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2화: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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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화: 계산법

합정동 고시원의 아침은 냄새로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여섯 시 이십 분, 알바가 끝나고 돌아온 세아가 현관문을 열 때마다 맡게 되는 그 냄새 — 복도 끝 방에서 누군가 끓이는 라면 국물과, 오래된 시멘트 벽이 내뿜는 눅눅함과, 누가 뿌렸는지 모를 섬유유연제의 인공적인 달콤함이 섞인 냄새. 그것이 세아에게는 집의 냄새였다. 제주 어머니 집의 냄새는 짠 바람과 된장찌개였는데, 이 년이 지나니까 그 냄새가 가끔 기억이 안 났다. 기억이 안 날 때마다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세아는 되도록 그 냄새를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복도를 지나며 발소리를 죽였다. 2호실 앞에서 열쇠를 꺼내는 손이 차가웠다. 새벽 내내 냉장고 앞을 서성이는 손님들에게 물건을 건네다 보면 손이 이렇게 된다. 세아는 그 손으로 문을 열었다.

방은 좁았다. 창문이 없으니 아침인지 밤인지 방 안에서는 알 수 없었다. 스탠드를 켜면 황색 원이 하나 생겼다. 그 안에 접이식 책상, 얇은 이불이 접혀 있는 침대, 벽에 붙여놓은 코드 메모들, 그리고 낡은 노트북. 노트북은 삼 년 전 모델이었고 배터리가 망가져서 항상 플러그를 꽂아야 됐다. 플러그가 빠지면 작업하던 것이 날아갔다. 한 번 그렇게 곡을 잃었다. 두 번 다시 그 멜로디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 후로 세아는 플러그를 발로 밟는 일이 없도록 동선을 외웠다.

코드 메모들은 형광 포스트잇에 쓰여 있었다. 노란색, 초록색, 분홍색. 색깔마다 의미가 달랐다 — 노란색은 완성된 것, 초록색은 진행 중인 것, 분홍색은 버릴 것 같은데 아직 못 버린 것. 분홍색이 가장 많았다.

세아는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앉았다. 코트를 벗지 않은 채로.

라디오에서 들은 멜로디가 아직도 귓속에 있었다.


사실 세아가 처음 〈창가에서〉를 쓴 건 작년 십일월이었다.

계기는 별거 없었다. 고시원 복도에서 아랫집 할머니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억양이, 낮게 가라앉는 그 리듬이 — 제주 해녀들이 물에서 올라오며 내는 숨비소리와 비슷했다. 삶이 끝날 것 같은데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소리. 세아는 방에 들어와서 바로 코드를 받아 적었다.

한 시간 만에 뼈대가 나왔다. 두 시간 만에 후렴이 나왔다. 후렴이 나올 때 세아는 손가락이 떨렸다 — 기쁨 때문이 아니라 이 멜로디가 맞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뭔가가 제자리를 찾을 때 나는 미세한 클릭 소리 같은 것이 있다. 작곡에서. 뼈가 맞는 소리.

그 곡을 들고 간 곳은 홍대 앞 작은 스튜디오였다. 박인철 — 세아가 세션 일 들어오면서 알게 된 프리랜서 프로듀서. 키가 작고 항상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삼십대 중반의 남자. 처음에 세아는 그를 믿었다. 음악을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좋은데.” 박인철이 데모를 들으며 말했다. “진짜로 좋아. 근데 이 보컬 퀄리티로는 못 써. 편곡 바꾸고 다시 해봐야 해.”

“편곡은 어떻게 바꾸면 돼요?”

“내가 할게. 어차피 프로듀싱 작업 들어가면 원곡이랑 많이 달라지거든. 크레딧은 어떻게 할 거야?”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작곡 크레딧만 있으면 돼요.”

“알겠어. 일단 내가 갖고 있을게. 좋은 아티스트한테 연결되면 연락줄게.”

그게 작년 십이월이었다. 그다음 연락이 없었다. 두 달이 지나서 세아가 먼저 물어봤다. 박인철은 “아직 연결 중”이라고 했다. 세아는 알겠다고 했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세아는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밤, 새벽 두 시 십칠 분에 라디오에서 그 곡이 나왔다.


창문이 없는 방에서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다. 세아는 스탠드 아래 앉아 노트북을 켰다. 멜론 차트를 검색했다. 박소진, 〈창가에서〉. 아직 4위였다. 발매일은 지난주 금요일. 작곡 크레딧을 확인했다.

