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85화: 타투이스트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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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5화: 타투이스트의 침묵

하늘이의 손가락이 스티어링 휠에서 떨어졌다. 마치 뜨거운 것을 만진 것처럼. 그 손은 다시 시동 버튼을 찾았고, 엔진음이 지하주차장에 울렸다.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방금 들은 말들을 처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강리우. 이복형. 강미준의 아들. 그리고 하늘이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일까. 처음부터일까.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일까.

“넌 왜 말 안 했어?”

세아가 물었다. 그 질문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몇 개월의 모든 대화, 모든 침묵, 모든 하늘이의 걱정 어린 눈빛을 향한 질문이었다.

하늘이는 차를 천천히 후진시켰다. 주차장의 기둥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가면서.

“너 상태 봤잖아. 너 이미 무너져 있었어. 그 남자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엄마 때문에. 그 위에 또 뭔가를 얹으면 넌 완전히…”

하늘이가 말을 멈췄다. 차가 주차장을 나가 지표면으로 올라왔다. 강남역 근처의 밤거리.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편의점, 술집, 노래방, 버스. 모든 것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마치 서울은 밤이 없는 도시인 것처럼. 마치 어둠을 허락하지 않는 곳인 것처럼.

“완전히 뭐?”

세아가 물었다.

“사라질 것 같았어.”

하늘이가 대답했다. 그 말에는 과거형이 있었다. 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것 같았다. 미완료의 공포. 예방의 결정.

“나 이미 사라졌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자조가 아니었다. 선언이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세아라는 존재가 이미 무언가에 의해 대체되었던 것처럼.

하늘이의 손이 변속기를 조작했다. 차가 강남 거리로 들어섰다. 신호등을 지나고, 또 지나고. 세아는 창밖의 불빛들을 세고 있었다. 몇 개의 불빛이 그녀를 지나갔는가. 백 개? 천 개? 세기엔 너무 많았고, 세지 않기엔 너무 중요했다.

“강리우가 너 찾으러 다녔어.”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고개를 돌렸다.

“응. 너 병원 있을 때. 그 남자 모든 곳을 다니고 다녔어. 너 집, 너 알바하던 편의점, 너 친구들. 다 찾았어.”

하늘이가 계속했다.

“뭐라고 했어?”

“뭐라고는… 너 찾는다는 것 말고 뭘 더 말해. 손이 떨리고, 얼굴은 창백하고, 눈은 계속 흔들리더라고. 내가 봤을 때 그 남자 거의…”

하늘이가 말을 멈췄다.

“거의 뭐?”

“거의 미쳐가는 중이었어.”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의 손이 문의 손잡이를 찾았다. 마치 차에서 내려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지 거기 손을 얹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문을 열면, 이 차에서 나가면, 무엇이 시작될까. 무엇이 끝날까.

“엄마가 뭐라고 했어? 정확히?”

세아가 물었다.

“뭐 어떤 게 정확히야. 엄마가 하는 말 다 조각들이잖아. 하지만 너 들은 거 맞아. 강미준이가 너 아버지고, 강미준이가 너 찾으려고 한다는 거. 그리고 강리우가 그걸 도와주고 있다는 거.”

하늘이가 말했다.

“왜?”

“뭐가 왜?”

“강미준이가 날 찾는 이유. 강리우가 날 찾는 이유. 다 왜?”

세아가 물었다.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차를 옆으로 세웠다. 강남역 입구 근처의 빨간 불 지역. 성적인 간판들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그곳은 서울의 다른 곳과 달랐다. 그곳의 밤은 더 뜨겁고, 더 습하고, 더 노골적이었다.

“너 정말로 강리우 만나고 싶어?”

하늘이가 물었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 질문인 것처럼. 마치 이 질문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것처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다시 들었다. 손가락들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이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또는 그것이 사실은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 남자 지금 어디야?”

세아가 물었다.

“모르겠어. 너 병원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본 게 3일 전이야. 그 후로는 연락이 끊겼어.”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이 켜졌다. 배터리는 13%. 미확인 전화가 여러 개 있었다. 강리우에게서 온 것이 아니었다. 도현에게서 온 것이었다. 3일 전, 5일 전, 1주일 전. 시간이 지날수록 전화의 간격이 벌어졌다. 마치 도현이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누나가 이미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깨달은 것처럼.

