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9화: 사람은 불을 껐을 때 비로소 보인다
한강공원의 벤치는 밤 11시 반의 도시를 맞이하고 있었다. 합정역에서 가까운 공원. 세아가 강리우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첫 번째 장소. 강리우는 여기서 자주 앉아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알 수 없었다. 단지 알고 있었을 뿐이다. 마치 누군가의 습관을 읽는 것처럼. 음악을 읽는 것처럼.
밤 공기는 차가웠다. 11월의 차가움. 겨울이 서울 위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시점. 한강 너머로 강남의 불빛들이 떨어져 있었다. 세아는 벤치 위에 강리우를 발견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동상처럼. 또는 벤치의 일부인 것처럼.
세아는 그의 옆에 앉았다. 말 없이. 강리우도 말하지 않았다. 둘 다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 위로 떨어진 불빛들. 그것들이 물에 반사되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별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도현이가 물었어.”
세아가 처음으로 말했다.
“뭘?”
강리우의 목소리는 멀리서 오는 것처럼 들렸다.
“엄마가 뭐 하는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강리우가 움직였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을 들어올리는 것이 큰 작업인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형광등이 없는 밤 공기 속에서도 보였다. 그 떨림.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까?”
강리우가 물었다.
“엄마가 24년을 침묵했어. 그리고 지금 겨우 깨어났어. 그런 사람이 뭘 할까?”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수사적 질문이었다. 강리우가 자신에게 묻는 게 아니라 우주에 묻는 질문.
“나도 모르겠어.”
세아가 한참 후에 말했다.
“너는?”
강리우가 웃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것. 숨을 내쉬는 소리에 가까운 것.
“나는…”
그가 말했다.
“나는 24년을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야. 법적으로는. 그런데 지금 존재하기 시작했어. 엄마가 입을 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뭘 해야 해? 축하해야 해? 아니면 이전처럼 존재하지 않은 척 해야 해?”
바람이 불었다. 한강 쪽에서 오는 바람. 차갑고, 약간의 습기를 품고 있었다. 세아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었다. 그녀는 그것을 정리하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어. 넌 강민준의 실패한 계획이면서 동시에 엄마가 선택한 것이라고.”
세아가 말했다.
“그게 뭐라는 뜻일까?”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처음으로 이 대화에서 그녀를 직접 바라봤다.
“그건 모순이야. 동시에 두 개일 수 없어. 뭔가는 포기돼야 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죽여야 해.”
강리우가 말했다.
“그런데 엄마는 둘 다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해. 어느 쪽이 사실인지 모르니까. 내가 원치 않은 것인지, 아니면 선택받은 것인지.”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더 천천히. 더 의도적으로. 마치 누군가와 신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너는 어때?”
세아가 물었다.
“너는 너 자신을 뭐라고 생각해?”
침묵. 강리우는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멈추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모르겠어.”
그가 마침내 말했다.
“이 며칠 동안 난 내가 뭔지 모르겠어. 나는… 강민준의 아들이야. 그렇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아이야. 그리고 넌…”
그가 세아를 다시 봤다.
“넌 뭐야? 내 여동생이야. 하지만 넌 나를 그렇게 본 적이 없어. 넌 처음부터 나를 뭔가 다른 것으로 봤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녀가 강리우를 처음 만났을 때—아니, 사실은 훨씬 더 오래전부터—그녀는 그를 형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뭔가 다른 범주에 있었다. 위험한 것. 또는 구원하는 것. 또는 그 둘 다.
“넌 나한테 뭐 같아?”
강리우가 물었다. 그것은 방어적인 질문이 아니었다. 진정한 궁금증.
세아는 생각했다. 오래. 한강 위의 불빛들을 보면서. 그 불빛들이 물 위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지 보면서.
“불 같아.”
세아가 말했다.
“꺼지지 않는 불 같아. 계속 타고 있는데, 아무도 그걸 끌 수 없는.”
강리우가 움직였다. 그의 손이 벤치 위에 있었고, 세아는 그 손을 봤다. 떨리는 손. 그 손을 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그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그가 물었다.
