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92화: 강민준의 그림자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192 / 243Next

# 제192화: 강민준의 그림자

세아는 엄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 분명하지 않게, 마치 물이 모래 사이로 빠져나가듯. 도현과 하늘이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병실에는 오직 세아와 엄마, 그리고 모니터의 규칙적인 비프음만 남았다. 형광등은 여전히 그 무자비한 밝기로 모든 것을 드러냈다. 엄마의 주름진 손가락들, 의료용 팔찌에 적힌 엄마의 이름, 점상출혈로 인한 엄마의 팔뚝의 작은 자국들. 모든 것이 너무 명확했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를 강제로 눈을 뜨게 한 것처럼.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그 문장이 세아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불타고 있었어 — 과거형. 아주 먼 과거. 세아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과거. 자신이 여섯 살이었을까? 일곱 살? 그 정도의 나이라면, 기억이 있어도 조각난 것처럼 남았을 것이다. 색깔과 소리와 감정의 파편들. 연결되지 않은 이미지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엄마의 손을 놓은 후. 손가락들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병실은 따뜻했다. 그것도 아니었다 — 무언가 더 깊은 곳에서 나오는 떨림이었다. 신경에서. 뼈에서. 또는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빠른 걸음. 누군가가 서두르고 있었다. 세아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도현이었다. 그리고 도현 뒤에는 하늘이가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심각했다. 마치 무언가 더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표정으로.

“세아. 전화 와.”

도현이 말했다.

“누구?”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

도현이 말했다.

세아의 손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손이 아니라 시간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또는 반대로, 시간이 너무 빨라져서 세아가 따라갈 수 없는 것처럼.

“뭐라고?”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가. 엄마를 찾고 있대. 너 엄마가 어디 있냐고. 병원이냐고.”

도현이 빠르게 말했다.

하늘이가 세아를 바라봤다. 그 시선은 날카로웠다. 마치 세아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 했어. 넌 전화를 안 받았고, 내가 받았어. 근데 너한테 전화했다고 했어. 세 번.”

도현이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핸드폰을 봤다. 침대 옆 책상에 있었다. 화면이 어두워져 있었다. 자신은 그것을 본 지 몇 시간 되었나? 며칠? 시간 감각이 없었다. 병실의 형광등은 시간을 삼켰다.

“뭐라고 했어? 강리우한테?”

세아가 물었다.

“엄마가 입원했다고 했어. 그 이상은 말 안 했어.”

도현이 말했다.

세아는 일어섰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을 배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 자신의 다리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하늘이가 세아의 팔을 잡았다.

“세아. 뭐 하려고.”

하늘이가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경고였다.

“강리우한테 전화해야 해.”

세아가 말했다.

“지금? 엄마한테 있어야 되지 않아?”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엄마를 봤다. 여전히 자고 있었다. 또는 의식이 없었다. 구분이 안 됐다. 하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엄마는 지금 깨어 있지 않다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아를 약간 편하게 만들었다.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도현. 엄마 곁에 있어줄 수 있어?”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도현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누나가 또 떠난다. 또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다. 그 생각이 도현의 눈에 떴다.

“내가 바로 돌아올게. 약속해.”

세아가 말했다.

도현은 응답하지 않았다.

세아는 복도로 나왔다. 형광등이 다시 그녀를 눈부시게 했다. 너무 밝았다. 세아는 자신의 눈을 좁혔다. 그리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켰다. 세 개의 부재중 전화. 모두 강리우였다. 첫 번째는 일 시간 전. 두 번째는 40분 전. 세 번째는 방금 5분 전.

세아는 강리우에게 전화했다.

그가 두 번의 신호음만에 받았다.

“세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안도의 목소리였다. 또는 불안의 목소리였다. 둘 다 섞여 있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엄마 뵈셨어?”

강리우가 물었다.

“응.”

세아가 다시 말했다.

“뭐라고 하셨어?”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강리우에게. 아직 아니었다.

“왜 찾아?”

세아가 물었다. 대신.

“내가 너한테 말했던 거 기억해? 엄마 찾아야 한다고. 중요한 일 때문에.”

강리우가 말했다.

“응.”

세아가 말했다. 자신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사실 세아는 많은 것을 잊었다. 또는 무시했다. 강리우와 관련된 모든 것이.

“세아. 엄마를 내가 만날 수 있을까. 병원에서. 지금.”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의 손가락이 떨렸다. 다시. 또 다시.

“왜?”

세아가 물었다.

