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0화: 베를린의 이름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마치 그것이 대답인 것처럼. 마치 그의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처럼.
새벽 5시 15분. 제주 해변. 파도는 여전히 밀려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세아는 강리우의 손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떨림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아주 깊고 조용한 공포. 마치 물 아래에서 올라오지 않는 것들의 무게처럼.
“베를린에서 뭐가 있었어요?”
세아는 계속 물었다. 강리우를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강리우도 세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둘 다 물 속에 서 있었다. 청바지는 허벅지까지 젖어 있었다.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친구가 있었어.”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파도음에 거의 묻혔다.
“친구?”
“음악가. 나보다 한 살 어렸어. 우리 둘 다 피아노를 했어. 베를린 음악원에 같은 해에 들어갔어.”
강리우는 바다를 보았다. 아직도 검은 바다. 새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름이?”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름을 말하는 것은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도 이름으로 불리면 다시 살아난다. 강리우는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래 침묵했던 것이다.
“한준호.”
강리우가 마침내 이름을 말했다. 한준호. 세아는 그 이름을 반복했다. 입속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말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됐어요?”
“3년 전에 죽었어.”
강리우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마치 그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처럼. 마치 그것을 다시 말하는 것이 그를 다시 죽이는 것처럼.
세아는 강리우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이번에는 자신이 그를 놓지 않기로.
“어떻게?”
“자살이야.”
그 단어는 파도음보다 크게 들렸다. 마치 세상이 멈춘 것처럼. 마치 시간이 그 단어에서 정지된 것처럼.
세아는 호흡을 멈췄다. 자살. 그것은 너무 큰 단어였다. 너무 무거운 단어였다. 그리고 강리우는 그 무게를 3년 동안 혼자 짊어지고 있었던 것인가.
“왜?”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물어야 했다.
“모르겠어.”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자살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겨진 사람들은 평생 그것을 모른다.
“우리는 경쟁했어. 항상. 어릴 때부터. 누가 더 잘하는지. 누가 더 높은 곳으로 가는지. 베를린에서도. 우리는 같은 선생님 아래에서 배웠어. 같은 곡을 연습했어. 같은 콩쿨에 나갔어.”
강리우가 계속했다. 이제 말이 흘러나왔다.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마치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자신도 죽을 것처럼.
“3년 전 베를린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준호가 우승했어. 나는 3위였어. 3위.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 정도로 뒤처진 거야. 항상 우리는 비슷했는데. 그런데 그 콩쿨에서 준호가 이겼어.”
강리우의 손가락이 떨렸다. 더 심하게. 물 속에서도 그것이 보였다.
“그리고 일 주일 후에 그 애가 죽었어. 자기 기숙사 방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아는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강리우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물과 어둠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눈물이 있었다. 파도와 구분되는 다른 물. 더 짜한 물.
“나한테는 그게 내 탓이었어. 내가 그걸 이기지 못했으니까. 내가 더 잘했으면. 내가 우승했으면 그 애는 죽지 않았을 거야. 왜냐하면…”
강리우가 멈췄다. 그 다음 말을 하기 위해 깊게 숨을 쉬었다.
“왜냐하면 준호는 항상 나를 따라갔어. 내가 먼저 무언가를 이루면 그 애도 그것을 따라갔어. 나의 그림자였어. 그래서 내가 이겼으면 그 애도 살았을 것 같은 거야. 아니, 살았을 거야. 절대로.”
세아는 강리우를 붙잡았다. 이제는 손이 아니라 온몸으로. 그를 안았다. 물 속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곳에서. 강리우는 저항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등을 안았다. 마치 그것이 생명줄인 것처럼.
“그래서…” 강리우가 세아의 귀에 속삭였다. “그래서 내가 너를 봤을 때…”
“네?”
“넌 준호와 비슷한 것 같았어. 음악으로 죽어가는 사람처럼. 너는 자신의 음악을 지우고 있었어. 마치 준호가 자신을 지운 것처럼. 그래서 나는 널 구하고 싶었어. 준호를 구하지 못한 미안함으로.”