“불은 따뜻하지만 아프기도 해. 밝지만 어둠도 만들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불은 단지 불이었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랐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두 사람은 택시 안에서 말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서울이 흘러갔다. 밤의 서울. 형광등과 네온사인으로 이루어진 도시. 이 도시에서 누군가는 자고 있고, 누군가는 일하고 있고, 누군가는 깨어 있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세아는 창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봤다. 반투명한 얼굴. 마치 유령처럼. 또는 이미 죽어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그 얼굴이 자신의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너무 낯설었다.
“너는 아직도 강민준을 찾지 않았어?”
강리우가 갑자기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강민준. 우리 아버지. 너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세아는 생각했다. 강민준. JYA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그녀가 처음 만난 사람. 음악 산업의 실제적인 얼굴. 강리우의 아버지. 어머니의 옛 사랑(또는 그 이상). 도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만나고 싶어?”
강리우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모르겠어.”
그가 대답했다.
“어쩌면 만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만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택시가 멈췄다. 병원 입구. 그들은 내렸다. 형광등 아래. 밤 11시 55분. 자정 5분 전. 시간은 계속 흘렀다.
병실로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깨어 있었다.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게. 마치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약했다. 하지만 명확했다.
“넌 강민준을 봤어?”
강리우는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아니요.”
그가 대답했다.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주목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어떤 낯선 사람인 것처럼.
“넌 그를 봐야 해.”
어머니가 말했다.
“왜?”
“왜냐하면…”
어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그가 널 찾고 있거든.”
세아와 강리우는 동시에 어머니를 봤다. 그녀는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었다.
“강민준이 나한테 전화했어. 두 시간 전에. 그는 내가 깨어났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는 넌 뭐 하고 있냐고 물었어. 넌 아직도 그곳에 있냐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곳은 어디야?”
세아가 물었다.
“JYA. 그의 회사에.”
강리우의 몸이 경직되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의 등이 곧게 펴지는 것. 마치 뭔가가 그를 위협하는 것 같은 반응.
“아버지가 왜 나한테 전화를 했어?”
강리우가 물었다.
“왜냐하면 넌 이 며칠 동안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으니까.”
어머니가 대답했다.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이 며칠 동안 강리우가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어머니 옆에.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는 다른 곳에 있었을 수도 있다. 어딘가 세아도 모르는 곳에.
“아버지가 뭐라고 했어?”
강리우가 물었다.
“돌아오라고 했어. 그리고…”
어머니가 멈췄다. 마치 다음 말을 하는 것이 힘드는 것처럼.
“그리고 뭐?”
강리우가 물었다.
“그리고 그는 너한테서 떠나라고 했어.”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눈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강리우를 봤다.
“그녀(세아)한테서 떠나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를 회사에서 내보겠다고.”
침묵. 형광등의 윙윙거리는 소리. 밤 11시 57분. 자정까지 3분.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그의 얼굴이 무언가로 가득 찼다가 천천히 비워지는 것을 봤다. 마치 누군가가 그 안에서 무언가를 빼내가는 것처럼.
“그럼 뭐 하겠다는 거야?”
강리우가 물었다. 목소리가 부서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걸 원하면? 내가 너를 떠나면? 그럼 뭐가 된다는 거야?”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강리우의 손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빼냈다. 아주 천천히. 마치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세아는 창밖을 봤다. 밤의 서울. 그곳에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있었고, 누군가의 상사가 있었고,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알았다. 이것이 불이 어떻게 꺼지는지 하는 것. 외부에서 누군가가 그것을 질식시킬 때. 산소를 빼앗을 때. 다른 누군가의 조건으로 그것을 통제할 때.
강리우가 일어났다. 의자를 밀면서.
“나 나가봐야겠어.”
그가 말했다.
“어디로?”
세아가 물었다.
“사무실로. 아버지한테. 뭐가 뭔지 듣고 와야겠어.”
세아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럴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강리우는 그의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세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병실의 문이 닫혔다.
세아는 어머니와 남겨졌다. 두 명의 여자. 또는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유령. 또는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재가 된 것.
“왜 강민준한테 말했어?”
세아가 물었다.
“뭐?”
어머니가 물었다.
