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71화: 부서진 것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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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1화: 부서진 것들의 이름

강리우는 차에서 내려지 않았다.

새벽 5시 47분. 한강 옆 강변도로. 해가 떠오르기 전의 그 불안한 시간대에 강리우는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세아는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그가 차를 돌렸을 때 자신의 손가락이 다시 핸들을 향할까봐. 다시 그 죽음의 방향으로 방향을 돌릴까봐.

“이제 괜찮아요.”

세아가 말했다. 거짓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강리우도 알았다. 하지만 둘 다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진실은 이 차 안을 깨뜨릴 것 같았다. 마치 한강의 물처럼. 한 번 균열이 생기면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간다.

“내가 준호를 죽였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돌이었다. 말하는 돌. 부드럽지 않은 것.

“아니에요.”

“축하하지 않았어. 그게 죽인 거야. 내 미움이. 내 질투가.”

“그것도 아니에요.”

세아가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 안에서 뛰었다. 마치 새가 갇혀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 새는 이미 죽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베를린에서.

“당신이 그 경쟁에서 진 거 아니에요. 당신이 한 일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거예요. 그 다음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에요.”

“넌 정말로 뭘 알아? 너는 내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잖아. 내가 뭘 했는지, 내가 뭘 생각했는지, 내가 얼마나 미워했는지. 너는…”

강리우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멈췄다. 자신이 지금 누구를 향해 화내고 있는지 깨달은 것처럼.

세아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가장 강한 대답이었다. 나는 너를 봤다. 너의 모든 미움을, 너의 모든 절망을, 너의 모든 거짓을. 그리고 나는 여기 있다.

강리우는 창밖을 봤다. 한강의 물이 아직도 검은색이었다.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것은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그 사이의 시간. 무언가가 죽고 다른 무언가가 태어나는 그 시간.

“내가 너한테 뭘 준 건가?”

강리우가 물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세아에게가 아니라.

“당신이 제 노래를 들었어요.”

세아가 대답했다.

“더 있어?”

“더는 없어요.”

강리우가 웃음을 흘렸다. 이번에는 경련처럼 보이지 않았다. 진짜 웃음이었다. 절망적인 웃음. 세상이 농담일 때의 웃음.

“내가 너한테 준 건 차 사고뿐이네.”

“아니에요.”

“뭘 줬어?”

“당신이 제 앞에서 울었어요.”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었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그의 차의 위도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세아의 얼굴이 회색에서 파란색으로, 파란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새벽빛의 색깔.

“난 너를 죽이려고 했어. 그리고 너는…”

“제가 당신을 막았어요.”

“왜?”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강리우의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불었다. 마치 그 손가락들이 초를 끄려는 것처럼. 아니, 초를 켜려는 것처럼.

“당신의 손가락이 음악을 하고 싶어 해요.”

세아가 말했다.

“음악이 뭐 하는 건데? 내 친구는 죽었어. 그리고 음악이 뭐 하는 건데?”

“당신의 친구가 죽은 건 음악 때문이 아니에요. 음악은 당신을 살린 거예요. 베를린에서 돌아온 후로 당신을 살린 거예요. 당신이 살아 있는 이유가 음악이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강리우의 손이 세아의 손 안에서 움직였다. 떨림이 조금 줄어들었다. 마치 그녀의 말이 그의 손가락을 진정시키는 약처럼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내 아버지가 알면…”

“알아요.”

세아가 말했다.

“뭘 알아?”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을 싫어한다는 걸. 아니, 그게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는 걸. 그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그것은 통제예요. 그리고 당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어요.”

강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세아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신이 회사를 나가려고 했던 건 저 때문이 아니에요. 당신은 이미 떠나고 싶었어요. 당신은 단지 떠날 이유가 필요했어요. 제가 그 이유가 되어줄 수 있어서 기쁜 거예요.”

세아가 계속했다.

“근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제 이름을 부르거나 제 손을 잡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피아노에 앉는 거예요.”

