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9화: 불은 이미 타고 있었다
강리우의 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세아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앉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강리우가 말한 것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내가 회사를 나가. JYA를 나가. 너도 함께 나가야 한다고. 그 말들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폭탄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지금 그 폭탄 위에 앉아 있었다.
강리우는 운전하고 있었다. 한강변 도로를 따라 천천히. 그의 손은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도로 위에만 있지 않았다. 가끔 백미러를 본다. 가끔 옆 도로를 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지금 뭐 생각해?”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평온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폭발 직전의 고요함이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의 손을 봤다. 강리우가 타올로 닦아준 손. 이미 다시 따뜻해졌다. 마치 그 순간이 몇 시간 전이 아니라 몇 초 전인 것처럼. 세아의 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타임 스탬프가 엉망이 된 비디오처럼, 시간이 앞뒤로 뒤섞여 있었다.
“이거… 진짜야?”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작았다.
“응.”
강리우가 대답했다.
“계약 위반이 되는 거 아니야?”
“그렇지.”
“합의금?”
“그럴 수도 있지.”
“법적 문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강리우의 대답들은 마치 체크리스트를 읽는 것처럼 단순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는 무언가 깊은 것이 숨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이미 계산했다는 뜻처럼.
“너 미쳤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응. 그럴 수도 있어.”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리고 한강변 도로의 왼쪽에 자동차를 세웠다. 한강이 보이는 곳. 낮 시간이었지만 한강은 회색으로 보였다. 마치 자신도 세아의 기분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는 시동을 껐다. 그리고 조수석을 보았다. 세아를 보았다. 정확히는 세아의 옆모습을 보았다. 세아가 자신을 직접 바라보지 않았으니까.
“너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내가 베를린에서 뭐 했는지?”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아노를 쳤어. 클래식. 아버지가 하라고 한 거. 어릴 때부터. 매일 5시간씩. 콩쿠르 나가고, 상 받고, 그게 내 인생이었어. 그리고 20살 때 베를린으로 갔어. 더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진짜 음악을 배우러.”
강리우는 한강을 봤다. 그의 목소리는 계속 나왔다. 마치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근데 거기서 깨달았어. 내가 하고 있던 음악이 진짜 음악이 아니라는 거. 그건 아버지의 음악이었어. 아버지가 나를 통해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이었어. 그리고 나는 그 음악을 하면서 점점 사라졌어. 마치 악보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처음으로 그를 직접 마주봤다. 그의 얼굴은 창밖의 회색 한강만큼 창백했다.
“23살 때, 나는 피아노 앞에 앉을 수가 없었어. 손이 경직되었어. 의사들은 그걸 심리적 문제라고 했어. 트라우마라고. 그런데 그건 틀렸어. 그건 심리적 문제가 아니었어. 그건 영혼의 거부였어. 내 영혼이 내 손에 거부권을 준 거였어.”
강리우가 자신의 손을 봤다. 스티어링 휠에 있던 손. 그 손을 들어올렸다. 마치 그것이 낯선 물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손들이 지금도 떨려. 피아노 가까이 가면 떨려. 그리고 나는 그 손들을 포기했어. 음악을 포기했어. 아버지의 음악을 포기했어. 그리고 베를린에서 돌아왔어. 서울로. JYA로.”
“그럼 왜 음악 회사로 왔어?”
세아가 물었다.
“내 자신을 처벌하려고.”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것은 너무나 간단한 대답이었다. 너무나 솔직한 대답이었다. “음악을 포기했으니까, 나는 음악을 죽이는 일을 하기로 했어. 아버지를 위해. 그래서 JYA에 들어갔어. 그리고 아버지의 팔이 되어서 음악을 상품으로 만드는 일을 했어. 좋은 음악을 시장에 맞춰서 망쳤어. 진짜 아티스트들을 일반인으로 만들었어.”
강리우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세아를 봤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너를 봤어. 클럽 언더스코어에서. 그때 너는 노래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노래가… 내가 잃어버린 음악이었어. 진짜 음악이었어.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오직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음악이었어.”
세아는 강리우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자신의 노래가 그렇게 특별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노래는 돈을 벌기 위한 노래였다. 동생을 먹이기 위한 노래였다. 그것은 진짜 음악이 아니었다.
“난 네가 크라고 생각했어. 너의 음악을 시장에 맞춰서 망칠 생각이었어. 그렇게 하면 나는 더 깊은 자기 처벌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진짜 음악을 죽이는 것만큼 큰 죄는 없으니까. 그게 내 계획이었어.”
강리우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길게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은 1초가 아니라 영원처럼 느껴졌다.
“근데 너를 더 가까이서 보면서, 나는 깨달았어. 넌 이미 죽어가고 있었어. 너의 음악이 죽어가고 있었어. 그리고 그건 내가 시작한 게 아니었어. 그건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어. 아버지가 만든 시스템에 의해서. 가난에 의해서. 책임감에 의해서.”
