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227화: 어머니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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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7화: 어머니의 목소리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들이 얼마나 가늘어졌는지 느껴졌다. 마치 새의 뼈 같은. 또는 악기의 현처럼. 그리고 그 손은 따뜻했다. 세아는 그것에 놀랐다. 자신이 기대했던 차가움 대신, 거기에는 열이 있었다. 생명의 열.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증명.

“이제야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약했지만, 이제 그것은 허약함이 아니라 의도적인 차분함처럼 들렸다.

강리우는 침대 맞은편에 서 있었다. 세아와는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목의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다시 삼키려고 애쓰는 것처럼. 세아는 그것을 알아챘다. 강리우의 손가락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미묘하게. 마치 피아노 건반을 누르려다 멈춘 손처럼.

“어머니가 뭐라고 했어요?”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성대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강민준이 얘기를 해야겠네.”

어머니가 말했다.

“그 남자. 넌 본 적 없지? 얼굴도 모르지?”

세아는 머리를 흔들었다. 강민준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다. 강민준. JYA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음악 산업의 실세. 그리고 이제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남자. 그것뿐이었다.

“강민준이는 두려운 남자였어.”

어머니가 계속했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남자가 가진 모든 것—돈, 권력, 영향력—이 전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어. 내가 알았어. 왜냐하면 나도 같은 냄새를 가지고 있었거든.”

어머니가 침을 삼켰다. 그 행동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강민준이는 음악을 두려워했어. 진정한 음악을 말이야. 기획된 음악도 아니고, 포장된 음악도 아니고, 팔리는 음악도 아닌. 그냥 누군가의 영혼이 그대로 흘러나오는 그런 음악을 말이야. 그런 음악이 있으면 그 남자의 제국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남자는 음악을 통제하려고 했어. 모든 음악을 말이야.”

강리우가 움직였다. 어머니의 말을 끊으려는 제스처. 하지만 어머니는 계속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가 그런 음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내 목소리에. 내가 노래할 때 나오는 그 소리에. 그래서 그 남자는 나를 원했어. 아니, 내가 가진 그것을 원했어. 그리고 내가 그것을 가진 채로 아무도 들을 수 없게 만들려고 했어.”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병실의 형광등 아래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로.

“그 남자와 나는 3년을 함께 있었어. 그리고 그 3년 동안 나는 노래하지 않았어. 가치 있는 음악을 말이야. 내가 낳은 리우, 강민준이의 아들 리우도 그 3년 동안 태어났고, 내가 낳은 너도 그 3년 안에 생겼어.”

어머니가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런데 넌 달랐어. 처음부터. 넌 태어나면서부터 울었어. 그것도 보통 울음이 아니라… 음악 같은 울음이었어. 강민준이가 너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이 어떤지 알아? 공포였어. 순수한 공포. 마치 자신이 만든 무언가가 자신을 파괴할 거라는 걸 아는 그런 표정이었어.”

세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강민준이는 너를 두려워했어. 넌 자신의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 그래서 그 남자는 넌 없애려고 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려고 했어.”

“어머니.”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경고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세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어. 호적에도 올리지 않으려고 했고, 이름도 주지 않으려고 했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고 했어. 하지만 난 저항했어. 단 한 가지 방식으로만. 나 자신을 없앰으로써.”

어머니의 눈물이 흘렀다. 아주 천천히. 마치 시간이 그것도 거부하고 싶은 것처럼.

“난 강민준이를 떠났어. 3년 후에. 리우를 데리고. 그리고 너를 데리고는 가지 않았어.”

세아의 손가락이 어머니의 손에서 떨어졌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왜?”

세아가 물었다. 그것이 그녀가 24년 동안 물어야 했던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침묵했다. 병실의 모니터 소리만 계속 울렸다. 규칙적인 신호음. 어머니의 심박동. 살아있음의 증거.

“왜냐하면 강민준이가 너를 더 원했거든. 넌 없애려던 것이 역설적으로 그 남자가 가장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어. 그래서 그 남자는 넌 데려갔어. 그리고 나는… 나는 리우만 데려갔어.”

세아는 병실을 나갔다.

움직임은 자동이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를 거부한 것처럼. 또는 그 반대였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보다 빨랐다. 병실의 문이 닫혔고, 세아는 복도에 서 있었다.

형광등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차갑고, 명확하게.

