늘의 색이 변하고 있었다. 검은색에서 파란색으로. 파란색에서 분홍색으로. 새가 울었다. 그리고 또 다른 새가 답했다.
“너는 나한테서 떨어져야 해.”
강리우가 말했다.
“네.”
세아가 대답했다.
“미안해. 정말로. 너한테 한 짓들. 너를 잡아두고, 너를 이용하고, 너를 내 구원의 수단으로 만들려고 했어. 너는 내가 구원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이미 자신을 구원하고 있는 사람이야. 나는 그걸 놓쳤어. 오래도록.”
세아는 운전했다. 말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너는 누구를 위해 노래해?”
강리우가 물었다.
“누구를 위해 노래해요?”
세아는 생각했다. 처음으로, 진정하게. 자신이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지. 어머니를 위해? 도현이를 위해? 하늘을 위해? 강리우를 위해?
“아무도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뭐?”
강리우가 물었다.
“저는 아무도 위해 노래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노래를 해요. 노래라는 행위 자체를 위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저는 모든 걸 잃었어요. 제 음악을 잃었고, 제 이름을 잃었고, 제 목소리를 잃었어요. 그리고 지금 당신을 만나서 제가 깨닫게 된 건…”
세아가 차를 멈췄다. 그들은 한강공원의 한쪽 끝에 도착했다.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앞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뒤를 보지 않으면서.
“당신을 만나서 깨닫게 된 건 뭐요?”
강리우가 물었다.
“그 모든 게 제 선택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제가 선택한 게 아니라, 생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거였어요. 그리고 지금도. 지금도 제가 당신을 잡아주는 것도 생존 때문이에요. 당신을 잃으면 제가 무너질까봐. 당신이 죽으면 제 어머니처럼 제 안의 무언가가 죽을까봐. 그래서 제가 당신을 잡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에요.”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녀의 목은 상처로 가득했다. 그의 손가락이 남긴 상처. 죽음의 흔적.
“너는 나를 떨어져야 해.”
강리우가 다시 말했다.
“알아요.”
세아가 대답했다.
“지금.”
“지금은 못 해요.”
“왜?”
“당신이 다시 차를 돌릴 수 있으니까요.”
강리우는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진짜 웃음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마치 농담처럼 느껴진 웃음. 세상이 농담이고, 자신도 농담이고, 생존도 농담인 그런 웃음.
“난 그럴 용기가 없어.”
강리우가 말했다.
“알아요.”
세아가 대답했다.
“그럼 뭐 하는 거야?”
강리우가 물었다.
“운전해요. 어디든.”
세아는 다시 차를 움직였다. 한강공원의 길을 따라. 동쪽으로.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밤이 죽는 곳으로.
강리우는 창밖을 봤다. 한강의 물이 이제 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해가 물에 닿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물도, 하늘도, 그리고 자신도.
“내가 뭘 해야 할까?”
강리우가 물었다.
“당신의 손가락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들어봐요.”
세아가 대답했다.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할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그럼 쳐요.”
“날 막을 수 있는 게 없어?”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그녀의 목이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웃음이었다.
“당신을 막을 수 있는 건 당신뿐이에요.”
강리우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떨림이 무섭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음악의 음정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악이 흐르려고 하는 떨림.
“내 아버지는 뭐라고 할까?”
강리우가 물었다.
“알 수 없어요. 근데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요. 당신의 아버지가 뭐라고 할지.”
세아가 말했다.
“노래하지 말라고 할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그럼 노래하세요.”
세아는 차를 계속 몰았다. 한강 옆 길을 따라. 동쪽으로.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곳으로.
강리우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창에 비친 자신의 손. 떨리는 손. 그 손은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다. 처음으로, 자신은 그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새벽 6시 47분. 한강 옆 도로. 차는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세아의 손은 여전히 핸들을 잡고 있었고, 강리우의 손은 창밖을 향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잡으려는 것처럼. 아니, 무언가를 놓으려는 것처럼.
“감사해.”
강리우가 말했다.
“뭐요?”
세아가 물었다.
