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46화: 침묵이 음악이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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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6화: 침묵이 음악이 되기 전에

형광등이 꺼졌다.

세아는 그것을 먼저 들었다. 윙윙거리던 음성이 갑자기 끝났다. 그 다음에 봤다. 편의점 전체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새벽 2시 45분. 정전이었다. 서울의 밤이 잠깐 숨을 쉬는 것 같은 시간. 세아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창밖의 거리등이 가장 가까운 불빛이었다. 그것도 멀었다.

강리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계산대에 기대어 선 채로. 마치 어둠 속에서도 세아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시각이 사라진 밤, 감각이 더 예민해졌다. 강리우의 숨소리. 계산대에 기대고 있는 그의 몸의 무게. 그리고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정전이야?”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다르게 들렸다. 더 어렸다. 더 외로웠다.

“아니. 난… 나가야 해.”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도 어둠 속에서 다르게 들렸다. 더 솔직했다. 더 부서졌다. “새벽이니까. 더 이상 있으면 안 돼. 너도 일해야 하고.”

세아는 강리우가 계산대에서 몸을 떨어뜨리는 소리를 들었다. 신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소리. 강리우는 편의점 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세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정전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


10분 뒤, 불이 들어왔다.

형광등이 다시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깨어난 동물처럼. 세아는 계산대 뒤에 서 있었다. 혼자였다. 강리우는 가고 없었다. 편의점은 다시 편의점이 되었다. 선반 위의 라면, 냉동실의 아이스크림, 계산대 위의 담배들.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세아는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녀는 계산대 옆에 서 있던 곳을 봤다. 강리우가 서 있던 곳.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타일 바닥과 형광등의 반사만 있었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강리우의 손이 만든 침묵. 그것이 남아있었다.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카카오톡. 하늘이었다.

“야 지금 몇 시야. 잠을 자야지 왜 온라인이야.”

세아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하늘의 말투. 친숙했다. 평범했다. 몇 시간 전의 세계처럼 보였다. 몇 시간 전의 세아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런 세아는 이제 없었다.

세아는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기대어 섰다. 강리우가 기대어 섰던 방식으로. 마치 자신의 몸의 무게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처럼.


새벽 4시, 편의점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들어왔다. 40대 후반, 양복을 입은 채로.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서울의 밤샘 노동자들의 표정. 세아는 그 표정을 이미 몇 년을 봐왔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그러나 이 남자는 다른 종류의 피로를 가지고 있었다. 육체의 피로가 아니라, 영혼의 피로였다.

“컵라면, 큰 거.”

남자가 말했다. 세아는 움직였다. 자동으로. 몸이 기억하는 동작. 얼마나 많은 밤을 이렇게 했는지. 컵라면을 꺼내고, 뜨거운 물을 붓고, 뚜껑을 닫고, 봉지를 건네기. 모든 것이 음악처럼 흘렀다. 리듬이 있는 행동. 생각이 필요 없는 행동.

“아, 숟가락도.”

남자가 추가로 말했다. 세아는 숟가락을 봉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을 봤다. 그의 눈이 계산대 뒤의 담배 진열대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어디 다른 곳을 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고 있을 것이다.

“5천 원입니다.”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들렸다. 그렇게 되도록 훈련받았으니까. 남자는 5천 원을 건넸다. 동전 하나. 세아는 거스름돈을 계산했다. 0원. 정확히 맞아떨어진 거래.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거래.

남자가 컵라면을 들었다. 그리고 떠나갔다. 세아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 편의점 문이 닫혔다. 형광등이 다시 혼자였다. 세아도 혼자였다. 세아는 항상 혼자였다. 지난 몇 시간이 환상이었나 싶을 정도로.


새벽 6시,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였다. 발신인: 강리우. 세아는 그것을 봤다. 화면에 떠있는 이름. 그리고 그 이름 옆의 거부 버튼. 또는 수락 버튼.

세아는 수락했다.

“네.”

“지금 뭐 해?”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피곤했다. 밤샘을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것은 신체적 피로가 아니라 정신적 피로의 목소리였다.

“편의점.”

세아가 대답했다.

“혼자?”

