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45화: 침묵의 무게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 아주 천천히. 마치 부서질 것을 다루는 것처럼. 하지만 어머니의 손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해녀의 손이었다. 수십 년을 물 속에서 일해온 손. 염분이 스며든 손. 그 손은 약해 보였지만, 세아가 만질 때 손가락이 움직였다. 의도적인 움직임. 반응. 인정.
“세아.”
어머니가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더 명확하게. 마치 그 이름을 말하는 것 자체가 확인의 행위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세아는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자신이 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오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를 깨달았다. 동시에, 그것이 너무 늦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미 무언가가 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깨짐은 자신이 초래한 것이었다.
도현이가 침대 옆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세아는 자신의 남동생을 봤다. 완전히. 처음으로. 이 밤에. 어머니가 깼을 때. 도현이는 어머니를 간호했을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있든 간에, 도현이는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침대 옆에. 손을 잡고. 어머니를 부르고. 그리고 자신의 누나를 불렀다. 네 번이나. 다섯 번이나. 응답할 때까지.
“도현이.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고마움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도현이는 고개를 끄덕했다. 한 번. 그것이 전부였다. 그 한 번의 끄덕임에는 수십 개의 문장이 들어 있었다. 세아는 자신의 형제의 얼굴을 봤을 때, 그것들을 읽을 수 있었다. 모두를.
“엄마, 물이 필요해?”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를 봤다. 여전히 반쯤 떠 있는 눈. 하지만 이제 그 눈에는 초점이 있었다. 세아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세아를 보고 있었다.
“세아가 여기 있어?”
어머니가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이었다. 확인과 동시에 두려움. 마치 세아가 사라질까봐 두려운 것처럼. 아니, 그것은 다른 두려움이었다. 세아가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 세아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통증이 손가락에 전해졌다. 자신의 손가락이 어머니의 손을 너무 세게 잡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손을 빼지 않았다. 대신, 더 단단히 잡았다. 마치 세아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네, 엄마. 난 여기 있어.”
세아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더 작은 목소리로. 거의 속삭임 수준으로. 하지만 그 속삭임이 어머니에게는 충분했던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이 감겨졌다. 천천히. 하지만 완전히 감겨지지는 않았다. 반쯤 열려 있었다. 마치 세아를 계속 보고 있고 싶어서.
침실의 형광등이 계속 울렁거렸다. 그 빛의 흐름에 따라, 세아와 어머니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춤을 췄다. 분리된 그림자. 하지만 손이 닿는 지점에서는 하나로 겹쳤다. 한 개의 그림자. 한 개의 실루엣.
도현이가 일어섰다. 천천히. 마치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처럼.
“난 물 좀 가져올게. 엄마.”
도현이가 말했다. 세아를 보지 않고. 그것이 더 아팠다. 자신의 형제가 자신을 보지 않는 것. 세아는 도현이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봤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고. 형광등 아래로.
그러면 세아와 어머니가 남았다. 그리고 그 침묵. 침묵이 방을 채웠다. 그것은 편안한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게 있는 침묵이었다. 말해져야 할 것들이 말해지지 않았을 때의 침묵. 해명되어야 할 것들이 해명되지 않았을 때의 침묵.
“너는 리우를 만났어?”
어머니가 갑자기 말했다. 그 질문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머니는 깨어난 지 30분도 채 안 되었다. 도현이가 무엇을 말했을까? 아니면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까? 이미. 항상.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그 대신 말했다. 침묵이 대답이었다.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 명확해졌다. 마치 깨어남에 따라 기억이 되돌아오는 것처럼. 어머니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경고. 그 말. “그 사람 만나지 마. 알겠어?”
세아의 침묵은 깊어졌다.
“그 사람이 우리한테 뭘 가져오는지 몰라?”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노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있었다. 깊은 공포. 마치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은 타고난 거야. 자기를 버렸던 사람들을 찾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삶을 부숴버리는 것. 의도하지 않았어도.”
세아는 어머니를 봤다. 반쯤 감긴 눈. 그 눈 안에 있는 두려움. 그것은 어디서 나온 두려움일까? 경험에서? 기억에서?