작사: 박소진, 강민준. 작곡/편곡: Park In-chul.

세아는 화면을 한참 봤다. 그리고 창을 닫았다.

손이 차가웠다. 손이 항상 차갑기는 했다. 이건 그것과 다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세아는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구분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수습이 안 된다.

핸드폰을 들었다. 카카오톡에서 하늘에게 메시지를 쳤다.

나세아: 나 지금 자고 있어?

삼십 초 후에 답장이 왔다. 오하늘은 항상 깨어 있었다. 타투이스트는 밤에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하늘은 특히 새벽 작업을 선호했다.

하늘: 야 나세아 왜 이 시간에. 무슨 일임

하늘: 아니 근데 너 알바 끝나고 자야지 왜 깨어 있어

나세아: 잠이 안 와서.

하늘: 또 곡 쓰는 거 아니지? 어제도 네 방에 불 켜져 있던데

세아는 잠깐 멈췄다가 답장을 쳤다.

나세아: 박인철이 내 곡 팔았어. JYA 신인한테. 내 크레딧 없이.

답장이 이십 초 동안 없었다. 그리고 왔다.

하늘: ??????????

하늘: 어떤 곡

나세아: 작년에 쓴 거. 창가에서. 지금 차트 4위야.

하늘: 야 나세아야

하늘: 지금 당장 그 인간한테 전화해

하늘: 아니 전화 말고 직접 찾아가. 내가 같이 갈게

하늘: 지금 몇 시야 나 나갈 수 있어

세아는 메시지를 보고 창을 닫았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코트를 아직도 입은 채로.

천장이 황색이었다. 스탠드 빛이 천장에 닿으면 그렇게 됐다. 세아는 그 황색을 보면서 후렴을 속으로 불렀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안에서.

이 멜로디는 내 것이었는데.

이제는 박소진의 것이 됐다.

그리고 세상은 그게 더 맞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다.

핸드폰이 또 울렸다. 하늘이었다.

하늘: 야 대답해

하늘: 세아야

하늘: 너 지금 괜찮아?

세아는 잠시 핸드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스탠드를 껐다.


세아가 처음 박인철을 만난 건 작년 여름, 홍대 앞 클럽 〈달의 뒤편〉에서였다. 세아는 그 클럽에서 하우스 밴드 세션 보컬을 했다. 주 이 회, 화요일과 금요일 밤. 페이는 회당 오만 원. 별로 많지 않았지만 — 세션 보컬 자리 자체가 드물었다. 세아는 오디션을 두 번 봤다. 두 번째에 붙었다.

클럽은 작았다. 무대와 객석을 합쳐서 오십 명이 꽉 찰 정도의 공간. 벽에 방음재가 붙어 있는데 여기저기 뜯겨 있었고, 드럼 세트 뒤에 팬이 돌아가며 앰프에서 나는 열기를 식혔다. 맥주 냄새와 땀 냄새와 낡은 앰프에서 나는 타는 냄새가 항상 섞여 있었다. 세아는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뭔가 진짜인 것들의 냄새 같아서.

하우스 밴드는 다섯 명이었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그리고 세아. 다들 이십대 중반에서 삼십대 초반이었고, 각자 주업이 따로 있었다. 기타를 치는 민준오는 낮에 학원 강사였고, 베이스를 치는 정다인은 카페 주인이었다. 음악이 주업인 사람은 드러머 이상훈뿐이었는데, 그는 항상 다른 세션 작업을 다섯 개씩 동시에 하고 있어서 자주 피곤해 보였다.

박인철은 그중 민준오의 선배였다. 어느 금요일 밤에 처음 왔다가 세아의 노래를 듣고 남아서 말을 걸었다.

“곡 써요?”

세아는 무대에서 내려오며 땀을 닦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가끔요.”

“들을 수 있어요? 데모라도.”

“왜요.”

“프로듀서예요. 작곡가 찾고 있어서.”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세아는 받아서 봤다. 박인철, 음악 프로듀서. “특별히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민준이 선배예요, 저.”

세아는 민준오를 봤다. 민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이상한 사람 아님. 음악은 좀 알아.”