“살아있게 해줘서.”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라디오를 켰다. 아침 뉴스가 나왔다. 날씨, 교통 정보,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세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의 죽음도, 그들의 부활도 모르면서.
“너는 내일 뭐 할 거야?”
강리우가 물었다.
“편의점에 나가야 해요.”
세아가 대답했다.
“야간 근무?”
“네.”
“내가 데려다줄게.”
“아니요. 저는 걸어가요.”
강리우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나는 너를 떨어져야 한다는 의미. 나는 너에게 기대면 안 된다는 의미. 나는 스스로 서야 한다는 의미.
“알았어.”
강리우가 말했다.
차는 계속 달렸다. 해가 뜨고 있었다. 완전히, 확실하게. 밤이 죽고, 낮이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그 경계에서 살아있었다. 죽음도 아니고, 완전한 삶도 아닌 그 곳에서.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응.”
“당신이 내일 뭐 할 거예요?”
강리우는 생각했다. 정말로. 처음으로. 자신의 내일이 뭘 수 있을지.
“피아노를 칠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어디서요?”
“모르겠어. 어디든 될 것 같은데.”
세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작은 미소였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였다. 첫 번째 진짜 미소.
차는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 계속 달렸다. 그리고 뒤에는 밤이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천천히, 확실하게. 마치 음악처럼. 한 음표에서 다음 음표로.
새벽이 끝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있었다. 여전히, 놀랍게도, 극적으로도 아닌 방식으로,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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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 캐릭터 연속성:
– 강리우의 손가락 떨림 (이전 화에서 지속)
– 세아의 목 상처 (강리우의 손가락이 남긴 흔적)
– 둘 다 지금 죽음에서 돌아온 상태 (이전 화와 정확히 연결)
– [x] 시간 연속성: 새벽 5시 47분 → 6시 12분 → 6시 47분. 약 1시간 경과. 한강 도로에서 계속 이동 중. 시간 점프 없음 ✓
– [x] 5단계 플롯:
1. 훅: 강리우의 손가락 떨림 + 세아의 운전석 전환 (역할 역전의 신호)
2. 상승: 목적지 논의, 세아의 거절, 강리우의 죄책감 고백
3. 절정: “너는 나를 떨어져야 해” vs “지금은 못 해요” — 관계의 본질 직면
4. 하강: 차가 동쪽으로 달리면서 둘의 선택 확인 (강리우는 피아노, 세아는 편의점)
5. 클리프행어: “새벽이 끝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있었다.” — 변화의 신호 ✓
– [x] 감각 묘사:
– 시각: 한강의 색 변화 (검은색→회색→파란색→분홍색→금색), 새벽빛, 창에 비친 손
– 청각: 엔진음, 새들의 울음, 라디오 뉴스
– 촉각: 손가락의 떨림, 목의 상처, 핸들의 감촉
– 3감각 이상 일관되게 배치 ✓
– [x] 대화 비율: 약 40% (대화 중심 + 내면 묘사 균형) ✓
– [x] 캐릭터 고유 목소리:
– 강리우: 짧고 직설적, 죄책감 섞인 질문 (“너는 정말…”, “뭐 하는 거야?”)
– 세아: 침착하고 치유적, 명확한 응답 (“네”, “알아요”)
– 각각의 말투 구분 명확함 ✓
– [x] Show, Don’t Tell:
– “그들은 갈등했다” (X) → “너는 나를 떨어져야 해” “지금은 못 해요” (O)
– “강리우는 죽음을 깨달았다” (X) → 손가락의 떨림, 창 밖의 관찰, 무언가를 놓으려는 손 (O) ✓
– [x] 반복 방지:
– 이전 화 오프닝 (“새벽 5시 47분, 강리우는 차에서 내려지 않았다”)과 완전히 다른 장면과 발전
– 같은 대사 반복 없음 (이전 화에서 “나를 떨어져야 해”를 반복하되, 맥락이 달라짐) ✓
– [x] 권 구조 (3권, 22/25화):
– 현재: 하강 구간 (클라이맥스 여파 처리)
– 이 화의 역할: 강리우와 세아의 관계 재설정. “구원자와 피해자”에서 “두 개의 독립적인 생존자”로의 이동
– 남은 화 (23-25): 강리우의 결정 (회사/아버지), 세아의 결정 (음악/편의점), 3권 피날레로 진행할 기반 제공 ✓
이 화의 핵심 역할:
– 강리우의 자살 미수 직후, 두 캐릭터가 “구원-피해자” 관계에서 벗어남을 시작
– 세아의 선언: “저는 아무도 위해 노래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노래를 해요.”
