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58화: 아버지의 이름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158 / 250Next

# 제158화: 아버지의 이름

엄마가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이 마치 물처럼 흘러내렸다. 세아는 그 침묵 속에서 호흡하고 있었다. 마치 해녀처럼. 아니, 정확하게는 엄마처럼. 물 속에서. 산소 없는 공간에서.

“아버지는 너의 목소리를 두려워했어.”

엄마의 마지막 말이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문장이 아니라, 어떤 저주처럼. 또는 어떤 진실처럼. 세아는 그 두 가지의 차이를 모르고 있었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1초. 그 사이에 세아의 뇌는 이미 수십 가지를 처리하고 있었다. 아버지. 그 단어. 그 남자. 그 존재. 세아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 속에는 얼굴이 없었다. 오직 그림자만. 또는 감정만. 두려움. 도망침. 그리고 엄마의 눈물.

“엄마는…”

세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없었다. 무엇을 물어야 할까. 아버지의 이름인가.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인가. 아니면 왜 엄마가 지금 이 순간에 이 말을 꺼내고 있는지인가.

엄마는 천천히 침대를 일으켰다. 의료진이 조정한 각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몸을 더 세우려고. 마치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너는 도현이를 봤지?”

엄마가 물었다.

“도현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세아는 침묵했다. 도현이의 분노. 그것이 자신의 몸 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마치 방사능처럼. 천천히 세포를 파괴하는 그런 방식으로.

“도현이가 너한테 말했을 거야. 니가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니가 자살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약함이 아니라, 결연함이었다. 마치 결정을 내린 사람의 떨림처럼.

“내가 너한테 말해줄게. 왜 넌 그래. 왜 넌 자꾸만 불 속으로 가려고 해.”

엄마가 세아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더 강하게. 거의 아프게.

“너는 아버지를 피하려고 하고 있어. 너는 모르지만, 넌 계속 아버지를 피하려고 하고 있어.”

“뭐라고…”

세아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너를 없애고 싶었어. 너의 목소리를. 너의 존재를. 그래서 아버지는 넌 자신감이 없는 아이가 되기를 원했어. 아버지는 넌 조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버지는 넌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엄마는 닦지 않았다. 마치 그 눈물도 말의 일부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너를 데리고 나왔어. 제주로. 그곳에서 넌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곳에서 넌 노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럼 왜…”

세아가 물었다.

“왜 난 계속 그래?”

엄마는 세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마치 그 안에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왜냐하면 아버지가 넌 안에 있기 때문이야.”

그 말이 세아의 가슴을 뚫었다. 물리적으로 아팠다. 마치 손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가는 것처럼.

“아버지가 넌 안에 있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두려움이. 아버지의 자학이.”

엄마가 계속했다.

“넌 아버지가 너한테 하려고 했던 것들을 이제 자신에게 하고 있어. 넌 자신의 목소리를 없애려고 하고 있어. 넌 자신의 존재를 없애려고 하고 있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넌 강리우 같은 사람을 찾아.”

“아니야…”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확신이 없었다.

“강리우는…”

“강리우는 뭐야?”

엄마가 물었다.

“강리우는 너한테 뭐해줬어? 강리우는 너를 구해줬어? 아니면 강리우도 너한테 계속 같은 걸 반복하게 해주고 있어?”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의 답을 자신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실의 심장 모니터가 다시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비프비프, 비프비프비프. 의료진이 들어올 것 같은 그런 속도. 하지만 의료진은 오지 않았다. 아마도 이미 정상 범위의 불규칙함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가족의 스트레스는 정상 범위 안의 것이다. 의료 시스템이 처리할 수 있는 범위 안의 것이다.

“너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

엄마가 말했다.

“너는 계속 같은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어. 너는 아버지를 피하면서 동시에 아버지처럼 행동하고 있어. 너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으려고 하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주려고 하고 있어.”

엄마의 손이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가 뭐야? 너는 무너져 있어. 도현이는 무너져 있어. 나도 무너져 있어. 우리 모두 너 때문에 무너져 있어.”