그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세아는 세 곡을 박인철에게 줬다. 그중 〈창가에서〉가 처음이었고, 나머지 두 곡도 줬다. 나머지 두 곡은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 박인철이. 세아는 그 말을 믿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믿었다기보다 더 이상 확인하기가 귀찮았다. 확인하는 데 에너지가 필요했고, 세아에게는 에너지가 많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머지 두 곡도 어딘가에 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음 날 오후 두 시에 세아는 눈을 떴다. 일곱 시간 잔 것이었다. 핸드폰에 카톡이 여섯 개였다. 하늘이 다섯 개, 도현이가 한 개.

도현이 메시지를 먼저 봤다.

도현: 누나 엄마 약 다음 주면 떨어진다고 하던데. 이번 달 보내줄 수 있어?

도현: 아 나 학교 끝나고 편의점 알바 구해봤는데 엄마가 공부나 하라고 함 ㅋㅋ

도현: 근데 진짜 ㅋㅋ 아님 누나 힘들면 말해. 나도 뭐 할 수 있는 거 있으면

세아는 메시지를 보면서 엄지손가락으로 답장을 쳤다.

나세아: 응. 이번 주 안에 보낼게. 걱정하지 마.

나세아: 알바 하지 마. 수능 이 년 남았잖아. 공부해.

도현: ㅇㅋ 근데 누나 밥은 먹음?

나세아: 응.

거짓말이었다. 아직 안 먹었다. 먹을 것을 생각하기 전에 박인철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늘에게 답장을 쳤다.

나세아: 어제 미안. 잤어.

나세아: 나 오늘 박인철 찾아가려고.

답장이 즉각 왔다.

하늘: 야!!!!!

하늘: 나 같이 간다고 몇 번을 말했냐고

하늘: 지금 어디야 나 나감


오하늘은 항상 오버사이즈 후드를 입었다. 오늘은 검정 후드에 팔에 타투가 보이도록 소매를 걷어 올린 차림이었다. 합정역 4번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세아를 발견하자마자 팔짱을 끼었다.

“얼굴이 왜 이래.”

“잤는데.”

“잔 얼굴이 아니거든. 밥은?”

“먹었어.”

하늘이 세아를 아래위로 봤다. “거짓말. 가자, 먹고 가.”

“괜찮아. 빨리 가자.”

“세아야.” 하늘의 목소리가 약간 낮아졌다. “지금 박인철 찾아가서 뭐라고 할 건데.”

세아는 잠깐 멈췄다. 사실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뭐라고 할 건지. 어떻게 할 건지. 그냥 가야 할 것 같다는 것만 알았다.

“가서 생각할게.”

“야.” 하늘이 한숨을 쉬었다. “세아야, 진지하게 물어볼게. 너 계약서 썼어?”

“…”

“계약서 없이 줬어? 그냥?”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그 안에 있었다.

하늘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세아. 야. 나세아야. 너 지금 뭐 들고 가서 뭐라고 할 거야. 증거가 없잖아. 네가 썼다는 증거가.”

“핸드폰 메모장에 남아 있어. 날짜랑 같이.”

“그게 법적으로 효력이 있어?”

세아는 모른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법적으로. 그 단어가 좀 낯설었다. 세아가 사는 세계에서 법적이라는 말은 별로 쓰이지 않았다. 그냥 사는 거지, 법적으로 따지는 게 아니라.

“일단 가자.” 세아가 말했다.

“뭐라도 먹고.”

“하늘아.”

“뭐라도 먹고.” 하늘이 꿈쩍도 안 했다. “GS25 들어가. 삼각김밥이라도.”

세아는 하늘을 봤다. 하늘이 세아를 봤다. 두 사람이 서로를 오래 아는 사람들끼리의 침묵을 나눴다.

세아가 먼저 발을 뗐다. 편의점 쪽으로.


박인철의 스튜디오는 홍대 정문 근처 건물 삼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서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계단에서도 냄새가 났다 — 아래층 식당에서 올라오는 튀김 기름 냄새와, 위층 연습실에서 새어 나오는 드럼 소리가 벽을 타고 내려왔다.

세아는 삼층 복도에서 멈췄다. 〈P.I. Studio〉라고 적힌 문패가 있었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 누군가와 통화 중인 목소리.

하늘이 세아의 팔을 잡았다. “내가 들어갈게.”

“내 일이야.”

“나도 알아. 그래도.”

