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7화: 나는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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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화: 국밥과 계약서

국밥집은 하늘이 말한 것처럼 멀었다.

합정에서 망원 쪽으로 걷다가 골목을 두 번 꺾었다. 그 사이에 세아의 어깨는 계속 뛰었다 — 타투 부위가 심장박동에 맞춰서 욱신거렸다. 하늘이가 어깨에 올려준 얼음팩이 점퍼 안에 있었다. 차가운 것이 따뜻한 것 사이에 끼어 있는 느낌. 세아는 그 감각에 집중하면서 걸었다.

파일은 가방 안에 있었다.

“다 왔어.” 하늘이가 말했다.

국밥집은 간판이 작았다. 손글씨체로 ‘순대국밥’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문이 불투명한 유리였다. 그 너머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 형광등 빛이 아니라, 좀 더 노란 빛. 세아는 그 빛의 색깔을 잠깐 봤다.

하늘이가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냄새가 왔다. 사골 냄새, 우거지 냄새, 순대 냄새, 그것들이 오래 끓여진 냄새. 테이블이 여섯 개였다. 두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다. 아저씨 혼자 소주를 먹고 있는 테이블, 중년 여자 두 명이 대화 중인 테이블. 주방에서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어서 와.”

하늘이가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았다. 세아도 그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가 낡아서 삐걱거렸다. 테이블보가 비닐이었다. 세아는 그 비닐 위에 팔꿈치를 올렸다.

“뭐 먹을래?” 하늘이가 물었다.

“아무거나.”

“그래도 골라. 순대국밥이랑 뼈다귀 해장국이랑 있어.”

“순대국밥이요.”

“나도.” 하늘이가 주방 쪽을 향해 소리쳤다. “이모, 순대국밥 두 개요!”

할머니가 “응” 하고 대답했다. 냄비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세아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가방에서 파일을 꺼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비닐 테이블보 위에 흰 파일 표지. 아무 글씨도 없는 것.

하늘이가 그것을 봤다.

“아까 물어봤잖아. 그게 뭐냐고.” 하늘이가 말했다. “대답 안 했지.”

“계약서예요.”

“JYA 거?”

“두 개.” 세아가 파일을 펼쳤다. “하나는 전속 계약서고, 하나는 — 내 곡들을 JYA가 가져가는 합의서예요.”

하늘이가 팔짱을 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 하늘이가 팔짱을 낄 때는 화가 났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지금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가져간다는 게 어떤 의미야.” 하늘이가 말했다. 천천히. “JYA가 다른 기획사들한테서 저작권을 사는 거야?”

“네.”

“그래서 네 이름을 돌려준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그렇게 말했다는 게 — 계약서에 그렇게 써 있다는 거야, 아니면 말로 그랬다는 거야.”

세아는 잠깐 멈췄다.

하늘이가 그 침묵을 읽었다.

“나세아. 너 또.”

“계약서를 다 못 읽었어요.”

“야.” 하늘이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야, 진짜로. 너 계약서 안 읽는 버릇 그거 언제 고쳐.”

“이번엔 읽을 거예요.”

“이번엔 읽을 거라고. 그게 몇 번째야. 첫 번째 곡 팔았을 때도 읽을 거라고 했잖아. 두 번째도 읽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까 저작권 조항 이해를 못 했잖아.”

세아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것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전부 맞았다. 세아는 계약서를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표시해두거나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읽었다 — 표면적으로. 이해한 척. 왜냐하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면 협상이 멈추고, 협상이 멈추면 계약이 안 되고, 계약이 안 되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그달에 도현 학원비가 밀렸다.

그것이 세아의 논리였다.

그리고 그 논리의 결과가 지금 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읽어봐.” 하늘이가 말했다. “지금 여기서. 내가 같이 볼게.”

순대국밥이 나왔다.

할머니가 국밥 두 그릇과 깍두기, 깻잎 무침, 새우젓을 올려놨다. 뚝배기에서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세아는 그 냄새를 맡았다. 배가 고팠다. 언제부터 고팠는지 몰랐다 — 아까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었는데, 그것이 식사였는지 그냥 먹은 것인지도 몰랐다.

하늘이가 젓가락을 들었다.

“먹으면서 봐. 국물 식는다.”

