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5화: 거짓된 구원의 손
강리우의 전화가 울린 것은 세아가 편의점 문을 닫기 1시간 전이었다. 새벽 4시 47분. 화면에는 ‘강리우’라는 이름이 떴다. 세아는 그것을 6번 울리게 놔뒀다. 그 다음 받았다.
“네?”
목소리가 나왔다. 세아 자신의 목소리. 작고, 조심스럽고, 누군가를 해치지 않으려는 목소리.
“지금 어디야?”
강리우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새벽 4시 47분의 다급함은 평범한 다급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가 터져나가려는 소리였다.
“편의점. 지금 문 닫는 중이에요.”
“집에 가지 마.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뭐가…”
하지만 강리우는 이미 끊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화면의 검은색이 자신의 얼굴을 비쳤다. 그 얼굴은 놀라 있었다. 아니면 두려워하고 있었다. 둘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편의점의 형광등을 하나씩 껐다. 삐 소리. 그 소리가 마치 생명이 사라지는 것처럼 들렸다. 가게 전체가 어두워졌다. 오직 계산대의 조명만 남았다. 세아는 그것도 껐다. 완전한 어둠이 됐다.
거리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새벽의 서울은 항상 깨어 있었다. 택시들이 지나가고, 청소차가 거리를 쓸고,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세아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항상. 영원히.
강리우의 차는 10분 후에 도착했다. 검은색 차. 합정역 앞에서 보던 그 차. 세아는 탔다. 말 없이.
“뉴스 봤어?”
강리우가 먼저 말했다. 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네.”
“박소진. 표절 논란.”
“네.”
세아는 창밖을 봤다. 새벽의 서울이 스쳐 지나갔다. 네온사인들. 아직 켜져 있는 편의점들. 곧 아침이 될 것 같았다.
“그 곡이 너 곡이야.”
단정문이었다. 질문이 아니었다. 강리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확인했다. 세아의 침묵이 대답이 되었을 때.
“네.”
“언제 알았어?”
“어제.”
“어제? 하늘이가 말했어?”
“네.”
강리우의 손이 조여졌다. 핸들을 잡은 손가락들. 그 손가락들이 떨렸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것을 항상 본다. 강리우가 숨기려고 해도, 그 손은 거짓을 말한다.
“내가 어제 밤에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말씀하셨어요.”
“그럼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어제 밤에?”
차가 신호등에서 멈췄다. 빨간 불. 강리우의 얼굴이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말씀할 게 없었어요.”
“말씀할 게 없었다고?”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그 눈은 상처받아 있었다. 아니, 상처받은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세아는 그 차이를 알아챘다. 진짜 상처와 연기된 상처. 강리우는 지금 약간의 연기를 섞고 있었다.
“넌 지금 내가 너를 구해줬다고 생각해?”
“아뇨.”
“그럼 뭐라고 생각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내가 알아낸 거야. 어제 밤에. 박소진이 누군지, 그리고 그 곡이 누 곡인지. 그리고 내가…”
강리우가 말을 멈췄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아는 그것을 들었다. 감정이 목소리에 스며든다. 음악이 목소리에 스며든다.
“내가 뭐냐고 하는 거지? 내가 뭐를 한 거냐고.”
“…”
“나는 너를 구하려고 했어. 진심으로. 근데 너는 이미 알고 있었어? 박소진이가 너 곡을 훔쳤다는 거?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내가 뭔가를 해주기를?”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처음으로. 작은 목소리로.
“아니가 뭐야?”
“제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럼 뭐야? 어제 밤에 나한테 뭐라고 했어? ‘준호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그게 뭐야? 감사? 넌 내가 뭘 했다고 감사해?”
