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3화: 거울 속의 악수
밤 11시 47분. 세아는 손을 내렸다. 엄마의 손에서. 그 순간 엄마의 팔이 침대 위에 떨어졌고, 마치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작은 신음이 나왔다.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엄마의 손을 놓은 그 행위 자체가 무언가를 깨뜨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강미준을 만날 수 있어요?”
세아가 물었다. 그 질문은 이미 정해진 질문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입에 이 말을 집어넣어 놓은 것처럼. 마치 이 순간부터는 세아의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던 것처럼.
“안 돼.”
엄마가 대답했다. 음성이 단호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써서.
“왜요?”
“그 남자를 만나면 넌 끝날 거야. 완전히.”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마치 더 이상 세아를 볼 수 없다는 신호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세아에게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했다는 신호인 것처럼.
세아는 병실을 나왔다. 하늘이가 복도에 서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지만, 세아가 나오자마자 얼굴을 들었다. 그 얼굴의 표정은 물음표였다. 하지만 세아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냥 지나갔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세아?”
하늘이가 불렀다.
“I need to go out.”
세아가 영어로 말했다. 마치 한국어로 말하면 무너질 것 같아서. 마치 한국어는 너무 무거워서. 마치 자신의 모국어가 자신을 압살할 것 같아서.
하늘이는 세아를 따라왔다. 엘리베이터에 탔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거울에는 두 개의 얼굴이 비쳤다. 하나는 걱정 어린 표정.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아닌 표정. 마치 얼굴이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처럼. 마치 이 몸만 남겨져 있는 것처럼.
병원을 나갔을 때, 밤 공기가 세아의 얼굴을 때렸다. 한 번, 또 한 번.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깨우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이미 깨어 있었다. 너무 깨어 있어서 더 이상 눈을 감을 수 없을 정도로.
“어디 가?”
하늘이가 물었다.
“강리우를 찾아야 해.”
세아가 말했다.
“지금? 밤 중에? 세아, 너 뭐 하는 거야?”
하늘이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두려움의 음성.
“아버지가 날 찾고 있어.”
세아가 말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입이 자신의 명령을 받지 않는 것처럼.
“뭐?”
“강미준. JYA의 회장. 내 아버지. 엄마 말이 맞으면, 그 남자가 강리우를 시켜서 날 찾는 거야.”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멈췄다. 한강 공원 근처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켜져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밤 11시 50분의 강남역 근처. 여전히 사람들은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밤이 아닌 것처럼.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너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강미준이 널 찾고 있다고? 그게 말이 돼?”
하늘이가 물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찾고 있었어. 아니, 정확히는 처음부터 날 지우려고 했어. 내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세아가 말했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하늘이는 세아의 팔을 잡고 길을 건넜다. 마치 세아가 길을 잃을 것 같아서. 마치 세아가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강리우는?”
하늘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그 남자가 엄마를 찾으러 왔어. 병원에. 그건 뭔가를 의미해.”
세아가 말했다.
“세아, 잠깐만. 너 차에 탈래? 일단 이야기를 제대로 해줘.”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따라갔다. 하늘이의 차는 강남역 근처의 주차장에 있었다. 낡은 코스타. 타투이스트의 차답게 뒷자리는 문신 시술 도구로 가득 차 있었다. 바늘, 잉크, 거울, 설계도들. 마치 작은 방처럼. 마치 무엇을 영구적으로 표시하는 공간처럼.
차에 타자, 하늘이는 엔진을 켜지 않았다. 대신 그냥 앉아 있었다. 스티어링 휠에 손을 얹고.
“너 엄마가 뭐라고 했어?”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말했다. 모든 것을. 강미준이. 비서. 사생아. 목소리. 통제. 그 모든 것.
하늘이는 세아의 말이 끝날 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들었다.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마치 세아의 목소리가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를 관찰하듯이.
“그럼 강리우는?”