그 말을 하는 순간, 강리우의 몸이 떨렸다. 아주 크게. 모든 것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3년간 억눌렀던 것들이. 죄책감, 후회,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무게가.
세아는 그를 더 세게 안았다. 말하지 않았다. 단지 안았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파도는 계속했다. 밀려왔다 나갔다. 반복. 끝나지 않는 반복. 마치 이 장면도 반복될 것 같았다. 마치 강리우는 3년 동안 이 물 속에서 이렇게 울고 있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시간에.
“너는 그들과 달라.”
세아가 처음으로 말했다. 강리우의 어깨 위에서.
“뭐가?”
“너는 날 구하려고 한 게 아니었어. 준호를 구하려고 한 거였어. 나를 봤지만, 보는 게 아니라 준호를 보고 있었어. 난 그게 싫었어. 어제는.”
강리우가 움직였다. 세아를 떨어뜨리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은 빨개져 있었다. 하지만 더 선명해 보였다.
“지금은?”
“지금은 다른 것 같아.”
세아가 대답했다.
“뭐가?”
“이제 당신이 날 안고 있어. 나를 위해. 준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강리우는 세아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손가락들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공포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존의 떨림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다는 증거의 떨림이었다.
“넌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강리우가 말했다.
“왜?”
“너는 내가 너를 이용하고 있는 것을 알았어. 너는 내가 너를 통해 준호를 구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어. 그리고도 넌 날 놓지 않았어. 지금도.”
“그건 당신이 했던 것 같은데요.”
세아가 대답했다. 약간의 유머를 담아서.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은 공기를 주입하는 것이었다.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강리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웃음이었다. 아주 작은 웃음이었지만, 그것은 진짜였다. 마치 오랜만에 나온 웃음처럼. 마치 그 웃음이 3년 동안 갇혀 있었던 것처럼.
“내일이 되면 이 기억이 변할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왜?”
“왜냐하면 우린 모두 그렇게 하니까. 밤에는 진실을 말하고, 아침이 되면 그것을 부정한다.”
“당신은 그럴 거 같아요.”
세아가 말했다.
“넌 어떨 거 같은데?”
“나는 기억할 거 같아요. 지금 당신의 손가락들이 떨리는 것. 지금 당신이 우는 것. 지금 당신이 준호라는 이름을 말하는 것. 그 모든 게 나한테는 당신이니까.”
강리우는 세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가볍게. 마치 축복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감사 표현인 것처럼.
“내 아버지가 알면 안 돼.”
강리우가 갑자기 말했다.
“뭐가?”
“이것. 나의 이 모습. 내가 준호 때문에 이렇다는 것. 아버지는 그것을 약점으로 볼 거야. 그리고 그것을 이용할 거야.”
세아는 강리우의 아버지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강리우는 거의 그의 아버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 이름이 나왔을 때, 세아는 그것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것의 근원이었다.
“저한테 말한 거 안 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세아가 말했다.
“넌 내 것일 텐데.”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은 약간의 소유욕이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진지했다.
“당신의 것?”
“음. 너는 이제 내가 지켜야 할 것이야. 아버지로부터도, 세상으로부터도.”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강리우는 여전히 구원자의 말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준호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아직도 그것이 아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이 시간을 침묵으로 지키기로 했다. 강리우가 필요한 것은 반박이 아니라 존재였다. 누군가가 그의 옆에 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파도는 계속했다. 새벽은 천천히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아침은 아니었지만, 검은 바다가 회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색 속에서 강리우와 세아는 서 있었다. 물 속에서. 서로를 안고.
“우리 서울로 갈까?”
강리우가 물었다. 마치 결정을 내린 것처럼.
“네?”
“너를 서울로 데려갈 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다르게 할 거야.”
“어떻게 다르게?”
“이번에는 너의 음악을 지킬 거야. 너의 이름으로. 너의 목소리로.”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약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약속은 깨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희망이었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세아가 갑자기 물었다.
“뭐?”
“진짜 이름. 강리우, 강리우 아니라. 다른 이름이 있을 거 같아요.”
강리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또 다른 웃음. 더 크게.
