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93화: 그의 손가락이 말하는 것
전화를 받는 순간, 세아는 강리우의 호흡을 들었다. 그것이 첫 번째였다. 목소리가 아니라 호흡. 불규칙하고, 빨라진, 누군가 뛰어온 사람의 호흡.
“세아. 네 엄마가 병원에 있어?”
강리우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평상시의 차분함이 없었다. 그 대신 무언가 더 위험한 것이 있었다 — 통제되지 않는 감정. 세아는 그것을 들을 때 자신의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가장 짧은 대답. 가장 안전한 대답.
“어디? 어느 병원?”
“왜?”
세아가 물었다.
침묵이 전화선을 채웠다. 몇 초. 세아는 그 침묵을 센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강리우는 여전히 호흡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조용해졌다. 더 통제된. 마치 그가 자신을 다시 모으고 있는 것처럼.
“내가 가야 해.”
강리우가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너 엄마를 봐야 해. 직접.”
“왜?”
세아의 목소리는 커졌다. 복도의 형광등 아래에서, 병원의 한밤중 침묵 속에서,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닿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목소리는 무언가를 깨울 수 있었다. 누군가를 깨울 수 있었다.
“병원 주소를 줘.”
강리우가 말했다.
“안 돼.”
세아가 말했다.
“세아.”
강리우의 목소리가 변했다. 더 낮아졌다. 더 위험해졌다. 마치 그것이 경고인 것처럼.
“안 된다고.”
세아가 반복했다.
복도에서 하늘이가 세아를 보고 있었다. 멀리서. 팔짱을 끼고. 그 시선은 날카로웠다. 하늘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세아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강리우. 내가 지금 상황을 다 말할 수 없어. 엄마가 아프고, 도현이가 있고…”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어머니가 강리우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가? 그 문장이 세아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낮고, 떨리는, 어떤 감정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강민준이가 들었어. 강민준이가. 강리우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지금 어디야?”
강리우가 물었다.
“병원 복도에.”
세아가 대답했다. 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도 모르겠다. 하지만 강리우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물 위에 글을 쓰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모든 것이 흘러내린다.
“나 지금 택시 탔어. 너한테 가는 중이야.”
“안 돼. 제발.”
세아가 말했다.
“왜?”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진짜 궁금증이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 상처. 또는 두려움.
“왜냐고.”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강리우에게 말해야 할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의 말.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강민준이가 들었어. 그것들이 세아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강리우에게 전달되어야 했다. 그가 무엇이든 있을 수 있으니까.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또는 어떤 다른 이유로든.
“내가 너한테 뭔가 말해줘야 해.”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그가 듣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화선 너머에서 택시의 소음이 들렸다. 야밤의 서울. 신호등. 다른 차들. 그리고 강리우의 호흡.
“엄마가 말했어. 방금. 내 목소리에 대해서.”
세아가 시작했다.
“뭐라고?”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지금 더 조용했다. 더 집중된. 마치 그가 자신의 모든 관심을 세아에게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내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대. 과거형으로.”
세아가 말했다.
침묵. 더 긴 침묵 이번에는. 세아는 강리우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상상하려고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강리우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숨기는 것이 너무 능숙한.
“그 다음은?”
강리우가 물었다.
“그 다음? 그게 다야. 그리고…”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멈췄다. 그 다음 부분이 있었다. 도현이 말해준 부분. 아버지. 강민준. 그 이름이 엄마의 입에서 나왔을 때의 무게.
“그리고 뭐?”
강리우가 촉구했다.
“네 아버지 얘기해.”
세아가 말했다.
그 순간, 전화선 너머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 강리우의 호흡이 멈춘 것처럼 들렸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변한 것이었다. 더 깊어졌다. 더 의식적이 되었다.
“내 아버지?”
강리우가 물었다.
“응. 엄마가 강민준이가 들었대고 했어. 내 목소리를 들었대고.”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이 뭔가를 깨달았다. 엄마가 정확히 무엇을 말했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강민준이가 들었어. 들었어. 그것은 과거형이었다. 강민준이가 언제 들었다는 건가? 언제? 세아는 강민준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수 있는 시점을 찾으려고 했다. 클럽? 녹음 스튜디오? 아니면 다른 곳?
“몇 년 전이야.”
강리우가 말했다. 갑자기.
“뭐?”
세아가 물었다.
“내가 나이 열여덟 살 때. 아버지가 날 데리고 어디론가 갔어. 클럽이었나… 스튜디오였나… 기억이 안 나. 그리고 거기서 누군가가 노래하고 있었어. 그 목소리가…”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멈춤.
“그 목소리가?”