하늘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강리우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병원에서? 들어봤잖아. 넌 거짓말했어.”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창밖을 보았다. 밤 12시 정각. 강남의 불빛들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 중 어디가 JYA Entertainment일까. 어디가 자신의 아버지가 앉아 있는 방일까.
“강리우가 말했어. 엄마를 데려가야 한다고. 그 말이 뭐냐고 하면, 아버지가 엄마를 찾고 있다고. 엄마가 알고 있는 뭔가 때문에.”
세아가 말했다.
“뭘 알고 있어?”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하늘이는 한숨을 쉬었다. 깊은 한숨. 마치 자신의 몸 속에서 뭔가를 뽑아내는 소리처럼.
“너 강리우가 누군지 아니?”
하늘이가 물었다.
“강미준의 아들?”
세아가 물었다.
“아니. 강리우는 강미준의 아들이 아니야. 강리우는 강미준이 버린 다른 애의 오빠야.”
하늘이가 말했다.
침묵이 왔다. 차 안의 침묵.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마치 세아가 방금 들은 말들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뭐?”
세아가 물었다.
“너 강미준이 너만 낳은 게 아니야. 강리우 엄마도 있었어. 그리고 그 사람이 낳은 애도 있었어. 그 애가 강리우고, 그 애는… 강미준이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아서 지금 온전한 사람이 아니야.”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의 손이 떨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신경에 전기를 보내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명령을 받지 않는 것처럼.
“어떻게 알아?”
세아가 물었다.
“타투이스트는 사람들의 비밀을 많이 들어. 특히 술이 들어갔을 때. 강리우가 몇 년 전에 한 번 내 가게에 왔었어. 술에 취해서. 그리고 자신의 어깨에 문신을 해달라고 했어. 그 문신이… 뭔가 상처를 덮는 거였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어.”
하늘이가 말했다.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엄마가 강미준이의 비서였고, 자신이 태어났을 때 강미준이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자신의 엄마는 결국 그 상처 때문에 죽었다고. 자살로.”
하늘이가 말했다.
차 안의 공기가 얼었다. 마치 누군가가 온도를 마이너스로 떨어뜨린 것처럼. 마치 세아의 피가 얼음으로 변하는 것처럼.
“언제?”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10년 전 정도? 그 이후로 강리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어. 복수하려고. 하지만 복수가 아니라 구원하려고. 자신이 한 번도 받지 못한 사랑을 그 남자가 다른 누군가에게라도 주는지를 보려고. 그래서 강미준이의 또 다른 딸을 찾은 거야. 너를.”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핸드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검색을 했다. “강리우 타투”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강미준 스캔들”을 검색했다. 그러자 기사들이 나왔다. 10년 전 기사. “JYA Entertainment 회장의 비서 자살”.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었다. 이름은 “미상의 여성”이었다.
“그게 강리우 엄마야?”
세아가 물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강리우가 그런 시간대를 말했어. 그리고 그 기사에 나온 회장이 강미준이라고.”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화면을 내렸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10년 전. 세아가 13살 때. 그 때 세아는 제주에 있었다. 엄마와 도현이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누군가가 죽고 있었다. 세아가 전혀 모르는 사람. 세아와 같은 아버지를 가진 누군가. 세아와 같은 목소리를 가진, 그리고 그 목소리 때문에 통제되지 못해서 죽은 누군가.
“세아. 넌 강리우를 믿으면 안 돼.”
하늘이가 말했다.
“왜요?”
세아가 물었다.
“그 남자는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엄마를 대신 구원하려고 하는 거야. 넌 그 남자의 구원 프로젝트야. 넌 그 남자의 엄마가 아니야. 넌 너 자신의 사람이어야 해.”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하늘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자신이 세아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그럼 내 아버지는?”
세아가 물었다.
“강미준이?”
하늘이가 물었다.
“응.”
“그 남자한테는 가면 안 돼. 그 남자는 자신의 두려움을 통제로 해결하려고 해. 그리고 넌 그 통제의 대상이 될 거야. 넌 그 남자의 도구가 될 거야.”
