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34화: 동의라는 이름의 배신
어머니의 말이 공중에 떠 있었다. “나는 동의했어.” 그 문장은 완성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완성된 문장이었다. 마치 마침표가 아니라 칼처럼 공기를 가르는 것 같았다. 세아는 그 말을 받아내지 못했다. 자신의 뇌가 거부했다. 이해를 거부했다. 수용을 거부했다.
병실은 여전히 침묵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 그 침묵은 다른 종류였다. 이전의 침묵들은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한 침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침묵은 말해진 것들의 무게로 인한 침묵이었다. 마치 누군가 폭탄을 던지고 난 후의 침묵처럼. 폭발 그 자체는 이미 일어났고, 이제 남은 것은 파편들이 어디로 떨어질지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강리우가 창가에서 한 발 물러났다. 그 움직임은 조용했지만, 세아는 그것을 들었다. 신발이 바닥을 누르는 소리. 그것은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또는 자신을 멀리하려는 것처럼. 마치 어머니의 말이 전염병이고, 자신이 그것의 전염 반경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도현이는 여전히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굳어 있었다. 돌처럼. 또는 조각상처럼. 세아는 자신의 남동생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도현이는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그 눈의 표정은 세아가 본 적 없는 종류였다. 그것은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었다.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불가역적인 깨달음. 자신의 모든 것이 변했다는 깨달음.
세아가 어머니를 봤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 몸. 파이프와 모니터에 연결된 그 신체. 그것은 세아의 어머니였지만, 동시에 낯선 누군가였다. 낯선 여자가 세아의 어머니의 몸을 빌려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낯선 여자가 방금 세아에게 말한 것은, 자신이 자신의 오빠를 버렸다는 것이었다.
“왜?”
세아가 물었다. 그 단어는 아주 작았다. 마치 자신의 목에서 나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나왔다. 세아의 입을 통해.
어머니의 눈이 세아를 찾았다. 그 눈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후회, 죄책감,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것. 자기기만의 가장자리.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절망적인 시도의 가장자리.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어머니의 눈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어머니는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버리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살아가는 사람.
“강민준이가…”
어머니가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호흡이 얕아졌다. 마치 자신이 계속 말하면 자신의 심장이 멈출 것 같은 느낌으로. 심전도 모니터가 비프음을 내기 시작했다. 더 빠르게. 세아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경고음이었다. 생리적 경고음. 어머니의 몸이 이 진실을 견딜 수 없다는 경고음.
세아가 침대의 버튼을 눌렀다. 자신도 모르게. 반사 행동처럼. 간호사를 부르는 버튼. 어머니를 돕기 위해. 하지만 세아는 정확히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 몰랐다. 어머니의 신체를 돕는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의 죄책감을 돕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분노를 견딜 수 있도록 어머니를 돕는 것인가?
간호사가 들어왔다. 빠르게. 전문적으로. 그녀는 어머니의 손목을 잡았다. 맥박을 체크하듯이. 그리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힘들어요? 숨을 천천히 쉬세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세요.”
어머니가 따라 했다. 그 호흡은 점점 더 정상으로 돌아왔다. 심전도의 비프음도 느려졌다. 마치 어머니의 신체가 자신의 죄책감을 다시 감추려고 하는 것처럼. 또는 그 죄책감을 견딜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간호사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약을 더 드릴까요?”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약하게. 마치 자신이 약물로 인해 마취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아마도 자신이 지금 느껴야 할 것들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고통을, 그 죄책감을. 마치 그것이 자신에게 빚진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간호사가 나갔다. 세아는 그 움직임을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은 어머니를 봤다. 그리고 어머니는 세아를 봤다. 그들의 눈이 만났다. 거울처럼. 어머니의 눈 안에서, 세아는 자신의 미래를 봤다. 또는 자신의 현재를. 또는 자신이 이미 살고 있는 삶을.
“강리우는…”
어머니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천천히. 더 조심스럽게. 마치 매 단어가 자신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자신이 조금씩 죽는 것처럼.
