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69화: 하늘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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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9화: 하늘의 손

“어디 가?”

하늘이 물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세아는 그 질문의 답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원 로비에 앉아 있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었다. 신체는 의자 위에 있었지만, 의식은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에 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자신의 삶의 관객이 되어버린 것처럼.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만 알았고, 그 다음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방향감각의 상실’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그것이 더 깊은 무언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목표의 상실이었다. 자신이 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의 상실이었다.

“집으로 와. 지금. 차 보낼게.”

하늘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렸다. 명령이었다. 요청이 아니라 명령. 세아는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다. 분노. 아니, 정확히는 분노보다 더 깊은 무언가. 실망. 그것이 하늘의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하늘아.”

세아가 말했다.

“뭐?”

하늘이 대답했다.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하늘의 숨소리가 들렸다. 길게 쉬었다 참았다. 마치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미안하는 게 아니라 집으로 와. 알았어?”

하늘이 말했다. 그리고 세아는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들었다. 명령 아래의 절망. 강함 아래의 두려움. 하늘도 세아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것. 그리고 세아가 지금 자신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직도 통화 중이었지만,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병원 로비의 형광등 아래에서 세아의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떨리지 않고 있었다. 손이 정지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손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마치 자신의 손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병원을 나갔다. 밖은 이미 완전한 새벽이 아니라 아침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서울의 아침은 항상 갑작스럽다. 어두움에서 밝음으로의 전환이 점진적이지 않다. 마치 누군가가 스위치를 누르는 것처럼. 마치 세상이 밤과 낮 사이에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 것처럼.

택시를 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지만, 택시를 타는 것은 자동이었다. 신체가 이미 알고 있는 행동. 신체가 이미 해본 행동. 신체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하는 행동.

“어디로 가세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서울의 도로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강남역, 신논현역, 한강대교. 세아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강남역 근처 해줄래요?”

세아가 말했다.

기사가 고개를 끄덕했다. 그리고 택시는 계속 움직였다. 세아의 심장도 함께.

하늘의 타투숍은 강남의 작은 골목 안에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빌딩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었다. 벽에는 수천 개의 타투 디자인이 붙어 있었다. 모두 다른 이야기들. 모두 다른 영혼들의 선택. 세아는 그 공간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하늘은 이미 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투 의자 옆에 서 있었다. 팔을 베고. 세아를 보자마자 하늘의 얼굴이 변했다. 분노가 아니었다. 슬픔이었다.

“세아.”

하늘이 이름을 불렀다. 그것은 인사가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마치 자신의 친구가 정말로 여기 있는지, 정말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하늘 옆의 의자에 앉았다. 그 의자는 타투를 받을 때 앉는 의자였다. 아픔을 받아들이는 의자. 고통을 영구화하는 의자.

“엄마가 어떻게 된 거야?”

하늘이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뭐가 ‘모르겠어’야? 도현이가 전화했잖아. 엄마가 쓰러졌다고.”

하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곧 내려갔다. 마치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내가 강리우를 만났어.”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 말을 들었지만, 그것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자신이 기대했던 말이면서도 동시에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인 것처럼.

“뭐라고?”

하늘이 물었다.

“병원에서 나가기 전에. 그 사람이 문자를 보냈어. 이제는 그만하자고. 앞으로는 자신을 지우겠다고.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자고.”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이었다. 세아는 강리우의 문자를 받지 않았다. 세아는 자신이 강리우를 만났다는 것을 거짓으로 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강리우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그 거짓이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늘이 세아의 팔을 잡았다. 부드럽지만 확실한 힘으로.

“세아, 정신 차려. 제발.”

하늘이 말했다.

“정신 깬 사람은 나야. 이제.”

세아가 말했다.

“넌 정신을 잃고 있어. 자살 하나 안 하는 게 다행이야.”

하늘이 말했다.

그 말이 정확히 세아의 심장에 닿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의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아는 자살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적극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단순히 자살할 방법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단순히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도 너무 피곤했을 뿐이었다.

“나 이제 강리우 안 만날 거야.”

세아가 말했다.

“거짓 말하지 마.”

하늘이 말했다.

세아는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늘은 울고 있었다. 자신의 친구를 위해 울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 눈물을 보면서, 자신이 하늘에게 얼마나 큰 짐을 안겼는지 깨달았다.

“하늘아.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미안하지 말고 살아. 제발.”

하늘이 말했다.

