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23화: 어머니의 침묵이 깨어지는 방식
새벽 1시 23분. 세아는 병실 복도에서 멈춰 섰다.
강리우의 손을 놓은 지 정확히 36분이 지났다. 한강공원에서 병원 가는 택시 안에서 그가 먼저 손을 뺐다. 차가운 손가락이 천천히 세아의 손에서 떨어졌다. 그것은 폭력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 부드러워서 세아는 처음에 그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손가락이 손가락을 떠날 때의 그 감각. 마치 음악이 음악에서 분리되는 것처럼.
“난 여기서 내려갈게.”
강리우가 택시 안에서 말했다. 서울역 근처. 세아가 가려던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
“어디 가는 건데?”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를 만나야 해.”
강리우가 대답했다.
“이 시간에?”
“응. 이 시간에.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강리우가 택시에서 내렸을 때,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밤공기에 노출된 순간, 그 떨림이 더 커 보였다. 마치 세아의 손이 그 떨림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처럼.
이제 세아는 병실 복도에 혼자 서 있었다.
형광등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병원의 형광등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빛났다. 자비 없이, 투명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세아는 거울처럼 보이는 복도의 창에 비친 자신을 봤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한강공원에서의 추위가 아직도 피부에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병실은 309호실. 불과 30미터 떨어진 곳.
세아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 숨이 가슴에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폐가 더 이상 산소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은 공포였다. 또는 그것이 공포였다.
복도를 걸으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강리우의 손이 있던 자리. 그 자리가 아직도 따뜻했다. 아니, 따뜻하지 않았다. 차가웠다. 그런데 왜 따뜻하다고 느껴질까. 아마도 그것은 온도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일 것이다. 무언가가 닿았던 자리. 무언가가 만났던 지점. 그곳은 항상 따뜻해 보인다. 실제로는 차갑더라도.
병실 문을 두드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세아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깨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눈은 뜨고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 강리우가 말한 그대로. 마치 천장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보는 그런 방식으로.
“엄마.”
세아가 작게 불렀다.
어머니의 눈이 움직였다. 천천히. 마치 굉장히 무거운 것을 움직이는 것처럼. 눈이 세아를 찾았다. 천장에서 벗어나 세아에게로.
“세아.”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거의 숨소리에 가까웠다.
세아는 침대 옆으로 갔다. 의자가 놓여 있었다. 도현이가 앉아 있던 자리일 것이다. 또는 누군가. 세아는 그 의자에 앉았다.
“엄마, 어떠세요?”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침대 위에서. 세아를 향해.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차가웠다. 강리우의 손보다도 더 차가웠다. 하지만 그 손가락은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돌로 만들어놓은 것처럼. 또는 이미 돌이 된 지 오래인 것처럼.
“강리우를 봤어?”
어머니가 물었다.
세아의 심장이 멈췄다.
“네?”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를. 봤냐고.”
어머니가 반복했다.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또는 세아가 더 집중해서 들었다.
“네. 봤어요.”
세아가 대답했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세아의 손 위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강리우가 도현이를 만나러 갔어?”
어머니가 물었다.
“네. 그렇게 말했어요.”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길게. 마치 그 대답이 그녀를 피로하게 만든 것처럼. 또는 안도하게 만든 것처럼.
“도현이는…”
어머니가 말했다.
“도현이는 강리우를 받아줄까?”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 같았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하는 독백이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난 강리우를 버렸어.”
어머니가 계속했다.
“24년을. 그리고 지금… 지금 그아이가 나타났어.”
세아는 조용히 들었다.
“강민준은 왜 안 왔을까? 강민준은 왜 자기 아들을 보러 오지 않았을까?”
그 질문도 세아에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천장을 다시 보고 있었다. 그곳에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난 강리우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어머니가 물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세아에게 묻는 것 같았다. 눈이 세아를 찾았다. 천장에서 벗어나 딸에게로.
“엄마는… 엄마는 그냥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그냥… 있는 것만으로.”
어머니의 눈이 흔들렸다. 마치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입이 움직였다.
“난 너를 버렸어, 세아.”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었다. 사랑이 부족했다는 뜻일 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또는 무언가 끔찍한 것을 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엄마…”
세아가 말했다.
“내가 강민준을 두려워했어.”
어머니가 계속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너까지 미쳤어. 강리우까지.”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 손이 얼마나 가벼운지에 놀랐다. 마치 그 안에 뼈만 있는 것처럼.
“난 강민준의 무언가를 봤어. 너 안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서 넌…”
어머니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마치 그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세아는 기다렸다.
“넌 불 같았어.”
어머니가 마침내 말했다.
“작을 때부터. 너는 불 같았어.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끊겼다.
“나는 그 불을 끄려고만 했어. 계속.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두려웠던 거야. 너의 불이. 너의 목소리가. 너의…”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강리우의 손처럼. 아니, 강리우의 손이 자신의 손을 통해 전달되는 것처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두려움에서 두려움으로. 떨림에서 떨림으로.
“엄마, 저는…”
세아가 말했다.
“넌 강민준의 딸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그것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야.”
