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73화: 아버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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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3화: 아버지의 이름

엄마의 손이 움직였다. 매우 천천히.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침대 옆에 놓인 물 컵을 향해. 세아는 즉시 일어나 컵을 들었다. 엄마의 입술이 마르고 갈라져 있었다. 병원의 건조한 공기와 약물의 부작용. 세아는 컵을 엄마의 입에 가져다 주었다. 엄마는 천천히 마셨다. 물을 마시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마치 자신의 신체가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감사합니다.”

엄마가 말했다. 존댓말로. 마치 세아가 낯선 사람인 것처럼. 마치 자신의 딸이 아닌 누군가를 대하는 것처럼. 그것이 세아에게는 가장 큰 상처였다. 사랑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이 차갑고 정중한 거리감.

“엄마…”

세아가 다시 앉으면서 말했다.

“너는 뭐가 미안한 거야?”

엄마가 다시 물었다. 아까의 질문을 반복했다. 마치 세아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처럼. 마치 그 대답 안에 거짓이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세아는 침묵했다. 엄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엄마는 세아가 무엇 때문에 미안한지 말하길 원하지 않았다. 엄마는 세아가 왜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 왜 자신을 버렸는지 설명하길 원했다.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강리우.”

엄마가 이름을 말했다. 마치 그것이 가장 나쁜 단어인 것처럼. 마치 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독이 입안에 퍼지는 것처럼.

“응.”

세아가 대답했다.

“너는 그 사람이 뭔지 몰라.”

엄마가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선언. 마치 이미 수십 번 하고 싶었던 말을 이제서야 하는 것처럼.

“누구예요?”

세아가 물었다.

엄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치 자신이 이제 말할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면 안 되는 것처럼. 마치 눈을 감고만 있어야 그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처럼.

“너 아버지의 아들이야.”

엄마가 말했다.

세아의 신체가 얼어붙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혈액을 얼음으로 바꾼 것처럼.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세아는 그 말을 다시 해달라고 할 수 없었다. 이미 충분히 들었다. 충분히 명확했다.

“너 아버지는…”

엄마가 계속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더욱 약해졌다.

“제주에 있었어. 내가 해녀였을 때. 아버지는…”

엄마가 숨을 쉬었다. 깊게. 마치 이 말을 하기 위해 모든 산소가 필요한 것처럼.

“너를 낳을 때 결국 떠났어.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뭐예요?”

세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엄마가 이 말을 완성해달라는 명령.

“강리우는 그 사람의 아들이야. 너 아버지의 아들.”

엄마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병실 안에는 오직 심전도 기계의 삑—삑 소리만 들렸다. 그 규칙적인 음성이 마치 세아의 심장이 아니라 세상 자체의 박동인 것처럼 들렸다.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호흡을 멈추면 이 순간도 멈출 수 있을 것처럼.

“너 아버지는 강미준이야.”

엄마가 계속했다. 이제는 차라리 명확하게. 마치 이 모든 비밀을 이제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으로.

강미준.

세아의 뇌는 그 이름을 처리하려고 했다. 강미준. 누군가 유명한 사람. 누군가 음악 산업에서 권력 있는 사람. 누군가 JYA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아니…”

세아가 겨우 말했다.

“응.”

엄마가 대답했다.

“그럼 강리우는…”

세아가 말했다.

“너의 배다른 오빠야. 정확하게는.”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강리우가 왜 세아를 그렇게 쫓아다녔는지. 왜 자신을 구하려고 했는지. 왜 자신에게 집착했는지. 왜 자신이 떠나가자 그렇게 무너졌는지.

“엄마는 언제부터 알았어?”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가 나타났을 때. 처음 봤을 때. 얼굴에…”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침묵했다. 마치 그것이 모든 설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얼굴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는 것처럼.

세아는 일어섰다. 의자에서 일어나 병실 벽에 등을 기댔다. 마치 자신이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바닥에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벽은 차갑고 무심했다. 병원 벽처럼. 모든 고통을 흡수하지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 그런 벽.