그 순간, 하늘이 세아의 손을 잡았다. 아니, 정확히는 잡지 않았다. 하늘의 손이 세아의 손 위에 놓였다. 마치 자신의 손으로 세아의 손을 데워주려고 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세아의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두려고 하는 것처럼.

세아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하늘의 손이 그 위에 있자,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리적인 온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정신적인 온기였다. 누군가가 세아를 버리지 않았다는 온기. 누군가가 세아를 지키고 있다는 온기. 누군가가 세아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는 온기.

“내가 뭘 해야 할까?”

세아가 물었다.

“집으로 와. 내 집으로. 지금. 밥 먹고. 자고. 그리고 내일 다시 생각해.”

하늘이 말했다.

“내일이 있을까?”

세아가 물었다.

“있지. 나와 함께라면.”

하늘이 말했다.

세아는 하늘의 손을 바라봤다. 그 손은 타투이스트의 손이었다. 수천 명의 피부 위에 영원을 새겨온 손. 그 손이 지금 세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마치 세아도 그 손 위에 뭔가를 새기려고 하는 것처럼.

“하늘아.”

세아가 말했다.

“응?”

하늘이 대답했다.

“나 타투 해줄래?”

세아가 물었다.

하늘의 눈이 움직였다. 놀라움. 그리고 그 놀라움 아래의 무언가. 이해. 마치 자신이 방금 들은 것이 거짓 약속이 아니라 진실한 선택이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지금은 안 돼. 너는 지금 정신이 맑지 않아.”

하늘이 말했다.

“아니. 나는 지금 생각이 가장 맑아. 처음으로.”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 세아의 팔을 들었다. 세아의 왼쪽 팔. 손목 아래쪽. 그곳에 새로운 타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하얀 피부. 아직도 아무 무늬도 없는 피부.

“뭐를 할래?”

하늘이 물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무엇을 자신의 몸 위에 영구적으로 새길 것인가. 무엇이 자신의 이 순간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불꽃.”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 눈에서 이해를 읽을 수 있었다. 하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의 제목을. 이 소설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불태워지는 소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이번엔 다를 거야.”

세아가 말했다.

“뭐가?”

하늘이 물었다.

“이번엔 내가 불을 조종할 거야. 누군가를 태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밝히기 위해서.”

세아가 말했다.

하늘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타투 건을 들었다. 검은색의 기계. 작은 진동. 작은 고통. 작은 영구성.

“아파. 많이.”

하늘이 말했다.

“알아.”

세아가 말했다.

“그래도 할래?”

하늘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타투 바늘이 세아의 피부에 닿았다. 작은 고통.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를 새기는 고통이었다. 무언가를 영구화하는 고통. 그리고 세아는 그 고통 속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 위에. 자신의 미래 위에. 자신의 인생 위에.

불꽃이 천천히 형태를 갖추었다.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하늘의 손이 정확했다. 마치 세아의 팔 위에 불을 그리려고 했던 것처럼. 마치 세아 자신의 내부의 불을 외부로 끌어내려고 했던 것처럼.

고통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파괴적인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창조적인 고통이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고통. 무언가를 증명하는 고통.

“다 됐어.”

하늘이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팔을 들었다. 손목 아래에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작지만 명확한 불꽃. 자신의 피부 위에 새겨진 불. 자신의 몸이 된 불.

“예쁘다.”

하늘이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세아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밝은 미래는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것이 고통 없는 미래는 분명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새벽이 지나갔다. 아침이 되었다. 그리고 세아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 불꽃, 그리고 선택

## 첫 번째 부: 결정

타투숍의 불빛은 따뜻했다. 네온사인의 주황색 빛이 벽면을 타고 내려오며, 작은 공간 전체를 마치 불 속에 잠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세아는 그 아이러니를 주목했다. 불꽃을 새기러 왔는데, 이미 불 속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의자는 검은색 가죽으로 덮여 있었고, 팔걸이는 낡아서 여러 곳이 갈라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이 의자 위에서 변형되었을 것이다. 세아는 천천히 앉았다. 의자의 가죽이 자신의 체온을 빨아들이는 것을 느꼈다.

“뭐를 할래?”

하늘이 물었다. 하늘—그것은 그녀의 본명이 아니었다. 타투이스트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하늘도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이름을 선택했다. 세아는 하늘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까맣고 긴 머리, 날카로운 눈빛, 목 옆에 새겨진 작은 별들. 별들의 배치는 무질서해 보이면서도 어떤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

세아의 팔은 창백했다. 흰 피부—병적일 정도로 하얀 피부. 어릴 때부터 햇빛을 피해왔기 때문이다. 그 팔은 아직도 아무 무늬도 없었다. 완벽한 백지. 마치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인생처럼.