세아는 국밥 그릇을 당겼다. 순대를 하나 집어서 먹었다. 따뜻했다. 국물 한 숟가락. 간이 딱 맞았다 —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오래 끓인 사람만 낼 수 있는 간.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이 집 언제부터 알았어요?” 세아가 물었다.

“할머니가 이 동네에서 이십 년 넘게 했대. 젠트리피케이션 때 가게가 밀릴 뻔했는데 건물주가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계속 있는 거래.”

“이십 년.”

“그러니까 맛있지.”

세아는 국물을 마셨다. 국밥을 먹으면서 파일을 폈다. 첫 번째 파일 — 저작권 양도 합의서. 세아는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나오면 그 옆에 손가락을 짚어두었다.

하늘이가 맞은편에서 자신의 국밥을 먹으면서 세아의 파일을 뒤집어 읽으려고 목을 빼곤 했다.

“뭐 나와?” 하늘이가 물었다.

“3페이지예요. 잠깐만요.”

세아는 3페이지를 읽었다.

제4조 (저작권 귀속 및 이전). 세아는 그 조항을 두 번 읽었다. 세 번 읽었다. 언어가 복잡했다. 법률 용어들이 서로를 지시하면서 순환했다. 세아는 손가락으로 각 문장을 짚으면서 읽었다.

“…4조 3항이요.” 세아가 말했다. “저작권 귀속 이전에 관한 조항인데, ‘원저작자 확인 절차는 계약 체결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진행’이라고 돼 있어요.”

“180일이면 반 년이잖아.”

“네.”

“그 사이에 뭐가 일어나는데?”

세아가 계속 읽었다. 4조 4항. 5항. 6항. 6항에서 멈췄다.

“’원저작자 확인 절차 기간 동안 해당 저작물의 사용 수익은 계약 당사자인 JYA 엔터테인먼트에 귀속되며, 원저작자 확인 완료 후 정산 비율에 따라 소급 적용한다.’”

하늘이가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반 년 동안은 JYA가 내 곡으로 돈 버는 거예요. 그리고 반 년 뒤에 — 내 이름이 확인되면, 그때부터 정산 비율에 따라서 소급 정산한다는 거예요.”

“정산 비율이 얼마야.”

세아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별첨 B. 정산 비율표. 세아는 그것을 봤다.

숫자가 있었다.

세아는 그 숫자를 한 번 읽고, 다시 읽었다.

“…5퍼센트.”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가 반응하지 않았다.

“원저작자 인정 후 저작권 수익의 5퍼센트를 세아에게 정산한다고 돼 있어요.”

“5퍼센트.”

“네.”

“JYA가 95퍼센트 가지면서 네 이름만 달아준다는 거야?”

세아는 파일을 덮었다.

국밥 그릇이 앞에 있었다. 아직 반쯤 남아 있었다. 국물에서 김이 올라왔다. 세아는 그 김을 봤다.

“이름을 되찾는다는 게 그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크레딧은 내 이름이 붙어요. 근데 돈은 JYA가 가져가요.”

“그게 이름을 돌려주는 거야? 그게?” 하늘이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국밥집 안의 다른 손님들이 흘깃 봤다. 하늘이가 의식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크레딧만 있고 수익은 없으면 그게 무슨 의미야. 그냥 JYA 광고판에 네 이름 써주는 거잖아.”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다르게 볼 수가 있어? 어떻게?”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 박인철이 말한 방식으로. 이름을 되찾는다. 공식적으로 내 곡이 된다. 그것이 포트폴리오가 된다. 그 포트폴리오로 다음 기회가 온다. 세아는 그 논리를 따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5퍼센트라는 숫자에서 논리가 멈췄다.

“두 번째 파일.” 하늘이가 말했다. “전속 계약서. 그것도 봐.”

세아가 두 번째 파일을 폈다. JYA 엔터테인먼트 전속 계약서. 첫 페이지에 조건 요약이 있었다.

계약 기간: 3년 (자동 연장 조항 포함).

세아는 자동 연장 조항을 찾았다. 12페이지. 계약 기간 만료 90일 전까지 해지 통보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2년 연장.

“3년에 자동 연장 2년이에요.” 세아가 말했다. “사실상 5년이에요.”