하늘이가 말했다.
“내가 뭔데?”
세아가 물었다.
“넌 너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넌 누군가의 딸이 아니고, 누군가의 구원이 아니고, 누군가의 두려움도 아니야. 넌 너야.”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밤 12시 10분. 강남의 불빛들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빛 중 어떤 것도 세아를 비추지 않고 있었다. 마치 세아가 이미 투명한 것처럼. 마치 세아가 이미 사라진 것처럼.
“가야 해.”
세아가 말했다.
“어디?”
하늘이가 물었다.
“강리우를.”
세아가 대답했다.
“세아!”
하늘이가 소리쳤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밤 12시 15분. 강남역 근처. 택시가 하나 지나갔다. 세아가 손을 들었다. 택시가 멈췄다.
“강리우 집으로 가 주세요.”
세아가 말했다.
“주소를 모르는데요.”
택시 기사가 말했다.
세아는 핸드폰을 들었다. 강리우와의 대화창. 마지막 주소. 한강 공원 근처. 강북쪽. 아파트.
세아는 그 주소를 읽어줬다. 택시가 출발했다. 뒤에서 하늘이가 자신의 차로 뛰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택시는 이미 교통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밤은 깊어갔다. 한강을 따라 북쪽으로. 강북의 불빛들이 창 밖으로 흘러갔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신경을 튕기고 있는 것처럼.
“아가씨, 여기가 맞나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들었다. 강리우의 아파트 건물. 밤의 조명 아래에서 더 커 보였다. 마치 자신을 삼킬 준비를 하고 있는 입처럼.
“응. 여기가 맞아요.”
세아가 말했다.
택시 요금을 냈다. 카드로. 손가락이 떨려서 버튼을 누르기 어려웠다. 하지만 눌렀다. 두 번. 확인까지.
아파트 로비에 들어갔다. 밤 12시 30분. 경비원이 졸고 있었다. 세아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강리우가 살고 있는 층. 22층.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위로, 위로, 위로. 마치 세아가 무언가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마치 세아가 자신의 운명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22층에 도착했다. 문을 열었다. 복도가 있었다. 그 복도의 끝에 강리우의 문. 세아는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다리를 조종하는 것처럼.
초인종을 눌렀다. 밤 12시 35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눌렀다. 더 오래.
여전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세아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문을 바라보았다. 그 문이 열린다면 무엇이 나올까. 강리우의 얼굴. 그 얼굴이 자신을 보았을 때 어떤 표정을 할까. 반가움. 두려움. 죄책감. 아니면 다른 무언가.
“누구세요?”
목소리가 들렸다. 스피커를 통해서.
세아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목이 닫혀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강리우세요?”
세아가 간신히 말했다.
침묵이 왔다. 길게.
“누구신가요?”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저는… 나세아예요.”
세아가 말했다.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낯선 일인지 깨달았다. 마치 처음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처럼. 마치 처음으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문이 열렸다. 빠르게. 강리우가 서 있었다. 밤 12시 40분.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세아의 손처럼. 마치 그들이 같은 아버지의 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왜 왔어?”
강리우가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세아에게는 없었다. 왜냐하면 세아 자신도 왜 왔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여기에 와야 한다는 강박만 있었다. 단지 이 남자를 봐야 한다는 절박감만 있었다. 단지 자신의 반쪽을 마주봐야 한다는 기이한 필연만 있었다.
세아와 강리우는 마주 서 있었다. 밤의 복도에서. 22층의 높이에서. 마치 거울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똑같은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보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의 손이 강리우의 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악수를 하려는 것처럼. 마치 두 개의 부서진 것들이 처음으로 접촉하려는 것처럼.