도현이가 복도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세고 있었다. 1, 2, 3, 4, 5. 그리고 다시 1부터. 강박적으로. 마치 자신을 고정시키려는 것처럼.

세아는 도현이 옆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형이 뭐래?”

도현이가 물었다. 손가락 세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아버지 얘기해.”

세아가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

“응.”

“강민준이?”

“응.”

도현이는 손가락 세기를 멈췄다.

“내가 찾아봤어. 구글에서. 강민준이 CEO 사진이 나와. 우리 닮았나? 우리 아버지 닮았나?”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나 봤어? 사진 봤어?”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아니.”

“왜? 안 궁금해?”

세아는 침묵했다.

“난 궁금했어. 진짜로. 어떤 남자가 우리한테 아버지인지. 어떤 얼굴을 가진 남자가 우리 어머니한테 뭘 했는지. 그래서 찾았어. 그리고…”

도현이가 멈췄다.

“그리고 뭐?”

“그 남자가 8개월 전에 죽었대. 교통사고로. 혼자 차를 몰다가.”

세아의 손가락이 떨렸다.

“누나 있어?”

도현이가 물었다.

“있어.”

“지금 뭐 생각해?”

세아는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할 것이 없었다. 또는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아버지라고 불리는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이 그 남자의 딸이라는 사실이 이제 영원히 확인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 해방인지, 아니면 함정인지.

병실에서 강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와의 대화. 세아는 그 말들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저 목소리의 톤만 들렸다. 강리우의 것은 낮고, 차분하고, 무언가를 참고 있는. 어머니의 것은 약하지만, 확신에 찬.

도현이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누나 손 차가워.”

도현이가 말했다.

“병원이 추워.”

세아가 대답했다. 거짓이었다. 병원의 온도는 적절했다. 문제는 세아의 손이었다. 또는 세아 자신이었다. 마치 자신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것처럼. 어떤 열원도 더 이상 자신을 데우지 못하는 것처럼.

도현이는 세아의 손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자신의 체온으로 데우려고. 17살 남자아이의 따뜻한 손으로.

“누나 괜찮아?”

도현이가 물었다.

“응.”

“거짓이지?”

“응.”

도현이는 웃음을 흘렸다. 슬픈 웃음이었다. 또는 포기의 웃음이었다.

“형이 뭐라고 했어? 아버지 말고.”

도현이가 물었다.

“뭐?”

“형이 말했어. 아버지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형이 우리한테 그래야 된다고. 그래야 우리가 이해할 거라고.”

세아는 기억했다. 강리우의 목소리. 낮고, 차분하고, 공포와 그리움이 섞여 있는 그 목소리. 아버지가 가져온 불. 아버지가 남긴 상처. 아버지가 도망친 책임.

“형이 뭐라고 했어?”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나중에.”

세아가 대답했다.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어머니 손을 잡아야 돼.”

병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강리우가 나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자신이 지금 말한 모든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또는 그것들이 모두 거짓이길 바라는 것처럼.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가 떠 있었다. 눈물이 아니었다. 세아는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눈물은 약함의 표시였고, 강리우의 눈에 떠 있는 것은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죄책감일까. 아니면 책임감일까.

“세아.”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강했다. 다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내가 확인해야 돼.”

세아는 일어났다. 도현이의 손이 자신의 손에서 떨어졌다.

“뭘 확인하려고?”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가 넌 강민준이의 딸이 아니라고 했나?”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 제발.”

강리우가 말했다.

“맞아.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어. 난 강민준이의 딸이 아니래. 난 어머니가 선택한 아이래.”

강리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 말들이 그를 고정시킨 것처럼.

“그런데 그건 거짓이야.”

강리우가 조용히 말했다.

“뭐?”

“어머니가 거짓말을 했어. 또는 어머니가 아는 진실과 내가 아는 진실이 다르거든. 아버지가 마지막에 나한테 뭐라고 했냐면…”

강리우가 침을 삼켰다.

“아버지가 말했어. 세아는 가장 순수한 약점이라고.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약한 곳이라고. 그리고 그 약점이 아버지를 파괴할 것이라고. 그래서 아버지가 세아를 원했어. 그리고 동시에 세아를 버렸어. 그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해답이었어. 원하는 것을 가지면서 동시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 사랑하면서 동시에 죽이는 것.”

세아의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엔 약하지 않게.