“그럼… 왜 말 안 했어?”

세아가 물었다.

“너 아버지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그리고…”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세아가 물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 너한테 그런 짐을 주고 싶지 않았어. 너는 그냥…”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그냥 뭐예요?”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처음으로. 이 대화 동안 처음으로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냥 살아가길 원했어. 그 짐 없이.”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웃음이라고 부르기도 이상한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내부를 비틀어서 나오는 그런 소리.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그런 소리.

“그래서 뭐해요? 나는 지금 이미…”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자신이 이미 무엇인지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말할 수 없었다.

“세아.”

엄마가 이름을 불렀다.

“뭐예요?”

세아가 물었다.

“그 사람을 멀리해.”

엄마가 말했다.

“왜요? 그 사람이 내 형이잖아요. 내 가족이잖아요.”

세아가 말했다.

“그 사람은 너의 가족이 아니야.”

엄마가 말했다. 매우 명확하게.

“그럼 뭐예요?”

세아가 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치 이 대화를 끝내고 싶은 것처럼. 마치 더 이상 말할 힘이 없는 것처럼.

세아는 병실을 나갔다. 말도 없이. 엄마를 남기고. 복도로 나갔다. 형광등 아래의 하얀 공간. 그 공간은 세아를 품지 않았다. 그것이 품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공간에는 모든 색깔이 빨려나가 있었으니까.

세아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대신. 발걸음이 빨랐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 건물에서 나가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으로.

1층에 도착했다. 세아는 병원 로비를 지나갔다. 저녁 시간이었다. 방문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 선물을 들고 있는 사람들. 누군가를 보러 오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있었지만, 동시에 목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러 온다는 목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세아는 그들을 통과했다. 마치 유령처럼. 마치 자신이 이미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병원 밖으로 나갔다. 저녁 공기가 세아의 얼굴을 때렸다. 차갑고 신선한. 마치 자신이 무언가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깨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하늘의 번호였다.

세아는 받지 않았다.

다시 울렸다.

세아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

메시지가 왔다.

“세아야. 지금 어디야? 병원? 엄마 봤어? 전화해. 진짜로.”

세아는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읽는 순간 무언가가 깨질 것 같았다. 자신의 마지막 방어선이.

세아는 걷기만 했다. 길을 따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마치 자신의 발이 자신을 인도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신체가 자신의 의지보다 더 정직한 것처럼.

한강이 보였다. 저녁 햇빛이 물 위에 부서져 있었다. 황금색 조각들. 마치 누군가가 태양을 깨뜨렸을 때 나올 만한 그런 파편들.

세아는 한강 변에 앉았다. 벤치에. 혼자. 주변에는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세아는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혹은 그들도 세아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세아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처럼.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끊임없이. 멈추지 않으면서. 마치 자신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도 강처럼 무언가를 담고만 흐르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손을 내렸다. 강물 위로. 마치 자신의 손이 그 물에 잠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 물에 녹아 없어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너 여기 있구나.”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알았다. 강리우의 목소리. 아니, 강리우라는 이름도 이제는 다르게 들렸다. 그것은 이름이 아니라 거짓이었다. 자신이 믿고 있던 거짓이었다.

“가.”

세아가 말했다.

“너 뭐 알았어?”

강리우가 물었다.

“엄마가 말했어.”

세아가 말했다. 여전히 강물을 바라보면서.

침묵이 흘렀다. 강리우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도 세아처럼 강물을 보고만 있는 것처럼.

“그래서?”

강리우가 물었다.

“그래서 뭐예요?”

세아가 물었다. 이제 고개를 들었다. 강리우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 그 얼굴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자국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혹은 이미 너무 많이 찾았기 때문에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너는 내가 뭐라고 생각했어?”

강리우가 물었다.

“몰라.”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었다. 세아는 강리우가 누구인지 정말로 몰랐다. 몰랐고, 지금도 몰랐고, 앞으로도 몰랐을 것 같았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했어. 정말로.”

강리우가 말했다.