“생각 좀 해볼게요.”

세아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기대와 달리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했다. 침착했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것처럼.

세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었다. 무엇을 새길 것인가? 무엇이 자신의 이 순간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 자신의 영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때 떠올랐다. 한 권의 책. 아니, 정확히는 한 권의 소설. <불태워지는 소녀>. 세아는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다. 밤새 몇 시간씩. 주인공이 서서히 불타는 것을 지켜봤다.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모두가 그 불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숙명인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다르게 생각했다.

“불꽃이요.”

세아가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이번에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세아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무언가를 읽을 수 있었다. 이해. 아니, 그 이상이었다. 인정. 마치 하늘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알겠네요.”

하늘이 천천히 말했다.

“뭘 아신 거죠?”

세아가 물었다.

“이 소설 말이에요. <불태워지는 소녀>. 읽었어요.”

하늘의 음성은 낮고 차분했다. 타투이스트의 목소리였다.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왔고, 수많은 선택을 목격해온 사람의 목소리.

“그런데…”

하늘이 계속했다. 그의 손이 공중에서 움직였다. 마치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이번엔 다를 거 같아요. 뭔가.”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약간 떨리고 있었다.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가 다를 거예요?”

하늘이 물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공중을 그리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불을 조종할 거예요. 누군가를 태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밝히기 위해서.”

세아의 목소리는 이제 더 강해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를 기다리며 준비해온 말을 드디어 내뱉는 것처럼.

“자신을 밝힌다?”

하늘이 반복했다.

“네. 불태우는 게 아니라, 불을 사용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거예요. 자신의 힘을 보여주는 거고요.”

세아는 자신의 팔을 들었다. 흰 팔. 무늬 없는 팔. 그 위에 앞으로 새겨질 불꽃을 상상했다.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의식적이었다. 마치 중요한 의식을 시작하려는 사제처럼.

“그렇다면 진짜 할 거죠?”

하늘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더 무거웠다.

“네. 할 거예요.”

세아가 대답했다.

## 두 번째 부: 준비

하늘이 테이블 위에 도구들을 펼쳤다. 검은 잉크병들. 무수한 크기의 바늘들. 고무 장갑. 소독약. 모두가 햇빛 아래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밤의 도구들.

“여기 앉으세요.”

하늘이 가리켰다. 세아는 그 자리로 갔다. 의자는 생각보다 편했다. 아니, 편한 것이 아니라 ‘준비된’ 느낌이었다. 마치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의자인 것처럼.

“이거 많이 아파요. 진짜.”

하늘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팔의 피부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아드레날린. 두려움. 기대. 모든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알아요.”

세아가 마침내 말했다.

“정말요?”

하늘의 눈이 세아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의문이 아닌 진정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네. 알아요. 그리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세아는 자신의 말에 놀랐다. 그 말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었다. 가장 깊은 곳에서.

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갑을 낀다. 검은 라텍스 장갑. 그 장갑이 하늘의 손을 덮으면서, 마치 다른 사람의 손처럼 보였다. 타투이스트의 손. 예술가의 손.

“그럼 시작할까요.”

하늘이 말했다.

타투 건을 집어 들었다. 검은색의 기계. 작은 진동이 손 위에 전달되었다. 그 진동은 거의 생명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기회예요. 지금 멈춰도 괜찮아요.”

하늘이 말했다.

“아니요. 계속하세요.”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 세 번째 부: 바늘

타투 바늘이 세아의 피부에 닿았을 때, 세상이 변했다.

고통. 날카로운, 반복적인, 깊이 있는 고통.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를 파괴하는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새기는 고통이었다.

“흠…”

세아가 신음했다. 그 신음은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괜찮으세요?”

하늘이 물었다. 그의 손은 계속 움직였다. 멈추지 않았다.

“네… 계속하세요.”

세아가 대답했다.

바늘은 계속 들어왔다. 빠르게, 반복적으로. 마치 세아의 피부에 메시지를 새기려는 것처럼. 세아는 눈을 감은 채로 그 과정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세아는 뭔가를 느꼈다. 뭔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삶은 무엇이었나? 선택이 없는 삶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결정 속에서 밀려다니는 삶이었다. 부모의 기대. 학교의 규칙. 사회의 시선. 모든 것이 자신을 위에서 억눌렀다.

하지만 지금, 이 고통 속에서,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 위에 뭔가를 영구적으로 새기고 있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의지로.