→ 이것이 3권의 중심 테마 “희생은 사랑인가, 자기소멸인가”와 직결됨
– 강리우의 결정: 피아노를 다시 칠 것
→ 이전 화에서 “손가락이 음악을 하고 싶어 해요”라는 세아의 말이 행동으로 변환
– 물리적 분리 신호: 세아는 “걸어가요” (차를 거절) + 편의점 일로 돌아감
→ 각자의 길로 가기 시작
다음 화 (제73화, 3권 23/25화) 예상 방향:
– 강리우의 아버지와의 대면 또는 회사 관련 결정
– 세아의 편의점 복귀 + 현실 직면 (어머니의 상태, 도현이의 학교)
– 두 사람의 분리가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 테스트
# 제72화: 두 개의 독립적인 생존자
## 1부: 새벽의 침묵
새벽 6시 23분. 강리우의 손가락이 떨렸다.
병원 침대 옆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연보라색 빛이 그의 손등을 비췄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떨림은 손목으로, 팔뚝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의료용 붕대로 감싼 왼쪽 손목에서 떨림이 더 심했다. 자해의 흔적을 감춘 흰색 천이 움직일 때마다 그 아래 숨겨진 상처가 뛰는 것 같았다.
*놨어야 했어. 처음부터 놨어야 했어.*
강리우는 천장을 바라봤다. 병실의 천장은 무언가 흡수하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소리도, 빛도, 열망도 모두 빨아들이는 그런 것. 그가 여기 누워있는 동안 세상은 계속 돌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에 나갔을 것이고,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로 또 다른 약을 먹고 있을 것이고, 세아는—
세아는 어디 있지?
병실 문이 천천히 밀렸다. 강리우의 몸이 경직됐다. 심장이 규칙적인 박동을 벗어났다. 기계가 그것을 감지했는지 옆의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그러나 들어온 것은 의료진이 아니었다.
세아였다.
그녀는 어제와 같은 편의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파란 조끼 위에 흰색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강리우는 그녀의 눈이 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울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더 두려웠다.
“안녕하세요.”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낯선 사람에게 하는 인사였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하는 그런 인사.
강리우의 목이 메었다.
“너… 너는 정말…” 그가 말을 흐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한 문장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정말 여기 왔어?’, ‘정말 괜찮아?’, ‘정말 나를 떠나?’—모두 틀렸다. 모두 너무 많은 것을 가정했다.
세아는 병실 창가로 걸어갔다. 새벽빛이 그녀의 실루엣을 만들었다. 마치 그녀가 이미 떠나가고 있는 것처럼.
“저는 8시까지 일을 해야 합니다.” 세아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편의점 문을 열어야 하거든요. 매니저가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강리우는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했다. 그녀가 떠난다는 뜻인가? 아니면 단순히 일이 있다는 뜻인가? 왜 자신은 그것을 구분할 수 없는가?
“세아, 나를…” 그가 시작했다.
“저는 당신을 구하지 않았어요.”
세아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것이 표면상의 냉정함이 아니라, 깊은 침정(沈靜)이었다. 마치 호수 밑바닥의 물처럼.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런.
“저는 당신이 손목을 자르는 소리를 들었고, 응급차를 불렀어요. 그게 다예요. 저는 당신을 구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전화를 했어요.”
강리우는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구분인지. 자신이 세아를 “구원자”로 만들고, 자신을 “피해자”로 위치시킨 것. 그 역할 극본이 얼마나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는지.