“중요한 거야. 정말로. 나한테도, 그리고 너한테도.”

강리우가 말했다.

“엄마는 지금 깨어 있지 않아. 의사가 진정제를 줬어. 내일까지 못 만날 거야.”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실도 아니었다. 진실은 더 복잡했다. 진실은 세아가 강리우가 엄마를 만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두려움? 부끄러움? 또는 그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

“내일 아침이면 돼?”

강리우가 물었다.

“아직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세아. 이거 정말 중요한 거야. 가능한 한 빨리.”

강리우가 말했다.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강리우가 엄마를 찾는 이유. 그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강민준과 관련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강리우와 강민준. 강과 리우. 강과 리우. 두 개의 이름이 한 번에 떠올랐다. 그리고 세아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바보였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같은 성을 가지고 있었다. 강. 그들은 아마도…

“강리우. 너 강민준이와 뭔 사이야?”

세아가 물었다.

복도에는 침묵이 흘렀다. 길었다. 너무 길었다.

“내가 다음에 너한테 말해. 지금은 아니야. 엄마를 만나야만 해.”

강리우가 말했다.

“아니야. 지금 말해. 너 강민준이의 아들이야? 맞지?”

세아가 물었다.

“…”

강리우가 응답하지 않았다.

“맞지!”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세아. 이건 복잡한 일이야. 너한테 설명할 시간이 필요해. 근데 지금은 엄마를 만나는 게 중요해.”

강리우가 말했다.

“뭐 때문에? 왜 강민준이가 내 엄마를 두려워했어? 왜?”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건… 내가 아는 것도 아니야. 근데 엄마가 아실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강민준이. 그가 누구야. 정확하게. 내한테.”

세아가 물었다.

다시 침묵이 있었다. 그것은 대답이었다. 강리우가 말하지 않아도, 그 침묵 자체가 대답이었다.

“강리우. 답해.”

세아가 말했다.

“… 너의 아버지야. 생물학적으로.”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형광등이 깜박였다. 아니, 깜박인 것처럼 보였다. 세아의 눈이 그렇게 인식했다. 마치 그 순간이 너무 심각해서, 현실까지도 그것을 인식했다는 것처럼. 하지만 형광등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밝게. 무자비하게.

“뭐?”

세아가 말했다.

“너의 아버지야. 그가. 강민준이가. 나는 그의 아들이고. 너는 그의 딸이고.”

강리우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형제야. 세아.”

세아는 그 말의 의미를 처리할 수 없었다. 형제? 그것은 불가능했다. 강리우는 자신의 아버지였다. 또는 자신의 연인이었다. 또는 자신의 구원자였다. 또는 자신의 악마였다. 어떤 경우든, 그는 자신의 형제가 아니었다. 형제라는 개념은 세아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도현이 있었다. 도현만 있었다. 그리고 강민준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세계에 이제 막 들어온 것이었다.

“세아? 너 있어?”

강리우가 물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매우 멀리서 나오는 것처럼.

“엄마를 만나게 해줄 수 있어? 제발.”

강리우가 다시 말했다.

“내일이라고 말했어.”

세아가 말했다.

“그래도 돼?”

강리우가 물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세아는 복도에 서 있었다. 형광등이 자신의 위에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 있었다. 자신을 압박했다. 세아는 자신의 등이 벽에 닿을 때까지 걸었다. 그리고 거기에 등을 기댔다. 차갑게. 단단하게. 실재하는 무언가. 그것이 필요했다.

형제. 그 단어가 세아의 입술에 붙어 있었다. 형제. 그 단어는 이상했다. 마치 어떤 다른 언어에서 빌려온 것처럼. 마치 그것이 자신의 입에 맞지 않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검색했다. 강민준. JYA 엔터테인먼트. 강리우.

강민준의 사진이 나왔다. 50대 중반의 남자. 정장을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거짓 같았다. 또는 강리우의 미소와 비슷했다.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봤다. 핸드폰 카메라에. 강민준의 사진 옆에.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눈의 색깔을. 그리고 같은 손가락의 길이를.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병실로 돌아갔을 때, 도현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하늘이는 창가에 서 있었다. 밤이었다. 세아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지금이 밤이라는 걸. 얼마나 오래 자신이 여기 있었는지. 얼마나 오래 시간이 흘렀는지.

“엄마 깨어났어?”

세아가 물었다.

도현과 하늘이가 고개를 저었다.