강리우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였다. 마치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결정했어. 내가 너를 구하지 않으면, 너는 천천히 타다가 사라질 거라고. 그리고 그건 내가 견딜 수 없었어. 너를 잃는 것이. 너의 음악을 잃는 것이.”
세아는 강리우의 손을 느꼈다. 따뜻했다. 그러나 그 따뜻함은 위로가 아니라 더욱 큰 혼란을 만들었다. 왜냐하면 세아는 지금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랐으니까. 이 남자의 말이 사랑인지, 아니면 또 다른 종류의 조종인지.
“내가 너한테 거짓말 했어?”
강리우가 물었다.
“알 수 없어.”
세아가 대답했다. “너 자신도 뭘 하는 건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은 직관이었다. 세아의 직관. 그리고 그 직관은 정확했다.
“맞아.”
강리우가 인정했다. “나도 몰라. 내가 너를 진짜로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널 이용하는 건지. 그게 다르긴 한 건지도 몰라. 근데 한 가지는 확실해.”
강리우가 세아의 손을 더 꽉 쥐었다.
“너를 JYA에서 빼내야 한다는 건. 그것만은 확실해.”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두 사람 모두 그것을 들었다. 카톡 알림음. 그 소리가 이 순간을 깨뜨렸다. 마치 누군가가 창밖의 벽에 돌을 던진 것처럼.
세아는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봤다. 발신자: 하늘.
“세아야 뭐해? 오늘 저녁에 봬. 타투 맞았던 거 확인해야 돼. 완전히 나았어야 함. 곧 문 닫으니까 빨리 와.”
세아는 그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읽는 순간, 자신의 뇌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는 현실이 다시 잡아당겼다.
하늘.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 자신이 미친 결정을 했을 때 자신을 붙잡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런데 자신은 지금 그 친구를 속이고 있었다. 강리우와 함께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으면서.
“뭐야?”
강리우가 물었다.
“하늘이.”
세아가 대답했다.
“하늘?”
강리우가 반복했다. “너의 친구?”
“그래. 내 가장 친한 친구. 타투 맞은 거 확인하라고.”
세아는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의 쇄골 아래를 만졌다. 거기에 있는 타투. 성냥 모양의 작은 타투. 하늘이 새겨준 것. 그리고 그때 하늘은 말했었다. “이건 너야. 불이야. 태워.”
그때 세아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했다. 하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세아가 자신을 갈아마시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멈춰야 한다는 것을.
“그럼 그 친구한테 가.”
강리우가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그 친구한테 가. 지금. 난 따로 움직일 거야. 오늘 저녁에 아버지한테 얘기할 거니까.”
강리우의 목소리는 다시 차가워졌다. 마치 자신이 방금 한 고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강리우라는 인간이 다시 강리우라는 회사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근데 니가 그 친구한테 뭘 말할 건데?”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의 무게를 느꼈다. 이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이것은 시험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시험.
“진짜 말?”
세아가 물었다.
“응.”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강리우는 잠시 세아를 봤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정확히는 웃음처럼 들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 소리에는 기쁨이 없었다. 그것은 절망의 소리였다.
“그래. 그게 정직한 대답이야.”
강리우가 차 시동을 다시 켰다. 그리고 한강변 도로를 나왔다. 목적지: 하늘의 타투 가게. 합정역 근처 골목. 두 골목을 지난 곳.
운전하는 동안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 오직 차의 엔진음과 도시의 소음만 있었다. 서울의 오후 3시.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시간.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모든 것이 정상처럼 보이는 시간.
하늘의 가게 앞에 차를 세웠을 때, 강리우가 한 말이 있었다.
“제주에서 봬. 내일 아침에.”
세아는 그 말을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타투 가게의 문을 열었다.
하늘은 거기 있었다. 마치 세아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야, 넌 왜 얼굴이 그 모양이야? 뭔가 있었어?”
하늘이 물었다.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투명한지를 깨달았다. 자신의 모든 비밀이 얼굴에 드러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늘은 그것을 모두 읽고 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아니야.”
세아가 거짓말을 했다.
하늘은 세아를 오랫동안 봤다. 그리고 말했다.
“세아야. 너 지금 불타고 있어. 그런데 그건 좋은 불이 아니야. 그건 너를 태우는 불이야. 언제쯤 멈춰?”
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자신이 자신에게 해야 하는 질문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불은 이미 타고 있었다. 멈출 수 없는 불이. 그리고 그 불은 자신을 태워 없애기 전에 무언가를 밝혀야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무엇을 원하는지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강리우의 차는 여전히 가게 앞에 있었다. 엔진이 꺼진 채로. 마치 자신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제주로 가는 비행기는 내일 아침 8시 40분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아를 태우고. 강리우를 태우고. 그리고 그들의 모든 비밀을 태우고.
