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33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어머니가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자체가 완전한 문장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강리우의 존재였다. 강민준이 거절한 것. 강민준이 지우려고 한 것. 그 아이가 어머니를 제주도로 데려간 것. 그 아이는 강리우였다.
병실의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그 소리가 갑자기 너무 크게 들렸다. 마치 누군가 세아의 귀 안에서 울리는 것처럼. 강리우는 여전히 창가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등은 이전과 다르게 구부러져 있었다. 마치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것처럼. 또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처럼.
“그 돈으로…”
어머니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더 약해졌다. 마치 매 단어를 말할 때마다 자신의 생명력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처럼.
“제주도에서 작은 집을 구했어. 그리고 나는 강리우를 낳았어. 혼자가 아니었어. 내 어머니가 와 줬어.”
세아는 자신의 할머니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기억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지였다. 흐릿한, 윤곽이 없는 이미지. 제주도의 어떤 방. 따뜻한 손. 그리고 소금 냄새. 그 이상은 없었다. 세아의 뇌는 그 이상을 저장하지 않았다. 또는 저장하기를 거부했다.
“어머니는 나한테 말했어. 넌 강민준한테 돌아가면 안 된다고. 그건 너를 죽일 거라고. 그런데 난 들리지 않았어. 난 강민준을 사랑했으니까. 또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차이가 뭔지 몰랐어.”
도현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를 보지 않고. 대신 천장을 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어머니의 말을 더 이상 들으면 자신도 함께 가라앉을 것 같은 느낌으로. 세아는 도현이의 그 움직임을 봤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를 위로해야 하나? 아니면 도현이를 위로해야 하나? 아니면 강리우를 위로해야 하나? 아니면 자신을 위로해야 하나?
“강리우는 3살 때까지 제주도에서 살았어.”
어머니가 계속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없었어. 대신 어머니가 두 명이었어. 나와 내 어머니. 그리고 그 아이는 행복했어. 아주 행복했어. 내가 보기에는.”
강리우의 손이 창틀을 누르고 있었다. 그 힘이 점점 더 세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 창틀을 부수지 않으면 자신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느낌으로. 세아는 그 손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자신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리듬으로.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전이었다. 또는 그보다 더 깊은 것. 공통된 트라우마의 신경 언어.
“그런데 어느 날 강민준이가 찾아왔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세아는 더 가까이 기울었다. 마치 자신이 더 가깝게 있으면, 이 말들이 덜 상처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그것도 환상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머니를 향해.
“그는 나한테 말했어. 아이가 필요하다고. 자신의 아이가. 법적인 아이가. 그리고 그는 돈을 다시 줬어. 더 많은 돈을. 강리우를 포기하라고. 입양을 보내라고. 그럼 그는 나를 도와줄 거라고. 나한테 더 좋은 삶을 줄 거라고.”
세아의 호흡이 얕아졌다. 그것은 신체의 반응이었다. 뇌가 받은 정보에 대한 거부 반응. 마치 자신의 몸이 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듣고 있었다. 계속 듣고 있었다.
“나는 거절했어. 처음에는. 강리우는 내 아들이었어. 내 살과 피였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그런데 강민준은 계속 나타났어. 그리고 계속 말했어. 넌 가난해. 넌 학력이 없어. 넌 미래가 없어. 하지만 내가 있으면 넌 모든 걸 가질 수 있어. 단지 이 아이를 포기하면 된다고.”
강리우가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을 세아는 완전히 볼 수 없었다. 반쯤만 보였다. 다른 반쪽은 그림자에 묻혀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처럼. 존재와 부재. 인정과 거절. 그 경계선 위에서 떨고 있는 것. 그것이 강리우였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동의했어.”
도현이가 침대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 움직임의 속도. 그 움직임의 분노. 그 움직임의 거절.
“어머니.”
도현이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목소리도 아니었다. 차갑고, 명확하고, 어린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정말로요?”