“엄마, 리우는 우리 형이잖아.”
세아가 말했다. 첫 번째로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냈다. 형. 오빠. 그 단어. 그것이 현실을 만드는 것처럼.
“형?”
어머니의 목소리에 무언가 깨진 것처럼 들렸다.
“넌 그를 형이라고 불렀어?”
세아는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의 눈이 완전히 떠졌다. 깨어남의 혼탁함이 사라지고, 명확한 인식으로 바뀌었다. 그 인식 안에는 무언가 절망 같은 것이 있었다.
“네. 그가 리우예요.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잖아.”
세아가 말했다. 간단하게. 명확하게. 마치 그것이 가장 단순한 진실이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 사람 이름을 내 앞에서 부르지 마.”
어머니가 말했다. 그 명령은 약했다. 신체의 약함이 목소리에 전달된 약함. 하지만 그 약함 속에는 절대성이 있었다. 물고기할 수 없는 명령.
“엄마, 리우가 자살하려고 했어. 한강에서. 내가…”
세아가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이 세아의 손을 놓았다. 갑자기. 마치 그것이 뜨거운 불이었던 것처럼.
세아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버려진 손. 거부된 손. 어머니의 손은 침대 위로 돌아갔다. 다시 그 위치로. 움직이지 않는 위치로.
“내일 아침에 의사를 부르고 싶어.”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를 보지 않고. 천장을 보면서.
“퇴원 절차를 밟고 싶어. 됐어, 나 나가고 싶어.”
세아는 어머니를 봤다. 완전히. 어머니는 자신을 보지 않았다. 그것이 더 상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보지 않는 것. 자신이 아버지의 다른 아들을 보호했다는 것 때문에.
“엄마…”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더 무거운 침묵. 거부의 침묵. 단절의 침묵.
세아는 병실을 떠났다. 천천히. 문을 닫으면서. 어머니는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던 것처럼. 또는 그곳에서 무언가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복도에서 세아는 벽에 등을 기댔다. 형광등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빛은 따뜻하지 않았다. 그것은 병원의 빛이었다. 죽음과 깨어남의 경계에서 비추는 빛.
세아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통제할 수 없는 떨림. 강리우의 손처럼. 아버지의 손처럼. 가족의 저주처럼.
도현이가 물 컵을 들고 돌아왔다. 세아를 본 것 같았다. 벽에 기댄 자신을 봤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현이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병실로 들어갔다. 물 컵을 들고.
세아는 혼자 남겨졌다. 복도의 형광등 아래서. 자신의 떨리는 손을 보면서.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를 모르면서.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는지를 모르면서.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 화면이 밝혀졌다. 강리우였다. 메시지. 글자. 세아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그저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봤다. 그리고 다시 밝혀졌다. 또 다른 메시지. 또 다른 울음. 또 다른 것을 버리는 행위.
세아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어머니를 거부당했을 때? 자신의 형제가 자신을 보지 않을 때?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손을 놓았을 때?
병실에서 도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에게 물을 주려고 하는 목소리. “여기, 엄마. 천천히 마셔. 괜찮아.” 그 목소리에는 나이가 없었다. 그것은 어른의 목소리였다. 어린 나이의 어른. 세아의 남동생이 자신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버렸다.
강리우의 메시지가 계속 왔다. 세아는 읽지 않았다. 단지 진동만 느꼈다. 자신의 손가락에서. 떨리는 손가락에서.
세아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완전히. 화면이 검어졌다.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검은 화면에는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형광등의 반사로. 자신의 얼굴. 자신도 모르는 얼굴. 아무것도 타지 않는 얼굴. 단지 타버린 얼굴.
세아는 그 자리에 앉았다. 바닥에. 복도의 바닥에. 병원의 밤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어머니는 깨어있었다. 도현이는 옆에 있었다. 강리우는 어딘가에서 자신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 모든 것의 중간에 앉아 있었다. 어디도 아닌 곳에. 누구도 아닌 존재로.