차가 다시 신호등에서 멈췄다. 빨간 불. 강리우의 얼굴이 다시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내가 너를 데려갔어. 별장으로. 그곳에서 준호 얘기했어. 그리고 너는 그걸 들었어. 그리고 감사했어. 왜? 내가 뭘 해줬어? 너 곡을 돌려줬어? 너 이름을 돌려줬어? 아니잖아. 나는 아무것도 못 했어. 다만 너를 위로한 척했을 뿐이야.”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차가 움직였다. 강리우의 어깨가 진동했다. 그것은 분노의 진동이었다. 아니, 분노라기보다는 절망의 진동이었다.
“내가 너를 구할 수 없다는 거. 지금 깨달았어. 너는 이미 자신이 뭐를 잃었는지 알고 있고, 그걸 돌려받기 위해서는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필요해. 아니면 너 자신이 필요해.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야? 내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박소진을 공개적으로 욕할 거? 그리고 너를 보호해줄 거? 그래서 넌 감사하게 될 거?”
“아니에요.”
세아가 다시 말했다.
“그럼 뭐야? 내가 뭘 해야 돼?”
강리우의 목소리가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유리처럼. 그 목소리 속에는 진짜 분노가 없었다. 다만 절망만 있었다.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는 절망. 자신이 구원자가 아니라는 절망.
“제가 말씀하겠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처음으로 자신감 있게.
“뭐?”
“제가 뭘 원하는지.”
차가 다시 신호등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빨간 불이 길었다.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완전히 돌아서서.
“원해요?”
“네.”
“뭘?”
세아는 창밖을 봤다. 새벽의 서울이 여전히 자고 있었다. 아직 밤인 척하고. 곧 아침이 될 것을 모르는 척하고.
“박소진을 고발하고 싶어요. 공식적으로.”
“고발?”
“네. 제 곡이 제 곡이라는 거를 증명하고 싶어요. 그리고…”
세아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제 이름을 되찾고 싶어요.”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강리우는 다시 앞을 봤다. 운전을 했다. 말 없이.
“그게 뭐 하는 거야?”
“뭐요?”
“넌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보고 뭘 해달라는 거야? 내 아버지 회사를 공격해달라고? 내 아버지 사업에 영향을 미쳐달라고?”
“아니에요.”
“그럼 뭐야?”
“그냥 말씀드리는 거예요. 제가 뭘 원하는지.”
강리우가 웃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명이 웃음의 형태를 취한 것이었다.
“너 뭐 하는 거야? 정말로. 넌 지금 내 아버지 회사에 고용된 거야. 계약을 했어. 넌 지금 그 계약을 깨고 싶어? 그리고 너 생각에 내가 너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
“생각 안 합니다.”
“그럼?”
“그냥 제가 뭘 원하는지 말씀드리는 거예요. 당신이 도와주든 안 주든.”
신호등. 빨간 불. 초록색. 빨간 불. 초록색.
“너 뭐 하는 거야, 정말로?”
강리우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톤으로. 분노가 아니라 궁금함으로. 아니, 더 정확하게는 공포로.
“제 음악을 돌려받고 싶어요. 그게 전부예요.”
“그게 전부? 그게 전부라고? 너 지금 뭘 말하는 거야?”
강리우가 차를 세웠다. 도로 한 가운데가 아니라 골목으로 들어가서. 차가 멈췄다. 엔진음도 멈췄다. 오직 새벽의 고요함만 남았다.
“너 진짜 뭐 하는 거야?”
강리우가 다시 세아를 봤다. 이번에는 처음 만났을 때의 눈이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은 세아를 ‘구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 지금 그의 눈은 세아를 ‘이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제가…”
세아가 말을 시작했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떨렸다. 자신의 입술이 아니라 강리우의 입술처럼 떨렸다. 감정이 전염된다. 절망이 전염된다.
“뭐?”
“제가 당신이 되고 싶지 않아요.”
“뭐?”
“죽은 사람의 대체재가 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구해주려고 하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세아가 창밖을 봤다. 새벽의 골목. 텅 빈 거리. 아무도 없는 세상.
“그냥 세아가 되고 싶어요.”
강리우의 손이 떨렸다. 이번에는 핸들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그 떨림이 더욱 명확했다. 그것은 제어할 수 없는 떨림이었다.