세아가 물었다.
“아버지가 무서워했어.”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의 손이 떨기 시작했다. 그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병원 복도는 따뜻했다. 그것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떨림이었다. 신경에서. 뼈에서. 또는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영혼에서. 또는 영혼이 있다면.
“무서워했어?”
세아가 반복했다.
“응.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있었어. 아주 꼭. 마치 나를 잃을까봐 무서워하는 것처럼. 그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버지가 나한테 뭔가를 말했어. 너는 그 목소리를 잊어야 한다고. 그것은 위험하다고. 너를 파괴할 수 있다고.”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은 정지해 있었다. 마치 그것이 돌로 변한 것처럼.
“그 목소리가 누구 거였어?”
세아가 물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답을 알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처음부터 쓰여 있었던 것처럼.
“그때는 몰랐어.”
강리우가 말했다.
“지금은?”
세아가 물었다.
“지금은…”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멈췄다.
“지금은 뭐야?”
세아가 촉구했다.
“지금은 그게 너 목소리였다는 걸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복도의 형광등이 순간 더 밝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아는 자신의 눈을 감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빛은 그 안으로도 들어왔다. 모든 곳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세아가 물었다.
“그래서 뭐냐고.”
강리우가 물었다. 마치 세아가 그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네 아버지가 왜 내 목소리를 무서워했어?”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세아는 강리우의 호흡을 들었다. 더 빨라진. 더 깊어진. 마치 그가 뭔가 무거운 것을 들고 있는 것처럼.
“세아. 너 집에 가.”
강리우가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너 병원 떠나. 지금 당장. 택시 타고 집에 가. 도현이한테 엄마 잘 있다고 말해. 그리고…”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세아가 물었다.
“그리고 나한테 전화 하지 마. 일주일 동안. 아무도 한테 말하지 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어디 있는지. 그냥… 잠수 타. 너와 도현이. 그리고 엄마. 어디든 가도 상관없어. 그냥 가.”
강리우가 말했다.
“강리우. 너 뭐 하는 거야?”
세아가 물었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려고.”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귀에서 내렸다.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강리우는 사라졌다. 또 다시. 그는 항상 이렇게 나타나고 사라졌다. 마치 유령인 것처럼. 또는 불꽃인 것처럼 — 밝게 타올랐다가 갑자기 꺼져버리는.
하늘이가 세아에게 다가왔다.
“뭐라고 했어? 그 남자가.”
하늘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세아는 강리우가 뭘 하려고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는 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 알면 안 된다는 느낌. 마치 자신이 어떤 선을 넘으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세아. 이제 뭐해?”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병실을 봤다. 엄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도현은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세아를 보고 있었다. 아주 오래. 마치 세아를 기억하려고 하는 것처럼. 또는 이별을 준비하는 것처럼.
“병실로 가야 해.”
세아가 말했다.
“지금?”
하늘이가 물었다.
“응. 도현이가 날 기다리고 있어.”
세아가 말했다.
세아는 병실로 돌아갔다. 도현이 세아를 봤다. 그 아이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또 울었다는 뜻이었다.
“강리우가?”
도현이 물었다.
“그냥… 괜찮대. 아무것도 아니래.”
세아가 말했다. 또 다른 거짓. 세아는 자신이 거짓말을 많이 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한테, 강리우한테, 도현이한테. 그리고 가장 큰 거짓은 자신 안에 있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거짓.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거짓.
세아는 엄마 옆에 앉았다. 그리고 엄마의 손을 다시 잡았다. 따뜻했다. 여전히. 하지만 세아는 이 온기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모든 열은 식는다. 모든 불은 꺼진다. 모든 목소리는 침묵이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의 눈이 떠졌다.
아주 천천히. 마치 매우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엄마는 세아를 봤다. 정확히 봤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또는 마지막으로 보는 것처럼.
“세아…”
엄마가 속삭였다.
“엄마. 나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내 목소리… 듣지 마…”
엄마가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내… 목소리… 듣지 마…”
엄마가 반복했다. 아주 천천히. 마치 각 단어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엄마. 괜찮아. 잠자.”
세아가 말했다.
“너의… 목소리… 불이야…”
엄마가 말했다.
“응. 알았어. 이제 쉬어.”
세아가 말했다.
“너는… 불 같은… 아이였어… 작을 때…”
엄마가 계속했다.
세아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점점 낮아지는 것을. 점점 멀어지는 것을.
“그리고… 난… 그걸… 끄려고… 했어…”
엄마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 다음, 엄마의 눈이 다시 감겼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감정이 있었다. 마치 엄마가 무언가를 놓은 것처럼. 또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한 것처럼.