“의사가 와서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내일 오전에 다시 검사한대. MRI.”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침대 옆에 앉았다. 도현의 반대쪽. 그렇게 그들은 엄마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하늘이. 나 좀 혼자 있어도 될까?”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가 세아를 바라봤다. 그 시선은 오랫동안 세아에게 머물렀다.

“괜찮아?”

하늘이가 물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도현도 나와. 카페에 가자. 뭐 먹자.”

하늘이가 도현에게 말했다.

도현이 저항했다. 하지만 하늘이가 도현의 팔을 잡았다.

“가. 너도 먹어야 해.”

하늘이가 말했다.

그들이 나간 후, 세아는 엄마의 손을 집어 들었다. 따뜻했다. 여전히.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엄마의 손에 묻었다. 그리고 울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자신만 아는 방식으로.

모니터가 신호를 보냈다. 규칙적으로. 계속해서. 엄마가 살아 있다는 증거. 엄마가 여기 있다는 증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아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엄마의 눈을 봐야 했다. 엄마가 깨어나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말해야 했다.

강민준. 강리우. 강과 세아. 그 이름들이 모두 자신의 안에서 돌고 있었다. 마치 불꽃처럼. 마치 그것들이 자신을 태우고 있는 것처럼.

밤은 길었다. 세아는 엄마의 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엄마가 깨어나기를. 엄마가 자신을 보기를. 엄마가 자신을 용서하기를. 또는 그렇지 않기를. 세아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진실. 완전한, 무자비한 진실.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그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세아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이제 세아는 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의 어린 목소리. 자신이 불태우고 있던 무언가.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가 두려워했다. 강민준이가. 세아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그래서 그는 떠났다. 또는 그렇게 행동했다. 그리고 세아의 엄마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의 딸을 두려워했다.

세아의 손이 떨렸다. 엄마의 손 위에서. 그리고 그 떨림은 전기처럼 흘렀다. 과거에서 현재로. 아버지에서 딸로. 두려움에서 분노로. 침묵에서 불꽃으로.

세아는 자신의 목을 느꼈다. 그곳에는 불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그리고 모두가 그것을 보고 있었다. 강민준이가. 엄마가. 강리우가. 도현이가. 하늘이가. 모두가 세아의 목 안에 있는 불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두려워했다.

또는 그것을 원했다.

세아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문자 수 확인: 약 15,200자)

# 불꽃의 목소리

병실의 형광등 빛이 엄마의 얼굴을 하얀색으로 물들였다. 세아는 한 시간을 더 머물렀다. 그 다음 두 시간을 더. 시간이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병실의 시계는 계속 움직였지만, 세아의 세계는 멈춰 있었다. 엄마의 침대 옆에서. 엄마를 둘러싸고 있었다. 양팔로, 시선으로, 숨으로. 하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세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뇌사 직전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직전’이라는 단어가 세아를 미치게 했다. 완전하지 않은 죽음. 불완전한 삶.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엄마가 떠있었다.

“하늘이. 나 좀 혼자 있어도 될까?”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지난 이틀 동안 울고만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였을까.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인식할 수 없었다.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하늘이가 세아를 바라봤다. 그 시선은 오랫동안 세아에게 머물렀다. 오빠의 눈은 파란색이었다. 아버지를 닮았다. 세아는 그 사실을 혐오했다. 아버지의 눈. 아버지의 얼굴이 자신의 오빠에게 복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세아는 하늘이를 볼 때마다 약간의 혐오감을 느꼈다. 그것은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하늘이는 무고했다. 하지만 세아의 혐오는 무고하지 않았다.

“괜찮아?”

하늘이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당연했다. 세아가 ‘괜찮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 세아는 항상 부서져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 빠진 채로 태어났다. 엄마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지만, 세아는 느꼈다. 엄마의 눈빛이 흐릿해질 때. 엄마가 자신을 바라볼 때의 그 두려움.

“응.”

세아가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세아는 거짓말을 잘했다. 아버지에게 배웠을까. 아니면 엄마에게? 가족의 유산이었다. 거짓말. 침묵.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타버리는 진실.

하늘이의 얼굴이 더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도 피곤했을 것이다. 자신의 여동생의 거짓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엄마가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도현도 나와. 카페에 가자. 뭐 먹자.”

하늘이가 도현에게 말했다. 도현은 엄마의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작은 의자에. 마치 죄수처럼. 도현의 얼굴은 창백했다. 열여섯 살의 남자아이가 이렇게까지 창백할 수 있다는 것을 세아는 몰랐다. 도현도 부서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세아의 부서짐은 불꽃이었다면, 도현의 부서짐은 얼음이었다.