“입양을 가서, 강민준이의 법적인 아들이 됐어. 그는 강민준이의 성을 받았어. 그리고 서울로 갔어. 강민준이의 회사와 함께. 나는 제주도에 남았어. 그리고 1년 후에, 강민준이가 또 다른 여자를 데려왔어. 그가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라고. 그리고 그는 나한테 말했어. 넌 이제 필요 없어. 넌 나를 위한 도구였어. 이제 그 도구는 쓸모가 없어.”
세아의 손이 떨렸다. 아주 크게. 마치 자신의 신경계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은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 또는 자신의 손이 자신의 몸을 거부하는 것처럼.
강리우가 창가에서 천천히 돌아섰다. 이제 세아는 그의 전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 얼굴은 마치 누군가 천천히 물에 잠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 먼저. 그다음 코. 그다음 입. 마지막으로 턱. 모두가 물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강리우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익사를 관찰하듯이.
도현이가 침대에서 벗어났다. 천천히. 마치 자신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면, 자신도 함께 무너질 것 같은 느낌으로. 그는 어머니를 보지 않았다. 대신 강리우를 봤다. 그 표정은 세아가 읽을 수 없었다. 동정? 분노? 또는 그 둘의 혼합?
“넌…”
도현이가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를 보면, 자신이 말하는 것들이 너무 비참할 것 같은 느낌으로.
“넌 그 아이를 버렸어? 그냥?”
어머니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눈은 천장을 향했다. 마치 거기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또는 거기에 무언가가 없기를 바라는 것처럼.
세아가 창가에 있는 강리우를 봤다. 그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리듬으로. 마치 그것이 자신의 생물학적 특성인 것처럼. 아버지에 의해 버려진 아들의 떨림. 어머니에 의해 버려진 아들의 떨림. 그리고 세아도 그렇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형을 위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자신의 인생 전체에 대해.
“강민준이가…”
어머니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약하게.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것처럼.
“돈을 줬어. 많은 돈을. 강리우를 위해. 그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는 나한테 약속했어. 그 아이는 절대로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걸 알 수 없을 거라고. 그 아이는 강민준이의 아들이 될 거고, 모든 것을 갖게 될 거라고. 나는 그것을 믿었어.”
세아는 지금 이 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현재인가? 과거인가? 아니면 진행 중인 악몽인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또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처럼. 마치 세아가 과거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근데 그건…”
어머니의 목소리가 완전히 작아졌다. 세아는 귀를 기울여야 했다. 마치 자신이 더 가까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었다.
“거짓이었어. 강민준이는 강리우를 학대했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아이는 자신이 왜 사랑받지 못하는지 이해하려고 애썼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찾으려고 애썼어.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어.”
강리우가 창가의 유리에 손을 대었다. 그 손은 차가웠을 것이다. 유리가 차갑기 때문에. 하지만 그 차가움을 느끼고 싶었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것이 그 차가움인 것처럼.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계속했다.
“강리우는 나를 찾았어. 내가 제주도에 있다는 걸 알아냈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는 와 줬어. 내 아들이. 내가 버린 아들이.”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다시. 이번은 다른 이유였다. 이번에는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무언가 더 복잡한 것 때문이었다. 연민, 분노, 그리고 자신이 그 감정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르는 혼란. 어머니를 향해? 강리우를 향해? 아니면 강민준을 향해? 아니면 자신을 향해?
도현이가 강리우를 봤다. 그리고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그들의 눈이 만났다. 그 눈 안에서, 도현이는 세아에게 물었다. 말없이. 하지만 완전히 명확하게.
넌 이것을 알고 있었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모르고 있었으니까. 자신은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세아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주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 자신의 가족이 얼마나 복잡한지. 자신의 삶이 얼마나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었는지.