“도현이…”

세아가 중얼거렸다.

“응, 너 형이 계속 찾았어. 나한테 물어봤어, 너 어디냐고. 난 모른다고 했지. 근데 그 애 목소리 들었어? 완전 지쳐 있더라.”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도현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신경을 절단해 버린 것처럼. 마치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 뭐 할 거야?”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화면이 꺼졌다. 그리고 다시 켜졌다. 자동으로. 마치 세아가 아닌 무언가가 이 기계를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타투 새로운 거 해줄 수 있어?”

세아가 갑자기 물었다.

“뭐?”

하늘이가 반응했다.

“타투. 지금. 이 시간에.”

세아가 말했다.

“세아, 넌 정신이 있어? 지금 밤 한 시 반이야. 그리고 넌 병원에서 나온 지 몇 시간 안 됐어. 너 엄마가 입원해 있어. 넌…”

하늘이가 말했지만, 세아의 눈빛을 봤다. 그 눈빛에는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마치 세아라는 인간이 이미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처럼. 마치 이 몸은 단지 그 명령을 따르는 기계일 뿐인 것처럼.

“네가 뭘 원하는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포기의 목소리로.

“엄마 이름 팔뚝에. 여기.”

세아가 자신의 왼쪽 팔뚝을 쓸어내렸다.

“세아…”

“제발.”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시동을 걸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강남 거리를 빠져나와 홍대 방향으로. 하늘이의 문신 가게. 지하 반지하의 작은 공간. 거기는 세아가 처음 이 모든 것을 인정했던 곳이었다. 엄마가 해녀였다는 것.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 자신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그곳에서 세아의 입에서 나왔었다.

차가 홍대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밤 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여전히 몇몇 술취한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젊은이들. 대학생들. 아직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세아는 그들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깨달았다. 24살이 아니라 100살처럼. 아니, 정확히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 움직이고 있는 시체처럼.

하늘이의 가게는 어두웠다. 문이 닫혀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열쇠를 돌렸고, 문이 열렸고, 형광등이 켜졌다. 그 밝음이 세아의 눈을 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프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이미 아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여기 앉아.”

하늘이가 의자를 가리켰다. 그 의자는 이전에도 세아가 앉았던 의자였다. 처음 타투를 받을 때. 작은 마음 모양. 선명한 빨강. 그것은 벌써 반년이 지나 있었다. 반년이 얼마나 오래인지 세아는 이제 알았다. 영원처럼 오래. 한 순간처럼 짧게.

세아는 의자에 앉았다. 팔뚝을 내밀었다. 하늘이는 손소독제를 뿌렸다. 그 냄새. 알코올. 의료용. 세아는 눈을 감았다.

“엄마 이름이 뭐야?”

하늘이가 물었다.

“나윤희.”

세아가 대답했다.

하늘이는 손으로 나윤희의 이름을 종이에 썼다. 한글. 나윤희. 그 글자들이 종이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마치 그 이름 자체가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이거 영구적이야. 알지?”

하늘이가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바늘이 움직였다. 첫 번째 점. 통증이 왔다. 하지만 그 통증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밀려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몸 안에 누적된 모든 것이 이 바늘 구멍을 통해 분출되려는 것처럼. 마치 세아라는 인간이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는 것처럼.

“세아.”

하늘이가 말했다.

“뭐?”

세아가 눈을 뜨고 물었다.

“너 이거 하는 거 후회할 거야. 내일쯤 깨어나면.”

하늘이가 말했다.

“알아.”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바늘은 계속 움직였다. 나. 윤. 희. 하나하나. 하늘이의 손은 전문가의 손이었다. 정확했다. 마치 이것이 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이것을 통해 무언가를 되돌릴 수 있다도 되는 것처럼.

“엄마가 뭐라고 했어? 너한테 뭐라고 말했어?”

하늘이가 바늘질하면서 물었다.

세아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지 침만 나왔다. 마치 자신이 이미 말을 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강미준이가 널 통제하려고 했다는 거?”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통제할 수 없었어. 나 때문에.”

세아가 마침내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마치 자신의 성대가 이미 닳아 있는 것처럼.

“너? 통제할 수 없었어?”

“내 목소리. 아버지가 두려워했어.”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의 손이 멈췄다. 바늘이 멈춘 상태에서 세아의 팔뚝에 박혀있었다.