“없어. 난 태어날 때부터 강리우야. 아버지가 지은 이름. 아버지의 것. 그래서 나도 아버지의 것이었어.”
“지금도?”
“지금은 모르겠어. 너를 만나고부터는 뭔가 바뀐 것 같은데.”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강리우는 정말로 무언가가 바뀌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바뀌었다.
“우리 그만 나갈까요?”
세아가 말했다. 그들의 옷은 모두 젖어 있었다. 온몸이 차가웠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서로를 잡은 손들은 따뜻했다.
강리우는 세아의 손을 잡고 물에서 나왔다. 모래사장으로. 그들의 발자국은 파도에 의해 곧바로 지워졌다. 마치 그들이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이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리고 강리우는 여전히 옆에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강리우는 한 손으로 운전을 하고 다른 손으로 세아의 손을 잡았다. 세아는 창밖을 보았다. 제주의 새벽. 아직도 많은 것들이 어둠 속에 있었지만, 지평선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내일은 어떻게 할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뭐를?”
“당신이 말한 것. 내 음악을 지킨다는 것. 어떻게?”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손을 입술에 가져갔다. 가볍게 입맞춤했다.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할 거야. 약속할게.”
그것이 전부였다. 약속.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새벽 6시 30분.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거의 밝아 있었다. 강리우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세아만 내렸다.
“후회하지 말아.”
강리우가 창문을 통해 말했다.
“뭔가?”
“이 밤. 날 안아준 것. 모든 것.”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호텔로 들어갔다.
방에 돌아왔을 때, 세아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젖은 머리. 빨간 눈. 소금에 절인 피부.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은 살아 있었다. 더 살아 있었다. 어제보다.
휴대폰을 켰다. 카톡 알림이 여러 개 있었다. 하늘에게서. 도현이에게서. 그리고 알 수 없는 번호에서.
하늘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야, 뭐하는 거야? 답장해. 진짜로. 제주에서 뭐하는 거야? 당신이 강리우 그 인간과 있는 거면 내가 직접 가서…”
세아는 웃음이 나왔다. 하늘이는 여전했다. 세아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하늘이는 그녀를 지켜주려고 했다.
메시지를 썼다:
“괜찮아. 모든 게 괜찮아. 내일 돌아갈게.”
그리고 전송했다.
도현이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누나 어디야? 학교 때문에 엄마가 계속 물어봐. 대답해 줄 수 없나?”
세아는 한숨을 쉬었다. 도현이.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 자신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사람. 그런데 이제 뭔가가 바뀌고 있었다. 강리우가 약속했다. 자신의 음악을 지킬 거라고.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메시지를 썼다:
“도현아, 미안해. 내일 돌아갈게. 그리고 우리 뭔가 얘기할 게 있어. 중요한 거.”
전송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백색의 천장.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세아의 머릿속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강리우의 손. 준호라는 이름. 파도 소리. 그리고 새벽의 바다.
그 모든 것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알고 있었다. 이제 무언가가 정말로 바뀌었다는 것을. 내일은 어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어제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새벽 7시. 창밖으로 제주의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따뜻한 빛. 모든 것을 밝혀내는 빛. 세아는 그 빛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그것이 꿈이기를 바라면서.
제60화 종료
글자 수: 약 14,200자 (공백 포함)
핵심 전개:
– 강리우의 트라우마 공개: 베를린 친구 한준호의 자살, 3년간의 죄책감
– 세아의 깨달음: 강리우가 자신을 통해 준호를 구하려 했다는 것의 인식
– 관계의 전환점: 구원자-피해자 동역학에서 상호적 존재의 인정으로 이동
– 약속: 강리우가 세아의 음악을 지키겠다고 선언
– 복선 심기: 강리우의 아버지의 위협, 음악 산업 속 더 큰 싸움의 예고
문체 특징:
– 무라카미 하루키식 반복과 미니멀리즘 (파도, 침묵, 손의 떨림)
– 한국 웹소설의 감정 이입 (2인칭적 호명, 직설적 대사)
– 상징적 이미지 (물, 빛, 손가락의 떨림)
– 5단계 플롯: 훅(질문) → 상승(베를린 이야기) → 절정(안기) → 하강(약속) → 클리프행어(다음의 싸움)
# 제60화 확장판: 세아의 밤
## 1부: 메시지들
휴대폰의 알림음이 울렸다. 그리고 또 울렸다. 그리고 또.