어머니의 눈이 도현이를 찾았다. 하지만 도현이는 어머니를 보지 않고 있었다. 대신 창문 쪽을 보고 있었다. 강리우 쪽을. 마치 자신이 어머니를 보면, 자신도 어머니처럼 될까봐 두려운 것처럼.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임신했어. 다시. 강민준의 아이를.”
어머니가 계속했다. 마치 누군가 그녀를 밀어주고 있는 것처럼. 중단할 수 없게.
“그것은… 계획되지 않은 것이었어. 강민준도 원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포기하지 않았어. 나는 강민준과 떨어졌어. 제주도로 도망쳤어. 다시.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당신을 낳았어. 세아.”
침묵.
그 침묵은 무엇인가를 말하는 침묵이었다. 이전의 모든 침묵들과는 다른 침묵이었다. 그것은 끝의 침묵이었다. 또는 시작의 침묵이었다. 세아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어느 쪽에 있는지.
강리우가 움직였다. 마침내. 창가에서. 그의 움직임은 느렸다. 마치 자신의 다리가 자신의 의지를 따르지 않는 것처럼. 그는 침대 쪽으로 걸어왔다. 세아는 그를 보고 있었다. 그 걷는 모습. 그 떨리는 손. 그 닫혀 있는 얼굴.
강리우는 어머니의 반대쪽 침대 옆에 섰다. 도현이의 자리. 도현이는 침대를 떠나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있으면, 강리우가 앉을 수 없을 것처럼. 또는 자신도 함께 무너질 것처럼.
“내가…”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은 첫 번째 단어였다. 지금까지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번째 단어. 그 단어는 완성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또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어머니는 나를 버렸어.”
강리우가 완성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선언이었다.
“강민준이가 나를 원하지 않았으니까, 어머니도 나를 원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어떤 가족에게 입양을 갔어. 그리고 그들은 나를 강민준이라고 부르지 않았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어. 처음부터.”
어머니의 손이 떨렸다. 더 심하게. 마치 자신의 아들의 말이 물리적으로 자신을 때리는 것처럼.
“나는 당신을 모르고 자랐어. 당신이 나를 버렸다는 것도 몰랐어.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내 이름이 강리우라는 것뿐이었어. 그리고 내 손이 떨린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나는 피아노를 칠 수 없었어. 손가락이 계속 떨렸으니까. 의사들은 신경 손상이라고 했어. 하지만 나는 알았어. 그것은 신경 손상이 아니었어. 그것은 거절이었어. 태어날 때부터 받은 거절이 신경계를 망가뜨린 거였어.”
세아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도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이 말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자신도 강민준의 아이였기 때문이다. 자신도 이 거절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알았어.”
강리우가 계속했다. 목소리에 무엇인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세아가 있었어. 당신의 딸이. 그리고 그녀는 노래를 불렀어. 나는 그 노래를 들었을 때, 뭔가 깨졌어. 내 안에서. 마치 자신이 마침내 자신의 일부를 찾은 것처럼. 그것이 뭐였는지 몰랐어. 하지만 나는 그것을 쫓아갔어. 그리고 나는 알았어. 그것은 너였어. 당신이었어. 당신이 내 안에 있었어. 모든 침묵 속에, 모든 떨림 속에.”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조용한 눈물이었다. 소리 없는 울음. 마치 그녀의 몸이 더 이상의 감정을 음성화할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세아 곁에 있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어. 당신을 통해 당신과 연결되는 것. 당신의 딸을 지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어.”
세아가 움직였다. 마침내.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어머니의 손을 더 세게 잡으면서. 그리고 강리우를 봤다. 그의 얼굴을. 그 떨리는 입술을. 그 열린 눈을.
“당신이 내 형이에요?”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묻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물어야만 했다. 입 밖에 내야만 했다. 현실로 만들어야만 했다.
강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천천히. 마치 그 움직임 자체가 고통인 것처럼.
“그리고 아버지는…”
세아가 계속했다.
“강민준 씨는…”
“죽었어.”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으면서.