그 순간, 세아의 몸이 움직였다. 자동으로. 마치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조종되는 것처럼.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침대 위에 무릎을 꿇었다. 엄마 앞에. 마치 무언가를 빌 때처럼. 마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때처럼.

“미안해…”

세아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또는 자신의 목소리였지만,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어떤 부분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부분에서. 자신 속에 있는 아버지에서.

“미안한 게 뭐야?”

엄마가 물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뭐해? 미안한 건 니가 아니야.”

“그럼 뭐야…”

세아가 물었다.

“난 뭐야…?”

그 질문은 도현이가 던진 질문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이번에는 엄마도 세아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세아가 누구인지. 세아가 뭐인지. 아버지의 딸인지, 엄마의 딸인지, 도현이의 누나인지, 강리우의 뭔가인지.

엄마는 세아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당겼다. 마치 아주 어린 아이를 달래듯이. 세아는 그 가슴 위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몸이 떨렸다. 마치 기계처럼. 마치 아버지의 손이 자신의 척추를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엄마가 너한테 말해줄 게 하나 더 있어.”

몇 분이 지난 후, 엄마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았다. 그것은 피로했다. 절망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결정한 목소리였다.

“너는 아버지가 아무도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 너는 아버지를 용서해야 해. 아니, 정확하게는 너는 아버지를 놓아야 해.”

세아는 엄마를 바라봤다. 그 눈은 여전히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눈 안에는 뭔가가 있었다. 강함. 아니, 정확하게는 강함을 가장한 절망. 하지만 그 절망도 이미 극에 달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이제 강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놓지 못하면, 넌 계속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찾을 거야. 넌 계속 자신을 파괴할 거야. 넌 계속 불 속으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그 불 속에서 타버릴 거야.”

엄마의 손이 세아의 얼굴을 들었다. 강제로가 아니라, 부드럽게. 마치 세아가 정말로 아주 어린 아이인 것처럼.

“나는 이미 그렇게 했어. 나는 아버지 같은 사람과 함께 살았어. 나는 아버지를 놓지 못해서 도현이까지 낳았어. 나는 자신을 파괴했어. 그리고 너도 같은 길을 가고 있어.”

세아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행동이 반복되었다. 마치 자신이 입으로 뭔가를 먹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너무 커서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너는 아버지의 이름을 알 필요는 없어.”

엄마가 말했다.

“너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필요도 없어. 너는 단지 아버지를 놓아야 해. 너 안에 있는 아버지를. 너를 통제하는 아버지를. 너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아버지를.”

엄마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마치 속삭임처럼. 마치 이것이 가장 중요한 말인 것처럼.

“그리고 넌 강리우를 놓아야 해. 넌 자신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려고 하는 사람을 계속 찾고 있어. 넌 그것을 알아야 해.”

세아는 엄마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 속에는 그 모든 것이 있었다. 자신의 삶. 자신의 고통. 자신의 실패. 그리고 자신의 사랑. 엄마는 세아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도 파괴적이었다. 왜냐하면 엄마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엄마…”

세아가 말했다.

“난…”

그 다음이 없었다. 세아는 자신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뭐라고 느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 아버지의 딸도 아니고, 강리우의 뭔가도 아니고, 도현이의 누나도 아니고, 엄마의 딸도 아니고.

그저 누군가였다. 불 속에서 타고 있는 누군가. 그리고 이제 그것을 알았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깜빡였다. 1초, 2초, 3초. 그리고 빛이 다시 돌아온다. 그 사이에 세아는 계속 있었다. 존재했다. 비록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자신이 뭐인지 몰라도. 그저 존재했다.

“너는 여기 있으면 돼.”

엄마가 말했다.

“지금은 너는 그냥 여기 있으면 돼.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해.”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대신에. 왜냐하면 이제 그녀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 안에 있는 아버지가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침대를 다시 눕혔다. 천천히. 세아도 함께. 마치 둘이 한 몸인 것처럼. 아니, 어쩌면 이미 한 몸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형광등이 계속 깜빡였다. 1초, 2초, 3초. 세아는 그것을 세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일인 것처럼. 빛과 어둠. 존재와 부재. 그 사이에서 살아가기.