“나 못 해. 손이…”

“손이 떨려요. 알아요. 근데 당신이 못 하는 건 그게 아니에요. 당신이 못 하는 건 실패할 용기예요.”

세아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이제 그녀는 화를 내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화. 이 남자를 위해 자신의 손을 잡아줬던 모든 시간에 대한 화.

“당신은 제 노래를 들으면서 당신의 손가락을 원망했어요. 당신은 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당신이 할 수 없는 음악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당신은 제가 당신을 구원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난 당신을 구원할 수 없어요. 당신 자신이 아니면.”

강리우가 세아의 손을 놓았다. 처음으로. 그의 손이 공중에서 떨렸다. 그리고 움직였다. 자동차 핸들로. 아니, 그 위를 지나갔다. 창문을 통해서. 한강을 향해.

“당신이 또 뭘 하려고 해요?”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평온했다. 오히려 차분했다. 마치 그녀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것처럼.

“모르겠어. 나는 항상 다음을 모르겠어.”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럼 물어봐요.”

“뭐라고?”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당신의 아버지가 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친구가 했으면 좋겠던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게 아니라. 당신 자신이.”

강리우는 오래 침묵했다. 그 침묵이 너무 길어서 세아는 그가 답변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심장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어.”

마침내 강리우가 말했다.

“네.”

“피아노를 쳐야 돼. 누구 앞에서도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을 위해서. 내 손가락을 위해서. 내 친구를 위해서. 그리고…”

강리우가 멈췄다.

“그리고?”

“너를 위해서.”

세아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차의 도어를 열었다. 밖의 공기가 들어왔다. 한강의 냄새. 아스팔트의 냄새. 그리고 새벽 공기의 냄새. 어떤 것이 죽었고 어떤 것이 태어나려고 하는 그런 냄새.

“내려가요.”

세아가 말했다.

“뭐?”

“내려가요. 지금. 이 차에서.”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녀의 얼굴이 이제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새벽이 온 것이다. 진정한 새벽. 어둠이 끝나고 빛이 시작되는 그 지점.

“넌 나랑 떠나지 않는 거야?”

“아니에요. 당신이 떠나는 거고 저는 남아요.”

“왜?”

세아는 한강을 가리켰다. 물이 이제 검은색이 아니었다. 파란색이 되어 있었다. 아직 밤의 색깔이 남아 있는 파란색. 하지만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물이 봤어요. 당신이 뭘 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물은 당신을 놔줬어요. 당신은 한 번 더 살아갈 기회를 얻었어요.”

“그럼 너는?”

“저는 당신이 그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봐야 해요. 당신 곁에 있으면서가 아니라. 멀리서. 당신이 정말로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강리우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언제 너를 다시 볼 수 있어?”

“당신이 피아노를 칠 때요. 당신이 당신의 음악을 만들었을 때. 그때 저는 당신을 찾아갈 거예요.”

“그게 몇 달 후일까?”

“모르겠어요. 그건 당신의 손가락이 결정하는 거예요.”

세아는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발이 아스팔트에 닿았을 때 새벽 공기가 그녀의 얼굴을 친다.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강리우는 여전히 차에 앉아 있었다. 조수석에서.

“운전해요.”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그리고 강리우는 그 명령을 따랐다. 그는 조수석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돌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움직였다. 운전석으로. 그리고 손을 핸들에 올렸다.

그의 손이 떨렸다.

“손가락이 떨려요?”

세아가 물었다. 이제 그녀는 차 밖에 있었다. 한강의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응.”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럼 운전하지 마요. 여기서 기다려요.”

“뭘?”

“해가 완전히 떠올 때까지. 그럼 당신의 손가락이 덜 떨릴 거예요.”

강리우는 핸들을 놓았다. 그의 손이 다시 그의 무릎 위에 떨어졌다. 그곳에서 떨렸다. 마치 새가 갇혀 있는 것처럼.

세아는 차에서 멀어졌다. 한강의 방향으로. 물가로. 그녀의 발걸음이 아스팔트에서 자갈로 변했다. 그리고 그녀는 멈췄다. 물을 본 지점에서. 그곳에서 그녀는 기다렸다. 해가 떠오르는 것을 기다렸다.