세아는 엄마의 손을 더 꼭 잡았다. 하지만 엄마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았다.
도현이가 세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손길은 말했다. 모든 것을. 모든 슬픔을. 모든 끝을.
형광등은 계속 밝게 빛났다. 병실을 무자비하게. 엄마의 얼굴을 명확하게. 세아의 손을 명확하게. 도현이의 눈물을 명확하게. 모든 것이 너무 명확했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눈을 강제로 뜨게 한 것처럼.
그 순간, 세아는 알았다. 자신이 이제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자신의 목소리가 뭐였는지. 불이었다. 엄마가 꾸려고 했던 불. 아버지가 무서워했던 불. 강리우가 찾으려고 했던 불.
그리고 그 불은 아직도 태우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END OF CHAPTER 193
# 제193장 확장판
## 1부: 거짓의 무게
병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세아는 생각했다. 흰색이었다. 그저 흰색. 아무 무늬도, 아무 의미도 없는 순수한 흰색. 마치 자신의 삶처럼.
*나는 뭘 통제하고 있었나?*
그 질문은 며칠 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왔다. 아니, 더 정확히는 몇 주, 몇 달, 어쩌면 평생을 괴롭혀왔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눈을 감고 있었을 뿐.
세아의 손은 침대 가장자리에서 떨리고 있었다. 통제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자신의 감정, 자신의 운명, 자신의 목소리. 모두 거짓이었다. 환상이었다. 자신이 스스로를 기만하기 위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거짓말들.
병원의 냄새가 그때서야 코에 들어왔다. 소독약과 죽음의 냄새. 그것이 섞여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향. 세아는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이것이 현실라고 자신에게 말하듯이.
엄마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가슴이 천천히, 그리고 점점 더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갔다. 마치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이 언제부터 엄마를 피했는지 기억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이 자신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물러섰던 것. 엄마의 목소리가 자신을 부를 때마다 귀를 막았던 것.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을 거부했던 것.
*왜? 왜 그렇게 했어?*
답은 간단했고, 동시에 복잡했다. 그것이 엄마를 해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자신 안에 있던 불을 꺼내려고 했으니까, 자신도 엄마를 꺼뜨려야 했다. 그것이 공평함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을까.
병실의 시계가 똑딱 똑딱 소리를 냈다. 초침이 원을 그리며 도는 소리. 마치 세상이 계속 돌아간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하지만 세아의 세계는 멈춰있었다. 이 순간에서 영원히 멈춰있을 것 같았다.
## 2부: 손의 온기
세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관절이 삐걱거렸다.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란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엄마의 손을 찾았다. 침대 위에 펼쳐져 있는 그 손.
손가락들이 부어있었다. 정맥 주사 때문에. 피부는 종이처럼 얇았고, 핏줄이 푸르게 떠올라 있었다. 세아는 그 손을 집어 들었다. 조심스럽게, 마치 유리처럼 깨질 것 같은 조심스러움으로.
따뜻했다.
그것이 가장 놀라운 부분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온몸이 침대에 묶여있어도, 엄마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 온기는 세아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팔뚝을, 어깨를, 심장을 지나갔다.
하지만 세아는 그 온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고 있었다.
*모든 열은 식는다.*
그것이 자신이 배운 첫 번째 진리였다. 어렸을 때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식었을 때. 엄마의 손이 자신의 뺨에서 떨어졌을 때. 엄마의 목소리가 침묵이 되었을 때.
모든 열은 식는다.
모든 불은 꺼진다.
모든 목소리는 침묵이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둠이다.
세아는 엄마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마치 그렇게 잡으면 그 온기를 영원히 붙잡을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손가락이 더 이상 꼭 쥐어지지 않았다. 근육이 거부했다. 혹은 마음이 거부했다. 자신이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거짓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으니까.
병실 밖에서 간호사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복도의 불이 희미해졌다. 밤이 오고 있었다. 또 다른 밤. 세아가 버티지 못할 또 다른 밤.
## 3부: 눈의 각성
그 순간이 왔을 때,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기가 변했다.
마치 누군가가 창문을 열어서 바깥의 추위를 안으로 끌어들인 것처럼. 혹은 누군가가 불을 꺼낸 것처럼. 세아는 고개를 들었다.
엄마의 눈이 떠지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마치 매우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려고 하는 것처럼. 눈꺼풀이 떨리며 올라갔다. 초점이 흐릿했다. 그것이 초점일 수도 있고, 단순히 침침한 눈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세아를 봤다.