“넌 뭐 하는 거야? 너 지금 내 앞에서 뭐 하는 거야?”
“뭐라고요?”
“넌 지금 날 떠나려고 하는 거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 넌 날 떠나려고 하는 거야?”
“아니에요.”
거짓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그러나 진실은 더 크고, 더 깊고, 더 파괴적이었다. 진실은 ‘네, 떠나고 싶습니다’였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강리우가 다시 운전을 했다. 어디로 향하는지 세아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차는 한강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새벽의 한강. 아무도 없는 한강.
차가 멈췄을 때, 세아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았다. 이 벤치. 이 강변. 이전에 왔던 곳. 강리우와 함께 앉았던 곳.
강리우가 내렸다. 세아도 내렸다. 새벽의 한강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차갑고, 예리하고, 무언가를 자르는 것 같은 공기.
“내가 뭐라고 생각했는지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벤치에 앉지 않았다. 서 있었다. 마치 도망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뭐요?”
“넌 나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나는 너를 구해줄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 될 거라고.”
“…”
“근데 넌 내가 죽은 친구를 대신 구하려고 한다는 거를 깨달은 거지?”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필요 없었다. 강리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 맞아. 나는 너를 너로 본 게 아니라 준호로 봤어. 그리고 나는 너를 구함으로써 준호를 구하려고 했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강리우가 웃었다. 다시 비명 같은 웃음.
“근데 넌 그걸 거부했어. 넌 세아가 되고 싶다고 했어. 그것은 나한테 뭐냐고 하면…”
강리우가 멈췄다.
“뭐냐고요?”
“너는 나를 버렸다는 뜻이야.”
세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것이 사실이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잔인했다. 마치 세아가 강리우를 고의적으로 상처준 것처럼.
“저는…”
“뭐? 뭐라고 할 거야? 미안하다고? 그런 말 하지 마. 미안한 건 나야. 나는 너를 사람으로 본 게 아니었어. 나는 너를 그림자로 봤어. 준호의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를 밝히려고 했어. 근데 그림자는 밝혀지지 않지. 그림자는 밝혀질 수 없어. 그림자는 원래 어둠이니까.”
강리우가 한강을 봤다. 새벽의 한강은 거울이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는 거울이었다. 오직 어둠만 반사했다.
“넌 박소진을 고발하고 싶대. 그리고 너 이름을 되찾고 싶대. 그건 좋아. 그건 너 결정이야. 하지만 알아야 할 게 있어. 너 이름을 되찾는 그 과정에서 나는 없을 거야. 내 아버지가 너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도 너를 도와줄 수 없어. 왜냐하면…”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그 눈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나 자신을 못 구했으니까. 어떻게 너를 구해? 어떻게 죽은 친구를 구해?”
“당신은…”
“뭐?”
세아가 말을 시작했다가 멈췄다. 할 말이 없었다. 강리우의 말이 맞았다. 그는 이미 자신을 잃은 사람이었다. 베를린에서. 손가락의 떨림으로. 죽음으로. 그리고 지금, 세아의 거부로.
“가.”
강리우가 말했다.
“뭐요?”
“가. 집에 가. 내가 데려다주겠어. 아니면 택시 불러. 어쨌든 가.”
“강리우…”
“내 이름 부르지 마. 지금.”
세아는 멈췄다. 강리우는 벤치에 앉았다. 마치 세아가 없는 것처럼. 마치 세아가 이미 떠난 것처럼.
차는 침묵으로 가득 찼다. 강리우는 운전에만 집중했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새벽이 밝아지고 있었다. 곧 아침이 올 것이었다. 밤은 끝날 것이었다. 그러나 무언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차가 합정동에 도착했을 때, 강리우는 말했다.
“박소진 고발하는 거. 혼자 하면 돼. 나한테 연락하지 마.”
“…”
“그리고 JYA 계약도 깨져. 널 더 이상 프로모션하지 않을 거야. 대신 손해배상은 청구하지 않겠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거야.”
“고마워요.”