새벽 5시 52분.

한강의 물이 빛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선. 그 다음에는 대, 그 다음에는 광선. 세아는 그것을 봤다. 어둠이 끝나고 빛이 시작되는 그 지점. 그 지점에서 무언가가 죽고 무언가가 태어난다. 모든 것이 매일 아침 다시 시작된다. 그것이 새벽의 이름이다. 다시 시작. 부서진 것들의 이름.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폈다. 그것들이 햇빛에 빛났다. 투명한 손가락. 혈관이 보이는 손가락. 살아있는 손가락. 그녀는 그 손가락들로 음악을 만든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단지 숨을 내쉬었다. 길고 가늘게. 죽음이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아니, 죽음이 지나갔다는 신호처럼.

뒤에서 차의 엔진음이 들렸다. 강리우가 운전을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덜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새벽이 왔으니까. 그리고 새벽에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인다. 죽은 것도, 부서진 것도, 떨리는 것도.

세아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차가 떠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강변도로를 따라 어디론가. 아마도 그의 집으로. 아마도 피아노가 있는 어딘가로. 아마도 자신을 위해서.

한강의 물이 햇빛에 부서졌다. 마치 수백만 개의 작은 불꽃처럼.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알았다. 불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불꽃은 태운다. 어떤 불꽃은 밝힌다.

새벽 6시 03분.

세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하늘의 전화. 그 친구.

“야 세아. 너 괜찮아? 어디야? 밤새 전화 안 받았잖아.”

세아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나왔다. 다시. 처음으로 온전한 목소리가.

“안녕, 하늘. 나 한강에 있어. 새벽이야. 정말 아름다워.”

“미쳤나. 이 시간에. 너 뭐 했어? 어디서 밤을 샜어?”

“긴 이야기야. 나중에 얘기할게. 근데 하늘, 나 뭔가 결정했어.”

“뭔데?”

“나 내 노래를 찾을 거야. 박소진이 부른 그 노래. 나 그거 다시 찾을 거야. 그리고 내 이름으로 다시 낼 거야.”

휴대전화의 반대편에서 하늘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고, 명확하고, 확신에 찬 웃음.

“이제 니가 싸우는 거네. 미쳤다. 진짜. 나 너한테 계속 이 얘기 했잖아. 넌 당신의 음악을 싸워야 한다고. 그리고 이제 넌 싸우는 거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모를 수도 있어.”

“아니다. 넌 할 수 있어. 넌 이미 한 강리우 다음에서 내려왔잖아. 그놈이 자살 하려던 차에서. 넌 박소진따위는 이길 수 있어.”

세아는 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웃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고마워, 하늘.”

“내가 뭘 도와줬어. 너 혼자 한 거지. 나는 옆에만 있었어.”

“그것도 필요해. 옆에 있는 것도.”

세아는 한강의 물을 다시 봤다. 이제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파란색. 밝은 파란색. 물이 물로 보였다. 불꽃이 아니라.

“나 이제 가볼게. 집에 들어가야 해. 도현이 학교 가기 전에 밥 해줘야 하고.”

“이 시간에?”

“응. 새벽이니까 밥할 시간이 충분해. 도현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미역국. 그리고 밥. 그냥 밥.”

“넌 진짜. 남자 때문에 밤을 새고 새벽에 밥을 해. 미쳤다.”

“근데 이번엔 달라.”

세아가 말했다.

“뭐가?”

“나 이번에는 남자를 구원하려고 밤을 새운 게 아니야. 나 자신을 구원했어. 그리고 그 남자는 자기 자신을 구원해야 하는 거고.”

세아는 휴대전화를 내렸다. 그리고 한강을 떠났다. 물가에서. 그녀의 발걸음이 자갈에서 아스팔트로 변했다. 다시.

새벽 6시 17분.

