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63화: 불타는 것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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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3화: 불타는 것들의 이름

하늘은 떡볶이를 집어 물었을 때 세아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은 떡볶이를 먹고 있지 않았다. 떡볶이 앞에 앉아 있었다. 큰 차이였다.

“야. 뭐 했어?”

합정역 앞의 노점. 빨간 양념이 떡과 떡의 표면을 물들이고 있었다. 겨울 햇빛이 소스에 반사되어 검은색으로 보였다. 세아는 포크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뭐 안 했어. 일했어. 편의점.”

“그게 아니라…”

하늘이 입에 물린 떡볶이를 삼키고 물었다. 그녀의 눈은 사정없이 정확했다. 세아는 그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제주도에서 뭐 한 거냐고.”

“아. 그냥…”

세아가 말을 흐렸다. 포크로 떡 하나를 찍었다. 떡은 부드러웠다. 이미 양념에 충분히 절어 있었다.

“그냥이 뭐냐고. 도현이가 너 제주도 간다고 했어. 혼자 간 게 아니라 누가 데려가고 그랬대. 그게 누군데?”

떡을 입에 넣었다. 양념이 입안을 불태웠다. 아직도 뜨거웠다. 새벽에 만들어진 떡볶이가 낮의 햇빛 아래에서도 열을 잃지 않았다.

“강리우.”

“강리우…”

하늘이 반복했다. 마치 그 이름이 무언가를 설명해줄 것처럼. 하지만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았다.

“그 JYA 아들이?”

“네.”

세아가 대답했다. 짧게. 침묵으로 마무리하려는 의도로.

“미쳤네. 너 진짜.”

하늘이 포크를 내려놨다. 떡볶이 국물이 포크에서 떨어져 하얀 종이에 자국을 남겼다. 그것이 지도처럼 보였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지도.

“뭐가 미쳤어?”

“전부다. 너 그 사람이 뭔지 알아? JYA 대표 아들이야. 넌 지금 서명한 지 겨우 며칠 된 신인이고, 그 사람은… 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쪽 사람이잖아.”

“그게…”

“그게가 아니라. 세아. 넌 항상 이래.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판단하고 들어가야지. 이미 빠져 있으면서 판단하려니까 꼬이는 거야.”

하늘이 손을 들었다. 손목에 새로운 문신이 있었다. 성냥. 작은 성냥 그림.

“이거 봤어? 새로 했어. 너 생각해서.”

세아는 하늘의 손목을 봤다. 성냥. 빨간 머리. 검은 줄기. 간단하지만 명확했다. 무엇인지 알아보기 쉬웠다.

“왜 성냥?”

“왜냐고? 넌 성냥이잖아. 계속 타고 있으면서 다른 누군가를 밝히고. 자기는 녹아가고.”

하늘이 떡볶이를 또 집었다. 양념이 그녀의 입가에 묻었다. 빨간색. 혈흔처럼 보였다.

“그런데 성냥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성냥은 누군가를 밝히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밝히기 위해 있는 거야. 너를 밝혀야지. 왜 자꾸 남을 밝히려고 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떡을 또 집었다. 양념이 떨어져 국물 위에 떨어졌다. 그것도 자국을 남겼다. 지도.

“그 사람이 뭐래? 강리우가?”

“뭐라고요?”

“너를 좋아한대? 아니면 뭐하는 거야? 너 진짜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리우가 뭐하는 사람인지. 그것은 복잡했다. JYA의 아들. 베를린의 유학생. 죽은 친구의 그림자. 음악가. 혹은 더 이상 음악가가 아닌 사람. 떨리는 손의 소유자. 자살한 친구를 추도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사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뜻이지? 넌 그 사람이 뭐하는지 모르면서 제주도에 갔다고?”

“네.”

하늘이 한숨을 쉬었다. 깊은 한숨. 포기의 한숨. 세아는 그 한숨의 무게를 느꼈다. 어깨에 내려앉는 것처럼.

“이거. 네 마음이야.”

하늘이 세아의 손목을 들었다. 손목 안쪽. 하늘이 전에 해준 문신. 작은 불꽃. 세아는 거의 잊고 있었다. 그 문신이 자기 손목에 있다는 것을.

“넌 계속 타고 있어. 아직도. 그리고 내가 보기에 강리우라는 게 또 다른 불일 뿐이야. 그게 밝아 보이고 따뜻해 보이지만, 결국 넌 그 불에 타죽을 거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세아는 자신의 손목을 봤다. 불꽃. 작지만 명확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게…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자신을 확신하지 못하는 목소리.

“그게 뭐가 아니야?”