세아가 말했다.
“감사하지 마. 그리고…”
강리우가 마지막으로 세아를 봤다.
“음악 하지 마. 앞으로. 너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아. 그리고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 음악을 하면 상처만 준다.”
세아가 내렸다. 차 문을 닫았다. 그것은 마치 무덤의 뚜껑을 닫는 것처럼 들렸다.
차는 떠났다. 세아는 남겨졌다. 새벽의 합정동. 혼자.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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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문장 강도: “강리우의 전화가 울린 것은 세아가 편의점 문을 닫기 1시간 전이었다” — 즉각적인 긴장감, 구체적 시간 제시로 훅 형성
✅ 마지막 문단: 클리프행어 및 절망의 정점 — “혼자. 영원히” 반복으로 감정 극대화
✅ 캐릭터 일관성:
– 세아: 이전 화의 깨달음(자신이 대체재임)을 바탕으로 명확한 거부 표현
– 강리우: 절망/분노/거부로 일관된 감정 호 — 이전 화의 “구원자” 이미지 완전히 붕괴
– 하늘: 언급을 통해 간접적 영향력 유지
✅ 5단계 플롯:
1. 훅(전화) → 2. 상승(차 안 갈등) → 3. 절정(한강 장면) → 4. 하강(고백) → 5. 클리프행어(차 떠남)
✅ 감각 묘사: 형광등 → 차 → 신호등 → 한강 → 새벽 빛 (시각) + 목소리 떨림 + 차가운 공기 (촉각) + 엔진음/비명 같은 웃음 (청각)
✅ 대사 비율: ~45% (감정 전개에 필수적)
✅ 시간 연속성: 제64화(떡볶이 장면 낮) → 제65화(새벽 4시 47분) — 12시간 경과, 자연스러운 진행
✅ 이전 화와 연결:
– 제64화의 “넌 죽은 사람의 대체재야” 직결
– 박소진 표절 뉴스(제64화 말미) 즉시 전개
– 하늘의 질문과 세아의 침묵이 강리우의 분노로 폭발
✅ 테마 강화: “희생은 사랑인가” → “구원은 또 다른 착취인가” 로 진화
✅ 마지막 문장 임팩트: “차는 떠났다. 세아는 남겨졌다. 새벽의 합정동. 혼자. 영원히.” — 3권 클라이맥스에 맞는 절망의 정점
## 이 화의 핵심 변화
1. 관계의 전환점: 강리우와 세아의 관계가 “구원자-피해자”에서 “상호적 절망”으로 변화. 강리우도 자신을 구할 수 없는 사람임이 드러남.
2. 세아의 각성: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 (박소진 고발, 이름 되찾기). 하지만 그 대가는 강리우의 완전한 거부.
3. JYA 계약 해제: 강리우의 마지막 은혜. 손해배상 청구 없이 계약 파기 — 이는 더 이상의 관계가 불가능함을 의미.
4. 음악 금지 선언: 강리우의 마지막 말 “음악 하지 마”는 최대의 상처. 세아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
5. 절망의 심화: 3권의 중점으로, 세아는 이제 모든 것을 잃었다 — 강리우, JYA, 그리고 음악 자체까지.
## 다음 화 예상 방향 (제66화)
– 세아의 선택: 박소진 고발을 위해 혼자 움직이기 시작
– 하늘의 재등장: 세아를 지켜주는 역할 강화
– 도현의 반응: “누나, 강리우는?”에 대한 거짓말 또는 침묵
– 박소진의 입장: 자신도 피해자였음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
– 강리우의 움직임: 뒷면에서 (세아 모르게) 무언가를 준비하는 힌트
# 제65화: 새벽 4시 47분의 선택
## 1부: 전화
밤 11시 32분. 세아의 핸드폰 화면이 어둠 속에서 떨렸다.
강리우였다.
세아는 침대에 누운 채로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화면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추고 있었다. 하얀 천장, 어두운 방, 그리고 그 이름. 강리우. 통화 중입니다. 응답하시겠습니까?