강리우가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강리우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 너머로는 그의 숨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배경음. 자동차 엔진음. 강리우는 운전하고 있었다.

“지금 어디 가?”

세아가 물었다.

“회사. 아버지를 만나야 해. 너에 대해 얘기할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의 몸이 경직됐다. 강민준. JYA의 대표. 강리우의 아버지. 세아는 그 남자를 한 번 만났다. 인천 스튜디오에서. 그의 눈은 매우 추웠다. 마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평가하는 것처럼.

“뭘 얘기할 건데?”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직 몰라. 정해지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 운전하면서 생각하고 있는 거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너를 지킬 수 있는지. 어떻게 너를 내 아버지로부터 구할 수 있는지.”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았다. 강리우는 자신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강리우는 세아가 그의 친구처럼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그런데 강리우 자신도 이미 무너진 상태이고, 무너진 손으로는 아무도 구할 수 없다.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응?”

강리우가 대답했다.

“넌 나를 구할 수 없어. 왜냐하면 넌 자신을 구하지 못했으니까.”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은 가장 정직한 말이었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말이었다.

전화 너머로는 침묵만 들렸다. 강리우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동차가 속도를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강리우는 계속 운전하고 있었다. 어디로인지 모르는 곳으로.

“맞아.”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서 나오려고 했던 거야. 너의 음악에서. 너의 목소리에서. 나는 내 친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너를 통해서 내 친구를 다시 살리고 싶은 거야.”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강리우는 세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아의 음악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세아의 음악을 통해 자신의 친구를 되살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럼 넌 왜 날 만났어?”

세아가 물었다.

“왜냐하면… 넌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강리우가 대답했다.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계산대에 앉았다. 편의점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새벽 6시. 아직 한 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세아는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강리우와의 대화 기록을 봤다. 없었다. 카카오톡에는 그와의 메시지가 없었다. 전화만 있었다. 전화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그런데 일어났다. 모든 것이 일어났다.

세아는 자신의 곡 목록을 열었다. 그것도 없었다. 그녀가 쓴 곡들은 모두 JYA의 서버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녀의 휴대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그것들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세아는 파크 소진의 SNS를 열었다. 최근 게시물: 새로운 음악 비디오. 조회수 2백만. 댓글 수천 개. 모두가 파크 소진의 음악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 음악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세아는 비디오를 눌렀다.

파크 소진이 나타났다. 스튜디오에서. 마이크 앞에서. 세아의 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파크 소진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진짜로. 세아의 곡을 그 목소리에 담으니 더욱 아름다웠다.

세아는 비디오를 껐다.

그리고 계산대에 머리를 묻었다. 손가락이 흰색으로 변할 때까지 주먹을 쥐었다. 강리우의 손처럼. 떨리는 손처럼.


새벽 7시, 세아의 휴대폰이 또 울렸다.

이번엔 하늘이었다. 카카오톡.

“야 문제가 생겼어.”

“파크 소진 신곡 나왔어.”

“근데 그 곡 가사에 너 이름이 떴어.”

“작곡: 나세아.”

“야 일어나.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세아는 그 메시지들을 읽었다. 손이 떨렸다. 아니, 손이 떨린 것이 아니라 전신이 떨렸다. 마치 자신이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세아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파크 소진의 신곡 비디오를 다시 열었다. 자세히 봤다. 자막. 가사. 그리고 맨 아래 크레딧.

‘작곡: 나세아’

그곳에 있었다. 세아의 이름. 그것이 가능할까. 강리우가 이미 무언가를 했을까.

세아는 강리우에게 전화했다.

“뭐 했어?”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이었다.

“아버지와 얘기했어. 그리고… 아버지가 동의했어.”

강리우가 대답했다.

“뭐에?”

세아가 물었다.

“너를 계약금 1억으로 새로운 계약으로 옮기기로. 그 대신 너는 공식적으로 내 프로듀서 아래에서 일하고, 너의 곡은 모두 너의 이름으로 올라갈 거야. 그리고 파크 소진의 기존 곡들도 다시 크레딧을 수정할 거고.”

강리우가 설명했다.