“3년 전에. 그를 다시 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나는 당신한테 말할 수 없었어. 당신한테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어떻게 말해? 당신의 아버지가 존재했다는 것을. 당신의 형이 존재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세아의 호흡이 다시 멈췄다. 강민준은 죽었다. 3년 전. 그것은 세아가 태어난 후의 일이었다. 그것은 세아가 아직 어린 시절이었다. 아마도 5살 또는 6살.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어떤 영상도, 어떤 감정도. 단지 무언가가 세상에서 제거된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공기 중에 떠있는 부재의 감각.
“그렇다면…”
도현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침대 위에서 들렸다. 그는 침대에 다시 누워 있었다. 천장을 보면서. 아마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뭐예요? 이제.”
침묵.
그것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깨달음이었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질문이 되었을 때의 형태. 우리가 뭐예요. 우리가 누구예요. 우리가 어떻게 존재해요.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됐어요.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강리우를 봤다. 강리우도 여전히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그 손도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그것은 거절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정의 떨림이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의 인정.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의 인정.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의 인정.
“우리는…”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마치 자신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방의 모든 사람이 들었다. 그 작은 목소리를.
“우리는 이제 우리예요.”
강리우의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마치 자신의 손을 숨길 수 없으면,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으로.
어머니의 눈이 다시 세아를 찾았다. 그 눈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었다. 이전의 죄책감과 공포 대신, 뭔가 다른 것. 그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희망은 너무 크고, 너무 밝고, 너무 거짓이었다. 그것은 더 작은 것이었다. 더 조용한 것이었다. 그것은 생존이었다. 함께 생존하는 것. 함께 존재하는 것. 함께 이 순간을 견디는 것.
“내가…”
도현이가 다시 말했다. 침대 위에서. 천장을 보면서.
“뭘 해야 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 이후에 뭘 해야 하는지. 이 진실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 새로운 가족 이후에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는지.
세아는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손은 이제 떨리지 않고 있었다. 또는 떨림이 멈춘 것이 아니라, 세아가 그 떨림을 함께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신의 손을 통해. 자신의 팔을 통해. 자신의 심장을 통해.
강리우는 여전히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하지만 이제 그것은 거절의 자세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다림의 자세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 누군가가 자신을 가족이라고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 누군가가 자신도 여기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침묵 속에서 함께 있었다. 어머니, 세아, 강리우, 그리고 침대 위의 도현이. 네 개의 신체. 네 개의 마음. 네 개의 태워지는 불. 하나의 방 안에서. 형광등의 윙윙거림 아래에서. 서울의 밤하늘 아래에서.
그들이 뭐인지는 아직도 답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기 있었다. 함께. 그리고 그것이 충분했다. 적어도 지금은. 이 순간에는. 이 호흡 동안에는.
화 끝
# 우리는 누구인가
## 1부: 질문의 무게
“뭐예요.”
세아의 목소리가 방을 가르며 떨어졌다. 마치 깨진 유리잔처럼. 예리하고, 차갑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가 누구예요?”
그 질문은 공기 중에 떠다니기만 했다. 아무도 잡아내지 않으려는 듯이. 마치 그것을 만지는 순간 자신들까지 산산조각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침대 옆 창문을 통해 서울의 야경이 스며들어왔다. 저 멀리서 건설 장비의 굉음이 들렸다. 뭔가를 부수는 소리. 뭔가를 다시 짓는 소리. 밤 11시를 훨씬 넘겼을 텐데도 도시는 잠들지 않았다. 도시처럼, 그들도 잠들 수 없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 손은 차갑고 축축했다. 공포와 절망이 스며든 손.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들을 어머니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게 했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사람을 붙잡는 것처럼. 하지만 누가 배이고 누가 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존재해요?”
세아의 두 번째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절박하게.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떨렸다. 17살의 목소리로는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목소리였다.
강리우를 봤다. 그는 여전히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마치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숨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세아는 그 떨림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강리우를 많은 시간 동안 봐왔다. 처음에는 경멸의 눈으로. 그 다음에는 두려움의 눈으로. 그리고 지금은 무언가 다른 것으로.
