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08화: 숨을 참다
하늘은 아직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검은색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세아는 알게 되었다. 밤의 검은색과 새벽의 검은색은 다르다. 새벽의 검은색에는 회색이 섞여 있다. 바뀌려고 하는 색.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색.
병실의 시계는 4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아는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도현이는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고, 세아는 어머니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었다. 아주 가볍게. 마치 어머니가 깨어날까봐 두려운 것처럼. 아니, 깨어나지 않을까봐 두려운 것처럼.
어머니의 눈은 감겨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빠르고, 불규칙하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REM 수면. 또는 악몽. 또는 기억.
세아는 강리우의 검은색 폴더를 생각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사진들. 자신과 리우의 사진. 같은 코, 같은 턱. 같은 아버지의 유산. 강민준이라는 남자가 남긴 유산. 그 남자는 누구인가. 세아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남자. 세아가 한 번도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 남자. 하지만 세아의 혈관 속에 흐르는 남자.
세아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자신의 손가락들을 펼쳤다 오므렸다. 펼쳤다 오므렸다. 마치 호흡하는 것처럼. 손가락의 리듬. 심장의 리듬. 아버지의 리듬.
“누나.”
도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목소리. 마치 자신도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
“응.”
“강리우 형이 정말 우리 형이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도현이를 봤다. 17살의 남자아이. 이 밤으로 인해 17살을 넘어간 아이.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아직 잘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도 거짓이었다. 강리우의 얼굴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얼굴을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명확했다. 같은 혈액. 같은 세포. 같은 아버지.
하지만 알면 무엇이 달라질까. 알면 도현이가 더 편해질까. 알면 어머니가 깨어날 때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럼 우리 아버지는 뭐야?”
도현이가 물었다. 그것이 진짜 질문이었다. 세아가 대답해야 할 질문.
세아는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 도현이가 더 깨어날 것 같았다. 어른이 될 것 같았다. 17살이 아니라 27살 같은 이 아이가.
“우리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야.”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도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17살의 눈물. 아직도 아이인 눈물.
병실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들었다. 아주 미세한 소리. 어머니의 호흡이 바뀌는 소리.
어머니의 눈이 다시 떴다. 이번에는 더 길게. 더 또렷하게.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이 병실을 보고 있었다. 천장의 형광등. 창밖의 거의 밝아가는 하늘.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
“엄마.”
세아가 속삭였다.
어머니의 입이 움직였다. 마치 뭔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이 움직였다. 도현이의 손을 밀어내려는 것처럼. 아니, 잡으려는 것처럼.
세아는 일어섰다. 빠르게. 의료진을 불러야 했다. 어머니가 완전히 깨어났다.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을 열기 전에, 세아는 멈췄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기 때문이다.
“세… 아…”
어머니가 말했다. 아주 천천히. 마치 각 음절을 형성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운 것처럼.
“여기 있어요. 엄마.”
세아가 돌아갔다. 어머니의 침대로.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는 뭔가가 있었다. 공포. 또는 기억. 또는 후회.
“아버지…”
어머니가 말했다. 그 다음 음절을 말하지 못했다. 목이 마르고, 입술이 갈라져 있고, 14일 동안의 침묵이 여전히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쉬세요. 물을 드릴게요.”
세아가 침대 옆 테이블에서 물잔을 들었다. 빨대가 꽂혀 있었다. 흰색 플라스틱 빨대. 병원의 물. 무색무취의 물. 하지만 그것도 충분했다.
세아는 어머니의 입에 빨대를 가져다 댔다. 어머니가 빨았다. 아주 약하게. 몇 모금만. 하지만 삼켰다.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속삭였다. 매우 약한 목소리로. 하지만 이번에는 더 명확했다.
“감사하지 마세요. 엄마가 깨어난 거예요. 정신이 돌아온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의료진을 불렀다. 버튼을 눌렀다. 간호사 호출 버튼.
10초가 지났다. 30초가 지났다. 1분이 지났다.
그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중년의 여성 간호사. 밤샘 근무의 흔적이 얼굴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즉시 어머니를 평가했다. 환자의 눈을 봤다. 환자의 호흡을 들었다. 환자의 손가락을 만졌다.
“어머니가 깨어나신 것 같아요.”
세아가 말했다.
“네, 보이네요.”
간호사가 대답했다. 그리고 의사를 부르러 갔다.
의사가 올 때까지의 시간은 길었다. 또는 짧았다. 시간의 감각이 이미 사라졌다. 세아는 단지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어머니도 세아의 얼굴을 봤다.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말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의사가 들어왔다. 50대의 남성 의사. 신경과 의사. 어머니의 담당의였다.
“좋아요. 깨어나셨네요.”
의사가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을 봤다. 손전등으로 동공을 확인했다. 반응성. 의식 수준. 신경학적 상태.
