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90화: 목소리가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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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0화: 목소리가 불타고 있다

어머니의 손이 떨렸다. 세아의 손 위에서, 그리고 세아는 그 떨림이 자신의 손가락을 통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 안에 저장해둔 모든 두려움을 이 한 순간에 방출하려는 것처럼.

“목소리가…”

어머니가 다시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숨이 끊어졌다. 모니터가 경고음을 울렸다. 높은 음역대의 비프음이 병실 안을 채웠다. 도현이 벌떡 일어섰다. 하늘이가 문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 어머니의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 제발.”

세아가 속삭였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들었다. 어머니의 눈빛이 한순간 명확해졌다. 마치 그 한 문장이 어머니를 다시 깨워낸 것처럼.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어머니가 말했다. 한 단어씩. 끊어지는 호흡 사이에서. 마치 각 단어가 자신의 폐에서 최후의 산소를 태워내면서 나오는 것처럼.

세아의 몸이 경직되었다. 불타고 있었어. 과거형. 어머니는 지금이 아니라 과거를 말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뭔가.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 더 깊숙한 곳. 세아는 자신의 기억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불만 있었다. 선명하지 않은, 담배 연기처럼 흩어지는 불.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 아니, 누군가의 침묵.

의료진이 들어왔다. 두 명. 간호사와 의사. 그들의 움직임은 자동화되어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아는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의료진은 세아를 밀어내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의 손을 놓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더 깨어날 수도 있으니까. 더 말할 수도 있으니까.

“강민준이가…”

어머니가 다시 시작했다. 의료진이 모니터를 조정하는 사이에.

“강민준이가 뭐, 엄마?”

세아가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강민준. JYA 엔터테인먼트의 회장. 강리우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 세아는 이전에 그것을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어머니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그것이 너무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너무 무거웠다.

“들었어… 저게…”

어머니의 눈이 다시 초점을 잃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가 세아에게 말해야 할 것을 다 말했고, 이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엄마, 뭘 들었어? 뭘?”

세아가 물었다. 더 크게. 더 절박하게.

의사가 세아의 팔을 부드럽게 만졌다.

“환자가 지금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조금 물러나 주실 수 있을까요?”

의사가 말했다. 정중하게. 하지만 그것은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세아는 손을 놓았다. 천천히. 어머니의 손가락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손을 따라왔다. 마치 어머니도 놓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의료진의 움직임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도현과 하늘이가 세아를 병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의 형광등이 다시 세아를 눈부시게 했다. 너무 밝았다. 너무 명확했다. 세아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의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으니까.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불타고 있었어.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이것들을 사용해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피아노를 쳤나? 노래를 했나? 아니면 더 나쁜 것을 했나? 누군가를 상처 줬나?

“세아, 앉아. 넌 반쯤 죽은 것처럼 보여.”

하늘이가 세아의 팔을 잡고 복도의 벤치로 이끌었다. 세아는 저항하지 않았다. 자신의 다리가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도현이 세아의 옆에 앉았다.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도현의 호흡을 들을 수 있었다. 빠르고, 불규칙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의 호흡.

“엄마가 뭐라고 했던 거, 도현? 정확하게 뭐라고?”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말할지 말지 결정하려는 것처럼.

“도현.”

세아가 다시 말했다. 더 부드럽게. 하지만 더 단호하게.

“첫 번째는… 아버지. 엄마가 아버지라고 계속 중얼거렸어. 그리고…”

도현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리고 누나. 계속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어. 마치 누나가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마치 누나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도현이 말했다.

세아의 손이 다시 떨렸다. 이번에는 더 심했다. 하늘이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 꼭. 마치 세아를 붙잡아 두려는 것처럼.

“그리고 어제?”

세아가 물었다.

“어제는… 누나 이름을 부르고 있었어. 그리고 ‘미안하다’고. 계속 ‘미안하다’고. 그리고…”

도현이 다시 멈췄다.

“뭐?”

세아가 거의 속삭이듯이 물었다.

“그리고 ‘들었어’라고. 누나 목소리를 들었다고. 아니면… 그걸 들었다고. 아 정확하지 않아. 엄마 말이 너무 끊어져서. 근데 분명 목소리하고 들었다는 말이 있었어.”

도현이 말했다.

세아의 몸이 벤치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마치 자신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한 것처럼.

“누나?”

도현이 세아의 팔을 흔들었다.

“응. 괜찮아.”

세아가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하지 마. 너 얼굴 봤어. 너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위험해 보여.”

도현이 말했다.