세아는 집으로 향했다. 혼자. 손을 잡고 있지 않은 채로. 자신의 손이 그녀의 것이었다. 자신의 발이 그녀의 것이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그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오랜 시간 만에, 세아는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않는 새벽 거리에서. 자신을 위해서만.

그 노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가사도 없었다. 단지 멜로디가 있었다. 물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해녀의 숨비소리처럼. 살아있다는 증명처럼.

강변도로의 차들이 지나갔다. 새벽을 달리는 차들.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 세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제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방향으로 가는 사람.

합정동 고시원. 좁은 방.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집의 벽. 그곳에서 도현이가 자고 있을 것이다. 학교 가기 전의 마지막 수면. 그리고 세아는 그를 위해 밥을 지을 것이다. 계란말이와 미역국과 밥.

새벽 6시 29분.

세아의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강리우의 손처럼 떨리지 않았다. 그것은 흐르는 물처럼 움직였다. 명확하게. 정확하게.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계속되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새벽 거리에서. 그러나 누군가는 들을 것이다. 나중에.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이름으로. 나세아가 부르는 그 노래를.

# 새벽의 소풍

## 1부: 한강의 물

새벽 5시 42분. 한강변의 공기는 차디찼다.

세아는 손가락을 꼬고 펼쳤다 반복했다. 손가락들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손을 빌려 쓰고 있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있었다. 맞다. 그렇게 살아온 거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지 않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다니면서.

“아니다.”

세아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거칠었다. 밤을 샜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목소리를 낯설어하는 것일까.

“넌 할 수 있어.”

다시 말했다. 이번엔 더 크게. 한강변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넌 이미 한강리우 다음에서 내려왔잖아. 그 남자가 자살하려던 차에서. 그 차 안에서 살아 나왔어. 넌 박소진 따위는 이길 수 있어.”

자신을 향한 이 말들이 얼마나 비참한지 느껴졌다. 이런 말들을 자신에게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에게 이 말들을 해주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자신의 목소리가 되어야 했다.

한강의 물이 눈앞에서 출렁였다. 새벽빛에 비친 물은 검은색이 아니었다. 세아는 처음 도착했을 때 그것을 불꽃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는 불꽃 같은 어둠이라고. 그 물 속으로 뛰어들면 모든 것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물은 달랐다.

“이제 물이 물처럼 보여.”

세아가 속삭였다.

“불꽃이 아니라.”

물은 여전히 검은색이었지만, 그것은 깊이였다. 끝이 아니라 깊이. 바닥이 있는 깊이. 어둠이 아니라 아직 밝아지지 않은 새벽의 어둠.

그 때 하늘이가 나타났다.

세아는 처음에 누군가 올 줄 몰랐다. 혼자 이 새벽 시간에, 이 한강변에 올 사람이 있을 줄.

“뭐 하고 있어?”

하늘이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어떤 판단도 포함하지 않은 중립적인 부드러움이었다. 세아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어깨가 조금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생각 좀 하고 있었어.”

세아가 대답했다.

“혼자?”

“응.”

하늘이는 말없이 세아 옆에 섰다. 둘 다 한강을 바라봤다. 새벽 5시 45분.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도현이는?”

하늘이가 물었다.

“집에서 자고 있지. 아직 학교 가기 전이니까.”

“너는 밤을 새고?”

“응.”

세아는 하늘이를 바라봤다. 하늘이의 얼굴도 피곤해 보였다. 그런데도 여기 있다. 자신을 찾아서.

“어떻게 알았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몰랐어. 그냥… 올 것 같았어.”

하늘이가 대답했다.

“박소진이 다시 연락했어?”

“응. 그리고 강리우 얘기도 했어. 그 남자가 지금 어떻게 되려고 하는지. 나한테 뭔가를 원하는 것 같았어.”

세아의 손이 떨렸다. 아, 맞다. 이거다. 이 떨림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다. 누군가를 구원해야 한다는 이 끝없는 책임감. 누군가의 삶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이 무거운 감정.

“그래서?”

하늘이가 물었다.

“뭐를 하려고 해?”