세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대신…”

강리우가 계속했다. “넌 이제 내것이 되는 거야. 공식적으로. 계약상으로. 그리고 내가 너를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르게 될 거고.”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것이 희생이라는 것을. 이것이 거래라는 것을. 이것이 음악 산업이라는 것을.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감사하지 마. 난 너를 구한 게 아니니까. 난 그냥 너를 더 깊은 구멍으로 옮긴 거야. 근데 이 구멍에서는 최소한 너의 목소리가 들릴 거야. 어떤 형태로든.”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형광등의 윙윙거림을 들었다. 편의점의 형광등. 새벽 7시. 아직 30분이 남아 있었다.

세아는 계산대에 앉아서, 파크 소진의 비디오를 다시 봤다. 그리고 자막을 봤다.

‘작곡: 나세아’

그곳에 있었다. 세아의 이름.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전부인 세상에서.


오전 7시 30분, 하늘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그녀는 세아를 봤다. 계산대 뒤에 앉아 있는 세아. 피곤한 얼굴. 밤새 일한 얼굴. 그런데 그 얼굴에는 뭔가가 달라져 있었다.

“야 뭐가 됐어? 왜 웃고 있어?”

하늘이 물었다.

세아는 웃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는 뭔가가 있었다. 깨달음인가, 절망인가, 아니면 그 둘의 혼합인가.

“아무것도 아니야.”

세아가 대답했다.

“뭐 이 상황 설명 안 할 거야? 파크 소진이 너 곡을 불렀고, 너 이름이 올라왔고, 강리우라는 남자가 뭔가 했다는 게 느껴지는데?”

하늘이 물었다. 하늘은 항상 잘 알아챘다.

“내가… 팔린 거 같아.”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팔렸다고?”

하늘이 반복했다.

“응. 근데 이번엔 더 비싼 값에.”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세아는 마침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었다. 절망의 음성이 웃음의 형태를 한 것이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정직했으니까.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현재 스토리 위치 (2권 진행도)

– 2권 21/25화 완료 (84%)

– 권별 플롯: 하강 → 클라이맥스 여파 처리 중

– 다음 4화(47-50): 새 계약의 현실화, 강민준과의 직접 대면, 세아의 선택지 확장, 파크 소진과의 첫 만남

캐릭터 상태 업데이트

세아: 이제 공식적으로 강리우의 “아래”에 있음. 목소리는 크레딧되었으나 신체/정신은 더욱 속박됨.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웃음 배우는 중.

강리우: 아버지와 협상 성공. 그러나 세아를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를 다시 만들려는 욕망을 세아에게 투사 중. 양심과 통제욕 간의 갈등 심화.

하늘: 세아의 상황 변화 인식. 다음 권에서 강리우에 대한 의심/비난 고조 예상.

복선 상태

– ✓ 강리우의 베를린 트라우마 → 세아의 음악으로 치유 시도 (불가능함을 암시)

– ✓ 파크 소진의 정체 → 다음 권에서 직접 만남 예정

– ⏳ 강민준의 진정한 의도 → 아직 불명확. 세아 이용/통제 가능성 높음

– ⏳ 세아의 “포기된 꿈” →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회수 시작할 시점

# 그것이 전부였다

## 1부: 아침의 형광등 아래서

오전 7시 30분이었다.

편의점의 형광등이 윙윙거리는 소리는 마치 죽어가는 벌레의 울음 같았다. 하늘이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심장도 함께 떨린다고 느꼈다. 계절은 초여름이었지만, 편의점 내부의 온도는 겨울처럼 차가웠다. 냉동식품 코너에서 나오는 찬바람이 매서웠고, 그 찬바람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곳이 얼마나 살아있지 않은 공간인지를 상기시켜주는 신호였다.

하늘이는 문을 밀고 들어왔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띠링’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하루 수백 번 반복되는 소리였다. 띠링. 누군가 들어온다. 띠링. 누군가 나간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전부인 세상에서.

세아를 봤을 때, 하늘이의 심장은 멈춰버렸다.

계산대 뒤에 앉아 있는 세아. 아니, 세아의 육체가 있었다. 밤새 일한 얼굴. 눈 아래의 검은 자국이 마치 타박상처럼 보였다. 피부는 형광등의 차가운 빛을 받아 거의 유령처럼 보였다. 한 손은 턱을 받치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탁자 위에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에는 뭔가가 달라져 있었다.