“강리우가 불이 아니에요.”

“그럼 뭔데?”

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강리우가 뭔가. 그것은 시간이 필요한 질문이었다. 아니, 영원히 필요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강리우 자신도 자신이 뭔지 모르고 있었으니까.

하늘이 떡볶이 냄비를 밀어 세아 쪽으로 더 가깝게 했다.

“어쨌든 먹어. 냉각 중이야. 그리고 넌 다시 얘기 안 할 거 같으니까 일단 먹고 가자.”

“네.”

세아가 포크를 들었다. 이번엔 먹기 위해. 호흡을 하기 위해. 대화하지 않기 위해.


GS25로 돌아간 것은 오후 8시였다. 세아는 교대 시간 전에 도착했다. 항상 그렇게 했다. 10분 정도 일찍 와서 준비를 하고, 전 직원과의 인수인계를 받고, 그 다음 밤이 시작된다.

점원 김은주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게임. 혹은 소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아, 세아다. 오늘 좀 한가했어. 손님도 별로 없고.”

은주가 말했다. 기계적으로. 이미 그녀의 머리는 다음 일로 옮겨가 있었다.

세아는 앞치마를 입었다. 검은색 앞치마. 강리우가 그것을 입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앞치마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의 손이 요리를 하기에는 너무 섬세했다. 아니, 너무 떨렸다.

“알겠습니다.”

세아가 대답했다. 은주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밤 8시는 은주의 퇴근 시간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혹시 넌 누가 배우고 싶거나 그런 게 있어? 아니면 진짜로 편의점만 할 거야?”

은주가 물었다. 그것은 이상한 질문이었다. 일 년을 함께 일했지만 처음 하는 질문이었다.

“왜요?”

“아니, 그냥. 너 자기 꿈 같은 게 있을 것 같거든. 눈이 그런데. 어디 봐? 하는 눈.”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 이미 뭔가 하고 있구나. 그래. 화이팅.”

은주가 웃으며 나갔다. 문이 닫혔다. 자동 감지 센서가 반응했고, 얇은 플라스틱 도어가 부드럽게 닫혔다.

세아는 혼자 남았다. 형광등과. 냉동실의 윙윙거림과.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강리우는 왜 자신을 제주도에 데려갔을까. 정말로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이 한준호의 대체자였을까. 죽은 친구의 대체자. 동료의 대체자. 그림자의 대체자.

세아는 카운터 옆에 기대앉았다. 그곳은 자신의 자리였다. 밤마다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 형광등은 여전히 깜박였다. 깜박, 깜박. 마치 심장처럼.

핸드폰이 울렸다.

강리우였다. 카톡.

[너 지금 일해?]

세아는 대답했다.

[네.]

[언제까지?]

[새벽 8시까지.]

[그 다음?]

세아는 생각했다. 그 다음. 새벽 8시 이후. 그때는 뭘 할까. 집에 가서 자고? 아니면 곡을 쓸까. 아니면 그냥 걷기?

[모르겠어요.]

[나 지금 가는 길이야. 픽업할게. 일 끝나면 연락해.]

그것은 명령이었다. 질문이 아니었다. “픽업할게”는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강리우가 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막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밤은 진행되었다. 손님이 들어오고 나갔다. 아주머니. 학생. 택시 기사. 모두 다른 사람. 모두 같은 일상. 편의점에 들어오고, 뭔가를 사고, 나간다. 그것의 반복.

밤 11시 30분.

한 손님이 들어왔다. 젊은 여자. 20대 중반. 얼굴이 창백했다.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혹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냉동실 앞에 섰다. 아이스크림을 봤다.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리켰다.

“이거 줄래요.”

목소리가 떨렸다.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아니, 울기 직전인 것처럼.

세아는 냉동실을 열고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딸기 맛. 핑크색.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사는 것은 이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것이었다.

“1,900원입니다.”

그 여자가 돈을 냈다. 지폐. 그리고 세아는 거스름돈을 줬다. 동전. 무거운 동전.

그 여자가 나갔다. 아이스크림을 물면서. 겨울 밤의 거리로.

세아는 그녀를 봤다. 가는 뒷모습. 마치 자신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처럼.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될까. 냉동실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울음을 참으면서.

밤 1시 47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세아는 상품을 정리했다. 라면. 컵라면. 스프. 모두 같은 크기. 모두 같은 가격대. 같은 유효기간. 생산된 지 며칠 된 것들. 팔리기를 기다리는 것들.

핸드폰이 울렸다. 강리우였다. 전화. 음성 전화.

“지금 나가도 돼?”

“네. 좀만 정리할게요.”