하늘이가 눈썹을 찌푸렸다.

세아는 계속 읽었다. 5페이지. 작품 활동 조항. 전속 기간 중 JYA의 승인 없이 외부 음악 활동 금지. 세션 활동 포함. 개인 SNS에 자작곡 업로드 금지. 세아는 그 문장을 읽었다.

세션 활동 포함.

세아의 시선이 그 단어에서 멈췄다. 세션 활동. 그것이 지금 세아의 밤을 만드는 것이었다. 합정 클럽에서의 하우스 밴드. 그것이 없으면 이번 달 도현 생활비에서 십오만 원이 빠졌다.

“7페이지.” 세아가 말했다. “창작물 귀속 조항이에요.”

하늘이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전속 기간 중 창작한 모든 음악 저작물의 1차 저작권은 JYA 엔터테인먼트에 귀속되며, 작곡가에게는 계약에 따른 정산을 지급한다.”

“그 정산이 또 얼마야.”

세아가 별첨을 찾았다.

“…신인 작곡가 기준 7퍼센트예요.”

하늘이가 깍두기를 하나 집어서 씹었다. 오래 씹었다. 그것이 화를 참는 방식처럼 보였다.

“나세아.” 하늘이가 말했다. “이거 사인하면 안 돼.”

“알아요.”

“알면서 왜 가져왔어.”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혼자 보기 싫었어요.” 세아가 말했다. “혼자 보면 — 그냥 사인하게 될 것 같았어요.”

하늘이가 세아를 봤다.

방금 세아가 한 말의 무게를 하늘이가 재고 있다는 것을 세아는 느꼈다. 혼자 보면 사인하게 될 것 같았다는 말이 — 단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혼자 있을 때 어떤 판단을 하는지 세아 본인이 알고 있다는 것.

“너.” 하늘이가 천천히 말했다. “강리우한테는 이거 보여줬어?”

“아직요.”

“왜.”

“그 사람 회사 계약서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세아는 말을 잇지 않았다.

이유가 여러 개였다. 리우가 이것을 만든 사람이거나, 이것을 알고 있거나, 이것을 모르고 있거나. 세 가지 가능성 중 어느 것도 세아에게 편하지 않았다. 만약 리우가 알고 있었다면 — 그 의미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모르고 있었다면 — 세아가 이것을 보여주는 순간 리우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무서운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안 하면 그렇다는 거야.”

“…조금요.”

“뭐가 무서워.”

세아는 국물을 한 숟가락 마셨다. 따뜻했다. 뼈 속까지 오래 끓인 것들이 국물 안에 녹아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이걸 알고 있었을까봐요.” 세아가 말했다. “클럽에서 제 노래를 들은 것도, 박인철 씨를 보낸 것도, 카페에서 저를 만난 것도 — 전부 이 계약서를 사인시키기 위한 거였을까봐서요.”

하늘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세아가 계속했다. “그 사람이 제 음악을 진짜로 들은 게 아닌 거잖아요. 저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서명 받으러 온 거잖아요.”

국밥집 안에 잠깐 조용해졌다.

주방에서 국물 끓는 소리만 났다.

하늘이가 말했다.

“근데 있잖아.”

“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거든. JYA 아들이 인디 씬 무명 애 곡을 찾아다닌다고? 그게 말이 돼? 무슨 이유가 있겠지, 했지.” 하늘이가 젓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근데 클럽에서 걔가 너 노래 듣는 거 봤잖아. 내가.”

세아가 하늘이를 봤다.

“사람이 음악을 도구로 들을 때랑, 진짜로 들을 때랑, 표정이 달라. 나 타투이스트잖아. 사람 얼굴 많이 봐. 그 사람 — 그냥 듣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요.”

“그래도 뭐.”

“그래도 이 계약서가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하늘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맞았다. 리우가 어떤 표정으로 세아의 노래를 들었든, 그의 아버지 회사에서 만든 계약서가 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5퍼센트. 5년. 세션 활동 금지. 창작물 귀속. 그것들이 거기 있었다.

“밥 다 먹어.” 하늘이가 말했다. “식었잖아.”

세아는 국밥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식었지만 여전히 먹을 수 있었다. 하늘이도 먹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었다. 국밥집 안의 아저씨가 소주잔을 채웠다. 중년 여자 두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주방에서 무언가를 썰었다.