하늘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웃음? 아니었다. 눈은 죽어있었다. 입은 약간 올라가 있었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실로 입 양 끝을 위로 당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야 뭐가 됐어? 왜 웃고 있어?”

하늘이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높게 나왔다. 놀람과 불안감이 섞인 톤이었다.

세아는 웃고 있지 않았다. 하늘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깨달음인가. 절망인가. 아니면 그 둘의 혼합인가. 하늘이는 그 표정을 이전에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나던 날 밤, 거울 앞에서 지었던 표정. 그것은 인간이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만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세아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뭐 이 상황 설명 안 할 거야?”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항상 잘 알아챘다. 세아가 뭔가를 숨길 때, 그 숨김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파크 소진이가 너 곡을 불렀다고 했어. 너 이름이 올라왔고. 그리고 강리우라는 남자가 뭔가 했다는 게 느껴져. 너 표정을 보면… 뭔가 크게 바뀐 거 같은데?”

하늘이는 자신도 모르게 계산대 앞으로 한 발 더 다가갔다.

“내가…”

세아가 말을 시작했다. 입을 다물었다. 다시 열었다.

“팔린 거 같아.”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그것은 수사나 은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팔렸다고?”

하늘이가 반복했다. 마치 단어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것처럼.

“응. 근데 이번엔 더 비싼 값에.”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의 음성이 웃음의 형태를 한 것이었다. 마치 깨진 악기에서 나오는 음처럼, 그것은 원래 의도된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를 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정직했으니까.

## 2부: 세아의 내면

세아는 밤새 계산대에 앉아 있으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했다.

강리우가 계약서를 들고 왔을 때,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처음 나타났던 그 날부터, 그가 자신에게서 뭔가를 취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의 냄새를 숨길 수 없다. 그것은 피부에 배어나온다. 땀처럼, 향수처럼.

강리우의 욕망은 단순했다. 그것은 금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세아의 목소리 자체를 원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 목소리로 채워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다. 어떤 공백. 어떤 상실.

세아는 밤새 그것을 생각했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8시간 동안. 편의점의 형광등 아래서, 계산대 뒤에 앉아서.

그 시간 동안 고객은 총 47명이 들어왔다. 세아는 모두 세었다. 수를 세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멈추는 데.

첫 번째 고객은 오후 11시 12분에 들어왔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맥주 6개와 치킨 너겟을 샀다. 손가락이 길었고, 손가락의 모양으로 보아 피아니스트인 것 같았다. 아마도 클래식 피아니스트. 손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아는 그 손가락들이 건반을 누르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누르는 건반에서 나오는 소리를 상상해봤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자신의 목소리도 이제 누군가의 손가락에 의해 누를 수 있는 건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두 번째 고객은 오후 11시 47분에 들어왔다. 50대로 보이는 여성. 혼자였다. 밤 중에 혼자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를 샀다. 가장 저렴한 것. 세아는 그 여성의 눈을 봤다. 그 눈은 자신의 눈과 같았다. 포기의 눈.

시간이 지나면서 세아는 자신이 이미 죽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다시 죽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 한 번 죽었다. 꿈을 포기했을 때. 그리고 지금 또 죽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강리우는 세아를 구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자기기만이었다. 세아는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팔려간 것이었다. 더 비싼 값에.

아마도 그것이 세상의 방식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판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영혼을 판다. 그 다음에는… 뭘까.

세아는 모르고 싶었다.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어떤 거대한 생명체의 숨소리 같았다. 이 편의점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이고, 자신은 그 생명체의 내부에 있는 세포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죽을 세포. 언젠가는 떨어져 나갈 세포.

하늘이가 들어왔을 때, 세아는 이미 자신의 웃음까지도 팔아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웃을 수 있었다. 진정한 웃음을 지을 수 없으니까, 가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가짜 웃음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진정한 웃음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가장 정직하게 반영했으니까.

## 3부: 하늘이의 의심

하늘이는 편의점을 나가지 못했다.

그녀는 커피를 샀다. 필요하지 않은 커피. 단지 계산대 앞에 더 오래 있기 위해서였다. 계산 과정 동안 세아의 손가락을 보았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네.”