도현이 저항했다.

“아니야. 나는 여기 있을 거야.”

도현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하늘이가 도현의 팔을 잡았다. 손가락이 도현의 팔뚝에 자국을 남길 정도로 세게.

“가. 너도 먹어야 해.”

하늘이가 말했다. 그것은 명령이었다. 오빠로서의 명령. 형제로서의 절박함. 아마도 하늘이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를 지키는 것. 도현을 먹이는 것. 세아를 치유하는 것. 그 모든 것은 불가능했지만, 하늘이는 계속 시도했다.

도현이 마지못해 일어섰다. 의자에서 떨어진 그의 무릎이 흔들렸다. 며칠 동안 앉아만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공포 때문일까.

“언니는?”

도현이 세아를 바라봤다.

“언니는 여기 있어야 해.”

하늘이가 답했다. 세아를 더 이상 설득할 기력이 없었을 것이다. 세아는 너무 오래 여기 있었다. 너무 오래 엄마를 바라봤다. 너무 오래 기도했다. 너무 오래 죄책감을 느꼈다.

그들이 나간 후, 병실은 조용해졌다. 모니터의 비프음만 들렸다. 규칙적이고 기계적인 리듬. 세아는 그 소리를 세어본 적이 있다. 분당 72회. 엄마의 심박수. 엄마가 살아 있다는 증거. 엄마가 여기 있다는 증거.

세아는 천천히 엄마의 손을 집어 들었다. 따뜻했다. 여전히. 손가락 사이에 맥박이 뛰고 있었다. 작고 빠른 리듬. 세아는 그 리듬을 따라 자신의 호흡을 맞춰보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자신의 심장이 너무 빨랐다.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엄마의 손에 묻었다. 손가락이 자신의 뺨에 닿았다. 마치 엄마가 자신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엄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의 손은 단지 거기 있을 뿐이었다. 죽은 손. 살아 있는 손.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그리고 울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자신만 아는 방식으로. 목이 울리지 않게. 입이 열리지 않게.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지만 내부에서. 깊은 곳에서. 뼈 안에서. 마치 골수가 울고 있는 것처럼.

세아의 어깨가 떨렸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멈췄다. 자신을 통제했다. 다시. 항상 그래왔다. 자신을 통제해야 했다. 아니면 불이 나올 것이었다.

모니터가 신호를 보냈다. 규칙적으로. 계속해서. 엄마가 살아 있다는 증거. 엄마가 여기 있다는 증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아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 때로는 엄하고, 때로는 두려워하는 목소리. 세아는 엄마의 눈을 봐야 했다. 그 파란 눈. 하늘이에게 물려준 그 눈. 엄마가 깨어나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말해야 했다.

진실을 말해야 했다.

강민준. 강리우. 강과 세아.

그 이름들이 세아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마치 불꽃처럼. 마치 그것들이 자신을 태우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그 이름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올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이 떨렸다.

강민준. 세아의 생물학적 아버지. 세아는 그를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희미한 이미지일 뿐이었다. 담배 냄새. 큰 손. 엄마를 화나게 하는 목소리. 그리고 그다음? 그다음은 무엇이었나?

강리우. 세아의 친구. 아니, 친구였나? 더 이상 그렇게 부를 수 없었다. 강리우는 죽었다. 불타고 죽었다. 세아의 목소리로.

강과 세아. 강민준과 세아. 아버지와 딸.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 그 밤. 그 순간. 그 불타는 목소리.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그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세아의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증언이었다. 경찰 조서에서. 법정에서. 그것은 무엇을 의미했나?

그리고 이제 세아는 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의 어린 목소리. 아마도 여섯 살 때였을 것이다. 아니, 다섯 살? 시간은 흐릿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명확했다. 불타는 목소리. 자신이 불태우고 있던 무언가.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가 두려워했다.

강민준이가. 아버지가. 세아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그래서 그는 떠났다. 또는 그렇게 행동했다. 세아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 부분은 공백이었다. 뇌의 어느 부분인가가 그것을 지워버렸다. 자기보호 메커니즘. 트라우마는 자신을 숨긴다.

그리고 세아의 엄마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의 딸을 두려워했다. 세아의 목소리를. 세아의 눈을. 세아의 존재를. 모두.

세아의 손이 떨렸다. 엄마의 손 위에서. 따뜻한 손. 살아 있는 손. 하지만 깨어나지 않은 손.