“세아, 너 뭔 소리 해?”

하늘이가 물었다.

“나 노래할 때 사람들이 달라져. 내 말을 들을 때 뭔가가 바뀌어.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다시 바늘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천천히. 마치 세아를 쓸고 있는 것처럼. 마치 세아라는 인간을 종이에 옮겨담으려는 것처럼.

“그래서 넌 노래를 안 했어.”

하늘이가 선언했다. 질문이 아니라 선언. 그것은 사실이었다. 세아가 노래를 그만두기로 한 그 순간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르기로 한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강미준이가 널 찾으려고 한다고?”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아마도.”

“왜?”

“모르겠어. 하지만 강리우가… 그 남자가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엄마가 말했어. 그 남자가 엄마를 찾으러 병원에 왔다고. 그건 뭔가를…”

세아가 말을 멈췄다.

“뭔가를 뭐?”

“의미하는 것 같아.”

세아가 말했다.

타투는 계속되었다. 나윤희.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검은 물감이 세아의 살에 박혀들었다. 영구적인 표시.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세아는 이 통증이 좋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통증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주는 통증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강요하는 통증이 아니라.

“이거 다 끝나면 넌 뭐 할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이 무엇인지. 다음 호흡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시간은 계속 흘렀다. 밤 한 시에서 밤 두 시로. 밤 두 시에서 밤 세 시로. 홍대의 골목은 점점 조용해졌다. 술취한 사람들도 사라지고, 편의점의 불빛만 남았다. 그 불빛 아래에서 세아는 자신의 팔이 천천히 변하는 것을 봤다. 나윤희. 엄마의 이름. 이제 자신의 살에 영구적으로 새겨진 이름.

“끝났어.”

하늘이가 마침내 말했다.

세아는 팔을 들었다. 거울을 봤다. 검은 글씨. 선명하고, 아프고, 완벽했다.

“너 지금 누가 되고 싶어?”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봤다. 낯선 얼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얼굴. 자신이 항상 피하려던 그 얼굴.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넌 강리우를 만날 거야?”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팔뚝의 타투를 만졌다. 그 감각. 새로운 살. 영구적인 흉터. 자신이 선택한 상처.

“세아.”

하늘이가 이름을 불렀다.

세아는 하늘이를 바라봤다. 타투이스트의 눈. 그 눈에는 걱정과 피로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사랑인지 책임감인지. 아니면 그것이 같은 것인지.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뭐가?”

“모든 거.”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차에 탔다. 하늘이의 코스타. 새벽 3시 47분의 서울.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도시. 여전히 누군가는 깨어 있고, 누군가는 움직이고, 누군가는 불타고 있는 도시.

하늘이는 차를 시동했다.

“어디 가?”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강남 방향. 그곳에는 JYA Entertainment 건물이 있었다. 강미준이 있는 곳. 그리고 아마도 강리우도.

“강리우 집.”

세아가 말했다.

“세아…”

“가줄 수 있어?”

세아가 물었다.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차를 강남 방향으로 돌렸다. 새벽의 강남. 고급 아파트들. 높은 건물들. 그곳은 세아가 태어날 수 없었던 곳이었다. 세아가 살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세아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팔뚝에는 엄마의 이름이 영구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나윤희.

그것만이 세아의 진실이었다.

# 나윤희라는 이름

## 1부: 질문

“지금 뭘 생각해?”

하늘이의 목소리가 타투 건침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소리와 겹쳤다. 찍. 찍. 찍.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한 리듬. 마치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아니, 마치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이 무엇인지. 다음 호흡이 무엇인지. 다음 심장 박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자신이 누구인지.

팔뚝 위에 천천히 모양을 드러내는 검은 선들을 바라봤다. 하늘이의 손가락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이 남자는 정말 재능이 있었다.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타투 건의 바늘이 만드는 미세한 진동이 뼈까지 전달되는 느낌. 그것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쾌감이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

“생각 없어.”

세아가 거짓말을 했다.

생각이 없을 리가 없었다. 머릿속은 폭풍 같았다. 강리우. 강미준. 엄마. 그리고 지금 자신의 팔뚝에 영구적으로 새겨지고 있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마치 실타래처럼. 풀려고 할수록 더 엉키는 그런 실타래처럼.