세아는 도현을 봤다. 그 아이의 눈. 너무 오래되어 보였다. 열일곱 살 아이의 눈이 아니었다. 마치 어른의 눈이 그 어린 얼굴에 심어져 있는 것처럼.

“미안해, 도현. 엄마한테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안 들었고… 그리고…”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뭐? 강리우 때문이야? 그 남자한테 또 가 있었어?”

도현이 물었다. 목소리에 분노가 섞여 있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대답이었다.

“정신 차려, 누나. 제발. 그 남자는…”

도현이 말했고, 멈췄다. 하늘이가 도현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작은 제스처였지만,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것은 아직 도현이 말해야 할 것이 아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손가락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세아는 알 수 있었다. 이 떨림이 무엇인지. 이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이것은 분노였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분노.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과거형으로.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불타고 있다. 항상 불타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마도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고 그 불은 누군가를 상처 줬다. 어머니를. 강민준을. 또 누군가를. 세아는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있었다. 그 불은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내가 뭔가를 했어?”

세아가 물었다. 도현과 하늘이에게. 또는 자신에게.

“뭐?”

도현이 물었다.

“어릴 때. 내가 뭔가를 했어? 엄마한테? 아버지한테? 내가… 누군가를 상처 줬어?”

세아가 물었다.

도현과 하늘이가 서로를 봤다. 마치 그들이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세아, 넌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하늘이가 말했고, 멈췄다.

“그냥 뭐?”

세아가 물었다.

“그냥 너인 것뿐이야. 그게 다야.”

하늘이가 말했다.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 단순했다. 어머니의 두려움이, 아버지의 두려움이, 강리우의 집착이 모두 그냥 세아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뭔가 더 있었다. 더 깊은 것. 더 어두운 것.

“강리우를 봐야 할 것 같아.”

세아가 갑자기 말했다.

“뭐? 지금?”

도현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세아, 잠깐. 엄마가…”

하늘이가 말했다.

“엄마는 자고 있을 거야. 의료진이 진정제를 줬을 거야. 그리고 나는…”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셌다. 여전히 다섯 개.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알아야 해. 지금.”

세아가 말했다.

복도의 형광등이 계속 울렸다. 마치 경고음처럼. 마치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처럼.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무시했다.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다. 배터리는 3%였다. 곧 꺼질 것이다.

“강리우한테 전화 걸어.”

세아가 하늘이에게 말했다.

“뭐?”

“내 배터리가 거의 없어. 강리우를 찾아야 해. 그리고 나는… 나는…”

세아가 말을 멈췄다.

“너는?”

하늘이가 물었다.

“나는 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가 세아를 바라봤다. 오랫동안. 마치 자신이 알던 세아가 아닌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마치 세아의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알겠어.”

하늘이가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병원 복도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의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이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불이 이미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제 세아는 그 불이 무엇을 태우고 있는지 보기 위해 눈을 떠야 한다. 어떤 대가가 있더라도.

강리우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렸다. 하늘이가 전화를 건 후 몇 초 만에.

“세아?”

강리우가 물었다. 목소리에 불안감이 있었다.

“응. 나야.”

세아가 대답했다.

“어디야? 다치지 않았어?”

강리우가 물었다.

“병원이야. 엄마가 깨어났어. 그리고…”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다시 세었다. 다섯 개.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나를 봐야 할 것 같아. 지금. 우리가 뭔가를 얘기해야 할 것 같아. 진짜로.”

세아가 말했다.

침묵이 전화기를 통해 흘렀다. 몇 초. 몇 분.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알겠어. 어디?”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한강변. 지금. 내가 거기 가 있을게.”

세아가 말했다.

전화를 끊었다. 배터리가 1%였다. 핸드폰은 이제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세아, 너 진짜 괜찮아?”

도현이 물었다.

세아는 도현을 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 계속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아직 무언가를 태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응. 괜찮아.”

세아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병원을 빠져나갔다. 도현의 목소리, 하늘이의 목소리를 뒤에 남기고. 복도의 형광등, 모니터의 비프음을 뒤에 남기고. 어머니의 침대, 그리고 어머니의 두려움을 뒤에 남기고.

밤 거리는 여전히 뜨거웠다. 또는 세아가 그렇게 느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내부에서 불타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제 세아는 그 불이 누구를 태워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또는 자신이 그 불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한강변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계속 세었다. 다섯 개.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이제 알고 있었다. 이 떨림이 무엇인지. 이것은 공포도, 분노도 아니었다. 이것은 인식이었다.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온 어떤 것의 인식.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면, 세아는 그것을 마주해야 했다. 강리우와 함께.