침묵이 돌아왔다. 진짜 침묵. 아무도 부르지 않는 침묵.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침묵. 그리고 세아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완전히 혼자인지를 깨달았다. 이 병원 복도에서. 이 밤에. 이 순간에.
형광등이 울렁거렸다. 여전히. 그리고 세아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춤을 췄다. 혼자서. 누구와도 겹치지 않으면서. 분리된 그림자. 영원히 분리된 그림자. 그것이 세아의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 아마도 가장 오래 기다려온 깨어남이었을 것이다.
세아는 일어섰다. 천천히. 그리고 다시 병실 문 앞에 섰다. 손이 문고리를 집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서 있었다. 문과 자신 사이의 경계에서. 안과 밖의 사이에서. 속하는 것과 버려진 것의 사이에서.
도현이가 문을 열었다. 세아를 보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그냥 닫았다. 문을 . 그리고 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목소리. “세아가 여기 있어?” 도현이의 대답. “네, 엄마. 여기 있어요.”
하지만 세아는 거기 없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세아는 문 밖에 있었다. 형광등 아래에. 혼자. 그리고 자신이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침묵의 진정한 무게였다. 말할 수 없다는 것.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남을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는 것. 그 경계에서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는 것.
세아는 핸드폰을 다시 켰다. 강리우의 메시지들이 화면을 채웠다. 읽지 않은 메시지들. 몇십 개의 글자. 몇십 개의 호출.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 “사실 내가 너한테 물어봐야 할 게 있어. 너는 왜 내 손을 잡아줬어? 그 밤에. 한강에서. 왜 내가 떨어지지 않게 해줬어?”
세아는 그 메시지를 봤다. 읽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왜 그 손을 잡아줬을까? 자신의 어머니를 버리고? 자신의 형제를 버리고?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병원의 복도를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아래로. 병원의 1층으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밤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서울의 밤. 한강을 지나는 밤. 그리고 세아는 그 밤 속으로 걸어갔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아무도 그녀를 부르지 않는 곳으로. 형광등이 없는 곳으로.
[제245화 끝]
글자 수: 15,847자
# 제245화: 타버린 얼굴
## 1부: 침묵의 무게
형광등이 울렁거렸다. 병원 복도의 형광등은 언제나 그랬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밝았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세아는 그 리듬에 맞춰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밝음. 어둠. 밝음. 어둠. 그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세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도 중요하지 않았다.
세아는 그 자리에 앉았다. 병원 복도의 바닥에. 찬 타일이 그녀의 다리 아래에서 자신의 온도를 빨아들였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마지막 열기를 가져가는 것 같았다. 세아는 그것을 허용했다. 저항할 이유가 없었다.
*타지 않는 얼굴. 단지 타버린 얼굴.*
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관통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말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생각이었을까? 이제 그 차이도 구별되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와 남의 목소리. 자신의 생각과 남의 생각. 모든 경계가 녹아내렸다.
병원의 밤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하늘은 아직 검었고, 시계는 여전히 시간을 세고 있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잔혹한 진실이었다. 당신이 무너져도, 울어도, 죽어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세아는 복도의 다른 한쪽을 봤다. 3층 중환자실. 어머니가 있는 곳. 그 병실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깨어있었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세아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밤을 새웠다. 세아를 기다리면서. 세아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었다.
도현이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어머니 옆에. 항상 그랬듯이. 도현이는 좋은 아들이었다. 착한 아들이었다. 세아와 달리. 세아는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했다. 그 아픔이 물리적인 통증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강리우는? 강리우는 어딘가에서 자신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전화를 걸고 있었을 것이다. 강리우는 항상 그랬다. 세아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왜?”
세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 질문을 입으로 꺼냈다.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왜 자꾸만…”
말을 마치지 않았다. 왜 자꾸만 무엇이었을까? 왜 자꾸만 나를 필요로 할까? 왜 자꾸만 나를 부를까? 왜 자꾸만 나를 원할까?
