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4화: 엄마의 이름, 손목에 새겨지다
하늘이의 차는 강남역 지하주차장에서 멈췄다. 밤 12시 3분. 형광등이 천장에서 희뿌연 빛을 흘렸고, 그 빛은 세아와 하늘이의 얼굴을 공평하게 창백하게 만들었다. 하늘이의 손은 여전히 스티어링 휠에 얹혀 있었고, 그 손의 색깔이 계속 변했다. 주변 차들의 테일라이트 때문에. 빨강, 주황, 다시 검정. 마치 신호등처럼. 마치 신호를 기다리는 것처럼.
“강미준이가 널 원한다는 게 말이 돼?”
하늘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럽고, 마치 지뢰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걷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원한다는 게 아니라…”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손을 보면서.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아까 병실에서 엄마의 손을 놓을 때부터 시작된 떨림. 그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니라 뭐?”
“찾으려고 한다는 게. 그리고 그걸 강리우한테 시킨 거 같아.”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포기의 한숨이 아니라, 뭔가를 정리하려는 한숨이었다. 마치 자신이 들은 말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배열하려고 하는 것처럼.
“세아, 너 지금 정신이 가 있어? 아까 엄마 얘기 들었어. 엄마가 너한테 뭔가 말했으니까 너 이 꼴인 거지. 근데 그게 다 사실이야?”
하늘이가 물었다. 그 질문은 단순해 보였지만, 사실은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인가. 아니면 엄마의 환각인가. 아니면 세아의 오해인가.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가락을 세어봤다. 다섯 개. 모두 있었다. 모두 떨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신경을 직접 튀기고 있는 것처럼.
“이제 뭐 할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강리우를 찾아야 해. 그 남자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아.”
세아가 말했다.
“밤 중에? 혼자? 세아, 너 정신이 나갔어. 이 상황에서…”
하늘이가 말을 멈췄다. 마치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잃어버린 것처럼. 아니, 정확히는 말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세아는 창밖을 봤다. 지하주차장의 회색 벽. 그 벽에는 몇 개의 기둥이 있었고, 그 기둥들 사이의 어둠이 깊었다. 마치 누군가가 거기 숨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어둠. 마치 세아 자신도 그 어둠 중 하나일 수도 있을 것 같은 어둠.
“강리우가 내 아버지 아들이야?”
세아가 갑자기 물었다.
“뭐?”
하늘이가 반응했다.
“내 이복형. 강미준의 아들. 강리우가 내 이복형 아니야?”
세아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더 명확하게. 마치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이 모든 퍼즐이 이미 맞춰지고 있는 것처럼.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하늘이가 아는 뭔가. 세아에게 말하지 않기로 한 뭔가. 아니, 말할 수 없었던 뭔가.
“넌 알고 있었어?”
세아가 물었다. 이번에는 하늘이를 바라보면서.
“세아… 너 진짜…”
하늘이가 시작했지만, 말을 이었다. 대신 핸들을 꽉 쥐었다.
“내가 물어봤어?”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은 질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응. 너 강리우한테 물었어. 그 남자가 뭔 관계냐고. 그럼 강리우가 뭐라고 했는데, 넌 그 말을 못 들었어. 왜냐하면 그 때 너 이미…”
하늘이가 말했고, 멈췄다.
“이미 뭐?”
“떠나가고 있었어.”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다시 들었다. 손가락들. 그 손가락들이 아까부터 계속 뭔가를 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뭔가를 세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손가락들이 세는 것이 뭔지 세아 자신도 몰랐다.
“강리우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그 남자, 너 아버지한테 들었어. 너한테 말해도 되냐고. 그 때 너 답을 안 했어. 그냥 갔어. 그래서 난…”
하늘이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멈췄다.
“뭐 했어?”
“닥쳤어. 입을. 너한테 말 안 했어. 왜냐하면… 너 상태가 이미 심각했거든.”
하늘이가 말했다.
병실. 형광등. 엄마의 손. 세아는 이 모든 장면들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되감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강리우의 얼굴을 집어넣었다. 강리우. 내 이복형. 그 남자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을 보는 방식. 그 눈빛. 마치 자신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내가… 얼마나 오래 몰랐어?”
세아가 물었다.
“처음부터. 강리우가 너한테 접근했을 때부터.”
하늘이가 대답했다.
“그럼 넌? 넌 언제부터 알았어?”
“강리우가 너 이복형이라는 건… 너한테 말할 수 없는 거였어. 왜냐하면 그건 너의 선택이 아니었으니까.”