정확히 봤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혹은 마지막으로 보는 것처럼. 그 두 순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세아는 생각했다. 첫 번째와 마지막은 동일한 순간이 아닐까?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같은 장소에 있는 것 아닐까?
“세아…”
엄마가 속삭였다.
그 목소리. 세아는 그 목소리를 얼마나 오래 듣지 않았던가. 아니, 듣기를 거부했던가. 그 목소리는 세아의 등을 타고 내려갔다. 척추를 따라 내려가며 모든 신경을 깨웠다.
“엄마. 나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목소리… 듣지 마…”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귀를 의심했다. 무엇이라고?
“뭐? 엄마, 뭐라고 하신 거예요?”
“내… 목소리… 듣지 마…”
엄마가 반복했다. 아주 천천히. 마치 각 단어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마치 각 음절이 자신의 숨을 가져가는 것처럼. 세아는 엄마의 입술을 읽으려고 했다. 혹시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엄마. 괜찮아. 이제 쉬어요. 편하게 쉬세요.”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너의… 목소리… 불이야…”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은 세아의 가슴을 관통했다. 화살처럼. 검처럼. 아니, 그보다 더 깊이 관통했다.
“응. 알았어. 이제 쉬어.”
세아가 말했다.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엄마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너는… 불 같은… 아이였어… 작을 때…”
엄마가 계속했다. 그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해졌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들리는 목소리처럼.
세아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점점 낮아지는 것을.
점점 멀어지는 것을.
마치 엄마가 어딘가 멀리 가고 있는 것처럼. 세아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그리고… 난… 그걸… 끄려고… 했어…”
엄마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다. 마지막 단어가 흐릿해졌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마치 연기처럼. 마치 불의 연기처럼.
세아는 그 말을 반복했다. 속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며.
*그리고 난 그걸 끄려고 했어.*
엄마가 자신의 불을 끄려고 했다는 것.
엄마가 자신을 바꾸려고 했다는 것.
엄마가 자신을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
그것이 죄였나? 엄마가 저지른 죄? 아니면 그것이 사랑이었나? 엄마가 보여준 사랑?
## 4부: 침묵의 무게
엄마의 눈이 다시 감겼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감정이 있었다. 마치 엄마가 무언가를 놓은 것처럼. 마치 엄마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한 것처럼. 마치 엄마가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세아는 엄마의 손을 더 꼭 잡았다.
하지만 엄마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그 온기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식어가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손을 통해 느껴지는 온도의 변화.
*모든 열은 식는다.*
세아는 자신이 예측한 대로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병실의 문이 열렸다.
도현이가 들어왔다. 그 아이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자신도 엄마와 함께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도현이가 세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손길은 말했다.
모든 것을. 모든 슬픔을. 모든 끝을. 모든 시작을.
그 손길은 세아에게 전해졌다. 어깨를 통해, 척추를 통해, 심장으로.
세아는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자신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다. 아니, 눈물이 있었지만 흘러내릴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영혼이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형광등은 계속 밝게 빛났다.
병실을 무자비하게. 엄마의 창백한 얼굴을 명확하게. 세아의 떨리는 손을 명확하게. 도현이의 눈물을 명확하게.
모든 것이 너무 명확했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눈을 강제로 뜨게 한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눈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눈을 열어서 절대 다시 감지 못하도록 한 것처럼.
그 불이 너무 밝았다.
## 5부: 불의 깨달음
그 순간, 세아는 알았다.
자신이 이제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자신의 목소리가 뭐였는지.
그것은 불이었다.
엄마가 꾸려고 했던 불.
아버지가 무서워했던 불.
강리우가 찾으려고 했던 불.
그 불은 자신 안에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세아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다봤다. 엄마의 손이 그 손과 맞닿아 있었다. 따뜻한 손과 차가워지는 손. 살아있는 손과 죽어가는 손.
그리고 그 경계 위에서, 그 사이에서, 세아는 자신을 느꼈다.
불로서.
더 이상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 자신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불이었다.
그리고 그 불은 아직도 타고 있었다.
## 6부: 끝과 시작
세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가고 있었다. 혹은 켜져가고 있었다. 세아는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모든 빛이 같아 보였다. 모든 어둠이 같아 보였다.
병원의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의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세아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들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세아의 세계에 속해있지 않았다.
세아의 세계는 이 병실이었다.
세아의 세계는 엄마의 손이었다.
세아의 세계는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불이란 것이 꼭 타오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불이란 것이 꼭 밝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불이란 것이 꼭 따뜻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불은 또한 남길 수 있다.
불은 또한 남은 것을 태울 수 있다.
불은 또한 죽음의 냄새를 풍길 수 있다.
세아의 손은 엄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
**제193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