세아는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국물을 마셨다.


국밥집에서 나온 것은 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밖이 추웠다. 낮보다 더 추워졌다. 망원동 골목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걸어다녔다. 연인들, 친구들, 혼자 걷는 사람들. 술집 앞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웠다. 그 연기가 차가운 공기에 빠르게 흩어졌다.

세아의 어깨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타투 부위. 얼음팩의 효과가 다 빠진 것 같았다.

“어깨 어때?” 하늘이가 물었다.

“괜찮아요.”

“아프지?”

“아파요.”

“아프면 괜찮다고 하지 마.” 하늘이가 말했다. “그 버릇도 고쳐야 해.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반박하지 않았다.

“강리우 연락 왔어?”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카카오톡 알림이 있었다. 도현한테서 온 것 두 개, 편의점 알바 단톡방 하나, 그리고 — 저장되지 않은 번호.

세아는 그것을 눌렀다.

오늘 만날 수 있어요? 박인철 씨한테 들었는데 —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시간 되면 연락 주세요.

강리우였다.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는데도 알 수 있었다. 문어체. 짧고 직접적. 그러면서 끝이 약간 불확실한.

세아는 그 메시지를 봤다.

“왔어?” 하늘이가 옆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뭐래.”

“만나자고요.”

“지금?”

“지금은 아닌 것 같고, 오늘 안으로요.”

하늘이가 잠깐 생각했다.

“나세아.” 하늘이가 말했다. “만나. 그리고 그 계약서 가져가.”

“보여줘요?”

“보여줘. 그 사람 반응 봐야 해. 이걸 알고 있었는지, 몰랐는지. 알았으면 어떻게 설명하는지. 몰랐으면 어떤 얼굴을 하는지.”

세아는 하늘이를 봤다.

“무서워도?” 세아가 물었다.

“무서워도.” 하늘이가 말했다. “아니, 무서우니까. 무서운 거 피하면 평생 그 5퍼센트짜리 크레딧만 받으면서 살아야 해.”

세아는 핸드폰을 다시 봤다.

메시지 입력창을 열었다.

어디예요.

짧게 보냈다.

세 글자. 물음표도 없이.

답장이 빠르게 왔다.

홍대. 한강 근처 카페인데 주소 보낼게요. 지금 와도 돼요?

세아는 그것을 읽었다.

네.

하나 더 보냈다.

그리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가요.” 세아가 말했다.

“조심해.” 하늘이가 말했다. “그리고 세아야.”

세아가 돌아봤다.

“너 음악 좋아. 진짜로. 그거 잊지 마. 그 사람이 뭔 말을 해도, 아버지 회사 계약서가 어떻게 생겼어도. 네 음악은 네 거야.”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대답하지 않고 걸었다.


리우가 보내준 주소는 합정역 근처 카페였다.

홍대와 합정 사이, 한강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것이었다. 세아는 그곳을 알지 못했다. 지도 앱을 켜서 걸었다. 걸으면서 어깨를 의식했다. 성냥 모양이 피부 위에 있었다. 옷 너머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거기 있다는 것을.

카페 문을 열었다.

작은 곳이었다. 테이블 열 개 남짓. 조명이 낮았다. 벽에 빈티지 음반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카운터 뒤에 레코드판이 돌아가고 있었다 — 실제로 플레이되는 것이었다. 세아는 그 소리를 들었다. 빌 에반스. 피아노 트리오. 리버브가 없이 녹음된 오래된 소리.

리우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세아를 보자마자 일어섰다.

“왔어요.” 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맞은편에 앉았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놨다. 파일이 가방 안에 있었다.

리우가 앉았다. 잠깐 세아를 봤다가 시선을 내렸다.

“박인철 씨한테 들었어요. 오늘 만났다고.”

“네.”

“어땠어요.”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대답하는 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맞는지 생각했다. 어땠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5퍼센트짜리 크레딧을 제안받았다고? 5년짜리 계약서를 받았다고? 세션 활동도 못 하게 막는 조항을 발견했다고?

“계약서 받았어요.” 세아가 말했다.

“알아요.”

“읽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세아는 가방을 열었다. 파일을 꺼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리우가 그것을 봤다. 세아는 파일을 그에게 밀었다.