세아는 한강을 다시 봤다. 그리고 그 때 자신 안에서 뭔가 변했다. 마치 깊은 물이 소용돌이를 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처럼. 그 변화는 극적이지 않았다. 매우 조용했고, 매우 확실했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세아가 말했다.

“뭐?”

하늘이가 놀라서 물었다.

“강리우를 구원하지 않을 거야. 박소진을 이기려고 하지도 않을 거야. 나는… 나는 내 자신을 구원할 거야. 그게 다야.”

세아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새벽 한강변의 차가운 공기를 마신 후 내쉬는 호흡처럼 차분했다.

“넌 할 수 있어. 넌 이미…”

하늘이가 말을 시작했다.

“내가 이미 한강리우 다음에서 내려왔다는 거? 내가 이미 박소진을 이겼다는 거?”

세아가 하늘이의 말을 이었다.

“응.”

“알아. 그런데 그건… 그건 내가 누군가를 구원했기 때문이 아니야.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에 놀랐다. 이 목소리가 자신의 것인가? 이렇게 단호한 목소리가? 이렇게 명확한 목소리가?

“고마워, 하늘.”

세아가 말했다.

“뭐가?”

“여기 있어줘서. 옆에 있어줘서.”

하늘이가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는 약간의 슬픔과 많은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내가 뭘 도와줬어. 너 혼자 한 거지. 나는 그냥 옆에만 있었어.”

“그것도 필요해.”

세아가 대답했다.

“옆에 있는 것도 필요해. 누군가 옆에만 있어도 사람은 달라져.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 사람은 달라져.”

세아는 한강의 물을 다시 봤다. 새벽빛이 조금씩 물을 밝혀가고 있었다. 검은색이 진한 파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물의 색깔로.

## 2부: 새벽의 결정

“나 이제 가봐야 해.”

세아가 말했다.

“이 시간에?”

하늘이가 놀라서 물었다.

“응. 집에 들어가야 해. 도현이 학교 가기 전에 밥을 해줘야 해.”

“밥? 지금?”

“응. 새벽이니까 밥할 시간이 충분해. 도현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하고 미역국. 그리고 밥. 그냥 밥.”

세아는 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손가락들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떨림은 전과 달랐다. 공포의 떨림이 아니라 생명력의 떨림이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손의 떨림.

하늘이가 중얼거렸다.

“넌 진짜. 남자 때문에 밤을 새고 새벽에 밥을 해. 미쳤다.”

그 말에 세아는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이렇게 가벼운 웃음을 흘린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근데 이번엔 달라.”

세아가 말했다.

“뭐가?”

“나 이번에는 남자를 구원하려고 밤을 새운 게 아니야. 나 자신을 구원했어. 그리고 그 남자는… 그 남자는 자기 자신을 구원해야 하는 거야.”

세아가 한강을 떠났다. 발이 자갈에서 아스팔트로 변했다. 단단한 땅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실제의 세계로, 실제의 삶으로.

새벽 6시 17분.

세아는 집으로 향했다. 혼자.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지 않은 채로. 자신의 손이 그녀의 것이었다. 자신의 발이 그녀의 것이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그녀의 것이었다.

## 3부: 새벽의 노래

강변도로를 걸으며 세아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새벽 거리에서.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그 노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가사도 없었다. 단지 멜로디가 있을 뿐이었다. 물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해녀의 숨비소리처럼. 살아있다는 증명처럼.

멜로디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세아는 자신이 언제부터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치 이 노래가 항상 자신 안에 있었던 것처럼. 단지 지금 꺼낼 용기가 생긴 것뿐인 것처럼.

강변도로의 차들이 지나갔다. 새벽을 달리는 차들.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 세아도 이제 그 중 한 명이었다. 누군가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방향으로 가는 사람.

그 생각이 세아의 발걸음을 빠르게 만들었다.

## 4부: 합정동 고시원

합정동 고시원. 낡은 건물. 좁은 방.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집의 벽.

그곳에서 도현이가 자고 있을 것이다.