“강리우가 여기 있다고. 왜 그를 노출시켰어?”
어머니는 천장을 다시 봤다.
“왜냐하면…”
그녀가 말했다.
“내가 더 이상 거짓말할 수 없어. 내 목소리가 돌아왔어. 그리고 거짓말을 할 수 없어. 거짓말은 불을 꺼버려. 내 불을. 그리고 난 그걸 하고 싶지 않아.”
세아는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목소리와 불. 거짓말과 소멸.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자정이 되었다. 형광등이 변하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가 바뀌었다.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공기 속에. 침묵 속에. 자신의 뼈 속에.
강리우의 택시가 강남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밤 자정의 강남. JYA 엔터테인먼트의 사무실이 있는 곳. 그곳에서 강민준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들을 기다리면서. 또는 딸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었다.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다시. 왼손. 한, 둘, 셋, 넷, 다섯. 이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손가락을 세는 것. 자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어머니의 호흡이 고르게 들렸다. 그녀는 다시 잠들고 있었다. 또는 깨어 있으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세아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병실은 다시 침묵으로 채워졌다. 형광등의 빛 아래. 밤의 깊이 속에.
세아는 창밖을 봤다. 강남의 불빛들. 그곳에서 무언가가 결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여기까지 도달할 것이었다. 이 병실까지. 이 침묵까지.
불은 꺼지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하지만 세아는 이제 알았다. 불은 언제나 꺼질 수 있다. 누군가가 산소를 빼앗아갈 때. 누군가가 더 강한 어둠을 가져올 때.
그리고 그 어둠은 이미 출발했다. 강남에서. 밤 자정의 강남에서.
# 산소를 빼앗기다
누군가가 그것을 질식시킬 때. 산소를 빼앗을 때. 다른 누군가의 조건으로 그것을 통제할 때.
강리우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몸이 경직된 상태로. 마치 누군가가 그의 척추뼈를 하나하나 움직이는 것처럼. 의자를 밀 때 나는 소리는 금속과 바닥의 마찰음이었다. 병실 안의 침묵을 깨뜨리는 음파. 그 소리가 세아의 귓가에 박혔다.
“나 나가봐야겠어.”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주 작게.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세아는 감지했다. 그녀는 항상 그의 떨림을 감지했다. 마치 그의 피부 아래에서 울리는 공명음처럼. 또 다른 심장이 그의 심장 옆에서 뛰고 있는 것처럼.
“어디로?”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의도적으로 차분했다. 마치 그 차분함이 방패막이 되어 강리우의 떨림을 막을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방패는 투명했다. 혹은 존재하지 않았다.
강리우는 세아를 보지 않았다. 병실의 창을 보고 있었다. 창밖의 밤을 보고 있었다. 밤은 검은 천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천 위에는 불빛들이 박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검은 천에 바늘로 구멍을 뚫었을 때 뒤에서 나오는 불빛처럼. 강남의 불빛들. 그곳에서 무언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사무실로. 아버지한테. 뭐가 뭔지 듣고 와야겠어.”
강리우가 말했다. 이제 그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결연함 아래에는 공포가 있었다. 깊은 곳에 내려앉은 공포. 마치 검은 물의 밑바닥에 내려앉은 것처럼. 세아는 그 공포를 느꼈다. 공기를 통해서. 침묵을 통해서. 자신의 피부를 통해서.
세아는 강리우를 붙잡을 생각을 했다. 손을 뻗어서. 그의 팔목을 잡아서. “가지 마”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손을 들지 않았다. 손은 침대 위에 남아있었다. 마비된 손처럼. 아니다. 마비되지 않았다. 단지 움직일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럴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강리우는 그의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세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이것이 그들 사이의 약속이었다. 또는 약속이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서로를 통제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질식시키지 않으면서. 산소를 나누면서.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서.
병실의 문이 닫혔다.
강리우가 가버렸다. 밤의 강남으로.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리우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기다림은 항상 조건부였다. “만약 넌 이것을 한다면, 난 저것을 하겠지”라는 식의 조건부. “만약 넌 그것을 포기한다면, 난 너를 받아주겠지”라는 식의 조건부.
세아는 어머니와 남겨졌다.