그 말이 복도에 울려 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병실의 벽을 넘어 더 멀리. 309호실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그리고 강민준은…”
어머니가 계속했다.
“강민준은 널 두려워했어.”
세아는 그 말을 처리할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을 의미했다. 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았다. 단지 사실이었을 뿐.
“왜요?”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세아의 손 위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 마치 그것이 유일한 언어인 것처럼.
형광등이 계속 빛나고 있었다. 새벽 1시 23분이 지나 1시 24분으로 넘어갔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와 세아가 이 침대에서 손을 잡고 있는 동안, 다른 곳에서는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강리우가 도현이를 만나고 있을 것이고, 도현이는 아마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것이고, 강민준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었다.
“강리우가…”
어머니가 말했다.
“강리우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것은 축복이었다. 또는 그것이 축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강리우는 잘 살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엄마가 있으니까.”
어머니의 눈이 다시 움직였다. 천장에서 세아에게로. 그리고 그 눈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깨달음. 또는 더 깊은 슬픔. 또는 그 둘을 함께 담은 뭔가.
“난 강리우를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어머니가 물었다.
“엄마는 이미 했어요.”
세아가 대답했다.
“엄마가 그아이의 이름을 불렀어요. 확인하듯이. 의심하듯이. 놀라듯이. 엄마가 한 그 모든 방식으로.”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천천히. 마치 매우 오래된 샘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세아는 그 눈물을 봤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24년의 침묵이 깨어지는 소리였다. 그것은 어머니가 자신이 한 일을 마침내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도현이는 어떻게 할 거야?”
어머니가 물었다.
“도현이는… 도현이는 강리우를 형이라고 부를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어머니의 몸이 움직였다. 침대 위에서. 마치 누군가가 그녀를 조금 일으킨 것처럼. 또는 그녀가 스스로 일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도현이도 알았어?”
어머니가 물었다.
“네. 강리우가 도현이를 만나러 가고 있어요. 지금.”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우리가 뭐했을까?”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뭘 했길래…”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있을 뿐이다. 돌과 같이. 무겁고, 차갑고,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현재는 움직일 수 있다. 현재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엄마,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세아가 말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세아의 손 위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그것은 동의였다. 또는 용서였다. 또는 그 둘을 함께 담은 무언가.
새벽 1시 47분. 병실의 모니터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심박수, 산소 포화도, 혈압.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세아와 어머니가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은 어떤 숫자로도 표현될 수 없었다.
세아는 자신의 휴대폰을 켰다. 배터리가 1퍼센트였다. 마지막 신호.
도현이로부터 받은 메시지가 있었다. 새벽 12시 56분.
“누나, 강리우 형이 왔어. 우리 형이 맞지?”
세아는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대답을 썼다.
“응. 우리 형이 맞아.”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휴대폰이 꺼졌다. 배터리가 완전히 다 떨어진 것이다.
어머니가 세아를 봤다.
“강리우가…”
어머니가 말했다.
“강리우가 잘 살아야 해.”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뭔가를 깨달았다. 어머니가 24년을 침묵해야 했던 이유. 그것은 강민준이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도 있었지만, 더 깊은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두려워했다. 그 아이의 불을. 그 아이의 목소리를. 그 아이가 언젠가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고 있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엄마, 저는 안 떠날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어머니의 눈이 흔들렸다.
“저는 불이지만, 엄마 옆에서 탈 거예요. 엄마를 태우지 않으면서.”
그 말이 나왔을 때,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흘렀다.
병실은 조용했다. 모니터의 신호음만이 계속되었다. 그 신호음은 마치 심장박동처럼 들렸다. 어머니의 심장박동. 그리고 그것은 계속되고 있었다. 약하지만, 계속되고 있었다.
새벽 2시 3분.
세아의 손은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아마도 서울 어딘가의 어두운 거리에서—강리우와 도현이가 처음으로 형과 동생으로 만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손가락도 떨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혼자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함께하는 떨림이었다.
END OF CHAPTER 223
# 재생
## 제223장 확장판
병실의 형광등은 여전히 차갑고 흰 빛을 내뿜고 있었다. 새벽 1시 47분. 세상이 가장 깊은 수면에 빠져있을 시간, 하지만 이곳 삼층 중환자실에서는 생명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침대 옆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의자는 병문안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누구도 편안함을 느낄 수 없게 설계된 것 같았다. 마치 이곳에 머물 수 없도록, 떠나가도록 강요하는 듯이. 하지만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은 얇은 시트 위에 놓여 있었다. 창백하고, 약해 보이며, 거의 투명할 정도로 흰 손. 세아는 자신의 손을 천천히 그 위에 올렸다. 피부가 닿는 순간, 세아는 숨을 멈췄다. 어머니의 손이 얼마나 차가운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겨울 호수의 물처럼.
“엄마,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병실의 침묵을 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장 모니터가 계속 비프음을 내고 있었고, 산소 공급 튜브가 어머니의 코 아래에서 부드럽게 호흡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어머니가 들었다고 알았다. 그 손가락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세아의 손 위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모스 부호처럼, 마치 비밀스러운 언어처럼. 그것은 동의였다. 또는 용서였다. 또는 그 둘을 함께 담은 무언가였다. 세아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을 느끼며 눈물을 삼켰다.