세아는 자신의 열쇠로 방문을 열었다. 진짜 자신의 열쇠. 진짜 자신의 방. 진짜 자신의 삶.

도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학교 가기 전의 마지막 수면.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시간.

세아는 도현이를 바라봤다. 이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자신의 책임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 아이를 돌보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신을 구원한다.

세아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좁은 주방. 낡은 가스레인지. 그러나 모두 자신의 것이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강리우의 손처럼 떨리지 않았다. 그것은 흐르는 물처럼 움직였다. 명확하게. 정확하게. 자신을 위해서.

계란을 깨고. 밥을 담고. 미역국을 끓였다.

새벽 6시 29분.

세아의 손은 자신의 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계속되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새벽 거리에서 시작된 그 노래는, 이제 낡은 주방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밥 지을 때의 물소리와 섞여서. 계란말이를 부칠 때의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해서.

그 노래에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름을 가질 것이다. 나세아라는 이름으로. 나세아가 자신의 것으로 만든 노래로.

새벽빛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밤이 끝나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밥을 지었다.

도현이를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 안의 어떤 절박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밥을 한다는 것 자체. 누군가에게 음식을 준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행위였다.

세아는 밥을 퍼서 공기에 담았다.

계란말이를 접시에 담았다.

미역국을 그릇에 붓고 가운데에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도현이를 깨웠다.

“도현아. 밥이 다 됐어.”

도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비비며.

“오빠가 밥을 해줬어?”

도현이가 물었다.

그 질문에 세아는 웃음을 흘렸다.

“응. 오빠가 해줬어.”

세아는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도현이를 바라봤다. 도현이는 자신을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세아는 그 호칭을 바꾸지 않았다. 도현이가 자신을 어떻게 부르든, 그것은 도현이의 선택이었다.

“먹어. 학교 가기 전에.”

도현이는 밥 앞에 앉았다. 숟가락을 집었다.

첫 입을 먹었다.

“맛있어?”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빠가 해줘서 맛있어.”

그 말이 세아의 가슴을 뭔가로 가득 채웠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따뜻했고, 확실했고, 무거웠다.

좋은 종류의 무거움. 책임감의 무거움이 아니라, 존재감의 무거움.

세아는 자신도 밥을 떠서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 5부: 학교로 가는 길

도현이가 학교를 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을 때, 세아는 창문을 통해 밖을 봤다.

하늘이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새벽은 끝났다. 아침이 시작되었다.

“오빠, 나 가야 해.”

도현이가 말했다.

“응. 다녀와.”

세아가 대답했다.

도현이가 문을 열었다가, 멈추고 돌아섰다.

“오빠, 고마워. 밥 해줘서.”

도현이가 말했다.

“응. 내일도 해줄게.”

세아가 대답했다.

그 약속이 세아 자신을 놀라게 했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 정말로?

그러나 세아는 그 말이 거짓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리고 지금이 충분했다.

도현이가 나갔다.

세아는 혼자 남았다.

그리고 다시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더 크게. 더 분명하게.

아직도 이름이 없는 그 노래. 그러나 곧 이름을 가질 그 노래.

세아는 침대에 앉았다. 피로함이 밀려왔다. 밤새 자지 않은 피로. 그러나 그것은 나쁜 피로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이루어낸 후의 피로였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한강의 물이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불꽃이 아니었다. 물이었다. 깊이였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할 수 있어. 넌 이미 했어. 너는 살아있어.”

그 말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동시에 정확했다.

세아는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6시 47분.

혼자인 좁은 방에서. 자신의 손이 자신의 것인 채로.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것인 채로.

그리고 아무도 듣지 않는 새벽 거리의 노래는, 이제 세아의 꿈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끝**

## 에필로그: 며칠 후

일주일 뒤, 세아는 여전히 매일 아침 밥을 지었다.

계란말이와 미역국과 밥.

도현이는 매일 같은 말을 했다.

“오빠, 고마워.”

그리고 세아는 매일 같은 대답을 했다.

“응. 다녀와.”

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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