“읽어봤어요? 이거.” 세아가 물었다.

리우가 파일을 집었다. 첫 페이지를 폈다. 두 번째 파일이었다 — 전속 계약서. 그가 읽기 시작했다. 세아는 그 모습을 봤다.

리우의 눈이 페이지 위에서 움직였다. 세아는 그 움직임을 봤다. 읽고 있는 것이었다 — 처음 보는 것처럼 읽고 있는 것인지, 이미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인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몇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멈췄다.

7페이지였다. 창작물 귀속 조항.

리우의 손가락이 그 페이지에서 멈췄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손가락이 활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피아니스트 손 — 하늘이가 말했던 것처럼, 마디가 굵고 길었다. 그 손가락이 7페이지에서 멈춰 있었다.

“이거.” 리우가 말했다.

세아가 기다렸다.

“내가 본 계약서랑 달라요.”

세아의 호흡이 한 박자 늦어졌다.

“어떻게 달라요.” 세아가 물었다.

“신인 작곡가 계약 기준이 — 이건 7퍼센트인데, 내가 본 건 15퍼센트였어요.”

“15퍼센트.”

“네.” 리우가 파일을 더 넘겼다. 계속 읽었다. 세션 활동 금지 조항. 그것에서도 멈췄다. “세션 활동 금지. 이건 — 이건 표준 계약서에 없는 조항이에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표준에 없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JYA 표준 전속 계약서에는 세션 활동 금지 조항이 없어요. 외부 정규 음반 활동이나 경쟁 기획사 전속은 당연히 못 하지만, 세션이나 피처링은 협의로 하도록 돼 있어요. 이건 — 누군가가 추가한 거예요.”

“누가요.”

리우가 파일을 덮었다.

그의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지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악무는 것처럼, 표면이 평평한 것처럼. 그러나 그의 손가락이 파일 위에서 약간 굽어 있었다.

“박인철 씨가 이 계약서를 줬어요?” 리우가 물었다.

“네.”

“박인철 씨가 조항을 바꿀 권한은 없어요.” 리우가 말했다. “그 말은 — 위에서 지시가 있었다는 거예요.”

“위에서.”

리우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아는 알았다. 위에서가 누구를 말하는지. JYA 엔터테인먼트. 대표 강민준. 리우의 아버지.

세아는 테이블 위에 첫 번째 파일도 꺼냈다. 저작권 양도 합의서. 그것도 리우 앞에 밀었다.

“이것도 봐요.”

리우가 그것을 집었다. 폈다. 별첨 A가 나오는 페이지를 바로 찾았다. 세 곡의 목록. 그것을 봤다.

세아는 그의 얼굴을 봤다.

뭔가 지나갔다. 표정이 아니라 — 눈 뒤에서 뭔가가 지나가는 것. 세아는 그것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 보는 사람의 반응이라는 것은 알았다.

“이게 언제 작성된 거예요.” 리우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박인철 씨가 어떻게 설명했어요.”

세아가 박인철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이름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 원저작자 확인 절차. 180일. 그리고 5퍼센트.

리우가 별첨 B를 찾았다.

정산 비율표. 5퍼센트.

리우가 그것을 보는 순간 — 처음으로 표정이 흔들렸다. 아주 짧게. 턱이 약간 당겨지는 것. 눈이 한 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

“5퍼센트.” 리우가 말했다.

“네.”

“이것도 내가 본 게 아니에요.” 리우가 말했다. “이건 — 이건 JYA 표준 작곡가 계약이 아니에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러면 이건 뭐예요.” 세아가 말했다.

리우가 파일 두 개를 나란히 테이블 위에 놓았다. 두 개를 번갈아 봤다. 세아는 그가 생각하는 것을 기다렸다. 카페 안에서 빌 에반스 앨범이 계속 돌아갔다. 피아노가 낮은 음을 짚었다. 반복되는 모티프. 같은 음을 조금씩 다르게 치는 것.

“나세아 씨.” 리우가 말했다.

“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근데 솔직하게 말할게요.”

세아가 기다렸다.

“이 계약서들 — 아버지가 만든 거예요.” 리우가 말했다. “박인철 씨는 전달자예요. 아버지가 나세아 씨를 보고, 이 조건으로 묶으려고 한 거예요.”