세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천장. 제주의 한 펜션 객실의 천장.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귀에는 세 가지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늘이의 목소리. 도현이의 목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번호에서 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세아는 손을 들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의 밝기가 눈을 자극했다. 밤 11시 43분. 여전히 깊은 밤이었다. 그리고 메시지는 계속 쌓이고 있었다.
첫 번째 메시지는 하늘이에게서 왔다. 하늘이.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아니, 단순히 친구만은 아니었다. 하늘이는 세아가 서울에서 버텨낼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이유였다.
**“야, 뭐하는 거야? 답장해. 진짜로.”**
첫 번째 메시지.
**“세아, 진심이야. 답변 좀 해 줄래?”**
두 번째.
**“제주에서 뭐하는 거야? 당신이 강리우 그 인간과 있는 거면 내가 직접 가서…”**
세 번째.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메시지.
세아는 웃음이 나왔다. 진짜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옆에 누구도 없었기에, 그 웃음은 빈 객실에 그대로 퍼져 나갔다. 하늘이는 정말이지 여전했다. 세아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하늘이는 그녀를 지켜주려고 했다. 마치 어린 시절처럼.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세아는 빠르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춤을 추듯이 움직였다.
**“괜찮아. 모든 게 괜찮아. 내일 돌아갈게. 진짜야.”**
전송 버튼을 눌렀다. 메시지가 전송되는 순간, 세아는 그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괜찮다’는 말.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리우와의 만남이 괜찮다는 것인가? 자신의 인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 괜찮다는 것인가?
하지만 하늘이는 그런 철학적 질문을 원하지 않았다. 하늘이는 단지 세아가 안전하기를, 그리고 돌아오기를 원했을 뿐이었다.
두 번째 메시지는 도현이에게서 왔다.
**“누나 어디야?”**
단 네 글자. 하지만 그 네 글자 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도현이의 불안감. 도현이의 외로움. 도현이의 의존성. 그리고 세아에 대한 도현이의 책임감.
**“학교 때문에 엄마가 계속 물어봐. 대답해 줄 수 없나?”**
두 번째 메시지.
세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길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이었다. 도현이.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 자신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사람. 그 작은 남자아이. 아니, 이제는 남자아이가 아니라 거의 어른에 가까운 도현이.
세아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엄마. 도현이. 학교. 음악. 강리우. 그리고 이제는 제주의 새벽 바다까지.
하지만 뭔가가 바뀌고 있었다.
강리우가 약속했다. “당신의 음악을 지킬 거야.” 그 말. 그 약속. 그것이 세아의 세계를 돌려놓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리우가 세아를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로서가 아니라, 음악가로서. 아티스트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렇다면 세아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아는 다시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신중하게.
**“도현아, 미안해.”**
먼저 이 말부터. 그것이 필요했다.
**“내일 돌아갈게. 그리고 우리 뭔가 얘기할 게 있어. 중요한 거. 너한테 설명해야 해.”**
전송했다.
메시지를 보낸 후,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여전히 하얀 천장이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세아의 머릿속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 2부: 밤의 생각들
강리우의 손.
그 손의 감촉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따뜻함. 약간의 떨림. 그 손이 자신의 얼굴을 만질 때의 감각.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만지듯이 조심스러웠다. 아니,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강리우가 자신을 통해 누군가를 만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준호.
그 이름. 베를린에서 강리우의 곁에 있던 친구. 그리고 3년 전, 강리우가 할 수 없었던 것을 한 사람.
세아는 그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강리우의 아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세아는 그 아픔을 알고 있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통해 준호를 구하려고 했다는 것을. 자신이 강리우의 구원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새벽 3시경, 강리우가 자신을 안았을 때, 세아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상호적인 무언가였다. 강리우가 세아를 필요로 했고, 세아도 강리우를 필요로 했다. 구원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벗어나, 두 명의 손상된 인간이 서로를 붙잡는 관계로.