세아는 하늘을 봤다. 그리고 마침내 말했다.
“내일 아침에 제주 가.”
하늘의 얼굴이 변했다. 마치 자신이 예상했던 최악의 일이 현실이 된 것처럼.
“누구하고?”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답은 이미 창밖에 있었다.
[2권 완결]
# 제주로 향하는 길
## 1부: 침묵의 무게
“응.”
세아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이미 이 순간을 떠나간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강리우는 그 한 글자를 듣고 뭔가 깨져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자신 안의 어딘가가, 아주 천천히, 아주 조용하게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세아가 덧붙였다.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오후의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 그 위로 떠다니는 수십 개의 보트들. 모두가 움직이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니 시간 자체가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는 한동안 세아를 봤다. 그의 눈길은 천천히, 세아의 얼굴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뺨의 미세한 떨림. 입가의 경직된 근육. 그리고 눈동자 안에 가득 차 있는 것들—두려움, 결정, 그리고 무언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
그 순간, 강리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웃음처럼 들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소리에는 어떤 기쁨도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깊은 광산 밑바닥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절망의 소리. 무언가가 완전히 부서지는 소리. 자신이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던 일이 결국 일어났을 때, 사람이 내뱉는 그런 소리.
“그래. 그게 정직한 대답이야.”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우주에 선언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게 자신이 원했던 것들이 하나둘 무너져 내린다는 선언.
강리우가 차의 시동을 다시 켰다.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 차 안의 공기가 떨렸다. 마치 그 진동이 자신의 몸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도, 얼굴도, 심지어 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존재할 뿐이었다. 차 안의 승객으로서, 그것이 전부였다.
강리우는 한강변 도로를 빠져나왔다. 운전대를 틀었다. 이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하늘의 타투 가게. 합정역 근처, 그 복잡한 골목들 사이. 두 골목을 지난 곳.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곳. 하지만 그들은 알았다.
운전하는 동안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 강리우가 팔을 뻗어 라디오 버튼에 손을 댔다가 멈췄다. 그 손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내려왔다. 굳이 음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차의 엔진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도시의 소음. 서울의 오후 3시가 내뿜는 모든 것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시간.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연인들이 까페에서 만나는 시간. 모든 것이 정상처럼 보이는 시간. 모든 것이 흐르는 대로 흐르는 시간.
그런데 이 차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있었다. 응고되어 있었다. 마치 호박 안의 곤충처럼, 과거의 어느 순간이 그대로 갇혀 있었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차가 멈췄다.
강리우의 손가락이 운전대를 두드렸다. 탁탁탁. 리듬도 없는, 목적도 없는 두드림. 세아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것을 통해 강리우가 얼마나 초조한지, 얼마나 불안한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어떤 말도 이 순간을 구원할 수 없었으니까.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합정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 태양은 여전히 높았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각. 빛이 강했다. 그것이 세아의 눈을 찔렀다. 차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노출하려는 의도로 느껴졌다.
강리우는 타투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조용히, 정확하게. 마치 그 자리가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그 순간, 강리우가 한 말이 있었다.
“제주에서 봬. 내일 아침에.”
목소리는 평탄했다. 감정이 완전히 제거된 톤. 마치 비행기 탑승 공지처럼. 하지만 그 짧은 문장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결정. 운명. 그리고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정확하게 들었다. 뇌에 명확하게 새겨졌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 수 없었다. 만약 입을 열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세우고 있던 모든 것들이.
대신 차에서 내렸다. 손을 뻗어 차의 문을 열었다. 손잡이는 차가웠다. 금속의 차가움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차갑게, 단호하게.
차 밖의 공기는 더웠다. 도시의 열기가, 포장도로의 열기가, 햇빛의 열기가 한 점으로 모여 세아를 감싸 안았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마치 공기 자체가 걸쭉해진 것 같았다.
타투 가게의 문을 열었다.
## 2부: 하늘이 보는 것
하늘은 거기 있었다.
마치 세아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에이프런을 걸친 채로. 가는 팔에 색색의 타투 팔찌들을 감은 채로. 그리고 그 표정으로—세아가 들어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은, 그런 표정으로.
가게는 독특한 냄새로 가득 했다. 잉크의 냄새. 소독약의 냄새. 그리고 무언가 다른 것의 냄새. 마치 이곳이 현실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별도의 세계인 것처럼 만드는 냄새.
벽에는 타투 디자인들이 붙어 있었다. 용. 나비. 꽃. 글자. 기하학적 패턴. 그리고 몇 개의 추상적인 형태들. 모두가 피부에 영원히 남겨질 것들이었다. 영원한 선택들. 한 번 새기면 지울 수 없는 것들.