“색깔 들어갑니다.”

하늘이 말했다.

고통이 조금 달라졌다. 같은 깊이지만, 다른 감각이었다. 색깔이 들어가고 있었다.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세아는 눈을 뜼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팔 위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의 내면의 불이 피부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처럼.

분 이 지났다. 5분. 10분. 15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고통 속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더 길게, 더 깊게.

하지만 세아는 멈추지 않았다. 하늘도 멈추지 않았다.

“거의 다 됐어요.”

하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지막 단계의 신호였다.

세아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고통이 절정에 달했다가 이제 물러나가고 있었다. 마치 파도가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다 됐어요.”

하늘이 마침내 말했다.

타투 건이 멈췄다. 그 순간의 침묵이 얼마나 크게 들렸는지, 세아는 깨달았다.

## 네 번째 부: 변화

세아는 천천히 눈을 떼었다. 천장의 불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의 팔을 들었다.

손목 아래에 불꽃이 있었다. 작지만, 명확했다. 그것은 더 이상 상상 속의 불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피부 위에, 자신의 몸의 일부로 존재하는 불이었다.

붉은색에서 주황색으로, 주황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는 불꽃.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세아의 심장박동에 맞춰 움직이는 것처럼.

“예뻐요.”

하늘이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불꽃을 바라봤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슬픈 눈물이 아니었다. 뭔가가 깨어났다는 눈물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했어요? 불꽃을?”

하늘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이해를 바라는 호기심.

“오래전부터요.”

세아가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불을 봤어요. TV에서, 책에서, 꿈에서. 그리고 항상 같은 생각을 했어요. 불은 파괴하지만, 동시에 밝힌다는 것을.”

세아의 목소리는 이제 강했다. 마치 그동안 억눌렀던 무언가를 드디어 표현하는 것처럼.

“그리고 <불태워지는 소녀>를 읽었어요. 그 책은… 나 같았어요. 그 주인공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고, 그냥 불타고 있었어요.”

세아가 멈췄다. 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고 싶었어요. 나는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었어요. 나는 불을 사용하고 싶었어요.”

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여기 온 거군요.”

하늘이 말했다.

“네. 여기서 나 자신을 새기고 싶었어요. 나는 불이지만, 나는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아가 말했다.

거울이 있었다. 세아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봤다. 같은 세아였지만, 다른 세아였다. 손목 아래의 불꽃이 그것을 증명했다.

“조심하세요.”

하늘이 말했다.

“뭘?”

세아가 물었다.

“타투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요. 색깔이 바뀌기도 하고, 모양이 흐려지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도 일부인 거 같아요. 무언가를 새기는 것의 일부.”

하늘의 말은 단순해 보였지만, 깊었다.

“그렇군요.”

세아가 말했다.

“시간 속에서도 변한다는 거네요.”

“그래요. 그래서 더 소중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의 시간을 담고 있거든요.”

하늘이 말했다.

## 다섯 번째 부: 미래

세아는 타투숍을 나갔다. 밖은 여전히 밤이었다. 아직 새벽이 오지 않았다. 거리는 조용했다. 마치 세상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깨어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깨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팔은 아직 따뜻했다. 타투 바늘의 고통이 아직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질 감각이었다. 곧 습관이 될 것이다. 곧 자신의 일부가 될 것이다.

세아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들이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흐릿했지만, 멀리서 보면 명확했다. 마치 타투처럼.

그리고 세아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봤다.

그것이 밝은 미래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학교로 돌아가야 할 것이고, 부모님을 대면해야 할 것이고, 사회의 판단을 견뎌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미래였다. 그것이 중요했다.

세아는 자신의 팔을 들었다. 손목 아래의 불꽃이 가로등의 불빛을 반사했다. 그것은 마치 진짜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불이다. 하지만 나는 소멸하지 않는다.”

세아가 중얼거렸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몇 시간 후, 새벽이 밀려왔다. 어두운 하늘이 서서히 밝아졌다. 첫 햇빛이 지평선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빛이 세아의 팔에 닿았을 때, 불꽃이 더욱 선명해졌다.

세아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세아는 새로운 사람으로 그날을 맞이했다. 자신의 팔에 불꽃을 새긴 사람으로. 자신의 선택을 영구화한 사람으로.

불은 계속 타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자신을 태우는 불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밝히는 불이었다.

세아는 걸었다. 거리를 통해, 새벽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삶을 통해.

손목 아래의 불꽃이 햇빛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영구적이었다. 그리고 그 영구성 속에서, 세아는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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