“이제…”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이 더 이상의 말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강리우는…”
하지만 어머니는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의 눈이 닫혔다. 마치 자신이 이미 너무 많이 말한 것처럼. 또는 이미 충분히 상처를 입힌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봤다. 어머니가 자신으로부터 눈을 감는 것을. 마치 자신이 받을 수 없는 것들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세아는 병실에 서 있었다. 세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그들은 모두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제주도에 살고 있었다. 강리우는 서울의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도현이는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
세아는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몰랐다. 단지 이 순간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병실이 유일한 현실이고, 나머지는 모두 환상인 것처럼.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그리고 세아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노이즈였다. 하지만 세아는 거기서 박자를 들었다. 일정한, 반복되는 박자. 마치 누군가의 심장박동처럼. 또는 누군가의 울음처럼. 마치 이 병실 전체가 울고 있는 것처럼.
세아의 손이 떨렸다.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그리고 그 떨림 속에서, 세아는 자신의 형을 봤다. 자신의 어머니를 봤다. 그리고 자신을 봤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떨리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같은 아버지 때문에. 같은 어머니 때문에. 같은 인생 때문에.
강리우가 창가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바닥에. 마치 자신의 다리가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봤다. 자신의 형이 무너지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현이가 강리우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마치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모두를 깨울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리고 도현이는 강리우 옆에 앉았다. 말 없이. 단지 옆에만 있었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 것처럼.
세아는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어머니의 옆에. 그 손을 다시 잡지 않았다. 잡을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그 손을 잡으면, 자신도 함께 무너질 것 같은 느낌으로. 대신 세아는 그냥 서 있었다. 마치 경비병처럼. 또는 판사처럼. 또는 증인처럼.
그리고 병실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다른 종류였다. 이것은 끝내기 위한 침묵이 아니었다. 이것은 시작하기 위한 침묵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의 시작. 또는 무언가 오래된 것의 끝. 세아는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세아는 알았다. 자신은 결코 정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떨림은 자신의 유전이었다. 자신의 역사였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간에, 자신은 항상 떨릴 것이었다. 자신의 형처럼.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아버지처럼.
그리고 그 깨달음 속에서, 세아는 불꽃을 봤다. 자신의 내부에서. 아주 작은 불꽃. 거의 꺼져가는 불꽃. 하지만 여전히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천천히. 확실하게. 그리고 세아는 알았다. 그 불꽃은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 받을 수 없는 것들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 제1부: 침묵의 무게
병실의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세아는 그 소리를 몇 시간째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거슬렸지만, 이제는 마치 자신의 맥박처럼 느껴졌다. 일정하고, 반복되고, 피할 수 없는 리듬. 손목의 맥박계가 초록색 빛을 내뿜으며 숫자들을 표시했다. 맥박, 혈압, 산소포화도. 모두 정상 범위였다. 하지만 정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세아는 더 이상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세아는 천천히 눈을 돌렸다. 병실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아니, 실제로는 충분히 넓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 이 공간 안에 있는 네 사람이 뿜어내는 무게 때문에 모든 것이 좁아 보였다.
침대 위에는 어머니가 누워 있었다. 그녀의 호흡은 규칙적이었지만 얕았다. 마치 공기 자체가 그녀에게 짐이 되는 것처럼. 어머니의 얼굴은 창백했다. 제주도의 햇빛을 받으며 그을린 피부가 이제는 반투명해 보였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바라봤다. 이 손은 예전에는 세아를 들어 올렸던 손이었다. 밭을 일구던 손이었다. 꽃을 심던 손이었다. 이제는 베개 위에서 조용히 떨고 있었다.
창가 쪽에서 강리우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정확하게 다려진 셔츠, 고급 시계, 손목에는 명품 팔찌. 서울의 펜트하우스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야경처럼 세련되고, 완벽하고, 그리고 비어 있었다. 세아는 그의 등을 바라봤다. 어깨가 굳어 있었다. 마치 그가 누군가를 밀어내려는 자세로 서 있는 것처럼. 아니면 누군가가 자신을 밀어낼 때를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형,” 세아가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에 놀랐다. 마치 이 침묵이 너무 거대해서, 어떤 말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왔다. 약하지만, 존재했다.
