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97화: 가족의 무게, 침묵의 색깔
강리우의 눈이 도현을 향했다. 그것은 인정의 순간이었다. 마치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처럼. 같은 눈동자. 같은 광대뼈의 각도. 같은 입술의 모양. 모든 것이 일치했다. 세아는 그 순간을 목격했고, 그 순간이 자신의 뼈를 얼음으로 만들었다.
도현은 강리우를 바라봤다. 마찬가지로 인정하는 눈으로. 하지만 도현의 눈에는 분노도 있었다. 강리우를 찾아본 것이 분노였다. 또는 강리우가 여기 있다는 것이 분노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 강리우가 이제야 나타났다는 것이 분노였다.
“너 누구야?”
도현이 물었다. 물음이 아니라 도전이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를 봤다.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 말했어? 그 질문이 세아의 얼굴을 적시고 지나갔다.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말로 하지 않고, 움직임으로만. 아니, 나는 말하지 않았어. 그가 자신이 알아낸 거야.
강리우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마치 누군가 그의 등에 실은 짐이 조금 더 무거워진 것처럼.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병실의 형광등 아래에서, 그 떨림이 더 명확해 보였다. 신경계의 고장. 또는 감정의 폭발 직전의 신호.
“나는…”
강리우가 시작했다. 하지만 멈췄다.
“우리 오빠야?”
도현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더 선명하게.
“응.”
강리우가 답했다. 한 글자. 하지만 그 한 글자 안에는 몇 년이 들어 있었다. 몇 년의 침묵. 몇 년의 거리. 몇 년의 선택.
도현은 강리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누군가를 처음 본다는 듯이. 오빠를 본다는 듯이. 세아는 도현의 얼굴 근육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봤다. 분노에서 혼란으로. 혼란에서 뭔가 더 복잡한 것으로.
“왜 이제 와? 엄마가…”
도현이가 말했다. 하지만 끝내지 못했다.
강리우는 병실로 들어섰다. 천천히. 마치 성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그의 눈은 침대에 있는 어머니에게 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 머물렀다. 마치 다른 곳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엄마?”
강리우가 속삭였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인정이었다. 또는 기도. 세아는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들었다 — 아주 오래전부터 내재되어 있던 무언가. 어린 시절부터. 또는 그보다 더 이전부터.
하늘이가 세아의 팔을 더 세게 잡았다. 마치 세아를 현실에 붙들려고 하는 것처럼.
“강리우야. 지금…”
세아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누구예요?”
도현이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은 아무도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마치 칼을 정확하게 어디에 꽂아야 할지를 정확하게 아는 누군가가 던진 질문이었다.
강리우의 몸이 흔들렸다. 실제로 흔들렸다. 세아는 강리우가 벽을 짚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짚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붙들었다. 자신의 팔로 자신을 안았다.
“네 아버지는…”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멈췄다. “우리 아버지는 같지 않아.”
그 문장이 병실을 채웠다. 모니터의 비프음도 그것을 주변으로만 울렸다. 그 문장이 중심이 되었다.
“뭐라고?”
도현이가 물었다. 하지만 도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세아는 도현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말로 들으려고 하는 것일 뿐이었다. 확인하려고. 자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강리우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세아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느린 움직임으로. 마치 중력이 평소보다 훨씬 강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강민준이야. JYA의 대표. 그리고 너의 아버지는…”
강리우가 말했다.
도현이가 숨을 쉬지 않기 시작했다. 세아는 도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소리로. 또는 침묵으로. 침묵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말하지 않으셨어? 지금까지?”
강리우가 물었다. 그것은 세아가 아니라 침대 위의 어머니에게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의식이 없었으니까.
“내가 찾을 거야.”
강리우가 계속했다. “아버지의 서류들에서. 모든 답을.”
“뭐 하러?”
도현이가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세아는 그 갈라진 목소리를 들었고, 자신의 가슴이 다시 쪼개지는 느낌을 했다.
“왜냐하면…”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세아를 봤다. “너의 누나와 우리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그 말이 세아를 관통했다. 보호. 그 단어. 강리우가 이미 사용한 단어.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들렸다. 이제는 더 깊었다. 더 무거웠다. 더 절박했다.
세아는 침대 위의 어머니를 봤다. 여전히 자고 있는 어머니. 또는 떠나 있는 어머니. 어머니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마치 자신의 아이들이 이 순간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또는 알면서도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더 낮았다. 더 오래되었다. 마치 몇 년을 살아온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지금? 밤 중에?”