두 명의 여자. 또는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유령. 또는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재가 된 것. 세아는 이 세 가지 정의 중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셋 다 맞을 것이었다. 어머니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유령이었다. 유령이면서 동시에 재였다. 모든 것이 동시에 참이었다. 이것이 어머니가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모순 속에서. 불가능성 속에서.
침대 위에서 어머니의 몸이 보였다. 하얀 침대보 위의 하얀 몸. 마치 침대보 자체가 어머니로 변해 있는 것처럼. 경계가 흐릿했다. 어디서부터가 침대보이고 어디서부터가 어머니인지. 호흡의 움직임만이 그것을 구분했다. 가슴의 작은 상하 운동. 그것이 어머니가 여전히 산소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전히 호흡하고 있다는 증거.
“왜 강민준한테 말했어?”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의도하지 않게.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목구멍을 튕겨낸 것처럼. 날카로움은 통증처럼 느껴졌다.
“뭐?”
어머니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멀었다. 마치 다른 차원에서 오는 것처럼. 또는 깊은 물 아래에서.
“강리우가 여기 있다고. 왜 그를 노출시켰어? 왜 아버지한테 말했어?”
세아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떨렸다. 강리우처럼. 같은 떨림. 같은 공포.
어머니는 천장을 다시 봤다. 흰 천장. 형광등이 박혀 있는 흰 천장. 그 천장 위에는 세상이 있었다. 다른 세상. 더 큰 세상. 어머니는 항상 그곳을 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곳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또는 자신이 그곳에서 도망쳤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왜냐하면…”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천천히 올라왔다. 깊은 물 아래에서. 마치 누군가가 그녀를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내가 더 이상 거짓말할 수 없어. 내 목소리가 돌아왔어. 그리고 거짓말을 할 수 없어. 거짓말은 불을 꺼버려. 내 불을. 그리고 난 그걸 하고 싶지 않아.”
세아는 이해하려고 했다. 목소리가 돌아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이 무엇인지. 거짓말과 불 사이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마치 다른 언어로 말해지는 것처럼 들렸다. 또는 마치 그 말들이 마음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세아가 도달할 수 없는 깊이에서.
“어머니, 뭔 말씀이세요?”
세아가 물었다. 이번에는 절망이 섞여 있었다. 절망 속의 요청.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다는 간청.
하지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천장을 보고 있었다. 마치 세아의 질문이 들리지 않은 것처럼. 또는 들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던 것처럼.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세아는 모르고 있었다. 시간은 병실 안에서 다르게 움직였다. 천천히. 또는 빠르게. 또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형광등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알 수 없었다. 항상 같은 밝기. 항상 같은 백색광. 그 빛 아래에서 시간은 무의미했다.
자정이 되었을 것이다. 세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병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간호사의 발걸음 소리. 다른 환자들의 신음음. 그 모든 것들이 줄어들었다. 밤이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 자정이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
강리우의 택시가 강남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그녀가 그 택시 안에 있는 것처럼. 강리우의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의 호흡을 들으면서. 그의 공포를 느끼면서.
밤 자정의 강남. JYA 엔터테인먼트의 사무실이 있는 곳. 그 건물은 높았을 것이다. 마천루처럼. 하늘을 찌르는 건물처럼. 그리고 그 건물의 어딘가, 아마도 맨 위층에 강민준이 있었을 것이다. 창 너머로 강남의 야경을 보면서. 전력으로 아들을 기다리면서. 또는 딸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하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었다.
한, 둘, 셋, 넷, 다섯.
오른손.
그리고 다시.
한, 둘, 셋, 넷, 다섯.
왼손.
손가락을 세는 것. 이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강리우를 따라갈 수 없었고.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손가락을 세는 것만이 가능했다. 자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자신의 몸이 여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누군가가 그것을 빼앗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손가락을 세면서 세아는 생각했다.
*내가 아직 여기 있다. 내 손가락들이 여기 있다. 내 몸이 여기 있다. 아무도 그것을 빼앗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곧 사라졌다. 왜냐하면 세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누군가가 것을 빼앗아갔다는 것을. 무엇을? 자유를. 선택. 미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강리우.