강리우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서 있었다. 몇 초가 지났다. 창밖의 도시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서울의 밤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세아가 어딘가에서 읽었던 구절이었다. 서울은 자고 있지 않다. 항상 깨어 있다. 항상 움직인다. 항상 누군가를 밀어낸다.
“뭐,”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녹음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감정이 없었다. “뭐가 있어?”
세아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형에게 돌아서달라는 것? 어쩌면 괜찮냐고 묻는 것? 어쩌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병실 한구석에서 도현이가 움직였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발치 쪽에. 의료진이 놔둔 불편한 플라스틱 의자에. 세아는 도현이를 자세히 봤다. 그의 얼굴은 어머니와 같은 창백함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종류의 창백함이었다. 어머니의 것은 신체의 창백함이었다면, 도현이의 것은 영혼의 창백함이었다.
“엄마가 깼어?” 도현이가 물었다.
“아니,” 세아가 대답했다. “아직 자고 있어.”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다르게 느껴졌다. 이전의 침묵이 억압적이었다면, 이제의 침묵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깊이, 점점 더 무거워지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이 떨리고 있었다.
## 제2부: 떨림의 유산
손가락이 떨렸다. 미세한 떨림이었지만, 멈출 수 없는 떨림이었다. 마치 자신의 신경계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세아는 다른 손으로 그것을 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손도 떨렸다. 그래서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두 개의 떨림이 서로를 억누르려다가 더 큰 떨림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증상이 아니었다. 세아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에게는 떨림이 있다는 것을. 어머니도 떨렸다. 특히 아침에, 차를 마시려고 할 때. 컵이 자신의 입술에 닿기 전에 이미 차가 흘러내렸다. 형도 떨렸다. 비록 그가 그것을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정장 아래에, 자신감 뒤에. 하지만 세아는 알아챘다. 서명할 때, 펜이 약간 흔들렸다. 도현이? 도현이는 떨림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그냥 떨렸다. 떨림을 인정했다. 떨림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이제 세아도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유전이다,’ 세아가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의 신체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DNA에 새겨진 것이다.’
그녀는 의학 용어들을 알고 있었다. 본태성 진전. Essential tremor. 신경계의 장애. 치료 가능하지만 완치 불가능한 것. 약물로 관리할 수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
“세아.”
그녀가 눈을 들었다. 도현이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너도 알고 있지?” 도현이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진술이었다. “너도 봤지? 형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세아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리우는 여전히 창가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했다. 마치 바람이 부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그것이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형의 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형,” 세아가 다시 말했다. “혼자 있지 말고 내려와. 여기 앉아.”
강리우는 응답하지 않았다. 단지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야경을 바라봤다. 그의 펜트하우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야경이 아니라, 이 병실 창에서 보이는 야경을. 그것은 훨씬 더 작고, 훨씬 더 가깝고,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너는 뭐해?” 강리우가 갑자기 물었다. 여전히 돌아서지 않으면서. “왜 가지 않아?”
세아는 이해하지 못했다. “뭘 가?”
“집으로. 너의 인생으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침묵. 그리고 세아는 알았다. 그것은 형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형이 자신에게 말하고 싶었던 말.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어,” 강리우가 계속했다. “펜트하우스가 있어. 돈이 있어. 고급 자동차가 있어. 하지만 나는 여기에 있어. 왜? 왜냐하면 나는 떠날 수 없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나는 이 사람이기 때문이야. 이 떨림의 소유자. 이 약함의 소유자.”
“형은 약하지 않아,” 도현이가 중얼거렸다.
“아, 잠깐, 너한테서는 들을 자격이 없어,” 강리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내 돌아섰다. 그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은 진홍색이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너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잖아. 넌 그냥 떨려. 그냥 약해 있어. 그냥 포기해. 하지만 나는?”