하늘이가 말했다. 그 말은 답이 아니라, 또 다른 질문이었다.
세아는 차에서 내렸다. 갑자기. 하늘이가 뭔가를 말했지만, 세아는 들리지 않는 척했다. 지하주차장의 회색 벽. 세아는 그 벽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그 벽을 뚫고 나가야 할 것처럼. 마치 그 벽 너머에 자신의 답이 있을 것처럼.
하늘이가 뒤를 따라왔다.
“세아, 멈춰! 차 나가야 돼!”
하늘이가 외쳤다.
세아는 멈추지 않았다. 대신 주차장의 한쪽 모서리로 걸어갔다. 그곳은 조명이 끊겨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빛을 끈 것처럼. 마치 어둠이 필요한 공간처럼.
“세아!”
하늘이가 세아의 팔을 잡았다. 힘껏.
“손 놔.”
세아가 말했다.
“안 돼. 넌 지금 정상이 아니야. 너 지금 뭐 하려고 하는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하늘이의 손이 자신의 팔을 감싸고 있었다. 그 손가락들. 타투 도구를 다루는 손. 정확하고, 강하고, 영구적인 것을 그리는 손.
“내가 엄마 이름을 새기고 싶어.”
세아가 말했다.
“뭐?”
하늘이가 물었다.
“타투. 엄마 이름. 손목에.”
세아가 말했다.
“지금?”
“지금. 지금 당장.”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세아를 바라봤다. 그 얼굴. 그 눈빛. 하늘이가 본 세아의 그 표정은 전에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마치 세아가 자신의 몸을 떠나가고 있는 것처럼.
“자동차 안에서?”
하늘이가 물었다.
“상관없어.”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동차로 돌아갔다. 뒷자리에. 세아를 데리고. 그곳은 타투 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바늘, 잉크, 거울. 그리고 작은 테이블 하나.
하늘이는 도구들을 꺼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정확하고, 빠르고, 전문적인 움직임. 마치 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일인 것처럼. 마치 세아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엄마 이름이 뭐야?”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닫았다. 엄마의 이름. 세아가 얼마나 오래 몰랐던 이름. 아니, 정확히는 엄마가 자신에게 말해준 적이 없었던 이름. 엄마는 항상 “나”였다. 엄마는 항상 “너”를 보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뭐?”
하늘이가 물었다.
“엄마 이름. 난 몰라.”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바늘을 멈췄다.
“그럼 뭐 새겨?”
“어머니라고. 엄마라고. 그냥… 엄마.”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바늘이 가죽을 뚫었다. 한 번, 또 한 번. 세아는 통증을 느껴야 했지만, 느끼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이미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몸이 이미 불타고 있는 것처럼.
“ㅇ”
바늘이 그었다. 세로줄 하나.
“ㅁ”
또 다른 형태.
“ㅁ”
반복.
“아”
마지막 음절.
세아는 자신의 손목을 봤다. 피가 나고 있었다. 작은 붉은 점들이 한국 글씨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엄마”. 그 두 글자. 세아가 처음으로 자신의 몸 위에 영구적으로 새기는 단어.
“끝.”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손목을 들었다. 붉은 피. 검은 잉크. 그 경계선.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표시당한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제 누군가의 소유물이 된 것처럼. 하지만 아니다. 이것은 반대다. 이것은 자신이 누군가를 표시하는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되찾는 것이다.
“이제 강리우를 찾아야 해.”
세아가 말했다.
“밤 중에?”
하늘이가 물었다.
“밤 중에.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을 것 같아?”
세아가 물었다.
하늘이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시간은 밤 12시 34분이었다. 강남역 지하주차장. 세아의 손목에는 “엄마”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 글자는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강리우 연락처 있어?”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며칠 동안 켜지 않았던 것 같았다. 세아는 전원을 켰다. 화면이 밝아졌고, 수십 개의 미시지와 통화 기록이 나타났다. 모두 강리우에게서 온 것이었다.
밤 10시 23분. 밤 10시 47분. 밤 11시 5분. 밤 11시 21분. 밤 11시 44분. 밤 12시 2분.
마지막 통화는 밤 12시 2분. 병원을 나오자마자. 마치 강리우가 세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강리우가 세아의 모든 움직임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세아는 통화 기록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눌렀다.
신호음. 한 번. 두 번. 세 번.
“세아?”
강리우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는 깨어 있었다. 마치 밤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이 통화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 지금 어디에 있어?”
세아가 말했다.
“강남역 지하주차장. 너 어디야?”
강리우가 물었다.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았어?”
세아가 물었다.