강리우는 여전히 그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곧 아닐 것이었다. 아버지가 그를 가져갈 것이었다. 아니다. 더 정확히는, 강리우가 자신을 아버지에게 넘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세아, 어머니, 그리고 강리우 자신.
어머니의 호흡이 고르게 들렸다.
그녀는 다시 잠들고 있었다. 또는 깨어 있으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또는 그 둘 사이의 상태에 있었다. 꿈을 꾸면서 동시에 깨어 있는 상태. 세아는 구분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었기 때문에. 마치 그 얼굴이 그녀의 얼굴이 아닌 것처럼.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 또는 가면. 또는 죽음의 가면.
그리고 병실은 다시 침묵으로 채워졌다.
형광등의 빛 아래. 밤의 깊이 속에. 침묵 속에서 세아는 자신의 심장박동을 들었다. 한 번, 한 번, 또 한 번. 리듬이 있었다. 음악처럼. 또는 시계처럼. 시간을 알려주는 음파.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음파.
하지만 그 심장박동도 점점 약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가슴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심장을 조여 짜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창밖을 봤다.
강남의 불빛들. 그것들은 별처럼 보였다. 하지만 별이 아니었다. 별은 죽은 빛이었다. 수십억 년 전에 나온 빛이었다. 하지만 강남의 불빛들은 살아 있는 빛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나오는 빛이었다. 건물들 안에서. 자동차들 안에서. 사무실들 안에서. 그리고 호텔들 안에서.
그곳에서 무언가가 결정되고 있었다.
강민준의 사무실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강리우가 들어갈 때 어떤 말들이 오갈 것인가. 어떤 선택이 제시될 것인가. 어떤 조건이 붙을 것인가.
*“네 누나를 포기해. 그러면 난 너를 받아주겠지. 회사를 물려주겠지. 모든 것을 주겠지. 하지만 그 대신 너는 그녀를 잊어야 해. 영원히. 완전히. 그녀는 너의 누나가 아니야. 그녀는 존재하지 않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그렇게 될 것이었다.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강민준의 방식이었다. 조건. 통제. 질식.
그리고 그 결정은 여기까지 도달할 것이었다.
이 병실까지. 이 침묵까지. 이 침대까지. 세아의 가슴까지. 그녀의 심장까지. 그곳에서 모든 것이 끝날 것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다시 세었다.
한, 둘, 셋, 넷, 다섯.
하지만 이번에는 다섯까지 세는 것이 어려웠다. 마치 한 손가락씩 사라지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빼앗아가는 것처럼.
불은 꺼지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누구였을까.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어머니였을까. 아니면 강리우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였을까.
하지만 세아는 이제 알았다.
불은 언제나 꺼질 수 있다.
누군가가 산소를 빼앗아갈 때.
누군가가 더 강한 어둠을 가져올 때.
누군가가 조건을 붙일 때.
누군가가 “선택해”라고 말할 때.
그리고 그 어둠은 이미 출발했다.
강남에서. 밤 자정의 강남에서. 택시 안에 앉은 강리우와 함께. 그의 공포와 함께. 그의 결연함과 함께. 그의 약함과 함께.
어둠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그것은 강남의 거리를 통해 흐르고 있었다. 불빛들 사이를 헤치며. 건물들 사이를 헤치며. 그리고 결국 이 병실에 도달할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기 속에서. 침묵 속에서. 자신의 뼈 속에서.
변화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었다.
강리우가 사무실의 문을 열 때. 아버지를 마주볼 때. 그 순간, 모든 것이 바뀔 것이었다. 세상이 두 개로 나뉠 것이었다. 전과 후. 예전의 강리우와 새로운 강리우. 예전의 가족과 새로운 가족.
그리고 세아는 어느 쪽에 속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밤의 깊이 속에서. 병실의 형광등 빛 아래에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아는 다시 창밖을 봤다.
강남의 불빛들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또는 그렇게 보였다. 실제로는 그럴 리 없었다. 밤이 더 깊어지고 있는데. 하지만 세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마치 불빛들이 그녀를 태워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마치 그것들이 독불인 것처럼.
그리고 병실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