세아는 하늘의 손을 가볍게 치웠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통화 소리가 멈췄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문이 열렸다.

박인철은 세아를 보고 0.5초 정도 표정이 굳었다. 그 0.5초를 세아는 봤다. 세아는 그런 것을 잘 봤다 — 사람들의 얼굴에서 0.5초짜리 진실을.

“어, 세아씨. 어쩐 일이에요.” 그가 문을 더 열었다. “들어와요.”

스튜디오 안은 좁았다. 믹싱 콘솔, 모니터 스피커 두 개, 벽에 방음재. 한쪽 구석에 기타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의자가 세 개 있었는데 하나는 쌓인 하드케이스 위에 올려져 있었다.

세아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섰다. “〈창가에서〉 얘기하러 왔어요.”

박인철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어, 그거. 잘 됐죠? 차트 좋은데.”

“제 크레딧이 없어요.”

“아 그게 — 원래 편곡이 많이 바뀌면 작곡 크레딧이 공유되거나 편곡자 크레딧으로만 올라가는 경우가 있어서.”

“박소진 크레딧에도 없고 강민준 크레딧에도 없어요. 작곡 크레딧에 박인철씨 이름만 있어요.”

박인철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세아는 그 동작을 봤다. 시간을 버는 동작이었다.

“세아씨, 이게 원래 음악 업계가 좀 복잡해서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해서 다 작곡 크레딧을 받는 게 아니거든요. 멜로디의 일부를 제공한 경우에는 프로듀서가 그걸 정리해서 크레딧을 —”

“멜로디 일부가 아니에요.” 세아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멜로디 전부예요. 코드 전부예요. 편곡은 인철씨가 했지만, 그건 제가 쓴 걸 바탕으로 한 거잖아요.”

“세아씨,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

“감정적이지 않아요.”

하늘이 복도에서 팔짱을 끼고 박인철을 봤다. 박인철은 하늘을 봤다가 다시 세아를 봤다.

“세아씨. 우리 처음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요? 계약서 같은 거 없이 그냥 가져와 봐라고 했잖아요. 그건 테스트였어요. 어떤 곡들이 나오는지 보는 테스트. 그게 작곡 의뢰 계약이 아니거든요. 이해해요?”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뭔가가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가슴 안쪽에서. 분노가 아니었다. 분노는 뜨거웠는데, 이건 차가웠다. 뭔가 예상했던 것이 예상대로 이루어질 때 드는 그 차가운 느낌.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데요.” 세아가 말했다.

“뭐가요.”

“나머지 두 곡. 인철씨가 갖고 있는 거.”

박인철이 잠깐 멈췄다. “…그건 아직 아무것도 안 됐어요.”

“돌려주세요.”

“세아씨,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

“중요해요. 제한테는.” 세아는 한 발 앞으로 나갔다. “파일로 줬던 거 삭제 확인하고, 원본 제가 갖고 갈게요.”

“야, 잠깐만요. 세아씨 지금 너무 —”

“인철씨.” 세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약간 달라졌다. 낮아졌다. 제주 사투리가 끝음에서 살짝 올라왔다. “저 지금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그거 모르는 채로도 이 말은 할 수 있어요 — 다음에 또 이러면, 저 법적으로 할 거예요.”

박인철이 세아를 봤다. 세아는 그 눈을 돌리지 않고 봤다.

“…파일 삭제할게요.” 그가 낮게 말했다.

“감사해요.” 세아가 말했다. 감사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공허하게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하늘이 세아의 팔을 꽉 잡았다.

“야.”

“응.”

“너 진짜 — 아 진짜.” 하늘이 말을 못 찾다가 계단 중간에 멈췄다. “법적으로 한다고 했잖아. 그거 진짜야?”

“모르겠어.”

“야, 나세아. 그럼 왜 그 말을 해.”

“해야 할 것 같아서.” 세아는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하지 않으면 계속 그러니까.”

하늘이 세아를 따라 내려왔다. 일층 문을 열고 나왔을 때 홍대 낮의 소음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 어디선가 버스킹이 들렸고, 카페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렀고, 길을 걷는 사람들의 대화가 겹쳐졌다.

세아는 그 소음들 안에서 잠깐 멈췄다.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버스킹 소리 — 기타 코드가 C에서 Am으로 가는 진행이었다. 너무 흔한 진행이었다. 하지만 그 위에 얹힌 목소리가 조금 달랐다. 약간 쉬어 있는, 겨울 내내 차가운 공기를 마신 목소리.