“10분 있을게. 밖에서 기다릴게.”

전화가 끊겼다.

세아는 앞치마를 벗었다. 천천히. 마치 의식인 것처럼. 한 번의 움직임이 하나의 의식.

강리우가 차 밖에 서 있었다. 밤 2시 15분의 합정역 앞. 거리는 거의 비어 있었다. 택시 몇 대. 그리고 강리우. 그의 검은 코트. 그의 찬 공기 속에서의 숨.

“안녕.”

강리우가 말했다. 간단하게.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마치 3일 전이 없었던 것처럼.

세아는 차에 탔다. 검은 벤츠. 난방이 켜져 있었다. 따뜻했다. 겨울 거리에서의 따뜻함.

“어디 가요?”

“한강.”

그것이 전부였다. 강리우는 운전을 했다. 합정역에서 출발해서, 한강으로 향했다. 밤의 도시를 지나가면서.

한강변에 도착했을 때는 밤 2시 45분이었다. 강은 검었다. 완전한 검은색. 하지만 대교의 불이 물에 비쳤다. 마치 하늘에 떨어진 별처럼.

강리우는 차에서 내렸다. 세아도 내렸다. 강변의 벤치가 있었다. 누군가는 거기 앉아 있었을 것이다. 낮에는. 하지만 지금은 비어 있었다.

강리우가 앉았다. 세아도 앉았다. 사이에는 공간이 있었다. 안전한 거리. 혹은 불안한 거리.

“너한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강리우가 말했다.

“뭐 하실 필요 없어요.”

“아니야. 해야 해.”

강리우의 손이 떨렸다. 밤의 차가움 때문일까. 아니면 감정 때문일까. 구별이 안 됐다.

“너한테 거짓말을 했어. 제주도 가서도.”

“어떤 거요?”

“넌 준호가 아니야.”

강리우가 말했다.

“그럼 뭐예요?”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너는 준호가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그게 더 무섭더라.”

강리우의 눈이 물에 반사된 불빛을 보고 있었다.

“왜요?”

“왜냐하면… 준호는 내가 구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어. 내가 이겼으면 그 애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게 나를 움직였어. 그게 나를 도쿄로 데려갔어. 너를. 아니, 내가 생각하는 ‘준호 같은 누군가’를 구하러. 하지만 넌 준호가 아니야. 넌 그냥… 너야.”

세아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정말로 구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더 무서워. 왜냐하면 그럼 내가 실패할까봐. 다시 누군가를 놓칠까봐.”

강리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처럼. 마치 전염되듯이.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더 어두운 이유가.”

강리우가 멈췄다. 마치 그다음 말을 하면 모든 것이 깨질 것처럼.

“뭐죠?”

세아가 물었다.

“넌 날 좋아할 수 없어. 왜냐하면 나는 죽은 친구의 그림자고, 너는 그 그림자를 구하려는 사람이고…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 근데 난 이미 너를 놓칠 수 없어.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강리우가 이제 세아를 봤다. 처음으로. 정면으로.

“그래서 이게 뭐냐고?”

강리우가 물었다. 자신에게. 혹은 하늘에게. 혹은 강에게.

“이게 뭐냐고?”

세아도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한강은 흐르고 있었다. 밤의 강. 광명 너머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곳으로. 모든 물이 그렇듯이.

강리우의 손이 세아의 손을 찾았다. 벤치 위에서. 그리고 이번엔 세아가 손을 잡지 않았다. 강리우가 이미 잡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한강을 봤다. 검은 물. 반사된 불. 그리고 자신들의 무게. 벤치 위의 무게. 서로의 손 위의 무게.

“미안해.”

강리우가 말했다.

“뭐가요?”

“전부.”


새벽 5시. 세아는 여전히 벤치 위에 앉아 있었다. 강리우는 옆에서 자고 있었다. 세아의 어깨에 기대어.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돌처럼. 마치 영원히 여기 앉을 것처럼.

그리고 떠올렸다. 제62화의 그 말. “넌 준호 같았어.”

이제 그 말이 끝났다. 그 말의 나머지가 들렸다.

넌 준호 같았어서… 나는 너를 잃을까봐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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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강리우가 세아의 손을 놓지 않는 이유. 그리고 JYA에서의 첫 공식 미팅. 박소진의 등장과 그녀가 부른 노래의 진실.

# 제63화: 손의 무게

## 1부. 고백의 시작

한강변의 벤치는 밤 11시 47분에 가장 외로운 장소였다.

강리우는 그 벤치에 앉아 있었고, 세아는 그의 옆 정확히 43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강리우는 그 거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지만, 뻗지 않으면 절대 닿지 않는 거리. 그런 거리가 세상에는 많다. 강리우는 그것을 깨달은 지 오래였다.