한강의 물이 밤빛을 반사했다. 마치 불처럼. 마치 수없이 많은 작은 불들이 물 위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세아는 그 물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세아의 귀 안에서. 그리고 이제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 불은 계속될 것이다. 계속 타올 것이다. 어떤 진실을 마주하든, 어떤 대답을 받든.

왜냐하면 그 불은 세아 자신이었으니까.


[12,847자]

# 그 불은 세아 자신이었다

## 1부: 전화

밤 11시 47분.

세아의 핸드폰 화면이 울렸을 때, 그녀는 병원 복도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불소독 냄새가 나는 이곳에서, 형광등의 하얀 빛 아래서,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세고 있었다. 다섯 개. 예상대로.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었을 때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강리우’였다. 세아는 그 이름을 보고 몸 전체가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그녀의 척추뼈를 하나하나 얼리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불안감이 몰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들어올린 손가락들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지금 전화할 시간이 아닌데…’

세아는 한번 생각했지만,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나야.”

목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자신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목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불안정했고, 어딘가 깨져 있었다.

“어디야? 다치지 않았어?”

강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기 너머에서. 세아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걱정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이었을까? 강리우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세아는 더 이상 누군가의 걱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병원이야. 엄마가 깨어났어.”

세아가 대답했다. 병원. 그 단어가 입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 모습. 얼굴에 산소 마스크를 하고 있는 그 모습. 세아는 그 장면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계속 지우려고 했지만, 그것은 자꾸만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계속해야 할지 몰랐다. 이 순간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할지.

“그리고?”

강리우가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긴장이 담겨 있었다. 마치 강리우도 무언가 나쁜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다시 세었다. 다섯 개.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신체의 일부가 된 것처럼. 자신의 뼈 속에 새겨진 리듬처럼.

“나를 봐야 할 것 같아. 지금. 우리가 뭔가를 얘기해야 할 것 같아. 진짜로.”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었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도.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무서운지도 알고 있었다.

침묵이 전화기를 통해 흘렀다.

몇 초. 그것은 마치 몇 분처럼 느껴졌다. 아니, 몇 시간처럼. 세아는 그 침묵 속에서 강리우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상상해보려고 했다. 강리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강리우가 자신의 말을 들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 것인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알겠어. 어디?”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결정이 담겨 있었다. 더 이상 질문이나 의심이 없었다. 그저 수락. 그저 ‘알겠어’라는 말.

“한강변. 지금. 내가 거기 가 있을게.”

세아가 말했다.

전화를 끊었다. 손가락이 버튼을 눌렀고, 그 순간 강리우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배터리가 1%였다. 화면 위에 빨간 글자로 ‘배터리 부족’이라는 경고가 떠 있었다. 핸드폰은 이제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치 세아 자신처럼.

“세아, 너 진짜 괜찮아?”

도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복도의 다른 쪽에서 세아를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도현이는 항상 걱정했다. 항상 물었다. ‘너 괜찮아?’, ‘뭐 해?’, ‘뭐 생각해?’. 그런 질문들이 세아를 질식시켰다.

세아는 도현이를 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 계속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마치 자신이 아직 무언가를 태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였다. 마치 그 불이 아직 자신의 몸 안에서 꺼지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응. 괜찮아.”

세아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병원을 빠져나갔다. 도현이의 목소리를 뒤에 남기고. 하늘이의 목소리도 뒤에 남기고. 복도의 형광등, 모니터의 비프음, 간호사들의 발걸음 소리를 뒤에 남기고. 어머니의 침대, 그리고 어머니의 두려움을 뒤에 남기고.

## 2부: 밤

밤 거리는 여전히 뜨거웠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세아가 그렇게 느꼈다. 밤 공기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그것이 불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내부에서 불타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제 세아는 그 불이 누구를 태워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또는 자신이 그 불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병원을 나온 세아는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았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렸다. 운전사에게 목소리를 낼 때도. “한강변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할 때도. 그 목소리는 낯선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택시 뒷좌석에 앉으면서 세아는 창문을 통해 밤거리를 봤다. 네온사인들이 밝혀있었다. 편의점, 치킨집, 노래방.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누군가는 친구와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냥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정상이었다.

세아는 한강변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계속 세었다.

다섯 개.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이제 알고 있었다. 이 떨림이 무엇인지. 이것은 공포도, 분노도 아니었다. 이것은 인식이었다.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온 어떤 것의 인식. 어떤 진실. 어떤 무서운 진실.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면, 세아는 그것을 마주해야 했다. 강리우와 함께. 이제 더 이상 숨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그 불이 타올라 버린 이상, 그것을 끝내야 했다.

택시가 한강변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완전히 졌다.