그의 손의 떨림은 거절의 떨림이 아니었다. 아니, 거절도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정의 떨림이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의 인정.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의 인정.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의 인정.
강리우의 얼굴을 봤을 때 세아는 깨달았다. 그도 자신들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존재하는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 2부: 침묵의 고백
침대 위의 도현이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천장 위에 답이 적혀 있을 것처럼. 하지만 천장에는 오직 회색의 벽지와 각도진 조명만 있었다.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곤충의 울음처럼 들렸다. 계속되는 울음. 끝나지 않는 울음. 밤새 계속될 울음.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됐어요?”
세아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이 가장 무거웠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를 들춰내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 그들이 저질렀던 거짓말. 그들이 숨겨온 진실.
어머니의 몸이 움찔했다. 마치 채찍에 맞은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실패일 때는 더욱 그렇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 손에 응답이 있는지 찾고 있었다. 응답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을 느꼈다. 맥박. 어머니의 심장이 자신의 손 위에서 뛰고 있었다. 빠르고 불규칙한 리듬으로.
_우리는 여기 있다. 이것이 증거다. 이것이 증명이다._
세아는 내심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마치 자신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발설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하지만 방의 모든 사람이 들었다. 그 작은 목소리를. 왜냐하면 모두가 그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 침묵을 깨뜨릴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우리예요.”
그 순간, 형광등의 윙윙거림이 더 크게 들렸다. 또는 그럴 것처럼 느껴졌다. 세아의 심장이 그 소리를 증폭시켰다. 자신이 방금 무엇을 말했는지 깨달으면서.
강리우의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세아는 그의 손을 봤다. 그 손이 움직이는 것을. 마치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그리고 강리우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_이 손이 없으면, 이 존재도 없을 것 같은 느낌._
강리우의 내면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그 절박함을. 왜냐하면 그녀도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 3부: 변화의 순간
어머니의 눈이 다시 세아를 찾았다. 그 눈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었다. 이전의 죄책감이 없었다. 이전의 공포도 없었다. 또는 그것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다른 것으로 덮여있었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희망은 너무 크고, 너무 밝고, 너무 거짓이었다. 희망은 이 방의 초라함을 무시하는 감정이었다. 희망은 이들의 상황을 외면하려는 약한 위로였다.
그것은 더 작은 것이었다. 더 조용한 것이었다. 더 정직한 것이었다.
그것은 생존이었다.
함께 생존하는 것.
함께 존재하는 것.
함께 이 순간을 견디는 것.
어머니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어떤 결정을 내린 것처럼. 이 순간 이후로 계속 살아갈 것이라는 결정. 혼자가 아니라, 함께.
침대 위의 도현이가 움직였다. 그의 팔이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물 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그리고 그는 다시 말했다.
“내가…”
그의 목소리는 너무 약했다. 마치 이미 죽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뭘 해야 해?”
그 질문은 절망이 아니었다. 절망은 너무 극적이었다. 그것은 더 깊은 것이었다. 그것은 무지였다. 진정한 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 이후에 뭘 해야 하는지. 이 진실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 새로운 가족 이후에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는지.
_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_
누군가의 생각이 방 안에 떠다녔다. 그것이 누구의 생각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의 생각이었다.
## 4부: 접촉의 언어
세아는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손은 이제 떨리지 않고 있었다.
또는 떨림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세아가 그 떨림을 함께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신의 손을 통해.
자신의 팔을 통해.
자신의 심장을 통해.
그것은 마치 두 개의 신체가 하나의 전기 회로를 이루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공포가 세아의 손가락을 통해 흐르고, 세아의 힘이 어머니의 팔을 통해 올라온다. 상호작용. 상호 의존. 함께 존재하는 방식.
강리우는 여전히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하지만 이제 그것은 거절의 자세가 아니었다. 거절의 자세는 더 경직되어 있었다. 거절의 자세는 더 공격적이었다.
이것은 기다림의 자세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
누군가가 자신을 가족이라고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
누군가가 자신도 여기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강리우의 얼굴을 봤을 때, 세아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의 눈에 갇혀 있었다. 마치 작은 호수처럼. 깊고, 어둡고, 바닥을 알 수 없는.