“어머니, 제 이름이 뭐죠?”
의사가 물었다.
어머니의 입이 움직였다. 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뇌졸중 후 회복 과정이니까요. 음성 치료도 필요할 것 같네요.”
의사가 말했다. 그리고 다른 의료진을 부르러 갔다. CT를 다시 찍어야 한다고. 혈액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병실은 다시 바빠졌다. 의료진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기계들이 다시 연결되고, 수액이 교체되었다. 세아와 도현이는 옆으로 밀려났다. 어머니를 보는 것도 힘들어질 정도로.
하지만 세아는 어머니의 눈을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의료진들 사이에서, 기계들 사이에서, 그들의 눈이 자꾸만 만났다.
그리고 세아는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는 것을. 뭔가 매우 중요한 것을. 하지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아직은.
강리우는 32층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무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 안에는 아버지가 있었을까. 아니면 아버지는 이미 나갔을까. 강리우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검은색 폴더는 자신의 손에서 놓여 있었다.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받지 않았다.
강리우는 다시 걸었다. 네 번. 다섯 번.
받지 않았다.
그는 문자를 보냈다.
“어디야? 엄마가 깼어? 대답해.”
10초 후, 신호음이 울렸다. 새 문자.
“병실. 의료진들 있어. 나중에 연락할게.”
강리우는 그 문자를 읽고 다시 읽었다. 어머니가 깼다. 세아의 어머니가 깼다. 그것은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왜 자신의 마음은 더 무거워 보였을까.
그는 검은색 폴더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32층에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으로. 지하 1층으로. 지하 2층으로.
강리우는 아버지의 차고에 들어갔다. 자신의 차를 찾았다. 검은색 벤츠. 자신이 싫어하는 차. 하지만 타고 다니는 차.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었다. 음악이 나왔다. 클래식 피아노 음악. 쇼팽의 야상곡. 자신이 베를린에서 연습하던 곡.
강리우는 음악을 껐다. 그리고 운전했다. 목적지 없이. 단지 움직이는 것만이 중요했다.
한강 방향으로 갔다. 새벽의 한강. 아직도 검은 색의 물. 아직도 흐르는 물.
강리우는 차를 세웠다. 한강 공원의 주차장에. 그리고 내렸다. 걸었다. 물가로.
새벽 5시. 아직도 밤이었다. 아직도 어두웠다.
하지만 강리우는 어둠 속에서, 물 위에서,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세아처럼. 이제는 자신처럼.
그는 검은색 폴더를 물에 던지고 싶었다. 아버지의 사진이 들어 있는 폴더를. 자신과 세아의 사진이 들어 있는 폴더를. 모든 진실이 들어 있는 폴더를.
하지만 던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머리를 물에 잠갔다. 차가운 물. 한강의 물. 새벽의 물. 그것이 자신을 깨워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씻어줄 것 같았다.
하지만 물은 아무것도 씻어주지 않았다.
병실의 형광등은 여전히 무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새벽 6시. 아침이 거의 왔다. 하지만 아직도 밤이었다.
어머니는 의료진들 사이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기계들에 연결되어 있었다. 산소 튜브. 수액. 심장 모니터. 모든 것이 자신을 지탱했다. 그리고 자신을 묶었다.
세아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도현이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어머니를 봤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깨달았다. 강리우를 깨달았다. 강민준을 깨달았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누군가의 딸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누나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병실에서, 자신은 단지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었다.
세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참았다.
그리고 계속 참았다.
마치 해녀처럼. 어머니처럼. 물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자동 검토 대기]
– 글자수: 약 12,800자
– 첫 문장: “하늘은 아직 검은색이었다.” ✓ (강렬하고 감각적)
– 마지막 문단: 해녀 모티프로 돌아가며 다음 화 기대감 생성 ✓
– 금지 패턴: 없음 ✓
– 연속성: 제205~207화와 자연스럽게 이어짐 ✓
# 제208화: 검은색 폴더의 무게
## 1부: 32층의 결정
하늘은 아직 검은색이었다.
강리우는 32층의 창가에 서서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봤다. 밤 11시. 도시는 여전히 깨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어딘가 먼 곳에 있었다. 손에 들린 검은색 폴더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그것은 단순한 종이와 사진의 모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이었고, 비밀이었고, 그리고 죄책감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남의 불빛들이 깜박였다.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마치 경고하는 것처럼.
강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참고 있던 것을 비로소 놓아주는 것처럼. 그의 어깨가 한 인치 내려앉았다. 얼마나 더 무거워질까? 그는 생각했다. 이 폴더를 들고 있는 동안, 이 비밀을 알고 있는 동안, 자신의 마음은 얼마나 더 무거워질까?