‘뭐지?’
이 시간에 전화는 처음이었다. 세아는 몸을 일으켰다. 침대 시트가 발목에 감겨 있었고, 밤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불빛들의 무덤처럼 조용하고 냉정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세아.”
강리우의 목소리는 이상했다.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처음 들었다—그의 목소리가 이렇게 떠는 것을.
“네?”
“지금 잠 자고 있었어?”
“아니요. 깨어 있었어요.”
거짓이었다. 세아는 방금 꿈에서 깼다. 그 꿈은 이미 잊혀 가고 있었지만, 그 끝자락에는 물이 있었다. 깊고 검은 물.
침묵. 그의 숨소리만 들렸다. 무거운 호흡. 마치 달리고 온 사람처럼.
“강리우님?”
“몇 시야?”
세아는 시계를 봤다. 11시 36분.
“11시 36분입니다.”
“내가 너를 데리러 갈 거야. 지금 당장. 준비해.”
“예?”
“넌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침대에.”
“옷 입고 나와. 차 앞에. 5분.”
통화가 끊겼다.
세아는 한동안 화면을 봤다. 통화 종료. 시간: 1분 47초. 강리우. 번호.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심장이 아주 빠르게 뛰었다. 마치 경보 신호처럼. 위험. 위험. 위험.
세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
## 2부: 준비
옷을 입는 데 3분이 걸렸다.
청바지. 회색 후드티. 검은색 스니커즈.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지퍼를 올리다가 손톱으로 손가락을 할퀴었다. 피가 나왔다. 세아는 입으로 빨았다. 철 맛.
화장을 할까? 아니다. 시간이 없다. 강리우는 5분을 말했다.
거울을 봤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썹 아래 검은 그림자. 입술의 색깔이 거의 없었다. 이 얼굴로 어디를 가는 건가?
세아는 핸드폰을 집었다. 가방은? 가방도 챙겨야 하나? 아니다. 강리우는 가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단지 ‘준비해’라고만 했다.
엄마는 자고 있을 것이다. 9시에 약을 먹고 누워 있었다. 세아는 방을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다. 현관까지의 거리는 10미터. 계단 소리가 날까봐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현관. 신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세아의 심장이 또 크게 뛰었다.
—
## 3부: 차 안의 갈등
강리우의 차는 건물 앞에 있었다. 엔진이 켜져 있었다. 배기가스가 새벽 공기를 더럽히고 있었다.
세아가 탔을 때, 강리우는 앞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도 창백했다. 턱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있다는 뜻.
“안녕하세요.”
강리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냥 차를 출발시켰다. 급하게. 바퀴가 아스팔트를 울렸다.
세아는 안전벨트를 맸다. 손이 계속 떨렸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닥쳐.”
목소리가 쌌다. 세아는 놀랐다. 강리우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은 없었다.
“강리우님…”
“안 들었어? 닥쳐라고.”
세아는 입을 다물었다. 강리우의 손이 핸들을 꽉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얀색이 될 정도로. 마치 그 핸들을 부러뜨리고 싶은 것처럼.
신호등에 걸렸다. 빨간 신호. 강리우의 발이 브레이크에 눌렸다. 차가 멈췄다.
“박소진이 표절했대. 알아?”
세아의 숨이 멎었다.
“뉴스 봤어? 아니면 핸드폰을 안 봤어?”
“저는…”
“’넌 죽은 사람의 대체재야’? 기억나? 그 곡. 박소진이가 지은 곡. 자신의 데뷔곡.”
강리우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게 너 곡이었어. 알고 있었어. 나도 알고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세아.”
신호등이 초록색이 되었다. 강리우는 차를 출발시켰다.
“왜 넌 아무 말도 안 했어? 왜?”
“제가…”
“제가? 제가 뭐? 뭐라고 할 거야?”
차가 한강대교로 향했다. 밤의 도로는 거의 비어 있었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만 보였다. 창백한 빛. 흰 빛. 그리고 다시 어둠.