도현이는 계속 천장을 봤다. 하지만 그의 호흡이 바뀌었다. 더 깊어졌다. 더 규칙적이어졌다. 마치 깨어나는 사람의 호흡처럼.
## 5부: 침묵의 음악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침묵 속에서 함께 있었다.
어머니, 세아, 강리우, 그리고 침대 위의 도현이.
네 개의 신체.
네 개의 마음.
네 개의 태워지는 불.
하나의 방 안에서.
형광등의 윙윙거림 아래에서.
서울의 밤하늘 아래에서.
침묵은 완전한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 안에는 소리들이 있었다.
호흡의 소리. 네 개의 호흡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방을 채웠다. 어머니의 호흡은 천천히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세아의 호흡은 여전히 빨랐다. 강리우의 호흡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도현이의 호흡은 깊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함께 들으면, 그것은 일종의 음악이었다. 불협화음이지만, 음악이었다.
심장 박동의 소리. 그것들은 방 안의 공기 속에 떠다니고 있었다. 네 개의 심장. 각각 다른 속도로 뛰고 있지만, 모두 같은 목적으로 뛰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외부의 소리들도 있었다. 서울의 밤. 저 멀리서 자동차의 경적 소리. 건설 장비의 굉음.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 안의 네 개의 생명체에게는 그 모든 소리가 먼 것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의 소리처럼.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마치 곤충의 울음처럼. 하지만 지금 그 소리는 다르게 들렸다. 그것은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친숙했다. 마치 이 방의 일부처럼. 이들의 침묵의 일부처럼.
## 6부: 무의 가치
그들이 뭐인지는 아직도 답이 없었다.
가족인가? 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상처가 있었다.
친구인가? 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거짓이 있었다.
동료인가? 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침묵이 있었다.
그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언어는 이미 존재하는 카테고리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카테고리였다. 아직 이름이 없는 카테고리.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예요.”
세아가 이미 말했다.
그것이 모든 정의였다. 그것이 모든 설명이었다. 그것이 모든 이유였다.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의 손잡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의 손잡음이었다.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나도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강리우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숨을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떨림이었다. 인간의 떨림. 존재한다는 것의 증거.
도현이는 천장에서 눈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강리우를 봤다. 그것은 긴 시선이었다. 처음으로 그가 강리우를 온전하게 보는 것 같았다. 거절 없이. 분노 없이. 오직 인정만으로.
그들이 뭐인지는 아직도 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 있었다.
함께.
그리고 그것이 충분했다.
## 7부: 이 호흡 동안에
적어도 지금은.
이 순간에는.
이 호흡 동안에는.
방의 시계가 자정을 넘겼을 것이다. 또는 아직도 밤의 중간쯤일 것이다. 시간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시간 밖의 어디에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 밖의 공간에 있는 네 개의 생명체.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도 세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를 잡은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영원히.
강리우는 조용히 침대 옆에 앉았다. 침대 옆 의자에. 그것이 초대였다. 침묵의 초대. 그리고 도현이는 그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의 눈이 강리우를 향해 부드러워졌다.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처럼.
어머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은 마른 눈물이었다. 이미 흘린 눈물의 흔적. 그리고 그 흔적 위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이기는 어려웠다. 희망도 아니고, 행복도 아니고, 위로도 아니었다. 그것은 더 단순했다. 더 기본적이었다.
그것은 내일을 살아갈 이유였다.
네 개의 이유. 아니, 정확하게는 서로가 이유였다.
세아가 이유였다. 어머니가 이유였다. 강리우가 이유였다. 도현이가 이유였다.
“우리는 이제 우리예요.”
세아의 말이 다시 방 안에 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다짐이었다. 약속이었다.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마치 축하하는 것처럼.
서울의 밤하늘이 그들을 내려다봤다. 그 무수한 건물들 속에 있는 무수한 방들 속에서, 네 개의 생명체가 함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