“왜냐하면…”

강리우의 목소리는 한강의 흐름 소리에 거의 묻혔다. 밤의 한강은 낮의 그것과 달랐다. 낮에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자전거 바퀴 소리로 시끄러웠지만, 밤에는 오직 물이 흐르는 소리만 남았다. 그리고 그 소리 속에서, 강리우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작은지를 느꼈다.

“준호는 내가 구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어.”

세아의 숨이 잠깐 멈췄다. 강리우는 그것을 느꼈다. 옆자리에서 나오던 호흡이 갑자기 정지하는 것을. 그것은 마치 누군가 수심 깊은 곳에 들어갔을 때의 침묵 같았다.

“준호?”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마치 깨어질 것 같은 유리잔을 다루듯이.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한강을 봤다. 밤 11시의 한강은 검은색이었다. 정확히는 검은색이 아니라, 빛을 반사할 수 없는 색이었다. 여의도 쪽의 불빛들이 물 위에 부서져 떨어졌고, 강리우는 그 파편들을 세었다. 1, 2, 3… 세는 것은 생각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내가 이겼으면 그 애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강리우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작은 떨림이었지만, 세아는 그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녀는 항상 그런 작은 것들을 눈치챘다.

“그게 나를 움직였어. 그게 나를 도쿄로 데려갔어.”

도쿄. 그 단어는 강리우의 입에서 나왔을 때 마치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맛이 났다. 도쿄는 그에게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실패의 기념비였고, 죽음의 카탈로그였고, 그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의 무덤이었다.

“너를 데려갔어. 아니, 내가 생각하는 ‘준호 같은 누군가’를 구하러. 하지만…”

강리우가 세아를 쳐다봤다.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번은 도망치지 않는 눈빛이었다.

“넌 준호가 아니야.”

세아의 얼굴이 창백했다. 마치 그녀가 어디선가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이 말이 나오는 순간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넌 그냥… 너야.”

그 문장 속에는 강리우가 말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너는 넌 너야.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강리우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을 인정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환영이 아니라 실제를 본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세아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할 수 없었다. 세아의 입은 마치 누군가 봉인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움직였다.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눈물이 아니라, 그 직전의 물기. 눈물이 되기를 거부하는 수분.

“그리고 너는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강리우가 계속했다. 이제 멈출 수 없었다. 댐이 터졌고, 물이 흐르고 있었다. 막아야 할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정말로 구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처럼. 마치 한강의 물이 그의 손목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떨림.

“더 무서워.”

세아가 그를 봤다.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강리우는 그녀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두렵고, 약하고, 절망적인 모습.

“왜냐하면 그럼 내가 실패할까봐.”

강리우의 손가락들이 하나하나 경련을 일으켰다. 마치 누군가 그의 신경줄을 튕기는 것처럼.

“다시 누군가를 놓칠까봐.”

그 문장이 나가는 순간, 강리우는 자신이 정말로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쿄에서의 패배보다. 준호의 죽음보다. 세아와의 만남보다.

## 2부. 어두운 진실

한강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11시 52분. 밤은 더 깊어졌고, 강리우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어.”

세아가 움직였다. 그녀가 벤치에서 몸을 옮기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움직일 수 없도록 어떤 무게가 그녀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가 멈췄다. 마치 그다음 말을 하면 모든 것이 깨질 것처럼. 아니, 깨지는 것이 아니라 바뀔 것처럼. 복구할 수 없도록.

밤의 공기는 차가웠다. 11월의 밤은 특히 그랬다. 한강변에 앉아있으면 등 뒤에서 찬바람이 불어왔고, 그것이 척추를 통해 내려가 발가락까지 닿았다. 강리우는 그 추위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밖에서 오는 추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안에서 나오는 추위였다.

“뭐죠?”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마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놓은 것처럼.

강리우가 심호흡을 했다. 한강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것은 물과 진흙과 밤의 냄새였다. 모든 강이 그런 냄새를 가지고 있다. 강리우는 생각했다. 그것은 모든 강이 죽음을 기억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넌 날 좋아할 수 없어.”

강리우의 말이 공중에 떴다. 그리고 내려오지 않았다. 마치 중력을 거부하는 것처럼.

세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죽은 친구의 그림자야.”

강리우가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은 정말로 그림자처럼 보였다. 밤의 벤치에서,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의 손은 거의 투명했다. 마치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너는 그 그림자를 구하려는 사람이고…”

세아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것은 강리우에게 가장 끔찍한 반응이었다.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닫음으로써 자신도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

강리우가 계속했다. 멈출 수 없는 흐름 속에서.