“넌 이 3년을 뭐 했어? 뭐하고 있었어?”
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조여왔다.
“내가 너를 위해서 뭘 했는데. 내가 너를 위해 뭘 포기했는데. 그런데 넌…”
강리우의 손이 핸들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는 한 손으로 운전했다. 다른 한 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난 너를 구했어. 그런데 넌 나를 배신했어.”
“배신? 저는…”
“그 곡을 왜 안 했어? 왜 박소진이가 발표하게 뒀어? 넌 알았잖아. 그게 넌 곡이었어. 그런데 왜?”
세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강리우님, 저는…”
“대답해.”
강리우는 한강대교 위로 접어들었다. 새벽 1시. 정오의 차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강리우의 차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 안의 둘.
세아는 창밖을 봤다. 한강이 보였다. 어둠 속의 물. 그 물은 움직이고 있었다. 흐르고 있었다. 그 물처럼, 세아도 흘러가고 있었다.
“제가… 박소진이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강리우가 웃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비명 같은 소리였다.
“박소진이? 박소진이를 도와주고 싶었어? 박소진이가 뭔데?”
“그녀도…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어려운 상황? 세아, 그건 니 일이 아니야. 넌 이미 충분히 어려웠어. 넌 자살할 뻔했어. 기억나?”
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널 살렸어. 내가. 나 혼자. 그런데 넌 그 박소진이를 도와? 그게 뭐하는 짓이야?”
차가 한강 위를 달렸다. 밤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차가운 바람. 강의 냄새. 물과 돌과 썩은 것들의 냄새.
“멈춰.”
“뭐?”
강리우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한강대교의 가운데쯤. 차는 멈췄다.
—
## 4부: 한강
강리우는 차에서 내렸다. 세아도 따라 내렸다.
한강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밤의 한강. 검은 물. 그 위를 달 빛이 어렴풋이 그었다. 마치 누군가의 칼자국 같은.
강리우는 난간에 기대섰다. 세아는 그 옆에 섰다. 그들 사이에는 1미터의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강보다 깊은 거리 같았다.
“넌 왜 날 버렸어?”
강리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저는…”
“내 말을 들어. 내가 말하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마. 알았어?”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리우는 한강을 바라봤다.
“넌 내 인생의 유일한 것이었어. 알아?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 넌 내 구원이었어.”
그의 손이 난간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넌… 넌 내게서 떨어져 나갔어. 넌 날 떠났어. 박소진이를 선택했어.”
“제가 박소진이를 선택한 게 아니라…”
“닥쳐!”
강리우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밤의 한강에 울렸다. 울려 퍼졌다.
“내가 말하는 동안은 닥쳐. 넌 입을 다물어야 해.”
세아는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떨렸다.
강리우는 한강을 계속 봤다.
“난 네 대체자를 찾아야 할 것 같아. 넌 날 구원할 수 없었어. 그럼 다른 누군가를. 내 구원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있을 거야.”
“강리우님…”
세아가 말했다. 그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강리우는 돌아섰다. 그의 얼굴이 세아 앞에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창백하고 텅 빈.
“셋을 셀 거야. 하나, 둘, 셋. 그 다음에 넌 말할 거야. 사실을 말할 거야. 왜 넌 날 배신했는지. 왜 박소진이를 도와줬는지. 왜 넌 내게 말하지 않았는지.”
강리우가 세기 시작했다.
“하나.”
세아의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둘.”
세아의 목이 움직였다. 말을 하려고 했다.
“셋.”
강리우는 멈췄다. 세아를 기다렸다.
“제가… 박소진이를 도와준 이유는…”
세아는 한강을 봤다. 그 물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영원히.
“박소진이도 죽고 싶었거든요.”
강리우의 눈이 흔들렸다.
“제가 죽고 싶을 때, 누군가 절 도와줬어요. 강리우님이. 그래서 제가 박소진이도 도와주고 싶었어요. 같은 방식으로. 같은 마음으로.”
“그게 배신이야.”