“묶으려고.”

“나세아 씨를 JYA 소속으로 만들되, 세션 활동을 막아서 외부 수입원을 차단하고, 창작물 귀속 조항으로 앞으로 쓸 곡들도 전부 JYA 것으로 만들고, 7퍼센트라는 말을 했지만 실제로는 5퍼센트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리우가 말을 잠깐 멈췄다. “이름을 돌려준다는 명목으로요.”

세아는 그 말들을 들었다. 하나씩. 끝까지.

“그게 나쁜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리우가 세아를 봤다.

“나한테 묻는 거예요?”

“네.”

“나쁜 거냐고요.”

“나는 판단을 잘 못 해요.” 세아가 말했다. “내 상황에 대해서.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 정말 이상한 건지.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리우가 잠깐 세아를 봤다.

그리고 말했다.

“나쁜 거 맞아요.”

짧고 직접적으로.

“5퍼센트는 착취에 가까운 비율이에요. 세션 금지는 생계 수단을 차단하는 거예요. 3년 자동 연장 조항은 사실상 탈출구를 없애는 거예요. 그리고 이 곡들의 저작권을 JYA가 가져가면서 나세아 씨 이름을 크레딧에 넣어주는 건 — 법적으로 나세아 씨를 원저작자로 인정하면서 실질적인 수익과 권리는 JYA가 가지는 구조예요.”

세아는 그 말들을 들었다.

“그거 알고 있었어요?” 세아가 물었다. “처음부터.”

리우가 세아를 봤다.

“아니요.”

“거짓말이에요?”

“아니요.”

“어떻게 알아요. 본인이 모른다고 하는 걸.”

리우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페 안의 음악이 한 구절 지나갔다.

“모른다고 증명할 수는 없어요.” 리우가 말했다. “믿고 안 믿고는 나세아 씨가 결정하는 거예요. 근데 내가 이 계약서를 알고 있었으면, 오늘 박인철 씨가 나세아 씨한테 이걸 줬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 — 지금 여기서 이걸 나세아 씨 앞에서 읽으면서 이런 반응 안 했을 거예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어떤 반응이요.”

“화난 거요.” 리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저 화났어요. 나세아 씨한테가 아니라.”

세아는 그것을 봤다. 리우의 턱이 당겨져 있었다. 손가락이 파일 위에서 굽어 있었다. 아까부터 그랬다 — 세아가 알아챘지만 말하지 않았던 것.

“아버지한테요?” 세아가 물었다.

리우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답하지 않음이 대답이었다.


카페 밖에서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다.

리우가 커피를 주문했다. 세아에게도 뭔가 마실 거냐고 물었다. 세아는 따뜻한 것이면 뭐든지라고 했다. 리우가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돌아왔다. 세아는 그 사이에 파일 두 개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테이블 위에 두고 싶지 않았다.

“나세아 씨.” 리우가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네.”

“이 계약서에 사인하지 마요.”

“알아요.”

“그게 내 아버지 계약서라도요. 아니 — 내 아버지 계약서니까요.”

세아는 그 말의 뉘앙스를 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세아가 물었다. “내 곡들을요. 그 세 곡이요.”

리우가 생각하는 것이 보였다.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이 — 그러나 소리 없이. 세아는 그 손가락을 봤다. 하늘이가 말했던 것처럼 피아니스트 손이었다.

“방법이 있어요.” 리우가 말했다. “빠르지 않고, 쉽지도 않고, 돈도 들어요.”

“들려봐요.”

“두 번째 곡 계약서 사본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거 가져와요. 내가 법률 쪽 아는 사람 있어요 — JYA 법무팀 아니고, 외부 변호사예요. 그 계약서 조항을 검토해서 저작권 귀속이 어떻게 돼 있는지 보는 거예요.”

“돈이 얼마나 들어요.”

“처음 상담은 무료예요. 어떻게 진행할지는 그다음 문제고.”

세아는 그것을 들었다.

“그리고.” 리우가 계속했다. “세 번째 곡 — 계약서 없이 구두로 줬다고 했잖아요. 그거, 그 담당자랑 나눈 문자나 카카오톡 같은 게 있어요? ‘이 곡 주세요, 알겠어요’ 같은 거라도.”

