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91화: 돌아올 수 없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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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1화: 돌아올 수 없는 말

엄마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의 심장이 멈춘 줄 알았다. 하지만 심장은 계속 뛰었다. 모니터는 계속 신호를 보냈다. 의료진은 여전히 움직였다.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세아만 멈춰 있었다. 벤치 위에 앉아, 도현과 하늘이 사이에서, 복도의 형광등 아래에서.

도현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도현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도현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또는 알지만 말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둘 다 악수였다.

“엄마가 다시 깨어났어?”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자버렸어. 의료진이 뭔가 주고… 그 다음에.”

도현의 목소리는 작았다. 어린 목소리였다. 열일곱 살 소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어린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세아는 그것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것이 자신이 한 일이었다. 자신이 도현으로부터 빼앗은 것이었다.

“의사가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이제 쉬어야 한다고. 그리고 내일 다시 검사를 한다고. 뭔가 놓친 게 있을 수 있다고. 뇌에서.”

뇌에서. 그 단어가 공기 중에 떠다녔다. 세아는 자신의 엄마의 뇌를 상상했다. 어디선가 뭔가가 깨져 있을 것이다. 또는 타버렸을 것이다. 또는 누군가가 거기에 손을 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세아를 질식시켰다.

하늘이가 세아의 등을 쓸었다. 말 없이. 그 손길은 따뜻했다. 하지만 따뜻함은 이미 충분하지 않았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정확하게. 모든 걸.”

세아가 도현을 바라봤다.

도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더 깊게 이번에는. 마치 자신이 말한다면 무언가 부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도현.”

세아가 다시 말했다.

“누나가… 너한테 말해달라고 했거든. 의사가 나가고 나서.”

도현이 중얼거렸다.

세아의 몸이 경직되었다.

“엄마가 뭐라고?”

“엄마가 널 불렀어. 자꾸. 그리고 내 팔을 잡고… 가라고 했어. 누나한테 가서 뭐라고 말해달라고.”

도현이 계속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다.

“뭐라고 말해?”

세아의 목소리는 깨졌다.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그 아이는 우는 척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 흘렀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제발 엄마한테 가달라고. 그리고…”

도현이 말했다.

“그리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계속. 미안하다고.”

그 말이 세아에게 닿았을 때, 세아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생물인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또는 너무 인간다워서, 그것이 견딜 수 없는 것 같았다.

“엄마가… 뭐 때문에 미안해?”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아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세아는 벤치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자신의 다리가 무거운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일어섰다. 일어서서 병실을 향해 걸었다. 도현이 세아의 팔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걷고 있었다.

“세아, 잠깐…”

하늘이가 말했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병실 문을 열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또는 의식이 없었다. 구분하기 어려웠다. 침대 위에서, 엄마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마치 그 얼굴이 무언가를 견딜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세아는 그것을 보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자신 안에는 눈물이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불씨뿐이었다.

세아는 엄마의 침대 옆에 앉았다. 이번에는 의료진이 말리지 않았다. 아마도 이미 할 말이 다 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엄마.”

세아가 속삭였다.

엄마는 응답하지 않았다.

“내가 들었어. 뭐라고 했는지. 다 들었어.”

엄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세아는 엄마의 손을 집어 들었다. 따뜻했다. 여전히. 하지만 그것도 곧 식을 것이다. 모든 것이 식는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열정도. 사랑도. 희망도. 모든 것이 결국 식고, 남는 것은 회색의 재뿐이다.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그게 뭐야, 엄마?”

세아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강민준이가 뭐야? 그게 누구야?”

세아가 다시 물었다.

여전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세아는 엄마의 손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마치 그 손이 깨질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일어섰다. 병실을 나갔다. 복도로 돌아왔다. 도현과 하늘이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의료진한테 물어봤어?”

세아가 말했다.

“뭘?”

하늘이가 물었다.

“엄마가 뭐 때문에 여기 있는지. 엄마가 뭐 해서 쓰러진 건지.”

도현이 입을 열었다.

“의사가 그냥 스트레스라고 했어. 극심한 스트레스. 그리고 고혈압. 약을 먹지 않아서 그렇다고. 그리고…”

“그리고?”

세아가 물었다.

“심장도 안 좋대. 약한 심장. 언제든지…”

도현이 말을 마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 그것이 도현이 말하려던 것이었다.