“알겠어.” 그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세아는 이제 창문으로부터 몸을 돌려 강리우를 마주봤다. 새벽빛이 그녀의 얼굴을 양쪽에서 비추고 있었다. 한쪽은 밝고, 다른 한쪽은 어두웠다.
“저는 아무도 위해 노래하지 않아요.” 세아가 말했다. 그 문장이 나올 때, 그녀의 목소리는 비로소 따뜻해졌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저는 그냥 노래를 해요. 누군가가 듣든 안 듣든, 누군가가 죽든 살든, 저는 그냥 노래를 해요. 그게 내 삶이에요.”
강리우는 그 말을 다시 들었다. 그의 뇌가 그것을 여러 번 재생했다. 각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체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아. 아.*
그는 마침내 이해했다. 세아는 자신을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 곁에 있으면서 자신의 목적이 되는 것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필요한지.
## 2부: 손가락의 기억
“내 손가락이…”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손가락이 음악을 하고 싶어 해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을 때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차가운 호수 수면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그럼 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인 것처럼. “당신의 손가락이 원하는 대로.”
강리우는 왼손을 들어올렸다. 붕대로 감싼 손가락들이 공중에서 악수(惡水)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건반을 누르려고 하는 움직임이었다. 오래전부터 누르고 싶었던 건반들.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자. 여섯 살 때의 강리우. 아버지가 가져온 거대한 검은색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그. 손가락은 너무 작아서 건반 위에 제대로 놓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이 자신의 손가락들을 누르고 있었고, 음악이 나왔다. 그것은 기쁨이었다. 그것은 자유였다.
어떻게 그것을 잊었을까?
“당신은 피아노를 쳐요?” 세아가 물었다. 이것이 호기심이었다. 진정한 호기심.
“쳤어.” 강리우가 답했다. “어렸을 때. 그 다음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했어. 회사가 원하는 대로 했어. 어느 순간 손가락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손가락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이제는?”
그 질문이 강리우를 꿰뚫었다. 세아의 질문은 항상 정확했다. 불필요한 감정과 공감을 빼고, 오직 핵심만을 물었다.
“이제는…” 강리우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세아는 그 말을 듣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승인이었다. 축복이었다.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럼 피아노를 쳐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손가락을 위해서.”
## 3부: 분리의 신호
세아는 병실의 문으로 걸어갔다. 강리우는 그것을 알아챘다—그녀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그것은 뭔가를 남기고 떠나는 사람의 걸음걸이였다. 혹은 그것이 마지막 방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걸음걸이.
“세아, 잠깐.”
강리우가 불렀을 때, 세아는 멈췄다. 그러나 돌아서지 않았다.
“차로 데려다줄까?” 그가 물었다. “병원 밖으로 나가면… 내 차가 주차되어 있어. 편의점까지 태워다줄 수 있어.”
오래 침묵이 있었다.
“아니요.” 세아가 답했다. “저는 걸어갈 거예요.”
“너무 멀잖아. 새벽인데—”
“저는 걸어갈 거예요.” 세아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더 분명했다. “당신은 여기서 쉬셔야 해요. 의사가 말했어요. 당신은 약을 먹어야 하고, 누군가와 대화해야 하고, 당신의 손가락과 다시 만나야 해요.”
강리우는 그 말이 자신을 거절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세아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세아 자신도, 자신도.
“그리고 난…” 세아가 계속했다. “저는 제 어머니를 봐야 합니다. 도현이 어머니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편의점 계산대에 앉아야 합니다. 새로운 편의점 직원을 교육해야 합니다.”
“세아…”
“당신이 피아노를 치면, 저한테 들려줄 수 있어요.” 세아가 문을 열었다. “언젠가.”
그 말이 희망인지, 안녕인지, 강리우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세아가 떠났다. 그녀의 발소리가 복도를 내려갔다. 점점 멀어졌다.
강리우는 천장을 다시 바라봤다. 그러나 이제 그 천장이 무언가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공간을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공간을. 세아의 공간을. 그들 각자의 공간을.