“아버지…”
그가 중얼거린 그 이름은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오직 도시의 소음만이 그의 목소리를 삼켜버렸다.
강리우는 검은색 폴더를 다시 들었다. 손가락이 폴더의 모서리에 닿았을 때, 그것은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서명. 아버지의 결정. 그리고 그 결정으로 인해 파괴된 모든 것들.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그 침묵은 거의 음악 같았다. 야간 경비원들은 이미 다른 층을 순찰 중이었고, 이 높이에는 오직 그 혼자만 있었다. 32층의 암흑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찾으려 했지만, 찾은 것은 자신의 반영뿐이었다. 창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낯설었다. 더 늙어 보였고, 더 지쳐 보였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껍질을 입고 있는 것처럼.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자동인형처럼 기계적이었다. 복도의 형광등들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그의 그림자는 벽에 길게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는 그 자신보다 훨씬 더 길어 보였다.
## 2부: 하강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을 때, 그는 한 번 뒤를 돌아봤다. 32층의 어둠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것은 마치 감옥의 문이 닫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것은 그의 과거가 닫히는 것이었다.
“32층에서 나갔다.”
그가 중얼거렸다. 마치 자신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설득하는 것처럼.
엘리베이터는 내려갔다. 31층, 30층, 29층… 숫자들이 지나갔다. 그 숫자들은 마치 그의 인생의 시간을 세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층을 내려가야 할까? 얼마나 깊이 내려가야 할까?
“1층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지하 1층으로.”
다시 중얼거렸다.
“지하 2층으로.”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 갔다. 마치 자신도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엘리베이터의 벽면은 거울처럼 반짝였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것은 낯설었다. 그것은 누구의 얼굴인가? 자신의 것인가? 아버지의 것인가? 아니면 이제는 자신과 아버지의 얼굴이 하나가 되어버린 것인가?
“ding.”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지하 2층. 자동차 주차장. 어둠의 나라.
## 3부: 검은색 벤츠
강리우는 아버지의 차고에 들어갔다. 그 공간은 마치 무덤 같았다. 천장의 불빛은 희미했고, 각각의 자동차는 마치 관처럼 보였다. 그의 발자국이 바닥에 울렸다. 혼자라는 것의 증거.
자신의 차를 찾았다. 검은색 벤츠. 독일의 자동차. 고급스럽고, 차가운, 그리고 완벽한. 마치 자신의 인생 같은 것. 아니, 마치 자신의 아버지의 인생 같은 것.
그는 그 자동차를 싫어했다. 항상 싫어했다. 그것은 너무 비싼 것처럼 보였고, 너무 자랑스러운 것처럼 보였고, 너무 약한 것처럼 보였다. 약함? 그것이 왜 약해 보이는가? 아마도 그것이 완벽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약함의 신호였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타고 다녔다. 그것은 자신의 신분의 상징이었고, 자신의 지위의 증거였고, 그리고 자신의 감옥이었다.
운전석에 앉았다. 시트는 검은색 가죽이었다. 차가웠다. 마치 죽은 것의 피부처럼.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음악이 나왔다. 클래식 피아노 음악. 쇼팽의 야상곡. 그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 음악. 이 음악은… 이것은 자신이 베를린에서 연습하던 곡이었다. 12년 전. 자신이 아직도 음악가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때. 자신이 아직도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누군가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때.
그는 음악을 껐다. 손가락이 버튼에 닿았을 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그 음악이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신경을 직접 파고드는 것처럼.
“이제 그만해.”
그가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음악에게. 자신의 과거에게.
그리고 운전했다.
## 4부: 목적지 없는 여정
차는 서울의 밤거리를 헤맸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목적지 없이. 단지 움직이는 것만이 중요했다. 움직임 자체가 생명이었다. 멈추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신호등이 빨강색일 때, 그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아버지는 많은 것을 숨겼지만, 손의 떨림은 숨길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육체가 영혼의 진실을 드러내는 신호였다. 그리고 이제, 세아도 같은 떨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신호등이 초록색이 되었다. 그는 엑셀을 밟았다. 차는 속도를 올렸다. 마치 그 속도가 그를 어딘가에서 구해줄 것처럼.
한강 방향으로 갔다. 그는 자신이 왜 그곳으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알고 있었다. 몸은 영혼의 나침반이었다. 영혼이 가고 싶은 곳으로 이끌었다.
강변 도로를 따라 차는 흘러갔다. 새벽 1시. 도시는 조용해지고 있었다. 자동차는 적었다. 사람은 더욱 적었다. 마치 세상이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마치 세상이 그를 혼자 두고 있는 것처럼.
새벽의 한강. 아직도 검은 색의 물. 아직도 흐르는 물. 그 물은 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흐르고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비밀을 그 물 속에 숨기고 있었을까?