침묵. 그 침묵 속에 모든 답이 있었다. 강리우는 세아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 강미준이 시켰기 때문에. 아마도 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게임이었을 테니까.
“엄마가 말했어.”
세아가 말했다.
“뭐?”
“너 내 이복형이라고.”
세아가 말했다.
다시 침묵.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강리우의 숨소리를 들었다. 얕아진 숨.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만날까?”
강리우가 말했다.
“어디서?”
세아가 물었다.
“한강 공원. 합정역 근처. 1시간 안에.”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하늘이를 바라봤다.
“가야 해.”
세아가 말했다.
“혼자?”
하늘이가 물었다.
“혼자.”
세아가 대답했다.
“세아, 너…”
하늘이가 시작했지만, 말을 잃었다. 마치 자신이 세아를 멈출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세아가 이미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자동차에서 내렸다. 손목의 타투는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엄마”. 그 두 글자. 세아가 자신의 몸에 새긴 첫 번째 단어.
밤 12시 47분. 강남역에서 합정역까지는 지하철로 약 15분. 세아는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갔다. 하늘이는 뒤를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친구를 보내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마지막 이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지하철 안. 밤 12시 55분. 승객은 거의 없었다. 한두 명의 술 취한 사람들. 한 명의 노숙자. 그리고 세아. 세아는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은 누구의 얼굴인가. 강미준의 얼굴인가. 엄마의 얼굴인가. 아니면 강리우의 얼굴인가.
합정역에 도착했을 때, 밤 1시 3분이었다. 한강 공원. 그곳은 조용했다. 마치 세상 끝에 있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세아를 위해 준비한 무대처럼.
강리우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세아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표정보다 더 부서진 표정으로.
세아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강리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약 2미터. 마치 누군가가 정해놓은 거리처럼. 마치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처럼.
“난 몰랐어.”
강리우가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너한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그걸 몰랐어.”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손목을 들었다. “엄마”라는 글자가 여전히 신선했다. 여전히 붉었다.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건 뭐야?”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의 손목의 타투를 보면서.
“엄마.”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밤은 계속되었다. 한강 공원에서. 밤 1시 3분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마치 세아와 강리우가 영원히 그 벤치에 앉아 있을 것처럼. 마치 이것이 모든 것의 끝일 것처럼.
[화 끝]
# 한강의 밤 – 확장본
## 1부: 전조
휴대폰 화면이 울렸을 때, 세아는 하늘이 집의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천장의 노란 조명이 뿌옇게 번져 보였다. 밤 12시 43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니, 이미 내일이었다.
“누구야?” 하늘이가 옆에서 물었다. 영화를 보고 있던 하늘이는 리모컨을 내려놓고 세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세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강리우. 그 이름이 화면에 떴을 때, 세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강리우는 전화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메시지도 거의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밤 12시 43분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세아는 전화를 받았다. 깊게 숨을 쉬고.
“여보세요?” 세아의 목소리는 작았다.
전화 저편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강리우의 목소리. 낮고, 떨리는, 마치 무언가를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였다.
“한강 공원. 합정역 근처. 1시간 안에.”
그것이 전부였다. 강리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만 말했다. 마치 이미 정해진 것처럼. 마치 세아가 거부할 여지가 없도록.
세아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왜?’라고 묻고 싶었다. ‘지금?’이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강리우는 이미 전화를 끊고 있었다. 통화는 8초 동안만 지속되었다.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아주 약하지만 확실하게.
“뭐야? 누구?” 하늘이가 다시 물었다. 하늘이는 세아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가 함께 살아온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늘이는 세아의 모든 표정을 배웠다. 이 표정은 두려움의 표정이었다.
“강리우.”
세아가 중얼거렸다.
“강리우? 그 강리우?” 하늘이가 앞으로 몸을 날렸다.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미 소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강리우가 한강 공원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가야 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필연이었다.
하늘이가 세아의 팔을 잡았다. “세아, 너 뭐 하는 거야?”
“가야 해.”
세아가 짧게 대답했다. 자신의 신발을 찾으러 현관으로 걸어가면서.
“뭐가? 이 시간에? 혼자?”
하늘이가 뒤따라왔다. 목소리는 불안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혼자.”
세아가 신발을 신으면서 대답했다.
“세아, 너…” 하늘이가 시작했다. 하지만 말을 잃었다. 마치 자신이 세아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세아가 이미 다른 곳으로, 다른 세계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거울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거울을 봤다.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낯설었다. 검은 눈 아래 어두운 그림자. 창백한 피부. 그리고 입술의 색깔. 모두가 무언가의 신호처럼 보였다.