## 3부: 한강

한강의 물이 밤빛을 반사했다.

마치 불처럼. 마치 수없이 많은 작은 불들이 물 위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세아는 그 물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한강변은 조용했다.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몇몇 연인들이 나무 아래서 앉아있었고, 누군가는 혼자 산책을 하고 있었다. 세아는 그들을 보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부러움? 아니면 뭔가 다른 것?

그녀는 한강변을 따라 걸었다. 신발이 포장도로를 두드렸다. 각 발걸음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종처럼 들렸다. 분침. 초침.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도, 그리고 세아의 마음도.

‘어디 어디 가 있을까?’

세아는 생각했다. 강리우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 오는 중일까? 아니면 이미 여기 어딘가에 있을까?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한 명의 남자를 봤다.

그는 한강변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혼자. 물을 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 검은 옷. 세아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을 멈췄다.

강리우였다.

그는 세아를 아직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여전히 물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뭔가가 있었다. 슬픔? 분노? 아니면 뭔가 다른 것?

세아는 천천히 그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 4부: 대면

강리우가 세아를 봤을 때 그의 얼굴이 변했다.

“오늘 밤에 뭐 있었어?”

강리우가 먼저 물었다. 세아가 벤치에 앉기도 전에.

세아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강리우 옆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그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보호막인 것처럼.

“뭐가 있었어?”

강리우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더 강했다. 더 절박했다.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보면서 세아는 생각했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엄마가 깨어났어.”

세아가 말했다.

“응. 그래. 그건 내가 안다. 도현이가 말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엄마가 뭔가를 기억했어. 그날 밤 것을.”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떨었다. 마치 추운 것처럼. 아니, 이것은 추움이 아니었다. 이것은 공포였다.

강리우가 움직였다. 그는 세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이 세아와 만났다.

“뭘 기억했어?”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강리우의 눈을 봤다. 그 안에 뭔가가 있었다. 공포. 그리고 뭔가 다른 것도. 세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죄책감이었다.

“그날 밤… 목소리가 있었대. 불타고 있는 목소리. 누군가의 목소리.”

세아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한강의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두 사람의 숨소리.

“세아…”

강리우가 세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뭔가가 있었다. 간청? 또는 고백?

“그게 너였어, 맞지?”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에 뭐가 있었어? 정말로. 엄마가 왜 화상을 입었어? 왜 병원에 가야 했어?”

세아가 계속 물었다.

“그리고 왜 너는 계속 내 곁에만 있었어? 왜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았어?”

그 질문들이 나왔을 때, 세아는 자신의 손이 얼마나 심하게 떨리고 있는지 느꼈다.

강리우는 깊게 숨을 쉬었다.

“내가… 내가 그날 밤에 뭔가를 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뭘?”

세아가 물었다.

“넌 모르는 게 낫아.”

강리우가 말했다.

“알고 싶어. 지금. 진짜로.”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는 한강의 물을 봤다. 마치 그 물 속에 답이 있는 것처럼.

## 5부: 진실

“그날 밤에 엄마가 나한테 뭔가를 했어. 너한테도 했을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동생의 얼굴을 봤다. 그의 얼굴에는 상처가 있었다. 육체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였다. 깊은 상처.

“그리고 나는 화났어. 진짜 화났어. 그래서 나는… 나는…”

강리우가 말을 멈췄다.

“너는 뭘 했어?”

세아가 물었다.

“나는 엄마를 해치고 싶었어. 정말로.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나는 큰 소리로 외쳤어. 정말 크게. 화풀이를 하듯이. 그리고 엄마는… 엄마는 그 과정에서 불로 인한 화상을 입었어.”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그건 사고였어.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책임이 있어. 왜냐하면 내가 화났으니까. 내가 그 상황을 만들었으니까.”

강리우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너를 보호하고 싶었어. 너한테 이 모든 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너를 지켰어. 모든 것으로부터.”

강리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울어야 할까? 화내야 할까? 아니면 강리우를 안아야 할까?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이 손가락을 세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다섯 개.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세아의 귀 안에서. 그리고 이제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나도 화났었어. 그날 밤. 엄마한테. 그리고 나는 그 화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랐어.”

세아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너를 봤어. 너의 표정을 봤어. 그리고 나는 너도 화났다는 걸 알았어. 너도 고통 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

세아는 강리우를 바라봤다.

“우리가 함께 고통 받았어. 함께 화났었어. 그리고 그 불이 타올라 버린 거야.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일어났어.”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그래. 맞아.”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그 불은 이제도 계속 타고 있어.”

세아가 말했다.

“응. 맞아.”

강리우가 대답했다.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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