하늘이가 물었다.
“응.”
강리우가 답했다. “시간이 없어.”
“뭐가 시간이 없는데?”
도현이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눈을 들었다. 그리고 그 눈 안에서 세아는 무언가를 읽을 수 있었다. 두려움. 불안. 그리고 그것을 뒤덮으려는 결정력. 마치 누군가 자신의 두려움을 구체화된 행동으로 바꾸려는 순간처럼.
“세아. 너는 여기 있어. 엄마 곁에.”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넌 어디 가?”
세아가 물었다.
“아버지의 집. 강남.”
강리우가 답했다.
“밤 중에? 혼자?”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복도를 통해 멀어졌다. 빠르게. 결정된 누군가의 발소리.
세아는 도현을 봤다. 도현의 얼굴은 백지처럼 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 안의 모든 감정을 지워버린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알았다 — 도현이 이제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도현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도현이.”
세아가 말했다.
“우리 오빠가 뭐 하는 사람이야?”
도현이가 물었다. 그것은 강리우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오빠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 가족은 뭐 하는 가족인가?
세아는 답할 수 없었다.
하늘이가 도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유일한 행동이었다.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다. 접촉. 존재. 함께함.
“우리 엄마…”
도현이가 다시 말했다. “우리 엄마가 뭐 했어?”
세아는 침대를 봤다. 어머니의 가슴이 천천히 올라왔다 내려갔다. 규칙적으로. 마치 펌프처럼.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기계의 펌프처럼. 그리고 세아는 생각했다 — 어머니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이 이 가족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또는 무엇이 자신에게 행해졌는지.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세아는 진심으로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났다. 몇 분인지 또는 몇 시간인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병실의 형광등은 계속 켜져 있었다. 모니터는 계속 울었다. 그리고 세 사람 — 세아, 도현, 하늘이 — 은 침묵 속에서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하늘이가 휴대폰을 꺼냈다. 시간을 확인했다.
“3시 47분이야.”
하늘이가 말했다. 말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했다. 마치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메시지 알림이었다. 강리우였다.
아버지 서류실에 도착했어. 너는 안전해?
세아는 메시지를 읽고 다시 읽었다. 마치 거기 숨겨진 다른 의미가 있을 것처럼. 다른 언어로 쓰인 다른 메시지가. 하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너는 안전해?
세아는 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답할까? 자신이 안전한지 불안전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안전은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강리우가 옆에 있으면 안전한가? 아니면 강리우가 없으면 안전한가? 또는 둘 다 위험한가?
도현이가 창밖을 바라봤다. 밤이었다. 여전히. 서울의 밤은 끝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깨달았다 — 이 밤이 끝나더라도, 다른 무언가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더 깊은 밤. 더 검은 밤. 그것이 이 가족의 진실이었을 것이다.
“세아.”
도현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다른 톤으로 변했다. 더 낮았다. 더 성숙했다. 또는 더 좌절했다.
“응?”
세아가 물었다.
“내가 뭐 해야 해?”
도현이가 물었다.
그 질문이 세아를 또 다시 관통했다. 너무 정직한 질문이었다. 너무 필사적인 질문이었다. 세아는 도현이 자신의 누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세아가 이 상황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세아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모르겠어.”
세아가 다시 말했다. “지금은 엄마 옆에 있어. 그게 다야.”
도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은 동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항복이었다. 또는 수용. 자신의 누나도 모른다는 것을 수용하는 항복.
휴대폰이 또 울렸다. 강리우였다. 메시지가 아니라 전화였다.
세아는 전화를 받았다.
“응?”
세아가 말했다.
“서류를 찾았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숨이 찬 것처럼 들렸다. 또는 놀란 것처럼.
“뭐?”
세아가 물었다.
“너의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게. 아버지의 비서실에 있었어. 비밀 서류실에.”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의 손이 떨렸다. 아니, 그것은 손이 떨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 전체가 떨린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진동시키고 있는 것처럼. 또는 자신이 내부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처럼.
“뭐가 있었어?”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들리는 것은 종이를 넘기는 소리였다. 많은 종이. 문서. 계약서. 또는 편지.
“세아…”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그리고 멈췄다.
“뭐?”
세아가 다시 물었다.
“내가 말할 수 없어. 전화로는. 너한테 직접 보여줘야 해.”
강리우가 말했다.
“지금?”
세아가 물었다.