세아는 기억하려고 했다.

2년 전. 담당자의 이름이 김성진이었다. 서른 중반쯤 됐던 것 같았다. 카카오톡으로 먼저 연락이 왔다. 곡 작업 의뢰라고. 세아는 그 대화를 지웠을 것이었다 — 잊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나 지웠는지 안 지웠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확인해봐야 해요.” 세아가 말했다.

“그 대화가 있으면 — 완벽하지는 않지만 증거가 될 수 있어요. 구두 계약도 법적으로는 계약이에요. 이행 증거가 있으면 더 강력하고.”

커피가 나왔다. 세아 앞에 따뜻한 유자차가 놓였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노란빛이었다. 유리잔 안에서 유자 조각이 떠 있었다.

세아는 잔을 감쌌다. 양손으로.

“왜요.” 세아가 말했다.

리우가 세아를 봤다.

“왜 이걸 도와주려고 해요.”

“나세아 씨 음악을 좋아해서요.” 리우가 말했다.

“그게 이유예요?”

“이유 중 하나요.”

“나머지 이유는요.”

리우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잠깐 생각했다.

“아버지가 하는 방식이 —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재능 있는 사람을 찾아서, 구조를 만들어서, 그 사람이 구조 밖에서는 살 수 없게 만드는 거요. 그게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는 거예요.” 리우가 말했다. “나도 그 구조 안에 있어요. 지금. 그게 싫어요. 그리고 나세아 씨까지 그 안에 들어가는 걸 — 내 때문에 들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본인 때문이 아니에요.”

“내가 클럽에 갔으니까 아버지가 나세아 씨를 알게 됐잖아요.”

“그게 당신 잘못이에요?”

“내 때문에 시작된 건 맞아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반박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있었지만 — 리우가 그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세아도 느꼈다.

“아버지한테 이야기할 거예요?” 세아가 물었다.

“해야죠.”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리우가 잠깐 생각했다.

“모르겠어요.” 리우가 말했다. “아버지는 설득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설득이 아니라 — 조건을 바꿔야 해요. 나세아 씨한테 이 계약서가 필요 없을 만큼 다른 상황을 만들거나.”

“다른 상황이요.”

“나세아 씨 이름으로 곡을 낼 수 있는 상황이요. 아버지 없이.”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아버지 없이.

JYA 없이. 계약서 없이. 5퍼센트 없이. 세션 금지 없이. 세아의 이름으로, 세아의 곡이, 세아의 목소리로.

그것이 가능한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피어났다가 — 그 바로 옆에, 어떻게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그게 가능해요?” 세아가 물었다.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왜요. 왜 그렇게까지 해요.”

리우가 세아를 봤다.

오래.

“클럽에서 나세아 씨 노래 들었을 때.” 리우가 말했다. “마지막 곡이요. 제목이 뭐예요?”

세아는 그것을 기억했다. 그날 밤의 마지막 곡. 세아가 제목을 붙이지 않은 것. 그냥 불렀던 것.

“없어요.” 세아가 말했다.

“없어요?”

“제목을 못 붙였어요.”

“왜요.”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그 곡은 —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세아가 말했다. “어디서 끝나는 건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제목을 못 붙였어요.”

리우가 그 말을 들었다.

“그 곡이.” 리우가 말했다. “그 마지막 코러스에서 — 전조를 안 했잖아요.”

“네.”

“일부러요?”

“클럽에서 처음 만날 때 물어봤던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기억해요.”

“일부러예요.” 세아가 말했다. “전조 안 하면 더 아픈 것 같아서요. 올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으면.”

리우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요.” 리우가 말했다. “그게 왜 그 음악을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예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유자차가 아직 따뜻했다. 양손 사이에서. 세아는 그 온기를 느꼈다.

“전조 안 하면 더 아프다는 걸.” 리우가 계속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만드는 음악이에요. 그게 5퍼센트짜리 크레딧으로 팔려야 할 음악이 아니에요.”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유자차를 한 모금 마셨다. 새콤하고 따뜻했다. 유자 향이 목 안으로 들어왔다.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 목이 풀리는 느낌. 겨울 내내 쉬어 있던 것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

그리고 — 어깨가 다시 뛰었다.