“야, 넌 왜 얼굴이 그 모양이야? 뭔가 있었어?”
하늘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볍게 들리려고 노력했지만, 그 아래에는 깊은 우려가 흐르고 있었다. 하늘은 사람을 읽는 데 능했다. 특히 세아를. 그들은 이미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알고 있었으니까.
세아는 거울을 봤다. 가게 벽에 붙어 있는 거울. 자신의 얼굴이 그 안에 있었다. 낯선 얼굴이었다. 마치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얼굴처럼.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투명한지를 깨달았다.
모든 비밀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숨겨도 소용없었다. 눈에는 두려움이. 입가에는 결정이. 뺨에는 울음의 흔적이. 그 모든 것이 선명했다. 마치 형광펜으로 표시된 것처럼.
그리고 하늘은 그것을 모두 읽고 있었다. 세아가 말하지 않아도, 세아가 부정해도 소용없었다. 하늘의 눈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세아가 거짓말을 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입에서 나온 말은 거짓이었지만, 그 거짓은 진실보다 더 큰 소리를 내었다. 거짓이 진실을 외치는 것처럼, 부정이 긍정을 확인하는 것처럼.
하늘은 세아를 오랫동안 봤다. 눈 깜빡할 새 없이. 마치 그 시선으로 세아를 고정하려는 것처럼,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못하도록.
“세아야.”
하늘이 말했다. 이번엔 진지했다. 모든 장난기가 사라지고, 모든 방어가 내려가고, 오직 진실만 남은 목소리로.
“넌 지금 불타고 있어. 그런데 그건 좋은 불이 아니야. 그건 넌 태우는 불이야. 언제쯤 멈춰?”
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목이 누군가에게 짓눌려 있는 것처럼.
왜냐하면 그 질문은 자신이 자신에게 해야 하는 질문이었으니까.
몇 밤을 세워 가며 자신에게 던져야 했던 질문이었으니까. 거울 앞에서, 혼자만의 어둠 속에서.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불은 이미 타고 있었다. 멈출 수 없는 불이. 그것은 외부에서 들어온 불이 아니었다. 자신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이었다. 자신의 뼈 속에서, 혈액 속에서,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불이었다.
그리고 그 불은 자신을 태워 없애기 전에 무언가를 밝혀야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무엇을 원하는지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그것들이 밝혀질 때까지는 불이 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불이 더욱 활활 타올 것 같았다.
창밖을 통해 강리우의 차가 보였다. 여전히 가게 앞에 있었다. 엔진이 꺼진 채로. 회색의 차체가 햇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마치 자신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무언가가 끝날 때까지. 무언가가 시작될 때까지.
하늘이 더 가까이 왔다. 세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따뜻한 손. 하지만 그 온기는 차갑게 느껴졌다.
“세아, 제발 말해. 뭐가 일어난 거야?”
하늘의 목소리에서 애원이 묻어났다. 친구를 읽는 능력은 있지만, 친구의 마음을 열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 목소리에 있었다.
세아는 그 손의 무게를 느꼈다. 하늘의 손. 얼마나 많은 타투를 새겨온 손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결정을 그 손으로 몸에 새겨온가. 그리고 이제 그 손이 세아를 잡고 있었다.
그 순간, 비행기 탑승 알림이 세아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일 아침 8시 40분. 제주로 가는 비행기.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그 비행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정비소에 있을 것이다. 수백 명을 실을 준비를 하면서. 그리고 그 비행기는 세아를 실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세아를 태우고.
강리우를 태우고.
그리고 그들의 모든 비밀을 태우고.
“내일 아침에 제주 가.”
마침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작은 목소리는 타투 가게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 3부: 파국의 시작
하늘의 얼굴이 변했다.
색이 빠져나갔다. 마치 누군가가 하늘의 얼굴에서 생명을 빨아내는 것처럼.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 눈에는 자신이 예상했던 최악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누구하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분리되어 나왔다. 마치 질문이 아니라, 고발인 것처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봤다.
그곳에 강리우의 차가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 차. 그리고 그 차 안의 사람. 운전대를 잡은 두 손. 그 위로 드리운 얼굴. 세아를 기다리고 있는 얼굴.
답은 이미 창밖에 있었다.
하늘이 그것을 봤다. 세아가 본 그곳을 따라가며, 하늘도 창밖을 봤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했다.
타투 가게의 불이 하얀색으로 깜박였다. 마치 신호인 것처럼. 무언가가 끝났다는, 그런 신호인 것처럼.
세아의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아닌 다른 곳도 아팠다. 온몸이 아팠다. 마치 자신이 산채로 찢어지는 것처럼.
그리고 내일 아침의 비행기는 여전히 준비 중이었다.
세아를 태우기 위해.
강리우를 태우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모든 것을 하늘 위로 옮겨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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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