“응. 지금. 이 순간.”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침대를 봤다. 어머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도현은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하늘이는 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 개의 존재 — 침대, 창문, 얼굴 — 가 세아를 분열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 모든 방향으로 동시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갈게.”
세아가 말했다.
“세아…”
하늘이가 말했다. 경고였다.
“나는 가야 해.”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가 돌아봤다. 그의 눈은 세아를 찾고 있었다. 마치 누나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찾으려는 것처럼.
“도현아. 여기 있어. 엄마 옆에.”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넌?”
도현이가 물었다.
“나는 답을 찾으러 가.”
세아가 말했다.
병실을 빠져나갈 때, 세아는 자신이 또 다시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가족을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이 몇 번째인지 세지 않았다. 단지 알았을 뿐이다 — 이 가족이 얼마나 떠남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떠남이 자신들 안에서 얼마나 깊은 상처를 만들었는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강리우처럼. 어머니처럼. 아니, 어쩌면 모두 같은 손이었을 것이다. 같은 가족의 손. 같은 불안의 손. 같은 비밀의 손.
밤거리로 나가면서, 세아는 강리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가고 있어. 어디야?
강리우의 답은 즉시 왔다.
강남역 근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어. 우리 아버지의 주차장에서.
세아는 택시를 탔다. 운전사는 물어보지 않았다. 밤 중의 택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저 가는 것뿐이다. 목적지로. 또는 또 다른 비밀로.
서울의 밤이 세아를 삼켰다. 그리고 세아는 자신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진실을 향해. 그것이 무엇이든.
# 진실의 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전화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세아는 수화기를 귀에 붙인 채 그 침묵을 느꼈다. 마치 물리적인 무게가 있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 반대편에서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5초. 10초. 15초. 시간이 늘어났다.
대신 들리는 것은 종이를 넘기는 소리였다. 많은 종이. 카랑카랑, 종이가 스치는 음성이 반복되었다. 문서. 계약서. 또는 편지. 세아는 귀를 쫑긋 세웠다. 각각의 소리가 뭔가 중요한 것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관련된 뭔가.
“세아…”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가늘었고, 마치 누군가 듣지 않기를 바라는 톤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너의 아버지는…”
그리고 멈췄다.
그 공백이 거대했다. 세아는 병실 안의 모든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의 얕은 숨소리. 의료기기들의 비프음. 도현이가 가끔 움직일 때의 옷깃 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 강리우의 거친 호흡. 그는 뭔가 말하려고 했다가 멈춘 것이 분명했다. 뭔가 중대한 것을. 뭔가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뭐?”
세아가 다시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기도 모르게 높아져 있었다.
“내가 말할 수 없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말은 느렸고, 신중했고, 마치 돌을 깨물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전화로는.”
“그럼 뭐?”
“너한테 직접 보여줘야 해.”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의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쥐었다. 그 느낌이 현실을 잡아두는 것 같았다. 직접 보여준다? 그게 뭐라는 건가. 아버지에 대한 무엇을 직접 보여줘야 한다는 건가.
“지금?”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응. 지금. 이 순간.”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침대를 봤다. 어머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얼굴이 창밖의 창백한 불빛 아래 더욱 창백해 보였다. 그녀의 가슴은 천천히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그것이 유일한 증거였다.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
도현은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의 작은 몸이 창틀에 기대어 있었고, 그의 얼굴은 밤의 서울 불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하늘이는 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세아를 추적하고 있었다. 마치 세아가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세 개의 존재 — 침대, 창문, 얼굴 — 가 세아를 분열시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기 있다. 도현이는 여기 있다. 하늘이는 여기 있다. 그들은 모두 세아를 필요로 했다. 마치 세아가 그들을 연결하는 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모두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침대는 ‘머물러라’. 창문은 ‘떠나가’를 말했다. 하늘이의 눈은 ‘가지 마’라고 외쳤다. 그리고 세아는 그 모든 방향으로 동시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갈게.”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세아…”
하늘이가 말했다. 그것은 단순한 이름 호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고였다. 절망의 경고였다.
“나는 가야 해.”
세아가 말했다. 이번엔 더 큰 목소리로.
도현이가 돌아봤다. 그의 눈은 세아를 찾고 있었다. 작은 눈동자가 세아에게 집중되었다. 마치 누나가 정말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찾으려는 것처럼.
“도현아.”
세아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최대한 차분함을 실었다.
“여기 있어. 엄마 옆에. 좋은 오빠처럼.”
도현이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는 침대로 다시 돌아갔다.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넌?”