24년. 어머니는 24년을 침묵했다. 세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강리우의 존재도 감춰가며. 그 침묵 속에서 어떤 말도 나올 수 없었다. 사랑도, 후회도, 용서도. 모든 것이 입술 뒤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새벽, 이 병실에서, 그 침묵이 깨지고 있었다.
모니터는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심박수 73회/분. 산소 포화도 97%. 혈압 112/68.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고 있었다. 의료진들은 이 숫자들을 읽으며 환자의 상태를 판단했다. 하지만 그 숫자들 뒤의 것, 이 순간 세아와 어머니가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은 어떤 숫자로도 표현될 수 없었다. 이것은 의학이 아니었다. 이것은 인간이었다.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니, 울지 않았다. 화면이 희미하게 깜박였다. 배터리 1%.
세아는 화면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 손가락들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도현이로부터 받은 메시지가 있었다. 새벽 12시 56분.
**“누나, 강리우 형이 왔어. 우리 형이 맞지?”**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세아의 심장이 철렁했다. 도현이는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확인을 원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이해하려고.
세아는 화면에 글을 입력했다. 손가락이 조금씩 떨리면서.
**“응. 우리 형이 맞아.”**
단 여덟 글자. 하지만 그 여덟 글자는 24년의 침묵을 깨는 소리였다. 그것은 강리우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휴대폰이 꺼졌다. 배터리가 완전히 다 떨어진 것이다. 검은 화면. 세아는 그 검은 화면을 들고 있었다. 마치 전송된 메시지처럼, 되돌릴 수 없는 어떤 것.
어머니가 눈을 떴다. 아주 천천히,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사람처럼.
“강리우가…”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마치 병실의 침묵을 깨기가 두렵다는 듯이.
“강리우가 잘 살아야 해.”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기도였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뭔가를 깨달았다. 어머니가 24년을 침묵해야 했던 이유를 말이다.
처음에 세아는 강민준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폭력, 그의 분노, 그의 통제. 그것들이 어머니를 침묵으로 강요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맞았다. 하지만 더 깊은 이유가 있었다. 세아가 지금 이해한 이유가.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두려워했다. 강리우를 말이다. 그 아이의 불을. 그 아이의 목소리를. 그 아이의 존재 자체가 가져올 파괴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더 깊게는, 그 아이가 언젠가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마치 어머니 자신이 그 아이를 버렸듯이.
그리고 그것은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일어난 것이었다.
강리우는 떠났다. 24년을 버려졌으니까. 그리고 이제 그는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이 용서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마치 그것으로 어머니를 붙잡을 수 있다는 듯이.
“엄마, 저는 안 떠날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저는 불이지만, 엄마 옆에서 탈 거예요. 엄마를 태우지 않으면서.”
그 말이 나왔을 때,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흘렀다. 마치 댐이 결국 무너진 것처럼. 24년 동안 쌓여있던 모든 눈물이 한 순간에 흘러내렸다.
세아는 휴지를 집어 들고 어머니의 뺨을 닦아주었다. 그 손길은 부드러웠다. 자신의 아이를 다루듯이. 아니, 더 부드러웠다. 마치 어머니가 아주 깨지기 쉬운 무언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병실은 조용했다. 모니터의 신호음만이 계속되었다. 비프. 비프. 비프. 그 신호음은 마치 심장박동처럼 들렸다. 어머니의 심장박동. 그리고 그것은 계속되고 있었다. 약하지만, 계속되고 있었다.
“엄마가 강리우한테 뭐라고 할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고… 할 것 같아.”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아니지. 아무것도 충분하지 않을 거야. 24년은 너무 길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약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난 해볼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새벽 2시 3분.
세아의 손은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따뜻해지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어딘가에서—아마도 서울의 어두운 거리의 어떤 카페에서—강리우와 도현이가 처음으로 형과 동생으로 만나고 있었을 것이다. 24년 늦은 만남. 하지만 여전히 만남이었다.
강리우의 손가락도 떨리고 있을 것이다. 도현이의 손가락도.
그들은 무엇을 말했을까? 아마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을 것이다. 같은 눈빛으로, 같은 골격으로, 같은 슬픔으로.
“형…”
도현이가 말했을 것이다.
“…안녕.”
그리고 강리우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마도 그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24년의 분노와 상처가 목구멍에 걸려 있었을 테니까.
“안녕, 동생.”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주 천천히, 아주 신중하게.
그들의 손가락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혼자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함께하는 떨림이었다.
가족의 떨림이었다.
—
병실로 돌아가면, 어머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눈 위의 얼굴은 더 이상 고통으로 뒤틀려 있지 않았다. 그것은 평화로워 보였다. 아주 천천히 찾아온 평화.
세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새벽. 아직 어두웠지만, 곧 밝아올 것이었다. 태양은 계속 떴다. 어떤 비밀이 있든, 어떤 상처가 있든. 새로운 날은 계속 찾아왔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어떤 것들이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생.
—
**END OF CHAPTER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