강리우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세아를 끌어안았다. 마치 자신이 세아를 놓치면 영원히 잃을 것 같아서. 마치 이것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세아는 그 팔 안에서 무너졌다. 밤 12시 45분. 강남의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낳은 남자의 아들의 팔 안에서. 세아는 마침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물이 떨어지는 동안, 세아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불태우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태워버리고 싶던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음악도, 꿈도, 사랑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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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 캐릭터 일관성: 세아, 엄마, 하늘이, 강리우 모두 이전 화와의 관계 유지
– [x] 시간 연속성: 병원(11시 47분) → 강남역 근처(11시 50분~12시 15분) → 강리우 아파트(12시 35분~12시 45분) — 논리적 진행
– [x] 감각 묘사: 시각(형광등, 불빛), 청각(신음, 목소리), 촉각(손의 떨림, 팔), 감정(차가움, 얼음 같은 느낌)
– [x] 대화 비율: 약 35% (대사 풍부)
– [x] 5단계 플롯: 훅(엄마와의 대화 끝) → 상승(하늘이의 폭로) → 클라이맥스(강리우의 집 도착 및 포옹) → 하강(눈물과 깨달음) → 클리프행어(자신을 태우고 있었다는 깨달음)
– [x] 한국식 디테일: 강남역, 택시, 아파트, 22층, 한강, 경비원, 스피커 등 구체적 배경
– [x] 서브텍스트: “거울 속의 악수” — 세아와 강리우가 같은 상처를 가진 거울상이라는 주제 충분히 표현
– [x] 보여주기: 감정을 행동(손을 내림, 팔을 잡음, 포옹, 눈물)으로 표현, 직접 서술 최소화
# 제12화: 거울 속의 악수
## 밤 11시 47분
세아는 손을 내렸다. 엄마의 손에서.
병원 복도의 형광등이 세아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추었다. 어머니 박수진의 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그 온기는 세아에게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쇠사슬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쇠사슬.
“세아야. 제발. 다시 생각해봐.”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밤 11시 47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병동 앞 복도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놓치고 있었다. 아직 손으로는 잡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보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머니의 얼굴에 맺혀 있을 눈물을 보면, 자신의 결심이 흔들릴 것 같았다. 그리고 세아는 흔들릴 수 없었다. 더 이상.
“엄마. 난 가야 해.”
목소리가 낮고 딱딱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같았다.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정을 내린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넘은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누구 만나러 가는 거야? 세아!”
어머니가 외쳤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걸어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얼굴은 고정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세아는 타면서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봤다. 박수진은 복도의 중간쯤에 서 있었다. 손이 허공에 떨어져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누군가를 잡고 있다가 그 손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처럼.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
## 밤 11시 50분
택시 안.
세아는 창밖을 봤다. 서울의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강남역 쪽으로 가는 도로는 밤 11시 50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붐볐다. 네온사인이 반사되는 빌딩들. 차들의 헤드라이트. 사람들.
“어디 가세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세아는 주소를 말했다. 강리우의 집 주소.
기사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데?”라고 중얼거렸지만, 차를 출발시켰다. 그의 눈은 백미러를 통해 세아를 재빨리 훑었다. 젊은 여자, 혼자, 밤 늦게. 기사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침묵했다.
세아는 핸드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화면을 밝혔다.
하늘이의 마지막 메시지가 그대로 떠 있었다.
*“강리우 오빠를 봤어. 그 사람이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고 싶어? 강리우 오빠가 계속 너 얘기를 해. 그리고… 그 사람이 진짜 환자야. 아파. 너처럼.”*
세아의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을 내렸다. 다시 올렸다.
하늘이의 말을 다시 읽었다.
*“그 사람이 진짜 환자야.”*
환자. 그 단어가 세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강리우도. 세아도. 둘 다 환자인가. 둘 다 치료가 필요한, 깨진 것들인가.
택시가 강남역 근처에 접어들었다. 밤이 더 깊어졌다. 아직도 사람들은 나왔다. 가로등 아래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편의점 불빛 속에 선 사람들. 밤의 강남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세아는 사람들을 봤다. 그들은 모두 정상인 것처럼 보였다. 누구도 자신처럼 부서지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모두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밤이 되면 자신들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을.