하늘이는 세아의 거짓말을 알아챘는지 알아채지 못했는지 묵묵히 계속 작업했다. 그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마치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이 바늘, 이 피부, 이 글자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통증은?”

“괜찮아.”

세아가 다시 거짓말을 했다. 통증은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통증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곳에서 비롯된 통증이었다. 마음 깊숙한 곳. 영혼 같은 곳에서 비롯된 통증.

하늘이는 그 거짓말도 알아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계속 일했다. 찍. 찍. 찍. 그 소리가 세아의 귀에 박혀들었다.

## 2부: 시간의 흐름

밤 한 시.

편의점 앞의 시계가 그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아와 하늘이가 들어온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이상하게 흘렀다. 어떤 순간은 빠르게, 어떤 순간은 느리게. 마치 세상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은 것처럼.

밤 두 시.

홍대의 골목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취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노래하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삶의 모든 표정들이 거리에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클럽으로 들어가거나, 숙소로 돌아가거나, 혹은 어디론가 사라진 것.

남겨진 것은 편의점의 형광등 불빛뿐이었다. 그 차가운 불빛 아래에서 세아는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글자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개별적인 획들이 모여서 하나의 단어를 이루고 있었다. 나. 윤. 희.

엄마의 이름. 나윤희.

세아는 그 이름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슬픔인가? 아니다. 분노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뭘까. 마치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 자신의 몸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되는 것 같은 느낌.

엄마의 이름. 이제 영구적으로 자신의 살에 새겨진 이름.

세아의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맥박이 목에서 뛸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마치 바닥 없는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

하늘이가 이것을 느껴챘는지 잠깐 멈췄다.

“괜찮아?”

“응.”

세아가 또 거짓말을 했다.

괜찮지 않았다.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다. 자신이 강리우를 만나러 가고 있다는 것도 괜찮지 않았다. 자신의 팔에 엄마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는 것도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괜찮지 않은 것은 자신이 지금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하늘이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바늘은 계속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더 깊게. 더 영구적으로.

밤 세 시.

홍대의 골목은 거의 조용해져 있었다. 이제 거리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가끔 택시가 지나가고, 가끔 누군가의 발걸음이 들릴 뿐이었다. 세상이 잠에 빠져들었다. 또는 세상이 죽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편의점의 불빛만이 이 거리의 유일한 생명의 증거였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에서 세아는 자신의 팔이 서서히 변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검은 선들이 모여서 글자를 이루고, 글자가 모여서 이름을 이루고, 이름이 모여서 하나의 운명을 이루고 있었다.

나윤희.

엄마의 이름. 엄마의 존재. 이제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세아는 자신의 변화를 지켜봤다. 마치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피부가 누군가 다른 사람의 피부가 되어가는 것처럼.

## 3부: 끝과 시작

“끝났어.”

하늘이가 마침내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피로가 있었다. 하지만 또한 성취감도 있었다. 마치 오래된 작품을 완성한 예술가처럼.

바늘이 피부에서 떨어졌다. 세아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아직도 숨이 차있었다. 아직도 가슴이 철렁했다.

세아는 천천히 팔을 들었다. 거울을 향했다. 스튜디오에 붙어있는 작은 거울. 그것을 통해 자신의 팔을 봤다.

검은 글씨. 선명하고, 아프고, 완벽했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마치 예술작품처럼. 마치 자신이 이제 살아있는 예술작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나윤희.

그것을 읽을 때마다 뭔가 변했다. 자신의 정체성이 조금씩 바뀌었다. 마치 자신이 지금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너 지금 누가 되고 싶어?”

하늘이가 물었다. 그 질문은 단순해 보였지만, 매우 복잡했다. 누가 되고 싶은가. 그것은 누가 될 수 있는가와는 다른 질문이었다. 누가 될 수 있는가는 외부의 조건에 의해 결정되지만, 누가 되고 싶은가는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선택은 책임을 가져온다.

세아는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그 얼굴의 눈은 더 이상 자신의 눈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얼굴의 입은 더 이상 자신의 입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자신이 항상 피하려던 그 얼굴. 자신이 거울에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 얼굴. 자신의 진정한 얼굴.