“그래서 아버지가 나한테 뭐라고 했냐면. 세아를 지켜라고. 하지만 세아를 어머니에게서 떨어뜨려라고. 그래야만 세아가 살 수 있다고. 그래야만 세아가 아버지의 불에 타죽지 않을 수 있다고.”

강리우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래서 난 여기 왔어. 8개월을 기다렸어. 아버지가 죽기를 기다렸어. 그리고 이제 아버지는 죽었고, 그리고 난 여기 있고, 그리고 어머니는 깨어났고, 그리고 세아는…”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세아는 여전히 불타고 있어.”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병실의 문 앞에서. 형광등 아래에서. 자신의 형이자 낯선 사람인 강리우 앞에서. 자신의 형제인 도현이 옆에서.

“난 그런 거 듣고 싶지 않아.”

세아가 말했다.

“뭔 거?”

강리우가 물었다.

“아버지 얘기. 내가 아버지의 약점이라는 거. 내가 아버지의 불이라는 거. 내가 아버지를 파괴할 거라는 거. 그런 거 다. 난 그런 거 듣고 싶지 않아.”

세아가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엔 더 세게.

“어머니.”

세아가 말했다.

“나 뭐 하면 돼?”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바라봤다. 그 손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넌 살아야 돼.”

어머니가 말했다.

“그게 전부야. 넌 그냥 살면 돼. 아무도를 위해서도 아니고, 아무것도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넌 살면 돼.”

세아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할 수 있다는 것을. 또는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병실 밖에서 강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현이와의 대화. 세아는 그 말들을 듣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로 있었다. 그 따뜻함이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형광등은 여전히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차갑고, 명확하게. 마치 심판관처럼. 또는 증인처럼. 모든 것을 본 자의 침묵으로.

# 진실의 무게

병실 복도의 형광등이 계속해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세상이 계속해서 회전하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강리우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침을 삼켰다. 목이 말라 있었다. 아니, 목이 아니라 온몸이 말라 있는 것 같았다. 8개월간 그가 품고 있던 비밀이 이제 공기 중으로 방출되려고 하고 있었다.

세아가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자세는 마치 도망치려다가 멈춘 것처럼 보였다. 어깨는 경직되어 있었고, 주먹은 쥐어져 있었다. 강리우는 세아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몸 전체가 내뿜고 있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실과 내가 아는 진실이 다르거든,” 강리우가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자신의 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낮춘 목소리였다. 8개월을 기다린 끝에 이 순간이 왔다. 아버지가 죽은 지금, 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강리우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빼었다를 반복하며 계속했다.

“아버지가 마지막에 나한테 뭐라고 했냐면…”

침이 다시 넘어갔다. 이번에는 더 크게. 강리우는 그 소리가 세아에게 들렸을까봐 신경을 썼다. 하지만 세아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도현이는 옆에 서 있었고, 그의 얼굴은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형이 지금부터 무엇을 말할 것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강리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 숨은 병실에서 떠도는 소독약 냄새와 섞여 들어왔다. 병원의 냄새. 죽음과 절망이 섞여 있는 냄새. 아버지가 이 냄새를 마시며 마지막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아버지가 말했어. 세아는 가장 순수한 약점이라고.”

강리우의 목소리에 떨림이 생겼다. 이 말을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입으로 직접 들었을 때는 그냥 정보였다. 아버지가 전해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세아 앞에서 이 말을 반복하자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가 드러났다.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약한 곳이라고 했어. 그리고 그 약점이 아버지를 파괴할 것이라고.”

강리우는 세아의 움직임을 살폈다. 세아의 등이 더욱 굳어지는 것 같았다. 어깨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숨을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세아를 원했어. 그리고 동시에 세아를 버렸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아버지가 마지막 면회에서 강리우에게 반복했던 부분이었다. 아버지의 눈은 이미 죽음의 색으로 변해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여전히 비의 광채를 띠고 있었다. 마치 깊은 연못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눈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해답이었어. 원하는 것을 가지면서 동시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 사랑하면서 동시에 죽이는 것.”

강리우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차갑게 들리는지를 느꼈다. 자신이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니, 신기한 게 아니라 무서웠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병실 안에서 어머니의 심박 모니터가 계속해서 피프, 피프 소리를 냈다. 규칙적인 그 소리는 마치 시계처럼 시간을 세고 있었다. 이 순간을 증거하고 있었다.