“뭘 구해요? 자신의 죄책감을 사라지게 하려고?”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긍정이었다.

“나도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깨져 있었다.

“뭘?”

강리우가 물었다.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인지.”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가 세아 옆에 앉았다. 벤치에. 말없이.

“나는 너를 정말 사랑했어.”

강리우가 말했다.

“난 몰라.”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강과 둘이 흐르는 물과 그 물 위에 떨어지는 저녁 햇빛. 그 모든 것이 계속되었다. 세아와 강리우의 침묵 위로. 세아의 새로운 이름이 새겨진 가슴 위로.

“넌 뭐 할 거야?”

강리우가 물었다.

“몰라.”

세아가 대답했다.

“엄마?”

강리우가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나?”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모든 대답이었다.

강리우는 일어섰다. 벤치에서. 천천히. 마치 자신의 신체가 매우 무거운 것처럼.

“내가 아버지한테 얘기할 거야. 너한테 말한 거.”

강리우가 말했다.

“싫어요.”

세아가 말했다.

“상관없어. 너는 그럴 권리가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권리가? 난 뭐가 권리가 있어요?”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떠났다. 저녁 어둠 속으로. 마치 자신도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세아는 혼자 남겨졌다. 한강 변에. 저녁이 밤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늘이 검어지고 있었다. 마치 세아의 내부처럼.

그 순간,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또 다른 번호였다. 알 수 없는 번호. 세아는 받았다.

“세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는 그 목소리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친숙했다. 마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친숙함.

“누세요?”

세아가 물었다.

“난 강미준이야. 너의…”

목소리가 멈췄다.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강물을 바라봤다.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끊임없이. 멈추지 않으면서. 마치 자신의 삶처럼.


다음 화 예고: 강미준의 첫 전화. 그리고 세아가 마침내 깨달아야 할 것.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가슴과 함께.

# 그 이름, 가슴에 새겨지다

## 1부: 침묵의 무게

한강변의 벤치는 저물어가는 저녁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세아는 그 벤치에 앉아 있었고, 강물의 흐름음만이 세상의 모든 소리인 양 들렸다. 흐르는 물이 자갈을 쓸어내는 소리, 가끔 물 위로 튀어오르는 작은 물고기들의 소리. 모두가 끝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리듬이었다.

세아의 가슴은 철렁거렸다. 그곳에 새겨진 이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달았다. 마치 모래성처럼. 한 번의 파도가 몰려오면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는.

“나도 모르겠어.”

세아가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세상을 향한 외침인지 구분이 안 갔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며칠 동안 울어서일까, 아니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일까. 아니다. 애초에 거짓말은 몇 번이나 한 것인가. 몇 번이나 진실을 외면하고 현실을 외면했는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세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누가 오는지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으면서도 알고 있었다.

강리우가 벤치 옆에 나타났다. 그의 실루엣이 저녁 햇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지만 영화와 달리, 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두워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다행이었다. 세아는 그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뭘?”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깊은 피로. 육체적 피로가 아닌, 영혼의 피로.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인지.”

세아가 천천히 대답했다. 여전히 강물을 보고 있으면서.

강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벤치에 앉았다. 세아 옆에. 그 사이에는 약 30센티미터의 거리가 있었다. 한때 이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지금은 이 거리가 태평양만큼 멀게 느껴졌다.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불편한 침묵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정직한 침묵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그 침묵 속에 담겨 있었다. 후회, 사랑, 분노, 절망. 모든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너를 정말 사랑했어.”

강리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말은 세아의 귓가에 번개처럼 쳤다.

세아는 반응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 수도 있고, 진실이었을 수도 있다. 그 경계가 이제 너무도 흐릿했다.

“난 몰라.”

세아가 겨우 내뱉었다.

이 말이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아니, 유일한 정직한 대답이었다.

강리우의 몸이 조금 움찔했다.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의 충격이 공기를 진동시키는 것을.