성냥 모양이 있는 그 자리에서.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세아가 말했다.

“네.”

“당신 아버지가 이 계약서를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그게 나한테 불리하게 조항을 바꾼 거라면 — 당신한테도 불리한 상황이에요. 나를 도우면 아버지한테 대드는 거잖아요.”

리우가 세아를 봤다.

“그게 질문이에요?”

“그게 질문이에요.”

리우가 잠깐 생각했다.

“나세아 씨는 아버지 때문에 음악을 못 하게 되는 게 싫잖아요.” 리우가 말했다.

“네.”

“나도 아버지 때문에 진짜 음악을 못 하고 있는 게 싫어요. 오래됐어요. 그게.”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진짜 음악을 못 하고 있다는 말.

베를린에 갔다가 돌아온 것. 피아노를 그만둔 것. 그것들이 이 말 뒤에 있었다. 세아는 묻지 않았다. 아직은.

“그러면.” 세아가 말했다. “우리 같은 상황이에요.”

“비슷한 거요.”

“비슷하게요.”

두 사람 사이에 잠깐 침묵이 있었다.

카페 안에서 레코드가 면이 끝났다. 바늘이 공전하는 소리가 잠깐 났다. 카운터 뒤에서 주인이 일어나 레코드를 뒤집었다. B면이 시작됐다. 같은 피아노 트리오. 다른 곡.

“두 번째 곡 계약서.” 리우가 말했다. “고시원에 있다고 했잖아요.”

“네.”

“내일 가져올 수 있어요?”

세아는 생각했다. 내일 오전 편의점 알바가 있었다. 열두 시에 끝났다. 그다음에 가져올 수 있었다.

“내일 오후에요.”

“어디서 만날까요.”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카페 말고요.” 세아가 말했다.

리우가 세아를 봤다.

“카페에서 계속 만나면 — 계속 서류만 보게 될 것 같아서요.”

리우가 잠깐 그 말의 뜻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어디가 좋아요.”

“한강이요.” 세아가 말했다. “합정 쪽. 거기서 볼게요.”

리우가 잠깐 뭔가를 말하려다가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오후 두 시요.”

“네.”

세아는 유자차를 다 마셨다. 잔 바닥에 유자 조각 하나가 남아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노란 조각.

가방을 들었다.

“나세아 씨.” 리우가 말했다.

세아가 일어서다가 멈췄다.

“오늘.” 리우가 말했다. “어깨 괜찮아요?”

세아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한 박자 뒤에 이해했다.

어깨. 타투.

하늘이의 타투 샵에 다녀왔다는 것을 리우가 어떻게 알까 — 아니. 리우가 타투 이야기를 한 게 아니었다. 그냥 어깨라고 했다. 세아가 어깨를 약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을 봤을 것이었다.

“괜찮아요.” 세아가 말했다.

“진짜로요?”

세아는 잠깐 생각했다.

“아파요.” 세아가 말했다. “근데 괜찮아요.”

리우가 그 대답을 들었다.

세아는 카페 문을 열고 나왔다.


밖은 더 추워졌다.

합정 골목에 늦은 밤의 공기가 가득했다. 세아는 점퍼 지퍼를 올렸다. 어깨가 뛰었다. 심장박동에 맞춰서.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아버지가 만든 계약서. 조항이 바뀐 것. 리우가 몰랐다는 것 — 그것을 세아는 믿는다고 결정했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얼굴을 봤기 때문이었다. 7페이지에서 멈췄던 손가락. 별첨 B에서 흔들렸던 표정. 그것이 연기라면 — 세아는 음악을 모르는 것이었다. 사람의 감정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전조 안 하면 더 아프다는 걸 아는 사람.

리우가 그것을 말했을 때 세아는 뭔가를 느꼈다. 이름이 없는 감정이었다. 정확히는 — 이름을 붙이기가 무서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름을 붙이면 그것이 실재해버리기 때문이었다.

세아는 핸드폰을 꺼냈다.

도현한테 온 카카오톡을 열었다.

누나 밥은 먹었어?

그리고 두 번째 메시지.

아 그리고 엄마가 오늘 전화했는데 누나 노래 언제 또 들을 수 있냐고 했어. 나는 모른다고 했는데 뭐라고 할까

세아는 그것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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