세아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떨림이었다. 마치 전기가 흐르듯이. 하지만 곧 그 떨림은 더 커졌다. 이번에는 약하지 않게. 강리우는 그것을 보고 말을 계속했다. 더 이상 멈출 수 없었다. 마치 제방이 터져서 물이 흘러내리듯이, 한 번 시작된 말은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한테 뭐라고 했냐면. 세아를 지켜라고. 하지만 세아를 어머니에게서 떨어뜨려라고.”

강리우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래야만 세아가 살 수 있다고. 그래야만 세아가 아버지의 불에 타죽지 않을 수 있다고.”

강리우는 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의 손가락은 흔들리고 있었다. 8개월간 이 말을 품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이 말이 세아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인지를 이제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아버지는 죽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 말은 세아 안에 깊이 박혀서 자라날 것이었다.

“그래서 난 여기 왔어. 8개월을 기다렸어. 아버지가 죽기를 기다렸어.”

강리우의 목소리가 끊겼다. 진짜로 끊겼다. 목에 뭔가 걸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이 눈물인지, 아니면 비명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는 죽었고, 그리고 난 여기 있고, 그리고 어머니는 깨어났고, 그리고 세아는…”

강리우는 드디어 세아를 바라봤다.

그 순간, 세아가 돌아섰다. 강리우는 세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얼굴은 아직 어린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드리워진 것은 나이보다 훨씬 오래되고, 훨씬 깊은 것이었다. 눈은 떨어져 있었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마치 소리 없는 비명을 내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여전히 불타고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 말은 선언이었다. 진단이었다. 또 동시에 저주였다.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병실의 문 앞에서. 형광등 아래에서. 자신의 형이자 낯선 사람인 강리우 앞에서. 자신의 형제인 도현이 옆에서.

도현이는 강리우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사라졌다. 도현이는 어린 시절부터 이 가족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이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를 알고 있었다.

“난 그런 거 듣고 싶지 않아.”

세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깨진 유리처럼 거칠었다.

“뭔 거?”

강리우가 물었다. 마치 모르는 척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버지 얘기. 내가 아버지의 약점이라는 거. 내가 아버지의 불이라는 거. 내가 아버지를 파괴할 거라는 거.”

세아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런 거 다. 난 그런 거 듣고 싶지 않아.”

그 목소리 안에는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공포도 있었고, 절망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있었다. 그것은 거부였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거부였다.

세아가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그 움직임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거기에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실 안에서 심박 모니터의 소리는 여전히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또는 모든 것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더 세게. 마치 어머니가 어디론가 가버릴까봐 잡는 것처럼. 또는 자신이 어디론가 떨어져나갈까봐 잡는 것처럼.

“어머니.”

세아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작았다.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

“나 뭐 하면 돼?”

어머니는 천천히 세아의 손을 바라봤다. 그것은 자신의 딸이 쥔 손이었다. 하지만 그 손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어 보였다. 세아가 이렇게까지 커 있었다는 것이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아니, 놀라게 한 것은 세아의 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손이 담고 있는 무게였다. 그 손이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천천히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 손의 따뜻함이 자신에게 전해졌다. 아직도 따뜻했다. 아직도 생명이 있었다.

“넌 살아야 돼.”

어머니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기도문처럼 들렸다.

“그게 전부야. 넌 그냥 살면 돼. 아무도를 위해서도 아니고, 아무것도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넌 살면 돼.”

그 말은 단순했다.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복잡했다.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할 수 있다는 것을. 또는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세아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은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병실 밖에서 강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현이와의 대화였다. 세아는 그 말들을 듣지 않기로 했다. 그것들은 모두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선택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죽었다. 아버지의 불도, 아버지의 약점도, 아버지의 선택도 모두 죽었다.

또는 죽지 않았다.

세아는 그 생각을 밀어내기로 했다. 대신 어머니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 따뜻함이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그것이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될 때까지. 생명이 될 때까지.

형광등은 여전히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차갑고, 명확하게. 마치 심판관처럼. 또는 증인처럼. 모든 것을 본 자의 침묵으로.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살아가기로 했다. 아무도를 위해서도 아니고, 아무것도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살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앞으로 천천히 배워야 할 것이었다.

병실 안에는 오직 두 사람과 기계의 소리만 있었다. 심박 모니터의 규칙적인 울림. 그것이 생명의 증거였다.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세아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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