“몇 시에 돌아와?”
하늘이가 물었다. 이미 세아가 돌아올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 2부: 움직임
자동차 안. 세아는 운전에만 집중했다. 강남역에서 합정역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밤의 도시는 다르게 보였다. 더 크게. 더 어둡게. 더 외로워 보였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세아는 자동차를 멈췄다. 그리고 왼쪽 팔을 들었다. 손목에는 타투가 있었다. 신선한 타투. 아직 밴드가 붙어 있었고, 그 아래로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엄마.”
두 글자. 한글로 쓰인 두 글자. 세아가 자신의 몸에 새긴 첫 번째 단어였다.
언제 했지? 세아는 생각했다. 어제? 그제? 시간의 감각이 흐릿해졌다. 마치 자신이 물 속에 잠긴 것처럼. 마치 모든 것이 수중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세아는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강남역 지하철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세웠다. 밤 12시 47분. 지하철로 합정역까지 15분.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세아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목을 다시 봤다. 밴드 아래로 피가 계속 흘렀다. 감염될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세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냥 걸어갔다.
지하철 플랫폼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밤 12시 55분. 마지막 열차들이 운행되고 있었다. 취한 남자 둘. 한 명의 노숙자. 그리고 세아. 세아를 제외한 모두가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세아는 벤치에 앉았다. 맞은편의 거울 같은 지하철 벽면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창백한 얼굴. 검은 눈.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왼쪽 팔. 그 팔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내 얼굴은 누구의 얼굴인가?’
세아가 자신에게 물었다.
강미준의 얼굴인가? 아버지의 얼굴인가? 아니면 엄마의 얼굴인가? 아니면 강리우의 얼굴인가?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마치 처음 보는 얼굴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처럼.
지하철이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세아는 탔다.
## 3부: 한강
밤 1시 3분. 합정역에서 한강 공원까지는 10분의 거리였다. 세아는 천천히 걸었다. 서둘 이유가 없었다. 강리우는 이미 거기 있을 것이었다. 강리우는 항상 먼저 가는 타입이었다.
한강 공원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 세아는 깊게 숨을 쉬었다. 한강의 냄새. 물의 냄새. 그리고 밤의 냄새.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강리우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 벤치가 아닌, 그 벤치에. 마치 오래 기다린 것처럼. 마치 하루 종일 그 벤치에만 앉아 있었던 것처럼.
강리우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세아가 지금까지 본 어떤 표정보다 더 부서진 표정으로.
“강리우.”
세아가 이름을 불렀다.
강리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마치 오래 울었던 것처럼.
“앉아.”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그의 맞은편 벤치에 앉았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약 2미터. 마치 누군가가 정해놓은 거리처럼. 마치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처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강의 물소리.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 그것이 전부였다.
“난 몰랐어.”
강리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너한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그걸 몰랐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무언가에 깔려 있는 것처럼 들렸다.
“말이 뭐야?”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손목을 봤다. 그곳에는 여전히 새로운 타투가 있었다. 밴드 아래로 피가 흘렀다.
“이건 뭐야?”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목을 들었다. 천천히. “엄마”라는 글자가 여전히 신선했다. 여전히 붉었다.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엄마.”
세아가 대답했다.
그 단어가 한강 공원의 밤 공기에 떨어졌다. “엄마.” 그것은 세아가 자신의 몸에 새긴 첫 번째 단어였다. 그리고 그것은 강리우를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강리우의 몸이 떨렸다. 마치 추위에 떨리는 것처럼. 아니면 무언가를 견디지 못해서 떨리는 것처럼.
“너… 그게…”
강리우가 시작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세아는 기다렸다. 강리우가 계속 말할 때까지.
그리고 강리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가 말한 단어들은 세아의 세계를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너한테 말해야 할 게 있어. 오래전부터 말해야 했는데. 난 겁이 났어. 너한테 말하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어.”
강리우가 말했다.
“뭘?”
세아가 속삭였다.
“너의 엄마에 대해서.”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 순간, 한강의 물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마치 세상이 그 말을 증거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처럼.
그리고 밤은 계속되었다. 한강 공원에서. 밤 1시 3분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마치 세아와 강리우가 영원히 그 벤치에 앉아 있을 것처럼. 마치 이것이 모든 것의 끝이자 시작일 것처럼.
세아의 손목의 “엄마”라는 타투에서 한 방울의 피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콘크리트 바닥을 적셨다. 마치 그것이 무언가의 신호처럼. 마치 그것이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
**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