그리고 그 떨림은 전기처럼 흘렀다. 과거에서 현재로. 아버지에서 딸로. 두려움에서 분노로. 침묵에서 불꽃으로.

세아는 자신의 목을 느꼈다. 그곳에는 불이 있었다. 언제나.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엄마 자궁에 들어갈 때부터. 유전자 속에. DNA 나선 안에. 세아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뭔가. 그것이 불꽃이었나? 분노였나? 아니면 더 위험한 것이었나?

그리고 모두가 그것을 보고 있었다. 강민준이가. 엄마가. 강리우가. 도현이가. 하늘이가. 모두가 세아의 목 안에 있는 불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두려워했다.

또는 그것을 원했다.

세아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울렸다. 모니터가 계속 신호를 보냈다. 엄마가 계속 살아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계속 기다렸다. 깨어남을. 용서를. 또는 심판을. 무엇이든.

세아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밤은 길었다. 병실의 밤은 특별했다. 낮과 다른 방식의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두꺼워진다. 마치 물처럼. 아니, 이보다 더 진하게. 연기처럼. 또는 피처럼. 세아는 그 안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세아는 엄마의 곁에 앉아 있었다. 의자가 불편했다. 등받이가 없었다. 하지만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뭔가 놓칠 것 같았다. 엄마의 숨. 엄마의 심장박동. 그 미세한 리듬 속에 엄마의 영혼이 갇혀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기다렸다. 엄마가 깨어나기를. 그 순간을 꿈꿨다. 엄마의 눈이 떠지는 것. 천천히. 먼저 한쪽이. 그다음 다른 쪽이. 그리고 초점이 맞춰지는 것. 먼저 천장에. 그다음 자신에게.

“하늘이?”

엄마가 말할 것이다. 목소리는 약할 것이다.

“아니야, 엄마. 나야. 세아야.”

세아가 답할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눈이 자신을 보기를. 엄마가 자신을 인식하기를. 엄마가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딸로 보기를. 그것이 세아가 원하는 것이었다.

또는 그렇지 않기를. 세아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도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에 더 가까웠다. 세아는 엄마의 판단을 이미 받고 있었다. 엄마의 두려움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지 확인뿐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진실. 완전한, 무자비한 진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자신의 목소리가 왜 불타고 있는지.

밤이 깊어갔다. 세아의 눈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자신은 잠들 수 없었다. 잠들면 꿈을 꿀 것이었다. 그 꿈은 현실보다 더 끔찍했다. 현실은 적어도 명확했다. 하지만 꿈은 불확실했다. 그 안에서 세아는 계속 불타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병원의 복도. 누군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밤샘 근무를 하는 간호사. 다른 환자의 가족. 또는 죽음을 기다리는 누군가.

세아는 눈을 떴다. 언제 감았나? 모르겠다.

엄마의 얼굴이 여전히 창백했다. 입술이 파랬다. 세아는 엄마의 입술을 만지고 싶었다. 따뜻하게 하고 싶었다. 색깔을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만지면 뭔가 부술 것 같았다.

“엄마.”

세아가 속삭였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병실의 기계음에 묻혀버렸을 것이다.

“깨어나. 제발. 나 좀 봐. 날 봐줘.”

세아는 엄마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하지만 엄마는 반응하지 않았다. 엄마의 손은 죽은 것 같았다. 아니, 죽지 않았다. 따뜻했다. 맥박이 뛰었다. 하지만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서. 불완전한 상태에서.

세아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나한테 말해줘. 왜 날 두려워했어? 왜 날 봐줄 수 없었어? 내가 뭘 잘못했어?”

세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더 크게. 거의 외치듯이.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또는 들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세아는 엄마의 손을 놓았다. 손이 침대 위에 떨어졌다. 무거운 소리. 작은 소리. 하지만 세아에게는 큰 소리처럼 들렸다.

세아는 일어났다. 의자에서. 발이 저렸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나? 몇 시간? 몇 십 시간? 시간은 의미를 잃어버렸다.

세아는 병실을 돌아다녔다. 창문으로 갔다. 밤이었다. 병원 밖의 도시. 불이 켜진 창문들. 그 뒤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들.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엄마가 깨어나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

세아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혐오했다.

세아는 창문에 손을 얹었다. 차갑다. 유리. 단단하다. 끝없다. 세아는 그것을 부수고 싶었다. 손을 내밀고 밤의 공기를 움켜쥐고 싶었다. 자신의 불꽃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192 / 243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