그리고 언젠가는 그 깜빡임도 멈출 것이다. 또는 세아가 그것을 무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는 세아 자신이 빛이 되거나 어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시간: 오후 11시 47분

복도에서는 도현이가 여전히 서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아무도 전화할 사람이 없었다. 아비지는 없고, 누나는 지금 엄마와 있고, 엄마는 누나와 있고.

도현이는 혼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제158화 끝

# 제158화 – 확장본

## 병실 내부, 오후 11시 32분

엄마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마치 속삭임처럼. 마치 이것이 가장 중요한 말인 것처럼.

세아는 그 음성의 변화를 즉시 감지했다. 어머니의 성대가 만드는 미묘한 떨림,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그 작은 파동들이 귀를 타고 뇌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무언가 결정적인 순간이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병실의 불편한 형광등 아래에서, 의료용 소독약의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엄마는 마치 신부가 고해성사를 나누듯 자신의 딸에게만 들려줄 수 있는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넌 강리우를 놓아야 해.”

엄마의 손이 침대 위에서 세아의 손을 더 깊숙이 잡았다. 그 손의 온도는 따뜻했지만, 손가락 끝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엄마의 손가락 뼈가 얼마나 얇은지, 그 피부가 얼마나 얇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종이를 만지는 것 같은 감각이 손바닥에 전달되었다.

“넌 자신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려고 하는 사람을 계속 찾고 있어.”

엄마는 그 말을 천천히, 마치 각 음절이 무겁기라도 한 것처럼 발음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세아는 엄마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들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주름살들은 세월의 흔적이었고, 동시에 고통의 지도였다. 각각의 선은 엄마가 견뎌낸 밤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넌 그것을 알아야 해.”

세아는 엄마의 눈을 마주쳤다. 직접적으로, 피할 수 없게. 그 눈 속에는 그 모든 것이 있었다. 자신의 삶. 자신의 고통. 자신의 실패. 그리고 자신의 사랑.

엄마의 눈동자 속에 반사되는 형광등의 빛을 보며, 세아는 자신이 지금까지 누구에게 끌려다녔는지를 깨달았다. 강리우.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자신은 항상 자신을 상처 입히는 사람을 찾아다녔을까? 왜 자신은 항상 자신을 파괴해주는 사람을 필요로 했을까?

그것은 중독이었다. 세아는 지금 그것을 알았다. 자해의 한 형태였다. 다만 손목이 아닌 마음을 칼로 그어내는 방식의.

엄마는 세아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도 파괴적이었다. 왜냐하면 엄마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엄마도 피해자였고, 그 피해를 자신도 모르게 딸에게 대물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가족이라는 구조의 비극이었다. 사랑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그렇게 세대를 이어 전달되는 고통의 사슬.

세아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목에서 무언가가 걸려 있는 것을 느꼈다. 공기가 통과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그녀의 목을 꽉 누르고 있는 것처럼.

“엄마…”

세아가 말했다. 그 한 음절만으로도 몸의 에너지가 대부분 소진되는 것 같았다.

“난…”

그 다음이 없었다. 세아는 자신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혀가 입 안에서 무거운 돌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뭐라고 느껴야 할지 몰랐다. 감정의 파도들이 가슴 안에서 충돌했다. 죄책감, 분노, 슬픔, 그리고 이상하게도 안도감.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

아버지의 딸도 아니고—왜냐하면 아버지는 그녀를 버렸으니까. 강리우의 뭔가도 아니고—왜냐하면 그는 그녀를 원하지 않았으니까. 도현이의 누나도 아니고—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는 데 실패했으니까. 엄마의 딸도 아니고—왜냐하면 엄마의 사랑도 그녀를 구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은 누구인가?

그저 누군가였다. 불 속에서 타고 있는 누군가. 불완전한 누군가. 깨진 누군가. 하지만 그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존재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깜빡였다.

1초—밝음.

2초—어둠.

3초—밝음.

그리고 다시 깜빡인다. 그 사이에 세아는 계속 있었다. 존재했다. 비록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자신이 뭐인지 몰라도. 그저 존재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세아는 형광등의 리듬에 자신의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깜빡일 때마다 가슴이 오르내렸다. 마치 그 빛과 어둠이 자신의 폐를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을 형광등과 동기화시키면,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들었다. 뭔가의 일부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여기 있으면 돼.”