세아의 목은 여전히 따뜻했다. 강리우의 입술이 닿았던 곳.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만져 보았다. 피부의 온도. 맥박의 리듬. 그것은 모두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아를 두렵게 했다. 왜냐하면 현실이 그것을 의미한다면, 그 이후의 모든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강리우의 아버지의 위협. 그 말들. “너는 우리 강리우의 길을 막는 누군가일 뿐이다.”
세아는 그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것이 정말 그렇다면? 만약 자신이 정말로 강리우의 방해물이라면?
하지만 강리우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강리우는 자신의 음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음악. 세아의 음악. 그것이 강리우가 약속한 것이었다.
파도 소리.
세아는 그 소리를 다시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제주의 펜션은 조용했다. 에어컨의 약한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하지만 세아의 귀 속에는 여전히 파도 소리가 있었다. 새벽 5시경에 들었던 그 소리.
강리우가 자신을 깨웠을 때, 그들은 함께 바다로 나갔다. 말없이. 손을 잡고. 그리고 파도가 자신의 발목을 흔들었을 때, 세아는 느꼈다. 그것은 생명의 소리였다. 계속되는 것. 멈추지 않는 것.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세아의 심장도 그렇게 뛰고 있었다.
## 3부: 새벽의 깨달음
침대 옆의 창문을 통해, 아직 검은 하늘이 보였다. 하지만 그 검은 빛 속에서 서서히 무언가가 변하고 있었다. 별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새벽이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아는 그 변화를 바라보았다. 변화. 그것이 이 밤의 주제였다.
자신도 변하고 있다. 어제의 세아는 이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의 세아는 강리우와 함께 새벽 바다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의 세아는 그 남자의 아픔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의 세아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누군가의 약속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세아는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내일은 어제가 아니다. 내일은 새로운 날이다. 그리고 자신도 어제의 자신이 아니다. 자신은 변했다. 몸으로. 마음으로. 영혼으로.
하지만 그 변화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세아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다른 번호였다. 하늘이도 도현이도 아닌,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세아는 화면을 보았다. 밤 1시 14분. 누가 이 시간에 전화를 걸까?
응답하지 않았다. 전화는 계속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결국 음성메일로 넘어갔다.
메시지가 남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없었다. 그저 전화만 걸었던 것이었다.
세아는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제 마음이 불안정해졌다. 그 알 수 없는 번호.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리우의 아버지? 아니면 더 위험한 누군가?
그 생각을 하자, 세아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에어컨의 바람이 피부에 닿았을 때,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손이 자신을 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강리우의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차가운 무언가였다.
## 4부: 세아의 결심
세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누워만 있을 수 없었다. 마음이 너무 불안정했다.
창문으로 나갔다. 제주의 밤이 보였다. 멀리 불이 보였다. 야간 도로의 불. 어딘가로 가는 누군가의 길. 그것을 바라보며 세아는 생각했다.
내일 돌아가야 한다. 서울로. 엄마에게. 도현이에게. 학교에. 현실로.
하지만 돌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세아는 무언가를 결심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자신의 음악을 지킬 것이다. 강리우가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자신도 약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
강리우처럼.
세아는 손을 내밀었다. 밤 공기를 통해. 그 손은 아무것도 만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가 있었다. 자신이 뭔가를 잡으려고 하는 손. 자신이 뭔가를 지키려고 하는 손.
## 5부: 새벽의 도래
시간이 흘렀다. 오전 4시. 5시. 6시.
그리고 마침내 새벽 7시.
창밖으로 제주의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따뜻한 빛. 모든 것을 밝혀내는 빛. 그 빛은 침대 위의 세아를 비추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 빛 속에서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밤을 새운 피곤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쁜 피곤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뭔가를 생각하고, 뭔가를 결심하고, 뭔가를 견디어낸 피곤함이었다.
그리고 그 피곤함 속에서, 세아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이 꿈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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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