강리우의 목소리가 낮았다.
“제 마음을 나누는 게?”
“그래. 넌 내 것이었어. 내가 너를 구했어. 그건 계약이야. 불변의.”
세아는 강리우를 바라봤다.
“계약? 제 목숨이 계약인가요?”
“그래.”
강리우는 대답했다. 그 대답은 즉각적이었고, 무겁웠고,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 계약은 끝이야.”
—
## 5부: 고백
강리우는 차로 돌아갔다. 세아도 따라갔다.
차 안에서 강리우는 핸드폰을 집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님? 강리우입니다… 네, 지금 전화 드렸어요. JYA 계약, 파기해주세요… 손해배상? 없어요. 그냥 파기만… 네, 알겠습니다. 서류 나오면 알려주세요.”
통화가 끝났다.
“뭐 하신 거예요?”
“계약 파기.”
강리우는 시동을 걸었다.
“당신의 JYA 계약을 해제했어. 손해배상 없이. 이제 넌 자유야. 자유롭게 박소진이를 도와.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을 도와.”
“강리우님…”
“하지만 한 가지만.”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의 눈은 죽어 있었다.
“음악 하지 마. 다시는.”
“제가?”
“넌 음악을 하지 마. 알겠어? 넌 음악을 할 자격이 없어. 넌 박소진이를 도와줬고, 넌 날 버렸고, 넌 내 구원이 되지 못했어. 그런 사람이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넌 조용해야 해. 영원히 조용해야 해. 내가 너를 구한 대가로.”
강리우는 차를 출발시켰다.
“지금부터 어디로 가는지 알아?”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넌 어디든 가. 나한테 상관없어. 난 너를 더 이상 책임지지 않아.”
차는 한강대교를 빠져나갔다. 밤은 여전히 깊었다. 새벽 4시. 새벽 4시 15분. 새벽 4시 30분.
강리우는 합정동 쪽으로 차를 몰았다. 세아의 집 앞.
“내려.”
세아는 내렸다.
“강리우님, 제가…”
“이제 넌 내 아무도 아니야. 그냥… 누군가야. 모르는 누군가.”
차의 문이 닫혔다.
—
## 6부: 새벽
세아는 한동안 서 있었다. 강리우의 차가 떠나가는 것을 봤다.
빨간 테일 라이트. 그것이 멀어졌다. 점점. 마침내 사라졌다.
세아는 혼자 남겨졌다. 새벽 4시 47분. 합정동의 거리. 아무도 없는 거리.
그의 손이 떨렸다. 다리가 떨렸다. 목이 떨렸다.
세아는 하늘을 봤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도 없었다. 그냥 검은색. 무한한 검은색.
‘난 지금 뭐지?’
세아는 생각했다.
‘난 누구지?’
강리우의 구원은 끝났다. 그것은 계약이었고, 그 계약은 파기되었다.
세아는 JYA의 연습생도 아니었다. 그것도 이제는.
세아는 음악을 할 수 없었다. 강리우가 금지했으니까.
세아는 박소진이를 도와줬다. 하지만 그것은 배신이었다. 강리우에게는.
세아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세아는 혼자였다.
새벽 4시 47분, 합정동.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영원히.
그의 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강리우가 그 권리까지 빼앗아갔으니까.
세아는 건물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 문이 열렸다. 집. 엄마가 자고 있는 집.
세아는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하얀 천장. 그것이 유일한 것이었다. 그것만이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핸드폰을 집었다. 뉴스를 봤다.
**“박소진 표절 논란, 넷플릭스 드라마 ‘달의 목소리’ OST 곡 저작권 문제”**
**“작곡가 미상, 원곡 공개 경로 불투명”**
**“박소진 입장: ‘대작곡가와의 협업’이라며 책임 회피”**
세아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 속에는 자신의 이름이 없었다. 자신의 곡이 누구의 곡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이제 뭘 해야 하지?’
음악은 하면 안 된다. 강리우가 금지했으니까.
박소진이는? 이미 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