그것은 무서웠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직면한다는 것은 무서웠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안다는 것은 무서웠다. 왜냐하면 그것은 책임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세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누가 되고 싶은지. 하지만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넌 강리우를 만날 거야?”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그 질문에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 위험한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걱정.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팔뚝의 타투를 만졌다. 그 감각이 얼마나 낯설었는지. 새로운 살. 영구적인 흉터. 자신이 선택한 상처. 자신이 스스로에게 입힌 상처.

손가락이 글자 위를 더듬었다. 각각의 획을 따라가며. 마치 그것을 읽으려고 하듯이. 마치 그것이 말을 걸려고 하듯이.

“세아.”

하늘이가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경고인가? 걱정인가? 아니면 이해인가?

세아는 하늘이를 바라봤다. 타투이스트의 눈. 그 눈에는 피로가 있었다. 지금껏 한 작업에 대한 피로. 하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사랑인지 책임감인지. 아니면 그것이 같은 것인지.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뭐가?”

하늘이가 물었다. 그 질문에는 진정한 궁금함이 있었다.

“모든 거.”

세아가 말했다.

이 남자는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했다. 자신의 팔에 엄마의 이름을 새겨주었고,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주었고, 자신의 옆에 있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4부: 새벽의 도시

그리고 세아는 차에 탔다. 하늘이의 코스타. 낡은 검은 차. 많은 것을 견뎌낸 차.

새벽 3시 47분의 서울. 시계가 그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상의 가장 어두운 시간. 해도 뜨지 않았고, 해도 떠오르려고 하지 않는 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시간.

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도시. 강남의 고급 건물들도 불이 켜져 있었다.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아직도 깨어있었다. 누군가는 밤샘 작업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새벽 조깅을 준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직도 불을 끄지 않은 채 깨어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불타고 있었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늘이는 차를 시동했다. 엔진음이 밤의 조용함을 깨뜨렸다. 마치 칼이 공기를 가르는 것처럼.

“어디 가?”

하늘이가 물었다. 그 질문은 단순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가는 누가 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밤의 서울. 차들이 지나갔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들렸다. 도시의 생명이 느껴졌다.

강남 방향. 그곳에는 JYA Entertainment 건물이 있었다. 그곳에는 강미준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강리우도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지금은 없어도, 곧 있을 것이었다.

“강리우 집.”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이 나올 때 뭔가 변했다. 자신의 호흡이 변했다. 자신의 심장박동이 변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변했다.

“세아…”

하늘이가 세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경고가 있었다. 마치 자신이 위험한 길로 들어서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경고.

“가줄 수 있어?”

세아가 물었다. 그것도 질문이 아니라 간청이었다. 간절한 간청.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차를 강남 방향으로 돌렸다. 엔진음이 더 커졌다.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리를 떠나 도로로 나갔다. 그리고 강남을 향해 나아갔다.

새벽의 강남. 고급 아파트들. 높은 건물들. 그곳은 세아가 태어날 수 없었던 곳이었다. 세아가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세아가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인 것처럼. 마치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인 것처럼.

하지만 이제 세아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팔뚝에 엄마의 이름을 새기고. 자신의 선택을 가지고. 자신의 결연함을 가지고.

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가 나오지 않았다.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엔진음과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가르는 소리만 들렸다. 그것들이 만드는 리듬. 그것들이 만드는 음악.

창밖으로 지나가는 서울의 풍경들. 밤의 서울은 낮의 서울과는 완전히 달랐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밤에는 보였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것들이 밤에는 들렸다. 마치 도시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 5부: 영구적인 선택

그리고 팔뚝에는 엄마의 이름이 영구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나윤희.

그것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팔에 자신의 엄마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선택이었다. 다른 모든 선택들을 포기하고 한 선택. 자신의 정체성을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선택. 마치 세상에 외치는 것처럼. “나는 나윤희의 딸이다. 나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유인가? 아니면 감옥인가?

아마도 둘 다일 것이었다. 자유와 감옥은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도 자유이면서 동시에 감옥이었다. 왜냐하면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가능성을 버린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팔을 다시 봤다. 그 위의 검은 글씨들. 영구적인 흔적. 돌이킬 수 없는 선택.

“나 강리우를 만나면 뭐라고 말할까?”

세아가 갑자기 물었다.

하늘이는 잠깐 생각했다. 그 동안 차는 계속 전진했다. 밤의 도로. 거의 아무도 없는 도로. 마치 세상의 끝처럼.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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