“야, 뭐 봐.” 하늘이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너 지금 저 사람 노래 분석하고 있지.”

“…”

“나세아야.” 하늘이 세아 앞에 섰다. 세아와 눈을 맞췄다. “오늘 그 인간한테 가서 말한 거. 잘한 거야. 근데 그게 끝이 아닌 거 알지? 파일 삭제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그 곡은 이미 나온 거고, 차트에 있는 거고, 박소진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거잖아.”

세아는 하늘을 봤다. “알아.”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어.” 세아가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은 모르겠어.”

하늘이 세아를 오래 봤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화가 났다기보다 — 뭔가를 오래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의 한숨.

“배고프지?” 하늘이 물었다.

“…조금.”

“와, 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하네. 가자. 마라탕 먹자. 내가 살게.”

“괜찮아. 내가 —”

“야, 나세아.” 하늘이 세아의 팔을 끌었다. “오늘은 내가 산다고. 그냥 얻어먹어. 그게 그렇게 어려워?”

세아는 잠깐 멈췄다가 하늘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사실은.


마라탕 가게는 합정역 근처의 작은 중국식 식당이었다. 점심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절반쯤 차 있었다. 세아와 하늘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한강 방향 골목이 보였다.

하늘이 메뉴판을 들고 이것저것 가리켰다. “나 마라 소고기에 버섯 많이. 너는?”

“아무거나.”

“아무거나는 메뉴에 없거든.”

“…나도 같은 거.”

“세아야, 너 매운 거 못 먹잖아.”

“먹어.”

“지난번에 떡볶이 먹다가 눈물 흘렸잖아.”

“그건 떡볶이 때문이 아니었어.” 세아가 조용히 말했다.

하늘이 멈췄다. 세아도 자신이 뭘 말했는지 알았는지, 창밖을 봤다.

“…라즈마 넣지 말고 시켜줘.” 세아가 덧붙였다.

“알겠어.” 하늘이 조용히 말했다.

주문을 하고 나서 두 사람은 잠깐 말이 없었다. 가게 안에서 다른 테이블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대학생쯤 돼 보이는 무리가 웃으면서 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이었다.

“세아야.” 하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창가에서〉 말고, 나머지 두 곡도 비슷한 상황일 것 같지?”

“…아마도.”

“그럼 세 곡이 다 인철이 이름으로 어딘가에 있거나, 팔렸거나 하는 거잖아.”

“모르겠어. 확인을 해봐야.”

“어떻게?”

세아는 핸드폰을 꺼냈다. 멜론 앱을 열고 박인철 이름을 검색했다. 프로듀서로 크레딧된 곡들이 나왔다. 세아는 천천히 스크롤했다. 열두 곡. 그중 자신이 아는 멜로디가 있는지.

있었다.

〈봄의 냄새〉. 작년 가을에 썼던 곡이었다. 잔잔한 어쿠스틱 곡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팝 발라드로 편곡되어 있었다. 아티스트 이름은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 이준혁, 인디 싱어송라이터. 스트리밍 수는 만 오천 회. 차트에 없었다.

“〈봄의 냄새〉도 있다.” 세아가 말했다.

“진짜?”

“응.”

하늘이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이준혁이라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야.”

“마지막 한 곡은?”

세아는 계속 스크롤했다. 〈오후의 빛〉. 그건 없었다. 아직 없거나, 다른 이름으로 있거나.

“〈오후의 빛〉은 아직 없는 것 같아.”

“아직이라고 했잖아. 세아야, 이거 — 이거 진짜 법적으로 해야 해.” 하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변호사 찾아봐야 해. 음악 저작권 전문으로.”

“돈이 어딨어.”

“…”

“변호사 비용이 얼마인지 알아? 나 지금 편의점 알바랑 세션이 전부야. 거기다 어머니 약값이랑 도현이 학원비까지 보내면 한 달에 남는 게 십만 원도 안 돼.”

하늘이 입을 다물었다. 세아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돈 얘기를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보통은 “괜찮아”, “됐어”, “나 신경 쓰지 마”로 끝내는데.

“…내가 조금 보탤 수 있어.” 하늘이 조용히 말했다.

“됐어.” 세아가 즉각 말했다.

“세아야.”