그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들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를 전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처럼.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정장을 입고, 시계를 찬다. 나는 매일 밤에 펜트하우스에 가서, 와인을 마신다.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나는 내 손을 정지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내 목소리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한다. 나는 성공한 척한다. 성공했다고 거짓말한다. 그리고 매일 밤, 나는 여전히 떨리고 있는 내 손을 본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나는 떨리니까. 우리는 떨리니까.”
세아는 형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강리우의 표면적 성공,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깊은 실패감. 형의 떨림은 단지 신경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 자체의 문제였다.
“형,”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내려와.”
이번에는 강리우가 움직였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다리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움직였다. 창가에서 내려와, 침대 옆에 있는 다른 의자에 앉았다. 그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의 얼굴을. 세아는 형의 얼굴을 바라봤다. 형은 어머니의 얼굴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세아가 형을 봤을 때 본 것과 같은 것이었다. 거울 같은 인식. 같은 운명의 반복.
## 제3부: 침묵의 색깔
형광등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초록색 빛이 병실을 밝혔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료 기관의 빛이었다. 치유의 빛이라고 불렸지만, 세아는 그것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빛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창백함 뒤에, 자신의 무능함 뒤에.
“엄마는 어제 뭐 했어?” 도현이가 갑자기 물었다.
“뭐를 했을 것 같은데?” 강리우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거칠었다.
“그냥… 뭔가. 말했거나, 했거나, 뭐라도.”
침묵. 도현이는 그 침묵을 기다렸다. 마치 어머니가 갑자기 말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혹은 깨어 있으면서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었다.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녀는 말했어,”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어제 아침에.”
모두가 세아를 바라봤다.
“뭐라고?” 강리우가 물었다.
“’내가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아.’”
그 말이 공중에 떠 있었다. 떨어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단지 거기에 있었다. 마치 유령 같이.
도현이가 얼굴을 감쌌다. 강리우는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세아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게 뭐야?” 강리우가 조용히 말했다. “그게 뭐라고?”
“의사한테는 말하지 말았어,” 세아가 덧붙였다. “그냥 내한테만.”
“그게 뭐야?” 강리우가 다시 반복했다. 마치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아니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것이 단순한 피로였는지, 아니면 더 깊은 것이었는지.
병실의 벽은 무색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흰색이었다. 하지만 흰색도 색깔이 아니라, 모든 색깔의 부재였다. 세아는 그 벽을 바라봤다. 그것은 마치 무한처럼 보였다. 끝이 없는 것처럼.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림도, 창문도, 출구도 없었다. 단지 흰색의 무한함만 있었다.
“우리가 뭘 해야 하는데?” 도현이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진짜,” 도현이가 다시 말했다. “우리가 뭘 해야 하는데? 기도? 울기? 아니면 그냥 여기 앉아 있기?”
“여기 앉아 있는 거,” 강리우가 말했다. 처음으로 도현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야.”
세아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보는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더 이상 약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호였다. 어떤 깊은 곳에서 오는 신호. 자신의 몸이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 네가 살아있다는 메시지. 네가 느낄 수 있다는 메시지.
“세아,” 강리우가 말했다.
“뭐?”
“너는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너는 대학생 아니야? 뭐… 시험이나 뭐 있지 않아?”
“시험은 미뤘어. 교수가 허락했어.”
“아, 그럼 괜찮네.”
침묵. 그리고 세아는 이해했다. 그것이 형의 방식이라는 것을. 형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실질적인 것들로 궁금해하는 것. 감정적인 말은 할 수 없지만, 그 대신 너의 삶이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것.
“형도 회사는?” 세아가 물었다.
“이메일로 처리 중이야. 핸드폰이 계속 울려. 하지만 나는 여기 있어야 해.”
“왜?”
강리우는 오래 생각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누군가는 여기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여야 하니까.”
## 제4부: 손의 언어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병실에는 창문이 있었지만, 그 창문은 바깥세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도시의 불빛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불빛은 항상 같았다. 밤인지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