## 2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더 깊은 침묵. 더 무거운 침묵.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강물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강물의 본질이다. 멈출 수 없고, 돌아갈 수 없고, 오직 앞으로만 흘러간다. 이 순간이 마치 자신의 삶 같다고 세아는 생각했다. 자신도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나왔다.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저녁빛이 점점 진해졌다. 하늘이 주황색에서 빨간색으로, 다시 자주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곧 검은색으로.

세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가슴에 새겨진 그 이름 때문에. 그 이름이 무엇인가. 누군가의 사랑인가, 누군가의 소유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만인가.

“넌 뭐 할 거야?”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망감이 묻어났다.

“몰라.”

세아가 대답했다. 이제 이 단어가 그녀의 유일한 대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몰라’였다.

“엄마?”

강리우가 계속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나?”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이번엔 세아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대답이었다.

강리우는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세아는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웃고 있는 것일까. 세상이 이렇게 뒤틀려버리면 울음과 웃음의 차이도 구분이 안 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5분인가, 1시간인가. 시간의 개념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오직 강물의 흐름음만 존재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마치 자신의 심장박동처럼 들렸다. 혹은 자신의 뇌가 작동하는 소리. 혼란스러운 뇌. 깨져나가는 정신.

강리우가 천천히 일어섰다. 벤치에서. 마치 그의 신체가 납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무거운 동작으로. 관절이 쑥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는 그런 소리가 들렸다고 세아가 상상했을 뿐일 수도 있다.

“내가 아버지한테 얘기할 거야. 너한테 말한 거.”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싫어요.”

세아가 외쳤다. 처음으로 진정한 감정을 실은 목소리로.

“상관없어. 너는 그럴 권리가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권리가? 난 뭐가 권리가 있어요?”

세아가 물었다. 자신도 모르는 분노와 함께.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는 몰랐지만.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떠났다. 저녁 어둠 속으로. 마치 자신도 이 현실에 속하지 않은 유령처럼.

## 3부: 혼자

세아는 혼자 남겨졌다.

한강변에. 저녁이 밤으로 변하는 그 경계에.

하늘이 검어지고 있었다. 마치 세아의 내부처럼. 아니, 세아의 내부가 하늘에 투영되는 것 같았다. 자신의 검은 감정이 세상의 검은 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강물에 반사된 도시 불빛들이 흔들렸다. 마치 세아의 존재처럼. 확실하지 않고, 흐릿하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가슴이 철렁거렸다. 그곳에 새겨진 이름이 자꾸만 의식되었다. 손으로 만져봐도 감각이 없었다. 아니, 감각은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남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세아가 중얼거렸다. 세상을 향해서인지, 자신을 향해서인지 구분이 안 갔다. 결국 같은 것일지도.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세아는 깜짝 놀랐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하나. 화면을 켜서 확인해보니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지역번호도 낯선 것 같았다.

세아는 받았다. 본능적으로. 혹은 운명처럼.

“세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는 그 목소리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친숙했다. 마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친숙함. 어디서 들었던 목소리. 혹은 어디서 만났던 사람의 목소리.

세아의 심장이 빨라졌다. 무언가 중요한 순간이 올 것 같은 그런 직감.

“누세요?”

세아가 물었다.

전화 너머에서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방도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렸던 것처럼. 혹은 이 순간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난 강미준이야. 너의…”

목소리가 멈췄다. 말을 잇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난 강미준이야. 너의…’ 그 다음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

세아는 전화를 끊었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마음이 지배하지 못한 신체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강물을 바라봤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끝없이. 멈추지 않으면서. 결코 돌아가지 않으면서. 마치 자신의 삶처럼. 아니, 자신의 삶이 아니라 자신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흐름처럼.

세아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곳에 새겨진 이름을 느껴보려고. 하지만 느낄 수 없었다. 이제 그것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난 누구인가.”

세아가 혼잣말로 물었다.

강물이 대답하지 않았다. 오직 흘러가고만 있었다.

밤이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다음 화 예고**: 강미준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리고 세아는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피의 연결. 사랑의 거짓. 그리고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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