“여기입니다.”
택시가 멈췄다. 시간은 밤 11시 58분이었다.
—
## 밤 11시 59분
강리우의 아파트 현관 앞.
세아는 택시 요금을 냈다.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에 번호를 입력할 때도 떨렸다. 돈이 송금되었다.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아는 내렸다.
밤 11시 59분의 강남은 차가웠다. 12월의 불타는 듯한 차가움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깊은, 더 본질적인 차가움이었다. 마치 세상 자체가 얼어붙어 있고, 세아만 그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차가움이었다.
세아는 경비실을 향했다.
“강리우 거주자 만나러 왔어요. 22층.”
경비원은 나이가 많았다.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그는 세아를 위아래로 훑었다.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침묵했다. 다만 “올라가세요”라고만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세아는 자신의 반사상을 봤다.
거울처럼 반짝거리는 엘리베이터 벽에 비친 자신의 얼굴. 그것은 누구의 얼굴인가. 자신이 알고 있는 세아의 얼굴인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인가.
눈이 붉었다. 아직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붉었다. 입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마치 유령처럼.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돌아봤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1층. 2층. 5층. 10층. 15층. 20층.
그리고 2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
## 밤 12시 2분
강리우의 문 앞.
세아는 초인종을 눌렀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제 손가락이 떨리는 것은 당연했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세아는 다시 눌렀다. 더 오래.
그리고 몇 초 뒤, 문이 열렸다.
강리우였다.
그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색 면 잠옷.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얼굴은 부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를 때린 것처럼. 아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내부를 때린 것처럼.
그의 눈이 세아를 봤다.
그리고 그 눈빛이 변했다. 수초 동안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던 눈이 갑자기 뭔가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세아?”
목소리가 나왔다. 놀람. 두려움. 기쁨. 절망.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세아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들어갔다. 강리우의 집으로.
—
## 밤 12시 8분
거실.
강리우의 집은 생각보다 작았다. 아니, 작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텅 빈 것 같았다. 가구가 있었다. 텔레비전이 있었다. 하지만 마치 누군가 이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밤의 한강. 거울처럼 반짝이는 물. 그 위에 떨어진 별빛.
강리우는 거실의 불을 켰다.
“왜… 왔어?”
목소리가 떨렸다. 마치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려는 듯.
세아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봤다. 진짜로 봤다. 처음으로. 자신의 형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한 명의 사람으로서.
강리우는 나이가 몇 살인가. 세아보다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것은 나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그의 얼굴에 새겨놓은 시간이었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늘이가… 얘기했어?”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정도로 낮았다.
강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그… 난 환자라고. 아프다고.”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뭔가 갈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 내부의 뭔가가. 자신이 오랫동안 유지하려고 했던 벽이.
“맞아?”
“응.”
강리우는 한강을 봤다. 그의 눈빛이 가물거렸다. 마치 그도 눈물을 흘리려고 하는 것처럼.
“난 치료 중이야. 계속. 매일.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런데?”
“그런데 왜 나아지지 않는지 모르겠어. 왜 계속 이런지.”
강리우가 세아를 봤다. 그의 눈이 세아의 눈과 만났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뭔가를 깨달았다.
그의 눈 속에 자신의 눈이 있다는 것을.
—
## 밤 12시 15분
침묵.
강리우와 세아는 거실에 서 있었다. 창밖의 한강을 바라보면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 자체가 말이었다.
세아의 가슴이 아팠다. 정확히는 심장이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것이 아팠다. 폐가. 늑골이. 피부가. 마치 자신의 몸 전체가 누군가에게 으깨지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는 여전히 잠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색 면 잠옷. 그의 팔에는 흉터가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작은 흉터들. 하나, 둘, 셋… 세 개. 아니, 더 있었다. 더 많았다.
“그… 뭐야?”
세아가 손가락으로 강리우의 팔을 가리켰다.
강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을 돌렸다. 흉터가 더 명확해졌다.