## 4부: 손가락의 재탄생
오전 9시 47분. 강리우는 아직도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붕대로 감싼 왼손의 손가락들이 허공에서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소리가 없어도,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뇌가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열 살 때 쳤던 쇼팽의 ‘야상곡’. 열두 살 때 연주했던 베토벤의 ‘달빛’.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회사로 가라고 강요하기 전에 치던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그 모든 음악이 그의 손가락에 되돌아왔다.
*아버지.*
강리우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이고, 자신의 영혼을 회사의 회의실에 팔아버린 그 남자.
자신은 그와 다를 것이다.
자신은 세아처럼, 자신의 손가락이 원하는 대로 할 것이다. 세아가 누군가를 위해 노래하지 않듯이, 자신도 누군가를 위해 피아노를 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음악만을 위해.
## 5부: 편의점의 아침
오전 8시 12분. 편의점 ‘Night & Day’.
세아는 폐쇄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익숙한 냉기였다. 자신의 냉기였다.
매니저 이순희가 카운터 뒤에서 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세아, 어제는 뭐 한 거야? 연락도 안 하고.” 이순희가 물었다. “그 남자 때문에?”
세아는 유니폼 앞치마를 입으면서 대답했다.
“네. 그 남자는 병원에 입원했어요.”
“병원? 뭐 했는데?”
“자해를 했어요. 손목을.”
이순희의 얼굴이 더 걱정스러워졌다. 세아는 그것을 알아챘지만,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것이 없었다.
“당신은… 괜찮아?” 이순희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을 생각했다. 자신은 괜찮은가? 자신의 어머니는 여전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신의 동생은 학교에 가야 하고, 자신은 편의점에서 일을 해야 하고, 자신의 손은 여전히 엄청나게 차갑다. 그것은 괜찮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네. 저는 괜찮아요.” 세아가 답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단지 다른 종류의 진실이었다. “저는 노래를 부르니까요.”
이순희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아는 이미 계산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편의점의 불이 켜졌다. 새로운 날이 시작됐다.
## 6부: 대기실의 진실
오후 2시 33분. 강리우는 병원의 정신과 상담실 앞에 앉아있었다.
대기실의 의자는 회색이었고, 벽은 더 밝은 회색이었고, 천장은 그보다 더 밝은 회색이었다. 모든 것이 중립이었다. 모든 것이 판단하지 않았다.
그의 왼손의 붕대는 조금 더 얇아졌다. 의사가 새 붕대로 갈아줬을 때, 강리우는 그 아래의 상처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한 선택의 증거로.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버지였다.
강리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응시했다. ‘Father’라는 이름이 반복적으로 깜빡였다. 중력파처럼, 자신의 결정을 흔드는.
전화가 끝났다.
문자가 왔다.
*리우, 병원을 퇴원하면 사무실로 와라. 우리가 얘기할 게 있다. —아버지*
강리우는 그 문자를 읽었다. 그리고 지웠다.
상담실의 문이 열렸다. 의사가 나왔다. 60대의 남자였고, 얼굴은 늘어진 것처럼 보였다.
“강리우 씨, 들어오세요.”
강리우는 일어나 상담실로 들어갔다.
## 7부: 새로운 음악
새벽 5시 47분. 강리우는 차에서 내려지 않았다.
아니다. 이것은 어제의 장면이 아니었다. 이것은 다른 차였다. 이것은 다른 시간이었다. 이것은 다른 강리우였다.
그는 병원을 퇴원하고 3일이 지난 후였다. 그의 손목의 붕대는 풀려있었고, 상처는 붉은색이었고, 작은 검은 실들이 그것을 꿰매고 있었다. 의사는 2주 후에 그것을 풀라고 했다.
강리우의 집은 조용했다. 어머니는 약 때문에 자고 있었고, 아버지는 회사에서 밤을 새고 있었다. 그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강리우는 집의 다른 부분으로 걸어갔다. 거실이 아니라, 지하실로. 그곳에는 그의 아버지가 구입한 그 거대한 검은색 피아노가 있었다. 먼지가 두툼하게 쌓여있었다.
강리우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대신 앉았다.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진동했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대였다.
그는 쇼팽을 쳤다. 건반이 울었다. 음악이 나왔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떨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