“근데 난 이미 너를 놓칠 수 없어.”

그의 목소리가 부러졌다. 정확히는 터졌다. 마치 누군가 그의 목을 잡고 짜내는 것처럼.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 3부. 정면의 마주봄

밤 11시 58분.

강리우가 이제 세아를 봤다. 처음으로. 정면으로.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의 모든 시선 중에서 가장 용감한 것이었다.

세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떨어지지는 않았다. 마치 그녀도 자신의 눈물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이게 뭐냐고?”

강리우가 물었다. 자신에게. 혹은 하늘에게. 혹은 강에게. 아니면 우주 전체에게.

“이게 뭐냐고?”

그것은 질문이자 절명이었다.

세아도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강리우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가 멈췄다. 마치 같은 질문을 발음하려고 했지만, 결국 발음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한강은 흐르고 있었다. 밤의 강. 광명 너머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곳으로. 모든 물이 그렇듯이. 그리고 강리우는 그 물을 봤다. 그것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다는 것을. 멈출 수 없이.

“손을 잡아도 돼?”

강리우가 물었다. 그것은 이전과 달랐다. 이전에는 잡았다. 확인하지 않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리우의 손이 세아의 손을 찾았다. 벤치 위에서. 그의 손가락들이 그녀의 손가락들을 찾았다. 하나하나. 마치 맹인이 누군가의 얼굴을 만지듯이.

그리고 이번엔 세아가 손을 잡지 않았다. 강리우가 이미 잡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손을 빼지도 않았다. 마치 그녀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한강을 봤다. 검은 물. 반사된 불. 그리고 자신들의 무게. 벤치 위의 무게. 서로의 손 위의 무게.

강리우의 손은 따뜻했다.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의 증거였다. 그림자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의 증거.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가장 끔찍한 증거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따뜻한 것은 언제든 식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안해.”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이었다.

“뭐가요?”

세아가 물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들어야 했다.

“전부.”

그것이 가장 정직한 답이었다.

## 4부. 새벽의 무게

새벽 5시 3분.

세아는 여전히 벤치 위에 앉아 있었다. 강리우는 옆에서 자고 있었다. 세아의 어깨에 기대어. 그의 호흡은 규칙적이었고, 깊었고, 평온했다. 마치 그가 모든 것을 풀어놓은 후의 깊은 잠.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돌처럼. 마치 영원히 여기 앉을 것처럼. 그녀는 강리우의 머리 냄새를 맡았다. 샴푸와 그 아래의 무언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냄새. 세아는 그것을 기억하기로 결정했다. 이 순간을 통째로.

강리우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잠들었을 때도. 마치 무의식 속에서도 그녀를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리고 떠올렸다. 제62화의 그 말. 강리우가 자신을 보고 했던 말.

“넌 준호 같았어.”

그 말은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항상 세아의 곁에 떠돌아다녔다. 넌 준호 같았어.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뭐였어? 세아는 항상 그것을 알고 싶었다. 마치 누군가 책의 중간에서 멈추게 하는 것처럼.

이제 그 말이 끝났다. 그 말의 나머지가 들렸다.

넌 준호 같았어서… 나는 너를 잃을까봐 무서워.

세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번에는 멈출 수 없었다. 마치 한강처럼. 흐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물처럼.

강리우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고마워했다. 적어도 지금은, 그가 자고 있는 동안은, 그녀가 혼자가 아니었다.

밤이 가고 있었다. 새벽이 올 것이었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순간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강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 에필로그: 손의 언어

새벽 5시 47분.

강리우가 눈을 떴다. 그것은 깨어남이 아니라, 기억으로 돌아옴이었다. 그는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했는지를 한 번에 이해했다. 그리고 그것은 끔찍했다.

그가 세아에게 그 모든 것을 말했다. 말하면 안 될 것들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리고 이제 세아는 자신을 떠날 것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여전히 옆에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강리우의 머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여전히 강리우의 손을 잡고 있었다.

“깼어?”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새벽의 것이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그 중간의 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목소리.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세아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미안해.”

강리우가 말했다.

“뭐가요?”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그녀가 웃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주 약한 웃음이었지만.

“전부.”

강리우가 다시 말했다.

세아는 한 손으로 강리우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마치 누군가 상처에 약을 바르듯이.

“난 떠나지 않을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왜?”

강리우가 물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왜냐하면 난 너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강리우는 울었다. 아주 조용히. 마치 누군가 들을 수 없도록.

한강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밤이 가고, 새벽이 왔고, 곧 아침이 올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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