세아는 벤치에 다시 앉았다. 이번에는 무릎을 꿇은 것 같은 느낌으로. 마치 자신의 몸이 무언가에 항복하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야?”

세아가 물었다.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자신에게 묻으면서.

하늘이가 세아의 어깨를 잡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여기 있는 거. 그것뿐이야.”

하지만 세아는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것. 그것은 자신이 이미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자신이 이미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강남역에서. 그 골목에서. 강리우를 만났을 때.

세아의 손가락이 다시 떨렸다. 그 손가락들. 그것들이 무엇을 한 건지. 세아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무언가를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을.

핸드폰이 울렸다. 누군가의 핸드폰이었다. 도현인 것 같았다. 도현이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봤다. 그리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야? 누가?”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

도현이 말했다.

세아의 심장이 멈춘 듯했다. 아니, 더 빠르게 뛰었다. 마치 자신의 가슴 안에 무언가 야생적인 것이 갇혀 있는 것처럼.

“왜?”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그냥 전화해.”

세아는 도현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상대방의 호흡이 들렸다. 빠른 호흡. 그리고 음성. 그 음성은 세아가 알던 음성이 아니었다. 또는 알던 음성이었지만, 다르게 변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 음성을 태웠던 것처럼.

“세아. 너 지금 어디야?”

강리우가 물었다.

“병원. 엄마가…”

세아가 말했다.

“내가 알아. 너 엄마가 쓰러졌다는 거. 내가 알고 있어.”

세아의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뭐? 어떻게 알았어?”

“내 아버지가 말했어. 너 엄마가 쓰러졌다고. 너 엄마가 어디 있는지도.”

그 말이 세아를 타격했다. 강민준. 강리우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그 남자가 자신의 엄마를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그것을 강리우에게 말했다는 것.

“강리우, 뭐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세아가 물었다.

“내가 너한테 도움이 될 수 있어. 너 엄마를 더 좋은 병원으로 옮길 수 있어. 더 좋은 의사를. 최고의 의료진을.”

“내가 필요 없어. 지금 필요한 건…”

“내 아버지를 만나야 해. 너 엄마를 만나려면. 그게 조건이야.”

그 말이 복도의 공기를 얼렸다. 조건. 도움의 대가. 세아는 이미 이런 것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들렸다. 더 직설적이었다. 더 위험했다.

“내가 안 만나면?”

세아가 물었다.

상대방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강리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그러면 내 아버지가 너 엄마를 강제로 옮길 거야. 자기 병원으로. 그리고 너한테 거래를 제시할 거야. 너 엄마의 치료를 위해서, 너는 내 것이 되어야 한다고.”

세아는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었다.

“아니면 내가 도와. 지금 만나. 한 시간 안에. 한강공원.”

강리우가 계속했다.

“내가 어떻게 믿어?”

세아가 겨우 물었다.

“그래. 믿지 마. 그럼 더 좋아. 내 아버지는 너 엄마를 어차피 손에 넣을 거야. 그게 더 쉬울 테니까.”

전화가 끊어졌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마치 그것이 폭탄인 것처럼. 도현과 하늘이는 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누나?”

도현이 속삭였다.

세아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일어섰다. 그리고 엄마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병실 안에서. 자고 있는 엄마를. 그 얼굴은 여전히 평화로워 보였다. 마치 그것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세아는 복도를 걸어 나갔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하늘이와 도현이 뒤를 따라왔다.

“세아, 잠깐!”

하늘이가 세아의 팔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고 있었다.

“너 어디 가?”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버튼을 눌렀다. 1층. 그리고 문이 닫혔다. 자신의 친구를 가둔 채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상상했다. 불타고 있는. 엄마가 두려워하던 그 목소리를. 그것이 정확하게 뭐인지, 세아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그것이 돌아올 수 없는 것이었다. 한번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치 불처럼. 마치 한번 타오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처럼.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세아는 밤의 서울로 나갔다.

# 한강공원의 선택

## 1부: 악의의 목소리

병실의 형광등이 백색의 차가운 빛을 뿌렸다. 그 빛 아래서 세아의 엄마는 마치 유리 관 속의 표본처럼 보였다. 심장 박동 모니터가 규칙적으로 ‘삐-삐-삐’ 소리를 냈고, 산소 호흡기는 부드럽게 ‘쉬-쉭’ 거렸다. 세아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주름진 이마, 가라앉은 눈가, 입술의 창백함. 그 모든 것이 세아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세아, 누가 거니?”