“됐다고.” 세아의 목소리가 약간 굳었다. 그러다가 잠깐 뒤 부드러워졌다. “…고마워. 근데 됐어. 내가 방법 찾을게.”

음식이 나왔다. 마라탕 두 그릇. 뜨거운 국물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두 사람 사이에 잠깐 있다가 사라졌다. 세아는 젓가락을 들고 국물을 한 번 떠먹었다. 맵고 뜨거웠다. 혀가 잠깐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

“맛있다.” 세아가 말했다.

“그래?” 하늘이 조금 웃었다. “맵지?”

“맵긴 한데.”

“참을 수 있어?”

세아는 국물을 한 번 더 떠먹었다. “참을 수 있어.”

하늘이 그 말을 들으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말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저녁 일곱 시에 세아는 달의 뒤편 클럽으로 갔다. 화요일이었다. 하우스 밴드 공연이 있는 날.

클럽은 공연 두 시간 전부터 세팅을 시작했다. 세아가 도착했을 때 드러머 상훈이 드럼 세트를 조율하고 있었고, 기타 민준오는 앰프 앞에서 짧게 짧게 리프를 치고 있었다.

“세아씨, 왔어요.” 민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세트리스트 바꿨어요. 클럽 사장님이 새로운 거 해보자고 해서. 인철이 형이 새 곡 보내줬는데, 오늘 하나 넣어보자고.”

세아가 멈췄다. “어떤 곡이요.”

“아 이거.” 민준오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멜론 링크였다. 세아는 들어가지 않고 제목만 봤다.

〈오후의 빛〉.

세아는 핸드폰을 민준오에게 돌려줬다. “저 그 곡 못 해요.”

“어? 왜요, 들어봤어요? 좋던데.”

“그냥 못 해요.”

민준오가 의아한 표정으로 세아를 봤다. 세아는 표정이 없었다. 설명하기 싫었다. 설명할 에너지가 없었다.

“다른 걸로 하면 안 돼요?” 세아가 말했다.

“사장님한테 물어봐야 할 텐데.”

“물어봐 주세요.”

민준오는 잠깐 세아를 봤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세아는 무대 옆 작은 공간에 가방을 내려놓고 마이크 스탠드 앞에 섰다. 마이크가 아직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아는 그 무연결 마이크를 잠깐 봤다.

〈오후의 빛〉. 그 곡을 쓴 건 작년 봄이었다. 어머니가 처음 입원했을 때. 세아가 제주로 내려가서 병원 복도에 앉아서 쓴 곡이었다. 병원 창문으로 오후 해가 들어오는데 — 그 빛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어머니가 아프고 돈이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 빛이 따뜻했다. 그 모순을 그냥 멜로디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그게 그 곡이었다.

그걸 이 클럽에서 부를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의 제목으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부를 수가 없었다.

민준오가 돌아왔다. “사장님이 다른 거 해도 된다고요. 뭐 할 거예요?”

“〈봄날〉 해요. BTS 거.”

“아, 그거 좋죠.” 민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아씨 그 곡 잘 부르더라고요.”

세아는 대답 대신 마이크 스탠드 높이를 자신에게 맞게 조절했다. 마이크를 잡으면 손이 조금 따뜻해졌다. 마이크는 항상 미지근했다. 손이 닿았던 자리가 남아 있는 것처럼.


공연은 아홉 시에 시작해서 열한 시에 끝났다. 두 시간 동안 열두 곡. 클럽은 절반쯤 찼다. 홍대의 화요일 밤이 늘 그랬다 — 주말만큼 뜨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아는 노래할 때 눈을 뜨고 있었다. 하늘을 보는 것도 아니고, 특정 사람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공간의 중간 어딘가를 봤다. 그게 세아의 습관이었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면 그 사람의 감정이 들어왔다. 들어오면 노래가 달라졌다. 달라지는 게 나쁜 건 아니었는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달라지는 게 — 그게 무서웠다.

〈봄날〉을 부를 때 세아는 자신이 왜 이 곡을 골랐는지 알았다. 이 계절이 다시 올까. 기다림에 대한 곡이었다. 세아는 그 기다림을 알았다. 해녀 어머니가 물속에서 올라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누군가 자신이 쓴 멜로디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마지막 코러스가 끝났을 때 박수 소리가 났다. 세아는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묶여 있었다. 공연이 끝나면 항상 다시 묶었다. 공연 중에 풀렸다가도.