도현이가 물었다.
“나는 답을 찾으러 가.”
세아가 말했다.
“아빠 얘기?”
도현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너무 약해서, 마치 그 말을 하면 무언가 깨질 것 같았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의 머리카락은 부드러웠고, 따뜻했고, 살아있었다. 모든 것이 여기서 살아있었다. 어머니도. 도현도. 하늘이도. 그리고 자신도. 하지만 아버지는?
병실을 빠져나갈 때, 세아는 자신이 또 다시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발걸음을 세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세었다. 침대에서 문까지: 열 걸음. 이것이 그녀가 어머니로부터 얼마나 멀어지는지를 재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가족을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이 몇 번째인지 세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알았다. 몇 번째. 너무 많은 번.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가기 위해. 대학교에 가기 위해. 그리고 이제.
단지 알았을 뿐이다 — 이 가족이 얼마나 떠남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떠남으로만 존재하는 가족. 떠남 속에서만 연결되는 가족. 그리고 그 떠남이 자신들 안에서 얼마나 깊은 상처를 만들었는지. 침대 아래. 창문 너머. 눈동자 깊숙이. 그곳에 모두 새겨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을 들어올렸다. 손가락들을 폈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마치 리히터 규모 2정도의 지진처럼.
강리우의 손도 떨렸을 것이다. 전화 너머에서. 어머니의 손도. 침대에 놓여 있으면서도. 도현이의 손도. 그가 침대 시트를 쥐었을 때처럼.
어쩌면 모두 같은 손이었을 것이다. 같은 가족의 손. 같은 불안의 손. 같은 비밀의 손. 같은 고통의 손. 세아는 그 손들을 모두 알았다. 그들의 맥박을. 그들의 온기를. 그들의 두려움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세아가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였다. 가느다란 금속 상자 안에서, 내려가면서, 마치 지구의 중심으로 향하는 것처럼.
밤거리로 나가면서, 세아는 강리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을 췄다. 떨리는 손가락이.
*나 가고 있어. 어디야?*
강리우의 답은 즉시 왔다. 마치 그가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처럼.
*강남역 근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어. 우리 아버지의 주차장에서.*
세아의 손가락이 멈췄다. 우리 아버지. 강리우도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다. 세아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 그 아버지가 주차장에 있다? 아니, 강리우가 그 주차장에 있다.
세아는 택시를 탔다. 운전사는 물어보지 않았다. 밤 중의 택시 운전사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손님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일만 한다. 주소를 받고, 가는 것뿐이다. 목적지로. 또는 또 다른 비밀로.
“강남역 근처 주차장.”
세아가 말했다.
운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은 백미러에 보였다. 나이 많은 남자. 아마도 60대. 아마도 자신의 인생에서 많은 것을 봤을 것이다. 많은 밤. 많은 손님. 많은 비밀.
“이 시간에?”
운전사가 물었다. 아, 그는 묻는다.
“응.”
세아가 말했다.
운전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그는 차를 움직였다. 밤의 서울로.
서울의 밤이 세아를 삼켰다. 빌딩들이. 네온사인들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밤이 그녀를 전부 포함했다. 그녀는 더 이상 병실 밖에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녀는 도시 속에 있었다. 수백만의 다른 생명들 속에. 그들도 모두 뭔가를 찾고 있었을까. 그들도 모두 떠나가고 있었을까.
세아는 자신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부에서. 그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것이었다. 자신의 진실을 향한 갈증.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진실을 향해.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향해. 자신의 가족이 왜 이렇게 깨진 것인지를 향해.
그것이 무엇이든.
세아는 창밖을 봤다. 밤의 서울이 흘러갔다. 강남역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주차장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리우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진실도.
택시가 속도를 줄였다. 주차장 입구가 보였다. 어둡고, 깊고, 마치 동굴처럼.
“여기예요?”
운전사가 물었다.
“응. 감사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그녀는 돈을 내밀었다. 팁도 함께.
“조심하세요.”
운전사가 말했다.
“응.”
세아가 답했다.
그녀는 택시에서 내렸다. 공기가 차가웠다. 밤 공기. 콘크리트와 자동차 기름의 냄새. 그리고 뭔가 다른 냄새. 두려움의 냄새. 비밀의 냄새.
주차장 깊숙이. 그곳에 강리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종이가 있었다. 많은 종이. 강리우가 전화 너머에서 넘기던 그 종이들.
세아는 앞으로 걸었다.
모든 질문의 답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