도현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막내 오빠의 불안한 톤. 고등학교 2학년인 도현은 원래 이런 상황에 약했다. 엄마가 쓰러진 지 3주. 그 3주 동안 도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 깨달음은 그를 점점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누구냐고 물어봤잖아.”

하늘이의 목소리가 더 단호했다. 친구들과는 다르게, 세아를 많이 알고 있는 친구. 서울대학교 의예과에 진학한 하늘이는 이 병실에 드나들면서 의료 현실의 잔인함을 배워가고 있었다. 3주 동안 세아의 엄마는 좋아지지 않았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기적을 기원할 수밖에’라는 식의 말을 했고, 건강보험은 더 이상의 입원료를 커버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세아는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화면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누군가 전화를 끊은 지 10초 정도 지난 상태였다.

“강리우예요.”

세아가 대답했다.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쓰라렸다. 강리우.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저주처럼 느껴졌다.

“강리우?”

도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강리우? 그 악명 높은—”

“응. 그 사람이.”

세아가 잘라 말했다. 더 설명할 힘이 없었다.

하늘이가 세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려는 듯. 세아는 그 시선을 피했다.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아마 창백하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었다.

“뭐라고 했어? 무슨 일이야?”

하늘이의 목소리에는 이미 걱정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세아는 깊게 숨을 쉬었다. 폐 속 깊은 곳까지 산소를 끌어당겼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병실의 산소 냄새, 소독약 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는 썩은 음식 냄새가 함께 흘러나왔다.

“엄마를 더 좋은 병원으로 옮길 수 있다고 했어. 더 좋은 의사를. 최고의 의료진을.”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마치 자신이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게 좋은 거 아닌가?”

도현이 물었다. 그 단순한 질문 속에는 엄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조건이 있어.”

하늘이가 먼저 말했다. 의예과 학생답게, 그녀는 이 세상의 거래 구조를 이미 배워가고 있었다. 좋은 것은 항상 대가를 요구한다. 특히 강리우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호의는 더더욱.

“응. 그의 아버지를 만나야 해. 그리고 만약 내가 안 만나면—”

세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싶었다. 방금 들었던 말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도현과 하늘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도 알아야 했다.

“강리우의 아버지가 엄마를 강제로 옮길 거래고. 자기 병원으로. 그리고 나한테 거래를 제시할 거래. 엄마의 치료를 위해서, 내가 그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세아가 마지막 말을 끝냈을 때, 병실의 공기가 얼어붙은 것 같았다. 형광등의 ‘윙윙’ 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심장 박동 모니터의 ‘삐-삐-삐’ 소리도 더 빠르게 느껴졌다.

도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지금은?”

“지금은 만나자고 했어. 한 시간 안에. 한강공원에서.”

세아가 대답했다.

## 2부: 엘리베이터 내려가기

“기다려. 너 진짜 가려고?”

하늘이가 세아의 팔을 잡으려 했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세아는 그 따뜻함을 느껴야 했다. 왜냐하면 곧 떠나야 할 것 같았으니까.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일어섰다.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의 다리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깨달았다. 3주 동안 병실과 카페, 병실과 카페 사이를 오갔다.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았다. 그 결과, 자신의 몸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조종하는 인형처럼.

세아는 엄마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엄마. 회색의 담요가 엄마의 몸을 덮고 있었다.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세아!”

하늘이가 다시 세아를 부르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복도로 나가는 문을 밀어냈다. 문이 ‘Ugh—’ 소리를 내며 열렸다. 냉기가 흘러나왔다. 병실의 따뜻함을 떠나, 복도의 차가운 세상으로.

병실이 있는 7층 복도는 오후 9시 5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 시간이 되면 병원은 조용해진다. 간호사들은 저녁 근무를 마치고 있었고, 방문객들은 모두 떠나가고 있었다. 세아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아래로. 아래로.

“너 어디 가?”

도현이 뒤를 따라왔다. 막내 오빠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니, 떨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완전히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경이 망가진 기계처럼.

‘내가 정신이 있나?’

세아가 자신에게 물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띠-띠-띠-띠-띠—’ 수직으로 이동하는 철제 박스의 소리.

“세아, 잠깐!”

하늘이가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심각했다. 의예과 학생인 하늘이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강리우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병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넌 뭐하는 거야?”