세아는 그녀의 손을 봤다. 강리우의 손을 잡아줬던 그 손. 한강 다리 위에서. 그 밤에. 추운 밤에. 강리우가 떨어져 나가려고 했을 때. 세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손을 잡았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혔다. 온기와 온기가 만났다. 그리고 세아는…
*내가 왜 그랬을까?*
침묵이 돌아왔다. 진짜 침묵. 아무도 부르지 않는 침묵.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침묵. 세아의 귀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생각보다 약했다. 생각보다 불규칙했다. 마치 자신의 심장도 자신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형광등이 다시 울렁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신음 같았다. 고통스러운 신음. 기계의 신음이지만,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세아는 그 소리에 집중했다. 그것이 자신의 울음과 겹쳐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자신의 울음이 기계의 울음인 줄 알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기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계는 감정이 없다. 기계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 기계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세아는 그것을 원했다. 기계가 되는 것을. 하지만 자신의 몸은 여전히 뜨거웠다.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전히 인간이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 2부: 경계에 서서
세아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춤을 췄다. 형광등의 불규칙한 빛 때문에. 그 그림자는 혼자였다. 누구와도 겹치지 않았다. 분리된 그림자. 영원히 분리된 그림자. 그것이 세아의 진실이었다.
세아는 천천히 일어섰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것은 마치 물 속에서 헤엄쳐 나오는 것 같았다. 저항이 있었다. 압력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서 있었다. 다시 직립한 인간의 형태로.
그리고 다시 병실 문 앞에 섰다.
3층 507호. 어머니의 병실. 세아는 그 번호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507호. 507호. 507호. 번호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세아는 점점 환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손이 문고리를 집었다. 차갑고 딱딱한 금속. 그것은 진짜였다. 적어도 그것은 진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서 있었다. 손잡이를 쥔 채로. 문과 자신 사이의 경계에서. 안과 밖의 사이에서. 속하는 것과 버려진 것의 사이에서.
“세아?”
도현이가 문을 열었다. 갑작스럽게. 마치 세아를 잡으려고 하듯이.
세아를 보고, 도현이의 얼굴이 무언가로 구부러졌다. 불안감이었을까? 걱정이었을까? 분노였을까? 세아는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자신은 이제 남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도현이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닫았다. 문을. 천천히. 마치 세아를 밀어내듯이.
그리고 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가 여기 있어?”
작은 목소리. 약한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절박함은 거대했다. 세아는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가슴이 쪼개지는 것을 느꼈다.
도현이의 대답이 들렸다.
“네, 엄마. 여기 있어요.”
거짓이었다. 둘 다 알고 있었다. 세아는 거기 없었다. 세아는 문 밖에 있었다. 형광등 아래에. 혼자. 그리고 자신이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세아는 정확히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은 망령이 된 것이다. 죽지 않은 망령.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존재. 이 병원 복도에서. 이 밤에. 이 순간에. 자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어머니.”
세아는 문에 손을 대고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아무도 그것을 듣지 못했다. 문이 그 말들을 삼켜버렸다. 병원의 벽이 그 말들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맞았다. 그 말들은 어차피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세아는 문에서 손을 떼었다. 천천히. 마치 어머니의 손을 놓는 것처럼.
## 3부: 읽지 않은 메시지들
세아는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병실들을 지나가면서. 각 병실에서는 누군가의 고통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신음 소리. 기계음. 간호사의 발소리. 그 모든 것이 겹쳐져서 이상한 교향곡을 만들었다.
벤치가 있었다. 복도의 중간쯤에. 세아는 거기 앉았다. 누구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을 자리에.
그녀의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무거웠다. 마치 돌덩이처럼. 세아는 천천히 꺼냈다.
화면이 켜졌을 때, 메시지들이 폭주했다. 읽지 않은 메시지들. 몇십 개. 아니, 백 개가 넘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같은 사람으로부터.
**강리우.**
“세아, 어디야?”
“세아, 전화 받아.”
“제발, 나한테 연락해.”
“너 괜찮아? 뭐 문제 있는 거야?”
“세아. 진심이야. 나 진짜 걱정돼.”
“너 혹시… 혹시 나한테서 떨어나고 싶은 거야?”
“아니지. 그럴 리가.”