밴드 멤버들이 인사를 했다. 상훈이 드럼 스틱으로 심벌즈를 한 번 쳤다. 관객 중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었다.

세아는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객석을 한 번 봤다.

그때 그 사람이 있었다.

카운터 쪽 바 스툴에 앉아 있었다. 남자, 이십대 후반쯤. 청바지에 베이지 코트. 손을 재킷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박수를 치거나 핸드폰을 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 봤다.

세아를.

아니, 정확히는 세아가 노래를 끝낸 직후의 공간을 봤다. 마치 멜로디가 아직 공기 중에 남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세아는 그 시선이 0.5초 동안 이상하게 느껴졌다가, 가방을 챙기러 갔다.


공연 후 정산을 받고 클럽을 나오면 밤 열두 시였다. 세아는 어깨에 가방을 메고 합정역 방향으로 걸었다. 겨울 밤 합정동의 공기는 차가웠다. 입에서 하얀 숨이 나왔다. 세아는 그걸 보면서 걸었다 — 숨이 보이는 계절.

핸드폰에 하늘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하늘: 오늘 공연 어땠어

하늘: 그리고 나 오늘 손님한테 JYA 로고 타투 해달라는 거 거절했음 ㅋㅋ 나름 항의임

세아는 피식 웃었다.

나세아: 잘했어. 공연은 괜찮았어.

하늘: 오늘 있었던 거 생각하면서 노래했어?

세아는 잠깐 멈췄다가 답장을 쳤다.

나세아: …조금.

하늘: 그래도 노래는 했구나. 다행이다.

세아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었다.

합정역 방향 골목에 들어서려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세아는 돌아보지 않았다. 홍대 밤 골목에서 뒤에 발소리가 들리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발소리가 멈췄다.

“저, 잠깐만요.”

남자 목소리였다. 낮고, 천천히.

세아가 돌아봤다. 클럽에서 봤던 그 남자였다. 베이지 코트. 손이 주머니에서 나와 있었다.

“세아씨, 맞죠?”

세아는 그를 봤다. “…알아요?”

“아니요.” 그가 말했다. “이름은 오늘 처음 알았어요. 클럽에서 멤버 소개할 때.”

세아는 그를 봤다. 그가 세아를 봤다. 가로등 불빛이 그의 옆 얼굴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요.” 세아가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오늘 〈봄날〉 부르셨잖아요.” 그가 말했다. “근데 마지막 코러스에서 전조 안 했잖아요. 원곡은 전조 있는데.”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일부러요?” 그가 물었다.

세아는 잠깐 그를 봤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보였다. 진지했다. 음악 얘기를 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 예의상이 아니라 진짜로 궁금해하는.

“…응.” 세아가 말했다. 존댓말을 생략했다.

“왜요.”

세아는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이 사람에게 왜 대답을 해야 하는가.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근데 그 눈이 — 진짜로 묻고 있었다.

“전조하면 올라가잖아요.” 세아가 말했다. “오늘은 올라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가 잠깐 세아를 봤다.

“…그렇군요.” 그가 말했다. 그것만 말했다. 그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상하지 않았다.

“볼 일 없으면 저 가야 해요.” 세아가 말했다.

“아, 잠깐만요.” 그가 말했다. “명함 하나 드려도 될까요?”

세아는 그를 봤다. 그가 코트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세아는 받아서 가로등 빛에 기울였다.

강리우. JYA 엔터테인먼트 A&R 팀장.

세아는 그 명함을 봤다. JYA. 그 두 글자를 오늘 두 번 봤다. 멜론 차트에서 한 번, 그리고 지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강리우가 말했다. “음악적으로.”

세아는 명함을 들고 그를 봤다. 그는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는 표정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게 무기인 사람의 표정.

“JYA 얘기면 저 관심 없어요.”

“알아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일단 받아두세요.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세아는 명함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버리지 않았다. 왜 버리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었다.

“안녕히 가세요.” 세아가 말하고 돌아섰다.

“세아씨.”

세아가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

“오늘 노래, 좋았어요.” 그가 말했다. “전조 없이도.”

세아는 대답하지 않고 걸었다. 골목 안으로. 가로등이 줄어들다가 없어졌다. 발자국 소리만 남았다.

주머니 안에서 명함의 모서리가 손가락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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