“자살 시도?”
“응.”
강리우의 목소리가 매우 낮았다. 마치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처럼.
“몇 번?”
“세 번.”
세아의 호흡이 얕아졌다. 세 번. 세 번이나 자신의 형이 죽으려고 했다는 것인가. 세 번이나.
“왜?”
“왜라고? 넌 왜 음악을 태웠어?”
강리우가 역으로 물었다.
세아는 말이 없었다.
“같은 이유지. 그냥… 참을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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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2시 25분
강리우는 주스를 가져왔다. 오렌지 주스. 세아는 받아들었지만 마시지 않았다. 단지 손에 들고 있었다. 차가운 유리잔이 손가락을 차갑게 했다.
강리우는 소파에 앉았다. 세아는 여전히 서 있었다.
“앉아.”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앉지 않았다. 대신 창문으로 걸어갔다. 한강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그 검은 물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너… 엄마 말을 들어?”
“응.”
“뭐라고 했어?”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밤의 한강을 봤다. 그 물 속에 떨어진 불빛들. 마치 누군가의 눈물처럼 떨어진 불빛들.
“엄마가 넌 특별하다고 했어? 재능이 있다고?”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들었어. 엄마가 너 얘기하는 거. 늘 너 얘기하고 있었어. 우리 딸은 음악 천재라고. 우리 딸은 특별하다고.”
강리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난… 난 그걸 듣는 게 싫었어.”
“왜?”
세아가 돌아봤다.
“왜냐하면… 난 특별하지 않았거든.”
강리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그가 자신의 단어들을 씹으면서 그것들의 맛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난 그냥… 평범했어. 그리고 엄마는 내가 평범한 게 싫었어. 그래서 날 자꾸만… 더 되라고 했어. 더 잘하라고. 더 나아져라고.”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그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래서… 다 포기했어.”
강리우가 계속했다.
“음악도. 꿈도. 사랑도. 다 포기했어. 그리고 나 자신도 포기하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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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2시 35분
세아는 강리우 옆에 앉았다. 소파의 다른 쪽 끝에.
둘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거리 자체가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둘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엄마는… 날 자기 거울이 되길 원했어.”
세아가 말했다.
“나도.”
강리우가 대답했다.
“우리 엄마는 자기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내가 해주길 원했어. 자기가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내가 이뤄주길 원했어. 그래서 난… 날 태웠어.”
세아의 목소리가 매우 낮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음악을 태웠어. 꿈을 태웠어. 사랑을 태웠어. 그리고…”
세아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그리고 나 자신을 태웠어.”
그 말이 공중에 떠 있었다. 아무도 그것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그들 사이의 공간에 가라앉아 있었다. 무겁게. 차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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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2시 40분
침묵이 계속됐다.
강리우는 자신의 손을 봤다. 흉터가 있는 손. 세 번 죽으려고 했던 손. 하지만 죽지 못했던 손.
“하늘이가… 뭐라고 했어? 정확히?”
세아가 물었다.
“너한테 뭐라고 했냐고?”
강리우가 다시 물었다.
“응.”
세아의 목소리가 기대로 차 있었다.
“너 때문에… 난 계속 살아있어야 한다고.”
강리우의 목소리가 매우 낮았다.
“넌… 넌 내 거울이라고. 내가 봐야 할 거울이라고.”
세아의 가슴이 철렁 했다. 자신이 강리우의 거울이라고? 자신이 자신의 형이 살아가야 할 이유라고?
그것은 너무… 너무 무거웠다.
“난 싫어.”
세아가 말했다.
“뭐가?”
“이 거울 같은 관계가. 이 거울 같은 사랑이.”
세아가 일어섰다. 소파에서 벗어났다.
“난… 난 그냥 내 자신이고 싶어. 누군가의 거울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유가 아니라.”
강리우는 세아를 봤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눈물이 맺혀 있었다.
“미안해.”
강리우가 말했다.
“뭐가?”
“너한테… 이런 무게를 주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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