하늘이가 외쳤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비어 있는 엘리베이터. 거울로 된 벽이 세아의 모습을 반사했다. 세아는 자신을 봤다. 검은색 후드티, 어두운 눈, 창백한 얼굴.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

“너 정신이 있어?”

하늘이가 세아의 팔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친구를 가두면서.

“너 어디 가?”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문이 천천히 닫혀가고 있었다.

“한강공원.”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1층. ‘삐’— 문이 완전히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속도가 붙으면서 세아의 몸이 살짝 들었다. 떨어지는 느낌. 그것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강리우의 마지막 말을 다시 생각했다.

‘내가 안 만나면 어떻게 될까?’

그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강리우의 아버지는 어차피 엄마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게 더 쉬울 테니까. 이미 엄마는 보험 커버가 끝났다. 이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를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강리우의 아버지의 병원이 바로 그 병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세아가 자신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끝난 것 아닌가?’

엘리베이터가 4층을 지났다. 3층. 2층.

‘엄마를 살려야 한다.’

세아가 중얼거렸다.

‘엄마를 살려야 해.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야.’

1층에 도착했다.

‘삐—’

문이 열렸다.

## 3부: 밤의 서울

병원 1층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밤 10시를 향해 가는 시간이었다. 당직 간호사만 카운터에 앉아 있었고, 청소 아주머니가 바닥을 밀고 있었다. 세아는 그들을 피해 응급실 쪽으로 걸어갔다.

밖의 공기가 세아의 얼굴을 때렸다. 10월 밤의 서울 공기. 차갑고, 약간의 습기가 섞여 있었다. 호흡이 하얀 연기가 되어 떠올랐다.

세아는 핸드폰의 지도 앱을 켰다. 현재 위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삼성의료원. 목적지: 한강공원 반포 지구. 거리: 약 3.5km. 이동 시간: 자동차 기준 10분, 대중교통 기준 25분, 도보 기준 45분.

택시를 탈 여유는 없었다. 엄마의 의료비로 모든 돈이 사라졌다. 지금 주머니에는 5,000원짜리 동전 몇 개와 카드만 있었다.

세아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며, 세아는 창밖의 서울을 봤다. 밤의 서울.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자동차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창백한 얼굴의 여학생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세아가 자신에게 물었다.

창밖의 야경이 흐릿하게 흘러갔다. 강남역, 교대역, 그리고 점점 한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의 냄새. 오래된 흙의 냄새.

‘내가 정말 이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세아의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아니다. 이건 미친 짓이 아니야. 이건… 생존이야.’

버스가 한강공원 반포 지구 입구에 도착했다. 세아는 내렸다. 밤 10시 40분. 강리우가 말한 ‘한 시간 안에’까지 20분이 남아 있었다.

한강공원은 밤의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로등이 몇 개 있었지만, 그것들은 오직 길을 밝힐 뿐이었다. 공원 자체는 거대한 검은색 그림자로 보였다. 한강은 더욱 그랬다. 검은 물. 생명이 없어 보이는 검은 물.

세아는 공원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발걸음 소리가 콘크리트 위에서 울렸다. 혼자라는 느낌이 더해졌다.

‘엄마.’

세아가 중얼거렸다.

‘엄마, 내가 뭐하는 건지 알아? 내가 지금 정말 미친 거 아닌가?’

그 순간, 검은색 벤츠가 공원 입구에서 나타났다. 헤드라이트가 세아를 비추었다. 세아는 눈을 맞췄다. 빛이 너무 밝았다. 너무 직접적이었다.

벤츠가 멈췄다. 뒷문이 열렸다.

강리우가 나타났다.

## 4부: 대면

강리우는 세아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검은색 코트, 차가운 눈빛, 그리고 항상 입가에 맺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비웃음.

“잘 왔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전화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너 아버지는?”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들어보려고.

“아직 안 왔어. 너를 먼저 봐야 하니까.”

강리우가 다가왔다. 세아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너 엄마를 살리고 싶어?”

강리우가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럼 따라와. 그리고 내 말을 들어. 정확히.”

강리우가 손을 뻗었다.

세아는 그 손을 보았다. 깨끗하고, 정돈된, 그리고 무언가를 잡을 준비가 된 손.

‘내가 그 손을 잡으면?’

세아가 생각했다.

‘내가 그 손을 잡으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을 거야. 마치 불처럼. 한번 타오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처럼.’

세아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계속될 것 같은 결말**

(다음 파트가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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