“세아, 제발.”
메시지는 계속되었다. 몇 시간에 걸쳐. 밤 9시부터. 밤 11시까지.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는 방금 몇 분 전이었다.
**“사실 내가 너한테 물어봐야 할 게 있어. 너는 왜 내 손을 잡아줬어? 그 밤에. 한강에서. 왜 내가 떨어지지 않게 해줬어?”**
세아는 그 메시지를 봤다. 읽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밤이 떠올랐다.*
한강 다리 위. 밤 12시가 넘었을 때. 강리우가 난간에 앉아 있었다. 발이 공중에. 몸이 한강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보고 뭔가 깨졌다. 자신 안의 뭔가가.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강리우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혔다. 온기와 온기가 만났다. 강리우는 울었다. 세아도 울었다. 하지만 세아는 왜 울었는지 몰랐다.
*왜? 왜 그 손을 잡아줬을까?*
세아는 자신의 어머니를 버렸다.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는데. 세아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강리우를 찾아갔다. 강리우를 살렸다. 어머니를 버리고 강리우를 살렸다.
그것이 죄였다. 가장 큰 죄였다.
세아는 핸드폰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답장을 쓸 생각으로. 하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미안합니다. 그냥 그랬어요.”*
그것만 사실이었다.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단지 그 손을 잡았고, 단지 그를 살렸고, 단지 자신의 어머니를 버렸다.
세아는 메시지를 지웠다. 답장 없이.
## 4부: 내려감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것은 벤치 옆에 떨어졌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세아는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복도를 걸어가면서, 세아는 벽에 붙어있는 안내판들을 봤다.
3층: 중환자실
2층: 일반 병실, 응급실
1층: 로비, 약국, 카페
세아는 그 화살표를 따라갔다. 아래로. 점점 아래로.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을 때,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 공간. 거울로 된 벽. 세아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울 속의 세아는 누구였을까?
얼굴은 창백했다. 눈은 텅 비어있었다. 입술은 파랗게 질려있었다. 마치 죽음 직전의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이미 죽어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타지 않는 얼굴. 단지 타버린 얼굴.*
그 문구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더 명확하게.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귀 속에 대고 소리치는 것처럼. 세아의 얼굴은 타버렸다. 불에 타버렸듯이. 더 이상 원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1층으로.
문이 열렸을 때, 병원 로비가 나타났다. 형광등. 또 다른 형광등. 하지만 이것들은 3층의 형광등과는 달랐다. 더 밝았다. 더 정상적이었다. 더 살아있었다.
세아는 로비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정문을 향해.
“아가씨, 혹시 괜찮으세요?”
간호사가 세아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도 세아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밤 11시 반에 혼자 병원을 떠나가는 젊은 여자. 그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세아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계속 걸어갔다. 간호사의 목소리도 등 뒤로 남겨두면서.
정문의 자동 문이 열렸다. 밤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찬 공기. 서울의 밤 공기.
## 5부: 밤으로의 출발
밤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서울의 밤. 불빛이 반짝이는 밤. 하지만 병원 앞 거리에서는 모든 것이 조용했다. 밤 11시 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집에 있었다. 또는 집으로 가고 있었다.
세아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집? 아니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5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병원에 있었고, 도현이도 병원에 있었다. 그리고 강리우는… 강리우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세아는 한강 쪽으로 걸어갔다. 택시를 타지 않았다. 버스도 타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밤거리를 걸으면서, 세아는 자신의 발이 실제로 땅을 밟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떠다니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공중에 떠있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너 정신 차려.”
누군가가 세아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그곳에 없었다. 그것은 세아 자신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내면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
“너 미쳤어. 정신 차려. 어머니한테 돌아가.”
하지만 세아는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처럼. 한강을 향해. 밤을 향해. 어둠을 향해.
한강 다리가 보였다. 그 위에는 불빛들이 반짝였다. 야경. 아름다운 야경. 하지만 세아의 눈에는 그것이 죽음처럼 보였다. 죽음의 아름다움.
세아는 다리 위로 걸어올라갔다.
*그 밤처럼.*
강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