세아가 거스름돈을 건네면서 말했다. 그 한 단어에서도, 하늘이는 뭔가 깨진 것을 느꼈다.

하늘이는 커피를 들고 편의점 입구 근처에 서 있었다. 자동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강리우. 그 남자는 누구인가.

하늘이는 그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공기에 퍼진 냄새 같은 것이었다. 어떤 무거운, 가라앉는 냄새.

강리우가 했다는 ‘뭔가’는 무엇인가.

파크 소진이라는 유명한 가수가 세아의 곡을 불렀다. 그리고 세아의 이름이 크레딧되었다. 그것은 좋은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세아의 얼굴은 왜 그렇게 죽어있었는가.

하늘이는 커피를 마셨다. 쓸 맛이 혀를 자극했다.

세아가 ‘팔렸다’고 했다.

그 단어는 정확했다. 그것은 은유가 아니었다.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누군가에게 팔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누군가가 세아의 목소리를 구매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전의 거래보다 ‘더 비싼 값’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전의 거래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하늘이는 갑자기 추워졌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 4부: 강리우의 자기기만

강리우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의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버지는 세아에 대한 계약서에 사인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세아의 목소리는 공식적으로 레이블 소속이 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업에 사용될 수 있다. 당연히 보상금도 책정되었다. 충분한 보상금.

세아는 이제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편의점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자신의 곡을 만들 수 있다. 자신의 음악을 할 수 있다.

강리우는 자신이 세아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깊은 밤, 침묵 속에서,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아를 구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친구를 다시 만들려는 욕망을 세아에게 투사했을 뿐이었다.

강리우는 베를린에서 온 지 얼마나 되었는가. 3년. 3년 동안 그는 자신의 친구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 친구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친구의 목소리는 기억났다. 깊고 따뜻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자신을 위해 부르던 자장가.

세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강리우는 그 자장가를 다시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기기만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친구가 아니었다. 세아는 세아였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약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강리우는 세아를 계약했다.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세아를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심이 깨물었다. 그것은 부드러운 깨물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뼈를 드러낼 때까지 깨무는 것 같았다.

강리우는 자신이 강민준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다를 뿐이었다. 강민준은 명백하게 세아를 이용했다. 강리우는 자신의 상처를 이용했다.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더 나쁜 것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교묘했으니까. 자신의 구원욕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순수한 자기중심성.

## 5부: 파크 소진의 손

파크 소진은 음악 스튜디오에서 세아의 곡을 다시 들었다.

“이 목소리… 정말 특별해.”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팀은 이미 세아의 곡 세 개를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분배하기로 결정했다. 각각 다른 색감의 곡들. 하지만 모두 같은 목소리였다. 세아의 목소리.

파크 소진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세아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단순한 보컬 제공자가 아니라, 실제 인간으로서 누구인지.

그녀는 강리우에게 연락했다.

“세아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강리우는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그가 세아를 구했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세아가 더 이상 숨어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아는 이제 음악으로 대중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로.

하지만 그 대면은 세아에게 해가 될 수도 있었다. 파크 소진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음악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그 유명함 아래에는 뭔가 차가운 것이 있었다. 계산적인 것.

강리우는 자신이 세아를 또 다시 위험에 빠뜨리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세아의 목소리는 이미 공개되었고, 이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 강리우의 손이 아니라, 더 큰 손. 산업의 손. 자본의 손.

## 6부: 하늘이의 결심

하늘이는 그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세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웃음. 그 거짓된 웃음.

하늘이는 강리우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이 강리우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세아에게 무엇을 했는지. 그가 세아를 구했는지, 아니면 팔았는지.

하지만 강리우가 누구인지 하늘이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유령처럼 세아의 삶 속에 나타났고, 이제 세아의 현실을 바꿔놨다.

하늘이는 세아의 친구였다. 진정한 친구. 그렇기 때문에, 세아가 팔려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 7부: 형광등의 윙윙거림

형광등은 여전히 윙윙거리고 있었다.

편의점은 여전히 존재했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그것이 편의점의 삶이었다.

세아는 그 밤 계산대에 앉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방에서 음악을 들었다. 파크 소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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