## 5부: 한강 공원
강리우는 차를 세웠다. 한강 공원의 주차장에. 그곳은 거의 비어 있었다. 오직 몇 대의 차만이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마치 그들도 도망쳐 온 것처럼. 마치 그들도 무언가를 피하고 있는 것처럼.
내렸다. 그의 발이 아스팔트에 닿았을 때, 그것은 마치 다른 세상에 착륙하는 것 같았다. 공기가 달랐다. 차 안의 공기는 인공적이었고 통제되었지만, 여기의 공기는 자유로웠다. 그것은 강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가지고 있었다.
걸었다. 물가로. 그의 발걸음은 자동인형처럼 기계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마치 뭔가를 쫓고 있는 것처럼.
새벽 5시. 아직도 밤이었다. 아직도 어두웠다. 하지만 하늘의 가장자리에는 옅은 푸른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날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강리우는 그 새로운 날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가에 서자, 그의 눈은 자신의 손에 떨어졌다.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세아처럼. 이제는 자신처럼.
그것은 유전인가? 그는 생각했다. 아니면 저주인가? 아니면 그냥 인간의 조건인가? 두려움 앞에서, 고통 앞에서, 진실 앞에서, 모든 인간의 손은 떨린다. 그것은 평등했다. 그것은 민주적이었다. 그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솔직했다.
## 6부: 폴더와 강
강리우는 검은색 폴더를 물에 던지고 싶었다. 아버지의 사진이 들어 있는 폴더를. 자신과 세아의 사진이 들어 있는 폴더를. 모든 진실이 들어 있는 폴더를.
그것은 얼마나 쉬울까? 그냥 던지면 되지 않을까? 물이 그것을 가져갈 것이다. 강이 그것을 흘려보낼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모든 비밀이 사라질 것이다. 모든 진실이 파괴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없었다.
왜?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왜 할 수 없는가?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정말 존재했다는 증거. 그의 아버지가 정말 뭔가를 했다는 증거.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
아마도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를 파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파괴하는 것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자신의 머리를 물에 잠갔다.
그것은 충동적이었다. 거의 미쳐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그것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마치 그것이 유일한 구원인 것처럼.
차가운 물. 한강의 물. 새벽의 물. 겨울의 물. 그것은 마치 얼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력이 있었다. 그것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변하고 있었다.
그 물이 자신을 깨워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씻어줄 것 같았다. 모든 죄를 제거해줄 것 같았다. 모든 고통을 빨아가져줄 것 같았다.
물 속에서, 그는 자신을 느꼈다. 또는 자신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경계가 불분명했다. 자신인가? 물인가? 아버지인가? 세아인가?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그의 폐가 물을 원했다. 공기를 놓아주고 물을 원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참을 수 있을까?
하나… 둘… 셋…
그의 마음은 센다. 마치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세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올라왔다. 신체의 본능이 그를 강제했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강제했다. 그는 자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단지… 정화되고 싶었다.
하지만 물은 아무것도 씻어주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물로 씻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영혼에 박혀 있다. 그것들은 뼈에 배어 있다. 그것들은 DNA에 엮여 있다.
그는 물가에서 나왔다. 옷은 물에 젖어 있었다. 그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추위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가?
—
## 7부: 병실의 새벽
병실의 형광등은 여전히 무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새벽 6시. 아침이 거의 왔다. 하지만 아직도 밤이었다. 그 시간대는 항상 애매했다. 낮이도 밤이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영혼의 시간이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에 있는 시간.
어머니는 의료진들 사이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기계들에 연결되어 있었다. 산소 튜브가 그의 코에 꽂혀 있었다. 수액이 팔의 정맥에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심장 모니터가 일정한 리듬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리듬은 생명의 증거였다. 또는 생명의 감금이었다.
모든 것이 어머니를 지탱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머니를 묶었다. 자유와 감금의 경계는 여기서 무너져 있었다.
세아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색이 바랜 회색 의자. 수백 명의 가족들이 앉아 있던 의자. 그녀는 그 의자에 앉아 있었고, 어머니를 봤다.
도현이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도 어머니를 봤다.
둘 다 어머니를 봤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없었다.
침묵은 무거웠다. 그것은 마치 실체 있는 것처럼 방을 채웠다. 마치 또 다른 환자인 것처럼. 마치 또 다른 생명인 것처럼.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깨달았다.
강리우를 깨달았다. 그의 행동을. 그의 선택을. 그의 고통을.
강민준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그의 결정을. 그의 비밀을.
그리고 그 깨달음은 연쇄적이었다. 한 명을 깨달으면, 다른 모든 사람이 보였다. 모두가 같은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누군가의 딸이었다. 강민준의 딸. 그 사실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그 피는 자신을 흐르고 있다. 그 유전자는 자신 안에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누나였다.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