엄마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속삭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명령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약속이었다.

“지금은 너는 그냥 여기 있으면 돼.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해.”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대신에. 왜냐하면 이제 그녀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 안에 있는 아버지가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말투. 아버지의 상처.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 속에 들을 수 없는 유산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다. 그래서 침묵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 침묵은 상처를 전달하지 않으니까.

엄마는 침대를 다시 눕혔다. 천천히. 매우 조심스럽게, 마치 세아가 깨질 수 있는 유리 같은 존재인 것처럼. 세아도 함께 누워갔다. 엄마의 품으로 향하듯이.

마치 둘이 한 몸인 것처럼. 둘의 호흡이 동일해지고, 둘의 심장이 같은 리듬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한 몸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세아는 엄마의 가슴에 자신의 귀를 붙였다.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규칙적이었고, 따뜻했고, 살아있었다. 그 박동음을 들으며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도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심장도 뛰고 있었다. 자신도 존재하고 있었다.

형광등이 계속 깜빡였다.

1초—빛.

2초—어둠.

3초—빛.

세아는 그것을 세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일인 것처럼. 빛과 어둠. 존재와 부재. 그 사이에서 살아가기. 그것이 인생이었다. 그것이 모든 것의 의미였다.

병실 밖에서는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창밖에는 도시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수천 수만의 불빛들이 각각의 누군가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도 자신처럼 형광등 아래에서 밤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자신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 수많은 불빛 중 하나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깜빡임도 멈출 것이다. 또는 세아가 그것을 무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는 세아 자신이 빛이 되거나 어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엄마의 심장 박동을 세며. 형광등의 깜빡임을 세며. 다음 날이 올 때까지. 다음 시간이 올 때까지. 다음 순간이 올 때까지.

그것으로 충분했다.

## 병실 밖, 복도, 오후 11시 47분

복도에서는 도현이가 여전히 서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그 벽은 차갑고 딱딱했다. 마치 자신의 가슴처럼.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화면을 켰다가 꼭 3초 후에 다시 끄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 화면의 밝기가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가 다시 어둠에 잠겼다. 깜빡임. 또 깜빡임.

아무도 전화할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없고—그는 오래전에 이 가족을 떠났다. 그리고 도현이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 누나는 지금 엄마와 있고, 엄마는 누나와 있고. 그들은 하나의 단위로 작동하고 있었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도현이는 혼자였다.

복도의 조명은 병실보다 더 밝았다. 하지만 그 밝음은 더 외로웠다. 왜냐하면 그 밝음 속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병실의 어둠 속에는 엄마와 누나가 함께 있었지만, 복도의 밝음 속에는 자신 혼자뿐이었다.

도현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무릎을 가슴까지 올렸다. 자신을 작게 접으면, 혹시 모르니까. 혹시 누군가 자신을 봐도, 자신을 무시할 수 있도록. 자신을 빈 공간이라고 생각하도록.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혼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혼자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혼자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도현이는 휴대폰을 다시 켰다. SNS를 열었다. 자신의 친구들의 게시물들이 떠올랐다. 웃음. 파티. 함께함. 모두가 혼자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현이는 알았다. 그것이 다였다는 것을. 그 화면 뒤에는 자신 같은 누군가들이 있다는 것을. 혼자라는 것을 견디고 있는 누군가들이.

그것이 더 슬펐다.

병실에서는 엄마가 누나를 안고 있을 것이다. 누나는 이제 잠이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누나가 자신의 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계속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손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도현이는 그런 것을 원했다. 하지만 그는 남자였다. 그리고 남자는 안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도현이가 배운 것이었다. 그것이 도현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혼자였다.

복도의 형광등도 깜빡였다.

1초—밝음.

2초—어둠.

그 어둠의 순간, 도현이는 자신이 사라지고 싶었다. 형광등이 다시 켜질 때 자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혼자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은 혼자일 수 없으니까.

하지만 형광등은 다시 켜졌다. 그리고 도현이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제158화 끝**

158 / 250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